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호

청와대 vs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갈등의 18개월’

‘北 미사일 발사’ 공개에 분노한 벨, 청와대 직접 겨눈 친서 전달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7-10-09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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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LL 조정엔 유엔사 동의 필요” 발언은 연합사 수준의 잡담?
    • “리스카시 이후 이렇게 시끄러웠던 적 없다”
    • ‘유엔사 역할 강화방안’ 둘러싼 청와대의 의심
    • 3월7일 하원 청문회, 마침내 선을 넘다
    • 워싱턴에 전달된 항의서한… “사령관 교체를 원하나?”
    • “연합훈련 임무 방기” vs “말도 안 되는 마타도어”
    • 롤리스의 분노, 미군 베테랑 정참부장의 합참 항의방문
    청와대 vs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갈등의 18개월’

    2006년 9월29일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의 남북정상회담 의제화 여부를 두고 관계부처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9월13일, 폭발성 강한 기사 하나가 안보부처를 뒤흔들었다. ‘국방부 및 군 고위 관계자들이 유엔사측에 남북회담에서 NLL 변경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한 유엔사의 입장을 타진했다’는 ‘조선일보’ 보도였다.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등은 ‘NLL 변경 혹은 재설정은 남북이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며, 유엔사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우리측에 전달했다”는 것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단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며 말을 아꼈지만,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북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주한미군 사령관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분명한 월권이라는 것이다. 발언 내용 자체에 대해서도 그간 벨 사령관이 강도 높게 주장해온 ‘유엔사의 위상 강화’와 맞물려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특히 국방부나 군으로부터 벨 사령관에게 관련 내용을 타진해보겠다거나 타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전혀 없다며 ‘플레이’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난처해진 것은 국방부다. 7월 이후 NLL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마찰을 빚는 것으로 비친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힘을 빌려 NLL 의제화를 막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된 것. 8월 한 달간 이어진 ‘언론보도 사고’로 보안감사가 진행되던 형국이라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들이 “벨 사령관의 말은 한미연합사 내부의 사적인 자리에서 나눈 ‘잡담’ 수준의 이야기”라며 “국방부가 이를 정식으로 타진한 적도, 회신을 받은 적도 없다”고 진화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해지겠지만, 이 일을 계기로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청와대와 벨 사령관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다. ‘잡담 수준’이었다는 국방부 관계자들의 말이 맞다 해도, 벨 사령관이 NLL 문제의 정상회담 의제화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며 이를 큰 거리낌 없이 주변에 내색하고 있음은 사실이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벨 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 적절치 않은 행동이나 발언을 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에 조심성 없이 언급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었으므로 주무부처인 국방부 장관 등을 통해 적절한 방식으로 견제해왔다. 그러나 그의 ‘사고’는 그치지 않았고, 불쾌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하는 일도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로버트 리스카시 사령관이 평시 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던 시절 이후로 청와대와 주한미군사령관 사이의 관계가 이렇듯 껄끄러웠던 적이 없다.”



    전직 청와대 안보부처 관계자의 이 같은 설명은 청와대와 벨 사령관 사이의 갈등이 심상치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공식적으로 보면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임하고 있는 벨 사령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하’에 해당한다. 국군의 날 행사장에는 주한미군사령관도 참석해 한국 대통령에게 경례를 한다. 이렇듯 ‘명쾌한 관계’에서 도대체 무슨 갈등이 어떻게 벌어졌다는 것이며, 이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지금부터 그 숨겨진 내역을 하나하나 따라가보기로 하자.

    2006년 3월 상원 청문회

    이야기는 벨 사령관이 주한미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3월7일 벨 사령관은 미 상원 청문회에서 “(현재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인) 유엔군사령부에 대해 미국 외 15개 참전국의 소임을 늘리고, 유엔사가 ‘유사시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수립하는 데 참여시킴으로써 유엔사를 진정한 다국적군 사령부로 만들겠다”고 발언한다. 이른바 ‘첫 번째 사고’였다.

    청와대 vs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 ‘갈등의 18개월’

    2006년 12월13일 서울 용산구 한미연합군사령부 내 나이트필드 연병장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김장수 국방장관(오른쪽)이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한반도에 특수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이 유엔사를 이용해 주도적으로 상황에 대응하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발언은, 2005년 작전계획5029 문제로 양국이 극심한 마찰을 겪은 터라 그 파장이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고(有故) 등 북한에 특수한 상황이 생길 경우 주한미군이 주도적으로 대량살상무기 통제권 확보 등에 나선다는 작계5029는 그 추진과정에서 ‘주권 문제’를 우려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반대로 논의가 중단된 바 있다. 한반도 유사시에 대응하는 임무는 한국군이 주도해야 하며, 섣불리 미군이 북한에 투입될 경우 전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NSC의 논리였다.

