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불로장생(不老長生)영약? 이불 속에 있습니다

  •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대전 노인의전화’ 대표 chsrim@hanmail.net

    입력2008-10-02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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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양 막론하고 노인은 월평균 1회 이상 성관계를 한다.”
    • “흰 눈이 지붕을 덮었다고 집 안의 벽난로가 타지 않는 것은 아니다.”
    • “성생활은 엔도르핀을 분비시키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 “인간의 섹스 포기는 노화와 죽음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행동”
    최근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친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네도 주사 좀 맞아보지 않겠나?” 하고 물었다. 이 ‘주사’란 노화 증상을 늦춰준다는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말한다. 최근 중년 이상 남녀 사이에 태반 주사, 성장 호르몬 주사 등 노화억제를 목적으로 한 주사제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주사를 맞으면 피부에 생기가 돌고 피로감이 사라지며 근육량이 늘어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주사뿐 아니라 이마나 눈가, 팔자 주름 등을 제거하는 회춘 성형도 성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현대 의술의 힘을 빌려 ‘젊은 노인’이 양산되는 시대를 맞았다. 단순히 외모만 젊은 것이 아니라 체력이나 지적 능력도 젊은이 못지않은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노인은 무성(無性)?

    이들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노인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수동적으로 늙어가던 노인들의 문화가, 경제력 있는 노인의 증가와 여가생활에 대한 인식 변화,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려는 자세 등으로 인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 사회의 인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노인의 성’에 대한 편견이다. 우리는 노인의 성적 욕구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설령 인정하다 해도 그 욕구 충족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심하게 표현하면 우리나라 노인들은 남은 생을 ‘깨끗하게 살다 조용히 죽기’를 강요받고 있다. 노인은 손자를 돌보거나 옛이야기를 즐기면서 나무 가꾸기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생활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노인을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無性)의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편견 때문에 노인들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강제된 금욕에 스스로를 제한한다. 늙어서 부부가 한 이부자리에 있어도 흉하게 여기는 것은 보통이고, 이를 의식한 당사자들도 쑥스러워하다가 결국 각방을 쓴다.



    필자는 이를 ‘정신적인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저마다 외롭고, 노인은 더 외롭다. 그런데 젊은이가 이성을 그리워하면 ‘사랑’이고 노인이 그러면 ‘주책’이라고 한다. 소년의 욕심은 ‘야망’이고 노인의 욕심은 ‘노욕’으로 폄하된다. 그렇게 침묵과 희생이 노인의 덕목이라고 믿는 세상의 타성은 노인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폭력’이다. 우리는 이러한 무언의 압력이 노인에 대한 성적 학대나 성적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노인의 성 문제는 밝은 곳에서 거침없이 토론돼야 한다. 성욕은 부정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며, 본능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늙음의 최대 적인 고독과 외로움을 해결하고, 모든 이의 꿈인 장수와 회춘을 도와주는 수단으로 ‘성’을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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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가 장수와 회춘을 돕는다

    규칙적인 성생활이 건강을 유지시켜 준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 아칸소대 의대 데이비드 리프시츠 교수는 “매주 두 번 이상 절정감을 느끼는 남성은 한 달에 한 번 절정감을 느끼는 남성에 비해 사망률이 50%나 낮다. 여성의 경우도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하면 횟수에 관계없이 수명이 연장된다”고 주장했다. 또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사람은 섹스를 많이 한다. 미국 예일대 연구팀이 실제 나이보다 7~8년 젊어 보이는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일반인보다 성관계를 2배가량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매주 성관계를 갖는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월경주기가 더 일정하고,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도 증가해 골다공증과 골절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남성 전립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효과도 있다. 전립선에서 정액이 배출되고 고환에서 1억마리 정도의 정자가 나와 전립선염을 없애주고 몸 안에 있는 독성물질도 함께 배출된다.

