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코드명 코스모스를 찾아라’

대통령 의전 숨은 2인치

  • 입력2008-10-02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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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드명 코스모스를 찾아라’

    7월9일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일반인은 언론을 통해 늘 대통령의 움직임을 친숙하게 접하지만, 그 동선을 만드는 의전적 요소에는 낯선 것이 많다. 영화 시나리오 같은 행사계획표, 의전 역사, 의전 문화, 행사 코드, 선물, 국빈만찬, 정상회의, 예복, 예포, 영빈관 등 의전과 관련한 흥미로운 얘기를 외교부 의전총괄담당관실이 한데 모았다. 대통령에게는 의전이 세계와 대화하는 하나의 수단이며 동시에 전략이지만, 개인에게는 타인과 관계하며 자신의 목표를 이뤄나가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편집자’

    의전은 종합예술

    의전(儀典)은 하나의 종합예술이다. 영화 한 편을 찍으려면 대본이 있어야 하고, 그 외에도 조명, 카메라, 배우, 소품, 편집 등의 요소가 어우러져야 한다. 의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등 소위 VIP는 배우이고, 일정계획을 담은 행사 가제(Code Name)는 영화의 시나리오에 해당되며, 차량, 숙소, 연회, 출입국, 화물 같은 소품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비로소 하나의 의전행사가 완결된다.

    그러나 영화의 경우 배우가 NG(no good)를 낼 경우, 그 장면을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의전행사에서는 배우인 대통령이 실수를 해도 다시 할 수 없다. 그래서 의전 담당자들은 그런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피 말리는 노력을 기울인다. 영화에서는 먼저 대본이 있고 그 대본에서 설정한 이미지에 잘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기 때문에 작품의 성격에 맞는 배우를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의전행사에서는 배우에 맞도록 대본을 써야 한다.

    예컨대 전두환 전 대통령이나 노태우 전 대통령 같은 군 출신 대통령들은 이미 군대 의전에 익숙해 있어서 행사 진행에 정확성을 요구했다. 다리가 불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되도록 동선을 짧게 하고,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했다.



    2000년 인도네시아의 와히드 대통령 내외가 방한했을 때의 일이다. 와히드 대통령은 거의 앞을 보지 못하며, 그 부인은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했다. 따라서 와히드 대통령은 누군가가 부축해야 보행이 가능하고, 부인은 휠체어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누군가 밀어줘야만 이동이 가능했다. 거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리가 불편했다. 방한한 와히드 대통령 내외를 위한 국빈만찬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렸을 때 VIP들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특이한 의전 행사가 진행됐다.

    의전 행사계획은 한 권의 행사 책자로 완결된다. 이 책자는 3급비밀에 해당된다. 그러나 실제 행사계획대로 의전 행사가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며, 순간순간 바뀌는 상황에 의전 담당자들이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의전 행사의 성패가 달려 있다.

    의전의 5요소 ‘5R’

    의전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protocol’은 원래 공증문서에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맨 앞장에 붙이는 용지를 말한다. 그 이후 외교관계를 담당하는 정부부서의 공식문서 또는 외교문서의 양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고 있다.

    즉 의전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즉 첫째로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에티켓(etiquette) 또는 예의범절(good manners)이 개인 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일련의 규범이라면, 의전은 국가 간의 관계 또는 국가가 관여하는 공식행사에서 지켜야 할 일련의 규범(a set of rules)을 뜻한다.

    대통령 의전은 대통령이 참가하는 모든 행사와 관련이 있지만, 원래 국가의전은 국가원수뿐 아니라 고위급 외빈을 맞이하는 의전행사의 뜻으로 쓰인다. 방문 목적에 따라 국빈방문, 공식방문, 실무방문, 비공식 또는 사적방문의 네 가지로 나뉜다. 가장 격식이 높은 국빈방문은 초청국의 국가원수가 직접 영접하며 특별 예복을 입고 만찬을 베푼다. 공식방문은 여러 의전 절차가 생략되며 행정부 수반이 오찬을 베푼다. 실무방문은 격식이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의전에는 ‘5R’이라는 5가지 기본 요소가 있다. 첫째, 상대에 대한 존중(Respect)과 배려(consideration)다. 둘째, 의전은 문화의 반영(Reflecting Culture)이다. 셋째, 의전은 상호주의(Reciprocity)를 원칙으로 한다. 넷째, 의전은 서열(Rank)이다. 다섯째, 의전의 기본은 오른쪽(Right)이 상석이라는 것이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상대 존중이 첫째

    의전의 바탕은 상대 문화 및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출발한다. 지구상에는 190여 개국이 넘는 나라가 다양한 문화, 다양한 생활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의전 관행도 있지만, 문화권별로 독특한 것도 있다. 예컨대 우리의 경우 집 안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다. 의전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빈들을 배려하는 자세, 외빈의 입장에서는 지역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를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나 관습이 다르다는 것은 그 사회나 국가가 추구하거나 갖고 있는 가치가 서로 다름을 의미한다. 어느 나라는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어느 나라는 술을 안 마시는 등의 차이가 있다. 소를 우상시하는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에게 쇠고기로 만든 요리를 대접하거나, 술을 마시지 않는 나라에서 온 손님에게 술을 대접하는 것은 결례 중에도 큰 결례다.

