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성매매 특별법’ 제정 산파 지은희 여성부 장관

“프리섹스는 OK, 성매매는 NO!”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입력2004-10-26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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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위 벌이는 성매매 여성은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져 있다
    • 1차 목표는 2007년까지 성매매 규모 3분의 1로 줄이는 것
    • 나 혼자 여성 장관인 건 안타깝고 속상한 일
    • 호주제, 올해 안에 폐지되리라 기대
    • ‘내 딸이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행동은 해도 괜찮다
    • 육아 책임 여성에게 너무 많이 지운 것도 저출산 원인
    ‘성매매 특별법’ 제정 산파 지은희 여성부 장관
    2001년 정식 부처로 승격한 이래 ‘있는 듯 없는 듯’하던 여성부가 최근 하트(hot)한 부처가 됐다. 9월23일 시행된 성매매특별법 때문이다. 이 법은 여성부가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전국 8만여개 성매매 업소에 종사하는 윤락여성 수는 33만여명에 이른다. 실제 성매매 여성 수는 이보다 2배 가량 더 많다고 보는 여성학자도 있다. 국내 성산업 매출 규모는 24조원.

    법 시행과 함께 경찰이 특별단속을 벌이자 전국 35개 집창촌과 국회 앞에서 업주와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대형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빨간 야구모자를 쓴 여성들은 ‘생존권 짓밟지 말고 우리의 직업을 인정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의 국회 앞 시위가 벌어지던 날, 지은희(池銀姬·57) 여성부 장관이 언론사 담당 논설위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인터뷰에 앞서 공부를 하는 뜻에서 여성부에 젓가락을 하나 더 놓아달라고 부탁하고 간담회에 끼여들었다.

    여성 남성 논설위원이 반반이었다. 여성 논설위원들은 대부분 성매매 특별법과 특별단속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중앙일보 홍은희 논설위원이 가장 강경론자였다. 홍 위원은 “성매매가 범법행위라는 측면에서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마치 도둑이 벌이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겨레의 지영선 논설위원은 “여성부가 마약과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보다 더 어려운 전쟁에 나섰다”고 격려했다.



    지 장관과 여성 논설위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남성 논설위원들은 마치 ‘과거가 떳떳지 못한’ 사람들처럼 다소곳이 듣거나 맞장구를 쳤다.

    지 장관은 시위 여성들이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1973년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벌어진 은행강도사건 당시 130여 시간 인질로 잡혀 있던 여성이 은행강도 한 명과 사랑에 빠진 사건에서 유래된 범죄심리학 용어다.

    지 장관은 “성매매산업의 규모를 3분의 1 가량 줄이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선 성매매를 수요를 줄여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남성들이 자기 부인 놓아두고 이렇게 대규모로 성구매 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지 장관과 여성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프리섹스는 OK, 성매매는 NO’였다.

    간담회 나흘 뒤 여성부 장관실에서 인터뷰가 이뤄졌다. 지 장관의 체구는 아담한 편이다. 카리스마나 위압감을 발산하는 풍모는 아니지만 여성단체 회원들로부터 ‘왕언니’라는 칭호를 부여받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3S 우중화정책이 性산업 번창 원인

    -새로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이 과거 윤락행위방지법과 어떻게 다른가요.

    “인신매매는 말할 것도 없고 성매매를 강제하거나 알선하는 업주에 대한 처벌기준을 강화했습니다. 알선업자가 취한 이익은 몰수 추징하게 돼 있고요.

    과거 윤락행위방지법은 성매매를 한 남녀를 다 처벌하게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로 여자들이 처벌받았습니다. 특별법에는 성매매 피해여성이란 개념이 새롭게 도입됐어요. 위계(僞計) 폭력 강제 감금 인신매매 등을 통해 본인 의사에 반해 성매매를 했을 경우 피해여성으로 보고 형사처벌을 면제합니다. 또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다양한 보호조치를 담고 있습니다.”

    2000년 군산에서 성매매 여성 5명이 감금된 상태에서 화재로 타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현장에서 성매매 여성들의 일기가 발견됐고, ‘취업각서’ ‘현금보관증’ 같은 선불금 문서도 나왔다. 어처구니없게도 업주는 7억원짜리 주택에 살면서 2억원짜리 외제차를 굴리고 다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 장관이 소속돼 있던 여성단체연합에서 성매매를 금지시켜달라는 입법청원을 했다.

    “2002년 군산 집창촌에서 또 14명이 화재로 죽었어요. 우리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자각이 커졌습니다. 여성운동단체들이 앞장서고 민변 변호사들이 도와줘 법안을 만들어 입법청원을 했습니다. 내가 여성부 장관이 되고 나서는 정부법안으로 만들었죠. 조배숙 의원이 대표발의를 했고 여성부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인 거죠. 법이 2개로 갈라져 있어서 절차가 복잡했는데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적극 협조했죠. 의원들 찾아다니면서 설명도 드렸고요.”

