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정부의 직무유기인가, 과학의 정치공세인가

서울대 김상종 교수의 ‘수돗물 바이러스 전쟁’5년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2005-04-01 1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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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9월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기자실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서울대 김상종 교수(52·미생물학)가 한나라당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과 함께 서울시 수돗물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했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교수가 고문으로 있는 시민단체 ‘환경과 공해연구소’와 한나라당이 8월28일부터 9월5일까지 서울시내 12곳의 수돗물을 조사한 결과 1곳(서초구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김교수의 현재 신분이다. 김교수는 1998년부터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국토환경과학기술분과위원으로 활동해왔다. 대통령을 자문하는 사람이 야당의 돈으로 공동조사를 벌이고, 야당 당사에서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2001년 6월25일. 김교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증인으로 출석했다. 환경부가 5월2일 “전국의 10만t 이하 정수장 31군데 수계를 조사한 결과, 수돗물(4곳)과 정수(3곳)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밝히자 국회는 진상조사에 들어갔고, 서울시 수돗물에서 수년째 바이러스를 검출한 김교수를 증인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 무렵 한상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은 김교수에게 “정책기획위원이 국회에 출석해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으냐”며 만류했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두 사람은 10여 년 전부터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서울대 교수들의 모임 ‘사회정의연구실현모임(사연실)’에서 함께 활동해왔으며, 한위원장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김교수를 정책기획위원으로 추천한 바 있다.

    이런 까닭에 김교수는 한때 국회 출석을 놓고 망설였다고 한다. 고심 끝에 김교수는 한위원장에게 “바이러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나가야겠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 과학적 사실을 얘기하겠다”는 뜻을 전달했고, 한위원장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정책기획위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결국 김교수는 사표를 제출했다.



    김교수는 정책기획위원직을 그만두고 국회에 출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3년 동안 입이 아프게 바이러스 문제의 심각성을 얘기했는데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정부가 무능하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민생문제에 무관심한 정권에서 자문위원을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국민이 더 불쌍해지기 전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서 증언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위원장은 “김교수가 정책기획위원직을 사임한 적이 없다. 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당시 김교수는 도덕적 딜레마를 겪고 있었다. 국회에 나가면 여야의 공방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러면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김교수는 지금도 정책기획위원이다”고 밝혔다.

    결국 김교수는 사표를 냈다는 것이고, 한위원장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얘기인 셈이다. 이 때문에 9월10일 환경부 국정감사장에서는 또 한 차례의 ‘해프닝’이 벌어졌다. 민주당 신계륜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한 김교수에게 “지금도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입니까?”라고 묻자 김교수는 “사표를 제출했지만, 저도 위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신의원은 김교수의 애매한 답변을 다그쳤다.

    1993년부터 바이러스 조사

    김상종 교수가 수돗물 바이러스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1993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교수가 지도교수로 참여한 서울대 미생물연구팀은 서울시 수돗물에서 기준치의 50배를 초과하는 대장균을 검출했다. 이때부터 김교수는 수돗물에 병원성 미생물도 들어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 바이러스로 인한 수인성 질환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1997년 10월24일 김교수는 전북대에서 열린 한국미생물학회에 참석해 서울시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11월4일 김교수의 연구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김교수는 서울시 수돗물에서 검출한 에코 바이러스와 콕사키 바이러스는 무균성 뇌수막염 환자의 척수와 배설물에서 나온 것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김교수의 연구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당시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이 서울대에 보낸 질의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전문가의 확실한 검증 없이 언론기관에 보도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선량한 시민들에게 수돗물에 대한 불안과 불신감을 키우고, 국가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1997년 11월11일)

