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박영수 대검 중앙수사부장

“뇌물사건, 공여자 진술 만으로는 기소 안 한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사진 김성남 기자

    입력2005-07-29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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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수 대검 중앙수사부장
    대검중수부는 6월26일 일선 검찰청에 ‘무죄선고 방지대책’을 내려보냈다. 최근 뇌물수수와 불법정치자금 사건으로 기소된 정치인들에게 잇달아 무죄판결이 내려진 데 따른 대응책이다. ‘무죄선고 방지대책’의 주요 내용은 공소심의위원회 강화, 수사검사의 특별공판팀 배치, 특별수사평가위원회 설치 등이다.

    7월6일 오후 박영수(朴英洙·53) 대검 중앙수사부장을 만나 검찰수사 개선방안을 중심으로 검찰의 현안에 대해 물어봤다. 박 중수부장은 서울지검 강력부장 재임 시절 조직폭력범죄에 관한 논문을 저술할 정도로 조폭 수사에 일가견이 있다. 또 1993년 대검연구관 재직 때는 21세기 검찰기획단 초대 팀장을 맡아 중장기 개혁과제의 밑그림을 완성하기도 했다. 인터뷰에는 민유태 수사기획관과 봉욱 첨단범죄수사과장이 배석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중수부의 기능과 조직 문제부터 짚어봤다.

    -중수부의 수사기능이 과거에 비해 축소됐지요?

    “편제상 수사3과가 없어졌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직접 수사를 담당하던 중수 1, 2, 3과 중 3과가 없어지고, 첨단범죄수사과가 생겨난 대신 컴퓨터수사과와 특별수사지원과가 폐지됐으니 전체적으로 2개 과가 없어진 셈이지요. 하지만 조직의 효율성을 위한 개편이지 수사기능을 축소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중수부 폐지 논의가 일었습니다. 과거 검찰 내에서도 그런 논의가 있었던 적이 있고요.



    “중수부 수사권을 없앨 수는 없어요. 전국 규모로 해야 할 수사나 고도의 독직부정사건, 경제사건은 중앙수사조직이 맡아야 효율적입니다.”

    -검찰권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나온 얘기라고 봅니까.

    “그런 측면도 있겠죠.”

    -외국 검찰에도 우리의 대검 중수부와 같은 조직이 있나요.

    “물론 모든 나라에 다 있는 건 아니지만 미국, 중국 등 주요 국가 검찰엔 중앙수사조직이 다 있습니다. 공직자비리수사처도 그런 개념 아닌가요?”

    -검찰은 그게 대검 중수부 기능과 겹친다고 반대하고 있죠?

    “그렇죠. 중앙수사 기능이 이원화할 필요는 없지요.”

    첨단 수사기법으로 승부 건다

    박 중수부장이 취임 후 역점을 둔 것은 첨단범죄수사 역량 강화다. 범죄수법이 날로 정교해지는 만큼 수사기법도 고도의 전문성과 과학성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제는 과학수사를 하지 않으면 수사 성과를 내기 힘듭니다. 컴퓨터도 알아야 하고 회계와 증권, 금융 흐름도 알아야 합니다. 압수수색할 때도 컴퓨터와 DB(데이터베이스)분석 전문가가 따라가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또 압수수색은 최소한에 그쳐야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가서 이것저것 다 가져와버리면 그 회사 영업을 망치게 돼요. 요즘 강조되는 인격수사, 품격수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첨단수사기법을 알아야 합니다.

    첨단범죄수사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일선청의 특별수사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입니다. 대검에 회계분석팀이 한 팀 있는데 상반기중 한 개 팀을 더 만들 예정입니다. 종전에는 첨단범죄수사기법을 배운 사람들이 업무가 힘드니까 그 분야에 종사하기를 꺼렸어요. 이번 기회에 그들을 다시 불러모으려 합니다. ‘첨단범죄 수사전문 아카데미’를 개원하면서 직원들 인식이 크게 바뀌었어요. 향후 검찰수사는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말로 윽박지르는 수사, 진술에만 의존하는 수사로는 이제 안 돼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마련했습니까.