    -지은희 강금실 조배숙 세 여성이 성매매특별법의 산파인 셈이네요.

    “주역은 여성운동계입니다. 여성의원들도 열심히 도와줬죠.”

    -한국에서 내국인을 상대로 한 성매매 산업이 번창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미군부대나 군 주둔지 주변에 집창촌이 생겨나기 시작해 1960∼80년대에 확산됐어요. 당시 한국은 전형적인 3S 우중화(愚衆化) 정책을 폈어요.”

    지 장관은 이화여대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여러 대학 강단에서 여성학을 가르쳤다. 3S는 섹스, 스포츠, 스크린을 말한다.

    “억압체제하에서 국민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기제로 3S를 활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비스산업 증대가 수요를 창출했습니다. 상품화된 성문화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된 거죠.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를 당연시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도 여성의 상품화를 가속화했습니다.”

    -시대마다 나라마다 성매매를 단속하는 법률이 다르잖아요. 이슬람 국가에서 성매매는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죠. 네덜란드는 2001년에 합법화해 성매매 여성이 소득세를 내는 근로자가 됐습니다. 벨기에도 올해부터 합법화했습니다.

    “스웨덴은 성매수자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률을 시행해 성공했습니다. 한국은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성매매 여성이 많습니다. 풀타임으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이 33만명입니다.

    톨러런스 존(Tolerance zone)을 만들어 합법화하자는 의견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소위 공창이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에는 공창이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예요. 보건증을 주고 단속 안 하는 이른바 집창촌이 전국에 60군데 있었고 적어도 1만명 가량의 여성이 거기서 성매매를 했거든요.

    그런데 집장촌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방’이란 ‘방’이 모두 성매매를 하고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태죠. 이걸 그냥 일정 지역에 묶어놓기도 불가능하고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할 수도 없게 됐어요. 열두세 살짜리 애들이 성매매에 나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물론 성매매가 1, 2년 사이에 근절되지 않으리란 것은 잘 압니다. 10년 정도 계획을 세워 법을 엄중히 집행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자기 의사에 반해 성매매를 하는 수많은 여성, 예를 들어 감금상태에 있거나 선불금에 묶여 감시와 폭력을 당하며, 여기저기로 팔려다니는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의료 및 법률 지원을 해야 돼요.

    선불금 문제가 간단하지 않아요. 여성들이 용기를 못 내는 이유가 선불금이 업주 혹은 폭력조직과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던 지역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거기서 나가면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고 있습니다. 여성부의 역할은 그런 여성들에게 뛰쳐나와도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거죠.”

    새 법의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중심으로 질문하다 보니 자칫 성매매 옹호론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동남아나 중국처럼 에이즈가 급속히 창궐하지 않은 데는 보건증 제도가 상당히 기여했다고 보는 관점이 있어요. 단속을 강화하면 지하로 숨어들어 에이즈가 창궐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까요.

    “성매매 여성 가운데 보건증을 받는 여성은 다수가 아닙니다. 윤락행위 방지법상으로도 성매매는 불법이었어요. 그것이 합법이었던 적은 없었어요.

    성을 매수하는 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여성의 인권은 어떻게 침해되는가, 성을 사는 사람의 인권은 또 어떻게 피폐화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을 사려는 남성의 수를 줄이려면 사회적으로 망신을 주면서 계속 교육해야죠. 이 법에 초중고교 때부터 성교육을 하도록 돼 있어요.

    보건증 이야기를 했는데, 콘돔을 써야죠. 에이즈 때문에라도 콘돔을 안 쓰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조성은 공보관이 “노출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에이즈 환자가 5000명이 넘는다”고 보충설명을 했다. 정부가 보증하는 보건증이 없어질 테니 콘돔으로 알아서 무장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콘돔 안 쓰는 건 자살행위

    -집창촌 시위 여성들이 유예기간을 안 주고 갑자기 성매매를 금지시키는 것은 생존권 박탈이라고 호소하더군요. 성매매 여성들이 병든 부모의 치료비와 동생 학비를 대야 한다는 말을 하던데, 거짓말일 수 있지만 실제 그런 사람도 더러 있으리라 보는데요.

    “국회 앞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 중엔 동원된 사람들이 많아요. 유예해달라는 말 자체가 업주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죠. 사회안전망이 미비했을 때하고는 달라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마련돼 있잖아요. 그들이 거기서 나오면 우리가 보호해줄 수 있습니다. 여성부가 예산을 확보해 치료 직업교육 창업지원을 하거든요.