    한편 환경부의 반응은 두 가지 기류로 나타났다. 하나는 상수원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될 수 있어도 정수과정에 염소 소독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김교수가 검출한 바이러스는 소량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곁가지를 떼고 살펴보면 김교수와 환경부·서울시가 수년간 벌여온 논쟁의 핵심은 실험방법론이다. 김교수는 미국환경청(EPA)이 공인하는 세포배양법(Cell Culture Method·동물세포에 수돗물 시료를 접종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세포병변현상’을 통해 감염성 바이러스의 존재 여부를 판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환경부와 서울시는 “김교수가 실험방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김교수가 지금까지 바이러스 검출을 위해 활용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포배양법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자검색법(Polymerase Chain Reaction·바이러스의 유전자인 DNA나 RNA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여 수돗물에 바이러스가 오염돼 있는지를 판정하는 방법)이다. 김교수는 두 가지 방법을 다 써야만 정확한 바이러스 판정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환경부와 서울시는 “유전자검색법은 민감하지만 미국 환경청이 공인한 방법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양쪽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갖고 있다. 미국 환경청은 1996년 이른바 정보수집법(ICR)을 제정하고 ‘인구 10만 이상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에서는 원수와 수돗물을 18개월 동안 세포배양법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이 규정에 따라 1998년 12월까지 미국 전역에서 조사가 진행됐다. 그 후 새로운 법이 제정되지 않았으므로 세포배양법은 미국 환경청이 채택한 공식적인 바이러스 검출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세포배양법의 한계다. 일반적으로 세포배양법은 바이러스 검출은 가능하지만, 바이러스의 종류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세포배양법에서는 검출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유전자검색법에서는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 때문에 유전자검색법이 더 정확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유전자검색법의 경우 죽은 바이러스와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구분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여기서 미국 환경청이 1993년 발표한 보고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에는 세포배양법의 한계를 지적하는 문구와 함께 그에 대한 보완책으로 유전자검색법을 개발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한 미국 미생물학회는 2000년 8월 미국 환경청에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을 결합한 방법을 공정시험법으로 채택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김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유전자검색법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세포배양법이든 유전자검색법이든 중요한 것은 서울시 수돗물에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들어 있느냐 하는 문제다. 김교수의 바이러스 실험 결과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환경부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용역조사를 실시했다. 1차 조사는 KIST(한국과학기술원) 박순희 박사(현 식품의약청 제제과장)가, 2차와 3차는 경희대 정용석 교수가 맡았다. 서울시 수돗물의 경우 1차에서 2곳을 조사했는데, 여기서는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았다. 2차와 3차에서는 서울시가 조사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서울시가 의뢰한 용역조사에서도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연세대 정용 교수팀과 강원도 신영오 교수팀은 1998년 12월부터 2000년 6월까지 총 163회에 걸쳐 바이러스를 조사했다. 그 결과 원수(상수원)에서는 24회 가운데 8건이 검출됐지만, 공정수(59회)와 정수(40회) 그리고 수도꼭지(40회)에서는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서울시 수도기술연구소도 2000년 7월부터 2001년 2월까지 10회에 걸쳐 조사했지만, 수도꼭지에서는 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김교수는 1997년부터 꾸준히 바이러스를 검출해냈다. 그 동안 수돗물 32개를 조사해 20개(62.5%)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했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1999년에 실시한 14차례의 조사결과다. 당시 세포배양법으로는 6곳, 유전자 검색법으로는 9곳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 김교수는 이것을 근거로 유전자검색법의 상대적 정확성을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바이러스가 수중에서 불균형 분포를 이룬다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대비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양측은 서로의 실험결과에 대해 불신을 품고 있으며, 김교수가 최초로 바이러스를 검출한 지 5년이 되도록 지루한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먼저 환경부와 서울시의 주장을 들어보자. 김명자 환경부 장관은 “미국 환경청이 인증한 방식이 아니면 인정하기 힘들다. 김교수 개인이 한 실험이고, 실험방법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립환경연구원 정현미 연구원도 “김교수의 연구는 자세히 검토하지 못해 신뢰할 수 없다. 김교수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부분에서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연구결과로서만 주목할 뿐”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 김정우 수질과장 역시 김교수의 실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에 대해 김교수는 미국 환경청이 제시한 세포배양법을 충실히 따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교수의 실험일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미국 환경청의 기준과 다소 다른 점도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미국 환경청은 1500리터의 물을 1리터로 농축한 다음 20개의 용기에 나누어 실험하도록 제안하고 있는데, 김교수는 5개로 분리한 경우다. 하지만 이것이 바이러스 검출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수돗물에 바이러스가 없다면, 용기가 몇 개든 관계없이 검출되지 않아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미생물학회 바이러스위원회는 김교수의 연구결과를 8개월 동안 검토한 끝에 공식 인정했다. 작업에 참여했던 이찬희 충북대 교수(미생물학)는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실험일지까지 모두 조사했다. 김교수가 세포배양법을 통해 바이러스를 검출한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한국미생물학회 박용근 회장(고려대 생명공학과 교수)도 “실험방법에 전혀 하자가 없었다. 김교수의 논문은 바람직하고 의미있는 연구였다. 만일 실험방법에 신뢰성이 없었다면, 미생물학회지에 실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교수 조사의 지역적 특수성

