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무너진 ‘아파트 왕국’ 우방, 5년 만에 부활의 노래

1조원 공사 수주, ‘유쉘’ 브랜드로 정상 재등극 시동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5-10-25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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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설지 않은 이름 ‘우방’이 다시 일어선다. 5년 전 부도를 낸 우방은 1990년대 말 아파트 공급량과 기술력에서 단연 국내 최고였다. 우방은 지난 2월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8개월 만에 1조원대 공사를 수주했다. 변재신 우방 사장은 “최고급 아파트로 정상에 다시 오르겠다”고 자신한다.
    무너진 ‘아파트 왕국’ 우방, 5년 만에 부활의 노래
    최근‘경기도 고양시 일산 신도시에서도 10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등장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1993년 입주한 일산 마두동 강촌마을 우방아파트 59평형, 68평형이 그 주인공이다. 지은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우방’ 브랜드가 오늘날 일산의 최고가 아파트가 된 사실에 ‘우방맨’들은 1990년대의 ‘화려했던 영화’를 다시금 떠올린다.

    (주)우방은 대구지역 건설회사로 출발했다. 그러나 연배가 30대 이상이라면 전국 어디에 살더라도 ‘우방’ 브랜드가 낯설지 않다. 그만큼 1990년대 우방의 성장은 지방기업의 모범이라 할 만큼 눈부셨다.

    그러나 2000년 우방은 급작스럽게 부도를 맞았다. 시민이 일어나 ‘우방 해체’만은 막았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지난 5년은 ‘우방’에 기나긴 세월이었다. 마침내 올해 쎄븐마운틴그룹에 인수되면서 법정관리가 끝났다. 그 직후 우방은 대규모 공사수주 실적을 올리며 ‘유쉘(usell)’이라는 새 브랜드를 내걸고 부활했다. 이 회사만큼 기업의 ‘흥망과 재기’ 과정이 드라마틱한 경우도 드물다.

    10월7일 대구 북구 (주)우방 본사에서 이 회사 대구사업부문 변재신(卞在信·63) 대표이사 사장을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 6월1일 서울사업부문의 김영웅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공식 부임했다. 변 대표이사에게서 환희과 좌절, 희망이 교차하는 우방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구사업부문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조금 생소한데요.



    “우방은 서울사업부문과 대구사업부문에 각각 대표이사를 두고 협업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각 지역의 아파트 건설 등 여러 사업을 수행하면서 의사결정을 신속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방은 아파트 건설회사로서는 역사가 깊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방은 1978년 대구에서 설립됐습니다. ‘(주)우방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단독주택 16가구를 지은 것이 첫 사업이었죠.”

    1997년 순이익 1위, 공급량 2위

    당시만 해도 우방은 군소 건설회사에 불과했다. 1980년 우방은 대구에 아파트(동부우방아파트) 30가구를 지으면서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1981~82년에는 313가구의 아파트를 건립했다. 수백가구에 달하는 대단지 아파트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지방 건설사로서는 드물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셈이었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수도권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된 신도시 건설 붐을 타고 우방은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95년부터 아파트 공급과잉 현상으로 아파트 건설업체 사이에 경쟁이 치열했지만 우방은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우방은 1995년부터 99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우방이 거둔 성과는 숫자로 증명됩니다. 우방은 1986년 대구지역 내 주택보급 실적 1위에 오른 데 이어 1989년에는 주택건설 실적 전국 2위에 올랐습니다. 지방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로서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 이뤄낸 괄목할 만한 성과였습니다. 우방의 상승세는 그후 10년간 지속됐습니다. 1997년엔 전국 건설업체 가운데 상반기 순이익 1위를 기록했죠. 같은 해 아파트 공급량에선 전국 2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성과는 2000년 우방이 부도나기 직전까지 이어졌습니다.”

    -1990년대에 그렇게 많은 주택건설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방아파트엔 예나 지금이나 ‘거품’이 없습니다. 철처하게 고객 중심으로 지었습니다. 집은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기에 편해야 합니다. 실제 거주하기에 가장 좋은 아파트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시의 실적은 그런 노력을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은 결과였습니다. 대구에서 퍼진 ‘입소문’이 영남의 다른 지역으로, 수도권 신도시로, 나아가 서울로 확산됐습니다. 기술경쟁에서도 우방은 최고를 지향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비록 지방 기업이지만 전 국민이 우방을 신뢰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아파트를 건설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고 분양도 잘되니 실적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지요.”

