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호

9·11테러에서 아프간 함락까지,미국의 언론전쟁

  • 이흥환·미 KISON 연구원

    입력2004-11-08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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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녁 맞추기 전쟁(Bull’s Eye War)’ ‘성(聖)과 속(俗)의 제3차 세계대전’ 등 21세기의 신조어를 탄생시키고 있는 미국의 대(對)테러 전쟁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부시 행정부가 이름 붙인 ‘대 테러 전쟁’이라는 말 역시 9월11일 테러참사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의 펜타곤에 불기둥이 솟구치는 순간 세계 최대,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던 미국은 유일한 슈퍼파워만이 가질 수 있는 화려한 빛의 정체와 그 이면의 짙디짙은 그림자의 세계를 한꺼번에 드러내 보였다. 미 언론이 치르고 있는 이른바 ‘미디어 전쟁’이야말로 미국 사회의 양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당대의 논객들이 앞장서 치르는 ‘미디어 전쟁’은 군사력을 동원한 실제 전쟁 못지않게 치밀하게 계획되고 기동력이 있어야 하며, 총공세의 과감성과 작전에 따른 후퇴의 생존법을 익힌 프로들이 치르는 전쟁이다. 교전 상대방이 같은 언론이든, 독자나 시청자든, 또는 정부든 간에 상대방의 전력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기본적인 ‘교전 규칙’도 없이 뛰어들거나, 이를 무시한 채 무모하게 덤벼들었다가는 백전백패 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는 미국이다. 미국은 언론의 왕국이기도 하지만, 철두철미한 훈련 없이 뛰어들었다가는 뛰어드는 즉시 그 자리에서 매장되고 마는, 얼치기 언론의 살벌하기 짝이 없는 무덤터이기도 하다.

    9월11일 이후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개시될 때까지가 미디어 전쟁의 1회전이라면, 아프가니스탄 공습 이후 현재까지가 2회전이다. 대부분의 전쟁이 그렇듯이 미국의 미디어 전쟁도 선전포고로 시작되었다. 미 언론의 대 테러 선전포고다. 부시 행정부가 동지인 연합군이고 테러리스트들이 적이다. 언론을 정부와 같은 편에 서게 만든 것은 대 테러 참사에 대한 반동, 미 애국주의였다.

    9월11일의 대참사 사건을 처음 겪기는 미 언론도 마찬가지다. 사건발생 전까지 미언론은 워싱턴 인턴 산드라 리비 실종사건과 해변의 상어 습격사건으로 지면을 메우고 화면을 채워나가던 중이었다. 워싱턴의 ‘언론 및 홍보 센터(CMPA)’ 분석자료에 따르면, 미 3대 텔레비전 네트워크 방송사인 NBC, CBS, ABC가 2001년 1월1일부터 9월10일까지 산드라 리비와 상어 사건을 방영한 총 시간은 각각 2시간59분과 1시간30분이었다. 이에 비해 오사마 빈 라덴 관련 보도는 58분에 불과했다. 빈 라덴에 비해 산드라 리비 관련 방영시간이 3배, 상어사건 방영시간이 2배가 많았던 셈이다.



    이런 보도형태는 9월11일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는 한 기준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시청률과 발행부수 높이기에 치중하는 상업언론이 외교나 국제정세 보도를 등한시함으로써 바깥으로는 눈길을 많이 주지 않은 것도 9월11일 사건의 한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류 언론의 대 테러전

    그렇지 않아도 주요 언론사들이 해외 특파원 수를 대폭 감소시키고, 할리우드, 스캔들, 스포츠, 유명인 보도에만 치중하는 태도가 지적되는 등 미 언론의 상업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주요 언론사의 해외 관련 보도는 지면 할애 및 시간 투자 면에서 지난 15~20년 사이에 70~80%까지 줄어들었다.

    걸프전이 끝난 뒤 미 기자로서는 처음 이라크에 들어가 취재를 했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니나 벌레이는 “다른 나라들이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미국을 잘 알고 있다. 국제정세에 대한 이런 무관심 때문에 결국 외국인들이 미국을 혐오하는 동기가 무엇인지를 우리만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국제담당 고참 언론인들도 벌레이의 의견에 동감하고 있다.

