2001년 9월호

풀만 먹는 사람들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thwang@donga.com

    입력2005-04-08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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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식은 어떤 경우든 건강에 이로운 행위다. 배추나 무 같은 겨잣과 식물은 대장암에 걸릴 확률을 크게 낮춘다. 바나나는 위궤양에 좋다. 콩을 규칙적으로 먹으면 당뇨환자의 경우 인슐린을 일부 줄일 수 있다. 체리는 충치를 예방한다. 생강·마늘·양파는 혈액희석제로서 심근경색을 예방한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구제역, 광우병 파동 이후 쇠고기·돼지고기 같은 육식을 기피하는 현상이 직장인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구제역 파동이 났을 때 서울 시내의 육류 식당에는 손님이 끊겼다. 인류사에서 최근처럼 육식의 효능을 의심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부터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 육류의 폐해 때문에 이제 육류는 위험식품이 되고 있다. 육류만큼은 못하지만 생선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횟감으로 사용되는 양식 생선들이 항생제로 사육되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런 추세 때문에 최근에는 아예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는 사람이 크게 늘고 있다.

    한경숙씨 가족의 채식 실천

    한경숙씨(47) 가족은 성원 모두 채식을 실천하는 집안이다. 채식을 하는 단체나 개인은 있지만, 한씨 가족처럼 가족 모두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씨의 가족은 친정어머니, 남편, 큰딸(17), 아들(15), 조카(21) 등 6인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채식을 시작한 사람은 음식을 만드는 주부 한경숙씨였다. 한씨는 3년 전 명상단체에 가입했는데, 여기서 채식을 하라고 권했다. 그는 이전부터 육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터라 혼자서 채식하기 시작했다. 그런 한씨를 가족 가운데 큰딸이 먼저 따라왔다.

    한씨는 초기에는 그저 건강에 좋겠다 싶은 정도로 채식 효과를 평가했다. 그러다가 차츰 학습을 통해 환경, 기아, 전쟁 등 지구적인 문제가 육식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딸의 채식은 한씨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한창 성장할 딸아이가 제대로 발육하는 데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씨는 딸이 영양 부족을 겪지 않도록 채식 요리를 연구하면서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육식에 길든 가족들의 입맛을 바꾸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고기 대용으로 버섯을 쓰는 등 다양한 채소요리를 내놓았다.



    1년이 지나자 딸의 입맛은 완전히 채식으로 돌아섰다. 그 뒤부터는 복잡한 요리를 만들 필요가 없게 됐고, 단순한 요리만으로도 만족하게 되었다. 두부를 살짝 데쳐서 양념장에 찍어먹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채식을 하게 되면 몸과 머리가 맑아지면서 신체에 변화가 찾아온다. 그런데 채식주의자가 된 한씨의 큰딸은 조금 차원이 다른 의식 변화를 겪었다. 채식을 하고 난 뒤부터 큰딸은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식으로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과자도 달걀과 쇼트닝(돼지기름)이 들어간 것은 먹지 않았다. 그것이 자기의 기호였고, 선택이었다.

    딸은 이렇게 변했으나 나머지 가족들은 여전히 육식을 고집했다. 특히 남편이 문제였다. 한씨의 남편은 집안 내력으로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한씨의 집요한 권유로 술과 고기를 끊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개인 결단으로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남편은 중소기업의 이사로 업무상 외부사람들과 자주 술자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남편이 술과 고기를 끊고 술자리를 거부하자, 회사는 사표를 내든지 술과 고기를 도로 먹든지 선택하라고 엄포를 놓았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남편은 무알코올 맥주를 싸들고 다니면서 술자리에 참석했다. 물론 동물성 안주는 손도 대지 않았다. 1년을 그렇게 하자, 회사에서는 결국 남편을 연구직으로 돌리고 술자리 참여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의 채식주의자 40만명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채식주의자를 4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한국의 채식주의자는 종교적 이유나 수행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 15만명, 건강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 15만명, 환경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 10만명으로 추산한다.

