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호

배우 김정은

‘시니컬한 서른’의 일과 사랑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6-07-21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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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김정은
    쳐다보고 있으면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배어나온다. 톡톡 튀는 목소리,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다양한 표정, 엉뚱한 유머감각, 게다가 늘 밝고 긍정적인 역할을 연기해 보는 이들을 미소짓게 만든다. 김정은(30)은 그런 배우다. 그렇다. 2002년엔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부자 되세요, 꼭이요”라는 CF로 푸근한 희망을 선사했고, 2004년엔 드라마 ‘파리의 연인’으로 누구라도 보듬어주고 싶은 귀여운 연인이 됐다.

    그가 더욱 사랑받는 것은 따뜻한 마음씀씀이 때문이다. 그는 평소 나눔과 봉사에 앞장서는 ‘천사표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몽골 도르노트 시에 자신의 이름을 딴 병원을 지어 기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별것도 아닌데 쑥스럽다”고 했지만, ‘좋은 일은 널리 알려 우리 사회에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김정은에게 데이트를 청했다. 그는 5월20일 열린 병원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몽골로 떠나기 전날, 그리고 몽골에서 돌아온 며칠 후 두 번에 걸쳐 깊은 속내를 털어놨다.

    “나눔 활동은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

    “병원 일은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평화의료재단에서 제3세계 국가에 병원을 짓는 일을 한다기에 기꺼이 참여했을 뿐입니다.”

    평화의료재단(www.peacefulfund.org)은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병원건립과 의료기기 및 약품 지원 사업을 벌이는 자선단체다. 1993년 페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동티모르, 스와질란드 등에 병원을 지었다. 몽골에 들어서는 ‘정은병원’은 이 재단의 일곱 번째 병원이다. 병원의 정식명칭은 ‘도르노트 정은 한 메디컬센터’. 김정은의 이름과 한국의 ‘한’자를 따서 붙였다.



    “제 이름을 딴 병원이라고 해서 제가 전액을 기부한 건 아니에요. 그랬으면 저 혼자만의 자선사업이 되겠죠. 그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좋은 뜻에 동참하는 게 의미 있잖아요. 굳이 제 이름을 붙인 건 활동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평화의료재단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 이름을 딴 병원을 짓는다고 하니까 ‘왜?’ 하며 관심을 가져요. 그러면서 제3세계에 병원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고, 후원하려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그렇다고 ‘얼굴마담’ 노릇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3개 동(棟)으로 이뤄진 병원 건설비의 일부를 부담했다. 앞으로도 출연료 등 수입의 일정 부분을 병원에 기부해 시설을 확충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몽골은 그간 미국, 일본 등으로부터 약품과 의료기기, 의료진을 지원받아왔다. 하지만 수도 울란바토르를 비롯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시설을 제대로 갖춘 병원이 드물어 의료혜택을 못 받는 주민이 많았다. 외국에서 병원건물을 지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몽골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환경이 열악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가서 보니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고 한다.

    “도르노트는 몽골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데도 병원은커녕 보건소 하나 없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프면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울란바토르까지 가야 한대요. 일각에선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이가 많은데 왜 남의 나라를 돕느냐’고 하지만, 제3세계 국가의 실상을 보고 나면 그런 말 못해요. 특히 그 지역 아이들은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요.”

    배우 김정은
    후원 위해서라면 누드도 불사

    나눔과 봉사에 앞장서는 이유를 묻자 씨익 웃으며 “내가 잘되려고 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요”라고 한다.

    “저는 권선징악을 믿어요. 자기만족일 수도 있는데, 제가 팬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남에게 돌려줘야 또다시 팬들의 사랑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어요. 제가 받은 사랑을 돌려주지 않으면 사랑의 순환이 안 돼 언젠가는 저에 대한 팬들의 사랑도 식어버릴 것 같은 거예요. 참 이기적이죠?”

    김정은은 2001년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입양을 알선하는 대한사회복지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규모도 커졌고, 차인표·신애라 부부 등 유명 연예인이 이곳에서 돌보던 아이를 입양해 잘 알려졌지만, 그가 처음 홍보대사를 맡을 때만 해도 아는 이가 드물었다.

