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호

스타 정치권력과 맞짱 뜨다

‘연예공화국’의 연예권력

  •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9-06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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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잭슨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영국에선 폴 매카트니가 총리 후보로 지명된다. 정치권력이 가수들에게 넘어가는 사건이 잇따르자 정치권은 긴장한다. 나훈아가 출마하고 핑클이 선거운동에 뛰어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청와대 대책회의에 참석한 비서실장, 국정원장 등은 강경 발언을 쏟아놓는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이 손짓 하나에 아줌마 표가 1000만표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이 노래에 전국의 잡초 같은 인생 1500만표가 들고일어납니다.”

    “2000만 민족 대이동을 상징하는 송대관의 ‘차표 한 장’도 있습니다. 사실은 이 놈이 더 위험합니다. 각하!”

    고민하던 ‘각하’는 결국 긴급조치 19호를 재가한다. 노래를 듣거나 부르는 행위는 모두 금지되고 군부는 가수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인다. 가수들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리수는 군대면제인데 왜 잡아가느냐며 항의한다. 클릭B와 강타는 군인들과 일대 접전을 벌인다. 신화는 모진 고문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마침내 가수들은 팬클럽의 헌신적 지원에 힘입은 홍경민과 김장훈의 대활약으로 노래부를 권리를 되찾는다. ‘감히’ 스타들을 제압하려 한 권력층이 국민의 신망을 잃었음은 물론이다.’



    지난 7월 개봉된 영화 ‘긴급조치 19호’의 줄거리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스타가 노래의 힘, 정확히 말해 팬의 힘을 등에 업고 권력과 맞짱뜬다는 발상. 이 영화에는 연예인을 ‘삼류 양아치’라 무시하는 주류·보수에 대한 야유와 독설이 가득하다.

    고고한 척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보면 비겁하고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진짜 삼류들. 뽕짝이 좋고 저질스런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에도 일가견이 있으면서 아닌 척, 모르는 척 위선을 떠는 사회지도층. 그에 비하면 자기 욕망에 정직하고, ‘자유’ 실현에 온몸을 던지는 가수와 10대 팬들은 분명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투사’다.

    더 의미심장한 건 이 영화의 제작자가 서세원씨라는 것. 연예계 비리를 조사중인 검찰로부터 방송사 PD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씨는, 지난 7월30일 3박4일 일정으로 홍콩 출장길에 올랐으나 아직 귀국하지 않고 있다.

    개그계의 대부로, 이름을 건 토크쇼(KBS ‘서세원쇼’)를 가진 특급 MC로 연예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서씨. 그런 그가 ‘정치권력을 추월한 연예권력’을 소재 삼은 영화를 제작한 직후 비위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홍콩으로 떠나기 직전 서씨는 ‘서세원쇼’ 폐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문화개혁시민연대(이하 문개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문개련이 서씨를 연예권력이라 칭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서씨 측은 “영화 ‘긴급조치 19호’에 다수의 인기가수가 출연한 것은 친분 때문이지 강제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많든 적든 개런티도 다 지급한 만큼 연예권력이란 비난은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연예권력이란 연예산업 내에서의 권력을 뜻한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연예산업의 핵은 스타와 스타시스템이다. 최근 2~3년 새 사회 전반에 걸쳐 이들의 영향력은 현저히 강화됐다. 이들의 언행, 인기유지를 위한 전략, 어젠더 형성 능력, 경제적 가치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 어떤 정치인·경제인·지식인도 이들만큼 국민의 일상과 의식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지 못하다. 생산적 우상(경영인·행정가·발명가)이 추앙받던 시대는 갔다. 이제 대중은 소비적 우상(스타)을 섬긴다. 정치권이 8·8 재·보선을 둘러싸고 정신없이 돌아가던 시기에도 대다수 국민이 화제로 삼은 뉴스는 투표나 정계개편이 아닌 연예계 비리 수사였다.

    KBS 방송문화연구소 김호석 연구원은 “스타시스템은 환상이며 거짓이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지만 파괴된 스타 신화는 하나도 없다. 스타시스템은 현실이다. 그것도 이해관계의 극치를 보여주는, 한치의 환상과 거짓도 용납 않는 자본주의 본성 그 자체”라고 말한다. 한국의 연예권력, 그 현주소는 어디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실제로 여러 연예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경험이 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DJ진영은 최고 인기그룹이던 DJ.DOC에게 캠페인송을 부르게 했다. ‘DOC와 춤을’이라는 노래에 가사만 바꿔 붙인 것이었다. 효과는 대단했다. 흥겨운 노래와 젊은 그룹의 통통 튀는 개성은 고령이라는 DJ의 최대 약점을 커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민들은 은연중 DJ가 경쟁자인 이회창 후보보다 ‘(마음이) 젊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DJ라는 공통된 이니셜이 주는 연상효과도 적지 않았다.