    똑같이 채식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채식을 하느냐에 따라 다섯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육류와 유제품은 물론 벌꿀까지 먹지 않는 비건스(vegans) 채식주의자 ▲유제품은 먹되 달걀은 먹지 않는 락토(lacto) 채식주의자 ▲유제품과 달걀을 먹는 락토-오보(lacto-ovo) 채식주의자 ▲유제품과 달걀은 물론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pesco) 채식주의자 ▲거기에 닭고기도 먹는 세미(semi) 채식주의자다. 이 가운데 가장 정도가 강한 비건스 채식주의자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지에 사는 두 발, 네 발 달린 동물은 물론 생선 유제품 달걀 등 육류와 관계된 것은 전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다. 이들은 채소를 먹어도 생명을 만들어 낸다 해서 뿌리나 이파리는 삼가고 열매만 먹는 열매주의자(fruitarian)와 손을 잡고 이론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부류는 전체 채식주의자 중에 10% 정도다.

    대다수 채식주의자는 락토-오보 채식주의자다. 고기와 생선은 금하지만 우유와 달걀은 먹는다. 이보다 약간 엄격한 부류가 락토 채식주의자다. 생선을 먹는 페스코 채식주의자와 닭고기까지 먹는 세미 채식주의자는 소수다.

    채식주의자를 나누는 기준은 또 있다.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채식만 고집하는 이들을 ‘개방형 채식주의자’라고 한다. 반면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소극적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을 ‘은둔형 채식주의자’라고 부른다. 은둔형에 속하는 이들은 굳이 자신이 채식주의자임을 밝히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식사할 때 혼자만의 메뉴를 고집하는 일도 꺼린다.

    종교나 수행을 위한 채식이 아니라면 사람들을 채식으로 유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문제다. 2000년 한국사회는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7%를 넘어 서서히 고령화사회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건강하면서도 오래 살면 좋겠지만, 문제는 많은 이가 만성 질병을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만성 질병은 나이 때문에 생기는 질병이 아니므로 습관을 고치면 피할 수도 있다. 청소년도 만성 퇴행성 질환(이른바 성인병)이 생기는 것을 보면 생활습관이 나이보다 더 중요한 병인임을 알 수 있다.

    만성 퇴행성 질환은 크게 영양 관련 질환, 흡연 관련 질환, 알코올 관련 질환으로 나뉜다. 영양 관련 질환은 대부분 영양과다로 생긴 병이다. 비만증,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증, 혈관성 치매, 악성 종양(대장암 유방암 전립선암), 골관절염, 골다공증 등이 있는데, 대부분 동물성 식품 섭취와 관련 있다.

    육류 섭취가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라지만, 최근에는 육류의 질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육류를 공장에서 가전제품 찍어내듯이 대량생산하면서부터 시작된 문제다. 밥 먹듯이 고기를 먹는 현대인의 식생활은 공장식 가축 사육장을 탄생시켰다. 현재 우리가 먹는 육류와 유제품, 달걀은 30년 전에 먹던 것과는 완전히 질이 다르다. 공장식 사육장에서 길러진 가축들은 엄청난 양의 유독성 화학물질과 인공 호르몬을 주입한 탓에, 가축의 체내에 남아 있는 화학물질이 그 고기와 우유를 먹는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옮겨진다. 이런 화학물질은 대부분 2차대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다. 공장식 식육제품에는 예외없이 살충제, 성장촉진제, 진정제, 방사성 동위체, 제초제, 항생제, 식욕촉진제, 구충제가 잔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쇠고기·돼지고기 ·닭고기 재료가 농가 앞마당에서 노는 닭과 우리 안에서 꿀꿀거리는 돼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의 고기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착각이다. 모든 가축은 집단 사육되는 동안 대부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좁은 닭장에 갇힌 닭은 서로 깃을 사납게 쪼거나 죽이려 하고, 심지어 산 채로 서로 몸을 뜯어먹으려고 한다. 닭들은 가끔씩 꽥 소리를 내지르며 공중으로 펄쩍 뛰어올라 뒤집혀 죽기도 하는데, 죽은 닭의 시체를 해부해보면 심장이 굳은 피로 가득하지만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돼지사육장에서 가장 흔한 문제 중 하나인 꼬리 물어뜯기는 자연스런 욕구를 철저히 억압당한 나머지 완전히 미쳐버린 짐승들의 절망적인 행동이다.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 때문인데, 이로 인한 폐사를 막기 위해 사료에 온갖 약품과 항생제가 들어간다.