    미 언론의 참사 관련 보도는 10월7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첫 공습이 개시되기 전까지 거의 한 달간 계속되었다. 3대 케이블 방송인 CNN, 폭스뉴스 채널, MSNBC는 물론 ABC 등 3대 네트워크의 모든 텔레비전 화면 왼쪽 아래에는 빠짐없이 성조기 로고가 새겨졌고, 화면에 등장하는 리포터들의 가슴에도 성조기 배지가 달려 있었다.

    ABC의 피터 제닝스, CBS의 댄 래더 등 간판급 고참 앵커들은 목소리 한번 높이지 않고 객관적인 자세를 지키려고 애쓰며 징그러울 만큼 차분하게 진행했다. 정확한 사상자 숫자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어느 언론사도 피해자 숫자를 함부로 보도하지 않는 철저한 확인보도 태도를 지켰다. TV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에 대한 심리 충격을 감안해 참사 장면 방영을 조기 중단하는 등 세련된 언론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미언론은 순식간에 미국 전체를 휘감은 애국주의의 거센 사회 분위기를 거스르지는 못했다. 이때만 해도 언론의 교전 상대방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ABC의 앵커 피터 제닝스가 구설수에 오른 것도 이런 미국사회의 분위기가 반영된 탓이다. 피터 제닝스는 9월11일 사건 당일, 부시 대통령이 사태 직후 곧바로 백악관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을 두고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은 보이질 않았다. 아홉 시간 만에야 백악관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단순히 대통령의 늑장 귀환을 알린 것인지, 대통령에게 일침을 가한 것인지는 듣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바로 피터 제닝스를 공격해댔다. 비상시국에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을 폄하하고 비판하면 어쩌자는 거냐는 애국주의의 몰매였다. 앵커로서 뉴욕 보도국을 지키고 있던 그가 11월 하순, 국내 여론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뉴욕을 벗어나 다른 주를 방문하면서 시민들을 만나는 중에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리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피터 제닝스가 시청자들의 눈에는 비애국적으로 비친 것이다.

    9월11일 사태 직후 언론의 초점은 오로지 ‘보복’ 하나에 맞추어졌다. 안보 전문가든 외교전문가든 논객이든 언론에 이름을 내미는 사람들은 거의 한 목소리였다. 군사력을 동원한 보복공격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조건이었고, 심지어는 핵 보복론에서 이슬람 교도들의 기독교 개종화에 이르기까지 거친 목소리들이 거침없이 쏟아져나왔다.

    “다른 건 몰라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사막에 있는 빈 라덴 캠프를 전략 핵무기로 공격해야 한다” (전 미 국방정보국의 토마스 우드로우가 ‘핵 무기를 써야 할 때’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워싱턴 타임스’ 9월14일 자 글).

    보수 논객인 앤 쿨터(Ann Coulter)가 테러사건 이틀 후인 9월13일 ‘내셔널 리뷰 온라인’에 기고한 다음 글은 결국 보수지인 ‘내셔널 리뷰’에서조차도 이 여성 논객을 해고하게 만들었다.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무모한 대공세가 결국 패배로 이어진 경우다.

    “테러 공격에 관련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관련된 나라로 쳐들어가 지도자들을 죽이고 모두 기독교도로 개종시켜야 한다. 히틀러와 그의 참모들을 징벌할 때 우리는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독일에 융단 폭격을 가했고, 민간인들도 죽였다. 그게 전쟁이다. 이것도 전쟁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수 논객인 찰스 크라웃해머(Charles Krauthammer)는 9월12일자 칼럼에 이렇게 쓰고 있다.