    인지와 신뢰도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출발한 지방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구가 많은 영남지역에서 ‘지역 연고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독점 공급의 특혜를 누린 덕분이 아니냐고 의심할 법도 하다. 그러나 변 사장은 “우방은 오직 기술력으로 정정당당히 승부해 소비자의 호감을 샀다”고 말한다. 소비자의 처지에서 볼 때 고가의 상품인 아파트를 선택하면서 시공사의 지역 연고까지 염두에 둘 것 같지는 않아 보이기도 한다.

    3베이 평면, 지하주차장 최초 도입

    -우방이 1990년대 당시 첨단 주거문화를 선도한 구체적인 사례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방은 1997년 대우경제연구소 조사에서 ‘인적자산가치 1위 기업’에 선정됐습니다. 그만큼 인재와 기술력의 확보를 중요시했습니다. 그 결과로 우방의 아파트 건설 기술력이 당시 국내 최고 수준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요즘 중소형 아파트에서 3베이(안방과 거실, 작은방을 앞쪽 베란다에 나란히 배치하는 구조) 평면설계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중소형 아파트의 3베이 평면 설계는 1990년대에 이미 우방이 국내 최초로 개발해 상용화를 시도한 기술입니다.

    또 최근 지어진 아파트 단지들은 지상을 녹지로 조성하고 지하에 주차장을 두는 구조로 돼 있습니다. 쾌적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입주민도 이런 구조를 선호합니다. 이 같은 지하주차장 구조도 우방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입니다.

    현관과 로비를 호텔식으로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요즘의 트렌드인데, 우방은 이미 1990년대에 국내 처음으로 이런 호텔식 현관, 로비를 상용화했습니다.

    요즘 들어 일부 대기업 건설사들이 시도하는 맞춤형 혹은 주문형 아파트도 우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방은 소비자의 주거문화 트렌드 변화에 가장 빨리, 가장 민감하게 발맞춘 기업입니다. 무엇보다 우방 아파트의 장점은 탄탄하게 지어 건물의 안전성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에 있습니다.

    분양 제도 면에서도 우방은 중도금 무이자 대출 제도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요즘은 이 제도가 보편화됐지만 당시로선 소비자에게서 큰 호응을 얻은, 매우 참신한 발상이었습니다. DM 발송, CRM(고객 마케팅) 등 요즘은 일반화된 마케팅 기법도 우방이 개발했습니다. 우방이 부도를 맞지 않았다면 지금의 국내 아파트업계 판도는 확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변재신 사장의 말 대로라면 우방은 정점(頂點)에서 추락한 셈이다. 그만큼 우방의 부도는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다. 연고 지역에도 충격을 줬다. 우방의 부도는 외환위기 사태로 인해 대구의 3600개 기업이 줄도산하는 시점과 일치해 ‘대구경제 추락’의 상징이 됐다. 당시 우방은 청구·보성과 함께 대구 건설업체 3인방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청구·보성도 비슷한 시기에 몰락하는 운명을 맞았다.

    갑작스러운 몰락, 뜨거운 성원

    -2000년 8월28일 우방이 부도를 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는 외환위기 사태로 급상승한 금리, 그로 인한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부도가 났습니다. 우방 부도의 원인에 대해선 여러 얘기가 있습니다. 당시 우방은 자산도 많았고 인지도도 꽤 높았습니다. 그러나 아파트 건설 외적인 부분으로 사업을 크게 확장하는 과정에서 일시적 자금 경색이 왔고, 이것이 외환위기 당시의 고금리 환경과 겹치면서 부도라는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부도 이후 우방은 깊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신규 사업은 대폭 중단되고 매출은 급락했다. 우방이 차지하고 있던 아파트 시장은 다른 건설사들의 몫이 됐다. 그런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대구의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경제계, 학계 인사가 모여 2000년 12월 ‘우방 살리기 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해 우방 회생을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6개월간 105만명의 대구시민이 서명에 동참했다. A4용지 23박스 분량의 서명지는 청와대에 전달됐다. 당시 한광옥 대통령비서실장이 이것을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방 회생에 관심을 표명했다.

    변 사장은 “특정 기업을 살리자는 취지로 대규모 시민운동이 일어난 것은 뜻밖이었다. 우방이 ‘초일류’를 지향하며 지방기업의 발전모델이 되어왔다는 점, 지역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했으며 사회 봉사활동을 꾸준히 펴왔다는 점을 대구시민이 높이 산 결과였다”고 설명했다. 우방이 기업 해체가 아니라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은 채권단과 법원이 이 같은 ‘우방 살리기’ 시민운동에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부도가 나기 전 우방은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자체 자원봉사단체를 중심으로 장애인 및 저소득층 지원사업, 환경운동 등을 지속적으로 벌여 ‘대한민국 기업문화상’ ‘자원봉사 대축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우방 살리기 시민운동본부는 2005년 현재도 계속 운영되고 있다.