    뿐인가. DJ는 공개적인 석상에서 고졸 학력으로 우리 대중음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서태지를 여러 번 극찬했다. 취임 후에는 세계적 뮤지션 마이클 잭슨을 청와대로 불러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DJ의 이러한 행보는 그에게 젊고, 새롭고, 유연하며, 진보적이고,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보태주었다. 또한 연예산업 종사자들에게는 자괴감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보다 당당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매니지먼트 업계에 있는 이들은 “DJ정부 출범 후 연예인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아직도 연예계에 대한 정치권의 시선은 ‘이용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이스타뮤직 이준규 대표는 “연예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지금의 10대, 20대가 사회의 주류를 형성할 때쯤이면 연예인들의 사회적 위상은 물론 경제적 가치, 정치적 영향력은 현저히 향상될 것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의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50대 주부들도 나훈아 콘서트장에 가면 괴성을 지르고 눈물을 흘린다. 하물며 요즘 청소년들이겠는가. 따라서 지금 10대로부터 사랑받는 톱스타들은 10년, 20년 후까지도 그 상품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미 30대 스타 수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경우 대개 진보적 성향을 띤다는 것이다. 그러한 경향은 스타성이 높아질수록 강도를 더해간다. 서태지도, H·O·T도 그랬다. 외국 경우이긴 하지만, 마이클 잭슨의 반전반핵운동 지원, 리처드 기어의 티베트독립운동 참여는 가히 ‘골수 운동권’ 수준이다.

    플레너스는 국내 최대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와 지주회사인 로커스 홀딩스가 외국자본인 워버그핀커스의 투자까지 끌어들여 설립한 국내 최대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업체다. 플레너스에는 8개 계열사 및 자회사가 있다. 싸이더스HQ도 그중 하나다. 이들은 다시 영상사업군, 음악-매니지먼트사업군, 게임사업군으로 나눠진다. 장기적으로는 사업군 별로 수직계열화를 달성해, 영상물·애니메이션·게임 등 주요 대중문화상품을 기획 제작부터 배급까지 일괄 관리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이 회사의 박병무 사장은 서울대 법대 3학년 시절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무법인 김&장 등에서 변호사 생활을 한 엘리트다. 플레너스에는 그 외에도 MBA나 변호사 출신 임원이 여럿 포진해 있다. 박사장을 포함, 이들은 회사의 경영적 측면을 책임질 뿐 각 사업분야는 일절 간여하지 않는다. 박사장은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와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분야를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기본 요건”이라고 설명했다.

    “플레너스의 목표는 아시아에서 톱이 되는 겁니다. 연예산업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미래 경제전쟁은 곧 문화전쟁이 될 겁니다. 여기서 승리하려면 실력이 있어야지요.

    지금 중국 본토에선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해적판 비디오테이프가 엄청나게 유통되고 있습니다. 50만~100만장은 될 거라더군요. CD나 카세트테이프는 말할 것도 없고요. 요즘은 한류열풍에 대한 관심이 좀 식은 느낌인데, 사실 연예산업의 해외진출이 갖는 중요성은 반도체 수출만큼 중요합니다.”

    박사장의 말 속에 한국의 ‘연예권력’이 지향해야 할 목표와 미래가 있다.

    ▶ 대스타는 왜 ‘진보적’인가

    연예인들이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건 기본적으로 그들이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한 영역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게다. 모든 연예인들이 정치적 발언을 할 때마다 ‘계산을 때린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결정이나 발언을 할 때 아무래도 스타라는 자신의 신분과 팬들의 바람을 염두에 두게 된다는 의미다. 탤런트 차인표가 남북화해에 반하는 스토리의 ‘007’ 시리즈 출연 제의를 거부했을 때 네티즌들이 보낸 열광적 찬사를 보라. 어른들이 보기엔 ‘양아치’ 그 자체인 가수 겸 배우 양동근은 기성세대를 향한 냉소와 삐딱한 시선을 자기 스타일화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개방·자유·반항·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은 대중문화상품의 주 소비층인 10~20대에게 언제나 환영받는 주제다. 결국 연예권력의 득세는 사회의 개방성과 진보성을 높이는 데 일정부분 기여한다. 지난 12년간 할리우드 스타들이 낸 정당지원금의 65%가 민주당으로 귀속됐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적어도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이 스타 이미지를 활용해 젊은 표를 끌어 모으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공정성’이 보통 스타의 생존방식이라면 ‘당파성’은 톱스타들의 특권인 셈이다.

