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호

지구상 최강의 싸움꾼은 누구?

갈고리 그래플링 + 소나기 파운딩, ‘쌍칼’ 표도르가 최고 명검

  • 글: 박성진 격투기 웹진 ‘엠 파이트’ 기자 kaku616@hanmail.net

    입력2005-03-24 1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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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무배(레슬링), 최홍만(씨름), 김민수(유도) 등 한국 스타들의 잇따른 진출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이종격투기. 과연 세계 최강의 파이터는 누구일까. 타격기만 출중한 선수보다 그라운드 기술에 강력한 타격기를 함께 갖춘 선수가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다. 그런 점에서 현 프라이드 챔피언
    •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는 최강자라는 평을 듣기에 손색이 없다.
    지구상 최강의 싸움꾼은 누구?

    지난 2월 벌어진 타격기 황제 미르코 크로캅(왼쪽)과 UFC 챔피언 출신 레슬러 마크 콜먼의 경기. 크로캅의 KO승으로 끝났다.

    남자가 물리적인 힘에 관심을 쏟고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갖는 것은 철없는 학창시절만의 얘기가 아니다. 남자들의 힘에 대한 동경과 원초적인 갈망은 나이나 사회적 지위, 부, 명예와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다. 1970~80년대에 절정의 인기를 누린 레슬링이나 복싱, 그리고 최근 이종격투기가 많은 이의 관심과 인기를 끄는 것도 그것이 인간의 힘에 대한 욕망을 대리만족시키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 최강의 사내는 누굴까. 최고의 내공을 쌓았으면서도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무술 고수를 찾아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다. 마치 올림픽처럼 무술의 최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실력을 겨루는 것이다. 세계 3대 메이저 격투대회인 K-1, 프라이드(PRIDE), UFC는 바로 이런 꿈이 실현되는 무대다(‘신동아’ 2005년 2월호 496쪽 참조). 과연 누가 최강자인지 3대 메이저 격투대회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K-1은 그라운드 기술이나 관절기를 배제하고 오로지 주먹과 발(다리)을 사용해 실력을 겨루는 입식타격기 대회다. 치고 때리는 기술(striking)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1993년에 시작된 K-1은 2004년까지 연도별 그랑프리 대회를 열두 번 치렀다. 이 대회의 역대 우승자들을 살펴보면 세계에서 주먹질과 발차기가 가장 뛰어난 사나이를 일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네스토 호스트(Ernesto Hoost)킥복싱, 무에타이 / 네덜란드, 1965년생, 195cm, 103kg

    지구상 최강의 싸움꾼은 누구?

    로킥의 마술사 어네스토 호스트.

    불혹의 나이에도 격투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호스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파이터다. 열두 번의 그랑프리 대회 가운데 1997, 1999, 2000, 2002년 네 번 챔피언에 올랐다. 이는 역대 최다 우승기록. 준우승 경력까지 더하면, 어네스토 호스트는 지난 10여년간 늘 K-1의 정상에 있었다.



    ‘최강’ 호스트 두 번 꺾은 괴력

    195cm의 큰 키와 긴 다리를 지닌 호스트는 스피드와 유연한 몸놀림, 채찍처럼 휘감으며 상대의 허벅지를 공략하는 강력한 로킥, 빈틈을 보인 상대에게 소나기처럼 퍼붓는 양손 훅을 주무기로 대부분의 K-1 선수들을 제압해 승리를 거둔 최고의 테크니션이다. ‘미스터 퍼펙트(Mr. Perfect)’라는 별명처럼 호스트는 후배 킥복서들에겐 교과서와 같은 존재다.

    단점이라면 강력한 펀치를 주무기로 밀고 들어오는 스타일에 약한 면을 보인다는 점이다. 1993년 결승에서 프랑코 시가틱의 펀치 한 방에 실신해 KO를 당했다거나, 오로지 힘으로 달려드는 K-1의 ‘야수’ 보브 샙에게 어이없이 패배한 사실은 호스트의 경력에 흠집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객관적인 데이터로 볼 때 현재 K-1 격투가들 중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선수는 단연 호스트다.

    피터 아츠(Peter Aerts)킥복싱, 무에타이 / 네덜란드, 1970년생, 192cm, 106kg

    지구상 최강의 싸움꾼은 누구?

    강력한 스트레이트와 하이킥이 일품인 피터 아츠.

