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추풍령

  • 서대수

    입력2004-11-17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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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아버지가 잠을 깨웠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직도 푸르스름한 여명이 휘장처럼 창을 가리고 있는 시간에 아버지가 잠을 깨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서울로 도망치려는 나의 계획을 아버지가 알아챈 것이 아닌가 싶어 더럭 겁이 났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동생들도 깨우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버지의 굳은 표정은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흔히 그랬던 것처럼 지난 밤에도 아버지는 모두가 잠든 후에 들어왔다. 하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일을 나갔다가 늦은 것이 아니라 트럭기사들과 무슨 회의를 하다가 늦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타지에 나갔다가 저녁 무렵에 부산에 도착했지만 회의가 있어 늦게 들어온다고 전화를 했었다.

    아마도 그 회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여전히 잠이 들러붙어 있는 눈을 꿈벅거리며 아버지를 쳐다보는 연희의 모습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동호는 일어나 앉기는 했지만 잠에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동호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빨리 옷 입고 차 타러 가자.”

    아버지의 메마른 음성이 나직하게 방 안을 채웠다. 그 풀기 없는 음성에서 나는 나의 계획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필이면 왜 오늘인가. 짜증이 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새벽 골목에서 어둠이 서성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바다내음이 났다. 바다는 아파트촌 저 멀리, 어둠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을숙도 뒤편에 있다. 을숙도는 낙동강이 긴 여행을 끝내고 바다가 되는 곳이다. 을숙도는 연희의 친구, 새들이 잠자는 곳이기도 했다. 연희는 을숙도에만 가면 새가 된다고 했다. 아직 새들은 새벽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벌써 골목을 거의 다 빠져나갔다. 골목을 벗어나면 제과점이 나온다. 제과점에서는 언제나 빵 굽는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온다. 초등학교 2학년인 동호는 그 냄새를 똥냄새 같다고 했다. 나는 동호가 말하는 냄새가 내가 느끼는 구수한 냄새보다 더 깊이 그의 마음에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동호에게 그 냄새는 어릴 적 기저귀에서 나던 똥냄새와 다르지 않다. 동호는 그 냄새를 미칠 듯이 좋아했다. 동호는 언제나 제과점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제과점의 유리창에 코를 바싹 붙이면 동호의 코는 돼지코가 된다. 돼지코가 되어도 그 냄새와 유리면에 닿을 때 느껴지는 매끈한 감촉이 좋아서 자꾸만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제과점 아줌마가 날카로운 눈으로 동호와 나를 흘겨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걸음걸이는 언제나 발끝이 밖으로 벌어진다. 사람들은 그런 걸음걸이를 팔자걸음이라고 했다. 엉거주춤 주저앉을 듯이 걷는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오늘따라 유난히 동작이 커보였다.

    다시 바다내음이 났다. 밤새 어둠에 묻어 밀려와 잠자던 바다내음을 아버지가 휘저어 깨워놓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바다내음은 제과점의 빵냄새와 새벽버스의 매연냄새에 깨어나 바다로 되돌아갈 것이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구름으로 덮여 있는 하늘이 나에게는 툭툭한 솜이불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어젯밤 뉴스에 오늘 오후쯤 서울 지역에 눈이 올 거라고 했다. 함께 뉴스를 보고 있던 연희는 부산에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산에 눈이 올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다른 지역에는 눈이 와도 부산에는 거의 언제나 비가 내렸다.

    “아빠, 지금 우리 어디 가는데요?”

    골목 끝에 다다랐을 때 동호가 물었다. 그것은 나도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표정이 너무나 굳어 있어서 감히 입을 떼지 못하고 눈치만 보아왔다.

    “싸우러.”

    아버지는 짧게 대답했다. 의외였다. 아버지가 어머니 외에는 누구와 싸우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무겁게 가라앉은 대답 속에 숨어 있는 또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어머니와 싸울 때처럼, 자조 섞인 한탄과 냉소를 흘리며, 가끔씩 콧방귀도 뀌어가며, 더러는 술에 취해 혀꼬부라진 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것일까? 아니면 권투선수나 레슬링선수들처럼 주먹이나 머리로 치고 받고 하면서 싸우는 것일까?

    “누구하고 싸우러요?”

    동호가 다시 물었다. 그 목소리에 긴장감이 돌았다. 아버지는 뭔가 우물거리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주머니를 뒤졌다. 아마도 담배를 찾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에 부닥칠 때면 담배를 피운다. 아버지의 침묵에 동호가 멍한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 역시 동호의 얼굴을 멀뚱하게 쳐다보다가 연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희 또한 코알라 같은 유순하고 조용한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어디로 싸우러 가는데요?”

    동호의 끈질긴 질문이 이어졌다.

    “서울.”

    아버지의 그 짧은 한 마디가 내 귀를 때렸다. 그곳은 바로 오늘 내가 도망가려던 곳이 아닌가. 불끈 희망이 솟았다. 그것은 차비를 들이지 않고도 서울에 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서울요? 그럼 큰고모네가 살고 있는 데잖아요?”

    동호가 다시 물었다.

    “그래, 니도 전에 한 번 가본 적 있잖아.”

    “그럼 굉장히 먼 덴데…, 잠깐만요.”

    무엇을 잊어먹은 듯 동호가 부리나케 집 쪽으로 되돌아 뛰어갔다. 아버지의 팔자걸음을 그대로 빼닮은 동호는 골목을 좌우로 휘저으며 뛰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빼어물었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른 라이터 불의 섬광에 아버지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밝게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남자친구가 가끔씩 사주던 모카빵의 딱딱한 껍질처럼 굳어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은 2년 전 우리집에 그 사건이 터졌던 날을 떠올려주었다. 그날처럼 아버지의 얼굴은 절망에 빠져, 죽기를 작정하고 절벽 끝에 서있는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거무죽죽한 빛이었다. 문득 나는 우리 공주님들 일어났나, 어허, 우리 왕자님도 일어났구마, 하며 학랑과 장난기 어린 얼굴로 대하던, 2년 전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의 아버지 표정이 그리워졌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던 그날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날이었음을 언니에게서 듣고 알았지만, 그날 이후 아버지에게서는 농담과 웃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골목에 동호의 모습이 나타나자 아버지는 대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의 트럭은 대로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희미한 아침빛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트럭은 한데서 밤을 새운 무슨 커다란 짐승처럼 보였다. 18t짜리 트럭은 앞바퀴 2개, 중간바퀴 2개, 뒷바퀴 8개, 해서 모두 12개나 되었다.

    아버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시동을 걸었다. 나는 운전석 반대편의 문을 열고 올라가서 연희와 동호의 손을 잡아올렸다. 동생들은 트럭에 올라오자마자 운전석 뒤편의 길다란 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이렇게 아버지의 차를 타고 먼길을 갈 때면 으레 뒷좌석은 우리들 차지였다. 만약 언니가 있었더라면 지금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도 언니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뒷자리로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언니도 어머니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뒷좌석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와 언니는 없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까지 합쳐 식구가 모두 6명이었지만 그 가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함으로써 5명으로 줄어들었고, 1년 전에 언니가 집을 나감으로써 다시 4명으로 줄어들었다. 한때는 나마저 집을 나가 3명까지 줄어든 적도 있었다. 만약 한 달 전에 아버지가 나를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4명이 아니라 3명을 그대로 유지했을 것이다.

    밤새 한데서 보낸 트럭 안은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웠다. 아버지도 느꼈는지 히터를 작동시켰다. 올해의 11월 하순은 작년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나는 일주일 전에 강원도 지역에 펑펑 쏟아지던 텔레비전 속의 눈오는 장면을 떠올리며 어젯밤 뉴스에 나오던 일기 예보가 딱 들어맞아 오늘 서울에도 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그것은 나의 탈주를 축하해주는 꽃가루가 될 것이다.

    “아빠, 우리도 싸워요?”

    아버지 뒤편에 앉아 있는 동호가 물었다.

    “아니, 너들은 그냥 가만 앉아 있는 거야.”

    “그런데 왜 우리를 데려가요?”

    “너들이 있으면 힘이 되니까.”

    아버지가 앞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트럭이 톨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트럭들이 이미 20여 대나 모여 있었고 계속해서 다른 트럭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아빠, 웬 트럭이 이렇게 많이 모여요?”

    “응, 싸우러 가기 때문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동호의 질문에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동호가 다시 누구랑 싸우러 가는 거냐고 물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만약 아버지가 그것을 설명할 줄 안다면 집에서 나올 때 벌써 해주었을 것이다. 문득 나는 아버지를 떠나려고 하면서도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차를 트럭 행렬의 제일 앞쪽으로 몰고 가서 세웠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기어 바로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7호찹니다.”

    저쪽에서 뭐라고 했는지 다시 아버지는 예, 방금 맨 앞에다 세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고 있었다.

    “아빠, 우리가 맨 앞에서 가는 거예요?”

    아버지의 통화가 끝났을 때 동호가 물었다.

    “응, 우리가 맨 앞에서 가는 거야.”

    아버지는 공기압력기를 틀어 쉭쉭, 하는 소리를 내며 운전대 주변과 발 밑을 대충 청소했다.

    “와, 차가 너무 많다!”

    동호의 감탄 소리에 나는 오른쪽 차문의 유리창을 열고 뒤쪽을 보았다. 언제 모였는지 차들이 길다랗게 늘어서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핸드폰이 울렸고 아버지가 받았다.

    “아, 사장님. 예예. 고생은 뭘요. 뭐 평생 트럭운전수로 살아갈라믄 어차피 해야지요. 예, 아이들까지 데리고 갑니다. 예예. 그래야 힘이 나거든요.”

    아버지를 운전수로 고용한 차주에게서 온 전화인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아버지와 통화하고 있을 배불뚝이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참 주고 받던 아버지가 갔다오겠다는 말을 하고 끊었다.

    “아빠, 우리하고 싸우는 사람이 많아요?”

    “나중에 추풍령 휴게소에서 쉴 때 준태 아버지하고 만날 거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 물어봐라.”

    동호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해준 후에 아버지는 핸드폰에 나타나 있는 시간을 보더니 조수석 앞에 있는 뚜껑을 열고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비록 165cm 정도의 작은 키와 팔자걸음 탓에 밖에서는 엉성해 보이지만, 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의 모습은 늠름해 보였다. 아버지가 기어를 바꾸어넣고 차를 출발시키면서 클랙슨을 울렸다. 그러자 그 소리를 신호로 뒤쪽의 트럭들이 차례대로 경적을 울려댔다.

    트럭 행렬이 고속도로 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은 지금 부산을 떠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머릿속 깊은 곳에서, 어젯밤 서울로 탈출하는 장면을 상상했을 때 들려왔던 말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차량의 꼬리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시계를 힐끗 보더니 또 한 번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뒤따르는 차들이 연달아가며 경적을 울려댔다. 그렇게 아버지는 10분마다 한 번씩 경적을 울렸고, 고속도로에는 10분마다 경적음이 길게 꼬리를 그리며 이어졌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받았다. 이야기 내용으로 보아 준태 아버지는 아니고 다른 트럭기사인 것 같았다.

    “아무렴 데리고 가지.”

    저쪽에서 뭐라고 물었는지 아버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마도 저쪽에서 동호도 데려가느냐고 물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대답에는 일정한 틀이 있었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전에 같았으면 아버지는 방금 한 대답 끝에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을 것이다. 우리집 재산목록 1혼데, 빼놓을 리가 있나. 자주 아버지는 동호를 일러 그런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왜 아버지가 아들에게 집착했는지도 큰고모의 일기장을 보고 알았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겨울방학 때 비밀의 방에 올라가본 나는 깜짝 놀랐다. 전에 본 일기장 이후에 쓴 큰고모의 일기장이 가방 가득 들어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큰고모는 집에 일기장을 남겨두면 고모부나 아이들이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살고있는 시골집에 갖다놓은 것 같았다. 이번에는 종이로 봉인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퍼만 내리면 열리는 커다란 트렁크 안에 넣어져 있었다. 깨끗한 대학노트에 만년필로 써내려간 큰고모의 일기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저쪽에서 그토록 좋아하는 동호 이야기를 꺼냈을 텐데도 아버지의 표정은 어두웠다. 도대체 아버지는 누구와 싸우러 가는 것일까?

