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헤드헌터들의 ‘40~50대 재취업 전략’ 현장 강의

‘소중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에 목매지 말라

  •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입력2007-10-08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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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드헌터들의 ‘40~50대 재취업 전략’ 현장 강의
    “설마 나는 (퇴출대상이) 아니겠지.”

    대기업 10년차 이상 직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해고 통보는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드는 법. 평생직장이라 여긴 곳을 떠나려니 사막 한가운데로 떨어진 듯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중학생 딸 학원비에 대학생 아들 등록금에, 더군다나 평균수명 80을 바라보는 시대 아닌가.

    굳게 마음먹고 재취업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난관의 연속이다. 현장 업무에서 손놓은 지 오래, 일자리는 없고, 이력서에 면접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고, 나이는 또 왜 그리 따지는지….

    안타까운 얘기지만 취업 전문가들은 “재취업에 왕도(王道)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평소 꾸준히 커리어 관리를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준비한 사람은 거센 해고 바람 앞에도 당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바람을 타고 더 좋은 자리로 옮길 수도 있다. 여기서 꾸준한 커리어 관리란 ‘잘나가고 있는 현재’ 자신의 경력을 분석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해도해도 줄지 않는 일무더기와 연일 계속되는 술자리, 안팎으로 팍팍한 일상에서 커리어까지 챙기기란 쉽지 않은 일. 장삼이사(張三李四)는, 소중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일보다 소중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에 목매달며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라. 분명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커리어 패스(career path)를 구상하는 ‘독한’ 동료들이 있다.



    이직에 관심을

    현역 시절에 미리 이직 준비를 해야 하는 까닭은 퇴사한 뒤에는 너무 늦기 때문이다. 탄탄한 인맥, 어학실력, 적성에 맞는 분야 찾기 등 취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조건은 단기간에 갖추기 힘들다. 그렇다고 퇴사 뒤 몇 년간 어학공부나 인맥 만들기에 매진하기에는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크다. 다음은 인력 컨설팅업체 아데코코리아 손정민 이사의 말이다.

    “첫째, ‘현 시점에서 이직한다면?’이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져봅니다. 둘째, 현 직장에서 도달할 최종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의 경력을 분석합니다. 셋째, 현재 하고 있는 업무와 하고 싶은 업무를 비교해봅니다. 이 세 가지를 고민하면 장기 커리어 패스가 그려질 겁니다.”

    손 이사는 “장기적인 커리어 패스에 도움이 될 만한 재취업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이상적인 재취업 그림이 그려졌다면 거기에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회사 망칠 사람”

    중견 가전회사 중국공장장 김모(46)씨는 이직에 성공한 경우다. 모 대기업 제조부문에서 13년간 일한 김씨는 2000년부터 중국어를 공부해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부분 중국에 제조공장을 설립하는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초 회사생활에 한계를 느껴 퇴사했지만 두 달 만에 재취업했다. 제조 업무에 훤하고 중국어에 능통한 그만큼 중국공장장 자리에 적합한 지원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 외의 관심분야를 갖는 것도 필요하다. 전직(轉職) 컨설팅업체 DBM코리아의 강혜숙 수석 컨설턴트는 “현재 업무에만 매몰되면 재취업의 문이 좁아진다. 다른 분야 하나쯤을 ‘부전공’으로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IT와 금융분야 종사자라면 외국어 또는 취업에 활용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따두는 게 좋다. IT 분야 출신은 동종업계 관리자급 외에는 적합한 자리가 없고, 금융권 간부급 출신 역시 저축은행·보험회사 임원급으로 자리가 제한돼 있다.

    회사는 들어가는 것보다 어떻게 나오느냐가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회사가 경력자를 채용할 때 평판조회를 한다. 평판조회란 지원자가 근무하던 직장의 상사나 동료를 통해 능력, 근무태도, 대인관계 등을 알아보는 과정. DBM코리아 김홍신 컨설턴트는 “지원자 2명의 조건이 비슷하다면 보통 평판조회 결과가 좋은 쪽을 채용한다”며 평소 이미지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대기업의 신모 부장은 지시받은 업무는 협력업체를 구워삶아서라도 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고졸 출신으로는 드물게 부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그 후 임원 승진에서 탈락하자 회사를 나와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다. 그러나 그는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그가 예전에 쪼아댔던 협력업체 직원이 그 회사 상무로 있었던 것.

