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한 학기 등록금만 1000만원! ‘귀족학교’ 로스쿨, 예고된 혼란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07-10-08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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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졸 학력으로 학원식 로스쿨 나와 대통령 된 트루먼

    미국은 학부에 법학 과정 없어 대학이 학원식 로스쿨 흡수

    합격자 ‘0’ 기록한 일본 4개 로스쿨, 7개 로스쿨은 1명만 합격

    非법학 전공 합격자는 왜 전문 변호사가 될 수 없나?

    로스쿨 나눠 먹기가 초래하는 과잉투자, 누가 책임지나



    고려대가 서울대를, 연세대가 고려대를 잡을 수 있다

    로스쿨, 사시 합격자 나이 올려 ‘사시 낭인’ 양산

    고시 공부용 자습실 된 일본 로스쿨

    전관예우 없애려면 대법원 권력부터 개혁해야

    법률 기술자만 양성.… 사회 정의 지키는 법조인은 누가 키우나

    로스쿨제에서 제2의 노무현은 나올 수 없다
     


    한 학기 등록금만 1000만원! ‘귀족학교’ 로스쿨, 예고된 혼란

    로스쿨 도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법학 교수들의 시위.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1884~1972)은 아주 운이 좋았던 대통령으로 꼽힌다. 그는 1896년 이후 지금까지 대학 졸업장 없이 미국 대통령이 된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미주리주에 사는 가난한 농부의 2남1녀 중 맏이로 태어난 트루먼은 1901년 인디펜던스 고등학교(지금은 윌리엄 크리스만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이것이 그의 최종 학력이다.

    어릴 적 트루먼의 꿈은 ‘웨스트포인트(육사)’ 입학이었다고 한다. 웨스트포인트는 학비를 내지 않아도 되므로 트루먼처럼 가난한 수재들은 대개 이 학교 진학을 노렸다. 그러나 트루먼은 근시여서 웨스트포인트에 응시할 수 없었다. 가난하던 그는 다른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철길 옆에 있는 캠프에서 숙식하며 기차가 지나가는 시각을 기록하는 일과 상점 점원 등으로 일하다 21세 때인 1905년 미주리 주방위군에 자진 입대해 1911년까지 복무했다.

    1916년 미국은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반발해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결정했는데 1917년, 33세의 트루먼은 다시 주방위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포트실’ 훈련소로 입소해 그의 운명을 바꾸는 친구 제임스 펜더가스트를 만났다.

    펜더가스트의 후원

    1919년 전쟁이 끝나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35세라는 늦은 나이에 미주리주의 캔사스시티 로스쿨(지금은 미주리대학의 캔사스시티 로스쿨이 되었음)을 2년간 다니고 ‘법률 학위(law degree)’를 취득했다. 이 학위가 그의 운명을 띄우는 ‘날개’가 될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로스쿨을 나왔지만 트루먼은 장사를 하다 실패하는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리고 1922년 포트실 훈련소에서 함께 지낸 제임스 펜더가스트를 통해 그의 숙부이자 캔사스시티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인 톰 펜더가스트를 만났다.

    트루먼의 자질을 알아본 톰 펜더가스트는 트루먼이 잭슨카운티의 동부지역을 담당하는 법원 판사로 선출되도록 도와주었다. 시골 판사가 된 트루먼은 1924년 잭슨카운티 동부지역 판사 선거에 떨어지는 고통을 맛보았으나 1926년엔 한 단계 올라 그 지역의 재판장으로 선출되었다.

    1934년 톰 펜더가스트는 트루먼을 상원의원 선거에 도전하게 했는데, 이 선거에 당선됨으로써 트루먼은 일약 시골(미주리주)에서 중앙(워싱턴DC)으로 진출했다. 잘나가던 트루먼은 1940년 위기에 봉착했다. 후견인 펜더가스트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

    그러나 1940년 상원 선거에서 아슬아슬한 표차로 당선되었다. 이후 트루먼 상원의원은 미군 전력과 군수산업을 육성하는 일에 노력했다. 1941년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언하는데 이때부터 트루먼 의원은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정치인 해니건의 지원을 받았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트루먼은 해니건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줬는데 1944년 해니건이 아주 큰 선물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해니건은 제2차 세계대전 덕분에 3연임 선거에 출마한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해, 민주당의 유력한 부통령후보로 거론되던 헨리 월리스와, 훗날 35대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 전 주영대사를 낙마시키고 트루먼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도록 한 것.

    한 학기 등록금만 1000만원! ‘귀족학교’ 로스쿨, 예고된 혼란

    서울대 법대 앞에 있는 ‘정의의 종’. 로스쿨제가 도입되면 과연 정의를 세우기 위해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까.

    1944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은 하버드 대학을 나온 ‘엘리트 중의 엘리트’ 루스벨트와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진 트루먼을 러닝메이트로 출마시켜 승리했다. 두 사람은 1945년 1월20일 정·부통령에 취임했는데, 그로부터 82일 후인 4월12일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했다.

    트루먼은 자동으로 82일이 모자라는 4년 임기의 대통령에 오르게 된 것이다. 트루먼의 행운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을 승계한 때로부터 한 달이 못된 1945년 5월7일 독일이 무조건 항복을 했다. 다시 3개월 후인 8월15일엔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그는 유럽과 아·태 지역에서 일어난 거대한 전쟁에서 모두 항복을 받아낸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 되었다.

    로스쿨 학원 나온 시골 판사 출신 행운아

    여세를 몰아 트루먼은 1948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해 연임하게 되었다. 그가 재선 대통령을 하던 1950년 한반도에서 6·25전쟁이 일어났다. 독실한 침례교 신자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그는 즉각 일본에서 군정을 하고 있던 맥아더 극동군 사령관에게 북한군을 막게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트루먼 대통령은 ‘거물’ 맥아더를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지명해 연합국의 대표 자격으로 일본의 항복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었다. 미 의회도 맥아더를 죽을 때까지 별 다섯 개를 달 수 있는 ‘종신 원수’로 결의하며 후원했었다.