    연희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잠든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연희가 을숙도에서 새 떼들과 날아다니는 상상을 한다고 생각했다. 연희와 함께 을숙도에 다녀온 날 연희가 나에게 보여준 글에는 연희의 알 수 없는 세계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중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간 상태였던 연희의 글은, 비록 내 문장의 외피를 입기는 하였지만, 나와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점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은근히 시기심까지 났다. 그래서 연희보다 자신이 있다고 생각되는 산문에 복문과 묘사를 많이 사용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나는 좌석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날 나는 밤새도록 미친 여자처럼 백사장을 돌아다녔다. 내가 을숙도 돌기의 긴긴 행보를 끝냈을 때는 새벽이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모래알의 간지러움도, 파리한 초승달의 칼날 같은 빛남도, 뭍으로 기어오르며 건네는 조수의 속삭임도, 끊임없이 콧구멍 속으로 기어드는 비릿한 바다의 체취도, 양볼을 타고 입 속으로 스며든 눈물방울의 짠맛도 더 이상 나의 싸늘하게 식은 피를 격동시키지 못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어둠에의 입회식을 끝냈다고 생각했다. 멀리 검푸르게 뒤척이는 새벽 바다 위로 동이 터오고 있었다. 나는 한참 잠에 빠져 있을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기로 작정했어.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네가 살고 있는 그 반듯하고 품위 있는 빛의 세계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나 같은 여자가 빛의 세계로 나가보았자, 오히려 결점만 드러나 구경거리만 될 뿐이지.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어둠의 세계인 것 같아. 안녕.

    연희는 모래톱의 오목한 곳에 태아처럼 쪼그리고 앉아 잠들어 있었다. 나는 말 없이 동생을 흔들어 깨우고 을숙도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감기에 걸린 것을 알았다. 나는 아스피린 2알을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혈관을 달군 다음, 감기 인플루엔자를 끓는 땀방울에 실어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쓸 것인가, 아니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고 잠드는, 친구들이 늘상 말하는 방법을 쓸 것인가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아스피린 2알을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혈관을 달구는 방법, 그리하여 체공을 통해 감기 인플루엔자를 땀방울로 배출하는 방법, 그것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감기를 몰아내는 비방으로, 아버지가 알려준 이후 종종 써먹어온 것이었다. 생각 끝에 나는 친구들이 말하던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제 어둠의 사람이 되었으니 그에 걸맞은 방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술맛은 썼다. 왜 이런 걸 아버지와 세상사람들은 그리도 좋아하는지. 그러나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왜 소주를 마시기로 마음먹었는지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소주병이 바닥을 드러내기도 전에 나는 방바닥에 쓰러졌다. 짜증을 부리며 닥달하던 엄마가 빠져나간 빈 자리에, 그 자리를 지키다 힘에 겨웠는지 어쨌는지 가출해버린 언니의 빈 자리에.



    나이 40에 할아버지가 되다니


    엄마와 아버지가 이혼하던 날, 내가 밖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자 술냄새가 확 풍겨나왔다. 어둑한 방 한가운데에 언니가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언니 주변은 토사물 투성이였다. 엄마와 아버지가 이혼하기 얼마 전, 언니가 엄마에게 맞서던 날이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그래, 이년아, 기껏 낳아주고 먹여주고 입혀줬더니, 에미를 남의 집 똥개 쳐다보듯 해,라고 외치며 엄마는 두 눈에 쌍불을 켜고 언니를 올라타고 앉아, 그 탄력넘치는 육실한 엉덩이로 언니의 배를 굴러댔고, 언니는 누가 낳아달라고 했나, 오히려 낳아준 것이 원망스러워 죽겠다, 그리고 니가 에미야? 니가 에미냐구? 이 암캐야 하고 외치며 맞받아쳤다. 언니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어떻게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엄마도 언니의 돌연한 행동에 멍하니 서서 부들부들 떨다가 언니처럼 미쳐서, 언제나 화날 때면 드는 빗자루를 찾아 정신없이 휘둘러댔다. 엄마와 언니의 싸움을 지켜보던 나는 곧 언니의 심정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새벽바람이 미처 다 털어내지 못한 엄마의 몸에서 번져나오는 불순한 기운을 감지하면서, 엄마의 빗자루가 딸의 참됨과 미래를 위해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구차한 현실에서 연유하는 짜증의 발산용으로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표독스럽게 그 빗자루에 맞서온 언니만큼이나 나에게도 엄마의 빗자루는 이미 권위를 상실한 것이었다.

    그날의 언니처럼 나는 엄마가 나를 깔고 앉아 굴러대고 있는 듯한 무게를 느끼며, 언니처럼, 니가 에미야, 니가 에미야 하고 소리치며, 이제는 관 속에서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겠지, 흐응, 시원해서 좋겠구나라고 중얼거리다가, 우웩우웩 토악질을 해가며 발버둥쳤다. 그렇게 미운 엄마였어도 아버지와 이혼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며 그런 건 손톱만큼도 원하지 않았다는 언니처럼 나도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 줄로만 알았다. 방바닥에 흥건한 토사물이 얼굴과 몸에 달라붙었지만 나는 끈적거림도 냄새도 알아채지 못했다. 가슴이 타는 듯한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다가 마침내 힘이 소진되어 쓰러져 잠들었다.

    대구 4km. 이정표가 천천히 다가와 트럭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계기판은 10km로 떨어져 있었다.

    차가 대구를 스쳐 지날 때 나는 아버지의 심정이 누구보다도 착잡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구는 언니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며칠 전 이웃에 살고 있는 작은고모가 밤에 집에 들렀을 때, 그 고모에게 아버지가 털어놓던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그날 나는 언니가 자던 구석자리에 누워 잠든 척하면서 아버지와 고모가 나누던 대화를 모두 들었다.

    “아, 글쎄, 생활보호자 신청 땜에 동사무소에 들러보이, 윤희가 주민등록등본에서 빠져나갔더라고. 고마 기가 칵 막히는 기라.”

    언니는 1년 전에 가출한 후 그 한 달 뒤쯤에 대구에서 전입신고를 함으로써 아버지의 주민등록등본에서 말소되어 있었다.

    고민 끝에 아버지는 주소를 들고 언니를 찾아나섰다. 언니는 대구 외곽의 어느 오래된 다세대주택의 지하방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근처에서 망설이다 벨을 눌렀지만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물고 기다리던중에, 골목 끝에서 아이를 업고 오는 언니를 먼저 보았다. 아버지는 얼른 옆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혹시 다른 여자를 언니로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싶어 슬쩍 고개를 내밀고 확인했지만, 백일쯤 지나 보이는 아이를 업고 지하방으로 들어가는 여자는 언니가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나이 40에 할아버지가 되다니. 아버지는 등을 벽에 기대고 쪼그려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날 따라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언니에 대한 배신감이나 미움보다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이 먼저 비어져나왔다.

    한참 하늘을 쳐다보다가 아버지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에는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되고마는 지위가 있다는 것을, 20년의 시간을 껑충 뛰어, 아버지가 할아버지라고 인정하는 나이인 60대의 시간 속으로 떠밀려들어가는 수가 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스물에 언니를 낳았을 때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40대 초반의 나이에 할아버지로 만들었으며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원하지 않는 감정을 자신의 아버지도 느끼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자신은 미혼부가 되고 아내를 미혼모로 만들었던 자신의 전철을 자식들에게만은 밟지 않게 할 작정이었지만 결국은 첫딸이 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정녕 그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만 생각이 아버지를 덮쳐왔다. 언니가 아버지를 배신하였듯이, 아버지 몰래 주민등록등본에서 빠져나가선 1년 동안 한 번도 연락도 안 주었듯이, 아버지도 모른 척 언니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싶었다. 신세 한탄에 막혀 있다 뒤늦게야 끓어오르는 배신감으로 아버지는 괴로웠다.

    한때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용서하여 같이 살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언니가 결사 반대했다. 언니는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면 자신이 나가겠다고 눈에 불을 켰다. 자기가 엄마 역할을 모두 해내겠으니 엄마 없이 살자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이혼 초기에 그 충격으로 폭주족에 가담하는 등 빗나간 적이 있는 언니이기에 또다시 잘못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아버지는 언니의 말대로 했다. 그 말대로 언니는 자신과 우리 동생들의 용돈을 직접 벌겠다며 새벽에 잠을 설쳐가며 우유 배달을 하는 등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저녁에도 일찍 집으로 돌아와 우리들의 옷을 빤다, 저녁밥을 짓는다, 엄마가 하던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결국은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여 앞두고 가출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언니의 졸업장을, 동호가 입학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근처에 살고 있는 작은고모가 대신 가서 받아왔다.

    “망할 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 누나, 정말 난 윤희가 그럴 줄은 몰랐어. 아무리 애비가 못 났다고 하지만, 애비를 그렇게 무시할 수가 있어? 정말이지 배신감 땜에 아랫입술이 질끈질끈 물리는 거야.”

    그러나 곧 아비로서의 본심이 밀어닥쳤다. 아직은 한창 꿈에 젖어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할 언니, 친구들과 어울려 조잘거리며 젊음을 만끽해야 할 언니, 그런데 그 언니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지방도시의 어느 지하방에 틀어박혀 지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아버지에게는 금세 언니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애틋함이 가득 고여들었다.

    “그러자 좀전의 미움이 윤희를 그렇게 만든 놈한테로 번져가는 거야. 이 망할 놈이, 그래도 여자 예쁜 거는 알아갖고…….”

    하지만 그 망할 놈의 자식은 곧바로 아버지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 막막하고 힘들었던 시절,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를 해주는 누군가가 간절히 그리웠던 시절, 식당에서 열아홉 살의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아버지는 붉게 피어난 한 송이 동백꽃을 본 듯 매료되었었다. 서로가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서로에게 쉽게 이끌렸고, 아무도 통제하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책임감도 없이 그저 감정에 휩쓸려 들었고, 그러다 보니 얼떨결에 언니를 낳았었다.

    “누나, 그 망할 놈의 자식도 그랬던 걸까? 그리고 윤희도 지 에미처럼 그런 감정이었을까?”

    언니가 사라진 뒷길에 아이를 업은 언니의 모습이 남았다. 이제 겨우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언니. 그건 바로 언니를 낳았을 때의 엄마 모습이었다.

    “결코 딸아이만큼은 나 같은 놈은 안 만나기를 바랐어. 까짓거 잘 생긴 건 안 바라도 대학물이라도 먹고 넥타이 매고 직장다니는 남자를 만나기를 바랐어. 그랬는데 천상 내 신세나 매한가지인 공돌이를 만나다니.”

    아버지는 언니를 만나러 가기 전에 작은고모로부터 대충 언니의 남자에 대해 들었다. 작은고모는 언니가 졸업을 앞두었을 무렵부터 집 근처의 철공소에 다니는 남자와 가까이 지낸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하고 무심히 넘겼다고 했다. 그 남자도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자라고 했다.

    끼리끼리 만나기 마련이라는 옛말이 어찌 이리도 딱 들어맞는단 말인지, 왜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면 꼭 그와 같은 비슷한 길을 걸어야 한단 말인지, 아버지는 아득한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누나, 이때만큼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어.”

    결국 아버지는 그날 언니를 만나지 않고 그냥 돌아왔지만 짐을 싣고 대구를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져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누나, 도대체 이 모든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게 아내를 유혹한 그놈에게서 시작된 것 같아. 그리고 윤희를 임신시킨 놈도 한 몫 거든 거 같고. 나와 같은 놈은 나 하나만으로도 족해. 윤희 아이의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기도 싫은 내 과거를 보여주는 거울같이 느껴져. 그래서 울화가 치밀 때면 내가 모는 트럭을 갖고 아내를 꼬여간 그놈하고 윤희를 미혼모로 만든 그놈을 확 깔아뭉개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해.”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작은고모는 야야, 아이들 깰라, 그러면서 아버지를 달랬다.