    “미국에 죽음의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테러리스트들이 저 바깥에 저토록 많이 널려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저들이 과거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했을 때 우리는(사막의 빈 텐트에 쓰잘 데 없는 크루즈미사일 몇 방을 날린 것을 제외하고는) 그저 소환장을 발부하곤 했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들을 인도받아 국제법에 따른 재판에 회부하는 등의 다른 대안은 전혀 설 자리가 없었다. 오로지 즉각적인 군사보복만이 유일한 선택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거대 매체들의 한 목소리, 보수주의

    미 언론보도를 감시하는 민간기구 FAIR(Fairness & Accuracy in Reporting)가 2001년 9월11일부터 10월2일 사이의 3주 동안에 미국의 양대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의 논단(Op-ed)에 실린 글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군사보복의 대안으로 외교적 해법이나 국제법에 의한 접근법을 제시한 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 초기 3주 동안 ‘워싱턴 포스트’ 논단은 105개, ‘뉴욕 타임스’ 논단은 모두 79개의 칼럼을 실었고, 대부분이 9월11일 사태와 대응책, 경제, 복구 및 재건에 관련된 글이었다. 이 가운데 44개의 칼럼이 분명한 군사보복을 주장하고 있고, 2개 칼럼만이 비군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군사 행동을 주장한 칼럼이 ‘뉴욕 타임스’에는 12개가 게재된 반면, ‘워싱턴 포스트’에는 모두 32개의 글이 실려 ‘워싱턴 포스트’가 화약내를 좀더 짙게 풍겼다. 그러나 비군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2개 칼럼이 모두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것이었고, ‘뉴욕 타임스’에는 그런 대안을 제시한 글이 하나도 없었으며, 그나마 이런 반대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객원 칼럼니스트들이었다. ‘뉴욕 타임스’ 칼럼 수의 3분의 2, ‘워싱턴 포스트’ 칼럼 수의 절반 이상이 전쟁론이었다.

    이 민간기구는 분석 끝에 이렇게 결론을 짓고 있다. “미 수도인 워싱턴과 뉴스의 산실인 뉴욕에서 발행되고 있는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는 다른 어떤 신문보다도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독자들에게 테러리즘에 대한 광범위한 시각과 원인 및 해결책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매체들이다. 논단 지면의 목적이 비판적인 의견과 다양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두 신문은 중요한 시기에 독자들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고 말았다.”

    루퍼트 머독이 소유주인 폭스(Fox) 뉴스 채널이야말로 보수 논조의 거장답게 9월11일 테러사건 이후 보수 언론의 색채를 한껏 발휘한 매체다. 미디어가 치르는 대 테러전 방송 부문에서는 최선봉에 서 있는 셈이다.

    미 전국에 900만 명의 시청자를 가지고 있는 CNN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다섯 살배기 케이블뉴스 전문채널 폭스는 일반 시청률에서 CNN을 훨씬 앞지르기도 한다. 폭스만이 가지고 있는 스타일과 저력은 선두주자인 CNN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NN의 월터 아이작슨 회장이 자사 특파원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보도할 때는, 미국이 공습을 하는 이유 및 9월11일 사태 때 수천 명의 미국인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반드시 밝히라”는 특명을 내린 것도 경쟁사인 폭스를 염두에 둔 것이다. 폭스의 보수 논조가 시청자들에게 먹혀들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진보적인 색채로 비쳐지는 CNN으로서는 시청자들을 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월터 아이작슨 회장도 “시청자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로이터통신사 등 일부 언론들이 ‘테러리스트’라는 표현마저 삼가면서 신중한 자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나, 이미 대세는 폭스의 시청률을 높이는 쪽이었다. 폭스의 좌우명은 ‘공정한 보도, 균형 잡힌 보도’다. 이 말 속에는 경쟁사인 진보언론이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깔려 있다. 보수 매체의 좌우명이 그렇듯이 보수와 진보 양쪽에 같은 무게를 두었다가는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폭스의 주장이다.

    “지금 우리가 보도하고 있는 것은 테러리스트와 테러, 악에 대한 것이고, 미국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폭스회장 로저 에일리스.

    “폭스는 정확하고 공정해야 하며 미국다워야 한다.”─선임 부회장 존 무디.

    폭스가 정부 입장을 그대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에일리스 회장은 폭스도 필요할 때는 정부를 비판한다면서, 존 애쉬크로프트 법무장관의 지나친 비밀주의와 대국민 홍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토미 프랭크 미 사령관의 태도를 공격하고 있다고 반격했다. “우리는 반미가 아니다. 미국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을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보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에일리스 회장의 말이다.

