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호

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틀린 것 또 틀리고 멋대로 첨삭까지

  • 글: 리동혁 在中 자유기고가

    입력2003-09-26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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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삼국지’의 한글판은 여럿 있지만 아무리 시원찮은 번역물이라도 ‘갑이 을을 죽였다’가 ‘갑이 을에게 죽임을 당했다’로 바뀌지 않았으니, 무용담이나 줄거리만 보자면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 그러나 작품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좋은 번역은 읽기 편하고, 원작의 맛을 살리며, 남들이 비슷한 작품을 옮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침서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이문열 ‘삼국지’의 오류를 지적한 책 ‘삼국지가 울고 있네’를 막 펴내려는 시점에 황석영씨가 6년간 품을 들여 원본의 맛을 최대한 살리고 원전에 충실한 ‘삼국지’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존 한글 ‘삼국지’에 실망이 컸던 만큼 제대로 된 ‘삼국지’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역시 기존 한글판 ‘삼국지’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답습하고 있었다.

    한글판 ‘삼국지’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썼다고 하는 삼국지 해설 혹은 부록에서부터 틀린 곳이 많다는 것이다. 예컨대 ‘삼국지’ 연혁을 다루는 글에 약방의 감초처럼 끼여드는 자료가 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 812~858)의 ‘교아시(驕兒詩)’에 나오는 두 마디와, 북송의 문학가 소식(蘇軾, 1036~1101, 호 東坡)의 ‘동파지림(東坡志林)’에 나오는 한 단락이 그것이다. 이들은 자주 인용되나 해석은 뒤죽박죽이다.

    즉 귀여운 아들을 자랑하는 이상은의 ‘교아시(驕兒詩)’가 황석영 ‘삼국지’ 해제에는 ‘버릇없는 아이’(10권 255쪽)로 바뀌었다. 또 어떤 이가 소동파에게 아이들이 유비를 좋아하고 조조를 싫어한다고 하면서, “이로써 군자와 소인의 영향은 백 대를 지나도 끊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以是知君子小人之澤, 百世不斬)”라고 한 말이 이문열 ‘삼국지’ 부록에는 소식의 말로 변했다(1권 372쪽). 더욱이 장정일, 김운회, 서동훈 공저의 ‘삼국지해제’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는 자신이 편찬한 ‘지림(志林)’에서 ‘삼국지’처럼 군자와 소인을 구별한 책은 백세가 지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삼국지해제’ 30쪽, 김영사 2003년 3월 1판 1쇄)

    중국어를 바로 알거나 이상은의 ‘교아시’ 전문을 찾아보고, ‘동파지림’을 보았더라면 이처럼 황당한 해석이 나올 리 없다. 소설 ‘삼국지’는 소동파가 백골로 변한 뒤 200년쯤 지난 원나라 시대에 나왔다는 것쯤이야 ‘삼국지’ 애호가들에게 상식 아니겠는가.



    최신 한글 판본인 황석영 ‘삼국지’를 중심으로 한글 ‘삼국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봄으로써 ‘삼국지’의 제 모습을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중국에서는 ‘삼국연의(三國演義)’로 알려졌으나 서술의 편리를 위해 ‘삼국지’로 지칭한다.

    이상한 원전 해석, 일러두기부터 틀려

    황석영 ‘삼국지’는 원서의 판본부터 꼼꼼히 골랐다고 한다. 언론 보도는 이렇게 적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국내 번역본들은 대개 대만 삼민서국(三民書局)에서 나온 ‘삼국연의’를 원본으로 삼았지만, (황석영씨는) 1999년 중국 상하이에서 나온 ‘수상삼국연의’를 원본으로 했다. ‘수상삼국연의’는 청대에 나온 모종강본 삼국지의 번잡한 가필을 바로잡고 명대 나관중의 원본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판본으로 꼽힌다.”

    보통 명대 나관중 원본이라면 나관중이 엮은 가정본(嘉靖本, 1522년 출판)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를 가리킨다. 필자는 1986년에 상해고적(上海古籍)출판사의 간체자 문자표본(전2권, 1980년 4월 초판 1쇄, 1984년 6월 초판 3쇄)을 샀고, 2003년에는 고서와 형식이 거의 같은 인민문학출판사 영인본(전8권, 1975년 7월 초판 1쇄)도 갖췄다. 개인적으로는 나관중본을 더 좋아하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황석영 ‘삼국지’를 펼쳐보니 일러두기의 설명은 기사와 달리 다음과 같았다.

    “이 책은 중국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발간한 간체자(簡體字) ‘삼국연의’와 이를 번체자(繁體字)로 바꾼 강소고적(江蘇古籍)출판사의 ‘수상삼국연의(繡像三國演義)’를 저본으로 했다.”

    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삼국지’에 등장하는 무기들. 왼쪽부터 청룡언월도, 장팔사모, 방천화극.

    판본에 대한 해석부터 이상했다. 중국에서 번체자로 된 옛날 책들을 간체자로 바꾸어 펴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간체자로 된 책을 번체자로 바꾸면 시장성이 없거니와 연구가치도 없다. 또 지금 베이징 고서시장에서 인민폐로 50~80위안을 주면 1950년대 인민문학출판사판 ‘삼국지’를 살 수 있다. 당시는 간체자가 보급되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번체자로 찍었으니 이리저리 옮길 필요도 없다. 고서적 정리라면 내로라하는 강소고적출판사가 다른 출판사의 책을 뒤집어 펴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어 황석영씨는 ‘옮긴이의 말: 원문의 맛 그대로 느끼는 고전의 재미’에 이렇게 썼다. “이때에는 상하이 강소고적출판사에서 펴낸 ‘수상삼국연의’를 저본으로 했다.”(1권 12쪽)

    중국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상하이는 직할시고 장쑤(江蘇)는 성(省)이다. 강소고적출판사는 난징(南京)시에 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처럼 처음부터 옮긴이와 펴낸이의 주장이 다르니 판본에 대한 믿음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明公과 明上의 차이

