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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칼럼

동호인구 300만, 한국인은 왜 배드민턴에 미치나

감미로운 긴장감, 터질 듯한 충만감, 새와 검객의 숨가쁜 변주곡

  • 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동호인구 300만, 한국인은 왜 배드민턴에 미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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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시덱 형제는 박주봉-김문수 조의 대표적 희생양이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누렸지만 고비마다 박주봉-김문수 조에 가로막혔다.

시덱 5형제는 모두 말레이시아 국가대표. 맏형 미스번 시덱(43)은 1982년 전영오픈 남자단식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1977년부터 13년 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둘째와 셋째가 바로 라지프(41)-잘라니(40) 복식조. 이들은 바르셀로나올림픽 준결승에서 박주봉 조에 2-0(15-11, 15-13)으로 또다시 무릎을 꿇고 3위에 머물렀다. 넷째가 또 다른 남자복식 대표인 라만 시덱(38). 막내 라시드 시덱(35)은 단식 국가대표로 애틀랜타올림픽 남자 단식 3위를 차지했다.

시덱 형제는 세계적인 수비전문 복식조로 유명했다. 손목 힘이 강해 상대가 아무리 강한 스매시를 해와도 계속해서 높게 쳐 올렸다. 이러다가 상대가 지치면 서서히 공격을 시도해 이기곤 했다.

하지만 박주봉에게는 이들의 약점이 보였다.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었지만 상대 공격을 단순하게 높이 받아 올리기만 하는 수비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밀려났다. 그냥 받아만 넘길 게 아니라 빠른 드라이브 등으로 공격적인 수비를 했었다면 좋은 성적을 거뒀을 것이다. 또 하나, 이들 형제는 서브가 불안했다. 복식 서브는 쇼트 서브인지 롱 서브인지 알아챌 수 없는 백핸드서브를 넣어야 하는 데, 이들은 불안한 포핸드서브를 넣었다. 이들은 결국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백핸드서브로 바꿨지만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박주봉’에 대해선 달달 꿸 정도로 열광한다. 요즘도 배드민턴 대회가 열리는 곳에선 상인들이 “주봉버거 있어요~” 혹은 “주봉아이스크림(주봉주스) 있어요~”라고 외치고 다닐 정도다. 무슨 상표가 아니라 말로라도 ‘여기 박주봉이 좋아하는 햄버거(주스, 아이스크림)가 있다’고 해야 잘 팔린다는 것이다.

배드민턴 복식은 자리싸움이다. 가령 박주봉-김문수 조에서 김문수가 앞에 서고 박주봉이 뒤에 서서 플레이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좋은 성적을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가령 혼합복식에서 김동문이 앞에 서고 나경민이 후위에 선다면 또 어떻게 될까.

박주봉은 네트플레이에서 세계 최고다. 게다가 중간볼을 잡아채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에 비해 왼손잡이 김문수는 후위에서 높은 점프를 이용한 강력한 스매시가 일품이다. 둘의 장점을 살리려면 어떤 상황에서든 박주봉이 전위에 서고 김문수가 후위에 서야 한다.

그러나 상대는 반대로 김문수를 앞으로 끌어내고 박주봉을 후위로 밀어내려고 애를 쓴다. 박주봉과 김문수가 볼을 다투도록 둘 사이의 어중간한 지점에 강하고 빠른 드라이브를 하는 것 등이 좋은 예다.

박주봉은 말한다.

“나와 김문수의 물같이 자연스러운 로테이션은 수많은 반복훈련을 통해 이뤄졌다. 어느 상황에서든 내가 앞으로 움직이고 김문수가 뒤로 빠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느낌만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매끄러운 로테이션은 곧바로 정확한 공격과 수비로 이어졌다. 로테이션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잘 치려고 하기보다 파트너의 위치와 특징을 눈여겨보면서 경기를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자단식 3인방의 ‘6년 전쟁’

배드민턴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한국은 이때 4개 종목에서 금메달 2개(박주봉-김문수 남자복식, 황혜영-정소영 여자복식), 은메달 1개(방수현 여자단식), 동메달 1개(길영아-심은정 여자복식)를 따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혼합복식 추가 5개 종목)에서도 금메달 2개(방수현 여자단식, 김동문-길영아 혼합복식), 은메달 2개(박주봉-나경민 혼합복식, 길영아-장혜옥 여자복식)를 따냈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은메달 1개(이동수-유용성 남자복식), 동메달 1개(김동문-하태권 남자복식)에 그쳤다. 이어 2004아테네올림픽에선 금메달 1개(김동문-하태권 남자복식), 은메달 2개(이동수-유용성 남자복식, 손승모 남자단식), 동메달 1개(나경민-이경원 여자복식)를 따냈다.

등록선수 80만명에 동호인 4000만 명을 자랑하는 중국과 배드민턴이 국기(國技)나 다름없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이러한 성적은 대단한 것이다. 한국은 초중고 일반 등록선수를 다 합해도 1500명에 불과하다. 박주봉-방수현 같은 천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바르셀로나올림픽을 2년 앞둔 1990년부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까지 벌어진 세계여자단식 3인방의 피 튀기는 ‘6년 전쟁’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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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부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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