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호

영장류에게도 문화와 개성이 있다!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 장대익 KAIST 강사·과학철학 deaik@chol.com

    입력2005-09-12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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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장류에게도 문화와 개성이 있다!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 프란스 드발 지음/박성규 옮김/ 수희재/1만5000원

    2002년 11월, 나는 일본 교토대학 부설 영장류연구소가 있는 이누야마라는 시골에 짐을 풀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는 오래 전부터 침팬지의 인지 능력과 행동을 연구할 연구소를 만들어야겠다고 꿈꿔왔는데, 마침 침팬지 연구의 석학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 마쓰자와 교수의 도움을 받게 된 상황이었다. 당시 최 교수의 실험실에서 진화심리학팀에 있던 나는 침팬지 연구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마쓰자와 교수는 방문 첫날부터 나를 이끌고 야외사육장에 데려가 ‘또 한 인간이 왔구나’라며 시큰둥한 것 같은 표정의 침팬지 14마리를 소개하고 각기 다른 특징을 일러주었다.

    마쓰자와 교수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고는 있었지만, 난생 처음 침팬지 무리 속에 섞인 나로서는 누가 누구인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혼미한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드는 한마디.

    “침팬지도 사람처럼 각자 개성이 있답니다. 아마 1주일 내로 14마리 전부를 구분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그때부터 14마리 침팬지의 사진과 이름, 관계를 그려놓은 그림을 구해서 틈날 때마다 ‘공부’했다. 틀림없이 1주일 후에 시험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닷새가 지난 오후, 나는 마쓰자와 교수의 손에 이끌려 야외사육장으로 갔다. 테스트가 이어졌다. 결과는 반타작, 참담했다.



    문화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쨌든 그후로 3주가 더 지나서야 침팬지에게도 개성이 있다는, 영장류학의 진실을 체득할 수 있었다. 예컨대 ‘판’이라는 암컷은 방문자들을 늘 ‘더럽게’ 맞이한다. 방문자는 그녀의 침 세례를 받고 나야만 친해질 수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침팬지의 개성이 도드라져 보였다. 실제로 1년 이상 체류한 연구자들은 그곳에 있는 모든 침팬지의 생김새, 행동 특성, 관계 등을 모조리 꿰고 있었다. 표정만 봐도 그날 실험이 성공할지가 대충 짐작된단다.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의 저자 프란스 드발은 미국 에모리대의 저명한 영장류 학자로 침팬지의 개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미 네덜란드 아넴 동물원의 침팬지 사회를 장기간 관찰하여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문제작을 펴낸 바 있는 베테랑 연구자다. 그는 그 책에서 침팬지의 시각을 통해 인간의 정치 행동 기원을 다시 생각해볼 것을 주문했다.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에서는 침팬지의 개성을 이야기하는 수준을 넘어 침팬지를 비롯한 여러 동물의 문화에 관해 논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크게 세 가지 물음을 던진다. 첫째,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는가. 둘째, 우리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셋째, 문화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중국, 일본, 핀란드, 네덜란드를 80일간 여행하며 인간과 동물의 행동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친 몇몇 선구자(오스트리아의 로렌츠, 일본의 이마니시, 핀란드의 웨스터마크)를 조사했다.

    첫째 물음에 관해 저자는 사람들이 동물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의인화하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영장류를 접할 기회가 없었고 그 때문에 인간이 유일무이한 영장류라는 생각이 조장돼왔다. ‘의인화’란 사고나 감정을 동물에 투영하여 실제 이상으로 그것을 인간다운 존재로 파악하려는 방식인데, 서양에서는 데카르트 이래로 이를 안 좋게 보는 풍토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깊은 연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인화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의인화는 동물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기 위한 지적 통로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작곡가도 찌르레기 같은 작은 애완동물의 ‘노래’에 탄복했던 사례를 든다.