    지금 중국의 큰 서점에 가보면 ‘삼국지’가 20종쯤 나와 있어 중국인들도 ‘삼국지’를 살 때는 갈팡질팡한다. 심심풀이용이라면 아무거나 상관 없지만 제대로 된 ‘삼국지’를 읽으려는 사람이라면 좋은 판본을 가릴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일단 조조에게 포위당한 여포가 원술 측에 사람을 보내 도와달라고 사정하는 장면에서 ‘명공(明公)’이라고 되어 있으면 보통 모종강본에서 파생된 판본이고, ‘명상(明上)’이라 적혔으면 인민문학출판사 판본에 기초한 것이다. 인민문학출판사는 ‘삼국지’를 정리하면서 나관중본에 나오는 ‘명상’이 더 논리에 맞다고 인정해 모본의 ‘명공’을 되돌려놓았다. 원술은 당시 황제를 자칭했기 때문에 ‘명공’ 대신 ‘명상’을 써야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에서다.

    그런데 황석영 ‘삼국지’는 3번 모두 ‘명공’(2권 173~174쪽)이라 했다. ‘명공’이라는 낱말만 보면 인민문학출판사 판본이 아닌 어느 모종강본의 정리본을 참조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인명, 지명에서는 확실히 인민문학출판사의 판본을 참고해 고친 흔적들이 있다. 하지만 우석대 전홍철 교수가 쓴 ‘삼국지’ 해제 ‘소설 삼국지의 오랜 역사와 변함없는 매력’에서 오류가 나타난다. 그중 가장 황당한 것은 황석영 ‘삼국지’가 원본으로 삼았다는 인민문학출판사본을 높이기 위해 모종강본을 깎아 내린 대목이다. .

    “방금 언급했듯이 모본은 명대 고본(古本, 나관중본과 동일)을 바탕으로 청대 독자들의 구미에 맞추어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출간 당시에는 모본이 독자들에게 널리 환영받았을지 모르나, 수 차례 개정하면서 나본의 정확성을 크게 훼손하고 말았다. 텍스트의 신뢰도에서 보면 명대 나본이 청대 모본보다 정확하다 할 수 있는데, 모본이란 개정판이 등장하면서 개선되기보다는 오히려 개악되고 말았던 것이다.”(10권 265쪽)

    뒤이어 전교수는 “인민문학출판사본은 가정 임오년(1522)에 발간된 나본(일명 홍치본)을 참조해 모본의 수많은 오류를 바로잡은 텍스트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267쪽)고 썼다.

    여기서 ‘삼국지’의 저본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인민문학출판사본은 바로 괜찮은 모본들을 몇 종 모아 대조하면서 나관중본은 일부만 참고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래, 중국 대륙에서 잘 팔린 여러 출판사들의 유행본들은 모두 모본을 정리한 것이다.

    또 나관중본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문장이 어수선한 대목이 많고, 인명의 오류 등은 모본보다 훨씬 심하다. 때문에 나관중본은 ‘삼국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읽을 뿐 보통 독자들의 호응을 받기 어렵다. 판본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면 이제 번역문으로 들어가 보자.

    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동한(25~220년)시대의 청동 기병대

    당연한 일이지만 이문열 ‘삼국지’의 오류들이 황석영 ‘삼국지’에서는 바로잡혔는지 관심을 갖고 살펴 보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꼽아보면 오류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기존 한글 ‘삼국지’의 잘못을 답습하고 있다. 장비가 술상에서 조표라는 사람에게 술을 권하니 조표가 사양한다. 이문열씨는 조표의 말을 이렇게 옮겼다. “저는 천계(天戒)에 따라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이문열판 3권 60쪽)

    원문을 보면서 그대로 옮긴 것이다. 천계가 무언지 잘 모르더라도 이해에 불편이 없다. 그런데 황석영 ‘삼국지’에서는 이전에 나온 한글 ‘삼국지’의 ‘하늘에 맹세한 일이 있어서 술을 안 먹겠다’는 오류를 되풀이했다. “이 사람은 하늘에 맹세한 일이 있어서 술을 먹지 못하겠소이다.”(황석영판 2권 58쪽)

    사실 이 경우 ‘천계’는 선천적으로 어떤 기호(嗜好)가 금지됐다는 뜻이다. 그러니 조표는 술이 체질에 맞지 않아 사양한 것이다. 황석영씨의 책에서 장비는 대번에 욕을 퍼붓는다. “이런 죽일 놈 같으니라고. 술을 안 먹겠다고?”(2권 58쪽)

    그 점에서는 이문열판 역시 마찬가지다. “죽일 놈 같으니라고. 어찌하여 너만 홀로 마시지 않겠단 말이냐?”(이문열판 3권 60쪽)

    원문을 제대로 옮기면 장비는 ‘싸움하는 사나이(?殺漢)가 어찌 술을 마시지 않는가’ 하며 술을 권한다. 반박하기 어려운 술꾼의 논리다. 술상의 룰이란 나름대로 있게 마련이고 장비도 술상에서 술을 권하는 방법대로 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싸우는 사나이’가 양쪽 다 ‘죽일 놈’으로 변했다. 이 두 마디가 사소한 듯하지만 사실 장비를 난폭한 무뢰배로 만들고 또 조표는 맹세를 어긴 비겁한 자가 됐다.

    기존 판본을 답습한 오류 가운데 ‘때때로, 무시로, 수시로’라는 뜻을 가지는 ‘부스(不時)’가 ‘불시에’(7권 7쪽)로 바뀌거나, 남쪽의 흙산이란 뜻의 ‘난부(南阜)’가 느닷없이 양쪽 언덕이 되기도 한다. 조조가 원소의 장수 문추(文醜)와 싸우다가 형세가 위급해지자 군사들을 높은 곳으로 피하도록 하는 장면이다. “조조는 채찍을 들어 양쪽 산언덕을 가리키며 말했다.”(황석영판 3권 33쪽). 이문열 ‘삼국지’에는 “문득 채찍을 들어 양쪽 언덕을 가리키며 말했다”로 되어 있다.