    K-1에서 어네스토 호스트와 견줄 수 있는 선수는 피터 아츠뿐이다. 1994, 1995, 1998년 총 3회 K-1을 제패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호스트보다 실력과 명성에서 훨씬 앞서 있었다. ‘20세기 최강의 킥복서’로 불린다.

    아츠는 파워를 바탕으로 강력한 스트레이트와 화려한 하이킥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며 KO시키는 스타일. 스무 살 때 당시 세계 최강의 킥복서로 군림하던 미국의 모리스 스미스를 꺾고 화려하게 등장한 그는 천재 격투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제1회 K-1 대회가 개최될 때만 해도 아츠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8강전에서 호스트에게 판정패했다. 하지만 이후 1994, 1995년 대회를 연패(連覇)하며 최강의 킥복서라는 명성을 굳혔다.

    1996년, K-1 최고의 펀치로 소문난 마이크 베르나르도에게 두 차례의 KO패를 포함, 3연패를 당하며 슬럼프에 빠져 한동안 술과 마약에 빠져 살던 아츠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드라마처럼 재기에 성공한다. 1998년 K-1 그랑프리에서 전 경기를 1회 KO로 이기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지만 그해 프랑스의 신예 시릴 아비디에게 충격의 패배를 당하면서 입은 허리 부상으로 이후 전성기의 화려한 하이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츠의 화려한 발차기 기술을 기억하는 팬들은 그의 부활을 고대하고 있다.

    밥 샙(Bob Sapp)미식축구, 프로레슬링 / 미국, 1974년생, 196cm, 165kg

    지구상 최강의 싸움꾼은 누구?

    K-1 최강 호스트를 두 번이나 KO시킨 괴력의 밥 샙.

    2002년 K-1 대회 때 밥 샙의 등장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2m에 육박하는 키에 160kg이 넘는, 말 그대로 ‘야수(The Beast)’가 등장한 것이다. 밥 샙은 원래 미식축구(NFL) 선수로 꽤 좋은 성적을 거두다가 부상으로 은퇴한 후 잠시 프로레슬링계에 몸담았다가 K-1에 데뷔했다.

    ‘최강’ 호스트를 두 번 꺾은 괴력

    그가 처음 K-1 무대에 등장했을 때 무엇보다 우람한 체구가 화제가 됐다. 단순히 큰 정도가 아니라 스포츠로 다져진 근육질의 몸매가 워낙 다부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로레슬링을 잠깐 한 것말고는 격투기 경력이 전무한 터라 10여년 이상 격투기로 잔뼈가 굵은 파이터들을 상대로 어떤 시합을 펼칠지 격투팬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밥 샙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엄청난 힘을 과시하며 곧바로 K-1의 정상권에 다가섰다. 끝내는 당시 K-1의 최강자로 인정받던 어네스토 호스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TKO승을 거뒀다. 같은 해 벌어진 재대결에서도 밥 샙은 호스트에게 로킥과 보디 블로를 허용하며 다운까지 당하는 위기에 몰렸으나, 특유의 괴력으로 결국 1차전에서처럼 호스트를 코너에 밀어붙이고 무차별 공격을 퍼부은 끝에 TKO승을 거뒀다. 이 시합 이후 ‘과연 K-1에 밥 샙을 상대할 수 있는 선수가 있을까’ 하는 말까지 나왔다.

    밥 샙은 일본 연예계에 진출해 CF스타로 각광받으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장기간 지속될 듯하던 밥 샙의 독재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듬해인 2003년 K-1의 강타자 미르코 크로캅과의 경기에서 1라운드에 강력한 펀치 한 방을 맞고 KO당한 것. 그 누구도 밥 샙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경기 이후 ‘천하무적 밥 샙’이라는 환상은 깨졌다. 그는 격투기가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인 선수다.

    레미 본야스키(Remy Bonjasky)킥복싱, 무에타이 / 네덜란드, 1976년생, 192cm, 105kg

    레미 본야스키는 2003, 2004년 K-1 월드 그랑프리를 연속 제패하며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K-1의 공식 챔피언이다. 특히 2004년 K-1 그랑프리 대회에서는 K-1의 최강자 어네스토 호스트와 8강전에서 맞붙어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물리치고 결승에 올라 K-1의 세대교체를 선포했다.

    본야스키의 격투 스타일은 정통 무에타이에 가깝다. 일명 ‘플라잉 니킥(flying knee kick)’이라 불리는, 뛰어올라 무릎차기가 일품인 선수다. 전직 은행원으로 세련된 매너에 항상 말끔한 양복차림으로 나타나 엘리트 금융맨의 이미지를 풍긴다.

