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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환의 문화오디세이 ③

20세기 풍미한 영웅대망론

박정희는 왜 나폴레옹을 숭배했나

  • 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icnunc@nate.com

20세기 풍미한 영웅대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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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박정희’라는 복잡다단하고 모순적인 정신과 그 형성과정을 들여다보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폴레옹 숭배와 관련해 박정희는 결코 특별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폴레옹, 즉 나파륜(拿破崙, 那破崙, 羅破崙 등으로 표기됐음)을 존경하거나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 작고 가난하며 내성적인 시골 소년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더구나 박정희가 서양사에 이끌린 것은 대구사범의 일본인 역사 선생 사쿠마(佐久間)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시골 벽지에서 자란 그가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선망의 대상은 결코 독창적이거나 세련된 것이기 어려웠을 터이다. 1920~30년대 조선인들은 누구나 나파륜을 잘 알고 있었고 박정희 정도의 이해 수준을 갖고 있었다.

박정희가 여덟 살이던 1925년 1월1일자 ‘동아일보’ 어린이란에는 편지글 형식의 동화 한 편이 실려 있다. 물론 경북 산골에서 자라난 박정희가 신문에 실린 동화를 읽었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하지만 동화는 박정희나 그 동년배들의 의식 형성에 끼친 당대 사회의 분위기를 보여줄 만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 동화의 제목이 ‘편지 왕래-‘워싱턴’이 되려는 수남, ‘나파륜’이 된다는 복동’이다. 장래 희망이 미국의 아비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라는 부잣집 아들 수남이와, 장래 희망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라는 가난한 집 아들 복동이가 계층을 뛰어넘어 우정을 나눈다는 이야기다.



인력거꾼 아들 복동이의 장래 희망

동화 속에서 나이가 예순이라는 복동이의 아버지는 인력거꾼이다. 효심 깊은 어린 복동이는 고생하시는 늙은 아버지가 인력거채를 놓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으며 열심히 공부한다. 만날 반에서 1등이다. 그런 복동이에게 친구 수남이가 “너는 왜 나폴레옹이 되고 싶니?”라 묻는다. 그러자 복동이는 “나파륜도 되려니와 인력거채도 잡아야 하지 않겠나?”고 답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동이의 결심을 더 단단하게 굳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느 못된 술 취한 일본인 손님이 복동이 아버지와 시비가 붙었다. 질이 좋지 않은 오늘날의 취객들이 가끔 택시기사들에게 그러듯, 인력거 요금도 내지 않고 심지어 폭행까지 했다. 착한 아들 복동이는 이야기를 듣고 분하고 슬퍼서 밤새 울었다. 그리고 동화의 결미에서 워싱턴에게 “내가 기어이 성공하마. 인력거채를 잡는 나폴레옹이 되마”고 다시 다짐한다.

이 짧은 동화에는 실로 첨예하고 중요한 몇 가지 코드가 있다. 그것은 곧 인력거꾼의 아들 복동이가 조선의 나폴레옹이 돼야 할 이유와 이어진다. 풀어보면 이야기에는 두 가지 모티프와 두 가지 해결 방안이 있다. 계층의 모티프, 즉 ‘가난의 설움’과 대중적 민족주의가 이야기를 만든 동력이다. 그리고 이는 영웅주의와 출세주의로 해결가능한 문제로 되어 있다.

먼저 나폴레옹과 결부된 계층의 모티프(가난의 설움)를 보자. 청소년이 어릴 때부터 ‘기어이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할 이유가 없다. 부잣집 소년들은 시골뜨기 나폴레옹을 비웃었던 육군사관학교의 동료처럼 되기는 쉬워도 열렬히 나폴레옹처럼 되려 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중심의 문화와 행동양식을 배우고 익히고, 학벌과 유산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인 양 그것(성공이나 출세)을 성취(어쩌면 성취라는 말조차 부적당하다)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소년들은 이를 악물고, 혼자 측간에서 눈물을 짜면서, 멸시와 분노를 이기며 ‘출세’에 다가가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은 책상 귀퉁이에 나폴레옹의 금언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따위를 써 붙여놓는다(‘하면 된다’가 박정희 시대 한국의 국시였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폴레옹이 ‘하루 3시간밖에 안 잤다’는 사실조차 가난한 청년들에게는 자극이 된다. 1929년 1월14일자 ‘동아일보’에는 ‘3시간밖에 안 잔 영웅 나폴레옹도 반드시 낮잠으로 보충하였을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나폴레옹이 3시간밖에 안 잤다는, 확인하기 어려운 사실도 이미 1920년대 대중에게 상식이었던 것이다.

아니 노인도 아닌데 매일 3시간만 자고 어떻게 버티겠나? 그리고 불가능이 없기는 왜 없나? 불가능이 없기는커녕 오히려 가난하고 ‘빽’ 없는 청년의 앞길에는 온통 불가능투성이인데 하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 없는 척, 졸리지 않은 척해야 한다. 인력거꾼이거나 농투성이인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또는 홀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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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정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서울대 강사 hicnunc@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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