    이는, 스타산업이란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며 권력에 봉사하고 우민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에만 익숙해온 이들에겐 다소 당황스런 주장이다.

    이에 대해 동국대 영화영상학부 조흡 연구교수는 “심지어 청소년들이 폭력이 난무하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것조차 일종의 의미투쟁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경제·사회제도 자체를 바꾸려는 사회적 저항보다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조교수는 “대중문화 비판론자들은 스타시스템, 그리고 미디어가 지배그룹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자를 움직이는 건 정치권력이 아니라 시장의 논리, 즉 자본과 소비자의 요구다. 특히 자본은 주 수입원인 청소년 문화에 관대하다. 그들을 문화 생산자의 첨병으로 활약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텔레비전 등은 지배그룹이 이(異)문화 세력들에게 끊임없이 도전 받는 싸움터다. 또한 스타와 스타시스템은 문화상품에 대한 검열과 감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잘 알려진 대로 검열의 궁극적 수혜자는 지배권력뿐”이라고 설명했다.

    연예권력이 에이전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지만, 미국·일본 등에 비하면 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완성도란 에이전시의 규모·영향력·전문성·투명성·사업다각화 능력 등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주)’의 존재는 도드라진다.

    군검찰 수사가 다시 활기를 띤 것은 1998년 7월 협박죄로 1년 실형을 살고 막 출소한 김대업씨가 합류하면서다. 군검찰은 의정하사관 출신으로 병무비리 전과자이기도 한 김씨의 능력과 병무비리 근절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의욕을 높이 사 정보원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한나라당에서 문제 삼고 있는 그의 전과를 철저하게 검증하는 절차를 거쳤음은 물론이다.

    제1차 군·검병역비리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가 탄생한 것은 그로부터 5개월 후인 그해 12월. 김대업씨의 자료분석과 비리적발 능력에 고무된 군검찰이 천용택 국방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청와대에 민간 검찰과의 합동수사를 건의한 결과였다.

    군검찰의 최고 책임자인 박선기 법무관리관(소장)과 고석 국방부 검찰부장(중령)이 청와대로 찾아가 현재 민주당 의원인 박주선 법무비서관을 만났다. 박비서관은 김태정 검찰총장에게 업무협조를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서울지검 특수3부의 검사들이 검찰관들과 더불어 합동수사반을 구성했다.

    이 수사의 기본 틀을 짠 사람은 국방부 검찰부의 수석검찰관 이명현 소령이다. 이소령은 김대업씨의 도움을 받아 병무청으로부터 넘겨받은 약 5만 건의 병적카드를 석 달 동안 분석해 그 중 ‘냄새가 나는’ 병적카드 2000건을 선별했다. 합동수사반 출범 전까지 분석작업이 완료된 것은 약 400건. 이것이 1차 군·검합동수사의 기초 수사자료가 됐다.

    ‘김대업 녹음테이프’의 주인공 김도술씨가 병무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은 합수부가 출범하기 한 달 전인 그해 11월. 입영대상자들의 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군의관들에게 병역면제를 청탁한 혐의였다. 당시 김씨는 국군수도통합병원 주임원사였다.

    김도술씨가 이정연씨 병역면제과정에 개입했다는 김대업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증거’는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김대업씨가 김도술씨를 여러 차례 단독으로 조사했다는 사실. 둘째, 김대업씨가 조사과정에서 종종 녹음기(보이스 펜)를 사용했다는 사실. 셋째, 군검찰 주변에서 김도술씨가 그런 진술을 했다는 얘기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군검찰이 병무비리수사 당시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을 수사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김도술씨는 녹음테이프가 공개된 8월12일 오후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한인옥씨로부터 아들의 병역청탁을 받은 적도 없으며 군검찰에서 그렇게 진술한 적도 없다”고 녹음테이프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테이프에 담긴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닐 것이다. 김대업한테는 조사 받은 적 없다”며 조작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하지만 곧 말을 바꾸었다. 당시 군검찰 수사팀장이었던 이명현 소령이 8월12일 기자들에게 “김대업씨는 김도술씨를 수십 번 조사했다”고 말한 직후다. 하지만 이 말은 와전된 것이다. 이소령 얘기를 정확히 옮기면 당시 수사팀이 헌병대 영창에 수감돼 있는 김도술씨를 수십 차례 불러내 조사했는데, 김대업씨도 수사보조 차원에서 몇 차례 그를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소령의 증언을 의식해서인지 김도술씨는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김대업이 가끔 와서 ‘자그마한 것(병역비리)이라도 얘기해달라’고 했다. 두어 차례 얘기한 적은 있다”고 김대업씨한테 조사 받은 사실을 에둘러 시인했다. 이어 KBS와 가진 현지 인터뷰에서는 “김대업이 ‘한 건 불면 봐주겠다’고 말했다”며 김대업씨와 꽤 ‘깊은 대화’를 나눴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당시 군검찰은 김도술씨를 거물 브로커로 보고 그를 통해 적잖은 병무비리가 밝혀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김씨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당시 수사팀 관계자의 증언.