    벨 사령관의 이날 발언은 북한 유사시 유엔사가 중심이 되어 이에 개입할 수 있게 하겠다는, 다시 말해 유엔사라는 장치로 우회해 사실상 작계5029와 같은 체제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의구심을 낳았다고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한다. 주한미군사령관의 청문회 발언이 사전에 우리측에 통보되던 그간의 관행과 달리 이때는 그런 절차가 없었다는 것 역시 한국측 당국자들을 당혹케 원인이었다.

    불똥은 관련업무를 담당하는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이하 안보실) 관계자들에게 가장 먼저 튀었다. 주한미군과의 사전조정 미비로 사령관의 민감한 발언이 청문회 자리에서 공개된 데 대해 책임을 물었다는 것. 담당자들은 경위서를 작성하는 등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는 곧 국방부에 대응을 주문했고, 국방부는 급히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은 비공식적으로 벨 사령관을 불러 유감을 표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주한미군사령부도 곧이어 ‘잘못된 보도내용에 대한 주한미군의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냈지만, 정작 어떤 보도의 어떤 내용이 잘못됐다는 것인지 명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국무부 고위관계자에게 ‘우려’ 전달

    그러나 벨 사령관의 행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불과 두 달 뒤 이보다 더욱 민감한 사안이 불거진 것. 지난해 5월9일부터 사흘간 용산에서 개최된 ‘유엔사-특전사 컨퍼런스’가 그 주인공이다. 유엔사가 13개국 군사 전문가들을 초청한 이 세미나에서는 ‘북한정권 붕괴 및 남북한 무력충돌 등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해 유엔사 주축으로 구성될 특수부대의 운영방안을 의제로 다뤘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러한 내용을 주한미군 사령부의 고위 관계자가 미국 군사 전문지 ‘성조’와의 인터뷰를 통해 매우 상세히 공개했다는 점. 사실상의 공개선언이었다.

    청와대 일각에서 ‘주한미군이 사령관 교체 이후에도 유엔사 강화를 멈추지 않고 추진하는 것은 전작권 전환 문제와 관계가 있는 듯하다’는 관측이 나온 게 이 무렵부터였다. 전환 이후 한미연합사가 해체된 후에도 유사시에는 유엔사를 통해 사실상 한국군 통제권한을 확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미 국방부는 전작권 전환에 매우 적극적이지만, 이후의 위상 저하를 우려하는 주한미군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같은 해 7월13일 벨 사령관이 국회 안보포럼 강연에서 작통권 환수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군사력 지원 규모 ▲지상작전에 대한 미군의 기여 수준 ▲작통권 단독행사 시 한국 정부의 전시 목표 ▲지휘관계 변화와 유엔사의 역할 및 정전협정 상관관계 등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더욱 굳어졌다. 올해 1월9일에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유엔사의 역할과 임무 조정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며 “현재 유엔사의 역할을 수정하는 문제를 한미간에 협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사시 유엔사의 역할을 명시하지 않을 경우 작통권 이양을 미루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1월 기자회견의 상당부분은 그간 진행되고 있던 양국간 협상을 압박하는 내용이었다.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보니 원래 예상보다 1000억원이 부족하다”며 “한국인 노무자 및 한국기업 군수보급 용역 삭감 등을 통해 이를 벌충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군기지 이전 일정에 대해서는 “2008년으로 예정돼 있던 평택 이전이 정치적인 이유나 예산 문제 등으로 차질이 빚어지면 이에 맞서 싸울 것(I’ll fight this)”이라고 격한 단어를 사용해 이튿날 아침 대부분의 신문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돌출발언에 당황한 정부는, 벨 사령관 본인뿐 아니라 출장 나온 미국측 고위관계자에게 다시 한번 우려의 뜻을 전달하는 강수를 둔다. 1월30일 ‘문화일보’는 ‘정부 당국자가 1월26~28일 방한한 캐슬린 스티븐스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 부차관보와 유엔사 문제를 토론하면서 ‘벨 사령관의 발언이 오해를 살 여지도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의미 없었음이 확인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워싱턴으로

    한 달 남짓한 시간이 흐른 3월7일 미 하원 군사청문회. 마침내 벨 사령관은 ‘선’을 넘는다. 해외 주둔 사령관에게 금기시되어 있는 발언, 즉 주둔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었다.