    2007년 4월 이라크 말리키 총리 방한 시 이라크 측은 대통령 주최 만찬이 시작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상호 건배 제의를 하지 말자고 요청했다. 술 대신 사전에 준비한 사과 주스도 건배하는 사진에는 술로 비칠 수 있으므로 자국 내 보수적인 이슬람교도들에게 비판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날 만찬은 건배 제의도 없이 밋밋하게 시작됐다.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1999년 4월 이란 지도자로서는 20년 만에 프랑스를 방문하려던 계획을 돌연 연기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와 이란 정부가 공식 발표한 표면상의 이유는 ‘양국 간 일정에 합의하지 못해서’였지만 실제 이유는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 측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의 만찬석상에 포도주가 오를 경우 자리를 함께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측은 ‘금주’를 규정한 이슬람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프랑스 측은 ‘외빈이 초청국의 문화 관습을 따르는 것이 국제적 관례’라며 불쾌한 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문화적 차이에 따른 상호이해 부족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2001년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로즈가든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할 당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this man”이라고 호칭, 한국 언론에서는 미 대통령이 김 대통령을 무시했다고 호되게 비판한 적이 있다. 호칭에 민감한 우리 문화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이해 부족과 미국의 캐주얼한 문화 차이에서 생겨난 에피소드였다.

    문화와 의전

    우리가 속한 문화권이 아닌 경우 이른바 상식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 따라서 좀 더 세심한 의전을 위해서는 그 나라의 전통과 습관들을 미리 확인하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우리의 경우 감사의 뜻으로 전하는 카네이션이 프랑스, 러시아 등지에서는 장례식에 주로 쓰인다. 또 멕시코인에게는 노란색 꽃, 브라질 사람에게는 자주색 꽃, 일본 사람에게는 흰 꽃이 죽음을 상징한다.

    중국 사람들은 ‘우산’이라는 말이 이별을 뜻하는 말과 발음이 같아 우산을 선물하지 않는다. 또 종이 달린 것은 ‘끝내다’ 또는 ‘죽음’을 상징하는 ‘終(종)’을 연상시키므로 괘종시계를 선물하지 않는다. 일본 사람들은 칼이 관계의 단절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선물하지 않는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흰색 종이로 선물을 포장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중동지역 국가의 경우 국가 의전행사 때 여성을 동반하는 경우가 드물며, 모스크에서 예배를 보는 장소도 남성과 여성의 공간을 엄격히 구분한다. 반면 서구문화에서는 여성에 대한 우대가 특별하다. 서구의 의전은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 존중(lady first)’에서 유래된 측면도 있다. 이처럼 지역별, 나라별로 상이한 의전 관행과 문화를 이해해야 좋은 관계를 일궈나갈 수 있다.

    상호주의 원칙

    의전은 또 상호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상호주의는 상호 배려의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내가 배려한 만큼 상대방으로부터 배려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의전에서는 국력에 관계없이 모든 국가가 1대 1의 동등한 대우를 해야 한다. 한국 대통령이 상대국 방문 시 국빈으로 성대하게 대접을 받았다면, 그 나라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우리 측도 이와 유사한 의전상 예우를 제공하게 된다. 하지만 자국 대통령의 해외방문 때 의전상 소홀한 점이 있었다면 외교경로를 통해 불만을 표시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검토하기도 한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2006년 4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백악관 환영식장에서 중국의 국가 명칭을 ‘People´s Republic of China’가 아닌 ‘Republic of China’로 부른 것이라든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 때 파룬궁 여성의 돌발시위 등을 막지 못한 것이 중국의 불만을 자아냈고, 미국 측은 이를 해명하느라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전상 결례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사전, 사후에 충분한 설명을 통해 상대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상호주의가 항상 등가로 작용되는 것은 아니며 엄격히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많다. 상호주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 대통령이 중동국가를 방문하면 영빈관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국가에서 제공하는 호텔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최고급 호텔에 PRS(Presidential Suite)를 포함, 여러 개의 최고급 객실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다. 이 경우 엄격한 상호주의는 오히려 우리에게 지키지 못할 짐이 되기 때문에 ‘상호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Reciprocity will not be applied in the same way)’는 전제를 상대국에 미리 알리기도 한다.

    ‘코드명 코스모스를 찾아라’

    8월6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

    의전은 서열

    의전의 기준 및 절차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서열(rank)이라고 할 수 있다. 의전행사에서 기본이 되는 것은 참석자들 간에 서열을 지키는 것이다. 서열을 무시하는 것은 해당 인사뿐만 아니라 그 인사가 대표하는 국가나 조직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외국 대사들은 사적인 파티에서도 자신의 지위보다 낮은 좌석배치 등에 대해서는 강하게 항의하고, 퇴장도 불사하는 것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대사들의 서열은 주재국에 부임, 신임장을 받은 날짜를 기준으로 삼는다. 우리의 우방이라고 해서 미국대사를 의전상 우대하는 자세는 자칫 여타 참석 국가 대표들에게 큰 결례를 범하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개막식 당시 일본 총리와 황족 내외, 7개국 10명의 정상급 인사가 한국을 찾았다. 개막식에서 로열박스의 배치부터 대통령 주최 청와대 간담회 등 일정시 이들의 서열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의전 담당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됐다. 특히 일본 총리와 황족 간의 의전 서열, 국제축구연맹(FIFA) 인사들에 대한 서열을 어떻게 매기느냐가 중요했다.