    소사육장은 어떤가. 대부분의 소 사육장에서 소들은 적은 비용으로 살을 찌우기 위해 이상한 먹이를 받아 먹는다. 암모니아와 깃털 섞인 톱밥, 총천연색 유해잉크가 들어간 잘게 자른 신문지, 플라스틱 찌꺼기, 쓰레기 하수 처리물, 못 먹는 수지와 기름, 양계장 두엄, 시멘트가루, 판지 조각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동종인 소를 도축하고 남은 찌꺼기까지 들어간다. 광우병이 바로 이런 사료를 먹인 것이 원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생선도 예외가 아니다. 양식장에서 사육되는 광어나 우럭 같은 생선들은 각종 화학약품이 섞인 사료를 먹고 자란다. 또 이 생선들은 도시로 수송되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폐사하는 경우가 잦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사료에 항생제를 넣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채식은 어떤 경우든 건강에 이로운 행위임에 틀림없다. 서양과학자들이 증명한 사실을 추려보자. 배추와 무 같은 겨잣과 식물은 대장암에 걸릴 위험성을 크게 낮춘다. 바나나는 위궤양에 좋다. 콩을 규칙적으로 먹으면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을 일부 줄일 수 있다. 체리는 충치를 예방한다. 생강·마늘·양파는 탁월한 혈액 희석제로서 심근경색을 예방한다. 양파는 강력한 항생제로 5분간 생양파를 씹고 있으면 입 안이 무균 상태가 된다.

    육류가 주식인 서구 사회에서는 점차 육식이 건강에 해롭고 채식 위주의 자연식이 이롭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슈바르츠 박사와 스위스 취리히대학 생물학과 비르헤르 박사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육류에 들어 있는 지방은 혈관에 찌꺼기를 만들어 관상동맥 혈전의 주 원인이 된다.

    이와 반대로 채소가 건강에 이롭다는 연구결과는 속속 나오고 있다. 채소는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당뇨·고혈압·폐암·심장병·유방암에 걸릴 확률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를 예로 들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 요시푸라 카우무디 박사는 브로콜리와 양배추 그리고 녹색 잎 채소, 감귤류, 비타민C가 든 과일을 많이 섭취한 사람일수록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낮다고 밝혔다.

    환경문제도 건강문제 못지않은 채식 유발 요인이다. 채식주의자 가운데는 환경 운동을 하는 사람이 유달리 많다. 이들은 인간이 먹다 남은 부산물로 가축을 키우는 전통 농법이 아닌 곡식을 먹여서 키운 고기를 소비하는 것이 얼마나 환경파괴적이고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인지를 지적한다.

    녹색연합 상근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호주 멜버른대학에서 에너지환경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상민씨(34)가 대표적인 예다. 농촌에서 자란 남상민씨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개, 돼지, 닭을 잡는 광경을 많이 보며 자랐다. 그를 채식으로 이끈 일차적인 동기는 이런 광경을 보면서 느낀 충격과 참혹함이었다. 목이 도끼에 잘려 끊어질 듯 겨우 붙은 상태로 한참 동안 버둥거리다 죽어가는 닭, 격한 숨을 쉴 때마다 목에서 검붉은 피를 뿜어내며 죽어가는 돼지, 영리하고 친근하던 개가 동네 아저씨들에게 팔려 한여름날 포플러 나무에 매달려 맞아 죽어가는 모습. 이런 광경을 보고 그는 고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대학 초까지만 해도 고기를 먹었다. 대학에서 휴머니즘에 눈뜨게 된 그는 어느날 시위에 참여했다가 일주일 구류를 받고 유치장에서 톨스토이의 인생론을 읽게 됐는데, 여기서 그는 생명윤리와 채식의 의미를 명료하게 확인했다.

    남씨는 이러한 인식을 발전시켜 반핵운동, 환경운동가의 길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절대로 육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필요에 따른 섭취와 탐욕에 의한 섭취는 구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알래스카와 몽골 초원에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영양원은 고기밖에 없다. 생태적 조건으로 인해 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씨는 먹을 것이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개고기도 주저없이 먹겠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의 보편적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는 단순히 살육의 과정이 아니라 물질의 순환 과정이고 생물종을 유지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부시맨이 잡은 동물에게 경건한 태도를 보이고, 죽어가는 부모를 곰의 제물로 바치는 에스키모의 옛풍습도 이런 자연의 순환적 질서에 동참하는 것이다. 다만 지나친 탐욕으로 생명체를 무생물인 제품처럼 생산하고 도살하는 육식 중심 식문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남상민씨는 환경 전문가답게 채식과 육식 문제를 환경과 에너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생태계의 영양학 법칙에 따르면 먹이사슬이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섭취한 음식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평균 10% 정도다. 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는 피라미드형이다. 즉 풀보다는 메뚜기 수자가 적고, 메뚜기 수보다는 독수리 수가 적다. 이처럼 영양단계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개체수가 적어진다.

