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이용호 게이트’ 등 대형사건 수사 유린한 DJ정부 검찰 커넥션

“총장이 내사(內査) 그만 두라 카는데 낸들 우짜겠노?”

  • 글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4-10-25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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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어회 먹는 모임’에서 어울린 신승남 김대웅 이수동
    • “형님은 걱정되는 것 없소? 옆에 총장님도 계십니다”
    • 신승남, DJ에게 줄 선물 이수동과 상의
    • 김홍업 김성환 류진걸과 신승남의 술자리 친분
    • “김성환이 신승남 통해 문제 해결했으니 귀국해도 좋다”
    • 울산지검 특수부를 뒤흔든 신승남의 전화 한 통
    ‘이용호 게이트’ 등 대형사건 수사 유린한  DJ정부 검찰 커넥션
    지난 8월20일 서울고법 형사7부(노영보 부장판사)는 이용호 게이트, 새한그룹 무역금융 사기사건 및 평창종합건설(이하 평창종건) 비리 수사과정에 수사기밀 유출과 수사중단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신승남 전 검찰총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신 전 총장과 더불어 이용호 게이트 수사 때 수사정보를 누설한 혐의로 기소된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에게는 원심대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의 혐의는 2002년 1월 이용호 게이트 특검수사과정에 포착된 것으로, 당시 신 전 총장은 이용호씨에게 로비자금을 받은 혐의로 동생 승환씨가 구속되자 사표를 제출했다. 또 김 전 고검장은 그해 7월 신 전 총장과 함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가 지난해 3월 참여정부의 첫 검찰인사 때 사표를 냈다.

    이번 항소심 판결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재판부가 ‘국민의 정부’ 검찰의 대명사인 이른바 호남검찰의 정치적 행태를 매우 구체적으로 지적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 사건만으로 보면 DJ 정부의 검찰은 대통령의 아들 및 핵심측근과 긴밀한 유대를 맺은 검찰 고위층에 의해 사조직화됐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대통령의 아들 및 그 친구들과 술자리 등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렸던 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그들로부터 특정사건과 관련해 청탁을 받고 수사정보를 알려주는가 하면 수사팀에 내사중단 압력을 넣었다. 또 대통령의 집사로서 정권의 뒤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수동 전 아태평화재단(이하 아태재단) 상임이사와도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면서 그에게 수사기밀을 유출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신 전 총장과 함께 이수동씨에게 수사정보를 알려준 김대웅 전 고검장의 공인답지 못한 처신도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이 세 사람의 사적인 친분이 공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도 관심을 끈다.

    ‘신동아’는 세 사건에 대한 항소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DJ 정부 검찰의 타락상을 고발한다.

    ◇ 신승남, 김대웅의 이용호 게이트 관련 공무상비밀누설죄

    2002년 7월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대검 중수부는 신 전 총장을 공무상비밀누설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김 전 고검장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신 전 총장은 이용호 게이트와 새한그룹 무역금융 사기사건 수사 당시 수사정보를 누설하는 한편, 정현준 게이트로 널리 알려진 평창종건의 뇌물공여사건 수사 때 내사중단 압력을 넣은 혐의를 받았다. 김 전 고검장의 혐의는 이용호 게이트 수사과정에 수사정보를 유출한 것이다.

    2003년 2월 1심 재판부는 신 전 총장에게는 무죄를, 김 전 고검장에게는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항소심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받아들여 두 사람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대통령 아들, 그 친구들과 술자리

    먼저 두 사람의 이용호 게이트 관련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살펴보자. 대검 중수부가 (주)G&G 대표이사 이용호씨를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구속한 것은 2001년 9월이다. 수사과정에서 아태재단 상임이사인 이수동씨가 이 사건에 연루된 흔적이 발견됐다. 이용호씨에게 이수동씨를 소개해준 인터피온(G&G의 계열사) 사외이사 도승희씨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조사 무마 명목으로 이용호씨에게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포착한 것.

    공소장에 따르면 그해 11월 검찰이 도씨에 대한 내사에 착수하자 김대웅 당시 서울지검장과 신승남 당시 검찰총장이 이수동씨와 여러 차례 통화하면서 내사정보를 알려주고 조사에 대비케 했다는 것이다.

    항소심 판결문에 담긴 신승남·김대웅 두 사람의 범죄사실은 검찰의 공소사실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또한 두 사람과 이수동씨의 관계도 흥미롭다. 먼저 이수동씨가 이용호 게이트에 개입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

    누가 왜 이용호를 풀어줬나

    호남 출신인 이수동씨는 1967년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개인비서 노릇을 해왔다. 1994년 아태재단이 설립되자 김 전 대통령의 제의로 1995년부터 1998년 2월까지 행정실장을 지냈다. 이어 2002년 2월까지 상임이사로 재직하면서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군인 공무원 등의 인사문제에 수차례 개입하거나 청탁을 받고 검찰 내 지인을 통해 형사사건 처리를 주선하기도 했다.

    이수동씨가 도승희씨와 알게 된 것은 1998년 봄이다. 그 즈음 도씨는 아태재단 후원회에 가입했다. 그해 가을 이씨는 도씨로부터 이용호씨를 소개받아 호남 출신 사업가로 알고 지냈다. 도씨와 이용호씨는 1996년 8월 처음 알게 된 이후 호형호제 하는 사이로 가깝게 지내온 터였다. 도씨는 1999년 3월 이씨가 운영하는 G&G 계열사인 인터피온의 사외이사로 취임했다.