    폭스는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따른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보도도 우선 순위에서 밀어놓았다. 폭스 ‘스페셜 리포트’ 앵커인 브릿 흄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건 미국과, 살인을 일삼는 야만인들과의 전쟁이다. 전쟁은 지옥이다. 사람이 죽는 게 전쟁이다. 우리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다. 사람은 죽게 마련이다. 민간인도 죽는다. 민간인이 죽은 것이 무슨 뉴스가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전쟁에서는 공습을 하게 마련이고, 공습 역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폭스는 왜 공습에 대해서는 열심히 보도를 하는가라는 반문에는 브릿 흄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우리는 보도만 할 뿐이다. 판단은 시청자가 한다’는 것이 폭스의 입장이다.

    CBS앵커 댄 래더의 눈물

    자신 앞으로 배달된 탄저균 우편물의 주인공이 된 CBS 방송의 앵커 댄 래더가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해 보인 ‘눈물’은 미 언론인들이 테러참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뉴욕 참사 직후이며 탄저균 사건이 터지기 전, 한 코미디 토크쇼에 출연한 댄 래더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참상 보도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술회하는 중에 눈물을 보였다. 앵커로서뿐만 아니라 필명을 날리고 있는 진보적인 인사이고, 객관적인 보도 태도로 평판이 높은 TV 앵커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보인 눈물은 언론계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의 눈물은 시청자들에게는 위력적이었다. 테러사건 이후 슬로건이 되다시피한 ‘함께 뭉쳐 일어서자(United We Stand)’라는 구호에 힘을 보태준 셈이다.

    댄 래더가 미디어 전쟁의 분위기를 잘 파악한 언론인이었다면, 풍자적인 정치 토크쇼 사회자인 빌 마어는 이 분위기를 거슬렀다가 따끔한 맛을 본 경우다. 테러 직후 “비행기를 조종해 돌진해오는 사람보다는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미사일 공격을 해대는 사람들이 더 비겁하다”는 과감성(?)을 발휘했다가, 즉시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하고서야 사태를 진정시키고 사회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공습의 민간인 피해 보도가 축소 또는 은폐되는 등 보수주의와 애국주의의 기치를 내건 거대 언론 매체들의 일방적인 독주가 계속되자 진보적인 지식인 논객들과 미디어 감시 단체들이 주요 언론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미국이 치르는 미디어 전쟁의 또 다른 측면이다.

    보수·진보 논객 사이의 ‘붓전쟁’

    이들은 주류 언론의 보도 형태가 대 테러 전쟁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 어떻게 규격화되어 가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우선 비행기 참사 당시 상황의 지속적인 반복과 영웅주의의 강조가 바탕에 깔려 있다. 노리에가, 사담 후세인, 밀로셰비치 등 과거 미국의 주적(主敵)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던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이번에는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을 과녁으로 삼았다. 집권 6년 동안 탈레반이 저지른 인권유린의 행태 같은 것은 주요 언론이라면 누구나 탐내는 호재였다.

    외국인 테러리스트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관련법인 국제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대안 제시를 주류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국과 탈레반의 과거 긴밀했던 관계를 소개하는 글이나 방송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간 뒤 극도로 혼란했던 아프가니스탄 국내 정세를 그나마 질서 잡히는 쪽으로 기여했던 탈레반과 알 카에다 조직의 실험적인 집권과 미국의 배후 지지 역할, 탈레반 집권 직전 극도로 무질서했던 아프간 정세에 북부동맹 측도 톡톡히 한 몫을 했던 사실, 서구의 석유회사들이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하는 송유관 보호를 위해 탈레반 집권을 지지했던 배경, 이 송유관에 사활이 걸린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 등 주변국들이 대 탈레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 등 미국과 탈레반의 이면 관계보다는 탈레반 척결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당면 목표가 우선시되었을 뿐이다.

    미국은 테러사건 한달 전까지만 해도 마약 퇴치 전쟁의 일환으로 탈레반에게 4300만달러를 지원했다. 1997년 전세계 무기 거래량의 63.4%를 차지한 미국의 대외 무기 판매 가운데에는 직간접으로 탈레반을 손님으로 한 거래도 있었다.

