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돈의 눈으로 본 한류(韓流) 방정식

재주는 한국 스타가 넘고 돈은 일본 기업이 챙긴다?

  • 김지룡 대중문화평론가 dragonkj@chol.com

    입력2005-10-13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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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용준이 나오기만 하면 일본 열도가 들썩이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얼마 못 가 사라질 일시적 현상으로 여긴다. 그러면서도 한류 열풍의 경제적 효과에는 관심이 높다. 1990년대 말부터 본격화된 한류 열풍으로 한국은 일본에서 돈을 얼마나 긁어모았을까. 한류 비즈니스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한류 열풍이 한국인의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건 1990년대 중반 ‘일류(日流)’ 열풍이 분 중국에 진출했다 크게 손해 본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의 눈으로 본 한류(韓流) 방정식
    ‘한류(韓流)’는 중국, 동남아시아, 일본 등에서 불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 열풍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1999년 중국 매스컴에서 처음으로 ‘한류’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 이러한 ‘붐’이 오래 지속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해외에서 바람을 일으킨 한국 대중문화의 주역은 댄스음악과 드라마로, 그간 언론과 지식인들이 폄훼하고 홀대하던 것들이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음악과 드라마에 외국인들이 열광하자 의아하게 여기며 붐은 곧 가라앉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한류 현상은 중국은 물론 홍콩, 대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로 퍼져가고 있다.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대중문화와 인기연예인을 동경하고 추종하며, 한국에 대해 알려고 하는 문화현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류의 영향이 강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은 우리 대중문화 콘텐츠의 질이 우수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음악계는 댄스음악 일색이고 TV는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많은 드라마를 생산하고 있는데, 과잉 공급으로 보이는 이러한 상황은 폐단도 있지만 콘텐츠의 질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사생결단식 시청률 경쟁



    일본은 4개의 대형 상업 방송사가 주축이 되어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같은 시간대에 경쟁적으로 드라마를 편성하는 일은 없다. 한 방송사가 드라마를 방영하면 다른 방송사는 오락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편성하는 식으로 해서 ‘데스 매치(death match)’는 되도록 피한다.

    우리는 어떤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밤 10시대엔 방송 3사가 모두 드라마를 방영한다. 사생결단식 경쟁이다.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기의 시청률을 확보한 드라마는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할 만하다.

    그러나 콘텐츠의 질이 좋다는 것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해외에서 호응을 얻으려면 결정적인 요소가 하나 더 필요하다. 우리가 태국이나 인도의 대중문화에 관심이 없는 것은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이동한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한류 열풍이 일어난 배경에는 한국의 경제력이 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 후반에 걸쳐 한국에 홍콩 영화 붐이 불었다. 저우룬파(周潤發)가 국내 음료 CF에 등장해 “사랑해요 밀키스!”를 외치기도 했다. 당시 우리에게 각인된 ‘홍콩’의 이미지는 막강한 경제력과 서구적인 세련됨이었다. 홍콩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의 마음에 이 두 가지에 대한 동경이 어느 정도 자리잡았던 것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인 한류 붐은 경제력에 대한 동경이 차츰 문화적 흐름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한류 붐은 이러한 이해의 틀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일본은 좋건 싫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앞선 곳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일본에서 한류가 붐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서 한국 대중문화 열풍이 시작된 계기는 2002년 한일월드컵일 것이다. 1999년 영화 ‘쉬리’가 개봉되고, 2001년에는 양국이 공동제작한 TV 드라마가 양국에 방영됐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호응을 얻는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일시적으로 형성된 분위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국 대중문화는 월드컵이 끝난 다음에 오히려 탄력을 받아 ‘용사마’ 열풍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붐을 이루고 있다.

    아시아 붐, 월드컵, 이수현

    일본 한류 열풍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 기저에는 1995년경부터 불어닥친 아시아 붐이 자리잡고 있다. 자국은 정체해 있는 데 반해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은 아시아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여행지로서 한국의 인기가 올라간 것도 한몫 했다. 버블 경제가 붕괴된 이후 일본 사무직 여성들은 여행지로 비용이 많이 드는 유럽보다 가까운 아시아를 선호했다. 그 중에서도 대만·서울·상하이가 ‘싸고, 가까운’ 여행지로 특히 인기를 끌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에서 한국음식 붐이 일어났다. 그전까지는 한국요리 하면 ‘야키니쿠(불고기)’가 전부였지만, 한국 관광이 유행하면서 다른 요리들도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한국요리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의 영향도 컸다. 공동 개최를 통해 한국에 관심이 없거나 못사는 나라라는 편견을 지니고 있던 보통의 일본인도, 한국이 일본 못지않게 발전한 나라이고, 경제력 또한 만만치 않다고 인식하게 됐다. 게다가 월드컵 4강 진출과 IT(정보통신)산업의 급격한 발전으로 일본인들 사이에 한국을 동경하는 현상까지 생겨났다.