    우선 한국군의 복무기간 단축과 병력 감축을 언급한 그는 “한국의 징병제 변화는 북한의 위협을 감안해 조심스럽게 검토돼야 한다”며 “비슷한 규모로 북한군이 감축되지 않는다면 한국 정부가 이 같은 대규모 군병력 감축을 조심스럽게 고려하기를 우리는 바란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군의 감축과 징병제의 변화가 북한 위협에 대한 한반도의 전쟁 억제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강조도 이어졌다.

    발언 사실이 알려진 후 청와대의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현직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군 구조개편 문제에 사실상 반대하고 나선 셈이기 때문. “벨 사령관은 스스로를 점령군 사령관이나 식민지 총독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청와대 내부에서 터져 나왔고,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 기사가 일부 언론에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국방개혁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노무현 대통령 본인의 진노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 이상 그냥 놔둘 수는 없다는 것. 그간 국방부 등 공식통로를 통해 전달했던 ‘자제요청’이 효과가 없었다고 판단한 청와대는 이 무렵 좀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 직후, 청문회 발언을 중심으로 그간 벨 사령관의 발언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을 담은 서한이 전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 워싱턴에 전달됐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간의 창구였던 국방부 대신 외교채널을 통해 전달된 이 서한은, 비록 대통령 친서 등의 형태는 아니었지만 미 국방부는 물론 국무부와 백악관 NSC에도 보고되는 등 파장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조치에 깜짝 놀란 미국측이 “주한미군 사령관의 교체를 정식으로 요청하는 것이냐”고 반응할 정도였다는 것.

    앞서의 전직 청와대 안보부처 관계자는 “꼭 교체해달라는 요구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미간 협상 등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담당자의 교체를 넌지시 요구하는 전례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라고 에둘러 말했다. 이를테면 불감청(不敢請)이나 고소원(固所願)이었던 셈이다. 본국으로부터 관련사실을 전달받은 벨 사령관의 반응 역시 격렬했다. 미 국방부에 “40년 군생활에 이런 수모를 겪은 일이 없다”고 항의했다는 전언이 대표적이다.

    사태가 번지자 결국 ‘교체 요구는 아니었다’는 식으로 진화가 시도됐지만, 4월 들어 안보부처 주변에 묘한 소문이 흘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3월25일 시작된 한미연합전시증원(RSOI) 훈련에서 벨 사령관이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 RSOI는 전시의 미군 증원절차와 이에 대한 한국군 지원절차 등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아래 실시하는 지휘소 연습(CPX)으로, 연합사가 주축이 되어 실시하기 때문에 연합사령관이 최종판단과 명령통제를 하는 것이 그간의 관례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벨 사령관이 이를 자꾸 한국측 지휘관들에게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등 열의를 다하지 않았다는 게 소문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에 대해 연합사측 관계자들은 말 그대로 펄쩍 뛴다. 전시작통권 전환과 관련해 실전 경험이 없는 한국군 지휘관들이 지휘능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지, 벨 사령관이 본연의 임무를 게을리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연합사 부사령관이나 한국군 합참에 지휘 기회를 양보하고 이에 대한 평가회의를 개최하는 등 전작권 환수를 염두에 둔 훈련구성은 2006년과 올해 8월 열린 을지포커스렌즈(UFL)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설명이다. 전형적 군인인 벨 사령관의 캐릭터로 볼 때 이는 불가능할뿐더러 모욕에 가까운 마타도어라는 것. 미군측 관계자들은 이러한 소문의 진원지가 어디인지에 대해 오히려 의혹의 시선을 보였다.

    백종천의 압박, 당혹한 김장수

    곧바로 이어진 상황은 벨 사령관이 청와대에 대해 직접적인 비난을, 그것도 문서에 담아 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도화선이 된 것은 5월과 6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 5월25일 오후 5시 일본 교도통신이 “오전 9시경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보도하자, 모든 국내 언론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달려들어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합참은 교도통신의 첫 보도 두 시간 후인 오후 7시 이를 공식 확인하는 발표를 했다. 미사일의 종류, 발사시각, 발사지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 없이 “연례적으로 실시해온 통상적 훈련으로 추정된다”는 설명만이 나왔다.