    의전 담당자들은 우선 국가원수, 그 다음 행정수반 순으로 하되, 동급인 경우 영어 국명의 알파벳순으로 정했다. 이는 통상 다자간 국제회의에서 사용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우 의전상 황족이 총리를 앞서기 때문에 로열박스 내의 좌석 배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청와대 의전담당자, 일본과 FIFA 측 담당자들과 협의를 거쳐 오른쪽부터 고이즈미 총리-김대중 대통령-이희호 여사-FIFA 회장-일본 황족-황족 부인 순으로 자리를 정했다. 일본 총리와 황족을 떨어져 앉도록 해서 의전 서열의 민감성을 줄이면서 FIFA의 위신도 살린 것이다.

    모든 국가가 1국 1표제를 행사하는 유엔 총회의 경우 매년 추첨으로 1개국을 선정, 그 나라를 시작으로 알파벳순으로 좌석을 배정한다. 따라서 유엔에서 각국별 좌석은 해마다 바뀐다. 우리나라는 영어명이 ‘Republic of Korea’이므로 알파벳 순서에 따라 좌측에는 Qatar(카타르)가, 우측에는 Rumania(루마니아)가 늘 위치한다.

    국내행사 때 공직자 간의 서열도 민감한 문제다. 공직자의 경우 국가별로 헌법, 정부조직법 등 서열 법령에 따른 직위순서를 예우기준으로 삼는다. 공직자와 민간인이 섞여 있을 때는 고위직 공직자를 우선하고, 민간인은 사회적 저명도, 나이, 주최자와의 친밀도 등을 감안하여 서열을 정한다. 다만 외국인이나 여성은 내국인과 남성보다 우선적으로 배려하는데, 외국인은 보통 자국 대사나 고위 관리와 민간인 사이에, 그리고 공직이 없는 여성은 남편의 지위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서열관계를 명확히 정하는 기준이 없는 경우에는 역학관계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과거 정부의 예를 보면 외교부, 국방부 등 안보관련 부서 장관과 차관급인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간의 좌석배치에서 전자가 항상 먼저였다. 그러나 경제부처의 경우에는 차관급인 경제수석이 경제정책조정회의 등 경제관련 회의 때 장관들보다 상위 예우를 받았다. 안보부처 장관의 경우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가 가능해 청와대 수석이라는 중간 단계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한 반면, 경제부처의 경우 청와대 경제수석이 경제부처 장관보다 대통령에 대한 접근이 쉽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즉 권력자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힘이 실린다는 평범한 진리가 여기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오른쪽이 상석

    또 하나의 기본적 의전 기준은 오른쪽(Right)이 상석이라는 점이다.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왼쪽을 불경 또는 불결하게 여겨온 전통의 소산이 오른쪽 상석의 원칙으로 발전했다. 행사를 주최하는 주빈의 경우 손님에게 상석인 오른쪽을 양보한다. 정상회담 때 방문국 정상에게 상석인 오른쪽을 양보하며, 같은 원리로 다자 정상회의 때 정상회담을 자기 숙소에서 주최하는 측이 상대 정상에게 상석을 양보한다.

    다만, 국기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은 국기에 대해 상석을 절대 양보하지 않는 관행이 있다. 국가의 정상은 유한한 인간이지만, 국가를 상징하는 국기는 영원하므로 상석을 타 국가에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등은 이런 논란을 사전에 배제하기 위해 양측에 자국과 상대국의 국기를 함께 배치하는 실용성을 보이기도 한다.

    오른쪽이 상석이라는 관념은 서양에서 불문율처럼 돼 있다. 따라서 여성과 데이트할 때도 여성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 것이 신사의 도리라고 여긴다. 다만, 대통령 등 최고위직의 경우는 여성보다 상석을 차지한다.

    의전은 전략

    의전은 세계화 시대에 세계와 대화하는 수단이며, 동시에 전략(strategy)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국내 기업의 사장단 중에 비서 출신이 많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비서들은 상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돼 있다. 모든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visualize) 예상 가능한 상황을 꼼꼼하게 챙기는 습성도 있다. 또 의전의 제일 중요한 요소인 배려와 예의(good manners)의 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 인맥을 쌓아나가는 데 유리한 것이다.

    국가적 차원의 의전은 그 나라의 품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국가 목표를 달성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프랑스에서는 공식연회 때 외빈과 방문국의 음식 및 와인에 대한 이해수준을 토대로, 접대하는 음식 및 와인 종류를 달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음식이 한 나라의 외교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국제관계에서 흔히 목격되는 부분이다. 2007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때 답례만찬 주 메뉴로 전주비빔밥을 내놓았는데, 이는 남과 북이 하나임을 상징함으로써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줬다.