    원전의 주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두 번째 유형은 기존 한글판들의 문제점을 의식하고 고치려다 새로 만들어낸 오류들이다. 조조에게 포위된 관우가 잠시 항복하겠지만 이후 반드시 유비에게로 돌아가겠다는 조건을 내세우니, 조조가 주저한다. 관우와 친한 장요가 조조를 설득한다.

    “명공께서는 예(豫), 양(襄) 땅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유현덕이 운장에게 베푼 것은 그저 두터운 은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승상께서 이제 다시 두터운 은의로 그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운장이 어찌 승상을 따르지 않겠습니까?”(이문열판 4권 59쪽)

    어딘가 앞뒤 맥락이 이상한 이 문장은 사실 전국시대의 이름난 자객 예양(豫讓)을 ‘예와 양 땅’으로 잘못 푼 것이고, 보통 사람이라는 뜻인 중인(衆人)을 ‘사람들’로 옮겼으며, 국사(國士)는 빼먹었다. 이는 이미 필자가 ‘삼국지가 울고 있네’에서 지적한 바 있다.

    원문 ‘치부원위랑중런궈스즈룬후(豈不聞豫讓衆人國士之論乎)?’를 알기 쉽게 풀어쓰면 이러하다.

    “저 옛날 예양(豫讓)이 남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보답도 달라진다고 논한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자기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면 보통 사람 정도로 보답하고, 자기를 특출한 인재로 대하면 특출한 인재답게 보답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인민문학출판사본에는 이 대목에 주해가 붙어 있다. “예양은 전국시기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임금(國君)이 중인(衆人, 보통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나를 대하면 나도 보통 사람의 태도로 그에게 보답하고, 만약 그가 국사(國士, 나라의 특출한 인재)를 대하는 태도로 나를 대하면 나도 국사의 태도로 보답하겠다.”

    주해만 보아도 그 뜻은 분명하다. 그런데 바로 그 인민문학출판사본에 근거했다는 황석영의 ‘삼국지’가 원전과는 거리가 있다. “승상께서는 평범한 사람에 대한 대접과 국가적 인물에 대한 예우가 다르다던 예양의 말을 못 들으셨습니까?”(3권 12쪽)

    셋째 유형은 중국 고대문화에 밝지 못해 생긴 오류들이다. 역시 장비의 예를 들어보자. 관우가 잠시 조조에게 항복했다가 장비를 만나자, 장비는 관우를 배신자로 단정하고 죽이려 한다. 관우는 아무리 자신의 결백을 설명해도 말이 통하지 않자 조조의 장수를 죽여 증명하겠다고 말한다. 장비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그렇다면 내가 북을 세 번 울릴 테니 그 동안 적장의 목을 가져오너라.” 관우가 응낙하고 말을 달려나간다.

    “때마침 장비가 몸소 북채를 쥐고 북을 울렸다. 첫 북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관운장의 청룡도가 번뜩이더니 채양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황석영판 2권 85~87쪽)

    이문열 ‘삼국지’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겨우 첫 번째 북소리가 났을 때였다. 관공의 청룡도가 번쩍 들렸다 내려쳐지는 곳에 채양의 목이 날았다. 눈 깜짝할 새에 대장이 목 없는 시체로 변하는 꼴을 보자…”(이문열판 4권 159쪽)

    아무리 과장이라도 북 한 번 치는 사이에 적을 죽이는 일이 가능할까. ‘북을 세 번 울릴 테니’와 ‘첫 북소리가 끝나기 전에’의 원문은 ‘싼퉁구바(三通鼓罷)’ ‘이퉁구웨이진(一通鼓未盡)’이다. 고대 중국 독자들은 군대가 북 치는 소리를 들을 기회가 많았기에 ‘퉁(通)’의 의미를 쉽게 이해했는데, 현대의 연구자들은 반드시 고대의 군사제도를 조사해보고, 옛날 병서(兵書)들을 한바탕 뒤져야 북 치는 규정을 조금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삼통고가 파하면’하는 식으로 옮겨도 독자들이 대충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것을 ‘번’으로 옮기면서 그 의미가 더욱 모호해졌다.

    ‘퉁(通)’이란 일정한 리듬과 규정에 따라 북을 한바탕 두드리는 것을 가리킨다. 알기 쉽게 비유하면 “내가 악악악 세 번 소리칠 테니”가 아니라, “내가 노래 세 곡을 부르는 동안”이 된다.

    오류의 네 번째 유형은 제멋대로 고쳐 옮긴 것이다. 몰라서 틀린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읽다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관우가 왕충이라는 장수와 싸우다가 짐짓 달아난다. 왕충이 쫓아가 산허리를 돌아선 순간, 관우가 되돌아서서 달려들며 왕충의 갑옷자락을 움켜쥔다. “한순간에 왕충을 사로잡아 옆구리에 끼고 본진으로 돌아오니…”(황석영 2권 250~251쪽)

    원작에서 관우가 쥔 것은 ‘레이쟈타오(勒甲?)’, 말하자면 갑옷을 졸라맨 띠였다. 그런 튼튼한 띠를 틀어쥐면 사람을 꼼짝못하게 할 수 있겠지만 그 무슨 갑옷 자락을 쥐고 묵직한 장수를 가지고 논다는 것은 무협소설에서나 나올 일이다. 원문에는 ‘헝단위마상(橫擔於馬上)’, 즉 말 위에 가로 걸쳐놓았다고 되어 있다.