    이것은 에너지 흐름의 피라미드 때문이다. 즉 물 속의 식물성 플랑크톤에서 1만 단위 에너지를 동물성 플랑크톤이 섭취하더라도 1000 정도의 에너지만 이용할 수 있고, 나머지 9000단위는 열로 버려진다. 동물성 플랑크톤이 갖고 있는 에너지 1000단위가 물고기로 가면 100단위만 남고, 최종 소비자인 인간에게 오면 결국 10단위밖에 활용되지 못한다. 이렇게 각 영양단계마다 에너지가 낭비되는데, 생태계 특성에 따라 낭비규모는 80∼95% 된다.

    채식은 식량문제 해결에도 기여

    그는 여기서 영양단계를 축소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설명한다. 1000t의 풀은 메뚜기 2700만마리를 먹여살릴 수 있고, 이 메뚜기는 개구리 9만마리를, 이 개구리는 송어 300마리를 먹여살릴 수 있다. 이 송어는 한 사람이 한 달간 먹고 지낼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영양단계에서 송어가 없고, 인간이 직접 개구리만 먹는다면 30명이 한 달간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식량 사정이 절박하여 개구리를 영양단계에서 배제하고 인간이 직접 메뚜기를 먹는다면 900명이 한 달간 버틸 수 있다. 이렇게 낮은 영양단계의 식품을 섭취할수록 많은 사람이 생존할 수 있다.

    남상민씨는 이런 에너지 법칙 때문에 채식주의자 수십 명이 음식 섭취에 소비하는 에너지는 육식주의자 한 명이 쓰는 양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전세계의 곡물 생산량 가운데 37%가 가축사료로 사용되고 있다(1995년 통계). 육식을 자제하여 이런 곡물을 식량으로 직접 사용한다면 식량문제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또 가축을 사육하면서 생기는 열대림과 숲의 파괴, 축산폐수 등 환경문제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식 바람이 거세지면서 채식동호회와 전문음식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공간이 PC통신이다. 하이텔의 ‘vega’, 천리안의 ‘vege’, 다음의 ‘채식사랑’, ‘지구사랑’, 프리첼의 ‘생명채식동호회’ 등이 대표적이다. 채식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채식운동가들이 만든 ‘푸른생명한국채식연합’(www.vegetus.or.kr), ‘생명과 환경을 살리는 채식모임’(www.veg.or.kr) 등에 잘 나와 있다.

    채식 전문식당도 늘고 있다. 풀향기, SM채식뷔페, 시골생활건강식당, 산골채식건강식당, 뉴스타트건강식당 등 채식 전문 음식점은 밋밋한 풀만 먹는 차원에서 벗어나 입맛을 돋우는 여러 채소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 음식점의 콩단백 켄터키치킨과, 채식 샤브샤브, 채소햄, 콩단백 육포 등은 마치 고기를 먹는 느낌이다.

    채식 붐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훨씬 오래 전에 채식운동이 시작되었다. 현재 국제채식주의자 모임이 추산하는 채식주의자는 세계 인구의 3% 정도. 채식 인구가 400만명이라는 영국은 1996년 최초로 광우병 파동이 난 이후 1700만명이 고기 섭취를 줄이거나 끊었다고 한다. 유럽지역에서는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이 특히 적극적이다. 인도는 종교적 이유로 채식을 즐기고 있다.

    채식운동은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 창설된 아시아채식주의자모임은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처럼 채식주의자들의 활동이 거의 없는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본부를 만들어 본격 활동에 들어가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 나라들은 기본적인 식단이 채식 위주였지만, 육식 위주의 서구식 식단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최근 폐해가 커지고 있다.