    이용호씨는 1999년 6월부터 주식시세조종 또는 주식불공정거래 혐의로 금감원 조사를 받게 되자 도씨를 통해 이수동씨에게 사건해결을 부탁했다. 그러자 이수동씨는 이용호씨와 금감원 부원장보 김영재씨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 직후인 1999년 12월 이용호씨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는 무혐의 또는 경고 처분으로 종결됐다.

    2000년 3월 이용호씨는 도승희씨와 함께 아태재단 사무실을 찾아가 이수동씨에게 금감원 조사 문제를 해결해준 대가로 5000만원 상당의 자기앞수표를 건넸다.

    이용호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흐지부지된 과정은 이렇다. 2000년 5월9일 서울지검 특수2부는 이용호씨를 회사자금 횡령혐의로 긴급체포하고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이씨는 다음날 곧바로 석방돼 의혹을 낳았다. 뒷날 특검수사에서 밝혀진 바지만, 당시 이씨는 김태정 전 검찰총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김 전 총장은 이씨에게서 1억원을 받고 선임계를 내지 않은 상태에서 임휘윤 서울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씨의 선처를 부탁했다.

    검찰은 이씨를 풀어주고 난 후 금감원에 이씨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다. 이씨의 사법처리 문제를 두고 수사팀 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주임검사인 김인원 검사는 불구속 기소 의견을, 이덕선 특수2부장은 불입건 의견을 제시한 것. 논란 끝에 결국 입건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7월25일 내사를 종료했다.

    다음에 살펴볼 것은 신승남 전 총장과 김대웅 전 고검장, 그리고 이수동씨의 특별한 친분이다. 신 전 총장과 김 전 고검장은 호남 출신으로 대학 선후배 사이다. 신 전 총장은 전남 영암, 김 전 고검장은 전남 나주가 고향이다. 신 전 총장이 서울대 법대 2년 선배.

    두 사람은 보직에서도 남다른 관계를 이어왔다. 1992년 신 전 총장이 서울지검 3차장으로 근무할 때 김 전 고검장은 직속부하인 특수3부장이었다. 또 신 전 총장이 1999년 6월부터 2001년 5월까지 대검 차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김 전 고검장은 대검 강력부장에 이어 중수부장으로 근무했다.

    김대웅, 체포된 이용호와 통화 시도

    신 전 총장과 이수동씨가 처음 만난 것은 1998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근무할 때다. 그 후 이씨의 집에서 열리는 호남 출신 선후배들의 ‘홍어회 먹는 모임’에 참석하는 등 식사를 함께하거나 한 달에 한두 번씩 전화통화를 하면서 친하게 지내왔다.

    김 전 고검장이 이수동씨를 처음 알게 된 시기도 1998년이다. 그 무렵 김 전 고검장은 서울지검 동부지청장으로 재직중이었는데, ‘홍어회 먹는 모임’에 신 전 총장과 함께 참석하는 등 이씨와 자주 만났으며, 일주일에 두세 차례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법률자문이나 사건 문의를 하는 등 가깝게 지냈다. 그는 평소 이씨를 ‘형님’으로 불렀다.

    김 전 고검장은 이수동씨와 이용호씨의 연결고리가 된 도승희씨와도 일찍부터 알고 지냈다. 도씨를 처음 만난 것은 1996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으로 근무할 때였다. 그 후 식사를 함께하는 등 친분을 쌓았으며 그때쯤 이용호씨와도 알게 돼 술자리를 함께했다.

    이용호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재개된 것은 2001년 8월. 그보다 석 달 전인 5월 신승남씨는 대검 차장에서 검찰총장으로 승진했다. 8월25일 대검 중수부3과장 김준호 부장검사는 대검 범죄정보팀 등의 첩보에 의해 주가조작 및 횡령 혐의를 받고 있던 이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9월2일 이씨를 긴급체포하고 회사 사무실과 계열사를 압수수색해 회계자료를 확보했다. 그 직후 김준호 부장검사는 골프장에 있던 신승남 총장에게 긴급체포 사실을 전화로 보고했다. 신 총장과 함께 골프를 치다가 이씨가 체포된 사실을 알게 된 김대웅 서울지검장은 김 부장검사에게 전화해 이씨와 통화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얼마 후 이씨 사건은 정치쟁점으로 비화했다. 서울고검과 서울지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 정치권 실세 비호설과 검찰 수뇌부 외압설이 제기된 것이다. 외압설은 검찰의 축소·은폐 의혹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아태재단이 이 사건에 관련됐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언론의 폭로도 사건의 불씨를 키웠다. 9월18일자 동아일보에는 이용호씨가 운영하는 G&G 계열사 인터피온의 사외이사 도승희씨가 이씨에게 수차례 전화해 ‘동교동, 일산 잘 다녀왔음’ ‘동교동 상임이사님이 대구 동화백화점 행사중’이라는 메모를 남겼다는 기사가 실렸다.

    여론이 들끓자 대검은 9월21일 고육책으로 특별감찰본부를 설치해 이 사건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수사하게 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마련된 특별감찰본부의 본부장은 한부환 대전고검장이 맡았다. 특별감찰본부는 2000년 5월9일 이용호씨가 긴급체포됐다가 다음날 석방된 것과 관련해 외압이나 축소수사 등의 비리가 있었는지를 조사했다. 한편 10월 말 정치권에서는 이용호 게이트를 특검수사로 처리하자고 합의했다.

    ‘이용호 게이트’ 등 대형사건 수사 유린한  DJ정부 검찰 커넥션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용호씨는 김대웅 전 고검장, 이수동씨와 각별한 친분을 맺어왔다.

    특검 논의와 별개로 대검 중수부의 수사는 계속됐다. 2001년 10월 중순 김준호 대검 중수부3과장은 이용호씨 회사의 회계장부를 분석해 가지급금 사용처를 조사하던 중 이씨가 2000년 3월28일 5000만원을 도승희씨에게 전달한 혐의를 잡았다.