    일이 잘될 때는 우연까지 한몫 거든다. 신주쿠 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도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

    일본에서는 요즘 젊은이와 청소년에 대해 ‘3무(無)’라고 표현한다. 무기력, 무관심, 그리고 좀처럼 감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감동을 가리킨다. 이수현씨의 의로운 죽음은 이러한 ‘3무’현상과 대조를 이루면서 일본사회를 감동시켰고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를 개선하기에 충분했다.

    사전 전작제의 한계

    일본 내 한류의 특징 중 하나는 유독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 드라마의 질적 수준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과 다른 제작방식의 영향이 크다. 일본의 민간 TV 방송은 1년에 네 차례, 13주마다 개편한다. 12주는 정규 방송을, 나머지 한 주는 특집방송을 내보낸다. 드라마도 이런 개편 주기에 맞춰 12부작(때로는 11부작)으로 제작되어 매주 한 번 방영된다.

    일본은 전회분 촬영을 완전히 끝낸 다음 방영하는 사전 전작제 방식으로 드라마를 만든다. 우리처럼 촬영장에서 매회 쪽대본을 받아 허둥지둥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이 없어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시청률이 높다고 방영 횟수를 고무줄처럼 늘이는 것도 불가능하고, 인기가 없다고 조기 종영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사전 전작제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험 요소가 많기 때문에 12부작이 넘는 작품은 만들지 않는다. ‘대장금’이나 ‘무인시대’처럼 50부, 100부작으로 기획되어 장기간 인기를 누리는 대작이 아예 만들어지지 않는 구조다.

    또한 시청자의 반응을 적절히 반영해 내용을 수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본 드라마는 돌발적인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참신할 때도 있지만 불쾌한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네티즌이 결말을 만든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 제작 중간 중간 시청자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편이다. 그것이 전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재미와 정서를 담은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건 사실이다.

    이러한 배경 요인들이 한국 대중문화가 일본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는 토양을 마련했고, 특히 드라마가 줄줄이 성공을 거두는 발판이 됐다. 그러나 일본에서 한류 바람을 이토록 강하게 일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 중년 여성의 힘이다.

    F1 능가하는 일본 중년여성 파워

    얼마 전 NHK 위성 TV의 토론 프로그램에 20대 초반의 일본 청년이 출연해 “한류는 정말 큰 문제”라고 말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서 밥도 해주지 않으며 집안 살림이 엉망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일본 중년여성들은 실제로 이런 가정이 속출할 정도로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다.

    일본의 한류는 아줌마 부대가 주도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지금처럼 거대한 비즈니스가 형성될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구매력이 떨어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 확보돼야 수십만원짜리 사진집을 사 모으고, 몇백만원을 들여 한국 관광에 나설 수 있다.

    가수 보아도 일본 내에 무척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젊은 남성이다. 보아와 관련된 곳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으로 여행을 올 만큼 경제적인 여유를 갖춘 계층이 아니다. 중년의 남성 팬도 다수 있지만,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한국에 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반면 ‘겨울연가’를 비롯한 한국 드라마는 돈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중년여성들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거대한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있었다.

    일본 광고업계 용어에 ‘F1’이라는 것이 있는데, 20∼35세의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부분 유행에 민감하고, 미혼인 경우가 많아 ‘광고 약발이 잘 먹히고, 가처분소득이 높고 영양가 있는’ 시청자로 분류된다. 일본의 민간 방송은 광고 스폰서를 의식해 F1층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대표적인 것이 드라마다. 일본 드라마는 대부분 F1층의 취향과 감성에 맞춰져 있다.

    반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핵심층은 35∼45세 여성이다. F1층에서 벗어난 중년층이다. 일본 또한 압축 성장을 했기 때문에 세대간의 격차가 심하다. 현재 일본에서 20대를 겨냥해 만든 일본 드라마는 30~40대 여성에게는 정서적으로 잘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오히려 이들의 정서와 감수성은 한국의 20대와 통하는 면이 강하다.