    “먼저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키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직원들에게 첨단범죄수사기법을 교육하는 한편 외부 전문가를 검찰 수사관으로 특채하고 있어요. 다음으로 관련 시설과 장비를 확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범죄분석센터와 첨단범죄수사지원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DB분석장비를 들여올 계획입니다. 또한 국세청 감사원 금감원 등 관련기관과 협조체제를 강화할 예정입니다.”(봉욱 첨단범죄수사과장)

    ‘아카데미’는 6월20일 개원했다. 회계분석, 자금추적, 컴퓨터범죄, 산업기술유출 및 지적재산권 범죄, 선진 신문기법 등 5개 과정으로 매주 월요일 저녁 3시간씩 52주간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수강생으로 등록한 검찰 직원은 모두 1198명. 그중 대검에 마련된 강의실에 출석해 강의를 듣는 사람이 148명이고 나머지는 사이버 수강을 한다.

    수강생 대부분은 일반 직원이고 검사는 10명가량 된다. 박 중수부장이 원장을, 첨단범죄수사과장이 교육부장을 맡고 있다. 강의는 회계와 금융에 밝은 검찰 직원들과 외부 전문가가 맡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조세형사 분야 전문가로 통하는 안대희 서울고검장도 강사로 나섰다는 점.

    “특별수사의 격을 높이자”

    -외부 전문가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현재 공인회계사 3명을 영입했고, 8월1일자로 두 명을 더 뽑을 계획입니다. 둘 다 금감원 직원인데, 한 사람은 DB분석 전문가이고 다른 한 사람은 금융분석 전문가입니다.”

    -대우는 어떻습니까.

    “검찰 수사관 7급으로 특채됩니다. 사실 보수는 금감원이 검찰보다 낫지요.”

    -그런데도 검찰로 올 만한 동기가 있나요.

    “자기가 가진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죠. 수사에 참여하면 회계와 금융 전 과정을 완벽히 분석하게 돼요. 일이 훨씬 생산적이고 생동감 있다는 데 끌리는 것 같습니다.”

    -지원자가 많았습니까.

    “공인회계사의 경우 2명 뽑는데 50명 가까이 지원했어요. 이들을 마약 수사관처럼 특별관리할 예정입니다.”

    화제를 검찰수사 개선방안으로 돌렸다.

    -정치인 뇌물사건에 대한 잇따른 무죄선고로 검찰수사가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무죄선고 대책방안을 내놓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뇌물사건에서 무죄선고는 대체로 증거판단에 대한 법원과 검찰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최기선 인천시장도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당시 그 사건을 수사한 민유태 수사기획관은 지금도 유죄를 확신하고 있어요.”

    -수사를 한 쪽에서는 다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최근 무죄 선고가 난 사건들은 대부분 공여자의 진술을 유력한 증거로 삼아 기소한 사건입니다.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은 법원이 증거를 엄격하게 해석한 탓이지요. 법원은 또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면서 법정증거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검찰이 이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최종 사법판단권이 법원에 있으니까요. 우리 스스로 증거를 신중하게 판단하고 좀더 과학적으로 수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무죄선고 대책을 내놓은 겁니다.

    수사하다보면 수사하는 사람의 판단에 주관이 개입될 수 있어요. 공소심의위원회는 그런 판단을 객관화하는 기구입니다. 원래 있었는데 그동안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지요. 특히 특별수사의 경우엔 수사의 은밀성, 보안성, 신속성 등을 이유로 개입 자체를 꺼렸습니다. 이제는 특별수사부터 공소심의위원회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받아보자는 겁니다. 또 특별수사사건이 무죄 선고된 경우엔 특별수사평가위원회를 통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짚어보게 됩니다. 물론 잘한 점도 평가하고요. 그리고 평가결과를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수사기법으로 전파하자는 거죠. 한마디로 특별수사의 격을 높이자는 취지입니다.”

    “공명심으로 수사하는 검사 없다”

    -최근 잇단 무죄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대체로 공여자 진술에 의존한 수사였다는 거죠. 대부분 2심이나 3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왔고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안상수 인천시장의 굴비사건이 유일합니다. 돈을 곧바로 돌려준 점에 비춰 받을 의사가 없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죠. 반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최기선 시장 사건의 경우 지금 다시 재판하면 유죄선고가 나올 가능성이 높지요. 이번에 김우중씨를 조사하는 과정에 최 시장에게 돈이 건네졌다는 사실이 확인됐거든요.”

    -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여자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가 아닌가요.

    “물론 방증은 있지요. 돈 준 사람 진술에 신빙성이 있음을 뒷받침하는. 그런데 법원은 그 정도로는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지. 이제는 검찰도 다른 증거 없이 공여자 진술만 갖고는 기소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수사가 위축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검찰도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거예요.”

