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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교수의 新열하일기 11

“춘추대의 밝아도 깊이 묻고 넓게 못 배웠으면 성인이랴”

  • 허세욱 전 고려대 교수·중문학

“춘추대의 밝아도 깊이 묻고 넓게 못 배웠으면 성인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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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은 성인이나 학문 같은 지고(至高)한 가치가 시장 거리에 퇴락해서 굴러다니는 현상 앞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관우가 관성이 되고 관부자가 되더니 관제, 그러니까 제왕의 칭호까지 상승하게 되었거늘, 이 일련의 추락 행위들을 남용이나 아첨으로 치부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연암은 운남(雲南) 일대에서 왕희지(王羲之)를 서성(書聖)이나 필종(筆宗)으로 추존하는가 하면 문묘에 신주로 모신 일을 예로 들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중국을 빼앗아 중국을 통치하는 오랑캐들이 저마다 자기의 도를 정통으로 삼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심지어 ‘수호전’의 역사가 정사로 둔갑하고, 문묘 안의 공자·안자를 쫓아내고 석가를 모실 날이 멀지 않으리라고 포효했다. 관우라는 한낱 무장이 성인이 되고 제왕이 되고 왕희지라는 한낱 명필이 문묘의 신주가 되는 판국에 말이다.

알다시피 관우는 중국 후한말, 하동(河東)군 해현(解縣) 출생의 무장이다. 유비, 장비와 의형제를 맺은 뒤, 충과 의를 지키다가 형주(荊州)에서 조조와 손권의 협공에 사로잡혀 죽었다. 기원 219년, 9척의 장신에 3척의 수염을 날리며 적토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선풍처럼 달리던 ‘삼국지’의 영웅은 촉나라의 수호신으로서 죽어서 후(侯)가 되고 왕이 되고, 다시 왕에서 제, 제에서 성(聖), 성에서 천(天)으로 올라 공자와 함께 ‘문무=성(文武=聖)’의 불사신이 되었다.

필자가 보기에도 관우는 중국 역사상 상식을 뛰어넘은 신이다. 생전엔 정후(亭侯)라는 한낱 무관에 불과했으나 사후에 승승장구했다. 유교·도교·불교 3교를 통관했고, 인(人)·귀(鬼)·신(神) 3계(界)를 아울렀다. 그가 죽은 지 41년 뒤, 촉나라 경요 3년, 후주 유선(劉禪)이 관우의 시호를 장목후로 추증하고선 남북조·수·당·송·명을 지나 청대 말기까지 왕·제·성·천의 영광을 누린 사람이요, 신이었다.

특히 명나라 때 영락황제는 관우를 신으로 격상하고 전국의 관묘를 ‘충무묘(忠武廟)’로 고쳐 부르도록 조서를 내렸고, 청나라 순치황제는 관우를 ‘충의신무관성대제(忠義神武關聖大帝)’로 봉했다. 건륭 이후 관우의 시호가 24자가 될 정도로 숭배의 예가 절정에 달했다.



서둘지 않고 성실해야 성인

숭배의 정은 관묘에서 드러났다.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보편화해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서울·수원·안동·남원 네 곳에 건립됐는데, 남산의 백범광장 산 기슭에 지금도 관묘가 있다.

중국의 그것은 몹시 다양했다. 크게 7종류다. 산서성 해주 그의 고향에 세워진 능묘, 하남성 낙양 관림(關林)처럼 옛날 왕릉의 규모로 지어진 능묘, 하남성 허창(許昌)의 춘추루처럼 관우의 격전지에 세워진 전승묘, 호북성 옥천산(玉泉山) 기슭의 소관묘처럼 백성의 행운을 빌어주는 현성(顯聖)묘, 북경의 변경 거용관(居庸關)의 관묘처럼 국방상 중요한 변새에 세워진 변관묘, 북경의 관묘처럼 국내 중요 도시에 세워진 지역묘, 그리고 대만·홍콩·마카오·싱가포르·뉴욕·샌프란시스코 등 중국인이 취락을 형성한 해외묘 등이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한국의 그것도 포함된다.

이렇게 다수의 관묘 가운데 낙양시 교외에 있는 관림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관우의 목이 묻혀 있다고 알려진 이 무덤은 ‘관림’으로 불리는 것부터 남다르다. 황제의 무덤을 ‘5릉’, 왕후의 무덤을 ‘총’이라 부르는데 유독 성인의 무덤을 ‘림’이라 칭했다. 여기서 중국인 의식의 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연암은 그날 일기에 낮은 목소리로 관우를 성인으로 칭호하고 관우를 학문하는 사람으로 추존하는 세태를 비난했다. 무장인 관우에게 제왕의 칭호를 둘러씌운 것을 관우 스스로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것이요, 만약 살아 있다면 천만에 받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무릇 학문이란 글자 그대로 ‘배우고’ ‘묻는’ 것이다. 그런데 배우고 묻는 데는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고 자세히 따지고 넓게 배워야 한다는 자세와 방법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와 방법에 앞서 사욕을 극복하고, 자기를 이긴 뒤라야 타고난 심성을 회복할 수 있노라고 인격 형성의 원칙을 밝혔다. 이런 바탕 위에서 지(知)·인(仁)·용(勇)의 3덕을 달성할 수 있노라고 명쾌하게 제시했다. 연암은 여기에 쐐기를 박았다. 관우가 아무리 의리와 용맹의 화신일지라도 자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아무리 춘추대의에 밝을지라도 그것을 깊이 묻고 넓게 배우지 못했다면 성인이나 학자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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