    아무튼 한글 ‘삼국지’를 읽다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논리에 맞지 않다고 느껴지는 대목은 대부분 이런 오역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글로 읽기에 불편함이 없더라도 중국문화를 잘 아는 사람에게는 이상한 대목도 있다. 황석영의 ‘삼국지’는 조조와 유비의 영웅담이 이문열의 ‘삼국지’에서처럼 심하게 틀리지는 않았으나, 조조가 유비를 영웅이라 지적하니 유비가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가 수습하는 대목에서 엉뚱하게 오역하고 말았다.

    ‘몸을 숙여’와 ‘머리를 숙이며’

    “현덕은 천연스레 몸을 숙여 떨어뜨린 젓가락을 집으며 혼잣말처럼 되뇌인다.”(2권 218쪽) 오역과 변형이 많은 이문열의 ‘삼국지’에서도 이 대목은 ‘머리를 수그려’라고 ‘푸서우(俯首)’를 제대로 옮겼는데, 황석영은 ‘몸을 숙여’라고 고쳤다. 217쪽에 있는 삽화에서 유비와 조조가 의자에 높직이 앉아 있으니 머리만 숙여서는 땅에 떨어진 젓가락을 집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물론 명나라, 청나라 ‘삼국지’ 판본들에도 유비와 조조가 의자에 앉은 그림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머리를 숙이며’를 ‘몸을 숙여’로 고치지는 않았다. 1990년대에 중국의 관영TV에서 드라마 ‘삼국지’를 찍을 때, 자문을 한 학자가 가장 힘주어 요구한 점이 바로 인물들의 앉는 자세였다. 후한 말과 삼국시대에는 사람들이 흔히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꿇어앉았고, 탑(榻)이라고 하는 낮은 침대가 있어 눕거나 앉았는데 탑 위에 앉을 때에도 반드시 무릎을 꿇어야 예절에 맞았다. 때문에 소설에서 유비는 당연히 돗자리에 꿇어앉고 머리만 약간 숙여도 얼마든지 땅에 떨어진 젓가락을 집을 수 있었다. 후세 중국인들의 생활상만 생각하고 제멋대로 원문의 뜻을 뒤집어버린다면 충실한 번역이라 하기 어렵다.

    다섯 번째 유형은 독자들을 위해 원문을 풀어쓰거나 해석을 붙이려다가 중국어에 없는 말을 만들어낸 오류들이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 관우가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 비록 지금 궁지에 몰렸으나 죽음을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으니…” (황석영판 3권 10쪽)

    중국어의 성구(成句) ‘스쓰루구이(視死如歸)’를 문자 그대로 풀면 ‘죽음을 돌아가는 것처럼 본다’는 말이다. 어디로 돌아가는가. 권위 있는 사전들에는 전부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본다’고 해석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어림짐작으로 옮겼거나 시원찮은 사전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사마사(司馬師)가 관구검(?丘儉)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관원들과 상의하니 정무(鄭?)라는 사람이 방어를 주장한다. “이는 주아부(周亞夫, 한 문제 때의 명장 주발)가 즐겨 쓰던 계책입니다.” (황석영판 10권 30쪽)

    그러나 주아부(?~기원전 143)는 주발(周勃, ?~기원전 169)의 아들로 단 한 차례 계책을 썼을 뿐이다. 원문의 ‘창처(長策)’는 좋은 계책이라는 뜻이지 ‘즐겨 쓰는 계책’이 아니다. 한글 사전에서도 ‘장책’은 ‘1. 원대한 계책 2. 승산(勝算)’이라고 해석한다. 이 경우 ‘창(長)’은 좋다는 뜻이지 오래 썼거나 즐겨 썼다는 뜻이 아니다. 한글 ‘삼국지’들은 알 듯하면 대담하게 뜯어고쳐 문제가 생긴다.

    촉나라 대신 초주(?周)가 강유(姜維)에게 보낸 글 ‘수국론’은 또 어떻게 해석했을까. “초주는 마침내 수국론(?國論, 나라를 바로잡는 방법을 논함)을 한 편 지어 강유에게 보냈다.”(황석영판 10권 74쪽) 수(?)는 중국어에서 10가지 이상의 뜻이 있지만 무엇을 바로잡는다는 뜻은 없다. 교열(校閱)한다는 뜻이 있다 하여 나라도 바로잡는다고 비약하면 억지다. 여기서 수국은 적국(敵國)이라는 뜻이다.

    이와는 반대로 한 글자 한 글자 뜯어보다가 애매하면 과감히 빼버리거나 어림짐작으로 바꾸는 것도 한글판 ‘삼국지’들의 고질적인 문제다. 주창이 배원소의 입을 거쳐 관우에게 소개될 때, 그 특징으로 ‘반레이츄란(板肋퓧髥)’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문열은 ‘얼굴이 검고 규룡(퓧龍)과 같이 꾸불꾸불한 수염’(4권 151쪽)이라 했고, 황석영은 ‘기골이 장대하며 메기 같은 수염을 길렀는데’(3권 79쪽)라고 썼다. 사실 ‘츄란’은 곱슬곱슬한 수염이고, ‘반레이’는 가슴과 등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근육을 가리키니 연변에서 나온 ‘삼국지’의 ‘가슴은 쩍 벌어지고 곱슬수염이 났는데’가 더 낫다.

    ‘쏘아 날려버렸다’가 ‘끊어버렸다’로

    또 글자를 명사만 보고 동사는 내버려두어 말뜻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조조의 장수 장요가 원소의 장수 문추를 쫓아가는데 문추가 활을 쏜다.

    “장요는 급히 고개를 숙여 화살을 피했는데, 날아든 화살은 장요의 투구를 맞추어, 투구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황석영판 3권 34쪽)

    “장요가 얼른 고개를 숙여 날아오는 화살을 피했다. 그러나 화살은 장요의 투구를 맞추고 투구 끈을 끊어놓았다.”(이문열판 4권 91쪽)

    장요는 더욱 분발하여 쫓아간다. 투구 끈이 끊어지면 투구가 비뚤어지거나 벗겨졌을 텐데 죽고 싶어 쫓아갔을까. 또 화살이 투구에 부딪치는 진동에 투구 끈이 끊어진다면 끈이 참 허술하다 싶다.