    의전행사를 준비하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의 기호, 취향 등 상대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며, 이러한 바탕 위에서 외교목표를 가장 잘 달성하기 위한 방향으로 모든 행사 준비가 이뤄진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회고록 ‘My Life’에는 한국의 의전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는 1993년 7월 방한시 청와대 녹지원에서 조깅하고 연무관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당시 의전 담당자들은 클린턴의 애창곡을 미리 파악해 그 음악을 틀어줬다. 클린턴은 회고록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과 재즈곡을 들으며 수영(swimming to many of my favorite tune from Elvis to Jazz)”했고 “한국의 유명한 환대(Korea´s famous hospitality)”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2007년 4월 이라크 말리키 총리가 방한했을 때 일이다. 전후 이라크에서 전력 사정이 열악하다는 것을 안 의전담당자들은 그의 방한 일정 중 울산 현대중공업 방문을 주선했다. 현대중공업 방문에서 발전기공장 견학이 의도적으로 추가됐는데, 말리키 총리 일행은 공장 방문 때 즉석에서 7000만 달러 상당의 이동식 발전기 구매 의사를 밝혔다. 의전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국가 이익과 연결되는 전략적 차원의 일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한 예다.

    행사 코드명을 찾아라

    1991년도 걸프전에서 사용된 작전명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은 중동지역을 나타내는 사막과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폭풍을 엮어서 만든 합성어다. 군사작전에 정보 누출을 막고 작전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작전명이 사용되는 것처럼 의전에도 행사 가제(Code Name)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보안을 유지하고, 유관기관 간의 업무 협조를 원활히 할 수 있다. 2008년 초 미국 부시 대통령의 중동 7개국 순방행사 가제는 ‘Clear Sky’였다. 이처럼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앞두고 행사를 준비하는 의전팀은 코드 네임을 정하고 행사가 끝날 때까지 그 이름을 사용해 보안 유지에 만전을 기한다.

    행사 가제를 정할 때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선 행사 가제는 행사 내용과 연관성이 있되, 보안을 위해 행사를 직접 연상시키는 단어는 넣지 않는다. 또 업무편의상 가제는 되도록 세 글자에서 네 글자 이내의 발음하기 쉬운 단어 중에서 선정한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한 과거에 사용된 가제를 피하며 어감상 이상한 단어, 이중적 의미를 포함하는 단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용어, 그리고 실패한 행사의 가제는 배제한다.

    예컨대 2004년에 사용됐던 행사 가제에는 코스모스, 보리수, 안데스, 첨성대 등이 있다. 코스모스는 2004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 때 지어진 가제로 한·러 간 우주과학 기술 사업 협력의 성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우주를 뜻하면서 러시아의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일컫기도 하는 ‘코스모스’가 채택됐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순방행사는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득도했다는 점에 착안해 ‘보리수’라 명명했고, 남미를 가로지르는 안데스 산맥의 칠레와 브라질 순방은 ‘안데스’, 영국 그리니치와 한국 첨성대의 상관관계를 응용해 영국 순방행사는‘첨성대’라고 불렀다.

    1980~90년대에는 우리나라의 유명 산(한라산, 지리산, 태백산 등), 유적(동대문, 숭례문, 경복궁, 덕수궁 등) 또는 바다(태평양, 대서양, 다도해 등) 이름을 딴 가제가 많았다. 최근에는 순방행사의 의의를 부각시키거나, 독창적인 코드 명을 발굴해 사용하는 추세다.

    역대 가제 중 흥미로운 것들을 꼽아보면, 1990년 12월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 공식 방문은 ‘노고산’으로 명명됐는데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만남이라는 의미에서 양국 대통령의 이름 첫 글자를 딴 것이다. 광활한 영토와 제국을 일구었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기상을 본받아 전세계로 뻗어나가자는 의미에서 ‘광개토대왕’이라 명명된 2001년 9월 김대중 대통령의 유엔 방문과 중남미 국가 순방 행사는 9·11 테러 사태로 취소되기도 했다.

    그밖에도 정확하지는 않으나 국화가 피는 계절에 순방한다는 의미로 지어졌던 ‘국화행사’(전두환 대통령의 1983년 10월 서남아·대양주 5개국 및 브루나이 순방)는 아웅산 테러가 일어나 전면 취소됐다. 이 때문에 조화로 많이 쓰이는 국화가 행사 가제로 사용돼 그런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또 ‘지중해’는 취소된 행사(1997년 3월 유럽 순방행사)의 가제라는 이유로 2007년 2월 이탈리아, 교황청, 스페인 순방행사 가제로 검토됐다가 제외됐고, 대신 해당지역 특산품인 ‘올리브’가 채택됐다.

    로열 설루트 21

    ‘코드명 코스모스를 찾아라’

    21발의 예포를 ‘로열 설루트’라고 하는데, 여기서 위스키 ‘로열 설루트21’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예포(禮砲) 발사는 방문국 정상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의미한다. 예포 발사 수는 영접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통상 최고의 영접 기준으로 치는 국빈방문(State Visit)인 경우 외국 정상이 서울공항에 도착할 때 21발의 예포가 발사된다. 8월25일 서울공항으로 들어온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위한 예포도 21발이 발사됐다. 공항 사정상 민항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면 예포를 발사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도 국빈방문에 대해 21발을 쏘는데, 공식방문(official)인 경우에는 17발을 발사한다. 요즘엔 의전 간소화 차원에서 생략하기도 한다. 예컨대 영국 총리나 일본 총리, 독일 총리 등이 미국을 첫 방문했을 경우 예포 발사 등 번거로운 의전 절차를 하지 않았다.