    “그곳에 처음 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생후 1주일도 안 된 아이가 대부분이었고,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아이도 있었어요. 우리 사회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고, 정의감 같은 것이 불끈 솟더군요. 그래서 더 열심히 활동했던 것 같아요. 가끔 가서 아이들이랑 노는데 너무 예쁘고 귀여워요. 그 예쁜 아이들이 국내 가정에 입양되지 못해 해외로 입양된다는 게 참 가슴 아팠어요. 당장 저부터라도 입양하고 싶지만 우리나라는 입양자격조건이 무척 까다롭더라고요. 미혼은 안 된대요.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시대 변화에 맞춰 자격 요건을 완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회단체 홍보대사를 한다는 홍보성 기사만 내보내고 활동은커녕 홍보용 포스터 사진 찍는 것조차 바쁘다며 거절하는 연예인도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에 조금 야한 옷을 입고 나오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는 그가 대한사회복지회 홍보를 위해 누드로 아이를 안고 사진 찍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누드를 찍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원래는 옷을 입고 찍었는데, 아이의 연약한 피부가 제 옷에 닿으니까 금세 빨개지는 거예요. 마음이 아팠어요. 맨살이 아이에게 자극을 덜 주지 않을까 싶어 옷을 벗었던 거죠.”

    지금껏 기부한 돈이 적지 않은 액수일 것 같은데 그도, 매니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노코멘트였다.

    “계산해본 적이 없어 모르겠어요. 연말정산 때 세금환급 받으려고 회사에서 정리해놓은 건 있겠지만 액수를 밝히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좋으려고 하는 일이지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렇듯 남을 돕는 데 적극적인 것은 그 또한 가난한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 뜻밖에도 그는 기업인 집안 출신이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이 그의 작은외할아버지라고 한다. 김 명예회장은 (주)대우 회장을 지낸 바 있으며, 아들인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인 김선정 전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의 남편이다. 김선정씨는 김정은에게 외종숙모가 된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김정은은 이수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인 ‘브라운스톤’ 광고모델을 하기도 했다.

    ‘자기복제 연기’는 이제 그만

    건국대 미대 공예과에 다니다 1997년 MBC 탤런트 시험에 합격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으니 올해로 연기 10년째를 맞았다.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다 보니 남모르는 아픔도 많았다고 한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어 처음엔 무척 힘들었어요. 연기만 하면 카메라가 다 알아서 찍어주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찍고, 저렇게 찍고, 각도를 달리해서 다시 찍고 해서 편집을 한다는 개념이 없었죠. PD가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서 있곤 했어요. 연기 못한다고 혼나고 울고 그랬는데,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혼나지 않으려고 준비를 엄청나게 했죠.”

    배우 김정은
    가령 감기에 걸린 배역이라면 대사 중간중간 끊임없이 휴지로 코를 풀고 재채기를 해대며 애드리브(즉흥연기)를 했다. 밥 먹는 장면이면 밥알을 입에 문 채 대사를 했다. 그처럼 실제 생활과 똑같은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의 연기에선 ‘리얼함’이 묻어난다.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특히 광고에서 빛을 발한다. ‘부자되세요, 꼭이요’ ‘묻지마 다쳐’ ‘딱 좋아’ 등 그의 광고 대사는 나오는 족족 유행어가 됐다. 그가 나오는 광고는 어지간한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고, 밋밋한 말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생기가 실린다. 영화 ‘불어라 봄바람’에서 그가 쏟아내는 ‘졸라’ ‘열라’ 같은 저속한 말들도 깜찍하게만 들렸다.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짐작케 한다.

    TV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가 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건 2002년 ‘재밌는 영화’가 처음. 그 작품에서 그는 확실하게 망가지는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망가지는 역할을 한 여배우는 톱스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이 영화가 그에겐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한다.

    “참 힘들었던 게, 저는 드라마에서 몸 바쳐-표현이 좀 이상한가요?- 열심히 연기했는데 ‘쟤는 한계가 있어’ 하는 평가가 나와요. 그래서 계속 조연에 머무르니까 괴롭더라고요. 뭔가 돌파구가 필요한 시기에 ‘재밌는 영화’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그 전에도 시나리오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미 다른 배우들에게 퇴짜를 당하고 저한테까지 온 작품들이었어요. 그런데 이건 처음부터 저를 염두에 두고 만든 시나리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앞뒤 가리지 않고 하겠다고 했죠.”

    오히려 ‘상품가치’가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래도 승부를 걸었다. 결과는 100만 관객이 넘는 흥행 성공이었다. 다음 작품 ‘가문의 영광’도 166만 관객을 넘겼다.

    “너무 잘돼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자고 나니 떴다’는 말이 실감났어요. 사람들이 붕붕 띄워주니까 이러다 떨어질까 싶어 나중엔 무섭기까지 했어요.”

