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호

‘자유부인’에서 ‘야수’까지, 영화 속 ‘작업법’ 총정리

느끼, 막무가내, 심신이원론, 파격과 변주… 여인네 도발 부추기는 작업男의 필살기

  • 이승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jda@donga.com

    입력2006-02-02 1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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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업’이란 단어를 아십니까? 원래 ‘일’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진 이 단어가 요즘은 ‘연애를 걸기 위한 주도면밀한 수작’이란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됩니다. 어쩌면 러브호텔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는 거대한 ‘작업국가’에 사는 ‘작업국민’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최근 개봉된 영화에 등장하는 ‘작업의 방법’들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리마리오식 작업법 : 영화 ‘작업의 정석’

    ‘자유부인’에서 ‘야수’까지, 영화 속 ‘작업법’ 총정리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작업’ 중인 송일국.

    ‘웃찾사’라는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느끼한’ 남자 캐릭터 ‘리마리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느끼남’입니다. 스페인 투우사의 행동을 흉내내면서 두 손으로 허공 여기저기를 찔러대는 이른바 ‘더듬이 춤’을 추던 그는 “준비됐니?” “자, 간다∼” “본능에 충실해” “오, 베이비” “미끄러지듯이”와 같은 유행어를 유통시킨 주인공이죠.

    리마리오식(式)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느끼한 방법은 주로 남자들의 필살기(必殺技)로 쓰입니다. 지난해 말 개봉해 200만 넘는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손예진·송일국 주연의 코믹 멜로 영화 ‘작업의 정석’에는 이렇게 리마리오 못지 않은 ‘느끼한 전략’이 등장합니다. ‘작업의 고수’인 두 남녀의 불꽃 튀는 대결을 담은 이 영화 속의 건축설계사 민준(송일국)을 볼까요?

    그는 ‘작업녀’인 펀드매니저 지원(손예진)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음악을 은은하게 틀어놓은 가운데 홍차를 내온 민준은 창밖의 밤풍경을 바라보며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지죠.

    “유럽에는 오늘처럼 보름달이 뜨는 밤에 은 스푼으로 홍차를 저으면 귀여운 요정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죠. 하지만 오늘은 마법이 통하질 않겠네요. (지원을 은근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벌써 제 눈앞에 요정이 있으니까….”



    물론 이 대사는 소녀들이 즐겨 읽는 순정만화 ‘홍차 왕자’의 한 구절을 교묘하게 빌려온 것입니다만, 리마리오식 공략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효과적인 ‘작업법’으로 보입니다. 여자란 지금 당장 대야만한 양푼에 밥을 비벼 입 안 가득 퍼먹는 현실을 살지라도 늘 마음속에 한 덩어리의 낭만과 꿈과 판타지를 품고 사는 존재이니까 말이죠.

    ‘작업의 정석’에는 이밖에도 남자들이 구사할 만한 고전적인 ‘작업법’이 여럿 소개됩니다. 우선 여자의 동정심과 모성애를 자극하는 방법이죠. ‘너무나 힘겹고 가난한 연애시절’이나 ‘사랑했던 여자가 죽었다’고 하면서 어두운 과거를 팔아먹는 겁니다. 물론 다 거짓말이지만. 민준은 정신과 여의사 지영과 상담하면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지영의 마음을 도둑질합니다.

    “담배 한 갑에 20개비. 그러니까 한 개비에 100원인 셈이죠. 그걸 사기 위해 차비를 아껴왔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녀는 먼 거리를 걸어서 왔던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담배를 피워온 저 자신에게 화가 나서, 미친놈처럼 소리 지르고 있을 때 그녀가 조용히 말했어요. ‘화내지마…, 네 손가락 끝에서 벌써 30원이 타 들어가고 있어.’ 그녀는 꼼짝할 수 없게 나를 잠재우는 그런 여자였죠.”

    눈물을 글썽이면서 민준은 다음과 같은 결정타를 날립니다.