    이런 전통은 17세기 영국에서 싸움에서 패한 적군이 탄환을 모두 소진하도록 하던 데서 유래했다. 영국은 한때 해상왕국으로 군림하면서 약소국가로 하여금 먼저 예포를 발사하게 했고, 이후 국가 간 동등성 원칙에 따라 상호 예포를 발사해 의식의 중요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영국은 처음에 함정에 적재하는 표준적인 포의 수가 7문이라는 점에 착안해 7발의 포를 해군 예포로 쏘게 했다. 그런데 당시 화약은 질산나트륨으로 만들어져 해상에서보다는 육상에서 보관하기가 쉽고, 사용하기도 쉬웠다. 따라서 해상에서 1발을 발사할 때마다 육상에서는 3발씩을 발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21발을 쏘게 되었다.

    21발의 예포는 통상 ‘로열 설루트(Royal Salute)’라고 하며 미국에서는 ‘Presidential Salute’ 또는 ‘Salute to the Nation’이라고도 한다. 로열 설루트 21은 우리에게 위스키 상표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위스키는 엘리자베스 2세가 다섯 살 무렵부터 21년 후의 대관식을 예상하여 숙성시킨 스카치 위스키다. 1953년 6월2일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에서 발사된 예포의 수를 따서 ‘Royal Salute 21’이라고 명명했다.

    예포의 기준은 ‘군 예식령 4장’에 정해져 있는데, 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은 19발, 장관과 대장은 17발, 중장 15발, 소장 13발, 준장 11발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여왕을 위한 예포는 21발이지만, 왕실 기념일에 런던탑에서 예포를 쏠 경우 62발을 발사한다. 영국 여왕 생일이 에든버러 공작의 생일과 겹치는 6월10일에 124발을 발사하기도 했다.

    의전 성공 좌우하는 숙소와 영빈관

    공항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대표단이 숙소에 들어가서 별 불만이 제기되지 않는다면 행사의 70%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봐도 좋다. 숙소는 해외방문 계획이 확정되면 가장 우선적으로 조치하는 사항이다. 숙소가 원하는 곳에 확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일정이 주선돼도 전체 행사진행상 무리가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의 경우 영빈관을 갖고 있는 나라가 많다. 미국은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 중국은 댜오위타이(釣魚臺), 그리고 일본은 황실 영빈관을 갖고 있다. 그 외에도 스페인,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핀란드 등이 영빈관을 보유하고 있고, 북한도 영빈관인 백화원 초대소를 보유하고 있다. 영빈관을 갖고 있는 나라의 경우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예술 수준을 건물 곳곳에 심어둠으로써 건물 자체가 하나의 외교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꼭 국빈방문이 아니더라도 블레어 하우스에서 투숙할 수도 있으며, 19명 내외의 인사에 대한 체류 비용을 부담한다. 그러나 일본은 국빈방문일 경우에 한해 영빈관을 사용토록 한다. 이처럼 국가별로 예우 격에 따라 제공하는 숙소의 범위가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청와대에 영빈관은 있다. 그러나 이 건물은 외빈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연회장이나 행사장으로 쓰이는 건물이다. 건물 하나도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여러 국가의 예를 감안할 때, 우리도 숙소용 영빈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영빈관 사용이 어려운 경우 정상이 일반 호텔에 투숙하는데, 과거 우리 정상이 묵었던 호텔 중심으로 대상 호텔들을 물색한다. 예컨대 뉴욕 방문 시에는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싱가포르의 경우 페어몬트 호텔 등이 우리 정상이 애용하는 호텔이다.

    APEC, 아세안+3, ASEM 혹은 유엔 회의 등 다자 국제회의가 열릴 때, 주최 측(혹은 개최국)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호텔과 객실을 배정하거나 혹은 각국 대표단이 자체적으로 호텔을 확보하도록 한다. 각국이 자체적으로 호텔을 확보해야 하는 경우 적합한 호텔을 확보하기 위해 일대 전쟁이 벌어진다. 그나마 특급 호텔이 여럿 있으면 사정이 낫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서로 좋은 호텔을 확보하기 위해 물밑 암투를 벌이기도 한다. 숙소 확보가 각국의 국력 수준과 외교력의 시험대가 된다.

    특히 유엔 관련 정상회의가 개최돼 100여 개국 정상들이 뉴욕을 방문하면 유명한 특급호텔의 PRS는 거의 10개월여 전에 예약이 끝난다. 따라서 우리 정상이 유엔 관련 정상회의에 참석할 때에는 사전에 호텔 예약부터 해두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나, 예약 취소에 따른 위약금 부담이 있어 무턱대고 예약을 하기도 어려운 사정이다.

    ‘코드명 코스모스를 찾아라’

    7월9일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G8 확대정상회의 오찬.

    국빈 또는 공식 방한하는 국가원수 및 정부수반급 외빈 내외에게는 PRS 또는 로열 스위트룸 등 최고급 객실을 제공한다. 우리나라는 외빈에 대한 숙소 인심이 후한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우리보다 인심이 더 후한 나라들이 상호주의 적용을 요구하거나 재정 형편이 좋지 않은 일부 국가가 수행원들에게 더 많은 객실을 줄 것을 요구해 애로를 겪기도 한다. 2007년에 방한한 어느 국가 총리의 경우, 우리 측이 외빈영접 기준에 따라 제공할 객실 수를 제시하자, 상대측 의전관은 우리 대통령이 자기 나라를 방문했을 때는 더 많은 객실을 제공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고위급 수행원들에게 방을 제공할 때도 직급에 따라 객실 수준에 약간의 차등을 두는데,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장관급 공식 수행원(full titled Minister)에게만 주니어 스위트(Junior Suite) 룸을 제공하고, 여타 공식 수행원에게는 싱글 룸을 제공한다. 그러나 만약 상대국 측에서 초과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경우에는 방문국 측 비용 부담하에 객실 수준을 상향 조정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외교통상부 의전실에서 담당하는 최고위급 외빈의 방한 접수행사(2박3일 기준)에 드는 비용은 1억원 내외이며, 이중 25% 정도인 2500만원가량이 숙박관련 경비로 지출되고 있다.