    아버지는 집안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 엄마가 털실로 옷을 만드는 보세공장에 나가면서부터라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는 처음엔 힘들어 하는 것 같더니 차츰 적응이 되는지 점차 활기를 찾아갔다. 화장도 짙어지고 옷도 자주 사 입었다. 그러더니 일이 많아서 그렇다며 점점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은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서 그런 사실을 듣고는 그저 일이 많아서 그러려니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가 엄마가 어떤 남자와 여관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아버지에게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다그쳤고 엄마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누나, 따지면 그놈도 아내가 공장에 안 나왔더라면 유혹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 변명할 거 아냐? 하긴 그놈 말도 맞는 말이긴 해. 그렇다면 잘못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러면서 아버지는 할머니의 말대로 가난이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며 훌쩍였다. 가난하지만 않았어도 엄마가 보세공장에 나가는 일이 없었을 거고, 그랬더라면 공장의 작업반장과 눈이 맞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랬더라면 이혼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언니와 내가 이 모양이 되는 일도 없었을 거라는 것이었다.

    “가난이 원수로구나.”

    집안이 엉망으로 헝클어졌을 때 부산에 내려온 할머니는 그렇게 한탄하면서 울었다.

    “못난 것, 지금이사 다른 사나가 좋아 갔지만, 늙어지면 후회할 끼구마.”

    그날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배신한 여자임에도 엄마를 크게 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마지막 고비를 못 참고 나가다니,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됐을 낀데” 하면서 가정을 박차고 나간 엄마가 불쌍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시선 뒤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 내리는 혜안이 들어 있을 것이겠지만, 무엇이 마지막 고비고 무엇을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됐다는 말인지,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표면적으로는 마지막 고비가 가난한 생활을 지칭하며 그것이 머잖아 끝나 행복을 누리게 될텐데 그 시간을 더 못 참아 가정을 버렸다는 의미 같았지만,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는 우리 가정이 그 빚을 벗어던지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았고 우리가 자라 가난을 청산하기에는 긴 시간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다른 의미이거나 더 깊은 뜻이 들어 있는 듯이 보였다.

    “누나, 그럼 나는 왜 가난한 걸까? 물론 못 배운 탓이겠지. 그러나 따지면 그것만이 꼭 원인이었던 건 아닌 거 같아. 나는 열심히 일했어. 그런데도 언제나 그만큼의 대가는 주어지지 않았어.”

    그러면서 아버지는 그 한 예를 들었다. 아버지가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 중고차이긴 하지만 어렵게 트럭을 마련하여 차주가 되었을 때였다. 차주가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만 실수로 사고를 일으켜 차가 반파되고 적재한 물건도 못쓰게 된 일이 발생했다. 그때 아버지가 지입하고 있는 회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돈이 없어 보험도 반밖에 들지 않은 상태여서 적재한 물건 값과 파손된 차의 손해를 고스란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회사가 한 일이란 그저 아버지에게서 일정한 돈을 받고 아버지가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회사 이름만 빌려준 것뿐이었다.

    “도대체 그런 회사가 왜 필요한 거야? 자기 차로 자기가 영업할 수 있도록 해주면 왜 안되는 거냐구? 그러면 지입료를 낼 필요도 없어지잖아. 그랬더라면 그 돈으로 못 든 보험에도 들 수 있었을 거고, 그랬더라면 빚더미에 올라앉는 일도 없었을 거잖아. 아무튼 누나, 나는 왜 내가 가난을 못 벗어나는지 모르겠어. 누나도 알다시피 내가 그렇게 헤프게 쓰는 놈도 아니잖아?”

    대구는 이미 저만치 뒤로 지나갔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언니를 찾아갔던 그날의 건물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기분일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여 창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날아들어와 얼굴을 할켰다. 마치 가시덤불 속으로 뛰어든 기분이었다.

    돼지를 실은 트럭이 속도를 냈다. 앞차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면서 회색 바닥의 면적 또한 넓어졌다. 아버지의 차를 타면 자주 그랬듯이 최면에 걸린 듯 몽롱한 상태가 엄습해왔다.

    문득 아버지가 타조 신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머릿속에도 타조들의 머리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칩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죽을 때까지 마이크로칩을 머리에 간직하고 살 수밖에 없는 타조처럼 아버지도 영원히 이런 가난의 굴레에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날개를 갖고 있으면서도 날 수 없는 타조처럼 잘살아야겠다는 의욕은 있지만 영원히 잘살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울타리에 갇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없는 타조처럼 남의 차 운전수로, 행여 나중에 다시 아버지의 차를 가진다 해도 지입 회사라는 굴레 안에서만 차를 몰다가 가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은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나는 마치 그날의 타조를 지금 내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타조들은 울타리에 갇혀 있다. 타조들을 풀어주면 나도 현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타조들과 나 사이에는 얇은 철제 울타리가 막고 있다. 철제 울타리는 조립한 것이어서 스패너로 나사를 풀면 해체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내 손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고 있다 해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타조들에게 속삭인다. 자, 탈출할 수 있어. 날면 되는 거야. 날아봐. 어서. 왜 못 나는 거지? 너희들은 날개가 있지 않느냐? 자, 날개를 펄럭여봐. 힘차게. 어서. 그래서 그 울타리를 벗어나란 말이다. 그리고 저 광활한 하늘로 날아올라 대오를 지어 너희들이 오매불망 그리던 아프리카의 대초원으로 날아가란 말이다. 어서. 어서. 하지만 타조들은 그 커다란 눈으로 내가 내젓는 손을 말똥말똥 바라만 볼 뿐이다. 나는 비애를 느꼈다. 타조들에게 주문한 것이 고스란히 나 자신을 향해 주문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서울은 가까워오지만 나는 점점 탈출 의욕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급제동을 했다. 앞서 달리던 돼지 실은 트럭이 속도를 갑자기 줄였기 때문이었다. 돼지 실은 트럭 앞에서 달리던 차들이 멈춰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으로 앞쪽을 보니, 멈춰선 차들 앞쪽에 깃발을 쳐든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가로막은 채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그들 뒤쪽에는 방패로 앞을 가린 전경들이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으며, 시위대와 전경의 한가운데에는 흰꽃으로 장식한 상여를 멘 상두꾼들이 요령잡이의 선소리에 따라 가락을 뽑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상여를 앞세우고 고속도로를 따라 서울로 가려던 농민들이 전경대에 막혀 못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북망 산천, 어서 가세.”

    “워어어, 워어어, 어허, 넘차, 워어.”

    선소리를 먹이는 요령꾼의 말은 분명히 들려왔지만 상두꾼들의 뒷소리는 대충 그 정도의 소리로만 들려왔다.

    “어서 가게, 길 비키소.”

    “워어어, 워어어, 어허, 넘차, 워어.”

    구슬프게 뽑아대는 그들의 가락을 듣고 있자니, 아버지가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불쑥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의 맨 앞에서 요령을 흔들며 선소리를 먹였다고 했다. 얼마나 구슬프게 먹여대는지 상두꾼들마저 울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구슬픈 음성을 낼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농부로 살아오면서 삭신이 녹아내릴 정도로 고생한 할아버지 자신의 신세가 죽은 자의 고생스러웠던 삶과 허망함에 동화되어 서러웠을 테고, 그 보상을 해주리라 기대를 걸었던 아들은 초등학교만 마친 채 서울로 뺑소니를 쳐서, 어려운 시대의 조혼 풍습에 따라 스무 살에 아비가 된 자신을 그대로 답습하여, 결혼도 안한 상태로 떡 하니 딸을 낳아 집에다 팽개치고는 다시 달아나버림으로써, 마흔 초반에 할아버지가 된 자신의 신세가 또한 한탄스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아버지가 작은고모에게 신세 타령을 할 때 할아버지 얘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아버진 첫손주랍시고 윤희를 알뜰하게도 키워주셨어. 그렇게 실망을 준 자식이었는데도, 그 자식이 낳은 딸을 정성껏 키워주셨단 말야. 그런데 난 어땠어? 나는 윤희를 만나러 갔다가 윤희가 업고 있는 자식을 보고는 그냥 돌아오고 말았어. 누나, 내가 아버지한테 끼친 실망이나 윤희가 나에게 끼친 실망이 무슨 차이가 나겠어? 그런데도 난 그냥 돌아오고 말았어.”

    그 할아버지는 오십을 겨우 넘겼을 때 아파서 타계했다. 왠지 상두꾼들이 내는 소리가 서글프게 들려왔다.

    준태 아버지가 농민시위대에게로 가고 있었다. 그가 요령꾼에게 뭔가 한참 말하고 나자 시위대가 길을 트고 상여도 한쪽으로 벗어났다. 준태 아버지가 손을 들어 진행 신호를 보냈다. 선두 차량이 움직이고 돼지 실은 트럭도 움직였다. 아버지는 빼두었던 기어를 1단에 넣고 천천히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상여가 길을 터서인지 전경대도 한쪽 옆으로 벗어났다. 그 대신 길 옆에 서 있던 경찰차가 돼지 실은 트럭과 우리 트럭 사이로 끼어들었다.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차량들이 일제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돼지 실은 트럭이 내달리자 경찰차도 뒤따랐다. 아버지가 경적을 울렸다.

    거북이처럼 기듯하여 간신히 추풍령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무렵이었다.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어서 아버지는 갓길의 맨 앞쪽에다 주차시켰다. 아버지의 트럭을 뒤따라 다른 트럭들도 하나 둘 도로변에 늘어섰다.

    나는 연희와 동호에 뒤이어 차에서 내렸다. 아버지가 연희와 함께 우동을 파는 곳으로 걸어가는 사이에 동호가 함께 화장실에 다녀오자고 해서 생각도 없었지만 그곳까지 갔다. 동호가 남자화장실로 들어간 사이에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방금 도착한 승용차에서 한 가족이 내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남매로 보이는 가족이었다. 누나인 듯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이는 어른들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식당 안으로 사라졌음에도 그들이 사라진 문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한때 연희가 동호의 손을 잡고 엄마를 찾아 저녁 골목을 돌아다니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정부라는 놈과 싸우러 가”


    이혼한 다음 날부터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는 연희와 동호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엄마를 찾아 온 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두워지면 집으로 들어와 밥을 먹고는 쓰러져 잠들었다. 나는 동생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그 아이들이 일주일 정도 다녔을 때 언니가 더 이상 엄마를 찾아 돌아다니면 혼내주겠다고 해서 그만두었다.

    동호가 나왔다.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트럭기사들이 한 곳에 모여 우동을 먹고 있었다. 그들의 중간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이미 아버지가 사놓은 우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아저씨, 오늘 누구랑 싸우러 가는데요?”

    드디어 동호가 질문을 했다. 동호의 별명은 찰거머리였다. 한 번 질문을 시작하면 상대방 자신도 답을 몰라 대답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갔다.