    더구나 오사마 빈 라덴이야말로 노리에가나 사담 후세인처럼 미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국무부 ‘실험실’에서 미 국익을 위해 만들어진 산물이었다. 이 실험의 목적이 달성된 뒤 미국은 또 다른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 또 다른 ‘목표물’을 생산해낸다. ‘이 시대’라는 진보언론의 선임 편집자 살림 무와킬은 지난 12월3일 ‘시카고 트리뷴’에 기고한 ‘이게 우리가 말하는 승리란 말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할 또 다른 혼합형 괴물을 만들어내는 데 골몰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작전의 결과는 얼마든지 예견할 수가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가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대 테러 전쟁의 이면에 눈을 감고 있는 주류 언론에 칼을 들이댄 비주류 논객들의 필봉은 테러사태와 대 테러전쟁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왜 이런 참혹한 사태가 일어났는가. 테러 공격에 대처할 정책 대안은 무엇인가. 9월11일 사태란 결국 미국이 만들어낸 ‘역풍’이 아닌가.

    과연 누가 적인가. 목표물을 얼마나 더 확대시킬 것인가. 미 국내 여론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대미 여론도 귀담아들어야 하지 않은가. 9월11일 사태란 진정 이슬람에 의한 테러인가. (진보지 ‘The Nation’의 편집자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미국에 대한 테러를 ‘이슬람의 얼굴을 한 파시즘’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 피해자 관련 보도도 미디어 보도 감시단체들의 주된 공격거리다. CNN과 폭스 같은 거대 매체들이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 피해에 대한 보도를 회피하는 마당에 지방 언론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다음은 공정보도 감시단체 FAIR가 플로리다주 파나마시 ‘뉴스 헤럴드’의 보도지침을 인용한 글이다.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피해를 보여주는 사진은 1면에 게재하지 말 것. 자매지 ‘포트 월튼 비치’가 그 사진을 게재했다가 수백 통의 위협 이메일을 받았음. 민간인 피해를 주제로 한 통신사 기사도 사용하지 말 것. 부득이 사용할 경우에는 기사 중간에 배치하거나, 민간인 피해 상황을 축소 보도할 경우에만 기사 앞에 배치할 것. 미국이 고아원이나 학교, 이와 유사한 기관을 폭격했을 경우나 수백 명의 어린이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에만 예외임.”

    주류 언론의 외눈 감기 보도 행태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는 노엄 촘스키 등 대표적인 진보 논객들의 글이 주류 언론에서는 하나도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촘스키 거부 관행은 이번 대 테러전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번 미디어 전쟁에서도 촘스키는 일부 진보적인 언론과의 인터뷰와 기고를 통해 미 상업언론의 오래된 병폐와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무차별 공격해댔다(촘스키는 테러사건 이후 자신이 발표한 글들을 모아 ‘9-11’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으나, 이 역시 일반 서점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힘들다).

    전쟁 보도를 통제하는 국방부와 언론과의 불꽃 튀는 신경전이야말로 전시 미디어 전쟁의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이나마 언론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미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며, 대 테러전이라는 전쟁의 특성에 걸맞게 이번 대 미디어 전쟁에서 미 국방부 펜타곤은 보도통제의 기본기를 원없이 발휘했다.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개시되고 2주가 지난 10월22일,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아프가니스탄의 특공대 작전 비밀을 언론에 누설한 펜타곤 스태프는 연방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노기를 삭이지 못했다. 나흘 전 ‘워싱턴 포스트’가 펜타곤 관리의 말을 인용, 소규모의 미 특공대가 아프가니스탄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 때문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10월18일자 기사는 미 특공대의 아프가니스탄 진입 사실에 대해서만 보도했을 뿐, 작전 전개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날 밤, CBS와 NBC 방송은 특공대 작전이 이미 전개되고 있다는 보도를 했고, 결국 럼스펠드 장관의 입을 열게 만든 것이다.