    의전의 백미 국빈 만찬

    정상외교의 실질적 성과가 ‘정상회담’의 결과에 있다고 한다면, 의전 측면의 백미는 단연 ‘정상 만찬’이라고 할 수 있다. 국빈 만찬은 외국 정상에 대한 가장 정중한 예우이며, 방문국 정상을 위해 대접할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러운 연회다. 외교 사절을 받아들이는 접수국(接受國) 최고의 식재료와 최고급 와인으로 대접한다. 나라마다 국빈 만찬에 지극한 정성과 예산을 들이는 것은 국빈 만찬이 그 나라의 식문화, 서비스의 품격, 나아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만찬의 형식, 규모, 참석자, 좌석배치 등을 통해 함축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상대국에 보내기도 한다.

    따라서 국빈 만찬은 단순히 호화로운 향연이 아니라, 외교 수단이며 도구다. 최고급 와인과 음식을 앞에 두고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양국의 어려운 외교 현안을 풀기도 한다.

    19세기 왕정외교 시절에는 18가지 요리와 디저트, 8종류의 음료를 내놓는 등 각국이 연회에서 호화로움을 경쟁했다. 그러나 지금은 메뉴도 많이 간소화됐고 음료와 요리의 가짓수도 많이 줄어든 편이다. 만찬메뉴는 대체로 프랑스 요리 등 양식을 기본으로 애피타이저, 수프, 메인 디시, 디저트 및 커피나 차 등으로 구성된다. 이 기본 메뉴에 자국의 요리를 곁들인다. 중국은 양식보다는 중국요리를 주로 내는데 수프 1가지와 요리 3가지를 내놓으며, 음료로는 도수가 높은 마오타이와 같은 고량주 등 중국술을 제공한다. 중국도 최근 들어 와인이나 서양 요리를 국빈 만찬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12월 영국을 국빈방문했을 때 영국 왕실은 꿩수프에 연어 요리를 곁들인 가자미 필레와 새우요리, 그리고 메인 디시로 버섯을 곁들인 사슴고기를 내놓았다. 감자와 강낭콩, 양배추 볶음, 오이와 허브샐러드, 파인애플과 아이스크림, 과일 디저트와 커피 등 모두 7 가지 코스로 구성된 메뉴를 선보였다. 또 음료로는 식욕을 돋우는 식전주로 스페인의 셰리(sherry)주와 아이스크림과 곁들여 먹는 디저트로 포트(Port) 와인이 나왔으며, 메독 최고의 와인으로 명성이 높은 샤토 그뤼오 라로즈 상 줄리앙 1985년산 적포도주와 백포도주가 사용됐다.

    김종필 전 총리가 1999년 9월 일본을 공식 방문했을 당시 오부치 일본 총리가 환영 만찬을 주최했는데, 만찬 메뉴를 살펴보면 이례적으로 환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맨 처음 콜리플라워 크림을 곁들인 퐁당(Fondant), 한국산 송이버섯을 곁들인 콘소메, 인삼 셔벗과 송로버섯이 들어간 전복 및 농어로스트, 안심스테이크, 양상추와 크레송 샐러드가 제공됐다. 샴페인으로는 루이즈 포메리 1988년산, 적포도주는 보르도 메독 지역의 최고급 샤토 라피트 로쉴드, 백포도주로는 부르고뉴 지방의 그랑 크뤼급 코르동 샤를마뉴 1995년산이 나왔다.

    국빈 만찬 때는 분위기를 부드럽고 편안하게 하기 위해 음악 연주와 공연이 준비되는데 나라마다 최고 수준의 음악가와 공연 예술인들이 초청된다.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 영국 여왕이 주최한 국빈연회에는 슈베르트의 ‘군대행진곡’과 백파이프 연주곡 등 모두 14곡이 연주됐다. 김종필 총리가 1999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환영만찬 후에 일본의 유명한 가수인 고바야시 사치코씨가 ‘그림자를 그리워하며’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의 노래를 불렀으며, 한국의 판소리 공연이 이어졌다.

    미국 대통령의 국빈 만찬시 방문국의 특별한 손님이 초청되기도 하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1998년 국빈 방미 때에는 오페라 가수 홍혜경씨가 초청돼 ‘로드 모스트 호울리’와‘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드레스 코드

    우리말에 옷이 날개란 말이 있다. 영어 속담에도 ‘Fine clothes make the man’ ‘Fine feathers make fine birds’라고 해서 옷을 격에 맞게 입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비싼 옷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옷이 중요하다. 특히 의전에서는 항상 ‘드레스 코드(dress code)’에 유념해야 한다. 만찬 또는 오찬 초청장을 보낼 때는 ‘White Tie Preferred, Black Tie or National Dress’ 등 옷차림을 명시한다.