    이를 근거로 이씨를 추궁한 결과, 도씨를 통해 이수동씨를 소개받았고 도씨에게 건넨 5000만원 중엔 아태재단 바자회 물건 구입비도 포함돼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 중수부3과장은 이와 같은 내용을 유창종 중수부장과 신승남 검찰총장에게 곧바로 보고했다.

    당시 검찰총장과 서울지검장은 대검 총장실에서 매주 2회 공식적으로 만났다. 주례 면담보고였다. 2001년 11월 초 신승남 총장과 김대웅 서울지검장은 ‘검찰총장실 또는 어느 장소’에서 이용호 사건과 관련해 이수동씨와 통화를 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김 지검장이다.

    “이용호 사건과 관련해 대검에서 도승희를 조사할 것 같은데 형님은 걱정되는 부분이 없소? 옆에 총장님도 계십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마운데, 나는 별 일이 없소.”

    김 지검장은 “그런 줄이나 알고 계시오”라고 하면서 신 총장에게 전화를 바꿔줬다. 신 총장이 이수동씨에게 말했다.

    “도승희가 이용호 회사에서 돈을 가지고 간 것으로 돼 있는데, 앞으로 특검도 예상되고 하니 조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조사를 하면)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 괜찮지요?”

    이에 이씨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고 대답했다.

    통화가 끝난 후 이수동씨는 검찰이 수표를 추적하면 자신이 이용호씨에게서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탄로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불안해했다. 11월5일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국행 비행기편을 예약해두었다.

    다음날 오전 김대웅 지검장은 신승남 총장과 면담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11월7일 이수동씨와 오후 4시16분에 13초, 4시19분에 58초간 통화했다. 통화는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8일 오후 3시53분에 3분간, 6시16분에 19초간, 6시44분에 4분20초간 통화했다. 이러한 사실은 뒷날 특검 수사팀이 통화내역을 추적해 밝혀진 것이다. 이날의 통화내용은 도승희씨가 고소를 당한 사건과 도씨가 고소를 제기한 사건 처리에 관한 것이었다.

    “이미 (검찰에) 이야기가 돼 있으니…”

    김준호 중수부3과장은 11월8~9일께 신승남 총장에게 도씨 소환조사계획을 보고했다. 신 총장은 11월9일 오전 10시 김대웅 지검장과 면담한 후 이수동씨와 오전 11시14분과 오후 12시35분에 각각 57초, 2분14초 동안 통화했다.

    이씨는 신 총장과 통화한 후 오후 1시33분 도승희씨와 1분59초간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용호의 돈 5000만원이 도승희에게 간 것으로 돼 있다고 하는데, 며칠 내로 소환할지 모른다고 하니 조사 좀 잘 받아라. 나는 미국에 다녀오겠다.”

    이에 도씨는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5000만원을 받아 사용한 것으로 답변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어 도씨는 이씨에게 “수표로 받았다고 해야 하나. 현금으로 받았다고 해야 하나” 하고 물어봤다. 이씨는 “이미 (검찰에) 이야기가 잘 돼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줬다.

    김대웅 지검장도 이날 오후 이수동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3시56분과 57분에 각각 2초, 12초간 통화를 시도하다 3시58분 이씨와 연결돼 1분 동안 통화했다. 김 지검장은 이씨에게 “며칠 내로 대검에서 도승희씨를 조사할지 모르니 대비를 잘하라”고 말해줬다.

    이씨는 김 지검장과 통화한 직후인 4시2분 공항으로 향하는 도중에 도승희씨에게 전화해 “공항 가는 길인데 조사를 잘 받아달라. 배웅 나올 필요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도씨는 이씨에게 “조사를 수월하게 받을 수 있도록 (검찰에) 부탁해달라”고 부탁했다.

    도씨와 통화한 후 이씨는 곧바로 신 총장에게 전화했다. 4시27분에 52초간 통화하면서 “도승희가 조사를 수월하게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5시17분에 다시 통화했다. 이번엔 신 총장이 걸었다. 신 총장은 이씨와 1분17초간 통화하면서 “이용호 사건은 어차피 특검에 가야 할 사건이므로 철저히 조사하게 할 테니 그런 줄 알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날 이씨는 미국으로 출국했고 신 총장은 다음날인 11월10일 세계검찰총장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

    도승희씨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은 11월13일이었다. 문제의 5000만원에 대해 도씨는 아태재단 바자회 물품 구입과 생활비, 월급 가불 명목으로 전액 현금으로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용호씨의 진술도 이와 같았다. 수사팀은 또 도씨의 처 조아무개씨에게서 이 돈의 대부분을 도씨가 관련된 형사사건 합의금으로 사용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용호 게이트’ 등 대형사건 수사 유린한  DJ정부 검찰 커넥션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 이수동씨는 신승남, 김대웅씨와 ‘홍어회 먹는 모임’에서 어울렸다.

    신승남 총장이 김준호 중수부3과장에게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은 것은 중국에서 귀국한 다음날인 11월16일이었다. 이수동씨는 다음날 귀국했다. 이씨는 귀국 직후 도승희씨와 네 차례 통화한 데 이어 김대웅 지검장과 한 차례 통화했다. 그 후 다시 도씨와 두 차례, 김 지검장과 한 차례 통화했다. 김 지검장은 통화에서 “형님은 돈 쓰지도 않았더구먼요. 도승희가 현찰로 5000만원을 받아 일부는 사외이사 활동비로 사용하고 일부는 회사에서 가불받은 것으로 처리돼 있어 별 문제가 없다고 하데요”라고 도씨에 관한 조사결과를 귀띔했다.