    “정부라는 놈이야.” 하고 준태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뭔데요?”라는 질문에 “그게 뭐냐면….” 하면서 준태 아버지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듯했다. 준태 아버지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다. 고등학교만 나왔는데도 대학 나온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놈은 얼굴이 없는 놈이지. 하지만 수만 명으로 나눠져 있지”라고 말하면서 준태 아버지는 우동 그릇을 들어 김과 파와 몇 오라기의 우동이 둥둥 떠 있는 국물을 훌훌 들이마셨다. “그게 뭔 말인데요?” 하고 동호가 다시 물었다. “뭔 말이냐 하면, 정부란 나라 살림을 떠맡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인 기관을 말하는 건데, 좁게 보면 대통령과 여러 장관들과 그 밑에 많은 공무원들이 모여서 근무하는 행정부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고, 크게 보면 국회의원들이 있는 국회와 법관들이 있는 법원까지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지. 그러니까 실제로 정부라는 놈은 여러 사람들로 나눠져 있는 거야”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준태 아버지는 자신의 설명을 동호가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호가 눈을 말똥거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동안 준태 아버지는 “아무튼 오늘 우리가 싸울 대상은 모든 공무원들을 통틀어서 말할 때 쓰는 그 정부란다”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동호는 무슨 뜻인지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런데 왜 싸우는 건데요?” 하고 물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소수의 차량만으로도 영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지. 그러니까 동호 니가 트럭을 세 대만 갖고 있어도 동호 니 마음대로 짐을 실어나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지”라는 준태 아버지의 말에 동호가 “그럼 내 차 갖고 내 마음대로 짐을 못 실어날라요?”라고 물었다. “그럼, 적어도 다섯 대 이상은 돼야 영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그런데, 웬만한 부자 아니고는 그만한 차를 가질 수가 없잖니? 그래서 자기 차를 갖고 있어도 영업을 하자면 불법이지만 돈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회사에 돈을 얼마씩 주어가며 이름을 걸어야 하지. 이런 걸 지입차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트럭들이 그렇단다”라는 준태 아버지의 대답에 다시 동호가 “그럼 우리 아버지도 그런 거예요?”라고 물었다. 준태 아버지는 탁자 앞에 놓여 있는 이쑤시개통을 잡아당겨 뾰족한 이쑤시개 한 개를 뽑아 이를 쑤시면서 “물론이지. 너네 아버지의 차주도 어쩔 수 없이 회사에다 돈을 줘가며 영업을 하고 있지”라고 대답했다. “우리 아빠의 차주라니요?” 하고 동호가 물었다. “너네 아빠의 차주인을 말하는 거지”라고 대답하면서 준태 아버지가 웃었다. 동호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차 주인은 우리 아빠잖아요?” 하고 물었다. 준태 아버지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사실 동호는 여태까지 아버지가 모는 트럭이 아버지의 차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아버지를 운전수로 고용한 차주의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나는 그런 동호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남동생의 손을 잡고 가던 여자아이의 가족이 바로 뒤편에서 김밥과 우동을 먹고 있었다.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는 그들을 보자 온 가족이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할머니집에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음식을 먹던 옛날이 그리워졌다. 그땐 엄마도 있었고 언니도 있었다. 여자아이의 엄마가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뽀얀 얼굴 위로 엄마의 얼굴이 겹쳐졌다.

    동호는 말 없이 우동을 먹고 있었다. 준태 아버지가 무엇이라고 대답해준 것일까? 얼른 눈치를 채고 자신이 한 말이 실수였다며 둘러댄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는 단지 차주에게 고용된 운전수일 뿐임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준 것일까?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동호는 지금도 무언가를 묻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묵묵히 무슨 생각에 깊이 빠져,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우물거리며 우동을 먹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였다.

    퍼뜩 오늘 아버지가 우리를 태우고 가는 것이 힘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차주의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더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버지는 트럭을 자신의 차나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차주가 나중에 아주 싼 값에 아버지에게 차를 넘겨줄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아버지는 다시 자기 차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차주에게 굽실대면서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아버지는 차주가 아님에도 시위에 나서고 거기에 우리까지 싣고 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말하자면 우리는 차주로 하여금 아버지가 아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을 주지하게 하여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 동원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농민들도 싸우러 가는 거예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우동을 먹고 있던 동호가 다시 물었다.

    “농민들은 농민들대로 불만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생각해봐라, 배추 한 포기에 생산가도 못 되는 70원씩에 팔았는데, 그게 서울에서는 700~800원씩에 팔리고 있다면 넌 기분이 어떻겠냐? 배추농사를 지은 사람은 망하고 배추를 사먹는 사람은 비싸게 사먹는 반면에 한쪽에선 그 배추로 30억씩 남기는 사회라면 그게 제대로 된 사회겠냐? 그러니까 한마디로 힘 있고 돈 있는 놈들 위주로 나라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지.”

    “그게 뭔 말인데요?”

    “뭔 말이라니? 말 그대로야. 힘 있고 돈 있는 놈들 입맛에 맞게 나라가 돌아가는 거라구. 험 그러니까, 그놈들이 부를 독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그렇게 축적한 부로 도덕적인 비난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문화를 바꾸어간다는 말이지.”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음, 내가 막 흥분해서 그랬는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옳지, 너 왕따라는 거 알지? 그게 사실은 나쁜 건데, 그게 나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도록 너희 반의 힘 있는 아이들이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는 말이나 비슷한 거야.”

    그때였다. 밖에서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소리였다. 준태 아버지가 하던 말을 중단하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도 다른 트럭운전수들도 모두 밖으로 나갔다. 휴게소의 사람들이 모두 고속도로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거북이 걸음이나마 차들이 움직였는데, 이제는 차들이 제자리에 멈춰서 있었고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100여 명 정도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막고 주먹 쥔 한쪽 손을 쳐들면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준태 아버지의 뒤를 따라 트럭운전수들이 우르르 뛰어갔다. 나도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의 뒤를 따라 뛰었다.

    고속도로는 머리에 띠를 두른 사람들에 의해 점거되어 있었다. 이어서 꽹과리와 징을 든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농악기를 쳐대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이 뉴스에 나오던 농민들 중 일부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길 좀 터주시오. 서울에 바쁜 일이 있단 말이오.”

    승용차에서 내린 50대 초반의 남자가 시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가세하여 시위대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들은 체 만 체였다. 화가 난 청년 한 명이 시위대 쪽으로 뛰어가 몸으로 부딪쳤지만 오히려 성난 시위대의 청년들에게 멱살을 쥐어잡혀 버둥거리다가 바닥에 메다꽂혔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사람들이 시위대를 향해 삿대질을 해가며 욕을 해댔다.

    “빌어처먹을 놈들, 지들이 농사를 잘못 지어놓고도 어따가 물어내라고 하는 거야.”

    귀티가 흐르는 뚱뚱한 5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투덜거렸다. 동호가 그 아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여 나도 어느 쪽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뜻을 전했다.

    “여러분 저는 부산지역 트럭노조 위원장입니다.”

    준태 아버지가 시위대 앞으로 나가면서 소리쳤다.

    “우리도 지금 여러분들처럼 시위를 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중입니다. 그러니 우리 트럭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셨으면 합니다.”

    준태 아버지가 말을 마쳤을 때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아버지가 트럭에 올라탔다. 동호가 빨리 타자고 말해 나는 연희의 뒤를 따라 트럭 위로 올라갔다.

    과연 시위대들이 길을 터줄까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트럭이 천천히 앞으로 나가자 시위대들이 좌우로 길을 터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버지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통과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를 지나 조금 더 가자 하행선을 타고 경찰차와 전경을 가득 실은 버스가 내려오고 있었다.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다시 앞에 나타났다. 동호가 손을 흔들자 돼지들과 함께 타고 있는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계기판이 50km를 회복했으나 얼마 못 가 30km로 떨어졌다. 앞 차들의 속도가 자꾸만 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경적을 울렸고 뒤쪽에서 경적소리가 이어졌다.

    “작은누나, 지금 미선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동호가 물었다. 미선이라면 이웃집에 사는 동호의 여자친구였다. 동호는 왜 갑자기 미선이 생각을 한 것일까?

    “글쎄, 일요일이니까, 다른 애들이랑 놀겠지.”

    그러나 동호는 내 대답을 듣고 싶어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번 물어본 듯했다. 그의 눈이 몽롱하게 허공을 향해 있었다.

    나는 좌석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지난해 가을, 그 토요일 저녁, 나는 동호가 갔을 법한 곳을 한참 생각하다가 운동장으로 갔다. 동호는 가끔씩 같은 반의 여자 짝인 미선이와 학교운동장에서 놀곤 했다. 추측대로 동호는 미선이와 운동장 한쪽 구석에 있는 놀이터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 쪽으로 걸어갔다. 서로 머리를 맞닿을 듯이 쪼그리고 앉아 다정하게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에 좋았다. 나는 운동장 한 켠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나무 뒤편에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거북이집을 만들고 있었다.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는데, 정문 쪽에서 미선이 엄마가 나타났다. 미선이 엄마는 그들 쪽으로 다가가 앙칼진 목소리로 미선이를 불렀다. 미선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뭐랬어, 저 애하고 놀지 말라 그랬잖아. 미선이 엄마의 가시 돋친 목소리가 길게 나무그림자가 지는 운동장 가득 울려퍼졌다. 그 뒷말이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길다란 학교 건물에 부딪쳐 되돌아왔다. 저 애하고 놀지 말라 그랬잖아. 그 말이 내 귓속으로 조그만 벌새처럼 날아들어왔다. 벌새는 내 안에 갇혀, 날개를 파닥이며, 끊임없이 맴돌았다. 미선이 엄마와 미선은 정문을 통해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플라타너스나무 둥치 뒤에 꼭꼭 숨어 있었다. 내가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동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저물어가는 운동장의 한쪽 모퉁이에서 동호는 조그맣게 손을 말아 눈가를 훔치다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 내려다보았다. 어깨가 축 처진 동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동호가 들여다보던 것을 주머니에 넣고 운동장을 벗어나 사라졌어도 나는 나무 둥치에 그대로 붙어서서 떨었다.

    “와, 헬리콥터다!”

    동호가 위쪽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고는 소리쳤다.

    “어디, 나도 좀 봐.”

    연희가 동호 쪽으로 바싹 다가갔다. 고속도로 왼쪽 상공에서 헬기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정말이네.”

    “작은누나, 저거 경찰 헬기야?”

    “글쎄. 내 생각엔 방송국 헬기 같애. 왜 너도 봤잖아, 추석 때나 그럴 때면 방송국 헬기가 떠서 취재하고 하는 거.”

    내가 한 말이 맞는지, 가까이 날아온 헬기는 아버지의 트럭 위쪽에서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엉뚱하게도 나는 타조가 날 수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여전히 타조가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희야, 저 헬기, 타조 같지 않어?”

    나는 연희의 알 수 없는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연희는 어떻게 생각할까?

    “응, 그런 것도 같애. 엄마 타조.”

    “왜, 엄마 타조야?”

    동호가 물었다.

    “우리 앞에서 날고 있으니까. 그리고 난 아빠 트럭과 뒤따르는 다른 차들은 새끼 타조들처럼 생각돼. 지금 우리는 하늘을 날고 있는 거야.”

    연희의 생각은 오로지 엄마와 결부되어 있었다. 동호가 트럭 행렬을 코끼리 떼와 비슷하다고 했을 때도 연희는 엄마와 연결시켰었다.

    “전에 언니랑 같이 본 영화 있잖아. 아름다운 비행. 거기서처럼 우리는 따뜻한 곳을 향해 가는 거야.”

    연희의 상상력에 의해 트럭 행렬은 나에게도 타조 떼로 변모했다. 그리고 다시 을숙도의 새 떼로 바뀌었다. 타조 떼는 덩치만 컸지 머릿속에 마이크로칩을 내장당해 언제든 잡혀서 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을숙도의 힘 없는 조그만 새 떼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것은 트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크기는 승용차의 서너 배나 되지만 사실상 지입차이기 때문에 타조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힘 없는 조그만 물고기들은 서로 떼를 지어 한 마리의 커다란 물고기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크고 힘센 물고기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고 한다. 그것은 되새 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늘 가득 새까맣게 무리를 지어 커다란 새가 날아다니는 듯이 보이게 하여 독수리나 매 같은 맹금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알게 된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며 나는 뒷창을 통해 보이는 트럭들도 그렇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떼를 지어 간다고 생각했다. 힘이 없고 약하기에, 저렇듯 떼를 지어, 고속도로에 무슨 커다란 괴물이 느릿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멀리서 본다면 그렇게 보일 법도 했다. 더구나 50여 대의 트럭들이 연달아가며 경적을 울려댈 때는 이상한 괴물이 질러대는 괴성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는 타조 떼였다. 이렇게 우리가 한데 모여 하늘을 날아가는 것은, 길이가 3000리나 되며 한 번 날개를 치면 9만리를 날아간다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붕새라는 새처럼 거대한 새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되었다.