    ‘화이트 타이(White Tie)’는 가장 격식을 차린 차림으로 공식 만찬, 야간 리셉션, 음악회 등의 야간행사에 착용하는 정식 예복을 일컫는다. 테일코트(Tailcoat) 혹은 이브닝드레스 코트라고도 하며, 프랑스어로는 아비 누아(habit noir) 또는 아비 프락(habit frac)이라 한다. 원래 뜻은 뒷길의 도련이 제비꼬리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남자용 코트나 윗옷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남자의 정장을 말한다. 또 화이트 타이는 주로 수프와 생선 요리로 시작되는 긴 코스 요리 만찬 때 착용하는 정복이라 하여 ‘수프 앤 피시 슈트(soup-and-fish suit)’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화이트 타이는 조끼(흰색 면직물), 셔츠(흰색 윙칼라), 타이(흰색 Bow-Tie), 검은색 에나멜 구두로 구성되며 훈장을 함께 패용하기도 한다. 이때, 여성은 이브닝드레스(Evening dress·발끝까지 오는 긴 치마 드레스를 일컬으며 목이 긴 흰 장갑과 끈 없는 소형 백, 드레스와 같은 계열 색상의 구두와 함께 코디) 또는 전통의상을 착용한다.

    ‘블랙 타이(Black Tie)’는 파티, 만찬 등 야간행사에 착용하는 약식 예복으로, 19세기 초 영국의 디너 코트(Dinner Coat)를 뉴욕의 턱시도 클럽(Tuxedo Club)에서 연미복 대신 착용하면서 턱시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는 조끼(상의와 동일한 감), 셔츠(흰색 윙칼라), 타이(검은색 Bow-Tie), 검은색 에나멜 구두로 구성되며, 여성은 칵테일 드레스(Cocktail dress· 길이가 무릎 아래 또는 위로 약 2인치가 되는 실크, 새틴, 시폰, 벨벳 드레스를 일컬으며 이때 구두는 검정색 또는 갈색을 코디)를 입는다.

    최근에는 의전 간소화의 경향에 맞춰 라운지 슈트(Lounge Suit·사무실에서 착용하는 비즈니스 슈트로 동일한 감의 상하의에 흰색 또는 엷은 색 셔츠로 코디한다) 차림이 많아지고 있으나, 왕국 및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공식행사 때에 정식 예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양자회담이나 다자회의에서는 정상 간 격식 없는 친밀감을 위해 스마트 캐주얼(Smart Casual·콤비라고도 하며 색상과 감이 다른 상하의에 타이를 착용하지 않는 간편복)을 착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APEC, ASEAN+3 정상회의 같은 다자회의에선, 각국 정상들이 개최국의 민속의상을 입고 만찬 또는 기념촬영을 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코드명 코스모스를 찾아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콜링바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선물한 산돼지 이빨 조각.

    산돼지 이빨에서 불로주까지… 의전 선물

    외국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빠지지 않는 관례가 선물이다. 국가 의전에서 선물은 그 나라 문화의 반영이자 상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더욱이 외국 정상에게 주는 선물은 통상 그 나라의 전시관에 보관되는 경우가 많아 선물을 통해 홍보 효과도 노릴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금관, 거북선, 청자, 백자 등이 국빈용 선물로 많이 증정됐다. 전통 공예품이나 특산품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다. 특히 나전칠기 제품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어 외국 귀빈용 선물로 애용된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및 김영남 상임위원장에게 준 선물도 나전칠기 제품이었다.

    최근에는 좀 더 한국적인 재료와 종류의 국빈선물을 선정하는 분위기다. IT기술과 전통공예기술을 조화시킨 선물을 개발하는 노력도 그중 하나다. 최근 아시아, 중남미, 동유럽 지역의 일부 국가들은 한국 전통공예품 선물보다는 한국의 최첨단 IT제품(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 MP3 등)을 선호하는 추세이며, 2004년 12월 영국을 국빈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에게 수공예품인‘화각 머릿장’과 우리 고유의 전통화살과 함께 유명 방화 DVD(취화선, 박하사탕, 초록물고기, 오아시스)를 선물했다.

    일반적으로 선물은 정상들이 직접 주고받는 게 아니라 의전 직원을 통해 간접 교환한다. 직접 전달하면 즉석에서 보안검색을 할 수 없어 경호상 안전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선물이 무겁거나 크기가 커서 직접 교환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선물포장 위에 대통령 명함을 부착한다.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명함을 사용하지 않지만, 대통령 명함이 유일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바로 선물을 증정할 때다.

    대통령이 해외 외빈들로부터 수령한 선물은 본인 소유가 되는가? 고가가 아닌 경우 퇴임시 일부 가져가는 경우도 있으나, 원칙적으로 대통령이 외빈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행안부로 이관돼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된다. 2007년 4월 공포된 대통령 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앞으로는 국가기록원에 보관, 전시된다. 2007년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는 전·현직 대통령들이 외국정상 등 주요 귀빈으로부터 받은 선물 4000여 점이 보관돼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www.president.go.kr) 국빈선물 전시관에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받은 선물 목록이 연도별로 잘 정리돼 있다.