    “김도술씨는 수통(수도통합병원)에서 신검 업무를 담당했다. 병무비리로 구속된 원용수 준위와 친분이 깊었는데 박노항 원사와도 아주 가까운 관계였다. 조사 당시엔 잘 털어놓지 않아 몰랐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많이 해먹었더라. 재산이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기억 난다. 김씨는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다. 관련된 군의관 진술을 들이대면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병역비리를 시인하곤 했다. 그것도 공소시효가 지난 것만 골라서. 일부에서는 김대업씨가 김도술씨를 협박해 (이회창씨 관련) 진술을 얻어낸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데 김도술씨는 누가 협박한다고 털어놓을 사람이 아니다.”

    ▶ 김도술에 심리전 펴다

    이경숙(45·서울 흑석동)씨는 전업주부다. 남편은 사당시장 근처에서 인테리어점을 운영한다. 이씨 부부는 남매를 두었다. 아들은 대학생, 딸은 고등학교 3학년생이다.

    아침 출근시간이 지나면 이씨는 설거지도 미뤄둔 채 TV 앞에 앉는다. 때맞춰 시작하는 아침 드라마를, 그것도 한꺼번에 3개씩이나 본다. 이후에도 TV 앞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주로 연예인들을 초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가 상당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는 외국인 사업가와 결혼해 해외에 체류중인 30대 여자탤런트가 출연했다. 그녀의 주량, 잘하는 요리, 다이어트법, 인테리어 센스 등을 소재로 대화가 길게 이어진다. 그녀는 최근 자궁근종 수술을 받았단다. 수술 과정과 함께 자궁에서 떼어낸 혹이 몇㎏이었는지, 언제부터 아기 갖기에 돌입할 건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점심식사 후 이웃 주부들과의 커피타임. 오늘의 주제는 단연 자궁근종 조기진단과 곰국을 이용한 다이어트 비법이다. 토크쇼를 봐 두길 잘했다.

    오후에는 대형할인점에 간다. 장보기를 겸한 나들이다. ‘고백’에서 탤런트 원미경이 자주 입고 나오는 헵번스타일 원피스가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기획상품으로 나와 있다. 3만원이라는 가격에 혹해 한 벌 구입한다. 이어 흰콩 한 봉지를 산다. 콩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 “피부와 변비에 좋다”고 소개한 까닭에 요즘 주부들 사이에선 콩물 마시기가 대유행이다.

    이씨의 남편 고진섭(49)씨는 고객 상담으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손님들은 제품 이름이 아닌 ‘남희석이 광고하는 장판’, ‘최진실이 광고하는 새시’ 하는 식으로 물건을 주문한다. 점심식사를 하면서는 옆 가게 사람들과 요즘 한창 화제인 연예계 성상납 의혹을 소재로 수다를 떤다. 스포츠신문을 열심히 봐서인지 다들 연예 박사다.

    방학중인 이씨의 아들은 한창 연애에 빠져 있다. 오늘은 여자친구와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봤다. 여자친구가 영화 값을 냈기에 그는 CD를 선물하기로 하고 함께 교보문고로 간다. 여자친구는 탤런트 배용준·차승원·장혁·조인성·김재원 등이 케이스모델로 등장한 편집 앨범 ‘동감2’를 고른다. 모델과 수록곡들 사이에는 아무 관련도 없지만 뭐 어떤가. 둘은 모델로 등장한 탤런트들에 대해 한참동안 대화를 나눈다. 여자친구는 “배용준 바람머리랑 니 머리랑 스타일이 똑같다”고 해 그를 기쁘게 한다.