    여기서 김교수의 실험결과와 관련해 한 가지 지적하고 넘어갈 점이 있다. 김교수가 1997년부터 채취한 수돗물의 상당 부분은 서울시에서도 취약지역으로 알려진 관악구에 집중돼 있다. 관악구는 서울시 수도관의 끝 부분에 있기 때문에 배수관이나 지하수 등에 의한 오염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과 김교수의 공동조사에서도 이를 입증하는 결과가 나왔다. 정수장과 거리가 가까운 강남지역에 비해 영등포 광진 노원 등 수도관 끝에 위치한 지역은 잔류 염소농도가 낮게 나왔다. 김교수도 이런 지역적 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취약지구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감정싸움으로 번진 바이러스 논쟁

    김교수는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이 본질적으로 다른데 일부 과학자들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교수는 그 근거로 2001년 6월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경희대 정용석 교수가 답변한 내용을 제시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교수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의 2,3차 바이러스 용역조사를 담당한 실무 책임자다. 한나라당 의원이 정교수에게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의 실험장비가 다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고, 김교수는 “다르다”고 맞섰다고 한다.

    2001년 9월10일 환경부 국정감사가 시작되자마자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은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하고 이 문제부터 거론했다. 자신이 확인해본 결과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의 장비가 다른 데도 정교수가 위증했다며 고발 여부를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이윤수 환경노동위원장은 “국정감사 이후에 다루자”고 답했다.

    이와 관련 김교수는 “환경부의 용역을 수행한 정교수가 의도적으로 그런 발언을 했다고 본다. 환경부는 세포배양법만을 인정하고 있다. 나는 그것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주장했으며, 그것을 입증하는 실험까지 했다. 그런데도 정교수는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이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왜곡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교수는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 장비를 모두 갖춰야 한다는 뜻으로 한 얘기다. 그런데도 김교수가 나를 모함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보통 실험실에서 세포배양법 장비를 갖추는 데는 6000만원에서 1억원 가량 든다. 이 상태에서 유전자검색법 장비를 별도로 보강하는 데는 300만원 정도만 추가하면 된다. 고작 300만원이라는 미미한 차이를 갖고 마치 내가 엄청난 ‘음모’라도 꾸민 것처럼 말하는 것은 상식 이하”라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시 수도기술연구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세포배양법 장비는 27종, 유전자검색법 장비는 10종으로 나와 있다. 수입품이 많아서 환율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겠지만, 수도기술연구소가 계산한 금액으로는 세포배양법 장비 2억8000여만원, 유전자검색법 장비는 8000여만원으로 나와 있다(단, 특정 실험실이 기본장비를 얼마나 갖추었느냐에 따라 총액은 줄어들 수 있다).

    기자는 바이러스 논쟁을 취재하면서 김교수의 연구에 대한 환경부와 서울시의 불신이 단순히 실험절차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김교수가 정확하게 수돗물을 채취했는지, 실험실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또한 바이러스를 정말 검출한 것인지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김명자 장관의 다음과 같은 말 속에서도 김교수에 대한 불신을 엿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나오는 것을 매우 특이한 것으로 간주한다. 바이러스가 나왔다면 실험을 잘못해서 그렇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바이러스는 대부분 염소 소독과정에서 죽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장관은 김교수의 ‘검증되지 않은’ 실험실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졌다. 환경부는 1996년 6월 미국 환경청의 파우트 박사를 초청했다. 당시 파우트 박사는 경희대와 강원대를 비롯, 5개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이때 파우트 박사는 서울대 실험실도 방문하려 했으나, 김교수가 거부한 일이 있다. 김장관은 이때의 일을 두고 “김교수가 검사를 받았더라면 연구의 신뢰성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교수의 주장은 다르다. 당시 서울대 실험실은 한국미생물학회의 점검을 받고 있었으며, 파우트 박사가 무슨 목적으로 방문하려는 것인지 의도를 알 수 없었다는 얘기다. 김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자.

    “실험실은 단순히 몇 시간 둘러보고 검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는 파우트 박사가 무슨 자격으로 남의 나라 실험실을 조사하려는 것인지 그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5개 실험실을 둘러본 파우트 박사가 나중에 국립환경연구원으로 보내온 편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2001년 9월10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은 이 편지를 공개했다.