    날아올라 무릎차기

    본야스키는 K-1의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최강자로 인정받기엔 부족한 점이 있다. 호스트를 제외한 다른 강자들과 대결해 압도적인 전적을 기록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호스트나 아츠 같은 1세대가 물러난다 해도 제롬 르 반나, 레이 세포와 같은 강자들을 이기지 못한다면 챔피언 자리를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제롬 르 밴너(Jerome le Banner)복싱, 킥복싱 / 프랑스, 1972년, 190cm, 120kg

    제롬 르 밴너는 K-1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적은 없지만 늘 우승후보 0순위로 꼽히는 선수다. 강력한 왼손 스트레이트를 주무기로 호스트, 아츠, 프란시스코 필리오 등 초일류 파이터들을 KO시켰을 만큼 주먹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수다. K-1에서 활동하다 미국의 유명 프로모터 돈 킹에게 발탁돼 프로복싱에 데뷔, 5전 5승의 전적을 쌓기도 했다.

    밴너는 ‘배틀 사이보그(Battle Cy-borg)’라는 별명처럼 경기 내내 상대를 밀어붙이며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스타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단점이라면 위기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유난히 턱이 약하다는 점이다. 그 탓에 어이없게 KO패를 당한 적이 여러 차례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 반열에 올랐다. 호스트와 아츠로 대표되는 구세대가 물러나고, 미르코 크로캅, 마크 헌트 등이 프라이드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에서 레미 본야스키, 레이 세포 등과 향후 K-1 챔피언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 외의 K-1 강자들로는 마이크 베르나르도(Mike Bernardo·남아프리카공화국), 레이 세포(Ray Sefo·뉴질랜드), 프란시스코 필리오(Francisco Filho·브라질) 등을 꼽을 수 있다.

    마이크 베르나르도는 제롬 르 밴너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복싱 스타일의 격투기 선수로 호쾌한 펀치 러시가 일품이다. 피터 아츠, 앤디 훅 등과 펼친 명승부는 K-1의 전설이 됐다.

    레이 세포는 일명 ‘부메랑 훅’이라고 불리는 ‘원 펀치’의 필살기를 갖고 있는 선수다. 상대가 누구건 두려워하지 않는 호쾌한 스타일로 때때로 방어를 하지 않는 ‘노 가드(No Guard) 전법’을 보여주며 팬들을 흥분시키기도 한다.

    프란시스코 필리오는 킥복싱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는 K-1에서 앤디 훅의 뒤를 이어 가라테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선수다. 극진 가라테 세계대회 우승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일격(一擊·이치게키)’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강력한 펀치와 킥을 자랑한다.

    격투가들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프라이드는 K-1, UFC에 비해 늦게 출발했지만, 그 규모나 인기 면에서는 오히려 두 대회를 능가하고 있다. 세계 격투계의 흐름이 종합격투기(MMA)로 간다는 점에서 입식타격기 위주인 K-1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UFC가 미국의 주류문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해 프라이드는 일본의 독특한 무사도 문화와 결합되어 격투가의 부와 명예를 보장해주고 있어 전세계 종합격투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명실상부한 전세계 종합격투기의 메이저리그인 프라이드 경기는 헤비급과 미들급 두 체급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헤비급 선수를 중심으로 최강의 파이터들을 살펴보자.

    에밀리아넨코 표도르(Emelianenko Fedor)삼보, 유도/ 러시아, 1976년생, 183cm, 106kg

    지구상 최강의 싸움꾼은 누구?

    프라이드 현 챔피언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내로 통한다.

    표도르는 현재 공식적인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이다. 부상에 따른 1패를 제외하고는 패한 적이 없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격투가다. ‘러시아 최후의 황제’로 불린다.

    2000년 일본 격투기 대회인 ‘링스’를 통해 데뷔한 표도르는 2002년 최고의 대회인 프라이드 무대에 선을 보였다. 데뷔 이후 세미 슐츠, 히쓰 헤링, 마크 콜먼 등 일류 파이터들을 연파했고, 마침내는 당시 헤비급 챔피언이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마저 물리치고 프라이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올라타 퍼붓는 소나기 펀치

    표도르는 다른 격투가들에 비해 신체조건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강력한 일격 펀치나 화려한 발차기를 구사하지도 않으며, 예술적인 그라운드 기술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펀치만으로는 제롬 르 반나를 능가하지 못하고, 로킥에서는 호스트를, 하이킥에서는 크로캅을 따라갈 수 없으며, 그라운드 기술만으로는 노게이라에게 밀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른 종합격투기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를 넘어뜨리고 올라타서 펀치를 퍼붓는 파운딩(pounding) 공격은 아직까지 그 누구도 견뎌내지 못했다. ‘무딘 칼이 명검(名劍)’이라는 말은 바로 표도르를 위한 말이다.