    과거 1960년대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오빠의 학비를 대는 경우도 있었죠. 가족을 위한 희생이란 점에서 아름답고 공장 일을 한다는 자체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불법적이고 인간성을 피폐하게 만드는 일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하는 삶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열린우리당 전병헌 의원은 금융감독위 국정감사에서 “성매매특별법 시행이 호텔 모텔 여관 등 숙박업소의 불황을 불러 은행의 부실채권 급증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경기가 매우 안 좋아요. 여성부 자료를 보면 섹스산업 규모가 24조원인데 연관산업 효과까지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규모입니다. 택시기사가 한밤중이나 새벽에 업소로 출퇴근하는 여성손님이 줄었다고 울상이더군요. 섹스산업도 글로벌화해 우리만 막으면 골프처럼 외국으로 나가 외화소비만 늘어날 것이란 예측도 있어요.

    “그렇게까지 정열적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1차 목표는 2007년까지 지금 규모의 3분의 1로 줄이는 것입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다 경제규모 면에서는 세계 10위권입니다. 이런 경제선진국이 그런 불건전한 쪽을 딛고 경제를 유지해야 하는 사회여야 합니까. 국민소득이 1000달러쯤 된다면 그럴 수도 저럴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1만달러 2만달러를 운위하는 나라라면 성산업 24조원을 생산적인 부분으로 어떻게 끌어내야 될 것인지 연구해야 합니다.

    룸살롱에서 하룻밤에 몇백만원 쓰잖아요. 대개 자기 돈 안 쓰거든요. 그게 부패죠. 부패지수와 창궐하는 성매매가 대한민국의 수치입니다. 성매매 여성 공급이 모자라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을 인신매매해 오잖아요. 그게 미국 국무성 인권보고서에 기록돼 창피를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접대비가 줄어 중소기업인들이 좋아한데요. 무리하게 바이어를 대접했는데 요즘은 못 하게 돼서.”

    -제주도에 가보니 걱정이 대단합니다.

    “한국처럼 모텔이 많은 나라에서 외국 관광객이 오면 묵을 곳이 모자랍니다. 모텔에서 외국 관광객은 안 받기 때문이죠. 하루에 몇 번씩 방을 돌려야 하니까. 관광도 수준이 여러 가지 섹스관광 테마관광…. 이젠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내용이 달라져야 할 시기가 됐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그런 말이 나오면 되겠습니까.”

    언젠가 칠순 노인이 운전하는 택시를 탄 적이 있다. “집에서 자식들에게 용돈이나 받고 쉬지 연세 많은 분이 힘든 일을 하느냐”고 말을 걸었더니 택시기사는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는 모자란다”고 답했다. 그는 “아직도 건강해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남성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데 동갑인 할머니는 오래 전부터 옆에만 가면 도망간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경기도 파주 용주골에 가서 남성을 해소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성구매자, 30대 회사원 가장 많아

    성매매특별법이 헌법상 행복추구권이나 직업선택의 자유에 어긋난다는 견해도 있다. 성매매특별법이 약효를 발휘하기 시작하면 성의 약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방법으론 섹스를 구할 수 없는 노인이나 농촌총각 같은 사회적 약자와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는 선원같이 특수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말이다.

    “통계에 따르면 성 구매자 중 30대 회사원이 가장 많습니다. 성의 약자가 주로 활용하는 게 아닙니다. 룸살롱에 누가 갑니까. 집창촌은 성매매 여성 33만명 중 최대 1만명밖에 안 됩니다. 룸살롱을 드나드는 층은 젊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결혼 안 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고 하는데 사실 결혼한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하거든요.

    내가 대학에서 ‘가족’을 가르칠 때 한국의 성매매는 부부관계를 해치는 변수라고 했습니다. 남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성을 배웁니까. 대부분의 한국남성들은 성매매 여성을 통해 성을 배운다는 거죠.

    부부관계 남녀관계에서 성은 가장 아름다운 인격적·정서적·육체적 결합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남성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배운 적이 없어요. 솔직하게 생각해보세요. 배설 혹은 상대방에 대한 동물적 이용 방법만 배웠잖아요. 부부관계에서 바람직한 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요.

    나는 대학에서 가족과 성을 가르쳤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에서 만족하는 곡선이 다르잖아요. 남성은 가다가 뚝 떨어지는 J곡선을 그립니다. 여성의 곡선은 포물선이고 멀티플해요. (오르가슴이) 여러 번 올 수 있어요. 상호 만족을 하려면 곡선이 맞아야 합니다. 그걸 맞추려면 남성에게 상당한 정도의 배려와 애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남자들은 그렇게 습관이 안 돼 있죠. 부부간 성의 부조화가 그런 차이에서 옵니다.”

    -지식층 전문직 여성 중에도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런 데 가서 풀고 오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던데요.