    “그녀가 죽은 후 지금까지 1년이 넘도록 깊이 잠들어본 적이 없어요. 며칠 밤을 꼬박 새우고 쓰러져도 깨어나면 겨우 30분…. 단 한 번만,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를 안을 수 있다면 전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여의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죠. 성공입니다.

    여기서 민준의 작업법은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줍니다. 여자의 마음을 진정 훔치기 위해서는 말 속에 구체적인 ‘팩트(fact)’를 담아야 한다는 점이죠. ‘유럽의 전설’ ‘담배에 얽힌 사연’ ‘30원’과 같은 디테일을 말 속에 섞어야 여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당신은 꽃처럼 아름다워요”라는 밋밋한 말보다는 “당신은 프리지아처럼 향기가 참 좋네요”라는 말이 훨씬 입체적이고, 또 “당신은 한 송이 백합 같아요”라는 표현보다는 “당신은 한 송이 백합 같아요. 아름답기는 하지만 추위에 약하고 쉽게 토라져버리는 모습이 늘 나를 불안하게 해요”라는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확실하게 흔들 겁니다. “오늘 향수 냄새가 좋은데!” 대신에 “오늘 당신의 향수 냄새는 프라다가 만든 첫 번째 향수처럼 고전적이면서도 도발적인 느낌이에요”는 어떨까요.

    ‘느끼한 전략’은 만국 공통의 ‘수컷 전략’인 듯도 싶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멜로 영화 ‘도쿄타워’에서도 여실히 증명되니까요. 21세 의대생 토오루(오카다 준이치)가 스무 살 연상의 명품 패션 전문점 여사장 시후미(구로키 히토미)에게 던지는 한마디를 살펴볼까요.

    “내 안에서 당신을 지우는 건 불가능해요. 당신은 작고도 아름다운 방이에요. 나는 3년간 그곳에 있으면서 당신이 좋아하는 소설을 읽고 당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어요. 그 방을 나와서는 살 수 없어요. 살아봤자 의미가 없어요.”

    여자는 알면서도 넘어옵니다. 그녀의 마음을 제대로 훔치기 위해서는 늘 구체적인 디테일을 말 속에 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코뿔소식 ‘막무가내’ 작업법 : 영화 ‘연애의 목적’

    남자들이 생각하는 ‘연애의 목적’이란 무엇일까요. 십중팔구 ‘섹스’입니다. 얼마 전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배우 송일국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남자들이란 예외 없이 ‘깔때기’ 같은 존재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오로지 한 곳으로 목적이 귀결된다는 점에서 말이죠. 오로지 섹스 말입니다. 하지만 여자는 달라요.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모두 다르죠.”

    실로 탁월한 비유와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깔때기라…. 지난해 개봉해 169만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연애의 목적’에는 정말 깔때기 같은 남자가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 유림(박해일)은 교생이지만 나이는 자신보다 한 살 연상인 홍(강혜정)을 호시탐탐 노리죠.

    이 영화에서 유림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을 실제로 증명해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체면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주위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홍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집적대면서 ‘도끼’처럼 계속 찍어대죠.

    “와, 다리가 너무 예뻐요.”(유림)

    “네.”(홍)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지만, 같이 자고 싶어요. 우리 같이 자요.”(유림)

    “왜 그러세요, 이 선생님.”(홍)

    “최 선생님, 안고 싶어요.”(유림)

    “많이 취하셨나 봐요. 그만 일어나죠.”(홍)

    “저 원래 굉장히 솔직한 스타일이거든요. 감추고 음흉한 거보다는 낫잖아요.”(유림)

    “처음 만난 여자들한테 다 그래요?”(홍)

    “아니요. 맘에 들고 좋아야 그러죠.”(유림)

    ‘자유부인’에서 ‘야수’까지, 영화 속 ‘작업법’ 총정리

    에둘러가지 않고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여자의 마음을 무장해제해 버리는, ‘코뿔소식’ 작업법이 등장하는 영화 ‘연애의 목적’.