    반면 성관계를 아예 갖지 않거나 소극적인 여성은 사망률이 50~150% 높아지고, 남성은 100~300%까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쯤 되면 젊은 사람, 노인 할 것 없이 결혼과 섹스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65세 이상 노인도 성생활이 가능할까? 이런 의문을 갖는다면 당신은 아직 20대나 30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보다 앞서 노인문제를 연구해온 서구사회의 여러 연구결과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많은 노인이 나이가 들어서도 성적인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흰 눈이 지붕을 덮었다고 집 안의 벽난로가 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인의 성을 빗댄 서양 격언이다. “늦바람이 용마루 벗긴다”는 노골적인 우리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흰머리와 주름살과 비례해 욕망이 쇠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평생을 통해 사람의 성생활에는 3단계 과정이 있다고 한다. 제1단계는 세상에 태어나 성장과 더불어 성을 자각하여 이성과 처음으로 교제하기까지, 즉 성의 발육단계다. 제2단계는 이성을 알고 결혼해 성행위를 계속하는 시기, 즉 성의 장년기다. 제3단계는 마침내 그 행위에 종식을 고하고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의 여력을 유지하면서 생을 마치는 시기, 즉 성의 만년기다. 전반적으로 성기능이 노화되면 남성은 발기나 사정이 늦어지고 여성은 질내 윤활기능이 떨어지거나 절정에 도달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러나 심각한 병을 앓지 않는다면 90대까지 성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여러 연구결과로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주의를 기울여 성생활을 한다면 평생에 걸쳐 가능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의 성 활동은 대체로 월 평균 1회 이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중년기 이후 성생활이 활발한 사람일수록 성 활동의 수준이 오래 유지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성생활 은퇴란 없다

    몇 년 전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미국 전역 45세 이상 성인 128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의식 조사에 따르면 “나이가 들어도 아내는 여전히 육체적으로 매력적”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다수였다. 더욱 놀라운 건 만 60~75세 남성의 경우 64%가 “배우자가 육체적으로 대단히 매력 있다”고 평가한 반면, 만 45~59세 남성은 59%에 그쳤다. 또 만 75세 이상 노인 가운데 남성 26%, 여성 24%가 성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노인들은 어떻게 성생활을 하고 있을까? ‘대전 노인의전화’가 대전 노인복지관과 경로당을 이용하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 31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인의 성생활 실태 조사보고서’(2005)를 보자. 먼저 성관계의 상대는 누굴까 자못 궁금하다. 남성 노인의 경우 성관계 상대가 배우자인 경우가 64%이고, 여성 노인의 경우는 39%였다. 언뜻 보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남성 노인보다 여성 노인이 더 많아 보일 수 있으나 ‘독신 할아버지’보다 ‘독신 할머니’가 훨씬 많은 현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성행위 빈도는 남성 노인의 70%가 월 1회 이상이었으나 여성 노인은 6개월에 2회 이상인 경우가 50%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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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시간이 많은 노년기에는 배우자의 존재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노인들은 성적 욕구를 어떻게 해소하고 있을까? ‘이성과 직접적인 성행위를 통해 해소하는 경우’가 35%, ‘참고 견디는 경우’가 28%였다. 성별로 보면 남성 노인은 43%가 이성 간의 성행위로 해소한다고 했고, 여성 노인은 41%가 참고 넘긴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우리가 ‘노인’이라 부르는 이들도 엄연히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은 사회에서는 은퇴했을지 몰라도 성생활에서 은퇴한 것은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노년의 성생활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공히 같은 근거를 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65세 노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성 태도’를 조사한 결과, 노년기 성생활을 찬성하는 노인의 49%가 “성생활이 노화방지 및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고, 반대하는 노인의 18%가 “건강에 해롭다”고 응답했다.

    노년의 성생활이 건강에 해로울 것이라는 주장은 주로 과도한 흥분에 의한 심장발작을 문제 삼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병원에서 진단한 결과 심장에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노인들에게는 “성생활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정답이다. 적당한 성생활이 전립선 질환이나 골다공증 같은 노인성 질환을 예방하고, 뇌를 자극해 치매와 건망증도 막아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생활이 노인들의 삶에 끼치는 심리적 영향이다. 성생활은 엔도르핀을 분비시키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며, 노후에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Use it, or lost it!”

    옛 소련 장수연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장수 노인 6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독신자는 한 명도 없었고 모두가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노인들이었다. 또 60세까지 성생활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은 수명이 8~10년 연장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60~80세에는 성호르몬의 양과 성욕이 줄어들지만 80세가 지난 뒤에는 오히려 성 호르몬의 양과 성욕이 뚜렷이 증가해 90세에 이르러서는 50세 안팎의 수준에 달했다. 이 시기에 한 달 이상 성욕을 억제하면 도리어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었다. 반면 70%는 성관계를 가진 다음 4~6시간이 지나면 관절통이 감소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노년기의 성생활이 수명을 단축시키고 건강을 해친다는 항간의 속설들은 그릇된 생각일 뿐이다. 금욕은 실제로 건강 유지는 물론 장수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금욕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 오늘날의 의학 상식이다.