    현재 챔피언의 자리에 있기에 크로캅을 비롯한 프라이드 일류 파이터들의 목표가 되고 있고, 태평양 건너 UFC에 쟁쟁한 실력자들이 있기에 표도르의 무패행진이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세계 유수의 격투기 관련 매체들이 집계하는 격투가 랭킹에서 늘 1위에 올라 있는 만큼 당분간 그의 천하가 지속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Antonio Rodrigo Nogueira)브라질 유술/ 브라질, 1976년생, 190cm, 105kg

    지구상 최강의 싸움꾼은 누구?

    그라운드 기술의 달인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는 표도르를 상대로 설욕을 벼르고 있다.

    노게이라는 표도르에게 패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강의 사나이로 불렸다. 특히 브라질 유술을 주축으로 한 그의 격투기술은 마술과 같다고 하여 ‘주짓수 매지션(Jiu-jitsu Magician)’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라운드 기술이 특기인 노게이라는 상대 위에 올라타서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위에 있고 자신은 그 아래에 있는 가드 포지션(Guard Position)에서 멋진 기술을 구사한다. 그중에서도 다리로 상대방의 목을 조르는 삼각조르기(Triangle choke)는 노게이라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다. 격투기 무대 데뷔 이후 패배를 모르던 K-1의 야수 보브 샙에게 팔꺾기 기술인 ‘암바(Arm Bar)’로 승리를 거둬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는 유술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했다.

    무적을 자랑하던 중 현 챔피언 표도르를 만나 2연패를 당한 끝에 챔피언 타이틀을 내줬다. 표도르와는 경기 운영 스타일상 천적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노게이라의 장점인 가드 포지션 공격이 표도르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게이라가 이대로 물러날지, 아니면 절치부심해 재대결에서 빚을 갚을지가 많은 격투팬의 관심거리다.

    미르코 필로포비치(Mirco Filipovic)킥복싱 / 크로아티아, 1974년생, 188cm, 100kg

    미르코 필로포비치가 ‘크로캅(Cro Cop)’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것은 크로아티아 특수경찰 출신이기 때문이다. K-1 그랑프리 대회에서 두 차례 준우승을 차지한 크로캅은 현재는 종합격투기 무대인 프라이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광석화 같은 하이킥의 예술

    크로캅은 비록 K-1에서 우승을 차지한 적은 없지만 제롬 르 밴너, 피터 아츠, 마크 헌트, 현 챔피언인 레미 본야스키 등 대부분의 K-1 일류 파이터들에게 승리를 거두어 최강자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마이크 베르나르도와는 1승1패). 특히 전광석화처럼 터지는 왼발 하이킥은 ‘예술’로 일컬어지며 현존 격투가들 중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펀치도 초일류급이어서 타격전으로는 누구도 꺾지 못할 것 같았던 밥 샙을 한 방에 KO시키기도 했다. 크로캅의 화려한 전적에서 오점이라면 어네스토 호스트에게 2패를 당한 것이다.

    ‘도끼 살인마’

    그는 프라이드에 진출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미국 출신의 파워 레슬러 캐빈 렌들맨에게 충격의 KO패를 당하고 한동안 주춤하기도 했으나 판크라스(일본의 실전 레슬링대회) 챔피언 출신의 조쉬 바넷을 꺾고 렌들맨과의 재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라이드 미들급 챔피언인 반더레이 실바와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K-1과 프라이드를 통틀어 가장 많은 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크로캅은 고국인 크로아티아에서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될 정도로 국민적인 영웅이다. 현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와 시합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표도르, 노게이라와 더불어 ‘프라이드 헤비급 3강’으로 통하는 크로캅은 표도르의 아성을 무너뜨릴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 꼽힌다. 타격기에서 두 사람을 압도하는 데다 렌들맨과의 재대결에서 관절기로 승리한 데서 엿볼 수 있듯 그래플링 기술도 향상됐기 때문이다.