    “제가 좋아요?”(홍)

    “네.”(유림)

    “절 언제 봤다고 좋아요?”(홍)

    “처음 보고, 좋았어요.”(유림)

    “처음 본 여자랑 자본 적 있어요?”(홍)

    “그럼요.”(유림)

    “그런 여자들 있어요?”(홍)

    “그럼요. 얼마나 많은데요.”(유림)

    “아니,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자요?”(홍)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 사랑이라는 거, 웃겨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호감 가고 좋아하는 사람이랑 원하면 자고, 부담 없이 ‘쿨’하게.”(유림)

    ‘연애의 목적’에서 유림은 혀를 내두를 만큼 단도직입적이고 노골적이죠. 그러면서 ‘나의 목적은 오로지 섹스’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드러냅니다. 그럼으로써 여자가 자기 주위에 견고하게 형성해놓은 보호막을 대번에 뚫고 들어가죠. 그는 양심과 도덕률이라는 단어를 뻔뻔스러울 정도로 땅바닥에 던져버립니다. 상대가 당혹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뒤 좌고우면하지 않고 코뿔소처럼 돌진함으로써 ‘내숭’ 떠는 여성들로 하여금 뭔가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폭발시켜버리도록 부채질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제가 그렇게 싫으세요?”(유림)

    “그런 게 아니잖아요.”(홍)

    “제가 맘에 안 드는 거예요? 아니면 섹스가 하기 싫은 거예요?”(유림)

    “섹스가 하기 싫은 거예요. 이 선생님 애인 있잖아요.”(홍)

    “저, 최 선생님 좋아요. 진짜로 반했어요. 그냥 부담 없이 편하게 생각하고, 제 말 들으면 안 돼요?”(유림)

    “죄송해요.”(홍)

    “저 내일부터 최 선생님 어떻게 봐요. 창피해서.”(유림)

    “못 들은 걸로 할게요.”(홍)

    “그럼 내가 안 창피하게 우리, 키스라도 해요.”(유림)

    “키스요?”(홍)

    “네!”(유림)

    “키스할래요?”(홍)

    “네!”(유림)

    “이 선생님 앞으로 제 얼굴 어떻게 보시려고 그러세요?”(홍)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러세요. 그냥 같이 자자고밖에 안 했는데. 같이 자면 오히려 앞으로 서로 편해질 수도 있어요. 여기 좋은 모텔 많은데….”(유림)

    급기야 유림은 ‘연애의 목적’을 이룹니다. “이건 안 돼요” 하는 홍에게 “딱 5초만 넣고 있을게요” 하면서 정말 ‘5초간’의 삽입에 성공하죠.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엔 진정한 사랑이 싹터갑니다. 참 안쓰러울 정도로 구걸하는 유림은 발정기의 수컷을 연상케 할 정도죠. 이 영화 속 유림은 무슨 개발시대의 표어나 군인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이 영화는 중요한 ‘작업’의 방법을 시사합니다. 똑똑한 체하고, 섹스에 관심 없는 체하고, 지적이고 ‘쿨’한 체하는 것보다는 솔직한 것이 최고라는 사실 말입니다. 첫째, 부끄러움을 버립니다. 둘째, 에둘러가지 않고 직격탄을 날립니다. 여성들은 직설적인 남자에게 의외로 손쉽게 무장 해제되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주는 경우가 있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이런 ‘코뿔소식 작업법’엔 한 가지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상대를 잘못 고르면 당장 ‘성희롱’ 혹은 ‘성추행’으로 철창 신세를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죠.