    발사 10시간 후, 그것도 외신보도가 나오고 두 시간이 지나서야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는 사실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같은 중대한 사안을 즉각 국민에게 알리지 않은 것은 임무 방기’라는 칼럼과 사설이 줄을 이었다. 청와대나 군 당국이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수위였다.

    결국 청와대 안보실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매뉴얼 작성에 돌입했다. 안보실의 견해는 ‘확인이 되는 대로 발표한다’는 것에 가까웠지만, 국방부의 의견은 달랐다. 공교롭게도 의견조율이 한창 진행 중이던 6월7일 오전과 오후, 북한은 사거리 100~120km의 단거리 지대함 미사일 3 발을 서해상으로 발사한다. 이날 저녁청와대에서 열린 관계 회의에는 김장수 국방장관이 참석했다.

    회의 자리에 나온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날의 미사일 발사 사실이 언론에 유출되기 전에 공식 발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국방장관은 “언론에 보도되고 나면 간접 확인해줄 수는 있지만, 우리가 나서서 발표할 경우 한미 미사일 정보 공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하는 백 실장의 ‘지시’를 끝내 거스를 수는 없었고, 이날 밤늦게 합참은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북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한 브리핑을 개최한다. 장관실 분위기가 엉망이었음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한국측의 발사정보 공개에 대한 미국측은 반발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벨 사령관은 미사일 발사정보 공개가 미국측 정보자산이나 수집능력을 북한에 알려주는 꼴이 될 것이라며 격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때마침 이튿날인 6월8일 열린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리처드 롤리스 당시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과 마이클 피네건 한국과장 등은 이 문제를 두고 한국측 관계자들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롤리스 부차관은 벨 사령관에게도 강한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정보저작권’

    같은 날 오전에는 주한미군의 정보참모부 J2(Assistant Chief of Staff 2)의 책임자인 매리 레지어 준장이 합참 정보본부를 찾았다. 레지어 준장은 2002년부터 주한미군 501정보여단장을 지낸 신호·영상정보 분야의 베테랑. 방문을 들어서는 그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은 벨 사령관의 친서였다. 미사일 발사 공개에 대한 엄중한 항의의 뜻을 담은 서한에는 ‘청와대 NSC’를 직접 겨냥하며 “때로는 침묵이 더 의미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문구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벨 사령관과 청와대 사이에서 빚어진 갈등이 없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수위였다.

    미국측이 이 문제에 강하게 반발한 것은 해당 발사 정보가 대부분 미군측 정보자산을 통해 확인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사일 궤도추적과 관련해서는 한국측의 정보능력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5월25일과 6월7일 모두 미국측이 먼저 발사추정 경보를 날렸고, 한국 국방부와 합참의 정보는 상당부분 이를 고스란히 ‘협조’받은 것에 불과했다. 일종의 ‘저작권 문제’라는 것. 특히 미국측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자신들이 파악한 내용이 모두 공개될 경우 북한측이 이를 역이용해 ‘기만 기동’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6월27일 북한은 또 한 차례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언론들은 이날 오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일제히 이를 보도했지만 이는 ‘공식발표’의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국방부와 합참의 공식 태도는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각 AP와 CNN 등 미국 언론들도 미 국방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를 보도했다. 이튿날에는 백악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든 존드로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이를 공식 확인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보도가 나오고 공식확인은 미국에서 이뤄지는, ‘저작권 문제’에 관한 일종의 타협안이었다.

    상황은 이것으로 정리되는 듯했지만, “통상적이고 연례적인 훈련의 일환”이라는 ‘정부 소식통’의 평가가 말썽을 낳았다. 7월2일 벨 사령관은 관훈클럽 조찬강연에서 “6월27일의 미사일 발사는 신형(advanced) 단거리 미사일을 실험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는 한국군과 한국 국민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라며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이 미사일은 성능이 대폭 향상된 것으로, 발사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해 논란의 불을 다시 한번 지폈다.

    ‘전형적인 군인’ 캐릭터

    이 무렵 언론보도에서는 신형 미사일이 미 2사단과 용산기지가 이전하는 평택 기지를 타격하는 수단으로 개발된 것 같다는 분석이 자극이 됐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발사정보를 둘러싸고 그간 빚은 마찰도 한몫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미국측이 확인한 정보에 대해 한국측이 “통상적인 훈련”이라는 해석을 임의로 덧붙인 것에 대한 불만이라는 것이다. 정리는 됐으되 아직 남아 있던 앙금인 셈이다.