    “아, 지금 뭐하는 겁니까?”

    갑자기 앞쪽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차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나는 누구에게 하는 소린가 싶어 두리번거리다 돼지를 싣고 가는 트럭임을 알았다. 돼지 무리에 섞여 있던 남자가 막 뒤판걸쇠를 벗겨내는 중이었다.

    “어이, 정지! 정지!”

    경찰차에서 당황하여 다급하게 내지르는 목소리가 났지만 돼지를 실은 트럭의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뒤판을 벗겨내어 밑으로 늘어지게 한 사내는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천천히 돼지들을 밀어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에 바싹 기댔다.

    돼지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바닥 위로 떨어진 돼지들은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드럼통처럼 나뒹굴었다. 경찰차가 급정거를 했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 역시 급제동을 걸었다. 돼지들은 점차 멀어져가는 트럭에서 천천히 한 마리씩 떨어졌다. 문득 나는 돼지가 타조처럼 날고 싶어서 뛰어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개 달린 돼지를 생각하자 쿡쿡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채 버둥거리면서 죽어라고 비명을 질러대는 고속도로 위의 돼지들을 보는 순간 웃음기가 싹 달아나버렸다.

    경찰관 두 명이 차에서 내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돼지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부 돼지들은 죽어서 넘어져 있고, 일부 돼지들은 정신이 없는지 중앙분리대 쪽에 주저앉아 꿀꿀거리고 있었다. 또 일부 돼지들은 비틀거리면서 경찰차 앞쪽의 고속도로 위를 돌아다녔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과 경찰관들이 돼지를 도로 옆으로 몰아내는 동안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아버지가 다시 트럭을 출발시킨 것은 한 시간쯤 지나서였다.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아버지가 속도를 높여 50km에 고정시켰다.

    “2607호! 2607호! 속도를 내세요!”

    앞서 달리는 순찰차에서 명령조의 말이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헛참,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맨날 속도가 빠르다고 딱지 끊던 놈들이 오늘은 웬일로 속도를 내라니.”

    아버지가 콧방귀를 뀌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2607호! 2607호!”

    “망할 자식들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기고. 우린 지금 규정 속도를 지키는 거란 말이다.”

    트럭들은 고속도로의 주행선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서 달렸다. 그래서 서울로 가는 상행선 고속도로는 주행선으로 달리는 길다란 트럭 행렬과 추월선으로 달리는 일반차들의 행렬로 나누어졌다.

    차의 계기판은 5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이 모두와 약속해놓은 속도라면서 더 이상 올리지 않고 달렸다. 그 바람에 추월선으로 달리는 다른 차들도 길게 밀려서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저 멀리 트럭 행렬이 끝나는 뒤쪽에도 일반 차량들이 뒤따르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아버지의 트럭 속도에 맞춰 달려야 했다. 그러다보니 꼬리가 자꾸만 길게 늘어났다. 반면에 중앙분리대 건너편의 부산 쪽으로 가는 차들은 쌩쌩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전선줄이 우는 듯한 마찰음이 일어나 길게 파장을 그리며 차 안으로 날아들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받더니 운전대 옆에 있는 라디오를 틀었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20여 개 농민단체들과 농민들이 지금 전국 곳곳에서 농가부채 경감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촌 회생 촉구 100만 궐기대회를 갖기 위해 차량에 나눠타고 고속도로와 국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농민들은 경부, 중부, 중앙, 호남, 88고속도로 10여 곳을 점거해 시위를 벌이고 있어 최악의 고속도로 교통대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부산지역 트럭노조도 이에 편승하여 50여 대의 트럭을 몰고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남자 아나운서가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겠다며 지역 아나운서를 불러냈다. 그러나 아버지는 더 들어보지도 않고 꺼버렸다.

    뒷자리가 조용해 돌아다보니 내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연희는 언제나 주머니에 넣어 갖고 다니는 수첩에다 뭔가를 적고 있고, 동호는 왼쪽 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연희가 적은 것을 나에게 불쑥 내밀었다. 아마도 시나 산문일 것이 분명했다. 중학교 3학년인 연희는 자기가 쓴 시나 산문을 언제나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예상대로였다. 수첩에는 연희가 방금 쓴 시인지 산문인지 모를 글이 씌어 있었다.



    아버지가 욕설을 퍼부으며 투덜거렸다. 오늘따라 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보였다. 돼지들이 바닥에 뒹굴 때도 아버지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었다. 아무리 순찰차에서 소리를 쳐대도 계기판의 속도는 올라가지 않았다. 순찰차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듯 아버지가 라디오를 틀었다.

    “지금 전국의 고속도로는 부채 경감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시위와 트럭 노조의 시위로 곳곳에서 차량통행이 중단되는 국가 대동맥 마비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오전 11시쯤 경남 거창에서는 농민회원 200여 명이 차량 100여 대를 몰고 88고속도로 가조 인터체인지 근처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88고속도로 상,하행선이 한때 마비됐습니다. 경북 대구 근교의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도로에서는 12시쯤부터 농민 100여 명이 각종 깃발을 내건 채 상여 시위를 벌이며 차량 통행을 막았습니다. 또 상주지역 농민 300여 명도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 부근 상,하행선을 점거했습니다. 농민들은 트럭 100여 대를 타고 고속도로에 진입하려 했으나 경찰이 막아 무산되자 차량을 인근 4번 국도변에 세워두고 주변 산을 넘어 추풍령 휴게소로 집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 일대 차량 통행이 2시간 넘게 중단됐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산 근교의 경부고속도로상에서는 가격이 폭락한 돼지를 트럭에 싣고 가다가 도로에 버리기도 했습니다. 호남지역에서는 농민 1만여 명이 19개 시, 궐기대회를 가졌습니다. 나주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2km쯤 떨어진 나주시청으로 몰려가 청사 정문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뚫고 싣고 온 무, 배추, 배, 쌀가마 등 농작물을 시청 앞 광장에 내던졌으며, 남원시의 한 농민은 깨진 병으로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오후 2시쯤에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호남고속도로 상행선에서 궐기대회를 마치고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한 일부 농민들이 화물트럭을 이용하여 차량 통행을 막아 상행선 2km 정도가 극심한 혼잡을 빚었으며, 고속도로에 진입한 일부 농민들은 차량 타이어 10여 개를 불태우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 시간 현재 서울로 향하는 부산지역 트럭노조는 경부고속도로상에서 시속 10km에서 50km 정도로 서행하여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습니다.”



    7


    언니처럼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잠들었던 다음날 나는 친구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절망을 혼자서 짊어져서는 안되었다. 그것은 아무런 잘못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짊어진 납덩이였다. 그 잘못은 분명 세상 저 어딘가에 있는 것이지 나에게는 먼지만큼의 잘못도 없었다. 이 불행이 벗어던질 수 없는 것이라면 세상과 공유해야 했다. 그래야 그 무게가 감소될 것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세상의 거미줄에다 나의 불행을 올려놓았다.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이혼했다. 고3인 언니는 술을 먹고 쓰러진 다음날부터 우유배달을 한다. 동생들은 손을 잡고 엄마를 찾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쓰러져 잠이 든다. 나도 어젯밤에는 술을 마셨다. 나는 아주 상세히 다 털어놓았다. 실컷 다 뜯어먹어라. 뼈까지 뜯어먹는다면 더욱 더 좋다. 할머니의 말대로 영혼이 있는 것이라면 나의 영혼은 그만큼 가벼워질지니.

    세상의 거미줄에는 친구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동정 어린 눈물방울이 시도 때도 없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나는 그들의 눈물을 비웃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몇분 사이에 말라버리는 그 값싼 눈물이 아니라 나의 불행과 맞먹는 그대들의 불행이다. 나의 불행을 뜯어먹고 그대들도 불행해지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행복했을 때 그대들과 평등했던 것처럼 그대들의 불행으로 나는 그대들과 평등해질 수 있다. 세상의 여자들아, 모두모두 바람을 피워라. 세상의 남자들아 계속계속 바람을 피워 여자들이 바람을 피우도록 부추겨라. 그래서 모두모두 이혼을 하여, 친구들과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게 하여라. 그리하여 더 이상 나를 위하여 흘릴 눈물이 없도록 하여라.

    그날 이후부터 더 이상 학교에 가고 싶지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갈라져 남처럼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엄마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인간은 더 이상 나에게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 짐승처럼 하찮은 존재처럼 느껴졌고, 뭔가 가치 있는 것이라 느껴지던 배움도 불필요한 시간 낭비로 생각되었다. 그저 배고프면 먹고 잠이 오면 자고 그렇게 살면 되지, 별로 짐승이나 다를 바 없으면서도 쓸데없이 고상한 척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역겨워졌다. 나는 탈출하고 싶었다, 나를 가두고 있는 찌들어빠진 환경으로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지녀온 사고방식으로부터.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한 행동이 필요했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가출했다. 미리 가출한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주유소에서 일하며 근처에 방을 얻어 합숙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떻게 알았는지 불쑥 아버지가 찾아왔다. 큰고모의 일기장 내용처럼 아버지가 홍길동이란 별명을 가졌을 만큼 온갖 데를 다 다녀본 경험이 있어서 귀신같이 알아낸 것이라 생각했었으나 알고보니 작은고모가 내 친구들을 수소문한 끝에 알아내어 아버지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탈출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오늘 아침에 다시 가출하려고 했다. 작은고모가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라며 돈 준 것을 계기로 삼았다. 이번에는 친구들도 모르는 서울로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러면 두번 다시 아버지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었다. 하필이면 아버지가 새벽에 잠을 깨워 트럭에 태우는 바람에 무산되는 줄 알았던 탈출은 여전히 그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었다. 아버지도 젊었을 때는 홍길동이었다. 다시 아버지처럼 도망치리라.

    그러나 두려웠다. 이제는 홍길동이 아닌 아버지의 현실이 탈출 욕구를 짓누르고 있었다. 만약 아버지처럼 돌아다니다 자식을 낳게 된다면 나 또한 매일 것이 아닌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나를 가장 머뭇거리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집안에서 계속 머무를 수도 없었다. 이젠 고등학교도 중퇴한 상황이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유가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낀 데서 온 것이므로 검정고시를 할 마음도 없었다. 언니가 보고 싶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언니가 있다면 무언가 조언을 해줄 것이었다.

    가출하기 전, 때로 나는 아버지의 지치고 초라한 모습을 볼 때면 언니와 나 그리고 동생들 모두 손을 잡고 연못으로 풍덩 뛰어들어 아버지에게 홍길동의 신분을 회복시켜주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다. 언젠가 한번 언니에게 그런 말을 했다가 “이 병신아, 그러면 엉가이 아빠가 자유로워지실 줄 아나? 그건 오히려 가슴에 쇠못을 박아 바깥 출입조차도 못하시게 만드는 거야, 알아?”라는 면박을 받았다.

    그런 언니답게 언니는 다른 방법으로 아버지를 자유롭게 해주려고 애썼다. 한때 언니가 우유배달을 한 것이 바로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언니는 새벽에 우유배달을 나갔다. 5시에 맞춰둔 벨소리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가 시내버스를 타고 아파트촌 입구에서 내린다. 그곳에 있는 우유보급소에서 우유를 지급받아 손수레에 싣고는 아파트 단지 내의 계약자들에게 돌린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교복으로 갈아입고 학교로 간다. 방학 때는 배달 구역을 한 군데 더 맡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아버지가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을까? 하긴 어느 정도 도움은 되었겠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던 언니는 왜 집을 나갔을까? 어쩌면 언니가 그렇게 그악스레 행동했던 이유는 엄마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엄마가 없어도 잘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리라는, 그리하여 나 없이 어디 잘 되나 보자고 벼르며 지켜볼 엄마에게, 잘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엄마가 자신의 존재를 하찮은 것으로 느끼게 만들어, 가정을 파탄낸 데 대한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숱하게 보아온 결손가정의 비참한 구렁 속으로 빠지지 않으려는 앙버팀이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이후부터 언니는 텔레비전의 그 어떤 연속극도 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엄마가 연속극을 보다가 물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저 엄마가 보던 연속극이라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엄마에 대한 언니의 증오심은 생각보다 깊었다.