    -정치인임을 의식해 무리하게 법을 적용한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그 반대인 것 같은데요. 법을 적용하는 데 정치인과 일반인 사이에 차이를 둔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정치인에 대해선 오히려 더 신중하죠.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검찰 간부 출신으로 세 번 구속돼 세 번 다 무죄판결을 받은 박주선 전 의원의 경우 검찰 내에 자기를 옭아매려는 세력이 있다는 투로 얘기했는데요. 속된 말로 유명인을 잡아넣으면 담당검사는 이름을 날리고 검찰의 주가도 올라가죠. 사회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그걸 의식해 무리한 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좋게 표현하면 적극적으로 법을 적용한 것이고, 안 좋게 표현하면….

    “안 좋게 표현하면? 공명심에서? 요즘 그런 수사하는 검사는 없습니다.”

    민유태 수사기획관이 나섰다.

    “최근 무죄 판결이 난 뇌물사건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공여자 진술이 있는데 당사자가 부인한 경우. 즉 재판부가 공여자의 진술을 못 믿겠다며 무죄를 선고한 경우지요. 최기선 전 인천시장, 이인제 의원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박지원씨 사건도 비슷하지만 아직 재판이 안 끝났으니…. 둘째는 박주선 전 의원, 박광태 광주시장, 안상수 인천시장 사건입니다. 법원도 돈을 받은 것은 인정하면서도 뇌물이 아니라 정치자금이다, 또는 범의(犯意)가 없었다고 무죄를 선고한 경우죠.”

    -법원이 예전보다 증거를 엄격하게 판단한다고 봐야 합니까,

    “앞서 예로 든 사건들, 예전 같으면 다 유죄판결이 나왔을 겁니다. 어쨌든 앞으로는 공여자 진술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정황증거가 없는 경우엔 기소하지 않을 겁니다. 수사하고도 기소를 못하는 사례가 많이 생길 거예요. 그럼 또 왜 불기소했냐고 비판할 테고. 고민이에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죠.”

    법원의 공판중심주의 흐름을 대세로 인정한 박 중수부장은 검찰조서능력 제한, 검사의 법정 신문 금지 등 사법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 개혁안에 대해선 고개를 흔들었다.

    “법원쪽 실무자도 사개추위 안대로 하면 사실상 재판을 할 수 없다고 검찰측 의견에 동의했잖아요.”

    -사개추위 개혁안 나름대로 논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모든 증거를 법관 앞에 제시하라, 법관이 모든 걸 판단하게 하겠다는 건데, 이는 국민사법참여제도를 염두에 둔 것이에요. 배심제를 실시하면 검찰이 배심원 앞에 모든 증거를 제시해야 하거든요. 그 경우 방대한 양의 검찰 조서가 문제가 되겠죠.”

    -검찰은 사개추위 안에 대해 수사권 제약이라고 반발하지만, 검찰의 주 기능이 수사보다는 공소유지인 나라도 많지 않습니까.

    “미국도 연방검찰의 경우엔 수사를 합니다. 또 미 법무성은 공정거래법위반사건 등 경제사건에 대해 수사도 하고 기소도 합니다. 일본도 도쿄지검 특수부에서 부패사범을 수사하고,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는 판사가 사실상 검사의 역할을 합니다. 독일도 중점검찰청이라고 해 경제사범 수사를 전담하고 있어요. 이처럼 세계적인 흐름을 보면 반부패수사의 경우 검찰의 수사권이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봉욱 첨단범죄수사과장)

    -외국의 경우 기업범죄수사 시스템이 잘 발달하고 기업인 수사도 원칙대로 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검찰의 경우 유난히 기업인 수사에 약하다는 비판이 있지요.

    “우리가 기업수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말엔 동의하기 어려워요. 대우사건만 해도 얼마나 수사를 잘했습니까. SK 수사도 그렇고. 금융사건에 관한 수사기법이 상당히 향상됐어요.”

    -주로 사법처리와 관련한 비판이 아닌가 싶네요. 정치인에 대해선 엄하게 하면서도 기업인에 대해선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는.

    “기업인에 대한 구형량, 높았어요.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대선자금 수사 때도 ‘재벌 봐주기’ 논란이 일지 않았습니까.