    법정관리 기간 중인 2004년 11월 ‘쎄븐마운틴 그룹’은 (주)우방 인수합병을 위한 3359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2005년 2월2일 우방은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이날 우방은 ‘쎄븐마운틴 그룹’의 계열사로서 2000년 8월 이래 지루하게 계속된 부도·법정관리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당시 쎄븐마운틴 그룹은 세양선박(주), (주)한리버랜드, (주)진도, 황해훼리(주), 필그림해운(주), KC라인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해양물류전문그룹으로 수출 사업에 치우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수업종인 건설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쎄븐마운틴 그룹 임병석(林炳石·45) 회장은 한국해양대 항해학과 출신으로 1995년 쎄븐마운틴해운을 설립하면서 그룹을 일구었다.

    무너진 ‘아파트 왕국’ 우방, 5년 만에 부활의 노래

    (주)우방이 지난 4월 성황리에 분양을 마친 대구의 고급 빌라(범어 우방 엘리시온) 내부 조감도.

    -쎄븐마운틴 그룹이 우방을 인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랜 법정관리 기간을 거치면서 우방은 아파트 건설업계 선두의 위치를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방의 자산인 우수한 인력과 노하우는 상당 부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1990년대에 쌓아올린 우방의 인지도도 훌륭한 자산입니다. 쎄븐마운틴 그룹은 우방의 이러한 잠재력을 인정해 투자한 것입니다. 최근 우방은 아남반도체 공장을 설립한 바 있는 아남건설을 인수했습니다. 아남건설은 전기·전자 관련 첨단 건설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방의 기술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쎄븐마운틴 그룹은 건설회사인 우방을 인수함으로써 해양운송과 관련된 분야인 해양건설 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우방은 2005년 6월 인천북항 부두 건설공사(958억원)와 인천 남항 제2준설터 투기장 부지조성 공사(180억원)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우방 영업본부 김왈중 상무는 “조직 안정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 삼성 출신 투톱 CEO

    쎄븐마운틴 그룹은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우방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었다. 면접을 통해 선임된 대구사업본부 변재신 사장은 부산 경남고,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건설사에 들어가 국내 최초로 주택 1만호를 시공한 현대건설 상무를 지냈다. 1981년 과천 아파트 건설사업을 시작으로 이라크 팔루자 건설현장, 서울 봉천동 재개발 현장, 부산 양정 재개발 현장 등을 맡았다. 우방 서울사업본부 김영웅 사장도 서울 중동고,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대표를 지낸 건설업계 전문 경영인 출신이다.

    -법정관리에서 벗어난 뒤 우방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법정관리를 받는 동안에도 우방은 꾸준히 건설물량을 수주했지만 공격적인 경영을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법정관리를 마친 뒤엔 공사 수주량 확보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법정관리가 끝난 지 8개월 만인 10월 현재 9800억원어치의 공사를 수주했습니다. 90% 이상이 아파트 사업부분 공사입니다. 연말까지 2조2000억원의 공사를 수주할 계획입니다. 이는 당초 목표치 1조2000억원보다 상향 조정된 것입니다.”

    우방 사업개발팀과 홍보팀에 따르면 우방이 올해 분양하거나 수주한 물량은 주택부문의 경우 서울 서초동 재건축사업(49가구), 서울 잠실2단지 재건축사업(850가구), 부산 범천동 중앙시장 재건축사업(221가구), 경기 안양시 석수동 우방유쉘(123가구), 경기 시흥시 능곡택지개발지구 3블럭, 대구 달서구 성서 우방유쉘(347가구), 대구 매호동 주택개발사업 등 전국에 걸쳐 다변화되고 있다. 경기 화성 향남택지지구(1만700평), 경남 김해 율하택지지구(1만4000평)에 아파트 1500여 가구를 공급할 계획도 갖고 있다.

    토목 등 비주택 부문에서도 인천항 부두 사업(1138억원)을 컨소시엄으로 수주한 것을 비롯해 대구지역에서 학교, 기숙사, 미술관 조성 등 5200억원 규모의 관(官) 주도 BTL(민간투자사업) 사업에 대표 시공사로 참여하게 됐다.