    세계적인 채식 흐름 가운데서 가장 주목할 곳은 쇠고기를 좋아하는 나라 미국이다. 미국을 방문해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현재 세계에서 가장 체구가 큰 사람들은 아마도 미국인일 것이다. 미국인은 둘 가운데 하나가 100kg이 넘는 거구를 이끌고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이 미국인들의 육류 위주 식생활 문화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다이어트 산업이야말로 엄청난 부를 낳는 산업이다. 미국의 채식 바람은 바로 이 다이어트 열풍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채식인구를 5∼7% 로 보고 있다. 1% 정도에 불과한 한국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수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채식주의자는 히피족과 같은 시선을 받았다. 이는 히피들이 고기 대신 각종 채소를 넣은 베지버거를 먹고, 소시지 대신 두부를 넣은 두부도그 같은 이상한 음식을 창안하고 먹어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채식 바람은 패스트푸드 업체에도 불었다. 패스트푸드 업체인 ‘에이미즈 푸드’는 일찍감치 채식주의 바람에 편승해 떼돈을 벌었다. 이 업체는 창업 8년 만에 월 100만개의 패스트푸드를 판매하여 채식냉동 패스트푸드업계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베지버거뿐만 아니라 피자, 라자냐, 부리도, 애플파이 등 다양한 메뉴와 채식을 절묘하게 결합한 것이 성공 비결이었다. 고기와 유제품, 달걀을 배제하고 채소도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것만 쓴다는 철저한 ‘건강식품 전략’도 먹혀들었다.

    ‘홀섬 앤 허티 푸드’와 ‘판타스틱 푸드’도 채식주의를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판스틱 푸드의 경우 디즈니랜드에 베지버거를 공급하고 캘리포니아의 주요 슈퍼마켓을 통해 제품을 판매한다.

    채소 패스트 푸드 가운데 가장 성공을 거둔 것은 베지버거다. 쇠고기 대신 콩과 각종 채소를 혼합하고 쇠고기와 흡사한 맛을 내기 위해 향료를 첨가했다. 지금까지의 햄버거와는 다른 맛이지만 크게 히트했다. 그래서 대형 식품회사인 필스버거까지 판매 경쟁에 뛰어들어 주요 슈퍼마켓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베지버거를 월 1억개 이상 판매하는 업체가 늘어나자 대형 슈퍼마켓과 레스토랑들은 앞다투어채식 메뉴를 채택하고 있다. 이제 미국의 ‘인터내셔널 하우스 오브 팬케이크’, ‘하드록 카페’, ‘레드 로빈’ 등의 전통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베지버거 같은 채식요리를 주문하기가 어렵지 않게 되었다. 베지버거, 두부도그, 콩치즈 같은 음식은 소규모 건강식품점에나 있는 제품들이었으나 이제는 대형 슈퍼마켓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채식 전문식당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채식 시장 아이템 가운데 가장 크게 인기를 끄는 것은 두부다. 각종 채식에 감초처럼 끼어 있는 두부는 이제 10억달러짜리 대형 시장을 확보했다. 아시아 저개발국가나 1970년대 히피들이 즐겨 먹던 맛없는 음식 두부는 이제 미국인의 입맛을 끌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막상 채식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채식만으로는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을까? 채식으로 상을 차릴 때는 잎·줄기·뿌리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 영양소를 고르게 섭취할 수 있다.

    미국에서 인기 끄는 두부

    채식나라 등 인터넷의 여러 건강동호회를 찾아보면 다양한 식단을 볼 수 있다. 일단 주식으로는 백미보다는 현미밥이나 잡곡밥을 먹는 것이 좋다. 현미의 영양가는 백미보다 5배나 높다. 해초류를 많이 먹는 것도 중요하다. 미역 김 다시마 등에는 몸에 좋은 칼슘과 미네랄이 듬뿍 들어 있다. 영양 불균형도 막아준다. 땅콩 같은 견과류도 입맛을 돋우고 영양을 보충해준다. 땅콩 호두 아몬드에 들어 있는 불포화지방산은 혈액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것으로 유명하다. 들깨 참깨 은행 같은 종실류도 마찬가지다. 단백질덩어리인 검은콩 완두콩은 날것으로 먹기 힘들므로 두부나 콩가루로 만들어 자주 먹는다.