    다만 노인이 성생활로부터 멀어져가는 최대 이유는, 상대가 없거나 성생활을 계속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등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그러나 동물의 생태를 눈여겨보면, 생식 욕구의 소실은 곧 삶에 대한 의욕이 없음을 뜻한다. 생식 기능의 정지는 자연도태, 즉 머지않아 죽음이 임박했다는 예고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섹스 포기는 노화와 죽음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섹스의 ‘용불용설(用不用說)’이다. 즉, 나이가 들수록 규칙적인 성생활로 성감을 유지하지 않으면 급격히 위축된다는 점이다. 쓰지 않으면 녹스는 것은 쇠뿐만 아니다. 인체에도 불용위축의 철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60세 이상 노인이 60일 이상 금욕하면 성 불능에 빠져 영원히 회춘의 가망성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의사들이 즐겨 쓰는 표현 중에도 “Use it, or lost it!(사용하라, 그렇지 않으면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섹스가 잘 안 된다고, 나이가 들었다고 의기소침하거나 성생활을 기피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다만 먼저 노화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인간의 정액은 눈물이나 침과 같은 내분비물이다. 따지고 보면 정액 1g이라야 껍질 벗긴 땅콩 한 알 분량에 불과하다. 사람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성교 감흥도가 약해지고, 특히 남성 노인의 경우 발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진다. 청·장년기에는 성적 자극에 의해 3~5초면 발기가 되나 60~70대에 들면 이보다 3배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사정 후 재발기까지 소요되는 시간, 즉 방사능력 회복 시간은 청년은 30분 내외인 데 반해 중년기에는 1~2시간, 노년기에는 12~20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부부가 함께 자야 하는 이유

    또 노인은 성교에서 젊은 사람만큼 격렬한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남성의 경우 사정의 두 단계가 한 단계로 축소되기 때문이다. 첫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갈 때 나타나는 절박하고 짜릿한 느낌이 노인에게는 없다. 여성의 성감 역시 젊은 시절보다 둔해진다. 이럴수록 배우자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며, 성기능을 돕는 적극적인 치료법도 시도해볼 수 있다. 최근에는 젊은 아들이 70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찾아 아버지의 발기부전 문제를 상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발기부전이나 폐경이 더 이상 성생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닌 것이다.

    노인들이 사는 집이라면 속칭 ‘효자손’이 하나쯤은 있다. 사람 손 대신 등 긁는 데 사용하는 효자손은 유독 나이가 들면 피부가 건조해지면서 등 가려움증이 심해지는 노인들을 위한 자구책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훌륭한 효자손이라도 따뜻한 사람 손만 하겠는가. 옆에 나란히 잠자리를 같이하는 남편과 부인이 서로 등을 긁어주며 정을 나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불로장생(不老長生)영약? 이불 속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편은 사랑방에서, 부인은 안방에서 떨어져 자는 것이 당연시됐지만 그것은 노인의 고독감을 부추길 뿐이다. 또 노부부일수록 함께 자야 하는 것은 밤에 서로의 건강 상태를 관찰하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다. 나이가 들면 뇌출혈, 심근경색 등 치명적 질환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증상은 격렬한 활동을 했거나 정신적으로 강한 자극을 받았을 때뿐만 아니라 한밤중 휴식 상태에서도 증상이 나타나는 일이 적지 않다. 특히 뇌혈류에 문제가 생기는 뇌혈전증이나 심장이 조이는 듯 통증이 느껴지는 협심증 같은 급성질환은 밤중에 자다가 발생하는 일이 많다.

    또 어떤 노인들은 감각과 동작이 둔하여 자기의 병적인 상태를 감지하지 못하고 위급한 상황이 올 때까지 스스로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질환들은 한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옮겨 응급조치를 받아야 하는데, 곁에 사람이 없을 경우 기회를 놓쳐 생명을 잃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심혈관계 질환이 있는 노인들은 특히 혼자 자다가 돌연사할 가능성에 주의해야 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라도 노년기 부부는 따로 따로 자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노년기 부부는 잠자리를 같이 하며 정신적인 위안을 받는다. 노년기가 되면 대개 잠이 줄어드는데, 한밤중 잠자리에서 부부가 회포를 나누는 그 자체가 바로 성적인 자극이며 향수이며 쾌락이다. 낮 동안 어떤 불쾌한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부부가 한자리에서 격려와 위안의 이야기를 몸과 마음으로 나눈다면 낮에 있었던 불쾌감도 말끔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인터넷상에 퍼져 있는 유머 가운데 ‘잠자리의 행태’에 관한 것이 있다. 20대는 포개져서 자고, 30대는 마주 보고 자고, 40대는 천장 보고 자고, 50대는 등 돌리고 자고, 60대는 다른 방에서 따로 자고, 70대는 어디서 자는지도 모르고 잔다는 것이다. 그냥 웃고 넘어가기에는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한국 노인의전화’에 70대 할아버지가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하소연을 했다.