    반더레이 실바(Wanderlei Silva)무에타이 / 브라질, 1976년생, 180cm, 90kg

    반더레이 실바는 현 프라이드 미들급 챔피언이다. 실바는 브라질 유술, 레슬링, 유도 등의 그라운드 기술을 주무기로 하는 그래플러(Grappler)들이 강세를 보이는 종합격투계에서 강력한 타격을 앞세워 승리를 이어가고 있는 스트라이커(Striker)다. 특히 ‘전율의 무릎차기’로 불리는 무릎공격은 가히 살인적이다. 게다가 수준급의 그라운드 기술도 갖췄다.

    ‘도끼 살인마(The Axe Murderer)’라는 무서운 별명답게 실바의 시합은 항상 유혈이 낭자한 타격전 양상으로 펼쳐진다. 최근 K-1에서 프라이드로 옮겨온 강타자 마크 헌트에게 판정패해 무패 행진에 종지부를 찍긴 했으나 여전히 프라이드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힉슨 그레이시()Rickson Gracie브라질 유술 / 브라질, 1958년생, 178cm, 84kg

    힉슨 그레이시는 현대 이종격투기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공식, 비공식 경기를 포함해 450번의 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무패의 격투가로 그레이시 유술(브라질 유술)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엘리오 그레이시의 아들이다. UFC에서 3회 우승하며 그레이시 유술의 강력함을 전세계 격투계에 알렸던 호이스 그레이시의 친형이다. 호이스 그레이시는 힉슨이 자신보다 열 배는 더 강하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프라이드 FC’라는 대회 자체가 힉슨 그레이시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종합격투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현존 격투가 중에서 힉슨 그레이시에 비견될 만한 신화를 쌓은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그는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난 후 공식 은퇴한 상태다. 힉슨 그레이시는 이미 최영의, 이소룡처럼 전설적인 격투가의 이미지를 굳혔기 때문에 굳이 복귀하지 않는다 해도 그의 실력이 폄하되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40대 후반의 나이에 종합격투계에 복귀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1993년 미국에서 시작된 UFC는 현대 이종격투기의 실질적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UFC는 모든 무술을 한자리에 모아 룰을 최소한으로 제한해 가장 강한 무술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만들어진 대회다. 복싱, 킥복싱, 유도, 태권도, 가라테, 레슬링, 브라질 유술 등 각종 무술의 고수들이 출전하는 무술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체급 구분 없이 최강자를 가렸으나, 현재는 복싱처럼 여러 체급으로 나누어 체급별 챔피언을 결정한다. UFC에서 체급이 생긴 것은 이종(異種)격투기로 시작한 UFC가 종합(綜合)격투기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일본의 프라이드가 미들급과 헤비급 두 체급만 있고 타이틀 매치보다는 매치 메이킹 방식으로 이벤트성이 강하고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데 비해, UFC는 체급별 챔피언이 정해져 있고 선수층이 두터우며 일반인보다는 애호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UFC 챔피언은 종합격투계에서 프라이드 챔피언과 쌍벽을 이루며, UFC에서 프라이드로 진출한 선수도 많다. UFC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격투가들은 다음과 같다.

    랜디 커투어(Randy Couture)레슬링 / 미국, 1963년생, 185cm, 93kg

    지구상 최강의 싸움꾼은 누구?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랜디 커투어.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이다.

    현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격투가로서는 환갑이 지났다고 할 수 있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정력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격투가다. 그레코로만형 레슬러 출신으로 국가대표까지 지내며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그가 UFC에 데뷔한 것은 1997년, 비교적 늦은 나이인 33세 때다. 탄탄한 레슬링 실력을 바탕으로 데뷔와 동시에 UFC 헤비급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단순한 레슬러에서 종합격투가로 발전을 거듭하며 비토 벨포트, 티토 오티즈 등의 초일류 파이터들과 대결해 승리를 거두고 현재까지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프라이드 미들급 챔피언인 반더레이 실바와 비슷한 체급이므로 프라이드-UFC의 통합 챔피언전이 기대되고 있다.

    ‘광속 펀치’에 뛰어난 유술까지

    ‘The Natural’이라는 별명에서 엿볼 수 있듯 랜디 커투어는 레슬링이라는 테두리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종합격투기에 자연스럽게 적응해왔다고 할 수 있다. K-1의 호스트와 함께 격투계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격투가다. 특히 가정적인 모습과 모범적인 생활로 다른 격투가들의 존경을 받고 있기도 하다.