    “저는 시간의 한계 때문에 미국에서 수행되는 절차에 따른 정규 실험평가를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5개 실험실 어느 곳에서도 전체적인 바이러스 실험방법(entire virus method)을 수행하는 것을 관찰할 수 없었습니다.(중략) 따라서 이 평가는 본질적으로 예비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파우트 박사의 방문조사가 실험실의 신뢰성을 높여주었을 거라는 김장관의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짐을 알 수 있다.

    위에서 기자는 왜 김교수의 실험에서만 바이러스가 검출됐을까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해 다양한 접근을 시도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반대로 왜 환경부와 서울시가 조사한 수돗물에서는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점을 따져보기로 하자.

    먼저 박순희 박사가 진행한 1차 연도 실험결과다.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의원은 두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나는 1차 세포배양과 2차 세포배양 결과가 극단적으로 배치된 부분이다(김교수의 경우 1차와 2차 실험결과가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서울 구의정수장의 경우 1차에서 바이러스가 90%나 검출됐는데, 2차에서는 0%였다.

    이에 대해 박순희 박사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국 환경청 규정에 따라 철저히 실험했다. 1차 배양과 2차 배양은 얼마든지 차이가 날 수 있다. 1차에서 90%가 나온 것은 바이러스를 확인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결과를 조작해서 그런 데이터가 나온 게 아니라, 2차에 걸쳐 좀더 정확하게 실험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의원은 둘째 의문으로 박박사의 보고서에 들어 있는 수치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소수점 네 자리 이하의 기록까지 나와 있다. 이것은 실제 실험에서는 측정 불가능한 숫자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오의원의 질문이었다.

    이와 관련 박박사는 “소수점 두 자리 밑으로 내려가면, 유효숫자를 벗어나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계산상의 수치일 뿐이다. 이게 문제가 될 줄 알았으면 ‘현실적으로 소수점 4자리까지 실험하기 어렵다’는 말을 보고서에 써넣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희대 정용석 교수가 진행한 3차 조사결과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비록 지방 중소도시지만 환경부 용역조사로는 처음으로 바이러스가 검출됐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도 여주군의 경우 수돗물 1000리터에서 바이러스가 335마리나 검출돼 충격을 던져주었다(충북대 이찬희 교수는 이 자료를 근거로 여주 지역에서 1마리 이상의 바이러스를 먹은 사람의 수를 2342명으로 계산했다). 3차 조사를 계기로 “수돗물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하다”는 환경부의 지침은 사실상 “바이러스에 오염될 수도 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정교수가 바이러스를 최초로 발견한 것은 1999년 8월. 하지만 환경부가 공식 발표한 것은 2000년 5월2일이다. 무려 8개월이 지난 뒤에야 지역 주민들은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을 접한 셈이다. 김교수는 이것을 두고 “환경부가 국민건강 불감증에 걸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환경부가 바이러스 검출방법에서는 미국 환경청의 기준을 철저히 지키면서, 대처방법은 따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교수의 주장처럼 실제로 미국 환경청은 ‘사람의 건강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칠 잠재성(potential)이 있는 어떠한 경우에도 수도공급자가 그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들에게 24시간 이내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명자 장관은 “8월에 바이러스가 나왔지만 중간보고는 12월에 있었다. 그때까지 시료채취, 실험방법, 조사분석의 정확성에 대한 대화가 필요했다. 김교수는 조기경보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데 그건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바이러스 검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6∼8주가 걸린다. 그러니까 결과를 알고 주민들에게 통보하더라도 두 달 전의 물에 대해 경고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2001년 5월2일 환경부가 지방 정수장과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발표한 뒤 김장관은 또 한 번 구설수에 휘말렸다. 바로 3개월 전 그가 국회에서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의 질의에 답한 내용 때문이다. 이때 김장관은 “2000년 상반기까지 바이러스가 나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바이러스가 2000년 8월에 처음 발견됐으니까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무렵 김장관은 이미 바이러스 검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다. 이에 대해 김상종 교수는 “김장관이 매우 계산된 정치적 답변을 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김장관의 주장은 다르다. 그는 환경을 책임지고 있는 관료의 책임을 강조했다. 김장관의 말을 들어보자.