    이 특공대 기사는 국방부와 언론의 첫 대결이었고, 펜타곤과 미디어가 날카롭게 대립하리라는 예고편이었다. 펜타곤의 보도통제는 전에 없이 강경했다. 그러던 중 12월 초 미 폭격기의 오폭으로 미군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이 사건 역시 종군 기자들의 접근이 원천 봉쇄당한 상태에서 터져나온 것이었다. 사건 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펜타곤 풀 기자단의 거친 항의로 펜타곤은 결국 언론 앞에 사과를 하면서 무릎을 꿇고 말았으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주요 작전은 이미 막을 내린 뒤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 육군의 제10 산악사단 병력 1000명이 우즈베키스탄에 거의 두 달 동안이나 주둔하고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어 최소 2주 동안 작전을 전개했으나, 미 언론은 펜타곤이 쳐놓은 보도통제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모든 전쟁 정보는 펜타곤이 ‘먹여주는(spoon-feeding)’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펜타곤의 극도의 보도 통제 방침은 물론 럼스펠드 장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11월 중순, 첫번째 풀 기자단이 구성돼 펜타곤의 안내를 받아 아프가니스탄의 미 해병대 기지에 들어갔으나, 미 병사들의 예배와 진급 행사 등 비전투 기사만이 보도가 허용되었고, 심지어 작전이 끝난 뒤 펜타곤의 발표가 나오고 난 뒤에조차도 현지 보도가 통제될 정도였다.

    종군기자들은 “걸프전 때에도 이렇지는 않았다. 걸프전에서는 미 부대를 따라 움직일 수 있었으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대들었고, 펜타곤은 “스포츠 게임을 보는 관중보다 선수들이 더 중요하다”고 방어하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이런 보도통제의 와중에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개시된 10월7일,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해 미국을 향해 성전을 선포한 오사마 빈 라덴의 모습에 펜타곤은 물론 백악관도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 보좌관이 언론에 ‘오사마 빈 라덴 회견 장면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TV 연설을 빌미로 알 카에다 조직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ABC ‘나이트 라인’의 앵커 테드 커플은 전시 보도를 주제로 한 브루킹스 연구소의 좌담회에 나와 “이처럼 어리석은 주문이 어디 있냐”고 라이스 보좌관을 힐난했다. “빈 라덴의 알 카에다는 위성 네트워크를 가동하는 조직이고, 위성뿐 아니라 인터넷 등 소통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지적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TV 회견은 ‘아랍권의 CNN’이라 불리는 카타르의 독립 위성채널 ‘알 자지라’가 방영한 것이다. ‘알 자지라’ 위성방송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 주류 언론의 틈새를 뚫고 사상 처음으로 제3세계 언론의 목소리를 전세계에 보도함으로써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미 주류 언론과 ‘알 자지라’ 채널과의 대결 역시 이번 미디어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아랍권의 CNN’ 알 자지라

    ‘알 자지라’는 칭찬과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다. 평가가 아주 상반된 만큼, 그 독특한 위치를 알 자지라는 십분 활용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알 자지라에 대해 험담을 아끼지 않는다.

    “반이스라엘, 반미의 편협된 보도로 일관한다.” ‘뉴욕 타임스’

    “오사마 빈 라덴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CBS, 댄 래더)

    “시청자들에게 (이 방송을 보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경고문을 들려주지 않을 수 없다.” (NPR)

    하지만 탄생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알 자지라는 이미 튼튼한 재정을 바탕으로 전세계 31개국에 50명의 특파원을 파견해 현장보도를 하고 있는 어엿한 독립언론이다. 무엇보다 아랍권에서 금기시되는 섹스문제를 다루고, 아랍권 정부들을 호되게 비판하며, 찬반 양론의 토론을 여과 없이 내보내는 등 중동지역의 아랍어 방송 가운데 보도통제를 받지 않는 유일한 매체라는 점이 3500만 명에 가까운 전세계 아랍어 케이블방송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미 언론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 민간인 사상자의 참혹한 피해 현장 모습도 알 자지라를 통해서는 볼 수 있다. 미 국내에도 15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한 달에 22달러99센트의 시청료를 내는 시청자들은 아랍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전쟁 보도에서 인간 냄새가 나지 않는’ CNN에 식상한 시청자들의 손은 알 자지라 채널을 찾기 마련이다.