    전남 목포에선 석재전시 물류타운 사업(160억원) 시공계약을 체결했다.

    호남권에서 공사를 수주한 것은 이 지역 출신 임병석 그룹 회장의 적극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쎄븐마운틴그룹측의 설명이다.

    -부도 이후의 공백기를 일거에 만회하려는 가파른 상승세로 보입니다. 법정관리를 마치자 마자 수주실적이 이렇게 급증한 데는 어떤 요인이 작용했습니까.

    “솔직히 우방 가족 누구나 하루 빨리 옛 명성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공사물량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많이 지어올려야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우방의 부활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내년엔 공사수주 목표액을 3조원으로 잡고 있습니다. 삼성·현대·GS 등 국내 굴지의 아파트 건설업체의 턱밑까지 추격할 계획입니다.

    우방이 수주실적을 많이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쎄븐마운틴그룹 계열 편입 이후 개선된 논스톱 방식의 신속한 의사결정구조입니다. 다른 건설사들은 사업성 검토에서 공사수주까지 3개월 정도가 걸리지만 우방은 사업성을 면밀히 검토하면서도 의사결정 기간을 3주로 단축했습니다. 임직원 개개인에게 권한과 책임을 확실하게 부여해 업무 효율성을 높인 결과입니다. 그 결과 우방에 대한 사업 시행사의 선호도가 매우 높아졌습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 같은 금융비용 조달도 용이해졌습니다.

    두 번째는 그룹 계열사 편입에 따른 대외신인도 향상으로 시행사와 수요자가 우방에 다시금 신뢰를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향후 비주택 부문 사업에도 활발히 진출해 전체 사업에서의 비중을 40%선까지 끌어올릴 예정입니다.”

    50억원 들어간 ‘유쉘’ 브랜드

    우방은 올해 세 가지 큰 변화를 겪었다. 법정관리 졸업이 첫 번째, 쎄븐마운틴 그룹으로의 인수 및 전문경영인 체제 출범이 두 번째다. 세 번째는 새 브랜드 ‘유쉘(usell)’의 탄생이다.

    우방이 부도난 이후 국내 아파트 시장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중 하나는 아파트 브랜드의 상품가치가 급격히 높아진 점이다. 건설업계에선 “다른 조건들이 비슷하다면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보통 10% 이상, 경우에 따라선 곱절까지 가격 차이가 난다”고 한다. 브랜드 개념 없이 건설회사 상호가 곧 아파트 이름이던 2000년에 주저앉은 우방에 고유 브랜드가 있을 리 없었다. 우방 김홍범 홍보이사는 “우방 인수 이후 브랜드 개발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지난 6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유쉘 브랜드 선포식’을 개최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에 따르면 유쉘은 ‘당신을 위한 집’이라는 의미다. 부드러운 곡선의 로고로 표현되는 이 브랜드는 아파트의 여러 가치 중에서도 ‘최고 품격의 주거공간’ ‘여성을 위한 주거공간’ ‘유비쿼터스적 주거공간’을 상징화했다고 한다. 탤런트 송혜교가 유쉘의 전속모델로 활동 중이다. 변재신 사장은 “유쉘이 우방의 초일류주의를 상징하게끔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요즘엔 아파트 시장을 선도하는 대형 건설사뿐 아니라 중급 규모 건설사들도 일제히 고유 브랜드를 내걸고 있습니다. 후발주자들은 브랜드 인지도와 가치를 끌어올리기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인데요. 올해 새 브랜드를 내놓은 우방은 이와 관련해 어떤 전략을 갖고 있습니까.

    “아파트 소비자는 품질은 물론이고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높은 브랜드 이미지를 통해서도 만족을 얻으려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브랜드만 듣고도 품질과 가치가 연상되도록 하겠다는 목표로 유쉘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이 브랜드를 제작해 알리는 데 지금까지 50억원이 투자됐습니다. 현재 인지도가 높아져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향후 서울, 인천, 부산, 대구, 포항 등 전국 주요 도시마다 교통, 학군, 주변환경이 뛰어난 핵심 요지에 최고 품격의 초현대식 아파트를 지어 유쉘이라는 브랜드를 붙일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유쉘을 랜드마크화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천 송도 신도시에 첨단 아파트 건설을 추진 중이며 ‘대구의 강남’인 수성구에도 최고 요지인 범어로터리 부근에 43층 규모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포항에서도 포항의 상징이 될 만한 초고층 아파트 건설 사업을 검토 중입니다.”