    트루먼이 연임 선거에 나섰을 때 공화당은 맥아더를 대통령후보로 추대하려 했으나, ‘종신 원수’는 “나는 군복을 입고 있어야 한다”는 명언을 날리며 거절한 적이 있다.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북진할 때만 해도 맥아더의 기세는 트루먼을 덮을 듯했다. 그러나 중국군의 개입으로 다시 서울을 내주고 후방으로 철수한(1·4후퇴) 1951년 이후, 두 사람 관계는 역전되었다. ‘종신 원수’는 1·4후퇴를 당한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이 때문에 원자폭탄을 만주에 떨어뜨리자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반공주의가 넘실되던 미국에서 큰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냉철한 사람들은 1948년 소련이 원폭 개발에 성공한 것에 주목했다. 이들은 만주 지역에 원폭을 투하하는 것은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싸우는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트루먼은 이러한 의견을 수용해 원폭 투하를 주장하는 종신 원수를 극동군 사령관에서 해임하고, 리지웨이 육군 대장을 후임자로 임명했다.

    맥아더는 1·4후퇴를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은 ‘미주리 촌놈’에게 분노했다. 그러나 절제력을 갖춘 신사였기에 미 의회에서 ‘노장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웨스트포인트 교가를 인용한 고별 연설을 하고 스스로 퇴역했다.

    맥아더라는 영웅을 제압한 트루먼은 임기를 무사히 채우고 아이젠하워에게 다음 대통령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러고도 30년을 더 살아 88세에 타계했는데, 미 해군은 트루먼을 기려 니미츠급 핵항모 제8번함을 ‘해리 트루먼’함으로 명명했다. 고졸 출신으로 ‘학원식’ 로스쿨을 나온 트루먼은 미국이 기억해야 할 영웅으로 남았다.

    하버드대, 최초 로스쿨 설치

    해리 트루먼 이야기를 꺼낸 것은 로스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트루먼이 캔사스시티 로스쿨을 나오지 못했다면 그는 결코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루먼의 운명은 물론이고 세계 역사까지 바꾸게 한 로스쿨이 지금 한국에서도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한국의 로스쿨은 트루먼과 같은 행운아를 배출하는 ‘관문’이 될 것인가?

    미국 정치사에서 트루먼보다 더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링컨 대통령도 변호사 출신이다. 그러나 링컨은 로스쿨은커녕 학교를 다닌 경력도 없다. 그는 독학으로 일리노이주에서 치러진 변호사시험에 합격(1836년)해 변호사가 되었고, 주 의원과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16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되었다. 왜 링컨은 로스쿨을 거치지 않고도 변호사가 될 수 있었는가?

    로스쿨은 오랫동안 미국에만 있던 제도다. 미국에 이어 캐나다가 영국식 법학 교육을 가미한 로스쿨을 운영해왔고, 최근 일본이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로스쿨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이지 않은 교육기관이다. ‘영미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국은, 미국과 유사한 법률 시스템을 갖고 있으나 로스쿨 제도는 없다. 영국에서는 각 대학의 법학과에서 법률을 가르친다.

    영국에서 독립하기 전의 미국에서는 ‘도제’ 형식으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습을 하던 젊은이가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변호사가 되었다. 이때의 변호사는 자격증을 갖고 있느냐보다 법정에서 얼마나 변론을 잘하는가로 판별되었다.

    한 학기 등록금만 1000만원! ‘귀족학교’ 로스쿨, 예고된 혼란

    고졸 학력으로 ‘학원식’ 로스쿨을 나와 미국 대통령이 된 해리 트루먼.

    중앙대 법대 이상돈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의 로스쿨은 1773년 코네티컷 주의 태핑 리브라는 변호사가 로스쿨 간판을 걸고 변호사 지망생에게 법률을 가르친 것이 효시라고 한다. 이때의 로스쿨은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학교 기관이 아니라, 어깨너머로 배우던 것을 보다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한 ‘학원’내지는 ‘과외 교습소’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은 이곳을 다니지 않고 독학으로 공부해 변호사가 됐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링컨이다.

    운전면허증처럼, 학원에서 배웠든 혼자 배웠든 시험에 합격하면 발급되던 것이 18세기의 미국 변호사 자격증이다. 미국 대학의 효시인 하버드대는 무원칙하게 진행되는 변호사 양성에 제동을 걸기 위해 1817년 로스쿨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미국 대학에서 법률을 가르친 최초의 경우였다.

    2차대전 이후 지금의 로스쿨 정착

    1870년 하버드대 로스쿨 학장이 된 크리스토프 랭들은, 로스쿨은 대학원급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이를 현실화했다. 이에 따라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사람이 다른 대학의 로스쿨 교수가 되면서, 미국에서는 대학원급 로스쿨 제도가 보급됐다.

    그러나 학원식 로스쿨을 없앨 순 없었으므로 100여 년간(1817~1921) 미국에서는 대학이 운영하는 로스쿨과 학원형 로스쿨이 병존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1년 미국의 변호사협회는 변호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학부 2년 이상을 수학한 자만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고, 수업 연한이 3년 이상인 로스쿨만 인증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각 대학은 학원제 로스쿨을 흡수해 대학 소속의 로스쿨로 만들거나, 따로 로스쿨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해리 트루먼은 미국 변호사협회의 결정으로 학원식 로스쿨이 없어지기 직전 학원식 로스쿨을 다니고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사람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학부 4년을 마친 사람만 입학하게 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대학원급 로스쿨 제도를 정착시켰다. 미국의 대학은 법학 강의를 하지 않고 출범했다가, 학원식으로 운영되는 로스쿨을 받아들여 지금의 로스쿨 제도를 만든 것이다.