    “누구긴 누구야 신 총장이지”

    11월18일 이수동씨는 도승희씨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도씨는 이씨에게 “중수부에서 심하게 조사를 받았고 처까지 불려갔다”고 불평하면서 “중수부 내사계획을 알려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씨는 “누군 누구야, 신 총장이지” 하면서 “수고했다. 내가 신 총장에게 한번 알아보고 다시 만나자”고 도씨를 달랬다.

    이씨와 신 총장은 11월20일 오후 7시30분에 3분18초간 통화했다. 신 총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려고 중국에서 가져온 선물이 있다며 이를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 이씨와 잠시 논의했다. 이어 도승희씨 문제로 화제가 넘어갔다.

    “(검찰에서) 어떻게 조사했는지 도승희가 ‘조사가 그렇게 셀 수가 없었다’고 불평이 대단한데, 조사내용이 어떻습니까.”(이수동)

    “내가 세게 조사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특검 예행연습으로 생각하라고 그러세요.”(신승남)

    검찰의 총수인 신 총장이 이씨에게 한 얘기는 피내사자 신분인 도승희씨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다음날 이씨는 도씨를 만나 “알아봤는데, 조사는 잘 받은 것 같더라. 특검에 가더라도 똑같이 진술하라. 대검 조사는 특검 조사의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더라”고 신 총장의 얘기를 전했다. 도씨가 “누가 그런 얘기를 했냐”고 묻자 이씨는 “신 총장”이라고 말해줬다.

    이날 이수동씨는 오후 4시3분 김대웅 지검장과 도씨 문제로 통화했다. 두 사람은 11월23일, 11월26일에도 각각 한 차례, 두 차례 통화해 도씨 관련 소송에 대해 상의했다.

    대검 중수부는 2001년 12월10일 도씨 사건에 대해 내사종결 처분을 했다. 12월22일 이수동씨는 자기 대신 조사를 받은 도씨에게 답례로 6000만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건넸다. 2002년 1월31일 김대웅씨가 지검장인 서울지검은 도씨가 고소당한 사건과 관련, 도씨를 약식기소했다(약식기소란 검사가 정식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벌금형을 청구하는 것이다). 또한 도씨가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는 상대방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대검 중수부가 밝히지 못한 이수동씨의 범죄사실은 특검 수사과정에 드러났다. 2002년 2월26일 차정일 특검팀은 이씨를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했다. 이용호씨에게 50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그해 5월31일 서울중앙지법은 이수동씨에게 징역1년을 선고했다.

    신승남 전 총장과 김대웅 전 고검장의 공무상비밀누설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은 두 피고인이 이수동씨에게 전화로 알려준 내용은 공무상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신문기사, 국정감사 내용, 세간의 풍문 등 일반인으로서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도승희씨에 대한 검찰 조사와 이용호 사건에 대한 특검수사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 경우 혹시 이수동씨에게도 범죄혐의가 있을 것을 우려해 이씨에게 사실을 확인하고 안부를 물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전에 수사정보 알고 입맞춰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이수동씨에게 귀띔한 내용은 대검 수사팀이나 보고라인 외부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내사정보라고 판단했다. 외부에 유출될 경우 도승희씨 등 수사대상자가 도피하거나 관련 증거나 진술을 조작, 인멸함으로써 장차 진행될 내사에 치명적인 장애를 빚을 위험이 있으므로 직무상비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에 따르면 도씨가 사전에 수사 관련 정보를 듣고 자신이 이용호씨에게 5000만원을 받았다고 허위진술하기로 이수동씨와 입을 맞추는 등 검찰이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는 데 결정적 장애를 초래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는 실례라는 것이다.

    한편 이수동씨는 2004년 7월13일 신승남 전 총장과 김대웅 전 고검장 사건에 대한 항소심 법정에서 두 사람에게 이로운 진술서를 제출했다. 특검과 대검 수사 당시 자신이 한 진술은 사실과 다르고 피고인들(신승남 김대웅)로부터 공소사실과 같이 도승희 내사 관련 정보를 받은 사실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다음의 이유로 이씨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위 진술서 내용은 평소 가까이 지내던 피고인들에 대해 치명적으로 불리한 내용을 진술하게 된 경위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피고인들이 이 사건 수사 및 재판에서 한 변명과 일치하는 내용이 간략히 기재돼 있을 뿐이어서, 이 사건의 당시 상황을 구체적이고 상세히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도승희의 진술 등 다른 증거와도 자연스럽게 일치하는 수사과정에서의 진술과 비교할 때 그 신빙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므로, 종전의 진술을 번복하는 위 진술서 내용은 믿지 아니한다.’

    ◇ 신승남의 새한그룹 무역금융사기사건관련 공무상비밀누설죄

    공소장에 따르면 신승남 전 검찰총장이 새한그룹 무역금융사기사건에 개입한 것은 대검 차장으로 재직하던 2001년 1월 말이다. 당시 신 차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씨의 절친한 친구인 김성환씨에게서 새한그룹 부회장 이재관씨가 구속되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씨는 서울지검 외사부가 수사중인 새한그룹 무역금융사기사건의 피의자로 해외에 도피중이었다.

    신 차장이 김성준 서울지검 외사부장에게 수사상황을 문의하자 김 부장검사는 “불구속 수사가 가능하다”고 보고했다. 이에 신 차장은 전화로 김성환씨에게 “들어와 조사받아도 되겠던데”라고 말함으로써 직무상 비밀인 피의자의 불구속 수사방침을 누설했다는 것이 공소장 요지다.