    “그건 기업수사라기보다는 부패독직사건 수사죠. 또 뇌물사건의 경우 통상 받은 사람과 주는 사람을 똑같이 처리하지는 않지요. 준 쪽인 기업의 처지를 감안했을 거예요. 사법처리에 따른 기업 경영 위축 등 국가경제적인 측면도 고려했을 테고.”

    이 대목에서 박 중수부장은 “첨단범죄수사에 대해 강조해달라니까 다른 질문을 많이 한다”며 불평(?)을 했다.

    “중수부가 첨단범죄수사기법을 교육한다니까 직접수사를 안 하는 줄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수사는 언제든지 피하지 않을 겁니다. 욕심 같아선 수사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뒷말 없는 수사, 수사 주체도 만족하고 대상자도 수긍하는 수사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로 수사를 서둘러선 안 되죠. 단기일 내에 성과를 내겠다고 조급해하면 꼭 문제가 생기거든요.”

    -김승규 전 법무부 장관의 인격수사론이 화제가 됐었지요. 특수부에 인품 있는 검사를 배치하겠다는 둥.

    “김 전 장관께서 언급한 인격수사는 적법절차를 지키면서 조사 대상자의 처지도 배려하는 수사라고 봅니다. 수사성과 못지않게 수사의 질도 평가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런 수사를 하려면 바로 첨단수사기법과 같은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요즘엔 회계장부가 데이터베이스화 돼 있어 프로그램을 조금만 바꾸면 조작이 가능합니다. 그런 것을 밝혀내고 파기한 파일을 복구해 분석하기 위해선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지요. 여기서 전자증거법 문제가 제기되죠. 컴퓨터에 든 자료는 항상 조작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앞으로 어떻게 압수하고 어떻게 봉인해 법정까지 갖고 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것인가. 법원에서는 수사단계에서 변조됐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거든요. 압수절차의 적법성도 따지고.”

    식스 시그마 운동

    -검찰에 대해 종종 무소불위라든가 인권침해라든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지 않습니까.

    “이해관계가 대립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습니다. 어쨌든 경찰까지 포함해 수사 주체로서 고압적인 면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이제는 국민의식이 바뀌어 고압적인 수사나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말이 쉽지, 지금도 일선 수사에서는 자백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까.

    “과학적인 증거를 들이대 받아내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지요.”

    -그렇게 않은 경우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수사행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자백했더라도 법정에서 번복할 경우에 대비하고 있습니다.”(민유태 수사기획관)

    “러시아 유전 의혹사건의 경우도 예전 같으면 당사자 소환부터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압수수색부터 해 증거를 다 확보한 다음에 소환했지요.”(봉욱 첨단범죄수사과장)

    최근 연예인 서세원씨는 3년 전의 연예계 비리사건 수사와 관련, 자신의 매니저 하씨를 담당했던 수사관들을 고문과 폭행혐의로 고발했다. 하씨는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수사관들의 고문과 폭행을 못 이겨 허위자백을 했다고 폭로했다.

    -검사나 수사관에 대한 첨단범죄수사기법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신교육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지난 일이긴 하지만, 연예인 서세원씨의 고발사건에서 보듯 고문과 폭행을 동원하는 강압적인 수사행태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경찰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래도 업무 성격상 수사하는 쪽은 받는 쪽에 대해 위압적이거나 고압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수사하는 사람의 인격이나 품성이 중요하지요. 이와 관련해 대검에서는 혁신추진단을 만들어 마음과 생각을 바꾸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업무혁신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식스 시그마(Six Sigma)’ 운동입니다. 미국 GE사의 잭 웰치 회장에 의해 유명해진 경영혁신방법이지요. 포스코의 협조를 받고 있는 이 운동은 대구지검에서 먼저 추진해 큰 성과를 내고 있는데, 앞으로 대검이 주도해 전국 검찰로 확대 운용할 계획입니다.

    박영수 대검 중앙수사부장

    대검 3층에 있는 혁신추진단 사무실 내부. 혁신추진단은 ‘식스 시그마’ 운동으로 검찰 직원들의 의식구조를 바꾸는 임무를 맡고 있다.