    미국은 변호사의 몸값이 싼 나라다. 변호사가 많이 배출되다 보니 미국 변호사들은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명문 대학의 로스쿨을 나와 연방판사 밑에서 수습을 한 변호사는 좋은 로펌에 입사해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변호사는 낮은 수입에 만족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수준의 변호사가 존재하다 보니 미국인들은 자기의 지급 능력에 맞는 변호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달랐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처음부터 국가와 대학이 법조인을 양성했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생긴 도쿄대학(동경제국대학의 전신)과 일제 강점기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대학인 경성제국대학은, 법문학부 안에 법과를 두었다.

    한국과 일본의 변호사는 희소성 덕분인지 능력에 관계없이 대개 수입이 많았다. ‘지갑이 얇은’ 일반인은 송사(訟事)에 직면해도 변호사의 조력을 받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유사한 법문화를 유지해온 일본이 4년 전 로스쿨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에서는 경단련(經團連)이 로스쿨 도입을 주장했다고 한다.

    일본은 인구 비율로 따져보면 한국보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더 적다. 글로벌화로 인해 국제거래가 증가하자 일본 기업들은 국제거래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변호사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변호사의 몸값은 비싸고 국제거래나 기업 경영에 정통한 변호사는 드물었다. 경단련은 일본 기업이 필요로 하는 변호사를 많이 배출하는 방법으로 로쿨제 도입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국도 비슷한 이유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제를 도입한 경우다. 한국의 법률체계는 절차를 매우 중요시하므로 절차에 서툰 일반인은 혼자 재판에 임할 수 없다.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거나 빠뜨린 절차가 있으면 패소(敗訴)와 같은 뜻으로 해석되는 ‘각하’를 당할 수 있어, 법 전문가인 변호사를 찾아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순간 의뢰인은 변호사에게 500만원 정도를 지급해야 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소송 금액이 크거나 복잡하면 수임료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소송 과정에서 들어가는 제비용의 지출도 만만치 않다. 때에 따라서는 승소시 배상 금액의 20~30%를 ‘성공보수’로 준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변호사를 쓸 수가 없다.

    재판에서, 특히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형사재판에서 변호사를 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양지차가 난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란 말이 생겨났다.

    한국 기업들도 비슷한 사정에 놓였다. 국제거래를 뒷받침할 변호사가 필요하게 됐는데 경영이나 국제거래에 정통한 변호사는 극히 드물었다. 이런 까닭에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정책기획수석과 사회복지수석을 하며 세계화에 대한 준비를 강조했던 박세일 전 서울법대 교수는 일찌감치 로스쿨제 도입을 주장했다.

    전관예우 있는 한국, 전혀 없는 일본

    한 학기 등록금만 1000만원! ‘귀족학교’ 로스쿨, 예고된 혼란

    로스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열린 로스쿨 발전방향 토론회.

    한국 사법계의 대표적인 고질로 지목돼온 것이 ‘전관예우(前官禮遇)’다. 판검사로 재직하고 나와 개업한 변호사는 2~3년 동안 검찰이나 법원에서 예우해주는 덕분에 높은 승소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전관 출신 변호사는 인기가 치솟아 많은 수임료를 벌 수 있었다. 법조계에서는 “전관은 3년 사이에 평생 벌 돈의 절반을 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전관예우의 병폐를 타파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로스쿨제 도입이 거론됐다. 로스쿨에서 변호사를 ‘대량생산’하면 전관예우가 사라질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전관예우는 우리와 법문화가 거의 흡사한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일본에는 전관예우 문화가 없을까.

    첫째, 일본에서는 법복을 벗고 나온 ‘전(前) 검사’나 ‘전 판사’가 적다. 일본의 판·검사는 인사상 불이익을 받아도 대부분 정년 때까지 근무한다. 후배가 앞질러 진급해도 개의치 않고 자기 일에만 열중하는 것이 일본의 문화인지라, “(후배보다 뒤처졌기 때문에) 인사 숨통을 터주기 위해 용퇴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일본에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하는 판·검사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는 경우가 드물다. 개업을 해도 그가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고 찾아오는 의뢰인도 적다. 일본에서는 ‘중도에 퇴직한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어 나온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전관 출신 변호사를 고용하면 재판에서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일본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로스쿨로 전관예우를 없애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전관예우는 다른 방법으로 없애야 한다.

    변호사가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로 많이 거론된 것이 법조인 사회의 학연과 동기 의식이다. 한국의 사법시험은 서울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의 독무대다. ‘표1’은 법무부가 공개한 지난 5년간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출신 대학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출신 대학원은 따지지 않고 대학만으로 분류).

    법조계 장악한 서울대 출신

    지난 5년간 사시에 합격한 사람은 4908명인데, 이 기간 서울대 출신 합격자는 전체 합격자의 34.3%인 1685명이다. 고려대 출신은 17.0%인 832명이고, 연세대 졸업자는 11.2%인 548명이다.

    SKY로 불리는 세 대학 출신을 합산하면 62.5%인 3065명에 이른다. 간단히 정리하면 서울대 출신이 전체 사시 합격자의 3분의 1이고,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도 전체 합격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현재 법학과를 설치한 대학은 94개인데, 세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91개 대학 출신이 나머지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이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SKY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합격자를 내다 보니 법조계는 서울대를 중심으로 굴러간다. 변호사들이 법정에서의 변론과 준비서면 작성을 통해 일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일부 변호사는 밤에 ‘더욱 중요한 일’을 한다.

    판·검사와 어울리는 자리를 갖고 그 자리에서 사건 이야기를 터놓고 하는 경우가 있다. 대전과 의정부에서 벌어진 법조비리 사건이 바로 그런 경우인데, 이러한 만남은 비밀스러운 것이기에 학연이나 지연 같은 연줄이 있어야 만들어진다. 과거 ‘마당발’ 변호사는 ‘전화 한 통’으로 의뢰인의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다. 학연이 넓은 SKY대 출신 변호사를 고용한 의뢰인은 수사나 재판을 받을 때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동기의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동기의식은 같은 대학을 다녔다는 것뿐만 아니라 같은해 사법연수원을 다닌 것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2006년 사시 합격자는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인데도 이미 ‘연수원 48기’라는 기수가 부여돼 있다. 이 기수가 학연만큼이나 강한 힘을 발휘한다.