    100만원 때문에 평판조회에 오점을 남겨 재취업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 외국계 식품회사에서 근무하던 이모씨는 평소 업무 능력과 대인관계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회사를 나오면서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부서장과 퇴직금에 대한 논의를 하던 중 “100만원을 더 내놓으라”며 옥신각신한 것. 그를 채용하려던 인사 담당자는 “회사 망칠 사람”이라는 전 직장 상사의 이야기를 듣고 꺼림칙해 다른 지원자를 선택했다.

    반대로 전 직장에 좋은 인상을 남기면 삼킨 미역국도 도로 뱉어낼 수 있다. 박영철(46)씨는 회사 경영사정이 어려워져 8년 간 다니던 회사를 지난해 그만뒀다. 1년 간 자영업을 하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자 다시 구직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주)신화씨에스 영업관리직에 지원해 면접을 보게 됐으나 나이와 경력이 불일치한다는 이유로 ‘고려 대상’으로 분류됐다.

    “나, 회사 관뒀다” 광고하라

    그러나 회사 인사 담당자는 박씨의 전 직장에 평판조회를 한 뒤 그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전 상사가 “퇴사할 때까지 업무 인수·인계에 최선을 다한 성실한 인재”라며 침이 마르도록 박씨를 칭찬했기 때문. 박씨는 “회사를 나온 뒤에도 직원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시간 날 때 찾아가서 차도 마셨다”며 “의도적으로 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퇴사를 앞뒀거나 퇴사한 이들은 괜한 위축감에 직장 그만둔 사실을 쉬쉬한다. 친지, 친구에게 퇴사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주로 산이나 집에서 소일하곤 한다. 그러나 DBM코리아 강혜숙 수석 컨설턴트는 “‘나, 회사 그만뒀다’고 사방팔방 광고하고 다녀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생활용품 유통기업인 (주)미래스코 영업관리본부장 소행구(40)씨는 소득 없이 반 년 동안 계속되던 구직활동을 인맥을 활용해 단번에 끝냈다. 위생용품 제조업체 영업기획부에 근무하던 소씨는 지난해 건강이 나빠져 퇴사했다. 반 년간 치료를 받은 뒤 재취업을 위해 구직활동에 뛰어든 소씨. 그러나 나이 제한으로 면접조차 보기 힘들었고, 어쩌다 면접을 봐도 번번이 실패했다. 딱지 맞기를 15번에 이르자 그는 마음을 바꿔 먹었다. 창피하다는 생각 반, 스스로 재취업할 수 있다는 생각 반으로 숨겨왔던 실직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시작한 것.

    “친목동호회, 라이언스클럽, 향우회, ROTC 동문회 등의 모임에서 실직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랬더니 여러 분이 관심을 보였고, 몇 분은 함께 일하자고 제의하기도 했어요. 진작 네트워킹을 활용했으면 재취업이 빨랐을 텐데….”

    한 대기업의 재취업지원센터 관계자는 “내일, 모레면 퇴사할 사람도 거래하는 중소기업체 사장에게 잘 근무하고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그러나 ‘그만둔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현명하다. 쉽지 않지만 일단 사실을 알리면 중소기업체 사장들이 먼저 손을 내민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시장은 열리게 돼 있다”고 말한다.

    취업 전문가에 따르면 재취업의 70%는 인맥을 통해 이뤄진다. 경력직의 경우 구인광고가 나갔을 때는 이미 입사자가 정해졌을 확률이 높다.

    취업 준비는 여럿이 함께 할수록 유리하다. 양질의 구직정보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고, 심리적으로도 위안이 된다. 첫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 졸업자들은 관심 분야가 같은 구직자끼리 모임을 만들어 업계정보, 회사정보를 공유하고 모의면접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재취업 준비자는 대개 혼자서 구직활동을 한다. 퇴사 사실을 알려 가족 등 주변에 염려를 끼치기보다 스스로 조용히 해결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전직 컨설팅업체 라이트매니지먼트의 이석기 수석 컨설턴트는 “재취업자들도 관심 분야별로 취업 준비 모임을 만들면 더 효율적인 구직활동을 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군인과 공무원 출신 구직자들로 이뤄진 모임은 꽤 있다. 가령 국방부 전역 장교들은 지역·연령별로 잡 카페(job cafe)를 구성해 정보를 공유한다. 대학생들의 취업 스터디 모임과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서비스, 제조, IT 등 분야별로 매주 한 번 모임을 열어 각자 수집한 취업정보, 취업시장 동향, 구직 활동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다.