    원문 ‘쟝잔잉써취(將簪纓射去)’를 그대로 옮기면 ‘잠영(簪纓)을 쏘아 보내버렸다’이다. 잠영은 옛날 급 높은 사람들이 관을 쓸 때 사용하던 비녀와 갓끈이고, 또 귀족들의 별칭이기도 하다. 몇 십 년 전에 나온 한글 ‘삼국지’들에서부터 같은 오류가 되풀이되는 걸 보면 이전에 우리 말로 ‘삼국지’를 옮긴이가 잠영의 원뜻만 알고는 투구에 비녀가 있을 수 없으니 비녀 ‘잠(簪)’은 빼버리고 ‘영(纓)’을 끈으로 해석한 모양이다. 그런데 ‘쏘아서 보내버렸다’는 말을 잘 모르겠으니, 아예 ‘끊어버렸다’로 풀었다.

    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각종 ‘삼국지’관련 출판물



    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세 명이 탑승하도록 되어 있는 전차. 앞쪽에는 1명, 뒤쪽에는 2명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명나라 판본 ‘삼국지’를 보니 ‘쿠이잉(?纓)’, 즉 투구 끝에 단 장식용 술로 되어 있어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그러나 유행판본에서는 보다 점잖은 낱말을 골라 ‘잠영’이라 하다 보니 한글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워졌다. 사실 장요가 머리를 숙이니 화살이 투구 정수리에 달아맨 장식용 술을 맞혀 떨어뜨린 것이다.

    그밖에 황석영 ‘삼국지’ 33회에 조조가 원소의 아들들을 추격하다가 일부러 요동까지 쫓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106회에서는 ‘조조가 요동에 가지 않았더니’라고 해야 할 대목을 ‘조조가 미처 요동에 이르기 전에’(9권 217쪽)로 해서 소설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시의 번역은 매우 어려워 완벽함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황충의 죽음에 이어 “다시 금쇄갑을 걸치고(重披金鎖甲)”라고 해야 할 말을 “무거운 금쇄갑 떨쳐입고”(7권 203쪽)라고 잘못 옮긴 것은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중국어의 구조로 보아 동사 앞에 붙은 글자 ‘중(重)’이 동사 뒤에 오는 명사의 규정어가 될 수 없거니와, 이때에는 ‘중’을 ‘무겁다’는 뜻의 ‘중’으로 읽지 않고 ‘다시’라는 뜻의 ‘충’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중국 연변에서 나온 우리글 ‘삼국지’는 과연 만족할 만한 수준인가. 그렇지도 않다.

    연변의 한글 ‘삼국지’들도 오류투성이

    필자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출판된 2종의 조선문 ‘삼국지’를 갖고 있다. 모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인민문학출판사의 중국어 판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라고 밝혔는데, 옮긴이의 이름은 없다. 당시는 공동번역이 상례였기에 딱히 누가 옮겼노라고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1962년 8월부터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삼국지’(전4권)는 인민문학출판사 1957년 2판 ‘삼국지’를 옮겼다고 한다. 한자어가 많이 들어가고 세로로 조판하여 요즘 독자들은 읽기가 무척 힘들다. 필자는 어린 시절 이 판본을 통해 ‘삼국지’와 인연을 맺었으나 훗날 중국어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틀린 곳이 너무 많아 호감을 잃고 말았다.

    잘 읽어보면 주해 부분은 중국어 판본에 따랐지만 본문에 한국 고대소설의 말투가 곳곳에 들어가고, 또 이 판본에 있는 오류들이 이문열판이나 황석영판에도 적지 않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광복 전에 나온 한글 ‘삼국지’에 상당히 의지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조표의 말 ‘천계’가 ‘하늘에 맹세를 한 적 있다’는 식의 번역오류가 자주 눈에 띈다.

    그밖에 한글 ‘삼국지’들에서 예외 없이 틀린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주유가 유비를 손권의 누이에게 장가들게 하여 유비를 장악하려다 결국 실패하는데, 이때 제갈량 수하의 군사들이 주유를 풍자하는 말이 있다. 원문은 ‘페이러푸런유저빙(陪了夫人又折兵)’이다. ‘부인을 잃고 군사마저 손해 보았다’는 뜻인데, 장사에서 밑천마저 잃었다는 식으로 톡톡히 밑졌다고 풍자하는 맛이 강하게 풍긴다. 그런데 연변 ‘삼국지’에서는 그런 맛이 사라졌다.

    “부인을 모셔다드리고 군사마저 패했구나.”(1960년대 연변 ‘삼국지’ 2권 881쪽)

    ‘페이러푸런(陪了夫人)’의 ‘페이(陪)’가 워낙 ‘모시다, 동반하다’는 뜻이 있기는 하지만, 고대 중국어에서는 이 경우에 ‘페이(陪)’가 ‘페이(賠)’와 같이 ‘밑지다, 손해 보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또 중국 현대 작품에서나 속어에서도 이중으로 손실을 보았다는 뜻의 ‘페이러푸런유저빙’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이럴 때에는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페이(賠)’를 쓴다. 그런 말을 한 번이라도 듣거나 보았더라면 제대로 옮길 수 있었는데 엉뚱하게 틀려버렸다.