    “고심하다가 그렇게 답변했다. 위증을 할 수는 없지 않으냐? 국회의원이 질의했다고 무책임하게 아직 발표하지 않은 사안을 얘기할 수는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실험이 정말 정확했는지, 잘못해서 바이러스가 나온 것은 아닌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장관이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말해버리면, 엄청난 혼란이 왔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수돗물 바이러스에 대한 환경부·서울시와 김교수의 견해는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측은 벌써 5년째 실험방법론에 이견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서로의 조사결과에 대해서도 신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공동조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서울시와 시민단체의 공동조사위원회는 1년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먼저 김대중 정부가 수돗물 바이러스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김교수의 활동을 통해 알아보자.

    1998년 4월10일 환경부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했다. 공식적인 업무보고가 끝난 뒤 김대통령이 “서울시에 못 먹는 수돗물이 있느냐?”고 불쑥 물었다. 이에 정진승 환경부차관은 “서울시내 일부 지역은 수돗물을 그냥 먹으면 곤란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대통령은 “먹어도 되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동 단위로 구분해 알려주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경부가 ‘못 먹는 수돗물’의 존재를 일부 인정했으며, 김대통령이 그것을 보고받은 부분이다.

    그렇다면 환경부는 김대통령의 지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신창현 환경분쟁위원장(전 청와대 환경비서관)은 2001년 국정감사에서 “1999년 환경부 업무보고 때 대통령이 다시 물었고, 환경부 담당자가 ‘이젠 안심해도 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 하면 서울시 수돗물 문제는 1999년 초에 이미 ‘해결된’ 셈이다.

    1998년 5월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초대 위원장은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맡았다. 정책기획위원이 된 김상종 교수는 수돗물 바이러스 문제를 국가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다. 당시엔 정책의 초점이 IMF 극복과 구조개혁 그리고 ‘제2의 건국사업’ 등에 맞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정책기획위원회가 대통령에게 최초로 보고할 안건 중에 수돗물 바이러스 문제가 포함됐다. 이것은 정책기획위원회가 그만큼 수돗물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김교수는 이 무렵 정책기획위원회로부터 “청와대 보고사항이니까 준비하라”는 얘기를 듣고, 직접 바이러스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는 이 보고서를 최위원장과 정책기획위원회 운영위원회에 전달했다고 한다.

    1998년 12월20일.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는 ‘정책포럼’ 제25호를 발간했는데, 바로 여기에 김교수가 청와대 보고서를 기초로 다시 정리한 ‘수질정책의 방향과 과제’라는 글이 실려 있다. 김교수는 이 글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내용조차 정부 부처들 사이에서 상반된 주장들이 나오는 데도 정부기관은 어떠한 주장이 옳은지를 밝히거나 거짓말한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움직임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1999년 4월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가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으로 부임했다. 김상종 교수는 이 무렵에도 서울대학교 수돗물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근거로 정책기획위원회에서 바이러스 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했다. 성경륭 전정책기획위원회 운영위원은 “바이러스에 대한 김교수의 주장과 보고서는 곳곳에 다 들어갔다. 내가 알기로 김태동 위원장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위원장은 “정책기획위원회에서 논의된 사안을 기자에게 얘기할 수 없다”며 인터뷰를 피했다.

    김교수는 1999년 한 해 동안 14차례에 걸쳐 바이러스 오염조사를 실시했다. 수돗물을 채취한 장소를 보면 서울대 12곳, 논현동 1곳, 잠실 1곳 등이다. 김교수는 1999년 6월9일 논현동과 잠실에서 채취한 수돗물 가운데 잠실 수돗물의 분석을 서울대 소아과 이환종 교수에게 의뢰했는데, 여기서 급성 장염의 원인바이러스가 나왔다. 김교수 이외의 사람이 서울시 수돗물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며, 그 뒤로도 아직 없다. 김교수는 1년 가까이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엉뚱한 계기로 세상에 알려졌다.

    2000년 5월17일 김교수가 ‘1997년 바이러스 실태조사’를 근거로 작성한 연구논문이 캐나다 미생물학회지에 실리자, 서울대는 기자회견을 주선했다. 김교수는 이 자리에서 “최근에도 서울시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1999년 한 해 동안 서울대 논현동 잠실 지역의 수돗물을 조사했는데 ‘지속적으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답했다. 김교수는 이때 지역별 조사횟수와 검출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는데, 이것이 결국 형사고발의 빌미가 됐다. 대부분의 언론이 김교수의 발언을 그대로 보도했던 것이다.