    최근까지 이어진 청와대와 벨 사령관의 갈등관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의문은 한 가지로 모인다. 벨 사령관은 왜 갈등이 불 보듯 뻔한 일들, 특히 공개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는 ‘전형적인 군인’인 벨 사령관의 캐릭터를 들 수 있다. 정치적 파장 등을 고려해 몸을 사리기보다는 ‘군인으로서 할 말을 다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략 문제나 부하들의 사기가 얽혀 있는 경우에는 정치인들과 각을 세우는 것도 ‘군인다운 태도’로 인정받는 미군의 전통이 바탕에 깔려 있다. 워싱턴의 국방부나 백악관이 해외주둔군의 경우 현지 사령관의 의견을 가능한 한 존중해온 문화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1947년생으로 1969년에 군복무를 시작한 벨 사령관은 대부분의 군 생활을 야전에서 보냈다. 조지아주 포트스튜어트의 24기계화보병사단 예하 9기갑여단 2대대장과 2여단장, 독일 주둔 제1기계화보병사단 부사단장을 거쳐 1999년에는 미 육군 기갑센터 사령관을 지냈다. 걸프전 때는 미 중부군 사령관 보좌관으로, 발칸반도 합동작전 때는 헝가리에 있는 유럽주둔 미 육군 전진본부 참모장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국가간 관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자리로는 주한미군사령관에 부임하기 직전인 2004년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합동지상군사령관을 지낸 것이 유일해 보인다.

    야전지휘관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지휘를 받는 부대원들의 처우 개선과 복지 확충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것이다. 벨 사령관이 작심하고 발언한 내용의 상당부분이 방위비 분담금이나 기지 조기 이전 같은 주둔 여건 문제인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2002년 이후 한국이 지급한 방위비 분담금 가운데 8000억원이 축적되고 있지만 여기에서 파생된 이자가 주한미군이 아닌 미 국방부 회계로 전액 입금되고 있는 것에 대해 벨 사령관이 ‘법률적 재검토’를 지시한 적이 있다는 미군측 인사들의 설명 역시 마찬가지다.

    한반도 유사시 이를 감당할 책임이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있다는 판단에 따라 대비 태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자세도 읽을 수 있다. 전작권 전환에 대한 ‘선결조건’ 제시나 유엔사 강화방침, 한국군 구조개편에 대한 청문회에서의 비판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는 전작권 전환 등을 통해 위상이 축소되는 것을 염려하는 주한미군 내부의 정서와도 관련이 있다.

    꼼꼼히 살펴보면 이러한 발언의 청자(聽者)는 한국민이나 한국 정부라기보다는 오히려 미국 정부나 의회를 상정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가 된 발언의 대부분이 주한미군 예산이나 한반도 정책을 결정하는 미 의회 청문회 자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이를 시사한다. 또한 청문회 발언의 경우 사령관 개인이 아니라 참모진이 함께 발언록 초안을 작성하고 준비한다는 점에서, 벨 사령관 개인이 아니라 주한미군 내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다는 평가가 연합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장병들 사이에서는 정치적 처신에 비교적 능했던 리언 라포트 전임 사령관보다 벨 사령관이 더 인기 있다는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파장이 일더라도 본국 정부를 강하게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식이다.

    물론 이에 대해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한미동맹이 기본적으로 정치·외교적 속성이 강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경험이 많지 않은 인물을 주한미군사령관에 임명한 것부터 적절치 못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NATO 사령관만 해도 상당부분 NATO 집행부의 결정을 따르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민감한 조정기에 서 있는 한미관계를 컨트롤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것.

    스킨십과 파트너십

    그러나 주한미군사령관에 대한 임면권을 한국 정부가 가진 것이 아닌 이상, 갈등을 조정해 정책적 어려움을 넘어설 책임은 결국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상황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개선할 수 없는 까닭이다. 지난 18개월간 청와대와 벨 사령관 사이에 빚어진 빚은 적잖은 갈등이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안보에 영향을 끼쳤다면, 그 부분에 있어 한국 국민들에 대한 책임은 결국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질 수밖에 없다. 한 국방부 정책부서 당국자의 말이다.

    “벨 사령관의 행보에 튀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청와대의 분노도 일정부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악조건’을 돌파해내는 것 역시 책임자의 역할이다. 오히려 벨 사령관의 ‘군인 캐릭터’를 역으로 잘 이용하는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스킨십과 파트너십에 약한 것은 만국 군인의 공통점이다. (현재 청와대 관련부서에) 그렇게 ‘군인의 마음’을 꿰뚫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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