    그 후 연변인민출판사에서는 1970년대에 가로로 조판한 ‘삼국지’(전3권)를 출판했다. 설명에는 인민문학출판사 1973년 12월 3판 ‘삼국지’에 근거해 번역했다고 하지만, 2가지 판본을 대조해보면 새로 번역했거나 많이 수정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당시 그 출판사에 근무했던 필자의 어머니가 1960년대 ‘삼국지’를 펼쳐놓고 ‘적벽 대전’ 부분을 원고지에 베껴 옮기시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세로로 된 옛 판본은 조판하기 불편해서 글씨를 곱게 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로줄 원고지에 다시 옮기도록 한 것이다. 다행히 1996년 7월 내놓은 ‘삼국지’에서는 ‘모셔다 드리고’가 ‘잃고’로 바로잡혔다. 하지만 ‘천계’를 ‘하늘에 맹세한 적이 없다’고 옮기는 식의 오류는 여전했다.

    삼국지 팬 울린  한글판‘삼국지’

    제갈량의 팔진도. 부대를 여덟 개로 편성해 우물정(井)자 형태로 둥글게 배치했다.

    옌볜대학 장의원(張義源), 김일(金日) 두 선생이 ‘중한번역교정(中韓飜譯敎程)’이라는 책에서 중한 번역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오류로 ‘모셔다 드리고’를 꼽기도 했다. 두 분의 견해가 한글 ‘삼국지’들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지적했다 싶어 아래에 옮긴다.

    “문제는 번역문의 앞 구절과 뒤 구절이 무슨 의미를 연계시켜 말했는가, 누가 누구의 부인을 무슨 사연으로 어디에 모셔다 드렸으며 그것이 군사마저 패하게 된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등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글 뒤의 사실을 생각하고 밝혀보려 했다면 번역자는 이런 정도의 미미한 번역문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의 뜻은 ‘부인도 잃어버리고 군사마저 패했도다’이다. 너무도 경솔한 번역이었다.”(‘중한번역교정’ 25쪽, 2003년 1월 초판 1쇄)

    금년 4월 옌지 서점에서 최신판 연변인민출판사의 ‘삼국지’를 보았는데, 대충 봐도 1970년대 판본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연변에서 나온 ‘삼국지’들을 살펴보면 고대소설의 말투를 버리지 못했고 한자어가 대량 나타나 새 세대들이 보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러나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서인지 틀린 부분은 많아도 아는 척하며 뜯어고친 곳은 없어 차라리 엉뚱한 오류가 적다. 특히 주해부분은 현대 중국어판에 의거했기에 거의 정확하다.

    한국에 진정한 ‘삼국지’가 없다는 말을 꽤나 많이 들었다. 또 인터넷에서 ‘삼국지’ 관련 자료들을 검색해보면 황당한 견해들이 수두룩하다. 별로 팔리지 않은 ‘삼국지’들은 논할 가치도 없겠지만 잘 팔린 ‘삼국지’조차 적지 않은 오류를 범한 원인을 나름대로 밝혀본다.

    우선 중국어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글자의 뜻은 한 글자 한 글자 그럭저럭 짐작해가면서 이해하더라도 한 마디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삼국지’를 만만하게 봐서 소설 한두 권만 쥐고 옮겼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중국 고대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 근본 원인이다. 한글 ‘삼국지’를 보면 별로 어렵지 않은 듯하고 중국어 원본도 대충 읽어보면 쉬운 듯하다. 시장성만 내다보고 손을 대다가는 웃으면서 시작해 울면서 끝내기 쉬운 것이 ‘삼국지’ 같은 중국 고전작품들의 번역이 아닌가 싶다.

    웃으며 시작했다 울면서 끝내는 까닭

    ‘삼국지’를 번역하려면 중국역사와 고대언어에 정통해야 한다. 삼국지에는 고대에 유행하던 속어가 많이 등장한다. 지금도 쓰이는 것은 괜찮지만 원, 명 시대에 퍼졌다가 사라진 속어들은 뜻풀이가 쉽지 않다. 방통이 조조와 손권을 ‘손금 보듯 한다’고 말한 ‘장상관원(掌上觀文)’이 한글 ‘삼국지’들에서는 ‘손바닥에 있는 글 읽듯 볼 수 있는데’(이문열)나 ‘손바닥에 적힌 글 보듯 하는 터에’(황석영)로 되어, 모사 방통이 커닝하는 학생 꼴이 되어버렸다.

    또 ‘삼국지’에는 시(詩)와 고문(古文)이 자주 등장한다. 사실 시의 수준은 별로 높지 않고 간신히 시의 규율에 맞춘 정도다. 그 때문에 모종강본은 나관중본에 나오는 시골선비 수준의 엉터리 시들을 많이 잘랐지만, 일단 조조 일파를 욕하는 시나 유비 집단을 칭찬하는 시는 보류하거나 약간 다듬었고, 또 당송 시대 명 시인들의 작품을 조금 바꿔 넣었다.

    시는 약간 잘못 옮기더라도 본문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고문은 내용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해 첨가한 것인데 틀린 데가 많으면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이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유비가 한중왕으로 올라가면서 황제에게 바치는 글에 ‘저우얼다이, 빙주지(周監二代, 幷建諸姬)’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을 바로 옮기면 “주나라는 전대의 두 왕조인 하(夏)나라, 은(殷)나라의 교훈을 받아들여 왕의 일가족인 희(姬)씨들을 제후로 많이 봉하였으니”가 된다. 이 글이 한글 ‘삼국지’들에 이르러선 “주나라를 살피건대 주실(周室)은 종친 외에 희씨(姬氏)도 왕으로 세웠으나”(이문열판 8권 107쪽)라거나 “주(周)가 2대(殷·夏)에 걸쳐 제희(諸姬, 주나라 왕족들)를 나란히 세움은”(황석영판 7권 12쪽)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조선을 살피건대 조선 왕실은 종친 외에 이씨(李氏)도 대군(大君)으로 세웠으나’라고 쓰거나 혹은 ‘이성계의 조선이 신라와 고려에 걸쳐 여러 이씨들을 나란히 세움은’이라고 쓴다면 웃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한글 ‘삼국지’에서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나오는 고서 인용문들은 대부분 틀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오나라가 망한 다음 손씨 가문의 한 사람이 옛날 손책은 기업을 세웠는데, 오나라의 마지막 임금 손호는 나라를 버렸다고 한탄한다. 이어 황석영의 ‘삼국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유유한 푸른 하늘이여, 어찌 이런 사람을 내었단 말인가!”(10권 238쪽)