    걱정했던 것처럼 좌절이 찾아왔다. 2003년 멜로영화 ‘나비’가 개봉되자 혹평이 쏟아졌다. 사람들은 밝고 코믹한 김정은을 원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4년 그는 그해 최고의 드라마로 꼽히는 ‘파리의 연인’으로 만인의 연인이 됐다.

    그에게 ‘파리의 연인’은 축복인 동시에 고통이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내 트레이드마크를 다 보여주자, 끝장을 보자’는 생각으로 찍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소진한 탓이다. 그래서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건 좋은데, 더는 보여줄 게 없다’는 두려움, ‘사람들이 나한테서는 이런 것만 원하는구나’ ‘난 이런 것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좌절감에 빠져든 것.

    “사람들은 제게서 발랄함, 귀여움을 원하는데, 그런 역할만 계속 하면 외면할 거잖아요. 제가 언제까지나 귀여울 수만도 없는 거고요. 저 자신도 소모적인 자기복제를 거듭하는 게 지겨웠어요. 여기서 더 발전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하나 고민할 때 만난 게 ‘사랑니’였죠.”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는 영화 ‘사랑니’에 대해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나 자신과 가장 닮은 영화”라고 했다.

    톱스타들의 고액 출연료

    언제부턴가 영화, 드라마를 막론하고 배우들의 출연료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요즘 영화인들이 벌이고 있는 스크린쿼터 축소반대운동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데에는 톱스타들의 개런티가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이 한몫했다. 이들에게 고액의 출연료를 주느라 뒤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의 처우가 더 열악해졌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톱스타들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기도 했다.

    “저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만날 ‘부자 되라’고 하더니 너만 부자 된 것 아니냐고요. 전에는 ‘내가 개런티를 많이 받는 건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대가만이 아니라 배고프던 무명시절에 대한 보상까지 포함돼 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다’라는 발칙한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젠 솔직히 ‘세금 꼬박꼬박 잘 내고 허튼 데 안 쓰고 살겠다’는 말밖에는 못하겠어요. 일반인이 볼 때 톱스타의 개런티는 ‘그게 말이 돼?’라고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금액일 수도 있으니까요.”

    배우 김정은
    그에게 “앞장서서 많이 받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하자 “그렇지는 않고요”라며 웃었다.

    “그 문제는 참 어려운 이야기예요. 남보다 과하게 요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상업영화에 출연하면서 배우의 커리어에 맞지 않게 받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죠.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과 형평에 맞게 받자. 대신 나를 필요로 하는, 그리고 괜찮은 저예산 단편영화가 있다면 무료로라도 출연하겠다고요.”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그는 누구를 찍었을까. 그는 “정치 이야기는 늘 조심스럽다”고 했다.

    “마음에 정한 사람은 있었는데 투표를 하지는 못 했어요. 꼭 하고 싶었는데.”

    마음에 정한 후보가 누구냐고 묻자 “말하기 어려운 게, 저는 개인적으로 같은 여성이라 그쪽에 관심이 갔는데, 저희 집 분위기가 좀…강남이라서…” 하며 웃었다.

    요즘 그는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7월말경 개봉예정인 영화 ‘잘살아보세’ 촬영이 끝난 후 잠깐씩 후반작업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스케줄을 잡지 않고 있다.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을 아직 찾지 못했어요. 조급하게 결정하지 않으려고요.”

    그의 침대 머리맡엔 시나리오가 두 뼘 가까운 두께로 쌓여 있다고 한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끝난 직후보다는 적은 편이지만, 영화 ‘사랑니’에서 새로운 연기를 보여줬기 때문인지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에 편중되지 않고 훨씬 다양하다고 한다. ‘이걸 왜 내게 보냈을까’ 싶을 만큼 무거운 작품에서 ‘미저리’ 같은 스릴러에 이르기까지.

    결혼 후 혼자 있고 싶을 땐?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게 2002년의 마약복용혐의 파문이다. 배우 성현아가 신종 마약류인 엑스터시 복용혐의로 구속되면서 단짝친구인 그도 의혹을 산 것. 결국 서울지검에 자진출두해 검사를 받고서야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걱정하진 않았어요. 마약을 한 적이 없으니까요. 정작 놀라고 두려웠던 건 아무도 절 믿어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제가 마약을 복용했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데도 말이죠. 기가 막혔고, 일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연예가 참새들 사이에서는 이 일로 인해 그가 성현아와 의절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에겐 이게 더 기가 막혔던 모양이다.