    #‘작업’용 명대사들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는 일본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리메이크한 ‘파랑주의보’에 나오는 대사가 제법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보다 똑똑하고 잘난 여자를 공략하기 위한 작업의 기술이 은근슬쩍 녹아 있는 듯하더군요. 공부도 못하고 별볼일 없는 학생 수호(차태현)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똑똑하고 예쁜 수은(송혜교)의 마음을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비가 그쳤네?”(수호)

    “태풍의 중심에 있으면 비도 없고 바람도 없는 고요뿐이래.”(수은)

    “우리가 태풍의 중심에 있는 거야?”(수호)

    “아, 너무 아름다워. 이런 걸 볼 수 있는 거 어느 정도의 확률일까?”(수은)

    “너랑 나랑 만난 건 몇만분의 확률일까?”(수호)

    “태풍 한가운데 별이 떠 있을 만큼의 확률?”(수은)

    “나, 결심했어. 너 때문에 울고, 너 때문에 웃고, 너 때문에 살 거야. 앞으로 내 세상의 중심은 너야.”(수호)

    “넌 잘 삐치고, 질투도 많고, 허둥대고, 거짓말할 때 말도 더듬지만, 난 그게 좋아.”(수은)

    수호는 일단 어리석은 척하면서 자신보다 똑똑하고 당돌한 수은이 어떤 말을 먼저 꺼내도록 유도합니다. 그러고 나선 상대의 말에 편승해 살짝 비틀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죠. 그 다음에는 약간 닭살 돋는 멘트를 날리며 본론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여기서 ‘작업’을 빛내는 영화 속 명대사들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얼마 전 미국의 연예 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유명한 로맨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명대사들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때로는 애증에 덮인 퉁명스러운 대사도 있지만, 대부분 꼭 기억해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할 만한 ‘필살기’입니다.

    ♥“당신은 키스 받아야 해. 물론 자주. 그것도 키스를 아주 잘하는 사람으로부터.”(You should be kissed. And often. And by someone who knows how.)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에서 클라크 게이블이 비비언 리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꽉 잡으면서.

    ♥“저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안 탄다면 당신은 후회할 거요. 오늘, 내일이 아니야. 곧, 그리고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야.”(If that plane leaves the ground and you’re not with him, you’ll regret it. Maybe not today, maybe not tomorrow, but soon, and for the rest of your life.) -영화 ‘카사블랑카’(1943)의 그 유명한 마지막 장면에서 험프리 보가트가 잉그리드 버그먼에게.

    ♥“너를 안 뒤부터 난 두려운 적이 없었어.”(I haven’t been afraid since I’ve known you.) -영화 ‘가스등’(1944)에서 잉그리드 버그먼이.

    ♥“(사랑이) 이런 줄은 미처 몰랐어요.”(I never knew it could be like this.)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에서 데버러 커가 해변을 거닐며 버트 랭커스터에게.

    ♥“내가 여자들에게 묻는 질문이라곤 ‘당신 남편이 몇시에 집에 돌아오느냐’는 것이지.”(The only question I ever ask any woman is ‘what time is your husband coming home?’) -영화 ‘허드’(1963)에서 폴 뉴먼이 패트리샤 닐을 유혹하며.

    ♥“사랑은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냐.”(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I’m sorry.) -영화 ‘러브스토리’(1970)에서 알리 맥그로가 라이언 오닐에게.

    ♥“당신을 사랑해요.”(I love you.) “나도 알아.”(I know.) -영화 ‘스타워즈1’(1980)에서 캐리 피셔가 해리슨 포드와 키스하기 전에.

    ♥“난 당신과 사랑에 빠졌어.”(I’m in love with you.) “그럼 빠져나와!” (Snap out of it.) -영화 ‘문스트럭’(1987)에서 니컬러스 케이지의 고백에 셰어가 퉁명스럽게 대하며.

    ♥“난 주정뱅이야. 그리고 당신은 창녀지.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이 내겐 아주 편안하다는 걸 당신이 알아줬으면 해.”(I am a drunk. And I know you’re a hooker. I hope you understand that I’m a person who is totally at ease with this.)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1995)에서 니컬러스 케이지가 엘리자베스 슈에게.