    원문의 ‘유유창톈, 츠허런자이(悠悠蒼天, 此何人哉)!’를 글자 그대로 옮기면 위와 같다. 그런데 이 말은 ‘시경(詩經)’의 ‘왕풍 서리(王風 黍離)’에 나오는 시구(詩句)로 이때 사람 인(人)은 어질 인(仁)과 같은 뜻을 갖는다. 하늘이 너무나도 어질지 못하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하늘도 무심하구나!’쯤 된다. 이런 점에서는 이문열 ‘삼국지’가 낫다. “넓고 넓은 푸른 하늘아, 이 어찌된 일이냐!”(이문열판 10권 423쪽)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위 아래도 없는 ‘삼국지’

    ‘삼국지’ 원전이라 해도 그대로 믿을 것은 아니다. 인민문학출판사 판본이 가장 좋다고 알려지긴 했으나 주로 본문과 인명, 지명 그리고 뜻은 엇비슷하지만 청나라 시대의 말로 된 것을 원나라, 명나라 시대의 말로 되돌려놓는 데 신경을 썼고, 고문 부분은 별로 살펴보지 않았다. 때문에 위에서 말한 유비가 한중왕이 되어 올린 글에도 틀린 글자들이 있는데, 한글판에서는 틀린 말을 억지로 풀려 하다 말이 괴상하게 된 곳이 눈에 띈다. 이때는 정사 ‘삼국지’의 원문과 대조해야 한다.

    또 어떤 글자나 낱말이 고대 중국어와 현대 중국어에서 다른 뜻을 갖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찬쿠이(慙愧)’가 지금은 ‘부끄럽다’는 뜻으로 쓰이나 고어에서는 ‘요행이구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고대 중국어를 현대어로 뜻풀이를 하면 뜻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한글판들에서 고대 중국의 인간관계를 몰라 사람들이 함부로 반말을 하는 따위의 오류는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글 ‘삼국지’를 보면 중국 원본과는 달리 교만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옛날 중국에서 대화할 때 상대방의 벼슬을 들어 말하면 아주 존경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자(字)를 부르면 상당히 존경하는 것이니 반드시 아주 높임체나 두루 높임체로 옮겨야 한다. 또 자기 이름을 대면서 말하면 자신을 상대보다 좀 낮은 지위에 놓기에 적어도 ‘하오’ 정도로 옮겨야 하는데 한글 ‘삼국지’에서는 낮춤체가 되어 ‘이래라 저래라’식이 되어버렸다.

    인간관계를 하나 예로 들어보면 형양 태수 왕식과 낙양 태수 한복을 황석영 ‘삼국지’에서는 ‘집안끼리 절친한 사이였다’(3권 63쪽)라고 썼고, 이문열‘삼국지’에서는 ‘집안끼리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4권 132쪽)고 썼다. 원문은 ‘친가(親家)’인데 고대에 친척집이라고 할 때에는 ‘친쟈’로 읽지만, 이제 그 말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대신 ‘칭쟈’라고 읽어 ‘사돈’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왕식과 한복은 그저 친하거나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사돈 사이였던 것이다. 이쯤 하면 ‘삼국지’ 번역에 달려들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가지 않을까.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좋은 판본 하나를 손에 넣었다 하여 반드시 좋은 번역 작품이 나온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반드시 여러 가지 판본과 관련 자료들을 두루 갖춰야 한다.

    올바른 한글판 출간을 기다리며

    제대로 된 한글 ‘삼국지’가 나오려면 한글 문장력과 중국어 실력은 물론 중국 자료들을 두루 갖춰야 한다. 우선 소설 원본으로는 적어도 인민문학출판사본, 나관중본, 모종강본 등 서너 가지는 있어야 대조하면서 최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관련 역사책은 필수로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배송지(裴松之)의 주해가 있는 판본이어야 함), 범엽(範曄)의 ‘후한서(後漢書)’,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이 있어야 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그리고 방현령(房玄齡) 등이 편찬한 ‘진서(晉書)’도 보는 편이 좋다. 간체자를 잘 알면 중국 현대 학자들의 저서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또 참고서적으로는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손자병법(孫子兵法)’ ‘시경(詩經)’ ‘전국책(戰國策)’ 등 선진(先秦)시대의 고서들과 고대 문화, 군사제도 따위를 연구한 책들도 봐야 한다. ‘삼국지’를 연구한 책도 많이 볼수록 좋다. 사전도 질 좋은 ‘고대한어사전’ ‘성어사전(成語辭典)’이 있어야 엉뚱한 해석을 피할 수 있다.

    이처럼 자료들을 다 갖춘 다음은 옮긴이의 안목에 달렸다. 원본이 틀렸으면 그 틀린 데를 바로잡아야지 엉터리로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중국어 원본에 하자가 있어 이야기에 악영향을 미친 예가 하나 있다. 이 부분에서 황석영과 이문열의 해석은 여간 이상한 게 아니다. 조조가 여포와 싸우다가 포위를 뚫지 못해 애타할 때 장수 전위가 나서는 대목을 꼼꼼히 비교해보자.