    정보는 말로 주면 되로 받는다

    외국계 기업도 재취업이 목적은 아니지만 분야별 모임이 활성화된 편이다. 전자, IT, 소비재, 컨설팅 등 분야별 오프라인 모임이 있어 동종업계 지인을 통해 참가할 수 있다. 미국상공회의소, 유럽상공회의소도 회원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모임을 주관한다. 외국계 기업은 세미나를 공개하므로 관심 있는 기업에 접근할 기회도 많다. 정기적으로 이런 모임을 찾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맥이 만들어지고, 업계 소식에도 밝아진다. 어떤 회사 어느 조직이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지, 회사의 비전은 어떤지, 어떤 직무에 자리가 났는지를 속속들이 파악하면 오래지 않아 재취업의 기회가 찾아온다.

    헤드헌터들의 ‘40~50대 재취업 전략’ 현장 강의

    외국계 기업은 분야별 모임이 활성화돼 업계 정보 수집이 쉽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도 분야별 온·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어 업계 동향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문제는 국내 대기업, 중소기업 출신 구직자들이다. 아데코코리아 손정민 이사는 “국내 기업 출신 구직자들은 재취업을 하기 위해 신문이나 인터넷을 뒤지는 경우가 많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고도 정보를 공유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은 재직할 때 인맥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얘기”라며 안타까워했다.

    국내 기업은 정보 유출을 우려해 경쟁 기업과 교류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원래 친분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동종업계 사람을 만날 일은 거의 없다. 공유하는 정보가 없으니 구인광고에 의존하게 되고, 비효율적인 재취업의 늪에 빠지는 과정을 밟게 되는 것. 국내 기업 출신들도 재직시 인맥을 활용하거나 온라인 모임을 통해 업계 동향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갑작스러운 실직은 생활과 마음의 안정을 뒤흔든다. 월급이 끊긴 상태가 지속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렇다고 충분한 조사 없이 무작정 이직하면 또다시 실직의 늪에 빠질 위험이 크다. 헤드헌팅 전문업체 엔터웨이의 박운영 부사장은 “실직 시기를 잘 활용하면 오히려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취업은 더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최소 3개월은 구직활동에 전념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고민해야 할 부분은 적성이다. 바쁜 직장생활에 치여 잊고 지낸 자신의 장단점, 적성, 성격을 찬찬히 돌아보면 의외의 길이 열리기도 한다.

    조급하면 망한다

    (주)동흥산업개발 개발2팀 김동인(50) 부장은 적성검사를 통해 뒤늦게 적성에 딱 맞는 분야를 찾았다. 김씨는 23년간 일한 전기·전자 회사에서 사업 진행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다 퇴사했다. 올해 초 혼자 구직활동을 하다 지쳐 찾은 노사공동재취업지원센터에서 선천적 성향진단검사(MBTI)를 받은 김씨는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할 기회를 갖는다.

    “내게 어떤 업무가 맞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스스로를 진단하고 나니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각오가 생기더군요.”

    그는 전 직장에서 제조 업무를 맡았지만 인도네시아 공장 신축을 총괄하면서 어깨너머로 건축 분야의 지식도 쌓았다. 그래서 건축에 대한 관심, 그리고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으로 건설회사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건설관련 자격증 하나 없던 그는 ‘2007 마스터플랜’이라는 제목의 A4지 11쪽짜리 제안서를 내밀고 현재의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는 “제조업 분야 회사 여러 곳에서 채용통보를 받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픈 욕심에 분야를 바꿨다. 이제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된 기분이다”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전 직장에서 불만족스럽던 부분을 분석하는 과정도 유용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는가. 연봉, 분위기, 업무 성격, 안정성…. 중요한 순으로 조건을 나열한 뒤 거기에 맞는 곳부터 두드리면 맞춤식 재취업의 문이 열린다.

    이모(40·여)씨는 10년간 중소기업 2곳을 다니다 지난해 초 퇴사했다. 두 회사 모두 기대한 만큼의 만족감을 주진 못했다. 그는 “차분히 생각해보니 내 불만은 ‘일한 만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절망감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판단 아래 다시 구직활동에 뛰어든 뒤에는 회사 분위기, 그리고 직원에게 얼마만큼의 권한을 주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반 년 뒤 그는 이전 직장보다 연봉은 적지만 이 두 가지 조건에 근접한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씨는 “요즘은 회사에 기여한다는 기분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전 직장과 봉급 수준도 비슷해졌다”며 뿌듯해했다.