    한마디로 검찰도 고객 중심의 사고를 하자는 게 이 운동의 골자입니다. 검찰의 고객은 국민이죠. 예컨대 고소고발사건의 경우 접수해도 곧바로 배당하지 않고 일주일씩 묵혀두곤 했지요. 업무편의상 일정한 건수가 모이면 한꺼번에 처리했던 겁니다. 이제 그러지 말자는 거죠. 고객인 국민은 빨리 처리해주길 바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담당부서에서 조금 번거롭더라도 즉일배당을 해야죠. 갖가지 민원서류나 경찰 송치사건도 마찬가지고요. 일부에서는 범죄를 조사하는 수사기관에서 과연 고객 중심사고가 성공하겠냐고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적어도 우리 검찰인의 의식과 관행을 바꾸는 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이 운동을 적극 지지합니다.”

    “성과 급급한 수사 지양해야”

    -구체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한다면.

    “예를 들면 ‘아리랑교육’이란 게 있어요. 나와 가족과 동료를 돌아보는 교육입니다. 이 교육의 메시지는 무서운 검찰에서 친근한 검찰로 가자는 거예요. 조사할 때 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친근한 검찰이 되자는 거죠.”

    혁신추진단은 조근호 범죄정보기획관이 단장을 맡고 있다. 그는 대구지검 차장 재직시 ‘식스 시그마’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바 있다.

    “‘식스 시그마’ 운동뿐만이 아닙니다. 각 청마다 친절운동이니 스마일운동이니 해서 검찰인의 의식과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어요. 그런 걸 대검의 혁신추진단에서 총괄 추진하는 거죠. 이처럼 검찰은 지금 수사권 조정이니 공판중심주의니 하는 문제로 시련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체질변화를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수부의 첨단범죄수사 강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특별수사의 질을 높일 것이냐. 결론은 첨단범죄수사, 과학수사로 가자는 거죠. 자백 위주의 수사관행도 바꾸고. 또 수사를 서둘러선 안 됩니다. 서두르기 때문에 욕도 나오고 가혹행위도 발생하는 겁니다. 특별수사는 더더욱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에선 사건 하나 수사하는 데 2년, 3년씩 걸려요. 회계자료 분석과 장기간의 감청, 비밀요원 잠입수사 등으로 완벽한 증거를 확보하죠.”

    -정치권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독립한 반면 여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제기되는데요. 여론에 밀려 무리하게 수사한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여론으로부터도 독립해야죠.”

    -검사들 마인드도 바뀌어야죠. 여론 의식 말고 수사 논리로만 판단해야죠.

    “바꿔야지요. 대외적으로 성과 내기에 급급한 수사는 지양해야죠. 비록 실패한 수사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 합니다. 특별수사평가위원회에서 바로 이런 일을 하는 거죠.”

    -명백히 잘못된 수사로 판명된 경우 인사에도 반영되나요.

    “인사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사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평가자료로 활용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물론 인사부서에서 원한다면, 우리 자료가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특별수사평가위원회에 외부인사도 참가한다면서요.

    “법조인이 아닌 사람을 많이 영입하려고 해요. 시민단체 관계자, 언론인, 대학교수, 기업인 등. 수사 보안성을 강조하며 외부인사를 배제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이제는 검찰업무도 투명하고 객관화해야 합니다.”

    수사권 조정 아닌 수사지휘권 배제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문제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대립이 도를 넘어섰다고 보고 공개논쟁을 더는 하지 말라고 지시한 바 있다. 대통령이 직접 경고까지 할 정도로 양측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태세다. 그 사이에서 국민은 피곤하기만 하다. 대통령의 위신도 영 말이 아니다. 검찰에 대해 “‘제도 이상의 권력’을 내놓아야 한다”고 모호하게 한마디 했다가 검찰의 강한 반발만 샀다.

    -경찰과의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한 검사들의 태도는 단호하지요?

    “우리나라 형사사법구조는 상당히 합리적입니다. 황금비라고 생각하는데, 경찰 검찰 법원의 상호 견제가 잘 이뤄지고 있어요. 왜 이런 황금비를 깨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검찰이 가진 게 너무 많다는 취지로 누군가 말했잖습니까.

    “수사만 놓고 보면 가진 게 많죠. 수사지휘권자니. 하지만 이 사회가 수사만으로 통제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질서도 있고 정보도 있고.”

    -경찰 요구는 한마디로 자체적인 수사권을 인정해달라는 것 아닌가요. 이제는 수사기능을 나눠도 되지 않나요.

    “검찰이 왜 생겼나를 생각해봐요. 검사가 수사지휘권을 갖는 건 형사사법 틀에서 경찰을 견제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검찰의 권한이 너무 크다는 여론이 있지요.