    CNN을 비롯한 모든 미 언론이 탈레반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쫓겨났지만, 알 자지라만이 아프가니스탄 취재를 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미디어 전쟁에서 알 자지라의 위상을 확립시켜 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쟁터에서 태어난 비디오폰

    벙커 버스터 등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이 선보인 신무기 못지않게 TV 보도에 혁명을 일으켜 TV 기자들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것이 있다. 비디오폰이다. 이미 ‘미디어 혁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뉴스릴(newsreel)’이라는 기록필름에 전쟁의 모습을 기록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중계한 것은 라디오 리포터였다. 일반인들이 시청자라는 이름으로 역사상 최초로 TV를 통해 전쟁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 베트남전쟁이었고, CNN이라는 케이블 TV는 걸프전을 통해 전쟁을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비디오폰을 탄생시킨 전쟁이 되었다.

    작고 운반하기 편하며 7500달러로 값이 싼 것도 장점이다. 8000달러짜리 위성변환기에 연결한 후 내장된 건전지나 자동차의 담뱃불 라이터 코드 등 간단한 전원만 있으면 언제 어느 곳에서든 편리하게 사용이 가능하다.

    비디오폰이 TV 기자들에게 사랑받는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잡음이 거의 없고,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송 장비를 운반해야 하는 번거로움 대신 등가방에 넣어 메고 다니면 그만이다. CNN의 닉 로벗슨 특파원이 1999년 12월 칸다하르의 비행기 납치사건을 독점 보도하면서 처음으로 비디오폰 전송방식을 선보였다.

    지난해 초 중국 하이난섬에 불시착한 미 정찰기의 억류 승무원 모습을 독점 방영한 CNN 화면도 비디오폰으로 전송된 것이다. 1초당 20 프레임밖에 전송하지 못하는 탓에 화면 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현지에서의 신속한 보도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비디오폰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테러 대참사로 시작되어 지금도 총성 없이, 그러나 치열하게 치러지고 있는 미국의 미디어 전쟁은 미국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보도통제를 둘러싼 언론과 행정부의 마찰음, 독점 보도를 위한 언론 내부의 경쟁 등 미디어를 둘러싼 전쟁은 다양한 얼굴을 한 입체전이다. 하지만 이념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 전선이야말로 대중매체를 통한 미디어 전쟁의 결정판이고,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보다 더 큰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9월11일 사태가 터진 직후 미국 내의 신보수주의자들은 클린턴 행정부의 나약함이 되살아날 가능성을 가장 우려했다. 공습에만 의지하면서 해외 군사 개입을 회피하려는 부시 행정부에 채찍질을 가한 것도 이 신보수주의를 내세운 논객들이었다. 대 테러전의 국제동맹 구축이야말로 이들에게는 ‘나약한 미국’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외교를 앞세우고 확전을 경계하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첫번째 타도 대상이었음은 물론이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콜린 파월 때문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들 가슴속에는 아직도 미련으로 남아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끈은 물론 일방주의(unilateralism)이다. 손쉽게 구축할 수 있는 섣부른 동맹은 이롭기보다 해를 더 끼치며, 미국 혼자 가는 것이 미 국익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아직도 접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번 전쟁이 세속 국가(미국)와 이슬람 국가간의 맞대결이라고 보는 시선을 혐오한다. 미국은 세속 국가가 아니며, 미국이야말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튼튼하고 유일한 종교국가라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신보수주의자 논객인 마이클 노박은 ‘내셔널 리뷰’에 이렇게 쓰고 있다. “미국이야말로 지구상에서 서너 번째로 손꼽히는 종교국가다. 미국의 기초는 종교이고, 기독교와 유대교가 지배적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선(善)이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이외 지역의 확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조심스럽다. 이라크로 포문을 재빨리 돌리지 않고, 전쟁의 깃발을 더 높이지 않을 경우 신보수주의자와 부시 행정부간의 괴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치르는 제3의 전쟁, 미디어 전쟁의 핵심은 이 두 세력의 작전 지도를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다. 좋든 싫든, 옳든 그르든 이것이 미국이 치르고 있는 미디어 전쟁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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