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호

육군 4대 사조직 명단 & 진급실태

‘유령조직’ 만나회·나눔회 (159명) 현 군부 장악, 하나회(250명) 극소수 구제, 알자회(120명) 전멸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5-01-24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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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도 명단’ 오류 바로잡은 하나회 명단 ‘완결판’ 최초 공개
    • 하나회, 27~34기 곤두박질, 35·36기 회생기미
    • 비운의 조직 알자회 명단 최초 공개
    • 알자회, 장군은커녕 대령·중령 진급도 숨막혀
    • 실체 불분명한 만나회·나눔회, 대부분 별 달고 요직 장악
    육군 4대 사조직 명단 & 진급실태
    사조직에관한 소문은 군 주변에서 오랫동안 유령처럼 떠돌았다. 사조직에 속한 장교 중 상당수는 인사에서 특혜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비판의 대상이 됐다. 반면 실력이 뛰어나고 신망도 높지만 사조직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인사에서 가혹하리만큼 불이익을 받아 주변의 안타까움을 산 장교도 적지 않았다.

    육군 장성인사비리에 대한 군검찰 수사에 정통한 국방부 관계자는 “사조직을 파헤치는 것이 최종 수사목표였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군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사조직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 하나회 알자회 만나회 나눔회, 이른바 4대 사조직의 회원 명단을 확보했다. 이중 하나회와 알자회는 공식 확인된 사조직이고 만나회와 나눔회는 그 실체가 분명치 않은 조직이다.

    육본 인사참모부에서 작성한 ‘사조직 관련자 진출관리’라는 문서에는 이 사조직들의 탄생배경과 결성과정, 회원 명단 그리고 그 동안 군 당국이 이들의 진급을 어떻게 관리해왔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이로써 군 당국이 사조직 관련 장교들에게 진급인사에서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준 사실이 공식 확인된 셈이다. 문서에는 하나회와 알자회는 공식 사조직으로, 만나회와 나눔회는 유령조직으로 규정돼 있다.

    군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이 관리하던 또 다른 문서에는 만나회와 나눔회 회원 명단이 실려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만나회와 나눔회는 김영삼 정부 때 하나회가 몰락한 후 군내 새로운 파워집단으로 부상한 사조직이다.

    하나회는 육사 11기부터 36기까지, 알자회는 34기부터 43기까지 결성돼 있다. 그에 비해 만나회는 육사 20~29기, 만나회의 하부조직으로 알려진 나눔회는 육사 30~36기에 분포돼 있다.



    4대 사조직의 명단이 모두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이들 사조직 회원들이 그 동안 진급인사에서 어떤 특혜와 불이익을 받았는지를 기(期)별로 분석한 결과가 공개되는 것도 처음이다.

    하나회와 알자회 회원의 경우 육본에서 공식 인정한 사조직이라는 점에서 실명을 공개하기로 한다. 하지만 만나회와 나눔회 회원에 대해서는 비록 증언자들이 있긴 하지만 실체 유무를 두고 논란이 있는 만큼 성(姓)만 공개하기로 한다.

    군 인사전문가들과 과거 사조직에 속했던 전·현직 군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들의 진급실태를 분석한 결과, 그간 인사에서 가장 큰 불이익을 받은 사조직은 알자회인 것으로 드러났다. 혜택을 누릴 대로 누리다 적발된 하나회와 달리 조직의 실체가 드러난 이후 최상위 기수부터 최하위 기수까지 거의 전멸했기 때문이다. 반면 만나회와 나눔회 회원의 경우 역대 정권에서 진급과 보직에서 상당한 우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큰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모든 사조직 회원이 육사 출신인 만큼 기수만 표시한다).

    [하나회]

    육본 인사참모부 문서에는 하나회의 결성 경위와 활동에 대한 내용이 있다.

    ▲하나회는 5·6공을 거치면서 외형상 해체됐다. 하지만 고명승(15기), 이상학(26기), 김용기(30기) 등에 의해 명맥을 유지했다.

    ▲5공 말기 고명승 보안사령관이 4·13 호헌조치 등 어려운 시국을 맞아 나름대로 대비하기 위해 급히 재조직했다는 추측도 있다.

    ▲소령 때 3~4명 지명 가입. 필요에 따라 중령 때 보충(선배 기수가 수방사, 기무사 등 재경지역 근무 후배들의 근무능력, 성격, 동기생 여론 등을 참작해 일방적으로 선정한 후 회식장소로 불러내 기존 회원을 소개하면서 가입 통보).

    ▲선배기수 2~3명이 주관해 연 2~3회 식사 모임, 격려.