    “김홍업에 부탁해 구속되지 않도록”

    새한그룹의 무역금융사기사건은 자금난에서 비롯됐다. 새한그룹 부회장이자 소유주인 이재관씨는 경영사정이 악화돼 운용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실무진에게 새한과 새한미디어의 1998년 및 1999년도 재무제표를 분식회계 방식으로 작성하게 했다. 이렇게 허위로 작성한 재무제표를 내세워 1999년 5월부터 2000년 1월까지 금융기관들로부터 총 1048억원을 대출했다.

    또한 1999년 8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한이 홍콩에 위장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물품을 수입하는 것처럼 꾸며 국내 금융기관이 선대(先貸) 신용장을 개설하게 한 다음 페이퍼컴퍼니가 선대받은 9985만달러(약 1200억원)를 새한이 국내에 들여오는 방법으로 운용자금을 조달했다.

    2000년 5월 새한그룹은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러나 선대 신용장을 개설했던 금융기관에서는 새한이 사기 친 사실을 알아채고 금감원에 보고했다. 금감원 조사결과 새한의 무역금융 사기혐의는 사실로 밝혀졌다. 2000년 12월 초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서울지검 외사부가 수사에 착수했다.

    이재관씨는 먼저 검찰조사를 받은 직원들에게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말을 듣고 평소 알고 지내던 이거성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홍업 등에게 부탁해 구속되지 않고 선처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이거성씨는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씨 등 여권 실세와 친분이 두터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재관씨는 “일단 국외로 도피하는 게 안전하겠다”는 이거성씨의 권유를 받아들여 2000년 12월8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이재관씨는 일본에서 하와이로 도피처를 옮길 정도로 신변 문제를 걱정했다. 검찰수사로 무역금융사기 건에 이어 분식회계대출 건까지 밝혀질 경우 구속을 피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그는 국내에 있는 자신의 매제 조아무개씨와 이거성씨 등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수사진행상황을 점검하곤 했다.

    이거성씨는 거듭된 이재관씨의 구명요청에 김홍업씨와 절친한 김성환씨에게 이재관씨 사건의 개요를 적은 쪽지를 전달하면서 불구속 처리되게끔 힘써 줄 것을 부탁했다. 메모지에는 사건 내용은 물론 수사상황, 담당 검사 및 검사의 소속부서 등이 적혀 있었다. “검찰 간부를 통해 알아보겠다”고 대답한 김성환씨는 2000년 12월 중순 이거성씨를 통해 이재관씨의 매제 조아무개씨에게 사건해결에 필요한 경비를 요구, 2억5000만원을 전달받았다.

    이재관씨는 신년을 해외에서 맞았다. 이거성씨의 로비력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01년 1월 중순까지도 이거성씨로부터 불구속 처리에 대한 확답이 오지 않자 매제 조씨를 통해 변호인을 선임했다. 하지만 불구속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해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너는 내 방에 무상 출입해도 좋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김홍업, 김성환씨와 신승남 전 검찰총장의 각별한 친분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홍업씨와 김성환, 류진걸(정현준 게이트 때 문제가 된 평창종건 대표이사인 류준걸의 동생)씨는 오랜 친구 사이로, 대통령 아들이자 아태재단 부이사장이라는 김홍업씨의 신분과 영향력을 이용해 당시 대검 차장이던 신 전 총장 등 고위공직자 및 재계 인사와 식사나 술자리를 통해 친분을 쌓았다. 이들은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공무원이나 금융기관 임직원을 상대로 한 민원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받아 챙기는 행위를 반복해왔다.

    신 전 총장은 김홍업씨보다 김성환씨를 먼저 알았다. 김홍업씨를 처음 만난 시기가 1999년인데, 김성환씨와는 그보다 4년 전인 1995년부터 알고 지냈던 것. 김성환씨는 김홍업씨의 비서실장 또는 대리인으로 자처하면서 신 전 총장에게 인사청탁, 사건청탁을 하거나 집무실을 방문하는 등 각별한 친분을 맺어왔다.

    김성환씨는 평소 주변사람들에게 검찰 고위간부들, 특히 신 전 총장과 절친해 자주 술자리를 갖는다고 과시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술자리에서 잘 논다는 이유로 신 전 총장이 “너는 내 방에 무상으로 출입해도 좋다”고 허락했다는 것이다. 한편 김성환씨에게 새한그룹 부회장 이재관씨의 신병처리 문제를 청탁한 이거성씨는 김홍업 김성환씨를 평소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술자리를 함께했다.

    김성환씨가 김홍업씨의 승낙을 받아 신승남 대검 차장의 집무실로 전화를 걸어 이재관씨 문제를 청탁한 것은 2001년 1월 말이다. 이재관씨가 서울지검 외사부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나가 있는데 국내로 들어와 조사 받을 경우 불구속 처리가 가능한지를 알아봐달라는 것이 청탁 요지였다.

    신 차장은 김성환씨의 전화를 받은 후 서울지검 외사부 김성준 부장검사에게 사건내용을 문의했다. 김성준 외사부장은 “조영준 주임검사가 생각하기에 엄벌할 정도의 중한 사안은 아니라고 한다”고 답변했다. 이에 신 차장은 김성환씨에게 이재관씨의 불구속 처리가 가능하다는 의미로 “들어와 조사받아도 되겠던데”라고 전해줬다.