    비토 벨포트(Vitor Belfort)브라질 유술, 복싱 / 브라질, 1977년생, 183cm, 93kg

    지구상 최강의 싸움꾼은 누구?

    ‘광속 펀치’에 뛰어난 유술 실력까지 갖춘 비토 벨포트.

    비토 벨포트는 ‘The Phenom’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격투가다. 만 19세에 UFC에 데뷔해 ‘광속 펀치’로 불리는 번개 같은 주먹질로 순식간에 상대를 몰아붙여 KO시키는 강렬한 스타일로 일약 UFC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타격 능력뿐만 아니라 유술 실력도 뛰어나서 격투계 최고의 명문 그레이시 가문에서 양자로 들이려 했을 정도다. 몸매가 빼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도 잘생겨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천부적인 자질에 못 미치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UFC 라이트 헤비급 최고의 기대주인 것은 틀림없다.

    프랭크 미르(Frank Mir)팀 실비아(Tim Sylvia)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인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를 상대할 수 있는 UFC 선수로는 현 헤비급 챔피언인 프랭크 미르와 전 챔피언 팀 실비아를 꼽을 수 있다.

    프랭크 미르는 올해 스물다섯 살인 젊은 선수로 무패를 자랑하던 팀 실비아를 꺾고 UFC 헤비급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유술 실력이 일품으로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기대되고 있다.

    팀 실비아는 프랭크 미르에게 관절기로 패배하기 전까지 무패의 전적을 기록하며 강력한 타격으로 UFC 헤비급의 강자들을 차례로 물리친 선수. 비록 프랭크 미르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UFC 헤비급 최강자로 인정받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이종격투기의 강자들 중 절대지존은 누구일까. 종합격투가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자질이라면 타격, 그래플링, 전략, 파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네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최강자 반열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이 기준으로 보면 우선 K-1의 파이터들은 제외된다. 종합격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그래플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K-1 최강으로 평가되는 호스트를 들 수 있다. 호스트는 상대와 접근전을 벌이면서 힘에 밀려 넘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종합격투기였다면 이미 거기서 승부가 판가름났을 것이다.

    타격기만으론 최강 못 돼

    마이크 타이슨 같은 초일류 복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최고의 펀치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같은 조건에서 시합을 할 경우 상대를 초반에 KO시키지 못하는 한 접근전을 피할 수 없고, 접근전이 벌어졌을 때 그래플링에 대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종합격투가들을 이기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선 상태에서의 펀치와 누운 상태에서의 펀치는 크게 다르다.

    무제한급 레슬링 선수인 러시아의 알렉산더 카렐린 같은 천하장사도 마찬가지다. 13년간 무패, 무실점에 올림픽 3연패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카렐린은 100kg이 넘는 상대를 들어 던질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힘에 정교한 기술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상대를 한번에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이 종합격투기인 만큼 그래플링 실력에 더해 서브미션(Submission·항복을 받아내기 위한 모든 기술)도 갖춰야 하고, 타격에서도 밀리지 않아야 한다. 카렐린은 종합격투기에 가까운 시합을 한 경험이 있다.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종합격투기는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종합격투가의 네 가지 자질을 다 갖춘 최강의 파이터로는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를 꼽을 수 있다. 표도르는 삼보와 유도에 기반을 둔 그래플링 능력에 쉴새없이 몰아치는 펀치력을 겸비했다. 또한 위기 대처능력이 뛰어나고 경기 내내 지치지 않는 강한 체력을 갖고 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보면 힉슨 그레이시가 표도르와 맞먹을 것으로 예상되나 체격에서 한 체급 이상 차이가 난다는 점과 그레이시가 전성기를 지난 점을 감안하면 표도르의 우세를 점칠 수 있다.

    객관적인 전력상 표도르가 최강자로 평가받고 있기는 하지만, ‘세상은 넓고, 상수(上手)는 많다’는 극진 가라테 창시자 최영의의 말처럼 승부의 세계에서 영원한 승자는 존재할 수 없다. 승부의 세계에 도전하는 승부사들 중 강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강하다는 것만으로 승리를 자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종합격투기의 매력은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나 힘이 센 사람을 가리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일견 다르게 보여도 종합격투기는 다른 승부의 세계, 예컨대 바둑과 비슷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정면승부를 벌인다는 점에서.

    승부에 관한 한 남다른 깨달음을 얻었던 일본 바둑기사 기다니 미노루(木谷實) 9단은 이렇게 말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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