    ▲1987년 이전에는 활발했으나 1987년 이후 재경지역 근무자 위주로 횡적 및 소폭의 종적 모임 유지.

    ‘백승도 명단’의 오류

    하나회 명단은 ‘월간조선’ 등 언론보도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3년 4월 백승도(2004년 준장 예편) 대령의 ‘거사’를 통해 알려졌다. ‘월간조선’은 두 차례에 걸쳐 하나회 명단을 공개했다. 1992년 4월호에 실린 명단은 11~20기 88명, 1993년 1월호를 통해 공개된 명단은 11~26기 153명이었다.

    그에 비해 당시 백 대령이 서울 동빙고동 군인아파트 주변에 뿌린 전단에는 20~36기의 하나회 회원 명단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이 명단은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사건을 수사한 군 수사당국 주변에서는 ‘백승도 명단’에 오른 장교 142명 중 27명은 하나회 회원이 아니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명단에 있는 몇몇 회원의 이름 철자가 틀린 점도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 예컨대 정길현이 ‘정길연’으로, ‘민병달’이 ‘민병일’로 적혀 있었다.

    이번에 ‘신동아’가 공개하는 하나회 명단은 11~36기 소속 250명이다. 육군 인사참모부라는 공식기관에서 작성·관리해온 것이므로 이제껏 공개된 명단 중 가장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군 인사전문가와 하나회 관계자는 “거의 100% 정확한 명단”이라고 평가했다.

    그 동안 군 주변에서는 하나회 회원이 아닌데 ‘백승도 명단’에 포함되는 바람에 부당하게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의 하소연이 종종 화제가 되었다. 국방품질관리소장 한광문(27기·예비역 중장)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은 하나회 회원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해왔다.

    반대로 ‘백승도 명단’이나 언론이 공개한 명단에서 빠진, 말하자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하나회 회원이 적지 않다는 얘기도 그럴듯하게 돌았다. 왜 이런 혼란이 생겼을까.

    이런 의문은 ‘신동아’가 확보한 ‘육본 명단’을 통해 어느 정도 풀렸다. ‘백승도 명단’에 오른 사람 중 상당수가 빠진 반면, 새로운 이름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27기 한광문씨의 경우 ‘육본 명단’에는 빠져 있다.

    두 명단의 기별 인원을 비교한 결과 거의 모든 기에서 3명 이상씩 차이가 났다. 특히 35기의 경우는 심한 편이다. ‘백승도 명단’에는 모두 8명이 있는데, 그중 5명의 이름은 ‘육본 명단’(10명)에서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육본 명단’에 있는 10명 중 7명은 ‘백승도 명단’에 없다.

    36기도 비슷하다. ‘백승도 명단’은 7명인 데 비해 ‘육본 명단’은 10명이다. ‘육본 명단’ 10명 중 5명은 ‘백승도 명단’에는 없다. 반면 ‘백승도 명단’ 중 2명은 ‘육본 명단’에서 빠져 있다.

    이에 비해 ‘월간조선’이 공개한 명단은 ‘백승도 명단’보다는 오차가 작은 편이다. ‘육본 명단’과 비교하면 기별로 한두 명 차이가 있다. 하지만 26기까지의 회원만 적혀 있는 것이 한계다.

    하나회 회원들의 진급실태를 분석할 때 11~26기의 명단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백승도 파동’이 있던 1993년 초 이미 26기 회원이 1차로 준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때까지 장성진급 대상이 아니던 27기 이하의 회원들이 명단 파동 이후 진급인사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지가 분석 포인트다.

    ‘명단 파동’ 후 진급률 급락

    육본 인사참모부 문서에 따르면 군 당국은 하나회 회원들에 대해 군 복무 기간 중 1회에 한해 불이익을 준다는 방침을 정했다(장교들의 진급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 대체로 기별로 3차에 걸쳐 이뤄진다. 따라서 올해 1차 진급에 실패하면 이듬해에 2차, 내후년에 3차 진급기회가 있다. 예컨대 2차 때는 1차에서 함께 떨어진 동기생은 물론 새로 1차 진급대상에 오른 한 해 후배기수 및 3차 진급기회를 맞은 한 해 선배기수와 경쟁해야 한다). 문서에 적힌 진급 제한방식은 다음과 같다.

    ▲1차: 전원 진출 제한▲2차: 극소수 진출▲3~4차: 경쟁선발을 통한 소수 진출*군에 꼭 필요한 인재는 선별적 진출, 군에 기여 기회 부여.