    역대 대통령이 받은 선물 가운데에는 독특한 것이 많다. 그중 몇 가지를 꼽자면 김일성 주석의 자수액자(박정희 전 대통령),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콜링바 대통령의 산돼지 이빨 한 쌍(전두환 전 대통령), 북한 수뇌부의‘불로주’(노태우 전 대통령), 장쩌민 중국 주석의 벼루와 동양화(김영삼 전 대통령), 브루나이 국왕의 모형 대포(김대중 전 대통령), 태국 탁신 총리의 초상화(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있다.

    선물도 다른 의전행사와 마찬가지로 세심한 준비와 교환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일부 중동 국가의 경우,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깜짝 선물을 하거나 즉석에서 선물을 직접 전달하여 상대국을 당황스럽게 할 때도 있다. 게다가 살아 있는 동물과 같은 생물은 죽거나 썩을 수 있어 보통 선물하지 않는데 일부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나라에서는 생물을 선물해서 당혹스럽게 할 때도 있다. 중동 지역에서는 매가 사냥할 때 유용하게 쓰이고, 왕궁에 매 사진을 걸어둘 정도로 귀한 동물로 여겨지고 있어 종종 선물용으로 사용된다.

    선물 선정 때 문화권별로 종교적인 또는 역사적인 금기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대체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거나 과거 불미스러운 역사의 상징물(예, 독일은 나치 문양), 칼, 생물, 흰색 꽃, 검은색 물품, 숫자 4 또는 13을 연상시키는 물건 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국가정상 등 주요 외빈을 위한 선물뿐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외국인에게 선물할 때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이다.

    ‘코드명 코스모스를 찾아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스페인 방문 때 탔던 롤스로이스 의전 차량.

    세계 정상들의 의전 차량

    이명박 대통령이 평소에 타는 의전용 자동차는 벤츠 S600 모델로, 각종 방탄기능을 갖추고 있어 수류탄을 비롯한 각종 무기나 폭발물 등 위험물질로부터 탑승자의 안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다. 이 차는 1998년 그루지야 대통령의 전용차로 쓰일 때 로켓탄 공격으로부터 세바르드나제 대통령의 목숨을 구해 진가를 인정받았다.

    대통령의 의전차량은 안전성은 물론 국가적 품위까지 갖춘 최고의 차량이어야 하며,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이러한 기준에 맞추어 최고의 모델 및 사양으로 다양한 의전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적인 명차 제작 업체들도 자사의 최고 사양모델을 국가 의전차량으로 내세워 자사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노력한다.

    청와대는 벤츠 S600 이외에 2005년 모델 BMW 760Li도 이용한다. 2003년 4월 출시된 이 차는 영부인 의전용으로도 애용되고 있으며, 2005년 부산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영부인의 공식 의전용으로 제공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로는 GM의 캐딜락 모델이 사용돼왔는데, 부시 대통령의 경우 방탄은 물론 생화학 테러에도 대비가 가능하고 첨단 통신장비를 갖춰 이동식 집무실로 손색이 없는 DST 프레지덴셜 리무진을 이용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를 ‘에어포스 원’이라 부르는 것처럼 이 차량은‘캐딜락 원’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재임시절 전세계에 3대밖에 제작되지 않은 캐딜락 플리트우드 브로엄 리무진을 기본으로 특수 제작된 전용차량을 이용했다.

    과거에는 포드사의 링컨 리무진도 미국 대통령 전용차로 많이 이용됐는데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닉슨 대통령 등이 주로 이용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은 재임 시 전용차로 포드사의 1961년형 링컨 콘티넨탈 컨버터블 리무진 모델을 사용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22일 텍사스 주 댈라스를 방문해 이 차를 타고 모터케이드를 하며 서행하던 중 저격당했다. 이 컨버터블 리무진 차량은 지붕(Bubble top)을 덮고 운행할 때 뒷좌석 냉각기능이 원활하지 않아 뒷좌석에 열기가 많아 불편한 단점이 있다. 특히 햇살이 강할 때는 이런 현상이 심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도한 열기와 탑승자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퍼레이드 전에 자주 지붕을 열어놓곤 했는데 우연치 않게 저격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후 컨버터블형은 대통령 전용차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 정상들 역시 자국산 자동차를 의전용으로 많이 이용한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여왕 전용차량으로 벤틀리 리무진과 랜드로버 리무진 등을 사용하고 있다. 2006년 영국에서 제작된 영화 ‘더 퀸’에서 여왕은 10년 넘은 랜드로버를 직접 몰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됐다. 영국 총리도 자국산 재규어 XJ6 소버린 등을 의전차량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대통령의 경우 자국산 푸조 세단 607을 사용하며, 자존심이 강한 나라답게 자국을 대표하는 자동차라는 점과 1980년 초 레바논 내전 당시 총알을 맞고도 끄떡없이 달리는 등 뛰어난 안전성을 보여줬다는 이유로 의전차로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구소련 시절 개발된 탱크보다 견고하다는 질(Zil) 리무진이 국가정상용 의전차량으로 이용돼왔지만,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은 이 차량을 예비용으로 사용하고 주로 독일제 방탄 벤츠 리무진을 이용한다고 한다.

    독일은 벤츠 리무진을 주로하면서 BMW, 아우디 리무진 등도 정상용 의전차량으로 사용해왔으며, 일본 왕의 경우 자국산 닛산 프린스 로얄 리무진을 사용해오다가 최근에는 도요타 센추리 로얄 리무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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