    ♥“당신은 나로 하여금 더 나은 남자가 되고프게 만들고 있소.”(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에서 잭 니컬슨이 헬렌 헌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난…, 그저 사랑해달라며 한 남자 앞에 서 있는 여자일 뿐이에요.”(I’m… just a girl. Standing in front of a boy. Asking him to love her.) -영화 ‘노팅힐’(1999)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휴 그랜트에게.

    #엘리베이터 속 파격적인 작업법 : 영화 ‘애인’

    ‘자유부인’에서 ‘야수’까지, 영화 속 ‘작업법’ 총정리

    잠깐 사이 여자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현대적인 작업 기술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 ‘애인’.

    영화 ‘애인’에는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마주친 여자(성현아)에게 남자(조동혁)가 ‘작업’을 거는 대목이 등장합니다. 아주 짧은 대화지만, 이 속에는 잠깐 마주친 여자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현대적인 기술이 제대로 담겨 있습니다.

    “지하 3층까지 우리 둘만 내려가면 제가 술 한잔 사죠.”(남자)

    “왜 나한테 술을 사죠?”(여자)

    “이유를 말해야 하나요?”(남자)

    “지금 작업 거는 거예요?”(여자)

    “걸면 걸려요?”(남자)

    이 영화는 우선 “안녕하세요” 혹은 “지하 주차장에 가시나 봐요”와 같은 고전적인 방법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인사와 함께 접근하는 방법은 ‘작업’의 냄새가 너무 풍겨서 촌스러울 뿐 아니라, 오히려 여성에게 상대를 경계하고 마음의 보호막을 치게 만드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죠. 대번에 뚫고 들어가야 합니다. 요즘 ‘작업의 세계’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변주’와 ‘파격’이죠.

    대번에 “지하 3층까지…” 하고 제안하는 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하 3층까지 우리 둘만 내려가지 않고 중간에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 탄다면 ‘작업’을 포기하겠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으므로 굳이 집착하지 않는 ‘쿨’한 이미지를 던져줄 수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자에게 은근슬쩍 “정말 지하 3층까지 아무도 타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을 하게 만들며 마음속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작업 거는 거예요?” 하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여자에 대해 남자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이유를 말해야 하나요?” “걸면 걸려요?” 하면서 역공을 펼치죠. 여자에게 매달리고 애원하기보다는 ‘드라이’한 매력을 풍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꼭 그건 아니고요. 좀 말씀이나 나눌까 하고…” 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의 모습을 기대한 여자에게 이런 식의 역공은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는 데 효과적이죠.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술 한잔 사죠”입니다. 과거에는 “차 한잔” 혹은 “커피라도 한잔” 등으로 표현되던 것들이 “술 한잔”으로 바뀌는 추세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 달리는 요즘 차 한잔 못 마시고 다니는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차’는 너무 촌스러운데다 남자의 재력을 암시하는 데도 무용지물이죠.

    굳이 ‘차’라는 단어를 쓰고 싶으시다면 대신 ‘에스프레소’를 제안합니다. 커피 농축액인 에스프레소는 요즘 들어 젊은층 사이에서 ‘작업용 커피’로 통합니다. 1970년대까지 ‘다방 커피’ 혹은 ‘맥심 커피’ 일색이던 커피 문화.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감각적인 젊은이들은 향이 좋은 ‘헤이즐넛 커피’를 청하면서 상대의 마음을 빼앗기 시작했죠. 이런 변화는 원두커피 문화가 꽃을 피움에 따라 2000년대에 접어들어 ‘카페 모카’ ‘캐러멜 모카’ 등으로 옮아갔고, 최근에는 ‘에스프레소’가 감각과 센스의 상징처럼 자리잡고 있죠.