    ‘일본은 한국보다 10년 앞선다’ 또는 ‘20년 앞선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이 우리보다 15년에서 20년 앞섰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의 감수성은 자신이 자라난 환경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다. 일본의 각 세대의 특성은 우리와 15년 정도 차이를 보인다.

    이를테면 일본의 ‘단카이 세대’, 즉 1945~54년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는 1964년 안보 투쟁이 상징하듯 가장 격렬하게 학생운동을 한 세대다. 우리의 386세대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한국의 3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단카이 세대와 15년 정도 차이가 난다.

    일본의 학생운동은 1973년 ‘아사마 산장’ 사건을 계기로 급격하게 몰락했다. 이후 1970년대에는 정치에 무관심한 ‘흥이 깨진 세대’가 등장했고, 1980년대에 등장한 세대는 학생운동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심각함과는 무관한, 가볍고 밝은 것을 추구하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이들의 존재가 사회적으로도 명백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매스컴에서는 이들을 ‘신인류’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만끽한 세대로 본격적인 소비문화를 만들어낸 세대이기도 하다. 이 세대는 1990년대 중반 한국에서 화제가 된 ‘신세대’와 비슷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겨울연가’에 열광하는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 바로 이 ‘신인류 세대’에 해당한다. 국내 20대층을 겨냥해 만든 드라마가 일본의 신인류 세대의 여성들에게 통한 것이다. 한류에 열광하는 중년여성들이 한국 드라마의 특징으로 ‘노스탤지어(향수)’를 꼽고 ‘잊어버렸던 소녀를 되찾았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 드라마가 그들의 젊었을 때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일본의 한류가 동남아시아에 불고 있는 한류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우리보다 경제력이 떨어지고 사회 발전 속도가 느린 동남아시아에서는 젊은 세대가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긴다. 자기네보다 잘사는 나라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세련되고 멋진 모습을 동경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보다 사회 발전이 빠른 일본에서는 나이든 세대가 젊은 날의 감성을 되새기며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긴다.

    독도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이 불거지기 전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1996년에는 36%였으나 영화 ‘쉬리’ 개봉 직후인 2000년엔 51%로 높아졌고, 월드컵 공동개최와 ‘겨울연가’ 붐을 타고 2004년에는 57%에 이르렀다.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 높아진 것은 그 전까지 한국에 무관심하거나 반감을 갖고 있던 30~40대 여성들이 한국에 호감을 갖기 시작한 때문이라는 것이 일본 내의 분석이다.

    독도 영유권 분쟁과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일우정의 해’라는 슬로건이 공허하게 들리지만, 한국에 대해 호감을 지닌 30∼40대의 증가는 한일 양국의 우호 증진에 한몫 할 것으로 보인다.

    복잡다기한 한류 비즈니스

    일본에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했을 때 국내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이 적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인 중에 한류 열풍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의 한류는 일본에서 한국의 문화 콘텐츠를 수입해 파는 것으로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본 내 ‘용사마 붐’으로 발생하는 경제적인 가치가 3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그 3조원 중 많은 부분이 일본인의 몫이 된다.

    한류의 비즈니스 구조는 복잡하다. 가장 단순한 형태가 ‘라이선싱’ 형태로 저작권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겨울연가’의 작가들이 드라마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를 모은 에세이가 일본에서 50만부 이상 판매됐다. 서점의 매출액으로 따지면 70억원의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정확한 계약 내용은 확인할 수 없지만 통상의 출판 관행대로 단순 계산하면 70억원 중 국내로 들어오는 액수는 정가의 10%인 7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63억원은 일본의 출판사, 인쇄소, 도매상, 서점 등의 몫이다.

    국내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면 수익률은 훨씬 높아진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 쪽에 상당한 이익이 돌아간다. 국내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예당 엔터테인먼트’(이하 예당)는 ‘겨울연가’ OST로 떼돈을 벌었다. 예당은 직접 음반을 만들어 일본의 유통회사에 넘기는 방식을 취했는데, 2004년 한 해 동안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2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예당은 소매가의 60% 정도를 받고 유통회사에 넘겼으므로 전체 매출액의 40%가 일본 업체들의 몫이 된다.

    한류 비즈니스는 라이선싱료를 받는 방식에서 직접 투자하는 방식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 어떤 방식을 취하든 일본이 차지하는 이익은 분명히 있다.