    서울대 출신이 법조계를 장악한 것이나 서울대로의 지나친 인재 편중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은 광대한 나라인지라 법원이나 검찰이 특정 대학 출신을 중심으로 굴러갈 수가 없다. 반면 작은 나라인 한국과 일본에서는 특정 대학 출신이 법원과 검찰을 장악하기 쉽다. 한국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일본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 도쿄(東京)대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사법시험에서는 도쿄대 출신이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하지 않는다. 지난해 일본에서는 로스쿨 출신자를 위한 사법시험과 함께 과거와 같은 형태의 사법시험이 치러졌는데, 과거형 사법시험에서 1등을 한 대학은 228명을 합격시킨 와세다(早稻田)대학이다.

    로스쿨제가 대학 서열 바꾼다

    한 학기 등록금만 1000만원! ‘귀족학교’ 로스쿨, 예고된 혼란

    트루먼에 비교되는 노무현 대통령. 두 사람은 고졸 출신의 변호사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로스쿨제는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SKY대 출신이 사법시험 합격을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하는 측면도 있다. 로스쿨제를 도입하면 이런 문제가 사라질까. 로스쿨 졸업자가 처음으로 사법시험을 본 지난해 일본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로스쿨 도입 이전에는 주로 5위를 기록하던 추오대가 131명을 합격시켜 1위,도쿄대가 120명으로 2위, 게이오대는 104명으로 3위를 차지했다. 추오대가 가장 많은 합격자를 낸 이유는 입학정원이 240명으로 가장 많은 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추오대는 240명 가운데 131명이 합격해 합격률은 55%다.

    도쿄대는 173명의 입학정원 가운데 71%인 120명이 합격했고, 게이오대는 166명 가운데 63%인 104명이 합격했다.

    로스쿨제를 도입하면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법조계의 서울대 독식을 깬다는 점에서 로스쿨제 도입은 긍정적일 수 있다.

    대학가의 사시 열풍

    서울대의 인재 독식이 낳은 또 하나의 문제로 서울대 비(非)법대생에게 불고 있는 사시 열풍이 거론됐다. ‘표1’에서처럼 지난 5년간 서울대 출신의 평균 사시 합격자 수는 337명인데 현재 서울대 법대 입학정원은 205명이다. 법대 입학정원보다 122명 많은 합격자가 서울대에서 나온 것은 비법대생이 대거 사시에 합격했다는 뜻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시에 합격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측은 매년 비법대 출신자 가운데 170여 명이 사법시험에 합격한다고 보고 있다. 비법학 전공 사시 합격자 170명은 서울대 다음으로 많은 사시 합격자를 배출하는 고려대 출신보다 많은 숫자다.

    서울대 인문대와 사회과학대에서는 많은 학생이 따로 사시 준비를 한다. 이들은 고시학원을 다니면서 사시를 준비하는데 그로 인해 이들이 적을 둔 학과의 수업은 파행을 겪는다. 서울대 앞 신림동에 거대한 고시타운이 형성된 것도 비법대생의 사시 준비와 관련이 있다.

    2위를 기록한 고려대 이하에서는 전부 법대 입학정원보다 적은 숫자의 사시 합격자를 배출한다. 2006년 고려대 출신 사시 합격자는 143명인데, 고려대의 법대의 현재 입학정원은 282명이다. 지난해 고려대의 비법학 전공 사시 합격자는 14명으로 알려졌는데, 관계자들은 고려대는 비법대생의 사시 합격자 수가 적은 대학에 속한다고 말한다.

    같은 기간 연세대 출신은 121명이 합격했는데 연세대 본교의 법대는 260명 정도가 학년 정원이다. 연세대는 사회계열로 입학생을 받아 2학년이 되면서 학과를 선택하기에 법대의 입학정원이 없다.

    연세대에서는 경영대나 상경대 등 비법대생이 사시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연세대 법대 관계자는 연대 출신으로 사시에 합격하는 사람은 법대 출신자가 70%, 비법대 출신자가 30% 정도라고 밝혔다. 연세대는 서울대 다음으로 비법학 전공 사시 합격자가 많은 대학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사시 합격자 가운데 법학 전공자와 비법학 전공자의 비율은 76.5대 23.5이고, 숫자로 따지면 760명 대 234명이다. 비법학 전공으로 사시에 합격한 234명 중에서 서울대의 비법학 전공 합격자 170여 명(추산), 고려대 출신의 비법학 전공 합격자 14명, 연세대 출신의 비법학 전공자 31명을 제하면 19명이란 계산이 나온다. 19명을 기타 대학에 분산해보면 빅3 이하 대학에서는 비법학 전공으로 사시에 합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답이 나온다.

    비법대생 사이에서 불고 있는 사시열풍은 서울대와 연세대 등 일부 대학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인데 우리 사회는 이를 모든 대학에서 일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사시열풍과 혼동한 것이 고시학원 열풍이다. 그러나 고시타운은 비법대생의 사시 준비 때문에 번성한 것이 아니다. 모 법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법대생이라고 하더라도 법대에서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는 사시를 준비할 수 없다. 첫째 이유로는 강의 시간의 절대적인 부족을 꼽아야 할 것 같다. 대학 수업은 과목당 일주일에 3시간이다. 한 학기는 최장 4개월로 잡을 수 있으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축제 기간 등이 있어 실제 강의는 3개월을 넘지 못한다. 대학의 과목당 수업시간은 36시간을 넘을 수 없다(1주 3시간×4주 한달×3개월 학기=36시간).

    이렇게 짧은 시간에 방대한 분량의 법학 과목을 다 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법대생 중에는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을 꿈꾸는 학생도 있으므로 교수들은 폭넓은 강의를 해야 한다. 따라서 법대생일지라도 사시를 준비한다면, 따로 고시학원에 나가 공부해야 한다.”