    ‘에스프레소’ 하면 그 말의 뉘앙스부터 이국적인데다가, 작고 차가워 보이는 커피 잔은 고독해 보이면서도 뭔가 지적이고 낭만적인 냄새를 폴폴 풍기니까 말이죠. 작은 에스프레소 잔 손잡이를 엄지와 검지로 단출하게 잡아 쓰디쓴 커피 원액을 홀짝이며 창밖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이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전은 영원하다 : 영화 ‘자유부인’

    어떤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늘 진리는 ‘고전’ 속에 있습니다. 정비석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해 1956년 개봉한 영화 ‘자유부인’은 딱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매우 유용합니다. 자유연애를 표방하는 춤꾼 대학생 춘호는 옆집에 사는 대학교수 부인 선영에게 ‘작업’을 걸죠. 시내에서 우연히 선영과 마주친 춘호가 선영에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여심(女心)을 완전히 사로잡는 ‘작업’의 진수들이 녹아 있습니다.

    “아주머니, 한번 슬슬 걸어보실까요?”(춘호)

    “어마, 여기서 적선동이 어딘데 걸어가는 거야?”(선영)

    “달빛도 고요한데 한 30분 저를 즐겁게 해 주십시오.”(춘호)

    “춘호는 명옥이랑 사랑하는 사이인가?”(선영)

    “그저 프렌드죠.”(춘호)

    “그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선영)

    “사랑하는 사람은 단 하나일 뿐입니다. 프렌드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죠.”(춘호)

    “그렇지만 춘호가 명옥이를 사랑하는 증거를 보았는 걸? 아까 그 골목에서….”(선영)

    “아, 그걸(키스하는 모습을) 보신 모양이군요. 그야 프렌드로서의 작별인사죠. 뭐 키스 좀 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명옥이야 그저 춤 상대죠.”(춘호)

    “어마, 명옥이가 춤을 춰?”(선영)

    “춤을 춰도 일류급이죠. 자,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춘호)

    “나 같은 늙은이도 춤을 배울 수 있을까?”(선영)

    “왜 늙은이, 늙은이 하십니까. 아주머니는 젊고 아름답고 양장이라도 하시면 아주 스타일이 베리 굿일 겁니다.”(춘호)

    “뭐, 그럴까?”(선영)

    “언제든지 필요하실 때는 제 창문만 두드리십시오. 준비는 항상 되어 있습니다. 오늘 밤? 혹은 내일 저녁?”(춘호)

    “(망설이며) 글쎄….”(선영)

    “언제든지 기다리겠습니다. 오늘은 참 감격의 밤이었습니다. 굿나잇! 마담.”

    여기서 춘호는 두 가지의 작업기술을 구사합니다. 우선 자신이 ‘리버럴(liberal)’함을 표방하면서도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는 한 여자만을 생각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는 점이죠. 바람둥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인데요.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는 ‘심신(心身) 이원론’을 통해 ‘몸은 놀더라도 정신만은 일편단심’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외려 ‘믿을 만한 남자’라는 이미지를 여자에게 심어주는 것이죠.

    더 중요한 것은 여성이 스스로 연애의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된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춘호의 기술입니다. 춘호는 “한 30분 부인을 즐겁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한 30분 저를 즐겁게 해주십시오” 하며 살짝 비틀어 말하죠. 즉, “부인을 즐겁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은 듣는 여성으로 하여금 ‘나는 남자가 걸어오는 연애의 대상’이라는 해석을 하게끔 만드는 데 반해, “저를 즐겁게 해주십시오”라는 말은 여성에게 ‘연애를 도발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주체의식을 부지불식간에 심어준다는 것이죠.

    춘호는 자신의 방에 춤을 배우러 온 선영을 급기야 쓰러뜨리면서도 이런 ‘전술’을 또다시 구사합니다.

    “마담!”(춘호)

    “왜, 왜 이러는 거야.”(선영)

    “마담, 아이 러브 유. 마담, 오늘 저녁엔 저를 마음대로 이용해주십시오.”(춘호)

    “저를 이용해주십시오” 식의 이런 공략법은 여자를 한층 적극적이고 대담하게 행동하도록 부추기는 효과가 있는 동시에, 나중에 헤어질 때도 남자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여자에게 ‘나는 남자의 마수에 걸렸다’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 연애를 선택하고 주도했다’는 인식을 은연중 갖도록 하니까 말이죠.