    “과거엔 그랬죠. 왜냐하면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매여 있는 경우 남편이 연애를 하면 이혼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까. 여성들에게 이혼공포증이 있었죠. 굳이 어떤 게 좋냐고 물으면 그렇게 대답할지 모르지만 둘 다 바람직한 건 아니죠.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황 위원 사모님이 어디 가서 성을 사고 왔다면 어쩌시겠어요. 똑같거든요. 가부장적 제도 때문에 남성에겐 용인되고 여성에겐 마땅히 참아야 하는 것이 됐죠. 그런데 거꾸로 되면 아마 그날로 보따리 싸서 내보낼 걸요. 그런 언밸런스를 교정해야 합니다.”

    -혹시 호스트바에 관해 들어봤습니까.

    “호스트바의 여성손님이 누군지 아세요? 여대생이나 이런 사람은 아주 극소수고요, 대개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가요. 자기가 당한 걸 거꾸로 해보는 거지요.”

    ‘성매매 특별법’ 제정 산파 지은희 여성부 장관

    지은희 장관은 성매매 여성들에게 집창촌을 뛰쳐나와도 괜찮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여성부의 역할이라고 했다.

    -여성부에 업무가 많은데 성매매 이야기만 너무 오래한 것 같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릴게요. 문화를 바꿔야 돼요. 간단한 일이 아니죠. 우리나라의 잘못된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입니다. 이게 바꿔지면 남녀관계, 가족관계, 여가를 즐기는 방식이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죠. 정부로서도 10년, 15년 걸려서라도 성매매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남자들끼리 술 마시고 성매매 하며 어울리는 이상한 네트워크에 합리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지요. 서로 봐주며 이상하고 끈끈한 지연·학연으로 얽히는 거죠. 만약에 이 상태에서 2만달러 시대로 간들 국제적으로 한국사회를 존중하는 마음이 생기겠어요?”

    이효재 이우정 박영숙씨가 여성운동 1세대라면 지은희 신혜수 이경숙 한명숙 이미경씨 등은 2세대다. 첫 여성학 박사 신혜수씨는 서경석 목사의 부인이고, 이경숙 한명숙 이미경씨는 공교롭게도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 지 장관은 이경숙 의원과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산다.

    -여성운동 1세대와 2세대는 어떻게 구분됩니까.

    “1세대는 1960∼70년대에 활동했습니다. 우리가 1983년에 여성평우회란 여성운동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해방 이후 가장 진보적인 여성운동단체라고 했지요. 나와 이미경 조형(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씨 셋이서 여성평우회 공동대표를 맡았죠. 그때 처음 여성해방이란 용어를 썼습니다. 한국의 민주화, 통일, 양성평등을 함께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 운동했습니다. 40대 이상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안 끼워준다고 했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 50대 후반이죠. 너무 우스워요.”

    -2000년 4·13 총선 당시 최열, 박원순씨 등과 함께 총선연대 지도부를 구성해 낙선·낙천운동을 벌여 대법원 판결에서 벌금 50만원이 확정됐죠. 아직도 정당성이 있었던 운동이라 생각합니까.

    “2000년 총선운동은 유권자운동이었습니다. 정치권의 후진성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제약요소라 판단했습니다. 정치권이 스스로를 새롭게 할 의지가 없어 보였어요. 국회의원 공천권을 보스들이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우리 나름의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이런 사람은 정치를 안 하는 게 한국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에서 유권자운동을 한 것이죠. 법정에 설 각오도 했습니다. 국민의 70∼80%가 찬성했습니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여성부 만들어 놓고 여성 국회의원이 늘어나니까 쓸데없는 일을 벌인다’고들 해요. 술자리의 시니컬한 이야기니까 크게 신경 쓸 건 없지만. 여성부를 둔 나라가 우리나라 외에도 많습니까.

    “꽤 많아요. 2000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 각국이 여성정책 총괄 전국부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행동강령으로 채택했거든요. 매년 3월 유엔에서 여성지위위원회가 열리는데 200개국 대표들이 1년 동안 여성의 권익 및 인권 향상을 위해 한 일을 보고합니다. 베이징에서 채택한 행동강령 때문에 많은 나라가 여성부와 여성처를 만들었어요.”

    여성부가 독립적으로 설치된 나라는 호주 캐나다 핀란드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뉴질랜드 덴마크 카메룬 부룬디 부르키나파소 등 10개국.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확립된 구미 선진국에선 굳이 여성부를 독립적으로 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여성특별위원회를 만들고 나중에 여성부로 확대한 것이 김대중 대통령 때였죠.

    “DJ는 페미니스트였습니다. 여성운동 쪽의 오랜 요구를 수렴해 2001년에 만들었죠. 이희호 여사도 1세대 여성운동가들과 연배가 같고 여성운동을 함께했던 분이죠. 김 대통령 스스로 여성의 참여 없는 사회발전은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어요.”