    전혀 뜻하지 않게 혜택을 받는 기업도 있다. 지난 한 해 일본 아줌마 부대의 한국 관광 열풍으로 일본 관광객 수가 평년보다 100만명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1인당 100만원을 썼다고 가정하면 1조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일본인들이 한국 관광을 위해 돈을 내는 곳은 대부분 일본 현지 여행사다. 여행 경비의 상당부분이 일본 여행사와 일본 항공사의 매출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류 붐에 편승해 돈을 내는 곳 중에 한국의 호주머니와 전혀 무관한 곳도 많다.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한 초기에는 한류 스타 관련 기사만 실어도 잡지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한다. 얼마 전 배용준이 주연한 영화 ‘외출’ 기자회견장에는 1100명의 기자가 모였다. ‘우주전쟁’의 주인공 톰 크루즈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배용준 관련 기사 덕분에 신문과 잡지 판매량이 늘고 TV 시청률도 올라갔을 것이다.

    ‘日流’ 실패가 주는 교훈

    이런 상황을 두고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더니…” 하며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일본인들이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한류 붐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이다. 한류로 돈을 벌어들이는 일본인이 수도 없이 존재하는 한, 그들이 투자하고 관리하며 한류 붐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중국에서 강하게 불었던 일본 대중문화 붐, 이른바 ‘일류(日流)’가 급속히 사라진 이유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1990년대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키워드는 중국 진출이었다. 12억 인구와 빠른 경제성장 속도에 비춰보아 중국에 거대한 대중문화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치 않았다. 일본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앞다퉈 중국에 투자했다.

    그 결과 1995년경 일본의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대거 등장했고, 그들을 지칭하는 ‘합일족(哈日族)’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중독이라고 할 만큼 중국 젊은이들은 일본의 가요와 탤런트, 일본 패션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중국에 진출한 일본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속속 철수하기 시작했다. 일본 가요가 붐을 일으켰지만 음반 판매량은 저조했다. 중국은 불법 복제의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시장이 아무리 강력한 붐을 만들어내도 투자한 돈을 회수할 수 없는 곳이었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본문화 붐이 일어나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 대중음악 업계가 한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은 것은 중국에서 참패한 영향이 컸다. 일본의 관련 기업 대부분이 한국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중국에서 경험한 참패를 재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보다 훨씬 나은 환경이지만 한국 역시 저작권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다는 점이 일본 기업의 한국 진출을 막았다.

    일본 대중문화 업계는 일본 대중문화가 전파된 한국이나 중국에 직접 진출해 사업을 하는 대신 한국의 대중문화를 자국에 수입하는 것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가 확정된 이후 일본에서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99년 영화 ‘쉬리’가 13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그 뒤를 이어 ‘JSA 공동경비구역’ ‘화산고’ ‘엽기적인 그녀’도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3년 ‘겨울연가’가 ‘겨울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일본 공중파를 탔다. ‘겨울연가’ DVD 판권을 확보하고 ‘겨울연가’ 붐을 만들어내는 데 큰 구실을 한 회사는 공교롭게도 중국에 진출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철수한 어뮤즈 엔터테인먼트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한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서 비즈니스를 하기보다 저작권이 확실하게 보호되는 일본시장에서 외국 문화를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겨울연가’가 큰 인기를 거두면서 ‘4대 천왕’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배용준에다 장동건, 원빈, 이병헌, 권상우를 묶어 ‘4대 천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들이 일본에서 대단한 스타가 된 데는 일본 매스컴과 관련 기업의 공이 크다. 한류 붐을 유지하기 위해 스타를 공급하고, 끊임없이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류로 거두는 수입이 적잖기 때문에 일본인 스스로 한류 붐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보아는 한류 스타가 아니다’

    현재 일본의 지상파, 위성 TV, 유력 케이블 TV에서 매주 방영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는 60편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보다 훨씬 많다. 이 정도면 한국 드라마 ‘붐’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해 영화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연 배우를 보고 작품을 선택하는 영화 팬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붐이 그러하듯 한국 드라마 ‘붐’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사라지기 때문에 ‘붐’이다. ‘붐’이 사라지고 난 뒤에 무엇이 남을지 미리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걸 인식해야 할 때다.

    물론 ‘붐’이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붐’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홍콩 영화 붐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홍콩 영화는 수입되어 극장에서 개봉되고 있고, 매년 1∼2편 정도는 ‘히트’한다.