    #신파적 작업법 : 영화 ‘너는 내 운명’

    사실 직설법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는 바로 ‘너는 내 운명’입니다. 이 영화는 관객 310만명을 빨아들이면서 한국 멜로 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죠. 에이즈에 걸린 다방 종업원 은하(전도연)를 죽기 살기로 사랑하는 시골 총각 석중(황정민)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담은 이 영화는 비록 화려한 수사는 없을지언정 진심을 담은 짧은 말이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가를 증명해준 영화입니다.

    석중이 은하에게 던지는 말들은 대개 이런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요. 아니 죽어서도 사랑할게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해줄게요. 내가 지켜줄게요. 사랑해요.”

    “나를 믿어요. 아무 걱정 말아요. 평생 당신을 지켜줄게요.”

    석중은 “사랑은 변한다”고 주장하는 은하와 이런 우직한 대화를 나누죠.

    “전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가요. 사랑이 어떻게 변해요?”(석중)

    “변해요, 사랑. 세상에 안 변하는 게 어디 있어?”(은하)

    “그래도 안 변해요, 사랑은.”(석중)

    능숙한 남자들이 넘쳐나는 요즘, 이런 무식하지만 솔직담백한 남자의 정공법은 외려 그 희소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뜨거운 신파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요. 무엇보다도, 이젠 ‘쿨’한 체하는 데 질렸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하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사랑에 초연한 체, 멋진 체하며 사는 데 이제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죠.

    울고 짜는 신파는 한(恨)의 유전자가 핏줄을 타고 흐르는 우리 민족과는 궁합이 잘 맞는 정서라고들 하지만, 대체적으로 신파의 인기는 사회가 메마르고 사람들의 마음이 곤궁해졌을 때 일어나는 ‘반작용’이라고 합니다. 현실이 차가울수록 인간은 더 비현실적이고 더 강력한 환상, 즉 판타지를 원한다는 것이죠. 유한한 사랑의 시대에 한국인은 역설적으로 사랑의 유한성을 부정하고 싶어하고, 극단적인 사랑 이야기에 눈물 흘리면서 현실을 잠시나마 까맣게 잊기를 갈망하죠. 바로 ‘신파적인 작업법’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자유부인’에서 ‘야수’까지, 영화 속 ‘작업법’ 총정리

    최근 개봉한 영화 ‘야수’에서 터프가이 형사로 나오는 권상우가 엄지원에게 급작스럽게 던지는 프러포즈는 ‘남자의 직설법’을 가슴 찡하게 보여준다.

    최근 개봉된 영화 ‘야수’에서 생각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터프가이 형사 도영(권상우)이 주희(엄지원)에게 급작스럽게 던지는 프러포즈도 ‘남자의 직설법’을 가슴 찡하게 보여주죠. 그는 몸져누운 어머니 곁을 지키는 주희와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실까? 내가 주희랑 결혼한다고 그러면 말이야.”(도영)

    “뭐?”(주희)

    “어머니도 널 딸처럼 생각하시니까, 며느릿감으로 좋다고 하실 거야.”(도영)

    “지금…, 프러포즈하는 거야?”(주희)

    “양쪽 다 친척도 없으니까 간단히 치르자. 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도영)

    “야, 장도영!”(주희)

    “…?”(도영)

    “너 바보 아냐? ‘우리 결혼이나 할까’ 그러면 내가 얼른 ‘좋아요’ 할 줄 알았어?”(주희)

    “그럼 어떻게 하는 건데?”(도영)

    “지금 그 말, 진심으로 나 사랑해서, 그래서 결혼하자는 거야?”(주희)

    “사랑 같은 거, 나 몰라. 네가 해주는 밥이 맛있고, 너랑 같이 있으면 편하고, 살아보면 더 좋을 거 같고, 뭐, 결혼이란 게 그런 사람들이 하는 거 아냐?”(도영)

    “….”(주희)

    잊지 마십시오. 정직이 최고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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