    지 장관은 이화여대 사회학과 65학번으로 3학년 때 학생회 부회장을, 4학년 때는 문리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엔 학교 추천으로 동양시멘트에 입사해 비서부에서 8년간 일했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했다. 동양제과 공장에서 여성 근로자들이 사장 연설을 듣다 쓰러지는 일을 목격했다. 빈혈과 영양실조가 흔했다.

    동양시멘트에서 있을 때 여성으로는 최연소 과장이 됐다. 그때 비서부에 신입사원으로 들어온 Y대 졸업생이 여성 상사 밑에서 근무할 수 없다며 회사를 그만둔 일도 있었다. 그녀는 직장에 근무하며 대학원에 다니다 논문을 쓰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그녀가 여성운동에 투신한 데는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효재 교수의 영향이 컸다. 이 교수는 한국 여성운동의 대모로 불린다.

    “이효재 선생님이 여성 노동자와 빈민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고생을 안 하고 컸어요. 그런데 대학 졸업할 때쯤 갑자기 집안이 망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특혜를 받았지만 동시대 여성문제에 관한 인식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었어요. 당시엔 민주화운동을 하던 그룹이 여성운동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효재 교수는 이화여대를 정년퇴직한 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회장, 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대표로 여성운동을 더 활발히 했다. 70대에는 고향 진해로 돌아가 지역여성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지 장관은 “대단한 선구자”라고 평했다.

    -여담이지만, 여성운동계에 이대 출신이 많지요.

    “1960∼70년대엔 서울대 갈 실력이 되는 여성들도 이대에 갔어요. 부모들이 연애하면 큰일난다고 남녀공학에 못 가게 했거든요. 서울대 연고대 출신 여성에 비해 이대 출신이 수적으로 많았고요. 이화여대에서 여성학을 처음 도입한 게 1977년인데 그 영향을 받은 여성들이 여성운동에 많이 나섰어요. 우리 아래로 내려가면 숫자가 줄어요.”

    -정대협 회장을 할 때 일본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개인적으로 보상을 하려는 걸 저지하는 과정에서 무궁화회 할머니들과 갈등이 있었다죠.

    “유엔 인권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자 일본이 처음엔 부정했어요. 그러다 무라야마 총리가 절충 방안을 찾아낸 거예요. 우리의 요구는 일본정부가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거였는데, 일본은 정식으로 사죄 안 하고 국가배상도 안 하면서 적당히 넘어갈 방법을 꾸며냈죠. 아시아 여성을 위한 평화기금을 만들고, 절충 형태로 할머니들에게 4000만원 정도의 위로금을 주고 적당히 끝내려 했어요.

    정대협은 일본정부가 공식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단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할머니들 중에는 생활이 어려워 이걸 받고 싶어하는 분들도 계셨죠. 하지만 다수가 받으면 일본정부에 공식적 책임을 추궁하는 운동을 계속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한국정부가 동일한 금액을 일시불로 주고 월 생활비를 지급해달라는 법을 만들어 청원했어요.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 이 방안을 제안해 정부가 받아들이게 했죠. 할머니들에게 일시불 금액과 생활지원금을 드리고 의료 지원, 임대아파트 우선분양 혜택을 드렸습니다. 일본정부의 기금을 받은 7명의 할머니들에겐 동일한 액수를 안 드리려 했죠. 그분들이 무궁화회를 구성한 거예요.

    피해자와 운동을 함께하는 것은 참 힘들어요. 너무 어렵기 때문에 정의구현보다는 금전적 이해에 빠지는 경향이 있죠. 낙선·낙천운동 같은 이슈 파이팅(Issue Fighting)은 오히려 쉬워요. 운동을 오래 하다 보면 운동가들도 가끔은 쉬기도 하고 치유도 받아야 해요. 상처받는 일도 많고….”

    ‘정대협’을 만들다

    1982년 발생한 일본의 교과서 왜곡사건이 계기가 돼 독립기념관 건립운동으로 발전했다. 한동안 동아일보는 일제 무단통치 피해자들의 수기를 연재했다. 징병 징용 피해자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정신대 피해자는 찾기 어려웠다. 이 수기를 대필하던 필자도 백방으로 찾다 포기한 적이 있다.

    -어떤 일을 계기로 정신대 할머니들이 스스로 신원을 공개하고 일본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나요? 처음 피해자임을 공개하고 나서긴 무척 어려웠을 텐데요.

    “이화여대 윤정옥 교수가 위안부 할머니들과 같은 연배예요. 이대에 다녔으니 집안이 좋아 안 끌려갔던 거죠. 주로 아래 계층이 끌려갔거든요. 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결혼을 일찍 시키기도 했죠. 윤 교수가 1990년이 될 때까지 이 문제가 한번도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지 않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고 일본에 드나들며 자료를 찾기 시작했어요.