    5월18일 시민단체연합 바이러스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5일 뒤엔 서울시 수도기술연구소가 김교수를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서울시는 고발장에서 “김교수가 1999년도에 매월 ‘지속적으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언론에 발표했으나 실제로 매월 ‘지속적으로’ 바이러스를 검사한 사실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서울시 관계자가 이 사건에 대해 발언한 내용을 살펴보면 고발장의 문구와는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고발기관인 서울시 수도기술연구소의 이의광 수질관리과장은 2000년 6월11일 EBS ‘난상토론’에 출연해 “김교수는 서울대 잠실 논현동에서 매월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잠실에서는 한 번만 나왔고 논현동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논현동에서는 나오지 않았으니까 허위사실이라는 얘기다.

    또한 서울시 상수도관리사업본부 김정우 수질과장은 최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검출 자체가 허위사실이라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라는 표현이 문제”라고 말했다. 김과장은 “‘지속적으로’라는 말이 사실이 되려면, 세 군데서 12번씩 모두 36번 검출됐어야 한다. 하지만 김교수는 14번 중 6번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라는 말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건 서울시장은 월간 ‘신동아’와의 인터뷰(2001년 8월호)에서 실험방법론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고시장은 “김상종 교수는 세포배양법이 아닌 유전자검색법에 의해 집안 상수도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우리 상수도 담당자들이 고발한 거다. 유전자검색법은 미국에서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수차례 “세포배양법과 유전자검색법을 모두 사용했다”고 밝혔지만, 고시장은 김교수가 실시한 세포배양법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공동조사를 못 하는 이유

    2001년 6월7일 5개 환경단체 대표와 김교수는 항의방문 형식으로 서울시청을 찾았다. 이날 간담회에서 고시장은 김교수에 대한 형사고발 취하를 지시하고,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공동조사를 벌이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와 시민단체는 각각 4명씩 조사위원을 추천해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2001년 2월28일. 공동조사위원회는 공동조사의 마지막 쟁점이었던 조사방법과 조사항목에서 상당한 의견접근을 보고 합의문 작성에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작성한 합의문에 시민단체측이 서명을 거부하면서 공동조사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빠졌다.

    쟁점은 두 가지로 조사방법과 조사항목이다. 조사방법의 경우 서울시는 세포배양법을, 시민단체는 세포배양법을 포함한 유전자검색법을 사용하며, 이와 별도로 미국 환경청이 인증한 기관을 조사에 참여시킨다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하지만 황순원 환경과 공해연구회 부회장은 합의문 서명을 거부했다. 황부회장은 “합의 단계에서 서울시가 ‘두 가지를 다 하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걸 서로의 분석결과가 엇갈릴 것에 대비해 세 기관(서울시, 시민단체, 미국 기관)이 모두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는 뜻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김정우 수질과장의 의견은 다르다. 김과장은 “조사방법을 합의했는데, 황순원 위원이 일방적으로 서명을 거부하며 수정 제안을 해왔다. 만일 황위원의 말대로 세 기관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해서 기관별로 데이터가 엇갈리게 나온다면, 해석방법을 놓고 또다시 논란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조사방법보다 양측이 더 첨예하게 맞선 부분은 조사항목이었다. 시민단체측 조사위원 가운데 한 사람은 “방법은 양보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조사항목은 타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사항목과 관련, 서울시는 바이러스만 조사하자는 의견을 보인 반면, 시민단체는 소독부산물도 함께 검사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것은 ‘정수장에서 소독할 때 염소를 과다하게 넣으면, 바이러스가 존재할 가능성은 낮아지겠지만, 염소에서 발생하는 ‘트리할로메탄’ 같은 발암물질이 수돗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시민단체측이 소독부산물을 중시하는 이유는 또 있다. 1993년 서울대 미생물연구팀이 서울시 수돗물에서 대장균을 검출했을 때 서울시는 김교수의 실험방법에 문제가 있다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논란을 없애기 위해 실시한 공동조사에서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았는데, 김교수는 최근까지도 그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서울시가 대장균 검출을 막기 위해 특정 정수장에 염소를 과다 투입했다는 주장이다. 1993년 12월 서울시가 발표한 ‘수돗물 수질개선 방안연구’ 125쪽에는 김교수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문구가 나와 있다.