    변호사로부터 법률 서비스를 받기 힘들다는 것과 서울대 출신이 사법 권력을 독점하는 현실, 전관예우와 학맥·동기의식에 지배되는 사법 커넥션, 비법대생마저 사시 준비에 열중하는 분위기와 그로 인해 커지는 고시산업 등을 병폐로 보면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것이 로스쿨제 도입이다.

    정원 나눠 먹기가 문제

    로스쿨 설치로 사법 개혁을 하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의지는 7월3일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막상 로스쿨 설립을 진행하려고 하자 과거에는 보지 못한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첫째는 로스쿨 정원을 대학별로 어떻게 할당할 것이냐의 문제다. 로스쿨에 입학했다고 해서 전부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20~30%는 탈락시킬 예정이다.

    변호사 단체에서는 지금처럼 1000명 정도만 사시에 합격시키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로스쿨의 전체 입학정원을 1200명이나 1300명으로 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반면 대학가는 3000명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정부 여당은 그 중간인 1500~2000명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로스쿨의 전체 입학정원을 몇 명으로 할 것이냐는 로스쿨을 유치하려는 대학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전체 로스쿨 정원을 1200명으로 한다면 로스쿨을 유치할 수 있는 대학 수는 적어진다. 현재 40여 개 대학이 로스쿨 유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1200명을 40개 대학으로 나누면 한 학교당 30명이 할당된다. 30명의 입학생으로 로스쿨을 운영하라는 것은 출혈경영을 하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20개 대학으로 한정해도 입학정원은 60명밖에 안 돼 역시 적자를 면치 못한다(로스쿨 학생수에 따른 대학의 수지 문제는 뒤에 다시 검토한다).

    로스쿨의 입학정원을 배분할 때 기득권 인정이 전제될 수 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처럼 세 자릿수 합격자를 낸 대학과 한 자릿수 합격자를 낸 대학에는 입학정원을 달리 조정해 할당하는 것이다. 빅3에 대해 정원을 늘려주면 타대학의 입학정원이 줄어들므로 로스쿨의 입학정원 할당은 복잡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로스쿨 제도를 연구해온 사람들은 한 대학에 배정할 수 있는 최대 입학정원은 150명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로스쿨 파행으로 모는 전체 정원 늘리기

    이들은 세 자릿수 합격자를 배출한 SKY의 로스쿨에 150명이 할당되고, 40~50명의 합격자를 배출해온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의 로스쿨에는 120명이 할당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섯 개 대학의 총 입학정원은 810명이 된다(150×3+120×3=810).

    로스쿨의 전체 입학정원이 1200명이면 390명, 1500명이면 690명, 2000명이면 1190명이 남게 되는데 이것이 나머지 대학에 할당된다. 빅6 다음엔 부산대 경북대 경희대 전남대로 이어지는 빅10을 꼽을 수 있다. 빅10 가운데에서 합격자가 많은 것은 부산대와 경북대인데, 두 대학은 지방을 대표하는 차원에서 100명 정도의 입학정원을 할당받을 수 있다.

    부산대와 경북대가 100명을 가져가면 호남 최고를 자부하는 전남대도 같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므로, 전남대에도 100명을 할당한다. 이렇게 되면 전남대보다 좋은 실적을 보인 경희대에도 100명의 입학정원을 할당해야 한다. 이로써 빅10에 할당된 입학정원은 1210명이 되는데, 이는 변호사단체에서 주장하는 로스쿨 전체 입학정원 1200명에 근사한 수치다.

    지역배분의 문제

    여기서 로스쿨 인가를 멈추면 11위를 기록한 서강대와 12위의 중앙대, 13위의 한국외대, 14위의 건국대 반발이 거세진다. 4개 대학의 합격자 수는 10위인 전남대와 큰 차이가 없고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배려할 수밖에 없게 된다. 4개 대학의 로스쿨에 80명의 입학정원을 할당하면 로스쿨 전체 입학정원은 1530명으로 늘어난다.

    이때 전북대가 “영남권에는 두 개 대학에 로스쿨을 개설해주면서 왜 호남에는 한 개 대학만 허가하느냐”고 따진다면 11위 서강대부터 15위 전남대까지의 5개 대학에 50명 할당을 검토할 수 있다. 대학 처지에서 입학정원 50명의 로스쿨을 운영하라는 것은 적자를 감수하라는 뜻이지만, 이를 받아들인다면 15대 대학 로스쿨의 전체 입학정원은 1460명이 된다.

    로스쿨의 입학정원을 1500명으로 한정한다면 최대 15개의 대학이 로스쿨을 인가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전북대가 막차를 타면, 2006년 사법시험에서 전북대(4명)보다 많은 합격자를 낸 서울시립대(9명)와 동국대(8명), 단국대(6명), 아주대(5명) 그리고 전북대와 같은 수의 합격자를 배출한 경찰대와 충남대가 반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충남대는 “우리는 고등법원이 있는 대전과 범(汎)충남권을 대표하는 대학이다. 대전에 로스쿨을 인가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충청권 국회의원들이 합세해 “로스쿨 인가에 지역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한다면, 정부는 충남대를 포함한 7개 대학에 입학정원 50명의 로스쿨을 허가할 수밖에 없다. 이로써 로스쿨을 설치한 대학은 22개 교로 늘어나고 전체 입학정원은 1810명이 된다.

    그래도 불만이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는다. 부산에서는 동아대가, 대구에서는 영남대가, 광주에서는 조선대가 “왜 국립대에만 로스쿨을 배정하느냐”는 불만을 터뜨릴 수 있다. 인천에서는 인하대 등이 “인천은 광역시인데 왜 우리 대학에는 로스쿨을 인가하지 않느냐”고 항의할 수 있다. 숙명여대는 “왜 여자 대학은 한 학교만 로스쿨을 갖느냐”고 따질 수 있고, 강원대와 제주대 등은 “강원도와 제주도만 푸대접한다”는 불만을 내놓을 수 있다.