    이 분야에서는 윤 교수가 선구자예요. 이 분이 정신대연구회라는 걸 만들면서 여성운동을 하는 우리한테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위안부 여성들이 이젠 나이가 많아 죽게 됐는데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도 안 밝히고 일본정부도 부정한다. 이걸 어떻게 하느냐’고. 우리는 처음에 ‘옛날 일이고 지금 이슈도 많은데 그걸 꼭 해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윤 교수는 ‘무슨 얘기냐. 이건 현재 얘기다. 현재 생존해 있다’고 했어요. 정대협을 만들어 피해신고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1991년 정대협에 최초로 피해신고를 한 사람은 김학순 할머니다. 일본 총리가 한국에 왔을 때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대협 식구들이 시위를 벌였는데 일본정부의 공식 답변은 정신대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김 할머니는 그 뉴스를 보다가 ‘내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어떻게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정할 수 있느냐’는 생각에 분노했다. 김 할머니가 ‘내가 바로 정신대’라고 ‘커밍아웃’을 한 이후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공개적으로 일본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에 동참했다.

    김 할머니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중국 오지로 끌려갔다. 한국인 위안부 3명이 전방부대 군인을 하루에 3, 4명씩 상대해야 했다고 중언했다.

    “그 할머니가 참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중국여성이나 필리핀의 위안부 여성들은 대개 결혼했어요. 우리나라는 문화적 이유 때문에 결혼을 못했습니다. 버림받고 어렵게 살고 있었죠. 후처로 들어간 분도 몇 분 있지만 끝까지 제대로 살진 못했죠.”

    얼마 전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모방송사 TV토론에서 ‘하나의 범죄행위는 권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참여하는 많은 민간인들이 있다. 한국여성들을 관리하는 것은 한국업소 주인들이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이 교수가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에 사과하러 왔다더군요. 물론 일부 한국인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일본과 한국의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군과 정부가 아주 조직적인 기획하에 정신대를 차출하고 이동시켰습니다. 엄격하게 군대 안에 배치하고 통제하는 군 시스템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돈 벌게 해줄게 어쩌고 하며 유인한 사람들 가운데 한국인이 있기야 있었죠.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일본의 국가범죄죠.”

    ‘본적 목포’ vs ‘출생지 서울’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는 여성 장관이 강금실 김화중 한명숙 지은희 네 명이나 됐죠. 한명숙씨는 국회로 징발됐지만 지금 지 장관 한 명만 남아 있습니다.

    “안타깝고 속상한 일입니다. 이걸 어떻게 할 거냐, 걱정도 하고 어필도 했습니다. 내년엔 좀 늘 거라 생각합니다. 장관은 줄었지만 전효숙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영란 대법관, 김정숙 식약청장, 이승신 소비자보호원장이 여성으로서 보임됐습니다.”

    -부부 협의시 자녀가 어머니 성(姓)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민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면서요. 그렇게 되면 남아선호 사상을 없애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겠군요.

    “현행 민법은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돼 있어요. 어떤 경우에도 아버지 성을 따르게 돼 있어 부성(父姓) 강제조항이라고 하지요. 이것을 ‘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로 바꿉니다. 그리고 ‘다만 부부가 협의한 경우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덧붙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어머니 성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이번에 열어놓을 계획입니다.”

    -이혼가정 자녀의 성(姓)문제는 어떻게 됩니까.

    “이혼가정 자녀는 이미 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쉽게 성을 바꾸는 것도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 가정법원의 재판에 따르도록 했지요. 성인이 되면 본인 의사에 따라 다시 본래의 성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호주제 폐지는 유림(儒林)의 반대가 심한 편이지요.

    “유림이 반대하는 강도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17대 국회의원의 75% 가량이 폐지에 찬성하더라고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당론으로 폐지에 찬성했고 한나라당은 의원 개개인의 선택에 맡겼습니다. 언론도 폐지할 때가 됐다는 사설을 쓰더군요. 그래서 올해는 폐지될 거라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몇십 년 싸운 결과입니다.”

    -호주제가 현실적으론 의미가 없지 않나요. 여성차별적인 상징만 있고….

    “호주상속을 한다는 자체가 사회적 영향력이 커요. 우리나라 출생아의 남녀 성비가 110대100입니다. 남아선호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연적으로 놓아두면 104~105대100 정도 될 거예요. 남성의 평균수명이 짧지만 자연적으로는 남아 출생이 더 많다고 해요.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지역의 성비가 훨씬 높습니다. 결국 남자를 낳아 가계를 잇고 성을 따르게 하려는 의식이 지배하기 때문이지요.”

    -호주제 탓이라기보다는 유교문화의 영향 아닌가요.