    “현아랑 저는 지금껏 사이가 소원해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틈만 나면 서로 집에 찾아가곤 해요. ‘내가 그런 일을 겪은 게 너 때문이야’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건 정말 현아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힘내’, 그런 말을 해준 적은 없어요. 정말 친하면 오히려 그런 이야기 안 하게 되잖아요. 그냥 옆에 오래 있어주는 것 자체가 힘이 되니까. 우린 더없이 좋은 친구고, 앞으로도 절친한 친구로 지낼 거예요. 실은 걔도 친구가 없고 저도 친구가 없거든요(웃음).”

    김정은은 올해 만 서른이다. 결혼계획을 묻자 “아직까진 결혼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한다.

    “‘내가 과연 결혼을 할까’ 싶을 만큼 결혼에 대한 환상이 없어요. 나이 들면서 시니컬해졌나봐요. 일도 이왕 할 거면 잘해야 하는 것처럼 결혼도 잘해야 할 텐데, 아직은 그럴 자신이 없어요. 저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보기 때문일 거예요.”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한 번도 못 만난 건 아니냐”고 묻자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배우 김정은

    김정은은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해 대한사회복지회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있었어요. 2002년쯤이었을 거예요. 연예계 관계자였는데 그 사람말고는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가 있었어요. 롤러코스터 같은 것 있잖아요. 일단 타고나면 멈출 수도 뒤로 갈 수도 없고, 세상이 거꾸로 보이기도 하고, 현기증 때문에 괴롭기도 하지만 중간에 내릴 수 없는, 꼭 그런 느낌이었죠. 그땐 정말 내가 이 정도로 좋아하니까 당연히 결혼해야겠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이야기를 좀더 해달라고 하자 추억이 되살아나서인지, 갑자기 눈물이 한가득 쏟아질 것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 후로는 그를 만났을 때처럼 미친 듯이 사랑해야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조금 바뀌네요. 이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친구처럼 편한 사람이랑 결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요즘 결혼한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물어보는 게 ‘혼자 있고 싶을 땐 어떻게 하냐?’예요. ‘오늘은 나 혼자 있고 싶으니까 집에 갔다 올게’라거나 ‘나 혼자 있고 싶으니 당신은 집에서 좀 나가 있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고…. 또 지금 나는 외롭고 시니컬한데 배우자는 ‘이렇게 내가 있는데 왜 외로워’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데, 상대가 그걸 인정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그게 걱정이에요.”

    벗는 연기, 아직은 부끄러워

    그는 최근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을 다시 한 번 읽었다고 한다.

    “참 좋아하는 소설이에요. 10대 때와 스무 살 때, 그리고 지금 서른에 읽은 느낌이 다 달라요. 훨씬 더 깊고 넓게 이해돼요. 어렸을 땐 슬프고 무섭기만 했어요. 스무 살에 읽을 땐 화가 났고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너무 좋다. 맞아, 이게 인생이고 사랑이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 속에서 하녀 로잘리가 ‘인생은 그렇게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것 같아’라고 한 말이 가슴에 다가와요.”

    김정은은 벗지 않는 배우다. 섹시코드가 대중문화를 잠식한 요즘, 이미지를 바꿀 계획은 없는 것일까.

    “저도 섹시하게 보이고 싶죠. 그런데 벗는 섹시함도 있지만, 연기 속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섹시함도 있지 않을까요? 더구나 지금껏 제게 누드를 찍자거나 벗는 영화를 찍자는 제의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노출 장면이 많은 영화도 없었고요.”

    “‘김정은, 처음으로 벗었다’고 하면 홍보는 확실하게 될 것 같다는데 왜 제안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래서 더 못 하겠어요” 하며 까르르 웃었다.

    배우 김정은

    몽골 도르노트시에 세워진 ‘정은병원’ 개원식에 참석한 김정은.

    “영화가 좋으면, 꼭 필요한 상황이라면 정사(情事)신 연기도 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경험이 없어서인지 벗는 게 꺼림칙해요. 그렇다고 벗는 영화에 나오는 여배우들이 경험이 많아서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요. 영화 ‘사랑니’에서 속옷차림으로 욕실을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부끄러워 자꾸 뒤를 돌아봤더니 감독님은 오히려 그렇게 수줍어하는 모습이 더 느낌이 좋다고 하시더군요.”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빼놓지 않고 직접 꼼꼼하게 읽는 게 작가와 감독에 대한 예의”라고 말하는 김정은. 그동안 밝고 긍정적인 모습만을 보여줘온 그가 요즘은 ‘친절하지 않은 것’에 눈길이 간다고 한다. 미소 뒤에 악녀의 본색을 감춘 팜 파탈이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 친구 성현아의 영향 때문일까. 머지않아 우리가 알던 김정은과는 전혀 다른 김정은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봉사와 나눔의 마음만은 변치 않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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