    [표1] 5년간 대학별 사시합격자 수
    평균합격자수 총합격자수

    (4908명)
    2006년

    /48회

    (994명)
    2005년

    /47회

    (1001명)
    2004년

    46회

    (1009명)
    2003년

    /45회

    (906명)
    2002년

    /44회

    (998명)
    서울대 337.00 1685

    (34.3%)
    335 328349341 332
    고려대 166.40 832

    (17.0%)
    143 177166170 176
    연세대 109.60 548

    (11.2%)
    121 12010584 118
    성균관대57.80 289 72 7358 52 34
    한양대 56.40 282 59 6358 46 56
    이화여대41.20 206 52 5136 28 39
    부산대 28.40 142 30 2729 16 40
    경북대 21.40 107 19 1718 20 33
    경희대 16.80 84 15 2124 11 13
    전남대 15.20 76 20 1214 12 18
    서강대 14.20 71 16 1810 11 16
    중앙대 13.80 69 14 7 16 20 12
    한국외대13.60 68 17 1314 11 13
    건국대 10.60 53 7 1015 13 8
    전북대 7.60 38 4 6 13 10 5


    지난 5년간 1명 이상의 사법시험 합격자를 낸 대학은 평균 44.8개교다. 이들 대학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추가로 20개 대학에 대해 입학정원 50명의 로스쿨을 인가할 수 있다. 이로써 로스쿨 설치 대학은 42개 대학에 총 입학정원은 2810명이 된다. 2810명은 대학가에서 주장해온 로스쿨 전체 입학정원 3000명에 근접하는 것이니, 대학으로서는 더 이상의 불만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눠 먹기는 ‘덫’이 될 수 있다.

    4년 전 로스쿨제를 실시한 일본이 바로 이 ‘덫’에 걸려들었다. 여러 대학의 불만을 잠재우느라 일본 정부는 연차적으로 총 74개 대학에 로스쿨을 인가했는데 이것이 지금 일본 대학계를 옭아매고 있다.

    일본 로스쿨의 참담한 성적

    지난해 일본에서는 먼저 개강한 58개 대학의 로스쿨에서 졸업생이 배출됐는데, 이중 교토(京都)산업대와 고베(神戶)학원대 등 4개 대학의 로스쿨은 단 한 명의 사시 합격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가나자와(金澤)대와 간토(關東)학원대 등 7개 대학은 단 1명의 합격자만 배출했다. 그리고 58개교 가운데 절반이 넘는 34개 대학(전체의 59%)의 로스쿨이 한 자릿수(9명 이하)의 합격자를 배출했다.

    합격률이 저조한 대학의 로스쿨은 개교 때부터 ‘3류’로 인식돼 지원자가 적었다. 입학생이 미달한 로스쿨에서는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못하고, 24시간 자습만 시키는 사실상의 ‘고시원’으로 전락했다. 올해부터 내년 사이 일본에서 졸업생을 배출하는 로스쿨은 74개 교로 늘어나므로 합격자 ‘제로’를 기록할 로스쿨은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40여 개 대학에 로스쿨을 인가하면 한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로스쿨 전체 입학정원이 3000명인 상태에서 사시 합격률을 70%로 하면 2100명, 80%로 하면 2400명만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다. 600명에서 900명은 공부만 하고 변호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로스쿨 입학=변호사 자격 획득’이 아닌 이상 학생들은 합격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학의 로스쿨로 몰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에서도 입학생이 미달하는 로스쿨과 합격자 ‘제로’를 기록하는 로스쿨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수 對 학생 비율 1대 12의 함정

    오는 10월 교육부는 로스쿨 인가신청 조건을 확정해 공고할 예정인데, 이 조건 가운데 ‘교수 대 학생’ 비율은 1대 12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로스쿨의 수업기간은 3년이므로 입학정원이 100명인 로스쿨의 전체 학생수는 300명이 된다. 여기에 1대 12의 원칙을 적용하면 교수 숫자는 25명이 되어야 한다.

    교수 연봉은 학교마다 연차에 따라 다르지만, 간단하게 계산하기 위해 1억원으로 가정해보자. 대학에는 교수뿐만 아니라 행정 직원도 있어야 한다. 사무실과 건물 운영 비용도 지출해야 한다. 인사 업무에 오래 종사해온 사람들은 보통 회사가 회사 운영을 위해 지출하는 돈은 월급을 받는 사람 연봉의 두 배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교수가 25명인 로스쿨은 연간 50억원 이상을 벌어야 겨우 수지를 맞출 수 있다. 이 50억원을 300명의 학생에게서 거둬들이려면 로스쿨은 학생 1명당 1667만원을 부과해야 한다. 학생은 학기 당 850만원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교재비와 학생회비 등을 더하면 한 한기에 부담하는 등록금은 1000만원에 육박한다.

    한 학기에 1000만원, 연간 2000만원인 등록금을 선뜻 부담할 수 있는 학부모가 몇이나 될까. 때문에 로스쿨제가 도입되면 부잣집 자녀만 입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가난한 집 자녀는 법조인이 되는 꿈을 꿀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의 로스쿨은 ‘귀족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로스쿨제를 도입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 것이 ‘사시 낭인(浪人)’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청춘을 다 바치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 될 사람만 넣겠다는 것이 로스쿨을 도입한 취지였다. 그러나 일본의 예에서 알 수 있듯 100% 합격이 아닌 이상 로스쿨 출신 낭인의 양산은 피할 수 없다.

    현재의 사법시험이 낭인을 배출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는 것인지 따져보자. 2006년 사법시험 합격자 994명의 평균 나이는 27.66세다. 요즘 사법시험에는 군대에 가지 않는 여학생이 대거 합격하므로, 남자 합격자들의 평균 나이는 27.66세보다 한두 살 많은 28~29세가 될 것이다. 반면 여성 합격자의 평균 나이는 25~26세로 떨어진다.