    이씨의 딸은 지난해 가을 쌍꺼풀 수술을 했다. 맹랑한 성격 그대로 쌍꺼풀 수술에 ‘성공’한 여자 선생님에게 “어디서 하셨느냐”고 물어 바로 그 병원을 찾아갔다. 요즘은 연예인들도 드러내놓고 성형수술을 하는 시대 아닌가. 처음엔 이씨도 말렸지만 훨씬 예뻐진 딸 얼굴을 볼 때마다 내심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딸은 코디네이터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한다. 학원에 다니겠다고 난리인데 재료값이며 월 35만원이나 하는 수강료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하고싶은 일 못하게 했다가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을 지 몰라 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늘 거울을 끼고 살고 화장 안한 맨 얼굴로는 외출도 하지 않는 아이다.

    이제 여고생들에게 화장은 일상이 돼 버렸다. TV와 잡지에 등장하는 열여섯, 열일곱 소녀 스타들을 보라. 미디어가 허락한 일을 부모가 말리기란 역부족이다.

    밤 9시가 넘어서야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함께 TV를 시청한다. 드라마 ‘야인시대’와 토크쇼 ‘이유 있는 밤’을 보며 간헐적인 대화를 나눈다. 자정이 다 돼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아들, 딸은 컴퓨터를 켠다. 채팅을 하거나 노래·사진을 다운로드 받고 관심 가는 사이트를 찾아 부지런히 마우스를 클릭한다. 아들은 요즘 인터넷 영화 보기에 맛을 들였다. 딸의 최대 관심사는 그룹 god의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다. 새벽 1시, 딸은 god 멤버 윤계상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걸린 방에서 잠이 든다. 이씨 가정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이것이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다. 광고, 영화, 토크쇼, 드라마, 연예정보와 스타를 빼곤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세상은 스타 이미지로 가득차 있다. 사람들은 특정 물건을 소비하고, 특정 정보에 탐닉하고, 특정 가치관을 받아들이도록 끊임없이 자극 받는다.

    스타는 상품이다. 그들이 먹고 입고 즐기고 지향하는 모든 것, 라이프 스타일 자체가 소비를 불러온다. 그리하여 스타는 물신(物神)이 된다. 물신 숭배가 자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스타야말로 그 정점이다. 연예산업을 ‘산업 위의 산업’이라 칭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내 연예산업 규모에 대해서는 2조원이란 의견도 있고 4조원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파생하는 여타 사업군, IT·제조업 등과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고려하면 그 크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자본주의가 꿈꾸는 ‘무한대 시장’이 여기에 있다.

    스타의 상품성은 사회 전 영역에서 유효하다. 예를 들어보자. 불면증의 상징성을 차용한 ‘인썸니아’는 알 파치노,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다. 그런데 홍보대행사는 이 두 세계적 스타를 ‘세일즈’하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찼나 보다. 네티즌을 대상으로 ‘불면증에 시달릴 것 같은 국내 남녀 연예인은 누구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당연히 국내 최고의 청춘스타들이다. 그들의 이름을 한꺼번에 나열할 수 있는 기회를 연예 전문 매체들이 놓칠 리 없다. 이로써 ‘인썸니아’ 홍보팀은 영화의 기사화는 물론, 이 영화가 불면증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사실까지 널리 알리는 데 성공한다. 이런 유의 마케팅 기법은 우리 주변에서 늘상 발견되는 것이다.

    식당이나 옷가게도 스타마케팅을 한다. 어쩌다 연예인이 ‘왕림’하면 가게 주인들은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아내느라 안달이 난다. 그 흔적들은 다음날 아침이면 코팅되거나 액자에 얌전히 끼워진 채 가게 안팎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된다. ‘스타 아무개가 왔다 간 곳’. 효과는 금방 나타난다. 모름지기 스타라면 아무 가게나 들르지 않을 것이라는 무모한 기대감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놀라운 흡입력이다.

    그러나 스타는 절로 탄생하지 않는다. 대중 또한 절로 스타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스타-정보-대중-소비-생산을 아우르는 정교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자체”인 그것. 바로 스타시스템이다.

    연예권력은 스타시스템의 산물이다. 스타시스템이 정교해지고 고도화할수록 연예권력도 강화된다. 스타시스템의 핵심은 에이전시다. 스타는 에이전시가 생산·관리·유지·활용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TV·라디오·신문 등의 미디어는 에이전시의 거래 대상이자 파트너다. 연예권력의 세 축 또한 스타·에이전시·미디어다. 이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공생관계 속에서 최대 이윤 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지금 연예권력 내 힘의 중심은 미디어에서 에이전시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선진국형 스타시스템의 본격 발화기에 들어선 것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감독님(방송사 PD)이 하늘같았어요. 커피 심부름 시켜주시면 감격했고 이름 한번 불러주시면 눈물이 났죠.”