    재취업 컨설팅업계에서 재취업에 성공한 50대 이상 퇴직자는 ‘천연기념물’로 불린다. 그만큼 50대 재취업이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나이 많은 구직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건 나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나이 많은 구직자는 관리가 아닌 현장 업무를 꺼리고, 열정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하늘 무너져도 달아날 구멍 있다

    전직 지원업체 JM커리어의 한 컨설턴트는 “간부의 기능은 일반적으로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업무를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외국계 기업에서는 직급이 높아도 업무를 직접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지긋하더라도 외국어, 컴퓨터 활용 능력 등을 갖춰 충분히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 얼마든지 이직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모씨는 외국어 실력과 열정으로 5년 전 50대 초반의 나이에 성공적으로 이직했다. 김씨는 국내 대기업을 거쳐 외국계 가전제품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다가 조직이 없어지면서 해고됐다. 전 직장에서 억대의 위로금을 받아 생활에 지장은 없었다. 하지만 들어오는 돈 없이 30년 이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다. 일을 더 하고 싶은 열망도 강했다. 이직을 결심한 김씨는 재취업센터를 찾아 적성검사를 받았고, 도전적인 일이 잘 맞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 년 정도 구직활동을 하던 중 조그마한 외국계 출판회사에서 브랜치 매니저를 찾는다는 광고를 발견했다. 전임자가 저조한 실적으로 회사를 그만둬, 미국 본사에서도 후임자를 까다롭게 물색하고 있었다. 김씨는 분야는 다르지만 외국계 회사 세일즈를 담당한 경험과 영어 실력을 앞세워 미국 시카고 본사까지 찾아가 관계자들을 설득했고, 열정을 높게 산 관계자는 결국 그를 채용했다.

    다단계를 조심하라

    손정민 이사는 “나이 지긋한 분들은 몇 번 취업문을 두드리다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기업들이 나이에 까다로운 데다 임원급 자리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계 기업은 나이에 관대한 편이다. 외국어 구사가 가능한 고령자는 외국계 회사 임원급 자리를 공략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구직 활동은 규칙적으로 하는 게 좋다. 직장생활 하듯 숨 돌릴 틈 없이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여유를 즐기되 집을 나서는 시각과 구직활동을 하는 장소를 정해두고 움직이라는 뜻이다. 흐트러지지 않은 생활을 하다 보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가족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생산적인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노사공동재취업센터 관계자는 “실직 후에 갈등을 겪는 가족이 많다. 실직해 집에 오랜 시간 머무르면 부부끼리 부딪치기도 하고 자녀와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노는 가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진다”며 가족에게 실직 상태를 충분히 이해시키라고 당부했다.

    흔히 이직할 자리를 찾을 때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일단 채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면 연봉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게 좋다. 연봉협상에 어떻게 임하느냐에 따라 연봉이 2배도, 절반도 될 수 있다.

    연봉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려면 미리 회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최우선이다. 지인을 통해 해당 사원을 접촉하거나 인터넷 사이트, 헤드헌터사 등을 통해 연봉과 후생 수준을 알아봐야 한다. 연봉에서 회사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차량, 학자금, 자기계발 비용 등을 공략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대기업 전직지원센터 관계자는 “인사담당자에게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라. 전 직장에서 받던 급여와 복지수준을 정확히 공개하고, 그 수준에 맞추도록 노력하라”고 말했다.

    구직자들 가운데는 취업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바깥 물정에 어두운 전직 군인들은 십중팔구 취업사기에 걸려든다고 한다. 금전 여유가 없는 퇴직자도 하루바삐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사기의 덫에 걸려들기 쉽다. 취업 사기의 99%는 다단계라고 보면 된다.

    “재취업센터에서 충분한 사전 교육을 받고도 당하는 구직자가 많습니다. 국방부에서 중령으로 퇴직한 47세 구직자는 구직활동 2개월 만에 취업에 성공했지만 약 1000만원을 날리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정수기 다단계 판매회사 관리자 자리였어요.”

    이직한 뒤가 더 중요하다

    아데코코리아 손정민 이사가 들려준 사례다.