    “우리나라 호주제는 일제하에 도입됐지요. 그런데 일본도 없앴거든요. 남성들은 그렇지 않지만 결혼하면 여자들은 본적이 바뀝니다. 남편의 가(家)로 편입되는 거죠. 내 남편 본적이 목포입니다. 나는 서울 사람이거든요. 서울을 일생 동안 떠나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적란에 ‘목포’라고 써야 돼요.

    내가 처음에 장관 됐을 때 본적 대신 ‘출생지 서울’로 써달라고 부탁했죠.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이 ‘본적 목포’라고는 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부부강간, 반드시 처벌해야

    -여성 총리, 여성 대통령이 있는 나라가 꽤 많은데 한국도 그런 시대가 오리라 생각합니까.

    “그렇다고 보는데요. 최근 2, 3년 사이에 여성의 정치적 능력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었어요. 5년 전만 해도 여성이 대통령이나 총리를 할 수 있을까 하고 회의하는 분들이 절반쯤은 됐다고 봅니다. 워낙 열정적인 국민이라 그런지 속도가 빠르게 바뀌어요. 성매매나 가부장적 의식도 빠르게 변화할 거예요.”

    -전국구 의원은 의무적으로 절반을 여성으로 하기로 했지만 아직도 지역구는 여성이 적지요.

    “과거엔 여성이 여성을 안 찍는다는 게 상식처럼 돼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현상이 사라졌어요.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이 10명으로 늘었어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대표가 여성입니다. 여성 대통령, 여성 총리 시대가 올 날도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여담으로 질문하는 건데요. 여성운동하는 분들 중 자기 어머니 아버지 성을 따라 박황, 김송 이렇게 이름 짓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법률적인 게 아니라 문화운동이거든요. 저도 운동할 때 지하은희라고 썼어요. 할머니 성함을 똑똑히 모르는 애들이 더러 있어요. 어머니의 어머니에게도 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문화운동으로 시작했어요. 법률적으로 성을 바꾼 게 아니고.”

    -지금도 얻어맞는 아내들이 많습니까.

    “꽤 많아요. 여성부가 올해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데, 심한 언어폭력까지 포함해 30% 가량의 여성이 당하고 있어요. 여성부는 언어폭력도 폭력이라고 보거든요. ‘시집올 때 너는 뭐 가지고 왔냐’든가….”

    필자가 “그렇게 따지자면 바가지도 언어폭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자 지 장관과 공보관이 함께 웃었다.

    “어쨌든 내가 먹여 살리니까 기분이 언짢으면 부인이나 아이는 때려도 무방하다는 인식은 안 됩니다.”

    -크게 개선된 것 아닌가요.

    “가정폭력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나아졌죠. 그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통 지난한 게 아니었어요. 부부간 관계는 ‘칼로 물 베기’인데 국가가 안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사람도 있었죠. 그러나 법이 생겨나면서 아내를 때리면 안 되는구나, 그게 범죄행위구나 하고 깨닫기 시작했죠.

    아내 구타는 남성의 학력수준, 소득수준, 나이와 관계없어요. 학력수준이 낮고 가난한 쪽에서 많이 때린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얼마 전 대법원에서 부부강간이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이혼상태인데 호적 정리가 아직 안 돼 있었죠. 그렇지만 국가가 침대 위에서 일어난 일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논의도 만만찮죠. 부부강간이 앞으로 사회적 이슈가 되리라 생각합니까.

    “실상을 보면 부부강간에서 강간만 이뤄지는 게 아니에요. 폭력과 강간이 맞물려 있어요. 그냥 약간 싫다는 걸 하는 수준이 아니고 정말 폭력적·강제적으로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하는 건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여성, 의식·적극성·능력 뛰어나

    -성희롱이란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게 불과 몇 년 안 되잖아요. 요즘 직장인들은 무척 조심하는데 아직도 문제가 남아 있습니까.

    “최근 어떤 리포트를 보니까 60%의 직장 여성이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어요. 언어적 성희롱까지 포함한 겁니다. 언어는 중요한 성희롱이죠. 대개 회식자리 같은 데서 언어적 성희롱이 아직도 만연해요.”

    -부하 여직원한테 술을 따르게 하는 것도 포함되나요.

    “한번쯤 따라달라고 할 수는 있죠. 그러나 본인이 싫다는 의사를 표명했음에도 강요하면 그건 성희롱이에요.”

    -어떤 여성은 남성이 가벼운 성적 농담을 걸어오면 기분이 좋다고 하더군요. 성희롱보다는 성적 무관심이 더 모욕적이라는 거죠. 친한 사이에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지분거림 또는 농담도 못하게 하니까 직장문화가 너무 건조해졌다는 남성들의 불만이 있어요.