    당시 검찰 실세이던 신 차장의 언질은 피의자 신분으로 해외에 도피중이던 이재관씨에게 전달됐다. 김성환씨로부터 “(이재관씨가) 안심하고 국내에 들어와도 된다”는 얘기를 들은 이거성씨는 일본으로 건너가 이재관씨에게 “김성환이 신승남 차장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했으니 귀국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해줬다. 이재관씨가 귀국한 것은 2001년 2월6일. 며칠 후 서울지검에 자진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그렇다면 당시 검찰 수사팀은 이재관씨의 혐의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었을까. 서울지검 외사부 김성준 부장검사와 조영준 주임검사는 새한그룹의 무역금융사기에 관련된 실무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 이재관씨 등 경영진이 가담한 사실을 확인했다. 다만 경영진에게 어느 정도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에 대해 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탓에 이씨의 신병처리 문제에 대해선 결론을 유보한 상태였다.

    당시 새한그룹에 대한 수사는 제한적인 것이었다. 무역금융사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전반적인 경영상황에 대해서는 별도의 수사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따라서 이재관씨가 애초 우려한 분식회계대출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새한의 무역금융사기를 자금 조달과정에서의 단순한 편법처리로 규정하고, 2001년 4월3일 이재관씨를 비롯한 임직원 5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신승남 통해 불구속 처리되도록…”

    판결문에 따르면 이재관씨는 귀국한 후로도 이거성, 김성환씨에게 자신이 구속되지 않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해 이거성씨는 “신승남을 통해 불구속 처리되게끔 계속 힘쓰고 있다”거나 “김홍업 김성환 신승남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불구속으로 끝낸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등의 얘기를 수시로 이재관씨에게 전달했다.

    이재관씨는 2001년 4월 불구속 기소된 직후 이거성씨에게 5억원을 건넸다. 이어 5월엔 김성환씨에게 4억9000만원을 전달했다. 이후 이거성씨의 소개로 김홍업 김성환씨와 술자리에서 함께 어울렸다.

    그러나 이재관씨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9월 검찰수사가 분식회계대출 건으로 확대됐던 것. 이재관씨는 이번에도 이거성씨를 통해 로비를 시도했다. 이씨에게 9월에 3억원, 10월에 1억5000만원을 건네면서, 김홍업, 김성환씨에게 얘기해 구속을 피하게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이용호 게이트 촉발로 신승남 검찰총장 체제가 흔들리던 무렵이었다.

    결국 이재관씨의 로비는 무위에 그쳤다. 2002년 3월 이씨는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됐다. 그해 5월24일 1심 재판부는 새한의 무역금융사기와 분식회계대출과 관련해 이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씨가 직·간접으로 줄을 댔던 인사들도 줄줄이 낙마했다. 신승남씨는 2002년 1월 특검에 의해 이용호씨에게 돈을 받은 자신의 동생이 구속되자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5월4일엔 김성환씨가 각종 청탁 대가로 5억여원을 챙기고 회사(서울음악방송 등) 공금 64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6월1일엔 이재관씨를 김성환, 김홍업씨에게 연결해준 이거성씨가 구속됐다. 이재관씨에게 청탁 대가로 9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김홍업씨가 구속된 것은 6월21일. 업계 관계자들에게서 청와대 검찰 국세청 등에 청탁해주는 대가로 모두 22억80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새한그룹 무역금융사기사건과 관련한 신승남 전 총장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신승남 대검 차장이 김성준 서울지검 외사부장의 보고를 받은 후 김성환씨에게 전달해준 내용은 구체적인 수사결과나 이재관씨의 신병처리에 관한 결정이 아니라 사안의 경중에 대한 언급에 지나지 않은 것이어서 공무상비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신 차장이 김성환씨에게 전해준 내용은 해외에 도피중이던 이재관씨가 이거성, 김성환씨에게 거액의 돈을 제공하며 알고 싶어한 가장 중요한 정보로서 검찰이 더 이상 강도 높게 수사하지 않고 그때까지 밝혀진 내용의 범위 안에서 마무리될 것임을 예측케 하는 것이므로 공무상비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수사가 진행되는 상태에서 수사상황이나 수사책임자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는 외부에 누설해서는 안 될 수사기관 내부의 비밀이라고 판시했다. 그것이 수사대상자에게 알려질 경우 증거조작이나 허위진술 준비 등으로 수사에 현저한 장애가 될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신 전 총장의 언질이 있던 무렵 수사팀이 이재관씨의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다는 원심 판결도 배척했다. 이유는 당시 수사팀이 이재관씨가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확인한 상태에서, 새한그룹의 재무상황 전반에 대한 자료를 확보한 후 이씨를 비롯한 경영진의 죄책 성립 여부나 신병처리 문제를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와 더불어 재판부는 신 전 총장에게 수사청탁을 한 김성환씨의 유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점, 이재관씨가 김씨에게 수사 관련 정보를 들은 후 일본에서 귀국한 점을 내세워 신 전 총장의 공무상비밀누설죄를 인정했다.

    ◇ 신승남의 평창종건 비리 내사사건 관련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신승남 전 검찰총장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라는 다소 긴 이름의 죄목은 평창종건 비리 수사과정에 내사중단 압력을 넣은 사실을 일컫는 것이다. 새한그룹 무역금융사기사건에서 활약했던 김홍업씨의 친구 김성환씨가 여기서도 등장한다.