    남자 나이 28~29세는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을 졸업해 3년 정도를 더 보낸 것에 해당한다. 취업 재수, 삼수생이 즐비한 지금 이러한 연령을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문제는 로스쿨을 도입하면 사시 합격자의 평균 연령은 이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로스쿨 제도에서는 여학생도 26세에 처음으로 사시를 보게 된다. 군대를 갔다 온 남학생은 28~29세에 시험을 보는데 이때 합격하지 못하면 ‘로스쿨 사시 낭인’이 되고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전문 변호사 양성의 허구

    로스쿨을 도입한 취지 가운데 하나는 학부에서 다양한 공부를 한 사람에게 법학교육을 시켜 전문 변호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요구는 기업체서 많이 나왔다. 경영학이나 경제학, 공학 등 기업이 필요로 하는 학문을 공부한 후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해 경영이나 경제 공학 전문 변호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로스쿨제를 도입한 한 이유였다.

    법학 교육이 이러한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는 데 대해 대부분의 법학과 교수는 찬성하고 있다. 교육부는 전문 변호사 양성을 위해 비법학 전공자를 일정 비율 이상 뽑는 것을 로스쿨 인가 조건으로 내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로스쿨제 도입이 전문 변호사를 양성하는 유일한 길이냐에 대해서는 양론이 있다. 로스쿨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서울대에서 많이 나오는 비법학 전공 사시 합격자를 활용하면 전문 변호사제를 안착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비판자의 의견이다.

    “학부 4년간 배운 것으로 과연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 전문가는 학부에서 공부한 것이 아니라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익혀야 만들어진다. 학부에서 국제경영학을 공부하고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는 국제통상 전문변호사로 자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지,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아니다. 그보다는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가 오랫동안 기업에 근무하며 통상업무에 관여했으면 오히려 그가 통상 전문 변호사다.

    로스쿨에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을 다수 입학시키라고 하면서 현행 사시에서 비법학 전공자가 다수 합격하는 것을 ‘대학의 고시원화 현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다. 비법학 사시 합격자야 말로 전문 변호사로 육성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로스쿨로 전문 변호사를 양성하겠다고 하는 것은 지금 체제를 활용하는 것에 비해 비용만 많이 들 뿐이다.”

    학부에서 비법학을 공부하고 로스쿨에서 법학을 배우는 것보다는, 사시에 합격한 변호사가 자기 필요에 따라 기업체에서 실무를 익히거나 경영대학원이나 환경대학원 등에 다니니는 것이 전문 변호사가 되는 더 나은 길일 수도 있다. 로스쿨을 통해 전문변호사를 양성하겠다는 발상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세상을 보는 좁은 시야에서 나온 발상이다.

    행정고시는 일반 분야 외에도 재경·교육·국제통상 등 여러 전문 분야에서 합격자를 뽑고 있다. 그로 인해 경제학이나 경영학·국제경제학·교육학 등 비행정학 전공자도 행정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면서 자기 전공을 살려 행정고시에 도전하고 있다.

    사법시험에도 이러한 제도를 원용해, 일반 분야와 통상·환경 등 전문 분야로 나눠 합격자를 선발한다면, 비법학 전공자가 전공을 살려 전문 법조인이 되는 길을 열 수 있다. 법학 전공자도 부전공으로 다른 과목을 선택해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걸을 수 있다. ‘귀족학교’라는 부담을 안고 있는 로스쿨제도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전문 변호사를 양성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로스쿨제 도입이 특정 학교 출신의 법조계 장악을 막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사시 합격자 수가 서울 법대의 입학정원보다 적을 땐, 서울 법대 출신이 사시 합격을 독점했다. 그러나 사시 합격자를 1000명으로 확대하고 서울법대의 입학정원은 205명으로, 고려대 법대의 입학정원은 282명으로 한정한 지금 다른 대학 출신의 사시 합격자수는 급증하고 있다.

    서울 법대를 가지 않아도 사시에 합격할 수 있다면 서울 법대 진학을 고집하는 학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지다 보면 고려대가 서울대를 잡고, 연세대가 고려대를 앞지르며, 성균관대나 한양대가 연세대보다 사시 합격자를 더 많이 배출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법조계의 관심이 온통 로스쿨에만 쏠리다 보니 법학 고유의 사명을 잊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로스쿨에서 통상전문 변호사 등을 양성하겠다고 하는 것은, 법 테두리 안에서 기업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의도는 자칫 ‘돈을 위해 봉사하는 변호사를 양성하겠다’ 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문화를 확대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사회정의는 누가 지키나

    이익과 정의는 종종 배치 되는 경우가 많다. 경력 20년의 한 변호사는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조문과 판례를 찾다 보면 가끔은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학생 시절 정의를 세우겠다며 돌멩이를 던지던 열정은 새까맣게 잊고 돈 많은 의뢰인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기술자로 전락한 내 신세를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몇 년 전 나는 국선 변호인으로 법원에 나간 적이 있다. 국가에서 주는 적은 수임료를 받고 국선 변호를 하게 되니, 공판 기록도 제대로 보지 않고, 피고인과 충분한 면담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정에 나가 ‘그저 피고인은 무죄입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사선 변호인을 맡으면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피고인을 자주 면담하게 되며, 판·검사와 접촉을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수임료의 노예가 됐는지 모르겠다….”

    고유의 법은, 억울한 사람을 구제해 정의를 실현하고 공평하게 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하려면 학연과 지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청탁에 흔들리지 않으며 수사하고 재판할 수 있는 검사와 판사가 많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학 고유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로스쿨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로스쿨 추진 세력들은 “법학 고유의 기능은 당연히 이어간다”고 둘러대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법조계의 문화로 자리 잡은 전관예우가 로스쿨 도입으로 사라질지도 의문이다. 전관예우를 없애려면 로스쿨 도입보다 전관예우를 낳은 구조부터 타파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대법원 권력을 개혁해야

    이 문제와 관련해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이 법원의 생리다. 판사들은 식사하러 갈 때도 재판장과 주심 부심이 순서대로 걸어갈 정도로 함께 움직인다.