    “일선 형사부에서 고생하는 검사들한테 물어보세요.”

    -그러니 경찰이 나눠서 하자고 요구하는 것 아닙니까.

    “경찰이 (수사를) 안 하고 있습니까.”

    민유태 수사기획관이 거들었다.

    “수사권 조정이라는 용어 자체에 문제가 있어요. 경찰 요구의 핵심은 검찰의 수사지휘를 안 받겠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수사권 조정이 아니라 수사지휘권 배제가 정확한 표현일지 모릅니다. 검찰의 탄생배경을 생각하면 수사지휘권을 놓을 수가 없어요. 경찰에는 수많은 특별사법경찰이 있습니다. 경찰뿐만 아니라 세관 국세청 등에도 있는데 우리가 지휘해 조정하지 않으면 수사기능의 효율이 떨어집니다.”

    “수사권 조정에 관한 질문은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입을 다물었던 박 중수부장이 ‘마무리 멘트’라도 하듯 한마디 더 했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직접 영향을 받는 국민에게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지요. 사개추위 방안 중에 ‘재정신청 전면 확대’가 있습니다. 앞으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법원이 직접 감독하고 평가하겠다는 거죠. 그러면서 경찰에 대한 검찰의 감독기능을 배제하려는 건 모순이고 엇박자지요.”

    박 중수부장의 말을 들으며, 검찰과 경찰이 자체적으로 수사권 조정문제에 관한 타협안을 도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사자끼리 합의하라고 맡겨놓은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 모른다.

    -향후 검찰수사의 바람직한 방향과 관련해 가장 잘된 수사사례를 꼽는다면요.

    “서울지검 2차장 재직시 SK 분식회계사건 수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한마디로 압수수색을 잘했기 때문에 성공한 수사인데, 모범적인 사례로 남을 것입니다. 구조조정본부가 있는 그룹 회장실 등 네 군데에 대해 동시에 압수수색을 실시했어요. 압수수색 사상 가장 많은 인원인 80명이 투입됐습니다. SK 본사에만 30명이 들어갔어요. 대검 컴퓨터수사지원반 직원들이 큰 도움을 줬습니다.”

    “지금도 죽은 사람들 얼굴 떠올라”

    -SK 쪽에선 전혀 낌새를 채지 못했습니까.

    “회장실에 대한 압수수색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대비를 못했지요. 거기서 아주 중요한 분식회계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그 자료를 입수하는 것으로써 SK 수사는 사실상 끝난 것입니다.”

    -압수수색의 승리네요.

    “그렇죠. 회장실에서 압수한 자료 덕분에 다음날 삼청동 SK연수원에 숨겨둔 회계장부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SK측에서 백기를 들더군요. 외부인들에게는 무척 힘든 수사로 비쳤을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어요. 압수수색으로 완벽한 증거를 잡았기 때문에 무리하게 수사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우리 스케줄대로 할 수 있었고. 아마도 살아 있는 재벌에 대한 수사 사례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2심까지 무죄 판결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당시 압수수색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해뒀는데 수사교재로 활용하고 있어요.”

    박 중수부장은 “나는 비교적 수사 복이 있었다”며 “수사도 운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지검에 있던 1988년 5공비리 수사에 참여했는데, 그것이 평검사로서 한 마지막 수사다. 당시 ‘5공비리 특별수사부’에 파견된 그는 수사를 총괄하면서 ‘이근안 고문사건’도 맡았다. 또 마지막으로 공소장을 쓴 사건은 서울지검 고등검찰관으로 수사에 참여한 ‘정보사 부지 사건’이다. 가장 인상 깊은 사건은 수원지검 재직시 수사한 ‘오대양 변사사건’이라고 한다. 지금도 당시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기억이 생생하다는 것.

    -검사가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1980년 계엄하에 육본에서 군 검찰관으로 6개월간 근무했습니다. 어떤 사건에서 세 사람이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사형집행을 내가 했어요. 그런데 그후 그들에 대한 사형집행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비록 기소나 구형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잘못된 법집행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제대하면 검사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운명이라는 느낌이었죠. 돌아가신 부친이 판사셨어요. 제가 검사를 지망한 것에 크게 실망하셨죠.”

    -검사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힘들긴 하죠. 하지만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다행히 운도 좋았고.”

    박 중수부장은 “형사사법체계를 주도하는 것은 검사”라며 검사직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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