    또한 보직에 대해서도 ‘기존에 누린 특혜를 고려해 형평성이 이뤄질 때까지 불이익을 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러한 진급 및 보직 불이익 원칙은 알자회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26기 이전 기수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하나회 회원이 별을 달았다. 최상위계급인 대장도 수두룩했다. 주요 보직도 독차지했다. 한마디로 하나회 전성시대였다.

    그러나 명단이 공개된 1993년 이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그해 준장 2차 진급기회를 맞은 26기 하나회 회원 6명 중 3명은 끝까지 별을 달지 못했다. 100%에 가깝던 하나회 회원들의 장성 진급률이 50%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해 준장 1차 진급시기를 맞은 27기의 경우 회원 7명이 모두 진급에서 탈락했다. 이듬해 1차 진급대상이 된 28기(9명) 회원 중에서도 장군은 나오지 않았다. 이 두 기의 하나회 회원은 다들 대령으로 전역했다.

    29기의 경우 9명 중 이명구씨 한 사람만 장성으로 진급했다. 이씨는 3차로 별을 달았는데, DJ 정부에서 소장까지 오른 후 전역했다. 30기 회원은 8명. 그중 김용기, 권행근씨만 각각 2, 3차에 별을 달았다. 회원 6명인 31기의 경우 3명이 각각 1, 2, 3차에 준장으로 진급했다.

    1993년 중령이던 32기 회원 12명 중에는 아직 별이 나오지 않았다. 대령 계급장도 동기들에 비해 한참 늦게 달았다. 한 회원은 5차에 진급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33기도 회원 9명 모두 장성 진급에 실패했다. 이들은 대령 단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현재 대령은 39기까지, 중령은 43기까지 배출된 상태다. 2003년 준장 1차 진급기회를 맞았던 34기 하나회 회원(9명)의 경우 장성은커녕 대령 진급자도 드물다. 두 사람이 각각 3차와 5차에 대령으로 진급했을 뿐 나머지 회원은 모두 중령으로 예편했다.

    지난해 준장 1차 진급대상에 오른 35기 회원도 10명 중 4명만 대령 계급장을 달았다. 1명은 2차에, 3명은 3차에 가까스로 진급했다. 하나회 마지막 기수인 36기는 10명의 회원 가운데 5명이 대령으로 진급했다. 한 명만 1차로 진급했고, 3명은 2차, 나머지 한 명은 3차로 턱걸이했다.

    육본 인사참모부 문서에 따르면 알자회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1986년 1월. 42기(육사 4학년)가 43기(3학년)를 끌어들이는 과정에 회원가입을 권유받은 43기의 한 생도가 거절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때 비회원인 42기 모 생도가 모임에 관한 내용을 알게 됐고 이를 공개적으로 발설했다.

    그 직후 보안사(기무사의 전신)는 기별로 2~3명씩 불러 모임의 실체를 확인하고 회원 명단 파악에 나섰다. 조사결과 기마다 평균 12명의 회원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보안사에 불려가 조사를 받던 알자회 회원 L씨는 “조사가 끝난 후 ‘이 일을 문제 삼아 제대하지 않는다’ ‘조사받은 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 따위의 각서를 썼다”고 회고했다.

    L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보안사가 알자회를 조사한 사건은 비밀에 부쳐지지 않았다. 보안사 조사를 받고 부대로 돌아간 L씨는 각서를 의식해 상관에게도 조사내용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상관이 L씨를 부르더니 “너, 알자회냐”고 물어 몹시 당황했다는 것이다.

    당시 보안사 조사내용과 관련, 육본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직상, 직하 2개 기간 종적 연계 사실 확인(3개기 이상 종적 연계 없음).

    ▲군내 영향력자 및 외부와 연계사실 없음. 동기간 친목강화 모임으로 확인.

    보안사 조사 후 수면 밑으로 들어갔던 알자회의 움직임이 다시 드러난 것은 1992년 7월 38기의 육군대학 교육과정에서였다. 육본 인사참모부장이 각 기 대표를 소집해 여론을 수렴한 후 회원들의 보직을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알자회가 하나회와 다른 점은 보안사의 조사결과가 말해주듯 생도 시절 결성된 친목모임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알자회를 하나회의 아류쯤으로 여기는 일부의 시각은 부적절한 것이다. 육본 문서에는 알자회 결성경위와 활동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술돼 있다.

    ▲1976년 말 육사 34기 3학년 동기회장 박종국(예비역 대위) 생도가 ‘동기생은 있으나 진정한 친구는 없다’는 인식에서 몇몇 친한 동기생을 중심으로 모임을 결성.

    ▲12명의 동기생을 규합해 ‘서로 잘 알고 지내자’라는 뜻에서 ‘알자회’로 이름붙임.