    2000년 12월15일 울산지검 특수부는 평창종건 비리 내사에 들어갔다. 이틀 전 울산지검에 송부된 대검의 첩보가 발단이었다. 첩보에 따르면 당시 심완구 울산광역시장은 한국티타늄으로부터 온산공장 허가와 관련해 1억5000만원, 평창종건 대표이사 류준걸씨로부터 울산 북구 일대 토지구획정리사업 허가와 관련해 5억원, 우성산업개발로부터 울산 신항만 건설공사에 소요될 토석채취 허가와 관련해 5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대검은 이 첩보를 울산지검으로 내려보내면서 2001년 3월7일까지 조사해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을 배당받은 검사는 울산지검 특수부의 최운식 검사였다. 최 검사는 12월15일 내사계획을 수립해 김원윤 특수부장, 김태현 차장을 거쳐 정진규 울산지검장에게 보고했다. 이 사건은 2001년 2월 대검 중수부 박상길 수사기획관이 김태현 차장에게 심완구 시장에 대한 내사를 신속하고 철저하게 처리하라는 독려전화를 할 정도로 대검의 주요 관심사였다.

    최 검사의 내사는 그때그때 김원윤 부장을 통해 김태현 차장, 정진규 지검장에게 보고되면서 진행됐다. 앞서 언급했듯 신승남 전 총장의 혐의와 관련된 것은 평창종건의 비리다.

    수사팀은 평창종건의 금융거래 자료를 압수수색한 결과, 대표인 류준걸씨가 평창종건에서 추진중인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내 체비지를 이미 다른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하거나 분양이 완료된 사정을 숨기고 삼산새마을금고에 담보로 제공한 후 130억원을 대출받은 혐의를 포착했다.

    이와 같은 의혹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한 증거는 2001년 4월27일에 확보한 삼산새마을금고의 전 이사장 이성우씨의 진술이었다. 진술 요지는 다음과 같다.

    “류진걸(류준걸의 동생)이 여러 차례 수억원짜리 고액권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갔는데 그 돈은 공무원에게 건네진 것으로 알고 있다. 류준걸은 담보가치가 없는 체비지를 담보로 삼산새마을금고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토지구획정리사업조합 조합장에게 에쿠스 차량을, 금고 이사장에게는 에쿠스 차량과 더불어 체비지를 넘겨줬다.

    또 매립공사와 관련해 울산시와 북구청의 관련 공무원들에게 체비지를 싼값에 분양하는 방법으로 뇌물을 제공했다. 류준걸은 토지 매립공사에 토석이 아닌 아파트 건축폐기물을 사용함으로써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는데, 이 불법 매립시설을 단속하지 말아달라고 뇌물을 쓴 것이다.”

    이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2001년 5월2일 최운식 검사는 류준걸씨의 평창종건 사무실 및 주거지, 전무이사 김인회씨의 주거지, 삼산새마을금고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김성환씨가 이 사건에 개입한 것은 그 즈음이다. 앞서 살펴본 새한그룹 이재관 부회장 사건에서 언급됐듯이 김홍업, 김성환, 류진걸씨는 오랜 친구 사이로 평소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도 친분이 있었다.

    특히 김성환씨는 류진걸씨의 형이자 평창종건 대표이사인 류준걸씨, 류준걸씨의 처남이자 평창종건 전무이사인 김인회씨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김성환씨와 류준걸씨는 돈 거래도 했다. 김씨가 류씨에게 평창종건 운영자금으로 빌려준 돈은, 김홍업씨의 돈까지 포함해 약 40억원에 이르렀다.

    “평창종건이 잘 됐으면 좋겠다”

    평창종건은 2001년 3월 투자설명회를 열고 1억달러 이상의 외자를 유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런 상태에서 5월2일 압수수색을 당하자 김인회씨는 김성환씨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했다.

    김성환씨는 김인회씨의 얘기를 김홍업씨에게 전하면서 “신승남 대검 차장에게라도 말을 해서 도와줘야겠다”고 김홍업씨의 동의를 구했다. 김홍업씨의 승낙을 받은 김성환씨는 신승남 차장에게 전화로 청탁을 했다.

    먼저 신 차장이 김홍업씨와 술자리를 함께할 때 류진걸씨를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후 그가 평창종건 대표의 동생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외자유치를 추진중인 평창종건이 울산지검 특수부의 내사로 압수수색까지 당했으니 선처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용호 게이트’ 등 대형사건 수사 유린한  DJ정부 검찰 커넥션

    김홍업씨의 절친한 친구 김성환씨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의 친분을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

    김성환씨에게 이러한 청탁을 받은 신 차장은 정진규 울산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아는 사람이 알아봐 달라고 한다”면서 평창종건 수사상황에 대해 물었다. 정 지검장은 “대검 첩보에 따른 심완구 울산시장 내사 건인데 현재까지 특별한 것이 없고 앞으로도 큰 수사가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에 신 차장은 “외자유치에 지장이 없도록 평창종건에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잘됐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어떠한 언급’을 했다.

    검찰 실세로 통하던 신 차장의 ‘어떠한 언급’은 울산지검 특수부를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정 지검장은 통화 직후 김원윤 특수부장을 불러 신 차장의 ‘어떠한 언급’을 전했다. 김원윤 부장은 그날 최운식 검사에게 “대검 차장이 검찰총장 인사가 있을 때까지 내사 진행을 일시 보류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니까 검찰이 욕 먹지”

    그로부터 일주일쯤 후인 2001년 5월8일 최 검사는 수사팀 손호식 검찰주사와 권귀원 검찰주사보에게 평창종건에 대한 압수수색 결과를 정리하라고 지시해두고 해외정책연구를 떠났다가 그달 20일 귀국했다. 손호식 권귀원 두 사람은 최 검사에게 자신들이 확인한 평창종건의 비리를 보고하면서 추가조사를 건의했다. 하지만 최 검사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5월26일 신승남 대검 차장은 검찰총장에 취임했다. 다음날 검찰 고위간부 인사가 발표됐는데, 정진규 울산지검장은 5월31일자로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전보됐다. 5월28일 울산지검으로 출근한 정 지검장은 김원윤 특수부장을 불러 평창종건 내사 건을 거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날 정 지검장으로부터 “총장님이 평창종건 내사를 그만두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김원윤 부장은 “일시 보류는 모르지만 대검이 하명한 사건을 일선에서 그냥 덮어버리는 것은 문제”라고 내사종결에 반대했다. 하지만 정 지검장은 “굳이 후임자에게 부담을 줄 필요가 없다. 내가 검사장으로 있을 때 내사를 종결하는 게 좋겠다”고 김 부장을 압박했다. 또 김태현 차장에게도 신 총장의 ‘뜻’을 전달했다.