    작은고모의 주선으로 만났던 엄마의 거무튀튀한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작은고모를 따라 부산진역 앞에 있는 어느 다방에 들어갔을 때 엄마는 구석진 곳에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눈 밑에는 파리똥처럼 새까맣게 기미가 앉아 있었고, 통통하던 볼은 광대뼈가 나올 정도로 꺼칠하게 말라 있었다. 처음에는 엄마가 아닌 줄로 알았다.

    “주희야, 많이 컸구나.”

    내가 자리에 앉자 엄마가 예전의 그 힘 있는 목소리가 아닌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어떤 말도 건네고 싶지 않았다. 왜 엄마가 식구들을 버리고 나갔는지, 왜 다른 남자와 살아야 하는지, 엄마의 그 어떤 대답으로도 엄마를 용서해주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근처에 사는 작은고모가 집에 들렀다가 시골 할머니와 통화를 했다. 그때 작은고모는 엄마가 처음 바람이 났던 작업반장에게 차이고 지금은 동두천 어딘가에서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는 소리를 했다. 그날의 충격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엄마가 너를 제일 보고 싶어한다면서 만나보겠느냐고 작은고모가 물었을 때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만나서 그 이유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만나고 나자 미움이 북받쳐 올라와 그 말은 가슴속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결국 나는 엄마가 이것저것 물었지만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고개만 숙인 채 앉아 있다가 나왔다.

    묵묵히 앞쪽만 응시하며 운전을 하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마치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는 듯했다. 만약 그것이 분노 때문이라면 나는 그 대상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아버지에게 엄마는 첫사랑이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분노는 엄마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엄마가 아니라 언니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나를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고등학교를 퇴학하여 초등학교 졸업장뿐인 아버지의 이력이나 비슷한 처지가 됨으로써 아버지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아버지의 소년시절의 모습을 상기시켜주는 존재이므로. 내가 아버지의 전철을 밟은 것은 아버지가 동호에게 가졌던 꿈을, 동호의 별다른 천재성을 확인하지 못하면서 나에게로 기운, 변호사가 되어 지난 세월의 억울함과 못 배운 한을 한방에 날려주었으면 하는 그 기대를 거꾸로 한방에 날려보낸 것이었다, 아주 오래 전 아버지가 집에서 도망쳐 서울로 감으로써 할아버지의 기대에 역행하는 방법으로 세상과 직면하였듯이.

    나는 아버지가 지금 어떤 심정으로 나와 언니와 동생들을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자는 새끼들을 낭떠러지 위로 데려가 굴린 다음, 제 힘으로 기어올라오는 놈만 기른다고 했다. 아버지도 사자처럼 나와 언니는 안 낳은 자식으로 생각하는 걸까? 언젠가 아버지가 술에 취해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때 아버지는 자식 둘은 실패했고 나머지 둘밖에 희망을 걸 데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앞창에 하얀 솜털 같은 것들이 날아와 부딪치기 시작했다. 눈이었다. 내가 갈망했던 눈.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의 저녁 한때가 차창 밖을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온 가족이 진해에 놀러갔을 때의 그 저녁, 그때 엄마는 어머나, 벚꽃이 눈처럼 곱네, 하면서 누구보다도 좋아했었다. 나는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을 누구에겐가 터뜨리고 싶었다.

    “아빠, 핸드폰 잠깐만 쓸게요.”

    나는 핸드폰을 열고 결별한 남자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플래시는 섬광처럼 번쩍 하는 순간에 무엇이든 암기해버린다고 해서 사람들이 붙여준 나의 별명이었다.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을 때 나는 그것이 내가 살고 싶은 빛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스스로 규정하고 그 별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남자친구와의 결별을 선언할 때 함께 내던져버린 것이었다.

    “동호야, 눈이야. 저것 좀 봐.”

    이제야 알아차린 듯 연희가, 늘 그렇듯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 그 조용한 어투로 말했다.

    “어, 정말이네.”

    눈발이 점점 짙어졌다.

    “아이, 괜히 빵냄새가 맡고 싶다.”

    동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를 일이었다, 왜 눈을 보고 빵냄새를 맡고 싶은지. 빵냄새는 동호에게 똥냄새로 각인되어 있다. 언젠가 이웃집 아이가 싼 기저귀의 똥에서 나는 냄새를 일러 동호는 빵냄새와 너무나 똑 같다고 했다.

    톨게이트가 보였다. 아, 저기만 통과하면 서울이다. 꺼져가던, 서울에 가면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기지개를 켰다. 그러나 그 생각은 쏟아지는 눈발에 자꾸만 묻혀갔다.

    톨게이트 앞에 전경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가 아버지의 트럭을 막았다. 아버지가 차를 정지시키고 핸드폰을 꺼내 준태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했다. 준태 아버지와 트럭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아버지도 차에서 내려 트럭기사들을 따라 전경들 앞으로 나갔다. 준태 아버지가 뭐라고 소리치자 트럭기사들이 전경들을 향해 내달았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성난 황소처럼 전경들의 방패를 밀어붙였다.

    뒤쪽에서 산발적으로 경적소리가 울려퍼졌다. 트럭 행렬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 뒤쪽의 길다랗게 늘어선 다른 승용차들이 울리는 소리였다. 그것은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트럭들에 대한 시위이자 빨리 트럭기사들을 조치하여 길을 소통시키라는, 경찰을 향한 재촉이기도 했다. 그런 나의 추측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뒤쪽의 승용차에서 내린 듯한 50대의 남자가 전투경찰 쪽을 향해 가더니 지휘자인 듯이 보이는 경찰을 향해 항의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항의라기보다는 명령처럼 보였다.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머릿기름을 바른 그 남자는 손가락질을 해가며 뭐라고 호통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지휘자로 보이는 경찰은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그 사이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뒤쪽에서 걸어와 가세했다. 반소매 차림의 청년, 검은 선글라스를 쓴 여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 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 부티가 철철 넘치는 아저씨와 아줌마.

    내가 그들을 다 훑어보기도 전에 연신 허리를 굽히며 쩔쩔매던 경찰이 메가폰을 입에 대고 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단단한 장벽처럼 버티고 서 있던 전투경찰들이 돌연 진압봉을 쳐들었다. 아버지는 전투경찰들의 벽을 뚫고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나는 전투경찰들이 진압봉으로 아버지를 후려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인지 내 눈에는 전투경찰의 진압봉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압봉들은 독자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무슨 생물체처럼 꿈틀거렸다. 나는 겁이 나서 아버지의 넓은 등짝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버지 등에 업혀 있던 동호가 오줌을 쌌던 과거가 떠올랐다. 오줌으로 등이 젖었음에도 마냥 좋아서 허허 웃던 아버지의 모습이 흐릿해질 무렵 전투경찰의 길다란 진압봉 하나가 아버지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순간 힘겹게 버티기를 하던 아버지의 다리가 풀썩 꺾이며 아버지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또다른 진압봉 하나가 아버지의 등짝을 후려쳤다. 아버지의 허리와 고개가 뒤로 꺾이며 아버지의 두팔이 만세를 부르듯 눈내리는 허공을 향해 쳐들려졌다.

    나에게는 그 팔이 무슨 벌레의 더듬이처럼 보였다. 무엇을 찾기라도 하듯 두팔은 허공에서 부르르 떨며 허우적거렸다. 이어서 세번째의 진압봉이 아버지의 어깨 위로 내려쳐졌다. 뭔가를 찾는 더듬이처럼 허공을 휘젖던 아버지의 두 팔이 진압봉에 맞은 한쪽 어깨 위로 떨어졌다. 이 모든 장면이 나에게는 슬로비디오의 장면들처럼 지나갔다.

    “아빠!”

    마침내 동호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어서 연희도 울기 시작했다.

    “야, 이놈들아!”

    갑자기 아버지 옆쪽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나왔다. 준태 아버지였다. 건장한 체구에 검게 그을린 준태 아버지는 전경의 진압봉을 맞잡아 쥐고 악을 쓰고 있었다.

    “야이, 썩을 놈들아! 왜 내 차 갖고 내 맘대로 영업을 못하게 하는 거냐! 있는 놈들만 사람이고 우린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이렇게 인간 차별하는 게 무슨 민주주의냐!”

    준태 아버지가 소리칠 때마다 구릿빛 목에 불뚝불뚝 굵은 힘줄이 섰다. 준태 아버지가 다시 뭐라고 소리치려 할 때 두 명의 다른 전경들이 양쪽에서 각각 준태 아버지의 어깨와 다리를 진압봉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던 준태 아버지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조금 전에 지나간 아버지의 모습 같아 나는 얼른 아버지 쪽을 보았다.

    아버지는 어깨를 감싸쥐고 주저앉아 있었다. 곧이어 전투경찰 서너 명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양쪽에서 한쪽 팔씩을 결박하고는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고꾸라져서 다시는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아버지가 거칠게 몸부림쳤다.

    “놔, 이거!”

    전투경찰 한 명이 주먹으로 아버지의 등짝을 내갈겼다. 여러 명의 전투경찰들이 에워싼 가운데 내려친 일격이어서 언뜻 봐서는 그냥 아버지를 떠다미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집중하고 있는 나에게는 몰래 내려치는 장면이 확대경을 통해 들여다보듯 선명하게 잡혔다. 몸을 비틀며 신음소리를 뱉어내는 아버지의 얼굴이 몹시도 일그러져 있었다.

    “야이, 망할 자식아! 넌 뭐가 잘 났어? 왜 용서를 못해?”

    아버지가 돌연 허공을 향해 황소처럼 울부짖었다. 아버지 특유의 우렁찬 목청이 너풀너풀 눈을 뿌리는 하늘 속으로 울려퍼졌다. 아버지의 시선이 하늘을 향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그것은 전투경찰들에게 소리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자기에게 퍼붓는 것으로 알았던지, 아버지를 결박하고 있던 전경 하나가 구둣발로 아버지의 앞정강이를 들이깠다. 목에 힘줄을 세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아버지가 풀석 주저앉았다. 이제 아버지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전경들이 아버지를 일으켜 세웠다.

    어쩔 수 없이 아버지는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11월 하순의 하얀 눈발 아래서, 갑각류의 딱딱한 외피처럼 투박해 보이는 검은 헬멧을 쓴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운전대를 잡았을 때는 그렇게도 늠름해 보였던 아버지가, 초라한 모습으로 맥없이 끌려가고 있었다. 마치 푸른 배추벌레 한 마리가 개미 떼에게 이끌려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울던 동호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그토록 보여주지 않으려고 감추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엄마, 아빠 좀 구해줘.”

    동호가 목이 잠긴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동호의 조그만 손아귀에는 활짝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뜻밖이었다. 언젠가 언니가 모두 불태워버려 엄마의 사진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으로 믿어왔다. 연희가 엄마의 사진을 보더니 동호를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동호는 울다가 사진에 코를 들이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마치 빵냄새를 맡으려는 듯이, 아니 빵집 유리창의 매끈한 면을 느끼고 싶어하는 듯이.

    나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 쪽을 바라보았다.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 안으로, 끌려가는 아버지의 팔자걸음이 확대되어 들어왔다. 어머니와 이혼하고 들어오던 날의 그 술 취한 밤처럼 아버지는 몹시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응, 잘 썼어.”

    나는 언제나처럼 그 한 마디로 일축해버렸다. 연희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준 것이다. 사실 암기하는 거라면 몰라도 시나 산문을 읽고 평하는 데는 자신이 없었다. 연희의 언어 구사력은, 학교에 다녔더라면 고등학교 2학년인 나에 못지않았다. 하지만 그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복잡하게 얽어서 표현하는 데는 나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서울의 큰고모는 연희에게 시적인 재능이 있다고 했다.

    “동호야, 아까 너 뭐 가지러 집에 갔다왔어?”