    ▲1978년 말 (34기 임관 직전) 35기 후배들에게 동 모임 결성 권유(동일한 방법으로 34~43기까지 1년 선배가 후배기 결성 권유, 졸업선물 전달 등 상견례).

    ▲사관학교 재학중 교내 회동. 휴가시 친가 상호방문.

    ▲임관 후 OBC 교육시 1~2회 회동.

    ▲재경 근무자 중심으로 휴가 및 회원의 경조사시 부분적 회동.

    한 기 평균 12명인 알자회 회원은 총 120명이다. 먼저 최상위 기인 34기의 진급실태를 살펴보자. 동기 중 일부는 2003년에 별을 달았건만 알자회 회원들은 대령까지 오르는 데도 헉헉거려야 했다. 12명 중 박승용, 박주현씨만 대령으로 진급했다. 8명이 중령으로 예편했다.

    역시 12명인 35기에서는 대령 진급자가 강선모 박희도 유정권씨밖에 없다. 그나마 1차에 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들 외에 현역으로는 중령이 4명 있고 나머지는 제대했다. 36기(12명)도 1차에 대령이 된 사람이 없다. 총 진급자가 4명인데 1명은 2차에, 3명은 3차에 진급했다. 나머지는 다 옷을 벗었다.

    37기(12명)의 경우 조용평 승장래 두 사람이 뒤늦게 대령으로 진급했다. 38기(13명), 39기(12명)에서는 대령 진급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육본 문서에 따르면 34기의 이해평씨, 35기의 신동혁, 박정욱씨, 36기의 장창록 김달수씨는 알자회 회원이면서 동시에 하나회 회원이다. 5명 중 이씨와 신씨, 김씨는 중령으로 예편했고, 박씨는 현역 중령이다. 장씨는 3차에 대령으로 진급했다.

    사조직 회원들은 결성 이유야 어쨌든 동료, 선후배간에 위화감을 조성한 잘못만으로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군 안팎에서는 이들이 그 동안 인사를 통해 그 대가를 치렀고 오래 전에 조직활동이 중단된 만큼 1차 진급에서 무조건 떨어뜨린다는 원칙을 언제까지나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말하자면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알자회에 대해서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동정론이 힘을 얻고 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하나회는 주요 보직을 독점해 회원들끼리 돌리고 나누고 물려줬다. 진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적어도 26기까지는 장군은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물론 개중엔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회원도 적지 않다. ‘XX기 이전까지만 놓고 보면 군에서 똑똑하다는 소리 듣던 사람의 상당수는 하나회 회원이었다’는 얘기가 군에서 정설처럼 퍼져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오랜 기간 혜택과 우대를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 2명을 배출하며 이 나라 군을 좌지우지하던 선배 기수의 회원들이 후배 기수 회원들의 진급과 보직을 관리해준 덕분이다. 하지만 장군 하나 나오지 않은 알자회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한 것이다.

    육본 문서에서 ‘유령조직’으로 분류된 만나회와 나눔회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만나회.

    ▲6공 시절 이OO 참모총장과 김OO 인사참모부장 주도로 결성. *육사 20~29기의 후배 결집.▲3당 통합시 (민자당) 민주계 핵심인 김OO 전 정무장관과 친척인 김OO이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발탁된 후 만나회 실력자로 부상.▲1993년 하나회 명단 살포사건 후 군권(인사권 등) 장악.*문민정부 시절 인사참모부장 독식(?)(임OO 곽OO(非 만나회) 김OO 김OO 박OO) ▲문민정부 시절 김현철을 정점으로 세력 강화*한보사건 후 김현철 농단이 여론화한 후 위축나눔회에 대해서는 비교적 간단히 언급돼 있다.▲만나회의 하부조직으로 결성(육사 30기 이후로 구성).▲기수별 회원수는 만나회보다 증가, 결속력도 증대.▲만나회 및 김현철과 연계되어 요직 독식.

    하나회가 물러난 자리를 채우다

    육본 문서에 따르면 인우회(가칭)라는 조직도 있다. 인사운영실 보직장교 중 3사 출신 선후배간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밖에 7공자, 예성 등이 있다.

    만나회와 나눔회를 한 묶음으로 처리하는 이유는 두 조직 모두 공식적으로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데다 겹치는 회원이 많기 때문이다. 육본 문서의 요지는 한마디로 하나회가 물러난 자리에 만나회와 나눔회 인맥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군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 관리문서에 기재된 만나회와 나눔회 명단은 N회, NN회, 만나회 세 종류다. 군 관계자들과 검토한 결과, 이중 NN회 명단이 신빙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판단됐다. 15~36기가 등장하는 것에 비춰 만나회와 나눔회 회원을 섞어놓은 것으로 추측된다. 모두 합쳐 159명.