    전위의 손에는 철극 한 쌍이 쥐어져 있다. 그는 몸을 날려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쌍철극은 옆구리에 끼고 단극(短戟) 10여 개를 두 손에 나눠 쥐고서, 수하 군사들에게 명한다. “내 뒤로 적들이 10보 안에 들어오거든 알려다오.” 그리고는 화살을 뚫고 뛰기 시작한다. 여포의 기병 수십 명이 말을 몰아 급히 뒤를 쫓는다.(황석영판 1권 268쪽)

    군사들이 “10보요!” 소리치니 전위가 다시 5보에 들어오면 알리라 하고, 5보가 되었다는 말을 듣자 전위가 싸우기 시작한다. ‘전위는 번개같이 몸을 돌려 손에 쥐고 있던 단극을 한 자루씩 날린다.’ 하나에 적을 하나씩 죽여 10여 명을 거꾸러뜨리니 ‘남은 무리들은 더 이상 뒤쫓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일제히 흩어져 달아난다. 전위는 다시 말에 뛰어올라 한 쌍의 철극을 휘두르며 적군 속으로 뛰어들었다.’(위와 같은 쪽)

    대부대가 앞으로 내달려 포위망을 뚫어야 하는데 적들이 앞장선 장수를 뒤쫓느니 뭐니 하는 것이 이상하다. 말에서 내려 앞으로 뛰어가는 전위를 적군이 뒤로 바싹 달려들었으면 전위가 탔던 말은 어디에 있고 그에게 거리를 보고하는 군사는 어디에 섰는가. 또 조조는 어디에 있는가. 이문열은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고 합리적인 해석을 가하려 애썼다.

    전위는… 한 쌍의 쇠창(쌍철극)을 들고 말에서 몸을 날려 땅에 내려서며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쌍철극을 말안장에 걸고 던질 수 있는 짧은 창 십여 개를 모아 쥐면서 따르는 군사에게 말했다. “만일 적이 등 뒤 열 발자국 안으로 들어오거든 나를 불러라.” 전위는 그 말과 함께 조조 앞에 서서 화살을 무릅쓰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걸 본 여포의 군사 수십 기가 말을 달려 쫓아왔다. 말 탄 사람과 걷는 사람의 경주이니 사이가 금세 가까워질 것은 뻔한 이치였다.

    곧 몇 기가 전위의 등 뒤 열 발자국 안으로 들어왔다. 뒤따르던 군사가 알리니 전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다섯 발자국 안으로 들어오면 알리라 한다. 어지러이 날아드는 화살을 짧은 창으로 쳐내느라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던 것이다.

    조조 부근에는 아직도 지키는 군사가 많았으나 다시 오래잖아 여포의 기마 몇 기가 전위의 등 뒤 다섯 발자국쯤 되는 곳까지 이르렀다. 군사가 급히 다시 소리친다. 그러자 전위는 힐끗 돌아서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짧은 창을 연달아 날렸다. 구슬픈 비명과 함께 다섯 발자국 안으로 들어왔던 여포의 군사들은 모두 말 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이문열판 2권 309~310쪽)

    우선 보(步)는 시대에 따라 그 길이가 변하기는 했지만 간단한 발자국이 아니다. 철극도 옆구리에 끼거나 안장에 걸지 않았다.

    황석영과 이문열은 다 마찬가지로 합리적인 번역문을 만들려고 원문에 없는 ‘등뒤’와 ‘뒤쫓는다’ ‘돌아선다’는 말을 보탰지만 그래도 석연치 않다. 원본에 여포의 기병들이 ‘주이즈(追至)’ 즉 ‘쫓아왔다’고 썼기에 합리화하려고 덧붙인 것이다.

    여러 판본 비교하고 연구해야

    그런데 지금 중국의 판본들이 모두 ‘주이즈’라 하고 있지만 이는 오류다. 워낙 나관중본에는 그 기병들이 ‘진쳰(近前)’, 즉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고 썼다. 모종강본에서 바짝 다가갔다는 ‘퍼즈(迫至)’로 쓰려다 잘못해서 ‘주이즈(追至)’가 된 것이 분명하다. 모종강본과 나관중본을 종합해서 이 대목을 다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전위는 말에서 뛰어내려 쌍철극을 땅에 꽂고, 단극 십여 개를 손에 끼더니 종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적이 십 보 거리에 들어오면 불러라!” 그리고는 머리를 숙이고 화살을 무릅쓰며 성큼성큼 나아갔다. 여포군의 화살을 잘 쏘는 기병 수십 명이 가까이 다가왔다. 종자가 십 보라 알리니, 전위는 또 다섯 보에 들어오면 알리라 한다. 종자가 소리친다. “적이 이르렀습니다!” 전위가 화극을 날려 찌르는데 하나에 적군 하나씩 어김없이 말에서 떨어진다. 잠깐 사이에 십여 명을 죽이자 남은 무리들은 다 도망갔다. 전위는 되돌아와 몸을 날려 말에 올라 쌍철극을 끼고 적진으로 달려 들어갔다. 여포의 장수들은 막아내지 못하여 다 달아났다.

    조조와 다른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고, 전위만 홀로 먼저 나아갔다. 그는 머리를 숙여 투구와 갑옷으로 화살을 받으면서 전진하였기에 적을 볼 수 없어 뒤에 있는 종자로 하여금 거리를 알리게 한 것이다. 그러다가 적이 코앞에 닥쳐왔다고 하자 구부렸던 허리를 펴면서 짧은 단극을 날려 적군을 찔렀다.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이처럼 똑같지 않은 여러 판본들을 비교하고 연구해야 바른 글이 나온다. 어떤 중국학자들은 “현존하는 20~30종의 ‘삼국지’를 전부 컴퓨터에 입력하여 가장 완벽한 ‘삼국지’를 만들어내자”고 말한다. 헌데 그런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떤 것을 고를 것인가 하는 마지막 선택은 역시 한두 사람에게 달렸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완벽이란 천사의 꿈이어야지, 인간의 바람이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완벽함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간단한 오류들을 고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충분한 원본, 풍부한 자료, 높은 안목을 갖추면 완벽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대로 된 한글 ‘삼국지’를 번역해낼 수 있다. 그러자면 우선 기존 한글판에 매달리는 악습부터 버리고, 철저히 원저와 관련 자료에 근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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