    고기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기 대체음식도 있다. 밀고기, 채소햄 같은 음식이 그것이다. 밀고기는 밀이나 콩가루에 들어 있는 글루텐 성분을 이용해 만든 반죽이다. 밀고기는 스테이크, 탕수육, 고추찜, 전골, 불고기, 산적, 찜, 채소볶음 재료로 두루 쓰인다. 특히 밀고기 볶음이나 구이는 칼로리가 높지 않으면서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든든하다.

    채식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각광을 받은 것이 사찰 음식이다. 서울 보타사에 있는 사찰음식문화연구원 등 사찰 음식을 배울 수 있는 곳마다 주부들이 몰리고 있다.

    정신 수행을 도와주는 사찰음식은 상식과 약식, 병인식으로 나뉜다. 유형별로는 저장식품류와 신선한 식품을 장기보존하기 위한 건식품류, 산중 스님들의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부각류가 있다. 그 밖에 산채류와 약용식품류, 불교의례음식과 함께 발달한 다과류, 그리고 천연조미료가 있다.

    저장식품은 월동에 필요한 영양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섭취하게 도와준다. 김치를 비롯해 각종 장류와 장아찌가 꼽힌다. 사찰김치는 오신채를 쓰지 않는 계율에 따라 파 마늘 젓갈을 넣지 않고 생강과 소금만으로 담근다. 정제되지 않는 굵은 소금을 기본으로 하고 젓갈 대신 발효식품인 간장 또는 된장을 넣어서 담그기도 한다. 특히 늦은 봄까지 먹을 김치는 소금을 많이 넣고 다른 양념은 전혀 쓰지 않으며 고춧가루도 적은 양만 넣는다.

    장류로는 된장과 고추장, 보릿가루와 고추씨가루를 넣어 만든 막장, 비지를 띄워 만든 비지장과 청국장 등이 있다. 송이버섯을 넣어 만든 송이버섯간장, 고추간장 등도 채소를 맛있는 음식으로 만든다.

    제철에 나는 신선한 식품을 장기간 보존하기 위해 햇볕에 말리거나 소금물에 데친 뒤 말려서 가루를 내기도 한다. 다시마, 김, 표고버섯, 능이버섯, 각종 곡류와 누룽지, 땅콩, 호두, 국수, 호박고지, 박고지, 차 종류와 약재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식품들은 철이 지나 필요한 경우 요긴하게 쓰인다. 찬밥도 말려 두었다가 미숫가루를 내어 먹거나 고추장 담글 때 활용하기도 한다.

    각광받는 사찰음식

    부각류는 육류를 금하는 계율에 따라 부족한 칼로리와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식품이다. 그 덕에 다양한 튀김류와 부각류가 발달했다. 동백잎, 감잎, 참죽, 들깨꽃송이, 들깻잎, 국화잎, 김, 다시마, 방아꽃송이, 우엉잎, 풋고추 등이 모두 부각재료다. 튀기기 전에 찹쌀풀을 바르거나 찹쌀풀을 붙인 뒤 말려 튀기는데 부풀어오른 찹쌀풀이 매우 바삭바삭해 감칠맛을 안겨주고 고소하기 그지없다.

    사찰음식은 종류도 여러 가지지만 조미료는 천연재료를 사용한다. 천연조미료는 말려서 곱게 빻아 사용하는 표고버섯가루와 곱게 갈아 조림에 넣어 먹는 다시마가루, 갈아놓았다가 김치 담글 때나 된장국을 끓일 때 타서 먹는 재피열매가 있다. 이 열매는 살균 작용과 구충제 구실을 하고 중풍을 예방하는 데도 좋다.

    일상에서 채식을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고기에 대한 유혹과 영양 불균형에 대한 우려보다 채식주의자를 더 위협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이다. 한국에는 채식을 즐길 만한 식당은 턱도 없이 적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를 거의 의무적으로 갖추어 놓고 있는 영국, 대만의 식당과는 달리 국내 식당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배려가 전혀 없다.

    한국사회의 식문화도 걸림돌이다. 윗사람이 시키면 알아서 ‘통일’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음식문화다. 따로 채식 메뉴를 시키면 눈치가 보이고, 먹는 것 가지고 유난 떤다는 주위의 시선이 불편하다. 결국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집에서라도 채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터넷에는 채식동호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채식 요리법, 채식 전문 식당 등 관련 정보도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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