    “금년 여름에 서울대 모 교수가 수돗물 중에 미생물 및 이질균이 존재한다는 보도에 의해 해당 정수사업소에서 그에 대한 대책으로 평상시보다 염소를 과다하게 주입한 것이 관 내부의 산화공정을 촉진시켜 수돗물 중의 부유물질(앙금)로 남게 되어 민원이 발생하였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 김정우 수질과장은 “여름에는 염소를 많이 탄다. 하지만 기준치를 지키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염소를 많이 타면 냄새가 나는데, 그렇게 되면 시민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은 수돗물에서 염소 냄새가 나야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염소 냄새를 맡으면 혐오감을 갖는다. 수돗물은 알수록 안전한데,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불신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0년 6월15일 국립환경연구원 강당에서 ‘수돗물 바이러스 검출논란에 대한 전문가회의’가 열렸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날 참석자 9명 모두가 김교수의 바이러스 검출방법을 인정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했던 국립환경연구원 정현미 연구관은 “김교수가 실험했다는 것을 인정했을 뿐이지, 결과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김교수가 확대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김교수는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전문가회의 보고서를 당시 청와대 김성재 정책기획수석과 김유배 복지노동수석에게 직접 전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전수석은 “보고서를 받아보고 환경부와 김교수가 얘기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환경부 장관에게도 전화를 걸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얘기했다. 장관은 김교수가 무슨 주장을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장관과 김교수는 조사방법과, 장소, 검사 등 전문적인 부분에서 의견 차이가 컸다”고 밝혔다.

    김장관도 김 전수석의 전화를 받고, 김교수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김교수의 주장이 청와대 수석을 통해 환경부에 전달된 것은 확실하다. 김교수는 2000년 1월14일 환경부장관과 국립환경연구원장에게도 공문과 함께 한국미생물학회 바이러스 관련 보고서를 발송했다고 한다. 실제로 김교수는 문서번호가 매겨진 공문의 사본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김장관은 2001년 5월2일, 그러니까 환경부의 3차 연도 용역조사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발표가 나오던 날 저녁, 김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보고서를 보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장관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장관이 보고서를 직접 읽기에는 행정이 너무 많다. 내 방에는 읽을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김교수는 좋은 뜻에서 알린 것이고, 과학자 출신인 내가 이 문제를 다뤄주기를 기대한 것 같다. 그런데 김교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까 섭섭해하는 모양이다.”

    환경부가 바이러스 검출 결과를 발표한 이후 언론이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2001년 6월 초엔 SBS의 외주제작사 ‘다큐포럼’이 제작한 ‘물은 생명이다’라는 프로그램이 파문을 일으켰다. 6월1일 1편 ‘수돗물 바이러스 무엇이 문제인가’는 원안대로 방영됐지만, 2부 ‘다시 쓰는 수돗물 보고서’는 9분24초나 잘렸다. 프로그램을 총괄 진행했던 SBS 제작 3CP 강선모 부장은 “당초 2부는 수돗물 대책 중심으로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1편과 겹치는 내용이 많아서 편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부 제작을 담당했던 유석현 PD의 의견은 다르다. 유PD는 “1부와 겹치는 부분은 불과 12초다. 그것은 강조하기 위해 넣었고,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자진 삭제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2부는 환경부가 이제껏 단 한 번도 바이러스 질환에 대한 역학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것을 보도하려고 하니까 압력을 넣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상종 교수는 당시 SBS가 벌인 대국민 약속 ‘물은 생명이다’의 자문위원으로 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교수는 SBS가 2부 내용의 일부를 빼고 방송하자 SBS 관계자를 만나 항의하고 자문위원직을 사퇴했다고 한다. 또한 ‘물은 생명이다’를 공동 제작했던 두 명의 PD도 회사를 떠났다.

    이를 두고 9월10일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환경부가 조직적으로 언론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2부 제작을 담당했던 유PD도 “누구누구를 인터뷰하라는 시나리오까지 보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SBS 강선규 부장은 김교수와 담당 PD를 싸잡아 비판했다.

    “2부가 방영된 뒤 김교수는 아주 ‘이상한’ 제안을 해왔다. 그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이 집중적으로 수돗물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SBS쪽 에서 담당 PD들에게 선처를 베풀면 내가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건 방송사를 협박한 거나 다름없다. 프로그램을 만든 PD들은 내가 아끼는 후배들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방영을 2주 앞두고 ‘돈이 모자란다’며 제작을 거부하는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1년 5월 제2기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장은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결정됐다. 그러자 한위원장과 오랜 인연이 있었던 김교수는 다시 한 번 수돗물 바이러스 문제를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한위원장도 김교수의 주장에 매우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김교수의 연구에 대한 한위원장의 다음과 같은 평가가 단적인 예다.