    인터넷이나 신문 구인광고에 급여수준이 터무니없이 높거나 ‘관리직’이라는 표현이 있다면 일단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 또 경력과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도 면접 때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손정민 이사는 “한번 취업사기를 당하면 자신감을 잃어 구직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 사기의 전형에 대해 숙지하고, 물건 살 것을 권유하면 즉시 회사를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새 직장에 둥지를 틀었다면 그곳에 적응하는 데 100% 전념해야 한다. 전 직장과 업무환경이나 근무조건을 비교하며 불만을 품는 것은 금물이다. 새 직장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 다시 실직 상태에 놓이면 이곳저곳 전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모 대기업 전직지원센터 관계자의 말이다.

    “한 기업에 오래 다니다 보면 그 문화에 젖게 됩니다. 이직한 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직원들과 갈등을 빚게 되죠. 권위적인 분위기의 회사에 다니던 퇴직자가 외국계 기업에서도 강압적으로 지시를 내리면 직원들의 반발을 사기 십상이죠.”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할 때는 중소기업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라이트매니지먼트 이석기 수석 컨설턴트는 “대기업에서 오래 근무한 이들은 중소기업에서 당연히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전한다.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영 특성과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는 이가 많아요.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조직과 업무방식이 다소 주먹구구식입니다. 또 오너가 경영을 맡기 때문에 임원급으로 이직한 경우 오너와 마찰을 빚기도 하죠. 그렇다고 중소기업을 우습게 보면 안 돼요. 중소기업의 업무 방식과 특성을 존중해야 텃세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특성도 확연히 다르다. 가령 국내 기업은 여러 업무에 욕심을 부릴수록 인정받지만, 외국계 기업은 그렇지 않다. 정해진 영역을 얼마나 완벽하게 해내느냐가 평가기준이다. 외국계 기업에서 오지랖 넓은 것을 자랑하며 참견을 일삼으면 타 부서 직원들과 충돌하게 마련이다.

    또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려면 일정 수준의 영어실력은 갖춰놔야 한다. 국내 대기업에서 경리업무를 보던 임모씨는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해 외국계 기업 회계매니저로 자리를 옮겼다. 직급, 연봉 모두 만족스러운 조건으로 들어갔지만 그는 1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전 직장과 달리 순수하게 회계 업무만 주어진 탓에 커다란 성취감을 얻을 수 없었고, 본사 직원과 영어로 통화할 때마다 두려울 만큼 스트레스가 컸기 때문.

    전문가들은 제2의 직장에서 성공하려면 “단기간에 업무를 파악하겠다는 자세로 덤비라”고 충고한다. 팩시밀리를 만드는 중소기업 공장장으로 일하는 이모씨는 3개월 동안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열정을 보인 끝에 연봉을 단기간에 3배 이상으로 올렸고 상무로 승진했다.

    임원급의 경우 관리 영역에 대한 예습을 하는 것도 좋다. DBM코리아 강혜숙 수석 컨설턴트는 “영업을 오래 맡던 분이 중견기업 회계분야 임원으로 가게 됐다. 그는 업무 보고를 받는 데 지장이 없도록 열흘 동안 회계 개인과외를 받았다. 또 다른 임원은 제조에서 마케팅으로 분야를 바꿔서 갔는데, 실무자와 강사를 곁에 두고 공부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물론 두 사람 다 짧은 기간에 새 직장에서 신임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취업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들려준 얘기가 있다.

    “아직 ‘끈’이 안 떨어진 재직시에 경력 관리를 꾸준히 하는 게 최선이다. 그게 안 된 상태에서 실직했다면 무조건 1년 안에 취업하겠다는 생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업의 늪에 빠져 등산으로 소일하거나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현재 40, 50대 실업자는 21만1000명. 그러나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중장년층 취업시장은 매우 열악하다. 그들보다 한국 중장년층의 능력이 못해서가 아니다. 나이에 대한 편견과 경로사상이 묘하게 맞물려 형성된 ‘노인은 쉬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부족한 일자리, 미비한 제도 탓이다.

    그러나 철저한 경력관리, 자존심을 버린 유연한 자세로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연 40, 50대도 많다. 어려워도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어디를 어떻게 두드리냐고? 일단 노사공동재취업지원센터, 전국 고용지원센터, 지자체 취업정보은행, 기업 전직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려보자. 전문가로부터 친절하게 무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늘어난 수명, 짧아진 정년의 ‘인생 이모작’ 시대. 이제 재취업은 누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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