    연희가 물었다.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연희지만 궁금증을 참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 한 번의 거절에 연희는 더 이상 조르지 않고 나를 본다. 그런 연희가 나에게는 가끔씩 그림 속의 소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언제나 조용하게 행동하고 큰소리를 내지 않아 집에 있어도 있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아서뿐만은 아니었다. 긴머리에 커다란 눈과 가녀린 몸매를 가진 만화 속의 소녀를 닮았다는 점만도 아니었다. 연희를 감싸고 있는 쓸쓸하고 서글픈 분위기도 그 한 원인이었다. 언제부터 연희에게서 그런 분위가 느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나는 연희가 엄마가 사라지기 전에는 지금보다 좀더 명랑하고 말수도 더 많았던 점에 비추어 그때부터가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그보다는 시골에 살고있는 할머니의 말처럼 연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서 비롯된 것이 더 큰 원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연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신혼여행 가던 날, 조용한 아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같이 따라가겠다며 울고불고 고집을 부려 결국은 함께 갔다온 유일한 자식이었다. 나는 뒤늦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식장에서 연희가 보여준 그 예상밖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연희는 언제나 있는 둥 마는 둥한, 여간해서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 소녀였다. 그런 연희의 갑작스런 행동을 두고 할머니는 사랑과 관심에 굶주려 있던 아이여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웬만큼 크고 난 후에야 올리는 결혼식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였고, 연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연희는 집안의 관심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였다.

    언니는 집안의 첫아이라는 이유로, 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뭐든지 번개같이 암기해버리는 똑똑한 아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막내인 동호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내아이라는 이유로 모두의 관심을 받았지만, 연희는 오히려 이번에는 사내겠지 하는 기대의 폭만큼 미움을 뒤집어쓴 아이였다. 연희가 가진 장기란 가난한 집에서는 오히려 불필요하기 짝이 없는 착한 천성뿐이었다. 큰고모는 시적 감수성이 있는 아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연희를 달리 생각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그런 말은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그림 속에서 날고 있는 나비를 볼 때 느껴지는 감정처럼, 그저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는 말일 뿐이었다.

    “막내누나, 저것 좀 봐. 차들이 엄청 길어.”

    동호는 주머니 속에 든 것을 연희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삭일 생각인지 말을 붙였다. 앞쪽을 바라보고 있던 연희가 몸을 돌려 동호가 얼굴을 붙이고 내다보는 후미창에 얼굴을 붙였다. 그때 아버지가 경적을 울렸고 뒤쪽의 차들이 연달아 경적을 울려댔다.

    “연희누나, 누난 저 차들이 뭐같이 보여?”

    경적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동호가 연희에게 물었다. 동호는 연희를 막내누나라고 부르다가 가끔씩 이름을 넣어 부르기도 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누나라고 부르다가도 때론 주희누나라고도 불렀다.

    “달팽이.”

    “달팽이? 왜?”

    “느리게 가니까.”

    “달팽이가 저렇게 큰가 뭐?”

    “그럼 왕거북.”

    “왕거북도 저만큼은 못 돼.”

    “그럼 넌?”

    “난 코끼리.”

    그 말에 연희가 뭔가를 생각하다가 코끼리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동호가 그 이유를 물었고 연희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코끼리는 제일 나이 많은 암놈이 길을 안내한다잖아. 그런데 우린 엄마가 없잖아.”

    그 말에 동호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나의 머릿속에는 타조 떼가 떠올라 있었다.트럭의 경적소리가 거위 울음소리처럼 들리고, 거위 울음소리는 타조의 울음소리로 착각되고, 더구나 저 멀리 뒤따르는 차들은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엔진의 열기에 부풀려져 차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성큼성큼 달리는 타조의 형상으로 보였다.

    언젠가 모처럼 시간이 난 아버지는 양산 근처에 있는 타조농장으로 나와 연희와 동호를 데리고 갔다. 양산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보금자리를 튼 곳이었고, 타조농장은 그때 이웃에 살던 아저씨가 몇 년 전에 만든 것이었다. 정문 옆에 ‘양산타조농장’이라고 써붙여진 간판이 서있었다. 입구 안쪽으로 길이 나있었고, 길 양쪽으로 둘러친 쇠울타리 안에서는 타조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100마리가 넘어보였다.

    나와 동생들은 아버지를 따라 현판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갔다. 몇 마리의 거위들이 울타리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다가 목을 쳐들고 울어댔다. 나중에 아저씨가 이야기해 주어서 알았지만 거위들은 타조 떼를 지키는 타조 지킴이들이었다. 개를 이용하면 타조들을 물어 죽일 염려가 있어 대신 거위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관악기 같은 울음소리가 너무나 커서 거위들이 우는 소리가 아니라 울타리 가득 갇혀 있는 타조들이 울어대는 듯이 느껴졌다. 사실 몇 마리밖에 되지 않은 거위들은 그들이 울었기에 존재를 알아볼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른 키보다 더 큰 타조들에 가려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우리가 타조 우리 가까이로 가자 몇 마리의 타조들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 중 한 마리가 연희가 두르고 있는 빨간 목도리에 끌렸던지 길다란 목을 빼어 연희 쪽으로 가져갔다. 너무나 갑작스런 행동에 연희는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타조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연희를 응시했다. 나에게는 그 눈이 어딘지 모르게 낯익었다. 왕구슬처럼 크고 맑은 눈.

    나는 타조의 눈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단순한 낯익음을 넘어선 그 이상의 친근감이, 연희가 나중에 나에게 들려준 표현대로, 여울빛 수정체 저 안쪽으로부터 물결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조들은 곧 무리로 돌아가서 긴 목을 쳐들고, 울타리 밖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 출렁이고 있는 산맥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맑은 눈에는 그리움과 슬픔이 가득 괴어 있었다. 그렇게 느껴진 순간, 마침내 나는 그 눈의 낯익음을 기억해냈다. 연희의 눈이었다. 왕구슬처럼 크고 맑은 연희의 눈은 외형상으로뿐만 아니라 그 눈 속에 담겨 있는 의미까지도 너무나 타조의 눈과 닮아 있었다. 그러자 나에게는 마치 타조들이 연희의 목도리에 이끌린 것이 아니라 연희의 눈을 보고 자기들과 동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끌린 듯이 여겨졌다.

    타조들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에 농장 안쪽에 있는 양옥집에서 주인아저씨가 웃으면서 나왔다. 아버지는 그 아저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 우리를 소개시켜주었다. 아버지가 타조가 이렇게 키가 큰 줄은 몰랐다고 하자, 주인 아저씨가 이놈들은 아직 덜 자란 놈들인데 저기 안쪽에 다 자란 놈들은 사람보다 더 크다면서 안쪽으로 안내했다.

    안쪽 울타리에 있는 타조들은 키가 3m 가까이나 되었다. 연희가 울타리 가까이로 가자 조금 전처럼 타조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 중 한 마리가 연희가 방심한 틈을 타 목도리를 부리로 쪼았다. 연희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비명을 질렀다. 주인아저씨가 웃으면서 이놈들은 호기심이 대단하다, 아무거나 처음 눈에 띄는 거면 한 번씩 건드려본다, 그런 점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점에서 사람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키도 비슷하고, 사람처럼 칠팔십 년을 사는 것도 그렇고, 화가 나면 발길질하는 것도 그렇지. 그런데 눈은 사람보다 훨씬 더 밝아. 이놈들은 12km 밖에서도 사물을 구별해내니까. 아마도 옛날에 하늘을 날 때, 높은 데서 땅에 있는 먹을 걸 찾아내자니 눈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거고, 그래서 눈이 그렇게 좋은 걸 거야.”

    “옛날엔 타조가 날았어요?”

    동호가 물었다.

    “그렇다고 하더구나. 아프리카 전설인데, 타조가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 세상에 갖다주었다는 거야. 그 바람에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날 수 없게 되었다는 거지.”

    이어서 아저씨는 100여 마리가 넘는 타조를 관리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타조들은 잃을 염려가 조금도 없단다. 왠지 아니? 그건 바로 타조들의 머릿속에 마이크로칩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지. 마이크로칩은 새끼들이 부화한 지 한 달쯤 됐을 때 주사기로 찔러넣는데, 죽을 때까지 갖고 있지. 타조들의 머릿속에 들어간 마이크로칩에는 번호가 새겨져 있어. 세계적인 고유번호야. 그래서 세계 어디에 가더라도 스캐너를 머리에 대기만 하면 타조들의 신분을 확인할 수가 있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왠지 슬퍼졌다. 나는 타조새끼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 타조새끼는 어디서 부화하는데요?”

    나의 질문에 아저씨가 우리를 부화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부화실은 타조를 분양받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는 사무실 바로 안쪽에 있었다. 아저씨는 대형 냉장고처럼 생긴 부화기의 문을 열고 내부를 보여주었다. 붉은 조명이 밝혀져 있는 안쪽에는 철사로 만든 쇠그물망이 가로로 여러 개 걸쳐 있었고 그곳에 6개의 타조알이 분산되어 놓여 있었다.

    “이 알들은 여기에서 39일을 보낸 후에 바로 여기 발생기로 옮겨진단다.”

    아저씨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 후에 다시 그 옆에 있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발생기 문을 열었다.

    “알은 부화기에서 이곳 발생기로 옮겨진 지 3일이 되면 새끼가 껍질을 깨고 나오지.”

    발생기의 내부는 부화기나 비슷한 구조였다. 3개의 알이 쇠그물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2개는 반쯤 알껍질이 깨어져서 축축하게 물기에 젖은 타조새끼의 모습이 보였고, 1개는 아직 그대로였다. 그런데 바로 아래쪽 그물에는 금방 부화해 나온 타조새끼 한 마리가 고개를 처박은 채 어깨를 달싹거리면서 외롭게 새근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 타조새끼를 보는 순간 나는 마치 그 새끼가 내 모습처럼 느껴지는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런 감정은, 돌아가기 위해 출구로 걸어나올 때, 잘 가라는 인사를 하듯 몇몇 타조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울타리 너머로 길다란 목을 빼어 내려다볼 때도, 곧 그들이 무리로 돌아가서 예의 그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 괸 눈빛으로 멀리 산쪽을, 마치 그들의 고향 아프리카가 그 너머에 있기라도 하듯 바라볼 때도,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타조 떼의 형상 끝에서, 그날의 발생기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타조새끼가 어느 트럭 위의 컨테이너에 실린 채 따라왔다.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외롭게 달싹거리고 있는 타조새끼가 떠오르자 마음이 울적해졌다.

    나는 축 처진 마음을 털어버리기 위해 힘차게 날고있는 타조를 상상해보았다. 만약 타조가 날 수 있게 된다면 기러기 떼처럼 브이 자 형태를 그리며 날지도 모른다. 지금의 트럭 행렬이 타조 떼라면 아버지는 브이 자의 맨 앞에 있는 타조다. 그리고 나와 동생들은 아버지의 편대를 이루는 브이 자의 타조들이며, 아버지 차를 따르는 트럭들은 뒤쪽을 이루는 브이 자 편대의 타조들이다. 그런 생각의 끝자락에서 아픔이 밀려왔다. 기러기는 식구들을 거느리는 연장자가 제일 앞에서 날다가 지치면 다음 연장자와 교대를 한다고 했다. 만약 타조들도 그렇다면 아버지가 지칠 경우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서였다. 지금은 엄마도 없고 언니도 없다. 아버지가 지치면 이 편대를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진다.

    나는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려고 옆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차들이 길게 늘어서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트럭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왠지 금방 기분이 우쭐해졌다. 아버지는 훨씬 큰 트럭을 갖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아버지 트럭의 반의 반도 안되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배불뚝이 아저씨에게 굽실거리면서 쩔쩔 매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의 아버지는 당당해 보였다. 누구에게도 굽실거리지 않고 커다란 트럭의 위용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다.