    법원은 재판만 하는 기관이 아니나. 법원 사무를 위한 행정 업무도 많다. 이를 위해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를 운영하고 있고, 업무를 전담할 직원을 확보하기 위해 ‘법원 행시’를 보고 있다.

    언론은 행정부처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고 있으나 법원 쪽에 대해서는 판결에만 관심을 쏟지 법원 행정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법원 생리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법원만큼 관료적인 기관도 없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국정원과 검찰 심지어는 비정부기관인 언론까지 개혁의 대상이 되었지만, 법원은 건국 이후 단 한 번도 개혁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법원이 관료적이라는 근거로 이들은 전국 법원이 임기 6년의 대법원장 1인에 의해 움직이는 현실을 지적한다.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를 통해 전국의 판사 인사권과 전국 법원에 대한 예산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판사들은 대법원을 중심으로 한 중앙에 신경을 쓰게 되고, 중앙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무조건 따르는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중앙의 결정을 전하는 것은 상급자이니, 중앙은 상급자로 대치된다. 여기에 재판장과 주심 부심이 함께 움직이는 법원 문화가 가미되면서 검찰의 ‘검사 동일체’ 원칙이나 ‘상명하복’ 전통 이상으로 한덩어리로 움직이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급자가 퇴직해 변호사가 되면, 그에 대한 예우를 해주게 마련. 전관예우의 병폐가 고착화되는 것이다.

    고법과 지법에 인사·예산권 줘야

    이들은 전관예우의 병폐를 줄이려면 절대적인 경지에 올라 있는 대법원장 권한부터 축소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을 어느 정도까지는 대법원에서 독립시켜야 한다. 즉 대법원장은 법원 전체 문제를 관장하되 대법원 사무에 대해서만 전권을 행사하고,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의 인사와 예산은 고법원장과 지법원장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을 도입하면 대법원은 지금과 같은 거대한 법원행정처를 운영할 이유가 없다. 대법원은 13명의 대법관을 중심으로 한 조직이 되므로 9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보다 약간 큰 기관이 된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총무과가 행정 업무를 담당하므로 대법원은 그보다 큰 수준의 행정기구를 두면 된다. 고법과 지법에서는 인사와 예산 업무를 담당할 행정기구를 신설하거나 확대한다.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이 대법원에서 독립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3심제가 제대로 자리 잡고 전관예우의 고질이 해결될 것이란 게 이들의 분석이다.

    고졸의 트루먼 대통령이 미국의 학원식 로스쿨이 낳은 최대의 인물이라면 같은 고졸인 노무현 대통령은 현재의 사법시험이 낳은 최대의 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상고를 나온 청년 노무현은 만29세인 1975년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77년부터 78년 사이 대전지법 판사를 하다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기존 사시 최대 수혜자는 노 대통령

    그는 부산에서 활동하던 김광일 변호사 등을 만나 1981년 부림사건 변론을 하게 됐는데, 이것이 그를 ‘민주투사’로 변신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988년 그는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후원으로 부산 동구에서 출마해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5공 청문회 등에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1990년 3당(黨)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 합류를 거부하고 야당인 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그리고 14대와 15대 총선, 부산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1997년 김대중씨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가 되면서 다시 비상하는 날개를 달게 되었다. 1998년 15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것.

    2000년의 16대 총선에서는 실패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해양수산부 장관에 기용해 능력을 펼칠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출마해 정몽준 후보와 극적인 단일화를 성공시킴으로써,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꺾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노 대통령의 오늘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김광일-김영삼-김대중으로 이어지는 유력 정치인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사시에 합격하지 못했으면 김광일-김영삼-김대중씨를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대로라면 로스쿨은 2009년 처음 입학생을 뽑는데, 로스쿨 인가를 받은 대학은 그때부터 법학과 입학생을 뽑지 못한다. 로스쿨 학생과 2008년 이전에 입학한 법학과 학생이 병존하는 시기를 맞는 것이다. 이들 대학은 2008년 입학생이 군대를 다녀와 졸업하는 2014년까지는 법학과를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로스쿨은 첫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이들 가운데 70~80%를 합격시키는 새로운 사법시험이 실시된다. 기존의 사법시험도 로스쿨을 유치한 대학의 법학과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이 확실시된다.

    로스쿨을 유치한 대학에서 법학과 학생이 모두 졸업하게 되면 구래의 사법시험은 폐지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답을 하지 못한다.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보다는 그때 가봐야 알겠다는 대답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구래의 사법시험이 없어진다면 우리 사회에는 제2의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할 수 없게 된다.

    당리당략 따라 통과된 로스쿨 법안

    로스쿨제 도입은 이은영 의원을 비롯한 노무현 정부의 실세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이 법이 통과해 시행령이 만들어지고, 로스쿨 인가 조건에 대한 논의가 가시화되자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발견된 듯 이들은 보완해가며 실행하겠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로스쿨 법안 제정에 대해 이렇다 할 당론이 없었다. 그런데 학계와 언론에서 “사학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자, 열린우리당 측과 ‘사학법 개정안과 로스쿨 법안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통과시키주는 데 합의했다.

    미국은 변호사 양성을 정상화 하기 위해 어렵게 지금의 로스쿨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 것은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로스쿨제 도입을 추진한 것은 아닐까.

    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로스쿨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1대 12라는 교수 대 학생 비율을 맞추기 위해 다른 대학 교수를 유치하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려대가 한양대에서 법대 교수를 모셔오자 한양대가 고려대에 화를 내고, 연세대는 원주캠퍼스의 법학교수 대부분을 유치했다. 경기지역에서 로스쿨을 유치하려고 한 모 대학은 서울의 유력대학들이 법학과 교수를 빼가는 바람에 로스쿨 인가조건을 채우지도 못할 위기에 봉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로스쿨이 비싼 학비를 받고 학생을 교육한다면, 이 학교를 나온 변호사들은 다시 높은 수임료를 요구함으로써, 없는 사람은 더욱더 법률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로스쿨제 도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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