    “김교수를 개인적으로 신뢰한다. 그는 바이러스 문제를 최초로 제기했다. 김교수로 인해 바이러스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양된 것은 큰 성과다.”

    하지만 한위원장은 김교수가 바이러스문제를 ‘정치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자세를 보였다. 한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김교수는 이미 이긴 거나 다름없다. 환경부도 중소도시에서 바이러스가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김교수가 ‘우리 한번 잘해보자’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김교수는 양심적인 학자지만 요즘은 어딘가 투사처럼 느껴진다.”

    대한의사협회의 경고

    2001년 5월2일 지방 중소도시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환경부의 발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대한의사협회였다. 사회적 파문을 의식해 전문가회의와 공청회를 거친 의사협회는 7월12일 마침내 ‘수돗물 바이러스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권고’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까지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었음을 확인했고, 발견된 바이러스는 병원성이 있으며, 이것은 무균성 수막염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사협회는 대국민 행동지침으로 “향후 적절한 감시체제 가동의 결과로 수돗물의 바이러스 문제가 해결되어 국민이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게 될 때까지 수돗물을 음용수로 쓸 때는 끓여서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못박았다. 9월14일 기자는 대한의사협회 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회에 “현재도 권고문이 유효하냐”고 물었다. 대답은 “특별히 호전된 상황이 없기 때문에 유효하다”였다.

    2001년 9월10일 환경부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오전 내내 여야는 일반 증인과 기관 증인을 합석시키는 문제로 2시간 이상 논란을 벌였다. 12시20분이 돼서야 “중식을 들면서 합의하자”며 오전 감사를 마쳤다. 바로 이 시간 환경부는 ‘눈길을 끄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의 내용은 2002년부터 수돗물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될 경우 ‘물을 끓여마시라’는 경보를 발령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도자료에는 “정수장과 급배수망 관리가 미흡할 경우 바이러스는 어떤 정수장의 수돗물에서도 검출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것은 그 동안 환경부가 수돗물의 안전성을 홍보해온 점에 비추어볼 때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김명자 장관은 답변에서 “바이러스를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나라는 없다. 환경부는 연말까지 수돗물 처리기준(TT)을 정해 대도시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처리기준이란 미국 환경청이 정한 것으로, 이것을 지킬 경우 정수에서 바이러스를 99.99% 처리한 것으로 간주하는 시스템이다.

    처리기준과 관련, 환경부 남궁은 수도국장은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지라는 말이다.

    기자는 경기도 지역에서 비교적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모 정수장의 팀장에게 환경부의 대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현재 지자체는 물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 소규모 정수장의 경우는 규정을 어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대형 사고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행정 당국이 불구경하듯이 대처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상종 교수도 환경부 방침을 비판했다. 김교수는 “1997년 환경부 조사에서도 국내의 우수한 정수장조차 소독능력이 미국 환경청 기준으로 10∼70%에 불과했다. 따라서 처리기준만으로는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정기적인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바이러스 검사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문제점이 있다. 김장관은 1개의 시료를 검사하는 데 150만원이 든다고 말했다(김교수의 주장은 60만~80만원 수준). 우리나라 정수장이 589개이므로 한 달에 한 번씩 정수장 1곳과 수도꼭지 10곳의 시료를 검사할 경우, 1년 동안 1166억원이 필요하다. 김장관은 “그런 돈이 있으면 먼저 상수도관을 바꾸는 데 쓰겠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바이러스 논쟁은 비생산적이며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김교수는 “바이러스의 경우 직접 조사하지 않고서는 존재 유무를 판별할 수가 없다. 돈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빨리 실시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일단 발병할 경우 엄청난 사태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지방 중소도시 수돗물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하고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다. 수돗물이 오염돼 있으면 끓여먹으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고 반박했다.

    5년여에 걸친 수돗물 바이러스 논쟁. 현재로서는 바이러스를 검출한 실험과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은 실험이 공존할 뿐, 진실게임의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환경이 끊임없이 파괴되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바이러스의 위협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수돗물을 안심하고 그냥 마신다는 고건 서울시장, 결명자차를 좋아해서 끓여먹거나 그냥 마시기도 한다는 김명자 장관, 식수는 물론 양치질도 수돗물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김상종 교수…. 이들 모두가 지금 이 순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대상은 바로 국민일 것이다. 언제까지 국민들이 수돗물을 두려워하고, 정수기를 구입하며, 생수를 찾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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