    한류 붐이 사라진 뒤에도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은 분명 남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콘텐츠를 수입하는 구조(인맥·경험 등)가 있고, 한국의 콘텐츠로 돈을 번 기억이 오래도록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처럼 강하게 분 한류 바람이 홍콩영화 ‘붐’처럼 용두사미로 끝나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한류 바람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상품을 개발하고, 나아가 일본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를 생활화하도록 유도 해야 한다.

    흔히 일본의 한류 열풍을 얘기할 때 드라마와 영화뿐만 아니라 가수 보아나 온라인게임까지 포함시킨다. 일본에서 보아는 톱 클래스에 속한다.

    얼마 전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씨가 인수해 한국의 온라인게임이라고 말하기 힘들게 됐지만, 어쨌든 한국에서 처음 만든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의 회원 수가 100만명을 넘었다. 국내 최강의 온라인게임인 ‘리니지’도 일본에 상륙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보아나 라그나로크를 한류 열풍과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한류의 본질을 흐릴 가능성이 크다. ‘열풍’ 혹은 ‘붐’은 프리미엄을 만든다. 현재의 한국 드라마 붐은 옥석을 가리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말이 붙는 드라마나 영화는 콘텐츠의 내용이나 질에 관계없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국내에서 실패한 영화나 드라마까지 수출되고 있다. 붐이 가져온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보아나 라그나로크 같은 온라인게임은 한국이라는 프리미엄을 누린 적이 없다. 보아는 일본에서 ‘Bo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무국적·탈국적 가수다. 노래도 일본어로 부른다. ‘BoA’의 팬 중에는 ‘BoA’의 국적이 한국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

    온라인게임 역시 ‘한국’ 게임이기에 인기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 자체가 지닌 재미가 일본 게이머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붐과 관계없는 독자적인 상품이다. 현재의 한류 붐, 즉 한국 드라마 붐이 사라진다고 해도 ‘BoA’나 라그나로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붐에 편승하지 않는 독자적인 상품이 많을수록 우리 대중문화의 경쟁력은 높아질 것이다.

    한류, ‘붐’을 넘어 ‘생활’로

    지금의 한류 붐이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형태는 그것이 ‘생활’로 정착되는 것이다. 이는 일본 대중문화가 지닌 최대 강점이자 모델이기도 하다. 한류 붐 관련 취재를 하면서 ‘일본 대중문화 붐은 어땠을까?’ 궁금해하는 매스컴 관계자들을 종종 만났다. 그러나 ‘일본 대중문화 붐’이라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일본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중국 시장을 노리고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인위적으로 일본 음악을 유행시킨 것이 거의 유일한 ‘일본 대중문화 붐’이다.

    일본의 대중문화 중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세 가지다. 국내 도서대여점에 비치된 만화의 절반 이상이 일본 만화다. TV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 또한 90% 이상이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게임의 경우는 온라인게임이 주류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흔히 ‘전자오락실’이라고 말하는 아케이드게임장의 게임 대부분은 일본 게임이다.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비디오게임도 하드웨어는 물론이고 소프트웨어의 대부분이 일본 것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볼 때 “일본 만화를 보자”고 하거나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한번 볼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대여점에서 재미있을 것 같은 만화를 고르면 대부분 일본 만화고,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면 일본 게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일상 생활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대중문화의 붐은 일본 대중문화 전체가 ‘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파괴력을 지닌 개별 상품이 붐을 형성하는 형태로 발생해왔다. ‘유희왕 붐’ ‘탑 블레이드 붐’ ‘포켓몬스터 붐’ ‘스티커 사진기 붐’ ‘다마고치 붐’ ‘슬램덩크 붐’ ‘드래곤볼 붐’ ‘스트리트파이터 붐’ ‘갤러그 붐’ ‘벽돌깨기 붐’….

    지난 수십년 동안 일본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붐을 이룬 경우는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 문화 붐이 아니다. 개별 상품의 붐이었다. 이것이 일본 대중문화의 저력이다. 할리우드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스타워즈 붐’ 같은 개별 상품의 붐 현상이 있지만 ‘할리우드 영화 붐’이라는 것은 없다. 영화관이나 비디오로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이미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한류’ 관련 소식은 언제 들어도 기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流行)’이고, 시간이 지나면 유행은 다음 유행에 바통을 넘기고 사라지게 마련이다.

    ‘한국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한국 대중문화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 일부로 자리잡을 때 비로소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붐’에 취하지 말고 ‘붐’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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