    ‘싸이더스HQ’ 정훈탁(36) 대표의 회상이다. 싸이더스HQ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매니지먼트사이자 음반제작사다. 정우성 전지현 설경구 전도연 김혜수 박신양 김승우 윤해영 홍경민 차태현 장혁 조인성 최지우 한재석 이범수 이은주 신민아 정재환 이혁재,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댄스그룹 god와 지난해 방송수입 1위를 기록한 개그맨 남희석 등이 싸이더스HQ의 주요 식구들이다.

    현재 싸이더스HQ에 필적할만한 연예에이전시는 ‘에이스타스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GM프로덕션’ ‘아이스타뮤직’ ‘윌스타’ 정도. 이중 최근 진행중인 연예비리 수사로 인해 에이스타스의 백남수 사장이 구속됐고, 해외 체류중인 SM 이수만 사장은 귀국 거부, GM 김광수 사장은 잠적중이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정대표가 음반업에 뛰어들겠다고 조용필의 ‘필기획’ 문을 두드렸을 때 당시 조영일(조용필 친형) 사장은 “대학 나온 놈이 뭐하러 매니저를 하냐”며 상대조차 하려들지 않았다. 당시 매니저에 대한 인식은 운전기사 혹은 일명 ‘가방 모찌’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당연히 가방끈 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정대표를 양아치나 심부름꾼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본을 놓고 PD·영화감독과 토론을 벌이며, 필요하다면 캐릭터 변화를 유도하거나 실무적인 조언을 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우리 애들 좀 써달라”며 사정하고 다녔지만, 지금은 “제발 검토해달라”는 대본이 쌓여 소화하기 힘들 정도다.

    정대표는 이제 단순 매니지먼트를 넘어, 영상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 ‘몽정기’ ‘대망’,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의 캐스팅 디렉터로 활동한 것이 그 시작. 영화제작사와 공동제작도 추진중이며 소속 배우에 맞는 시나리오를 찾아내기 위해 시놉시스 공모전도 연다. 전문배우를 길러내기 위한 연기아카데미 설립 또한 먼일이 아니다.

    “10년 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이전에는 스타를 활용할 방법이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한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아이디어만 잘 짜내면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100가지는 돼요. 그만큼 시장이 급속도로 커진 거죠. 돈 벌 가능성이 크니 투자도 늘고 인재도 많아지고…. 이젠 우리들 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돈 벌 기회’가 많아진 데는 미디어와 IT산업의 발달이 큰 몫을 했다. 경제 발전과 함께 양질의 문화상품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높아졌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했다. 때마침 일어난 IT 혁명은 여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DVD, 휴대전화, 인터넷, 케이블텔레비전…. 매체가 많아졌다는 것은 스타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늘어났음을 뜻한다. 대중에게 먹히는 스타의 수는 한정돼 있는데 오라는 곳은 많다. 당연히 스타는 더 좋은 조건, 자신의 스타성에 도움이 될만한 프로젝트만을 선별해 참여하게 된다. 여기서 경쟁이 생겨난다. 어떤 스타를 ‘모셔 가느냐’에 따라 수익에 엄청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영애가 ‘떴다’. 그러면 우선 광고 쪽에서 즉각 반응이 온다. 영화와 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다. 예능국 PD들은 그녀를 MC로 영입하기 위해 뜨거운 경쟁을 벌인다. 뮤직비디오 쪽도 만만치 않다. 벨소리 다운로드 업체에선 그녀의 목소리를 원하고, 출판이나 캐릭터 분야에서도 관심을 보인다. 그녀는 걸어다니는 광고판인 만큼 자사의 옷·액세서리·가방·화장품을 제공하려는 업체들이 줄을 선다. 그녀가 등장함으로 인해 상품성이 월등히 높아진 영화는 비디오나 DVD 판매에서도 호조를 보인다. 뿐인가. 그녀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드라마는 중국·대만·홍콩 등지로 비싼값에 팔려 나간다. 그녀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것만으로도 음반이 나가고 잡지가 매진된다. 그녀가 머리를 다듬는 미용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그녀가 관람한 전시회나 공연, 그녀가 자주 들르는 카페며 레스토랑까지도 모두 화제가 된다.