    명단대로라면 만나회와 나눔회 회원 중 상당수가 별을 달았으며 군 고위직과 요직에 올랐다. 또한 25기 이후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이들이 현 군부의 주축임을 알 수 있다.

    먼저 만나회의 마지막 기로 알려진 29기 이전의 명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모두 72명인데 1명만 빼고는 모두 장성에 올랐다. 대장이 14명이나 된다. 참모총장을 지낸 이도 여럿 있다.

    15기 회원은 L, K씨 두 사람이다. 두 사람 다 군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다.

    18기의 P, 19기의 Y, L, 20기의 D씨 도 하나같이 군 고위직을 지냈다. 21기로는 L, J, L, K씨가 있다. 넷 다 고위 장성 출신이다. 22기 회원으로는 L, S, P, K씨가 있는데, 소장 출신이 셋이다. 23기는 P, K, C, J, L씨 5명이다. 역시 중장 이상의 고위계급이 많다.

    24기 회원은 8명. K, P, L, P, O, K, K, O씨가 그들이다. 중장이 5명 나왔다. 25기는 P, K, K, N, P, A, L, S, S씨 9명. 중장 이상이 6명인데 현 군부의 고위직 인사가 여럿 포함돼 있다. 26기에는 H, L, K, O, K, K씨 6명이 있는데 중장 이상이 4명이다.

    27기도 6명이다. K, K, P, K, L, L씨가 그들. 소장이 4명이다. 28기는 K, P, P, K, U, K, S, Y, K, P, M, K씨로 12명에 이른다. 소장 계급이 9명으로 가장 많다. 29기도 J, P, Y, P, S, P, J, J, S, C, O, K씨 12명이다. 1명만 대령이고 나머지는 준장 이상이다. 27, 28, 29기엔 현 군부의 요직에 있는 인사가 여럿 눈에 띈다.

    명단 작업하던 하나회 회원 구속될 뻔

    30기 이후로는 모두 87명이 회원으로 기록돼 있다. 30기는 K, K, L, K, P, C, Y, H, Y, L, P, P, J, L씨 14명이다. 그 중 8명이 장군으로 진급했다. 6명은 대령에 그쳤다. 31기는 16명이다. J, L, P, C, P, L, H, J, K, L, H, P, L, S, K, K씨다. 10명의 장군이 배출됐다. 소장 진급자도 여러 명 있다.

    32기는 H, P, L, H, H, S, C, P, U, C, J, P씨 12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중 7명이 장군이다. 33기는 11명으로 L, K, L, H, P, J, C, L, L, N, C씨다. 이중 5명이 별을 달았다. 34기에서는 16명의 이름이 보인다. L, K, K, P, P, K, L, K, S, S, L, L, L, P, K, J씨다. 8명이나 준장으로 진출했다.

    지난해 34기가 2차, 33기가 3차로 준장 심사대상에 오른 점을 감안하면 나눔회 회원들의 장성 진급률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35기 회원으로는 K, J, M, S, L, K, N, L, P, J씨 10명이 있다. 35기의 준장 1차 진급시기는 지난해였는데, 나눔회 회원 중에서는 1차 진급자가 나오지 않았다. 모두 대령이다. 명단에 있는 마지막 기인 36기는 S, P, J, P, K, L, K, K씨 8명이 회원이다. 한 명만 중령이고 나머지는 대령이다.

    만나회와 나눔회 명단에 대해 군 주변에서는 김영삼 정부에서 거세당한 하나회 세력 중 일부가 하나회가 물러난 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군 인맥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하나회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1990년대 중반 일부 하나회 회원들이 실제로 명단 작성 작업을 벌였으며 그때 정리한 명단과 이번에 드러난 명단은 공통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조직 문제에 정통한 군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그 일을 주도한 하나회 소속 모 대령의 경우 기무사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일이 시끄러워질 것을 우려한 군 수뇌부가 그를 전역시키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했다는 것이다.

    군검찰이 표적으로 삼은 사조직은 만나회와 나눔회였다. 수사가 정상적으로 계속 진행됐더라면 두 조직의 실체와 이들의 인사전횡 의혹이 밝혀졌을지도 모른다.

    군 인사통인 모 장교는 “김영삼 정부 때 군내에 만나회와 나눔회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과거 하나회 회원이었던 한 예비역 장교는 두 조직의 실체에 대해 “조직이라기보다는 인맥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라며 “이들이 현 군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실체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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