    ‘아파트를 더 넓게, 더 화려하게’

    -우방은 아파트 건설시장에서 고품격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듯한데요. 그러기 위해선 그만한 시공력을 반드시 보유하고 있어야겠죠. 우방은 국내 일부 대형 건설회사들처럼 100층 이상의 초고층 빌딩도 완공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건축물 시공능력에 있어서 우방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어느 건설사와 경쟁하더라도 자신있습니다.”

    -향후 한국의 주거문화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봅니까. 치열한 경쟁 속에서 건설회사가 생존하기 위해선 주거 트렌드의 변화를 신속하게 예측해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주택을 공급해야 할 텐데요.

    “소비자는 지금보다 더 넓고, 품질이 더 뛰어난 주택을 원할 것입니다. 40평형대 아파트가 지금은 ‘대형’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얼마 안 가 ‘중형’ 취급을 받게 되리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쾌적하고 넓은 주거 환경은 삶의 질을 높이는 필수요소입니다. 국민의 60% 이상이 40평형대 이상의 주택에서 거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며, 또 그렇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1990년대 국내 아파트 건설업계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부터 우방은 새로운 주거문화를 선도해 왔습니다. 입지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큰 흐름으로 볼 때 우방은 넓은 구조, 최신 평형, 최고급 아파트를 널리 보급하는 데 역점을 둘 계획입니다.

    우방은 사전 시장조사로 주부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평형 개발에 그대로 반영합니다. 또한 입주 전 사전 점검을 통해 입주민은 조그만 하자에 대해서도 애프터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우방은 ‘하자가 가장 적은 아파트’를 지향합니다. 우방이 지은 건물이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것은 과거부터 정평이 나 있습니다. 유비쿼터스 기술을 집 안에서 구현하는 부분에서도 타 업체를 선도할 계획입니다.

    판상형 아파트는 짓지 않을 것이며 타워형을 위주로 하되 외관을 국내 어느 아파트에도 뒤지지 않게 수려하게 꾸미겠습니다. 문제는 가격이겠죠. 공사비를 절감하는 노하우를 더욱 발전시켜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한국의 주거문화를 한 단계 올리는 필수조건입니다. 우방은 이 점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무너진 ‘아파트 왕국’ 우방, 5년 만에 부활의 노래

    최근 (주)우방의 아파트 분양 모델하우스에 소비자들이 몰려 100% 계약이 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투기억제 정책 발표로 아파트 분양시장이 상당히 위축됐습니다. 우방에는 영향이 없습니까.

    “우리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사업성을 사전에 철저히 검토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신뢰입니다. 2003년 10월29일 이른바 ‘10·29 부동산 종합대책’이 발표된 하루 뒤 우방은 예정된 일정대로 아파트 신규분양에 나선 적이 있는데 초기 계약률 93%를 기록해 주변의 우려를 잠재웠습니다.

    우방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아파트 선(先)시공 후(後)분양 제도의 정착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내집 장만의 꿈을 꾸는 실수요자들은 정부의 투기억제 대책에 위축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수요자에게 인기 있는 아파트를 공급함으로써 분양시장 위축 시기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집 하나는 정말 잘 지었지”

    -부도가 나기 전 우방은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히 벌인 기업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전통을 잇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룹 차원에서 ‘인간사랑’ ‘문화사랑’ ‘바다사랑’을 주제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에 참여합니다. 또한 저소득층,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엔 희귀성 난치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음악회를 성황리에 열었습니다. 우방은 지난 9월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인포럼이 주최하는 2005 한국사회공헌대상의 지역사회봉사 부문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방이 법정관리를 마치고 재도약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전국에서 많은 분이 격려해주셨어요. 특히 대구시민의 애정과 관심은 대단합니다. 우방은 이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소비자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건설회사, 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아파트 건설 이외에 역점을 둘 사업분야라면?

    “내년을 우방이 세계로 진출하는 원년으로 삼을 계획입니다. 화교자본과 함께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등 세계 각국의 주택시장, SOC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면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룹의 해운사업을 통해 중국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 건설시장 진출은 우방에서 새로운 성장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국내적으로는 주택 재개발, 재건축사업뿐 아니라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 항만건설사업에도 참여해 총 3조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우방은 한 번의 실패를 통해 참으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우방의 새 브랜드인 유쉘 아파트는 하반기부터 소비자에게 본격적으로 선을 뵐 예정이다. “집 하나는 정말 잘 지었지”라고 우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우방의 추락과 그것을 극복해가는 도전의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우방의 상상력은 늘 소비자들을 흥분시켰다. 우방은 ‘1990년대 우방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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