    뒤쪽 저 멀리까지 길게 늘어서서 따라오고 있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동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호가 창 아래쪽의 누군가에게 혀를 내밀면서 장난을 하고 있었다. 잠시후 우리 차를 천천히 앞질러가는 회색 승용차에 눈이 머문 순간 나는 동호가 누구와 장난을 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승용차에는 가족인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뒷좌석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하얀 살결의 예쁜 여자아이가 여전히 동호에게 혀를 낼름낼름 내밀고 있었다. 조금씩 멀어져가는 승용차 안에서 혀를 내밀며 우리 차를 올려다보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언젠가 동호가 유치원에 다닐 때 엄마에게 하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 난 예쁜 여자아이들만 보면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져.”

    그러면서 동호는 무대 위에서 까만 정장을 입고 나비넥타이를 하고 정열적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때면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런데다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동호가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배운다, 나중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듣고 엄마는 없는 돈을 들여 따로 동호를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그러나 동호의 꿈은 어느 날 엄마가 사라지고, 피아노학원을 그만두면서부터 끝이 났다.

    고속도로의 회색 바닥이 나른하게 흐르는 물처럼 트럭 밑으로 지나갔다. 아버지가 경적을 울렸고 이어서 그 소리의 길다란 연속음이기라도 하듯 뒤쪽에서 차례대로 경적소리들이 일어나 멀리 행렬의 꼬리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좌석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다시 라디오를 틀었다. 교통방송임을 알려주는 로고음악과 일반 회사의 광고용 시엠송이 흘러나온 후에 아나운서가 나왔다. 아나운서는 현장의 기자를 불러냈고 기자가 현장의 상황을 전했다.

    “기자는 지금 남해고속도로 진교 나들목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 농민들은 오전 10시경 출정식을 가진 뒤 승용차와 트럭 등을 타고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미리 알아차린 경찰의 원천 봉쇄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도보로 고속도로로 진입해 차량 통행을 막고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잠시 전에는 한 농민이 저지하는 경찰을 트럭으로 밀어버리는 바람에 전경 한 명이 손에 심한 상처를 입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곳 농민들은 ‘올 들어 농가 부채와 농산물 가격 폭락 등으로 비관 자살한 농민만도 7명에 이른다’며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명분 아래 언제까지 농민들만 봉이 돼야 하느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 ‘부실한 은행과 기업에는 100조원도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가장 소외된 농민에게는 1조원도 아까워한다’며 추가양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아나운서가 다른 지역의 기자를 불러냈다.

    “예, 이곳도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경찰의 원천 봉쇄에 막혀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못한 농민차량들이 우회하면서 국도가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경찰의 저지를 뚫고 고속도로로 진입한 차량들은 서행운전을 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핸드폰이 울렸고 아버지가 라디오를 껐다. 아버지가 핸드폰을 잡아 귀에 갖다 댔다.

    “앞쪽의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앞차들이 밀려서 지금 20km밖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속도가 반으로 떨어져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멀리까지 뚫려 있던 앞쪽의 도로가 온갖 승용차와 트럭들로 채워져 있었다. 추월선의 사정도 다를 바 없어 고속도로는 강물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듯이 보였다.

    아버지는 침울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차창에 왼팔을 건 채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앞쪽의 저 먼 곳에서 기어가고 있는 차들은 차가운 대기 속으로 피어오르는 차체에서 나는 열기에 풀어져, 바닥에 앉았다가 날개를 치며 막 비상하는 커다란 새처럼 보였다. 아마도 차들이 그렇게 보인 것은 여전히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조금 전의 타조 생각 때문이거나 연희가 보여주었던 글의 영향 때문일 것이었다.

    지금 동생들이 앉아있는 운전석 뒤편의 길다란 좌석은 아버지의 여관방이었다. 아버지는 화물을 싣고 타지방으로 가면 하루나 이틀 후에 집에 들어온다. 싣고 간 화물을 부리고 다시 다른 화물을 받아 싣고 오자면 그렇게 걸린다고 했다. 그렇게 타지에서 밤을 보낼 때 아버지는 트럭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때로 그 자리는 우리들의 잠자리가 되기도 했다. 명절을 맞아 시골에 있는 할머니댁에 갈 때면 우리들은 언제나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갔다. 할머니댁은 부산에서 3시간쯤 걸리는 곳에 있는데, 명절 때는 언제나 차가 막혀 5시간쯤 걸렸다. 그래서 우리들은 뒷좌석에 앉아 손놀이를 하거나 장난을 치다가 결국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잠에 골아 떨어지곤 했다. 언젠가 아버지는 그렇게 잠든 우리들의 모습이 할머니댁의 처마 밑에 까놓은 제비새끼들처럼 보였다며 웃었다. 어쩌면 아버지에게는 앞자리의 좌석으로 양쪽이 막혀 아늑하게 느껴지는 뒷좌석이 제비둥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뒷좌석이 할머니집의 다락방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차를 타면 언제나 나는 할머니집의 다락방에 올라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렇게 느껴진 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여름방학 때 할머니댁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다락방에 올라가 본 이후부터였다. 다락방은 3개의 방 중에서 안방으로 쓰고 있는 중간방에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5개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천정이 낮아 허리를 굽히고 지나다녀야 하는 나직하고 아늑한 다락방이 나타났다. 남쪽으로 조그만 창이 나있어 햇빛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두워서 무엇을 찾거나 보자면 한쪽 귀퉁이에 매달려 있는 알전등을 켜야만 했다.

    그날 처음 다락방에 올라가 본 이후 나는 그 방을 비밀의 방이라고 이름 붙였다. 왜냐하면 다락방은 아버지의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알 수 있는 비밀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비밀이 담겨 있는 박스는 다락방의 한쪽 구석에 놓여져 있었다. 절대 열어보지 말 것. 박스의 뚜껑을 봉인해놓은 종이 위에는 빛바랜 경고문이 씌어 있었다. 오히려 그 문구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렇게 변색되고 풀기가 말라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너덜거리는 종이봉인을 살짝 잡아당기자 쉽게 뜯겨져 나왔다. 그것은 큰고모의 사물함이었다. 그 안에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큰고모의 일기장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겁이 났으나 호기심을 누를 수 없어 몇 장을 읽고 나자 대담해졌다. 나는 그저 동화책 읽듯이 일기장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큰고모의 과거를 탐독하다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다락방 바로 밑은 부엌이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점심 차리는 소리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의 가시나가 점심때도 모르고 어데 가서 노는구마. 연희야, 빨리 가서 언니 찾아온나.”

    할머니는 내가 마을에 사귀어놓은 친구집에 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다락방에 눌러앉아 일기장에 매달렸다. 일기장의 내용들은 배고픔을 잊게 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바로 거기에는 드문드문 아버지의 과거들이, 누렇게 탈색된 종이 위에 볼펜 똥이 번져 얼룩이 진 형태로, 그러나 슬픈 영화 속의 한 장면들처럼 찍혀 있었다.

    나는 일기장을 통해 왜 아버지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는지를 알았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없는 돈을 꾸어서 중학교 등록금을 납부해주었음에도 입학식을 며칠 앞두고 집에서 도망쳤다. 그 이유를 큰고모는 이렇게 써놓았다.



    집에서 도망친 후 아버지는 서울로 갔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유랑이 시작되었다. 자전거수리점의 점원으로 출발하여 도금공장의 종업원, 식당종업원, 다방의 주방장, 호텔의 보이, 등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한 곳에서 6개월 내지 1년 정도 있다가 자리를 옮겼고 그때마다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고 해서 홍길동이란 별명이 붙었다.



    새벽에 아버지가 잠을 깨우기 전까지, 나는 이상하게도 큰고모의 일기장에서 읽은 부분을 현실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푸르스름한 유독성 연기로 가득 찬 내부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가 질식할 것만 같은 심정을 가눌 수 없어 뛰어나오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잠을 깼다. 다행히 아버지가 말 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방안이었다. 그때의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큰고모가 묘사해놓은 일기장의 아버지처럼 초췌해보였다.



    나는 큰고모가 보지 못한 비 맞은 아버지의 모습을, 잠을 깨워놓고 묵묵히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보았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워물었다. 창밖을 향해 훅, 내뱉은 담배연기는 나에게 꿈속의 장면을 현실로 옮겨다주고는 사라졌다. 나에게 트럭은 아버지가 소년기를 보냈던 도금공장의 좁은 내부처럼 느껴졌다. 한 번도 도금공장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했지만 큰고모의 일기장에 묘사되어 있는 도금공장만으로도 그곳이 선연히 그려졌다. 아버지는 여전히 소년시절의 도금공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유독성의 푸른 연기처럼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도금된 목걸이들처럼 자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 좁은 공간에서.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는 여전히 아버지가 그 안경알 공장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큰고모의 일기장에 박제되어 있는 아버지의 여러 소년시절의 모습들 중에는 아버지가 도금공장을 떠나 천호동의 어느 수공업 안경알 공장에서 일하던 때의 장면도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도 오래 있지 못하였다. 왜 아버지는 한 곳에 진득이 붙어 있지 못하였던 것일까? 그 이유를, 고학을 하며 야간 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던 큰고모는 이렇게 적어 놓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뒤늦게야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마음에 드는 직장은 나오지 않으며 몇 번만 더 되풀이했다간 객지에서 병들어 죽을 것이란 사실을.



    그러나 아버지의 그런 인식은 미아리고개 너머의 어느 극장에 딸려 있던 다방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게 했고, 그후의 호텔보이는 물론 그와 유사한 직업에서 역시 그 이전의 도금공장과 같은 곳을 전전할 때처럼 유랑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런 생활로 10대를 거의 다 보내면서 아버지가 터득한 것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언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한때 밤에라도 혼자 공부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 역시 큰고모의 일기장이, 아버지는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그 결심의 순간과 시간들을 섬세하게 박제해 놓았다.



    그러던 아버지는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갔다. 그곳에서 트럭조수로 들어갔다가 발이 묶였다. 그 바로 전에 자갈치시장 부근의 어느 식당에서 일할 때 알게 된 동갑내기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언니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아버지는 식당을 떠나 트럭조수로 일하는 동안 어머니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더 이상 떠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게다가 트럭조수로 일하다 트럭기사가 되는 것은 아버지의 어렸을 때의 꿈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자리에 안주하기로 한 것 같았다.



    사실 지금까지의 일기장 내용은, 아무리 내가 암기력이 뛰어나고, 그 내용이 너무나 가슴을 찌르는 것이어서 여러 번 보았다고 하더라도, 내 기억이 정확히 되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상 다소 다르기는 할지라도 내용만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더구나 처음 본 큰고모의 글은 너무나 내 마음에 들어서 내가 수십 번도 더 베껴본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글 쓰는 방식이 큰고모의 글 쓰는 방식과 많이 닮아있을 만큼 내가 떠올린 일기장 내용은 원본과 거의 부합할 것이다. 공부도 잘하고 글 쓰는 재주도 뛰어났지만 가난 때문에 야간 상업고등학교에 다녀야만 했다는 큰고모. 그래서 그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큰고모. 그 고모를 생각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앞줄에 끼어들었다. 줄곧 추월선으로 달려오다가 트럭 행렬의 선두 차량인 아버지의 차를 간신히 추월하자마자 차선을 바꾸어 주행선으로 들어선 것이 분명했다. 트럭은 아버지 트럭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타이탄 트럭에 비하면 큰 편이었다. 불그레한 몸통이 흰털로 덮여 있는 돼지들은 30마리 가량 돼 보였고 서로 엉덩이를 붙인 채 바싹 긴장된 표정으로 실려가고 있었다. 트럭의 옆판에는 붉은 글씨로 쓴 ‘축산농가 살려내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와아, 막내누나, 돼지 좀 봐!”

    뒷자리에서 연희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동호가 소리쳤다.

    “와 진짜네. 근데 어딜 가는 거지?”

    돼지들의 앞쪽, 운전석 바로 뒤편에 한 남자가 보였다. 구릿빛으로 탄 삼십 대의 남자는 춥지도 않은지 돼지들 틈에 끼어, 돼지의 일부인 듯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동호가 손을 흔들자 오른손을 번쩍 들어 브이 자를 만들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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