    김원윤 부장이 김태현 차장에게 정 지검장의 내사종결 지시를 보고하자 김 차장은 “총장님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건이고 검사장님도 우리가 처리하자고 하시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김 부장 진술에 따르면 김 차장은 “신승남이 그러는데 어떡하겠노”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상부의 의지를 확인한 김 부장은 최운식 검사에게 정 지검장의 뜻을 전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내사를 진행하지 말고 덮으라는 총장님 지시가 있다. 한국티타늄 사건은 사실관계를 모두 밝혀놓고도 처박았는데, 그렇게 하니까 검찰이 욕 먹지. 총장님 말을 무시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지.”

    이날 최 검사는 수사팀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김원윤 부장, 김태현 차장, 정진규 지검장의 결재를 받아 평창종건 내사 건을 종결처리했다.

    김성환씨는 2001년 8월 평창종건측에 내사종결에 힘써준 데 대한 대가를 요구, 전무이사 김인회씨에게서 2억원권 약속어음 한 장을 받았다.

    한편 평창종건의 1억달러 외자 투자유치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해 9월 평창종건이 수백억원에 이르는 채무를 해결하지 못해 부도 위기를 맞자 대표인 류준걸씨는 해외로 도피했다.

    평창종건의 비리는 그 후 별도로 진행된 심완구 전 울산시장에 대한 재판과정에 드러났다. 2002년 6월 대검 중수부에 의해 구속된 심 전 시장은 1심에서 평창종건측으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에 추징금 3억원을 선고받았다. 심 전 시장의 범죄사실은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지난 3월 원심대로 확정됐다.

    해외로 달아났던 류준걸씨도 결국 법정에 섰다. 그해 10월 서울지법은 류씨에게 토지구획정리사업과 관련해 심완구 시장에게 3억원, 울산시 종합건설본부장에게 2억원을 뇌물로 건넨 사실을 인정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02년 5월 심 전 시장보다 한 달 앞서 구속된 김성환씨는 2003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그때 확정된 범죄사실 중에는 그가 신승남 전 총장에게 부탁해 평창종건에 대한 내사가 종결되게끔 도와준 대가로 금품을 받은 사실이 포함돼 있다.

    신 전 총장의 평창종건 내사중단압력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김원윤 당시 울산지검 특수부장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김태현 당시 울산지검 차장과 정진규 울산지검장의 진술에서 신 전 총장이 내사중단 압력을 넣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원윤 당시 특수부장은 현재 변호사다. 신승남씨가 검찰총장에 취임한 직후인 2001년 6월 검찰을 떠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다음의 이유로 김 전 부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김원윤의 진술이 거짓이라면, 현직 검사로서 당시 사실관계를 잘 알고 있는 정진규 김태현 최운식이 당당히 법정에 출두해 사실관계를 밝힘으로써 검찰 선배인 신승남뿐만 아니라 검찰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김원윤의 허위진술을 탄핵하는 것이 통상적인 태도일 텐데 세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김원윤의 진술은, 당시 울산지검 특수부가 심완구 울산시장의 수뢰사실과 평창종건에 대한 압수수색 등으로 대표 류준걸의 범죄사실을 충분히 확인하고도 신승남의 검찰총장 취임 직후 범죄사실에 대한 처리나 추가조사 없이 갑자기 내사를 종결한 당시 상황과 자연스럽게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대검 지시로 시작된 내사사건이 일선지검에서 어떻게 흐지부지 종결될 수 있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이에 반해 정진규 김태현 최운식은 내사종결은 울산지검의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는 설득력 없는 진술만 되풀이할 뿐 내사사건이 신승남의 검찰총장 취임식 직후 이미 확인된 내용에 대한 아무런 조치 없이 갑자기 종결 처리된 데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당시 울산지검 정진규 검사장, 김태현 차장, 최운식 검사의 일부 진술에서도 내사중단 압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통화할 때 신승남이 ‘아는 사람의 부탁’이라면서 ‘평창종건에 대해 특별한 일이 없다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창종건에 관한 사건이 잘 처리되기를 바라는 생각을 말한 것인데, 사실 수사를 그만두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여지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정진규)

    “저나 김원윤 최운식은 내사를 좀더 진행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검사장(정진규)의 의견에 따랐다. 현실적으로 검사들을 지휘, 감독하는 검찰총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내사종결 처리가 (검찰총장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김태현)

    “본인은 내사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정진규의 지시를 받고 서둘러 내사를 종결하다 보니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내사종결 결정문에 기재됐다. 만일 정진규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내사를 계속 진행했을 것이다.”(최운식)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울산지검 관계자들의 이와 같은 진술을 바탕으로 원심이 신승남 전 검찰총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사실을 오인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신승남이 평소 친분관계가 있는 김성환에게 부탁을 받고 대검 차장 또는 검찰총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울산지검장 정진규에게 내사보류와 종결을 지시함으로써, 구체적인 혐의사실이 발견돼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평창종건 및 심완구 시장에 대한 내사를 중도에 그만두게 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는 대검 차장 또는 검찰총장의 직권을 남용해 최운식 검사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행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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