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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11

“춘추대의 밝아도 깊이 묻고 넓게 못 배웠으면 성인이랴”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춘추대의 밝아도 깊이 묻고 넓게 못 배웠으면 성인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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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대의 밝아도 깊이 묻고 넓게 못 배웠으면 성인이랴”

우리나라에 있는 관우상.

연암은 거기다 한마디 더 보탰다. 북경의 이런 술집이 압록강 동쪽에 있었다면 하룻밤도 못 가서 쑥대밭이 될 거라고. 그리고 애석한 일이라고. 그러면서도 자기 고향에서 술을 억수로 마셨던 이주민 친구를 그리워했다. 중국을 사모하면서도 중국의 주도를 배우지 못한 채 술을 들이붓듯 우음(牛飮)했던 친구를 2만리 밖에서 연민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00년 모진 비바람 속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동네 아저씨를 만난 느낌이었다. 지금 서울의 폭탄주와 사발식, 고래고래 소리치는 고성방가와 치고받고 부수는 주정, 그 역사가 손에 잡힌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예대로 홀짝거리고 조선은 지금도 꿀꺽거린다. 중국의 잔은 여전히 조개잔이요 조선의 잔은 중사발이다.

연암은 청나라의 김성탄(金聖嘆·1608~1661)에 버금가는 문명 비평가였는지 모른다. 성탄은 과거를 보라 하면 시험지에다 저속한 상말을 쓰고, 해학적인 소설로 시험관을 놀리기까지 했다. 친소(親疎)와 피아(彼我)를 가르기도 했지만 진실과 진정 앞에서는 붓을 꺾을 줄 몰랐다. 연암이 과거 두루마리에다 바위나 그리고 난초를 쳐서 슬그머니 시험관에게 내밀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조선 선비의 허세

청나라를 나들이하는 조선의 벼슬아치나 선비들, 비록 같은 겨레라 팔이 안으로 굽지만 그들이 중국에서 거들먹거린 소행에 대해선 가차없이 비난을 퍼부었다. 그가 열하를 떠나서 쓴 ‘심세편(審勢篇)’에선 중국을 유람하는 조선 사람에겐 ‘5망(妄)’이 있고, 중국에서 행세하는 지식인에겐 ‘3난(難)’이 있다고 힐난했다. 특히 조선인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첫째 망령은 조선 선비가 그 지체와 문벌을 과신한 나머지 우리 국토가 변방의 토성쯤임에도 중국을 턱없이 업신여김이요, 둘째 망령은 한족이나 만주족이 자신들의 복장을 부끄러워함에도 조선 선비는 한줌도 못 되는 상투를 갖고 세상에 잘난 척함이요, 셋째 망령은 조선 선비가 과거 명나라 벼슬아치를 끔찍이 받들었건만 지금 청나라 공경이 똑같은 천자의 칭호임에도 공석에서 배읍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거나 저들에게 무례함이요, 넷째 망령은 조선 선비가 이제껏 중국 글을 읽거나 빌려 썼음에도 갑자기 중국에는 문장가를 찾아볼 수 없노라고 큰소리침이요, 다섯째 망령은 지금 청나라가 명나라 유민들에 의해 유가적 정통을 계승하는 현실임에도 그들이 왜 망국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하고 내정 간섭함이다.

연암의 자기비판이 날카롭고 매섭다. 중국이란 실체는 물론 청나라라는 현실을 반쪽 눈으로 바라보면서 거드름 피우는 조선 선비들의 허세 때문에 식은땀이 났다.

중국의 선비를 겨냥한 ‘3난’은 쇠망치에 솜을 씌운 격이지만 중국 지식인의 비실제성과 교활함을 넌지시 비판했다.

첫째 어려움은 당시 등과(登科)자 누구나 경서는 물론 제자백가와 구류(九流) 전부를 통달해서 누가 물으면 당장 소리가 울리듯 대답하기요, 둘째 어려움은 너그럽고 의젓하여 대국의 체면을 잃지 않음이요, 셋째 어려움은 법과 관직을 잘 지키면서 제각기 사·농·공·상의 분업을 똑똑히 지킴이라 했다.

이를 요약하면 백과사전적 지식인이자, 대국적 인격의 소유자이며, 당당한 직능인이 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선비라면, 해박한 지식에 원만한 인격, 그리고 명석한 직능인이 되기를 요구했다. 그러한 사람은 대체로 경서며 역사를 닥치는 대로 알았고 누구를 대해도 둥글고 매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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