    “내 딸이 당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행동이라면 해도 괜찮아요. 성희롱인지 친밀감의 표시인지는 미묘한 것 같아도 실제로 정확히 나눠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어요. 여성이 아무 때나 성적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끼지 않거든요. 기분 좋게 왔다갔다할 때는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느끼지 않아요.”

    -옛날 어른들은 남성우월 사회에서 마음대로 하면서 살았고 젊은 후배들은 남녀평등 사회에서 살려는 준비와 각오가 돼 있습니다. 그 중간에 나같이 ‘낀 세대’가 고초를 겪습니다.

    “과도기죠. 너무 고민이 많으신 것 같네요.”

    -직장에서 부려먹기는 남성 사원이 좋아요. 그런데 요즘 시험으로 뽑으면 여성들이 많이 합격하지요. 그래서 어떤 기업은 면접에서 골라낸다고 하더군요.

    “면접을 통해 교묘하게 여성을 차별하면 법에 저촉됩니다. 해당 여성이 문제제기를 하면 차별이 될 수 있죠. 여성이 변해서 여성이 못하는 일도 거의 없지 않나요? 지방에 출장 가서 남자하고 여럿이서 같은 방에 자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아마 며칠이라도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여성의 의식, 적극성, 능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랐어요.”

    -저출산 문제는 서구에서도 획기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프랑스, 스웨덴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저출산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죠. 첫째 임신 출산 육아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둘째 육아 책임을 여성에게 너무 많이 지운 것이죠. 이 두 가지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프랑스와 스위덴은 임신 직후부터 검진을 해주고 출산수당과 휴가도 있고 육아휴직도 있습니다. 비용은 철저하게 정부가 지원합니다.

    부부간 역할을 공유하고 육아에 대한 사회적 분담체계를 갖춰야 하죠. 어릴 때부터 애들에게도 아이 돌보는 교육을 해야 돼요. 남자도 애 씻기는 일을 할 수 있잖아요.”

    -고학력에 직장 좋은 여성들은 혼자서 재밌게 사느라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요. 남자의 초혼 연령은 30세, 여자는 27세예요. 평균 3~4세가 늦어졌어요. 전문직 여성의 경우 굳이 가부장적인 틀에 구속당하지 않으려 하지요. 결혼하더라도 아이 낳는 걸 늦추거나 안 낳는 경향이 있고…. 당분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인터뷰 대상이 특별히 뜨거운 현안을 가진 부처의 장관이어서 뉴스 인터뷰 중심으로 흘렀다. 이쯤 해서 양념으로라도 개인과 관련한 질문을 몇 개 던져야 할 것 같다.

    지 장관은 1977년 서른둘에 결혼했다. “결혼 당시는 이미 여성학 공부를 했을 때였죠. 결혼식 때 아버지가 딸을 사위에게 인계하는 것 같은 절차가 있잖아요. 여자 나이 서른둘이면 성숙한 어른 아니에요? 그래서 남편과 둘이 같이 입장했습니다. 사회도 여자가 봤죠.”

    남편 주영길씨는 건강보험공단 이사로 있다. 동갑이다. 고분고분 순종하는 아내가 아니라 여성운동하는 드센 아내를 만나 힘들게 살았을 것 같다.

    “남편이 학생운동을 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활태도는 그러질 못하고 머리로만 그랬던 거죠. 결혼할 당시엔 머리를 따라 남녀가 평등하게 살자고 결심했던 것 같아요.”

    둘 사이에 딸(23) 하나가 있다.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펠로우십으로 사회학을 공부한다. “걔는 아무튼 어릴 때부터 내가 같이 보낸 시간이 적어 그런지 자립심이 강해요. 대학 들어가서부터 학비를 받아간 적이 없어요. 대학 4년 내내 알아서 했어요. 독립적이죠.” 사회적 성취를 이룬 여성의 딸 자랑이 밉지 않다.

    -아들 낳으라는 압력은 없었습니까.

    “남편이 7형제거든요. 남편도 별로 개의치 않았고요. 내가 결혼할 때 바쁘면 아이를 안 낳을 수도 있으니 그걸 OK하면 결혼하자고 했거든요. 딸 하나 낳았으니 대단한 진전이죠.”

    “로마에선 로마법 따라야죠”

    장관실에서 인터뷰를 끝내고 저녁 자리가 이어졌다. 신현택 차관도 동석한 자리에서 성매매를 비롯해 남녀관계 화제가 내내 이어졌다. 지 장관은 술을 거의 못했다. 레드와인 한 잔을 시켜놓고 입술만 적셨다.

    여성부에서 남녀 성비는 35대65 정도. 신 차관은 성매매 등 현안을 언급하는 데 있어 조심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필자가 “여성이 주도하는 부처에서 어려움이 많겠다”고 위로(?)하자 그는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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