    벤처기업들은 그녀를 홍보이사로 영입하려 하고, 정치인들은 “후원회에 한번만 참석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그녀는 좋은 일, 명분 있는 일을 하는 쪽에서도 꼭 한번 모시고픈 인사다. 선거관리위원회, 적십자사와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국가인권위원회도 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고운 미소에 자신들의 간절한 메시지를 실어 온 세상에 퍼뜨리고 싶을 것이다. 진보적 이념으로 무장한 단체, 매스미디어의 횡포를 경계하는 시민단체들도 그러한 유혹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으리라.

    스타 이영애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개성·미모·아우라를 갖고 있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얼마든지 복제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그녀와 에이전시는 초상권료, 저작권료, 기타 갖가지 권리에 대한 대가를 지불 받는다. 그녀의 온 몸,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미소와 목소리와 연기력과 일상생활은 모두 다 ‘권리’다. 이로 인해 획득한 재력과 영향력은 그녀와 에이전시에 막강한 힘을 부여한다.

    에이전시는 스타를 내세워 획득한 권력을 이익 창출을 위해 활용할 준비가 언제든지 돼 있다. 이로 인해 전에 없는 곤란을 겪게 된 것이 영화사와 TV 제작담당자들이다.

    “영화 제작을 위해 투자자들을 만나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어떤 배우가 등장하느냐는 겁니다. 영화사 입장에선 투자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스타급 연기자를 영입해야 하는 거죠. 요즘처럼 한국 영화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상황에서는 과당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캐스팅 힘들어서 영화 못 찍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에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탄탄히 자리잡은 한 영화사 임원의 푸념이다.

    “에이전시들은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다마(머리)급’ 스타 한 명을 출연시키는 데 3억원 안팎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캐스팅 디렉터로 활동하는 대가로 공동제작까지 원하지요.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기 위해서예요. 요즘은 러닝 개런티를 요구하는 배우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쉬리’에 주연으로 출연한 한석규씨는 10억원 이상을 가져간 걸로 알려져 있어요. ‘쉬리’를 찍을 당시 그 영화에 출연한 송강호·김윤진·최민식씨는 모두 한석규 씨와 같은 에이전시 소속이었습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 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죠.”

    방송에 대한 에이전시의 영향력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방송사와 스타를 보유한 에이전시의 권력관계는 역전된 지 이미 오래”라고 말하는 PD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최근 진행중인 연예비리 수사에서 알 수 있듯, 에이전시가 방송제작자와 언론에 금품을 제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예인이 일단 뜨기 위해서는 소비자(대중)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스타는 문화상품의 흥행 성공에 따른 부산물일 뿐이다. 스타가 아무리 높은 수입과 명예, 사회적 위상을 갖는다 해도 그의 운명은 어쩔 수 없이 흥행 여부와 직결돼 있다.

    이처럼 스타의 생명은 짧고 만들어지기도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에이전시다. 에이전시는 예비 스타를 선발하고, 스타의 생명주기를 연장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스타를 우상화해 흥행 성공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팬클럽을 지원·관리하는 것도 에이전시다. 팬클럽은 스타를 부당한 대우와 외부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투사다.

    에이전시의 활약에 따라 스타의 운명은 달라진다. 일례로 우리나라 영화에 30대 여성스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데 반해, 지금 할리우드를 이끌어가는 여성 스타들은 대부분 30~40대다. 큰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길다는 뜻이다. 이는 에이전시의 철저한 관리의 산물이다. 상황이 이런 만큼 연예권력은 자연스럽게 에이전시 중심으로 재편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PD·기자에 대한 에이전시의 금품 제공은 연예권력이 아직 미디어의 손에 있는 증거라기보다 관행의 성격이 짙다. 신인 데뷔를 위한 일종의 ‘급행료’랄까. 그보다는 스타급 연기자에 대한 에이전시의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하다. 방송사가 에이전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한편, 연예산업에 몰아닥친 검찰 수사 한파에 대해 뜻 있는 인사들은 “올 것이 왔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3~4년 전부터 연예산업이 유망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업체들로부터 많은 자금이 흘러 들어왔습니다. 그 중에는 벤처 붐이 일 때와 마찬가지로 일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도 끼여 있었죠. 아예 그런 눈먼 돈 챙기는 것만을 목적으로 급조된 유령회사 비슷한 것들도 생겼어요. 그러나 연예산업은 벤처산업보다 성공확률이 낮으면 낮았지 더 높지 않습니다. 물론 한번 ‘대박’이 터지면 엄청나게 크지만. 그런데 투자자들은 그런 연예산업의 속성을 잘 몰랐고, 또 업체들은 돈이 들어오는 것만 좋아할 뿐 회사 관리며 사업 확장은 이전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해나갔어요. 그러니 잘될 리가 없었죠. 그동안 숱한 대기업·벤처기업·사채업자들이 이 동네에 들어왔다 빈손으로 나갔습니다. 생각만큼 돈은 안 벌리는데 사회적 각광은 계속되니 벤처업계에 만연했던 식의 부정비리가 활개를 치기 시작한 거죠. 게다가 연예산업은 기본적으로 사람 장사입니다.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많은 만큼 좋지 않은 관행도 많이 남아있는 상태예요.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오늘과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신, 조사대상에 오른 회사의 임원인 한 중견 매니저의 말이다.