    둘째 물음은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인간론은 동서양에 차이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서양의 연구자들은 동물과 인간을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오류에 쉽게 빠진다. 반면 동양의 연구자들, 특히 일본 학자들에게선 이런 이원론이 발견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서양과는 달리 오래 전부터 원숭이와 매우 친숙했다. 지금도 일본의 어떤 시골 동네에선 원숭이들이 길거리를 활보하며 인간과 평화롭게 공존한다. 저자는 동양의 자연철학이나 불교적 관점이 인간과 동물의 이원론을 배격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영장류학이 꽃피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고구마 씻어 먹는 원숭이

    이제 이 책의 핵심 질문, 즉 ‘동물에도 문화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넘어가보자. 이 물음에 대한 생산적인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문화가 무엇인지부터 규정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습관과 정보가 유전에 의거하지 않고 사회적 수단에 의해 전파되는 것”을 문화로 정의할 것을 제안하고, 그렇게 하면 수많은 동물이 문화를 가진 존재로 분류된다고 말한다. 자연계에서 문화적 존재의 외연이 넓어지면 그 속에 침팬지는 말할 것도 없고 원숭이, 심지어 박새까지 들어올 수 있다.

    동물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나 기호의 수준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술, 음식의 선호, 의사소통을 위한 발음과 제스처 등의 습관은 비유전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1953년 9월 일본의 고시마 섬에 서식하던 ‘이모’라는 짧은꼬리 원숭이 한 마리가 고구마를 들고 숲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시내로 가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모’는 고구마를 물에 넣고 비벼댄 후 흙이 떨어지자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이 참신한 행동은 그 후 3개월이 지나는 동안 두 마리의 친구들과 ‘이모’의 엄마에게로 전파됐다. 5년 후, 고구마 씻어 먹기는 대다수 원숭이의 일상이 됐다.

    1956년 원숭이 사회에 또 한 번의 문화적 혁신이 ‘이모’를 통해 발생했다. 모래사장에 뿌려진 밀을 한 줌 주워 가까이 있는 물에 던진 후 가라앉는 모래에서 밀을 분리해 먹는 게 아닌가! 지금은 고시마 섬의 거의 모든 원숭이가 아무리 더러운 고구마와 밀이라도 깨끗이 씻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저자는 이런 습관의 전파가 바로 동물 문화의 사례라고 역설한다.

    침팬지는 도구를 사용할 줄도 알고 심지어 제작하기도 한다. 탄자니아의 곰비 지방에 사는 침팬지는 긴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다듬어서 흰개미 굴에 넣고는 거기에 달라붙은 흰개미들을 훑어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서아프리카의 침팬지는 코코넛을 받침돌에 올려놓고 돌로 내리쳐 깨먹는다. 하지만 정말 놀랄 만한 사실은 침팬지 공동체마다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이 각기 다르다는 점이다. 가령 어떤 지역의 침팬지들은 망치돌을 한 손으로만 내리치지만 다른 지역의 침팬지들은 양손을 모두 사용한다. 또한 곰비 지방의 침팬지들은 사방에 코코넛이 깔려 있는데도 오로지 흰개미 낚시질만 한다.

    문화영장류학의 선두 일본

    이런 발견 때문에 최근 영장류학자들 사이에서 ‘문화인류학’을 빗댄 ‘문화영장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영국의 구달, 일본의 마쓰자와와 더불어 이 책의 저자인 드발은 문화영장류학의 선두주자다. 저자는 이 책의 곳곳에서 일본 영장류학의 선도적 구실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문화영장류학의 이론 및 경험적 근거를 밝히면서 이마니시를 비롯한 교토대 영장류팀이 제시해온 점을 새롭게 조명한다. 영장류학에 이미 익숙한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책을 읽는 재미를 느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침팬지나 원숭이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들에 밀착해 그 생애를 장기적으로 탐구하는 연구방법론은 구달의 트레이드마크가 아니다. 사실 그것은 일본 연구자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도된 독특한 연구 방식이다.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라는 흥미로운 제목은 원숭이의 문화와 인간(특히 일본)의 문화가 그 전달 방식에서 매우 유사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은유다. 오랫동안 어깨너머로 배우다 보면 어느새 유능해진다는 뜻으로 우리 식으로 하면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인간 자존심의 최후 보루인 문화마저 동물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메시지 때문에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한 독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그 불편함이 당연함으로 바뀌는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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