    또 다른 중견 음반제작사의 임원은 “이번 기회에 벤처비리 잘라내듯, 나쁜 관행을 퍼뜨리고 줄서기를 강요해 온 구악들을 모두 몰아내야 한다. 미국처럼 스타는 파트너인 매니저와 함께 창의적인 작업에 몰두하고, 변호사·회계사·MBA 출신 등으로 구성된 에이전시는 그를 서포트하며 사업 이익을 내는 데만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직 업계에서는, 괜히 똑똑한 사람들 들여놨다 알맹이 다 뺏기고 만다는 식의 배타적 시각이 있는데 이는 업계 발전을 위해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이쯤에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스타는 정말 그가 출연하는 작품의 흥행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걸까. 종종 ‘너무 높다’는 비난을 듣는 스타의 ‘몸값’은 과연 합리적으로 결정된 것일까. 이와 관련, 두 가지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다.

    1997년, 김휴종 추계예대 문화산업대학원장은 경제통계학적인 분석기법을 사용, 1988∼95년 서울에서 개봉된 영화의 흥행과 주연배우 50명의 영향력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논문 ‘한국 영화스타의 스타파워 분석’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스타의 평균 관객 동원력은 약 3만명. 반면 명망있는 감독이 동원하는 관객은 1만6000여 명에 불과했다. 감독파워가 스타파워보다 약한 셈이다.

    또 하나는 1998년, 김호석 KBS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원이 발표한 것이다. 김연구원은 “게임이론을 적용한 결과 스타를 활용했을 때가 비스타를 활용했을 때보다 언제나 기대 수익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따라서 문화상품 생산자가 스타에게 지불하는 거액의 대가는, 흥행 실패를 피하려는 생산자가 반드시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종의 위험 프리미엄이다. “스타를 활용하는 것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선택이므로, 문화 산물이 상품의 형식으로 교환되는 사회에서는 스타 중심의 문화를 피할 길이 없다. 한마디로 말해 스타가격을 통제하려는 행위는 현실적으로 나타날 수 없으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김연구원의 결론이다.

    두 연구가 이루어진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임을 감안할 때, 또 현재의 연예산업 규모가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것을 감안할 때, 문화상품에 대한 스타의 영향력은 확고부동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처음부터 아예 특정 스타를 염두에 두고 극본을 쓰거나, 뮤지컬을 제작하고, 프로그램을 런칭하는 일이 점차 늘고 있다. 이를 스타 비이클(Star Vehicle)이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이는, 스타의 상품성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스타결정론에 다름 아니다.

    연예인 되기를 갈망하는 청소년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대한민국을 ‘연예공화국’이라 칭하는 이유 중 하나다. 청소년 3명 중 1명이 연예인을 꿈꾸는 나라. 전국을 휩쓸고 있는 ‘개인기 열풍’도 그러한 세태와 무관치 않다.

    청소년들이 스타 되기를 열망하는 것은 높은 시장 가치 때문이다. 스타가 되면 좋아하는 일(청소년들은 연예활동을 놀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을 하며 엄청난 돈을 벌고 대중의 주목 속에서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전에도 스타는 있었다. 그러나 당시 청소년들은 연예인보다는 판·검사나 교사, 현모양처가 되길 바랐다. 지금은 어떤가. 엔터테인먼트 스타에 대한 사회의 평가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대통령이 god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해도 놀라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 god는 대통령 그 이상의 존재, 별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인터넷 상에서 god 팬클럽에 가입한 네티즌은 300만명에 이른다. 골수팬만 70~80만명이다. 그 중에는 40~50대 가정주부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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