    “나하고는 아예 잠자리를 하지 않으려 합니다. 처음에는 입을 다물고 집에 있더니 이제는 아예 아들네를 전전합니다. 큰아들네 있다기에 찾아가면 둘째아들네로 옮기고, 둘째아들네로 찾아가면 다시 큰아들네로 가고……. 나도 더 이상 못 참겠어요.”

    해로하지만 불행한 노부부의 모습이다. 왜 노인이 되면 섹스리스(sexless)로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을까. 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한국과 미국, 일본, 프랑스 등 4개국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개국 중 한국의 부부생활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우리의 경우 만족도는 남성 31.4%, 여성 35%였다. 일본은 남녀 모두 50%대였으며 프랑스와 미국은 남녀 모두 70%를 넘어섰다. 또 다른 제약회사가 29개국 40~80세 남녀 2만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한국인들은 응답자 120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4%가 일주일에 한 번 미만 또는 한 달에 한 번 미만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전체 응답자의 24%는 1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성생활을 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의 성 만족도나 섹스리스 상황은 세계적으로 보아 ‘심각하게 나쁜 수준’이다. 그리고 한국 부부들은 40,50대에 벌써 성적 무능력자의 길로 들어선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7년이나 길다 보니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일찍 배우자의 사망을 겪고 홀로 사는 기간이 길다. 미국 여성의 경우 평균 56세에 남편과 사별해 20~30년간 노후를 홀로 지낸다고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배우자의 상실은 노년기의 가장 큰 고통이다.

    열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

    무엇보다 배우자의 죽음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공인된 성 파트너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성생활이 중단되고, 성적 요구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된다. 성적인 활동이 부족하면 그만큼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자신이 살아 있는 느낌을 상실하게 된다. 배우자를 잃고 나면 종종 그 충격으로 홀로 남은 배우자는 긴 시간, 혹은 완전히 성행위와 담을 쌓는다.

    “자식들을 다 키워 놓고 나니 자기들 살기 빠듯하지. 자식들은 효도한다고 해도 내 마음에 흡족한 것이 아니거든. 옛말에 열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는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아니야. 젊은 애들은 늙은이가 그냥 살지 뭘 그러느냐고 할 테지만, 그래도 인간이라 외로운 건 다 똑같아요.”(70세, 남)

    “아무리 화창한 봄날이어도 혼자 꽃구경을 하고 있자면 봄날이 아니라 가을날 같아요. 가을이 되고 날씨가 추워지면 옆구리가 더욱 시려요. 젊은이나 노인이나 이성에 대한 감정은 다 마찬가지 아닌가?”(68세, 여)

    경로당에서 만난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의 하소연이다. 이들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봐도, 자식이 잘해주어도, 친구가 많아도, 손자 손녀가 재롱을 피워도 공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필자가 만난 어떤 노인은 다음과 같은 우화를 통해 노후생활에서 배우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어. 어느 마을에 효자, 효부가 났다고 소문이 자자했대. 그래서 고을 원님이 그들을 불러다가 ‘홀로된 아버지 재취는 시켜드렸더냐?’라고 묻더래. 그래서 못해 드렸다고 대답했대. 그랬더니 원님이 ‘다른 것은 다 했는데 왜 그것은 안 했느냐. 그게 제일 으뜸가는 효도다’라고 했다네.”

    2007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 인구의 9.5%인 459만명.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8%가 배우자가 없는 독신 노인군이다. 이들이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재혼이나 이성 친구를 사귀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대전 노인의전화’에 따르면 2006년 재혼이나 이성 관련 상담이 무려 47%에 달했다. 게다가 전화상담을 원하는 사람도 남자는 80대, 여자는 70대까지 올라가고 있다.

    평균수명의 증가는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혼자 지내야 할 시간의 연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년기는 일과 자녀 교육의 의무에서 해방돼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시기인 만큼 취미와 생활을 같이할 동반자의 존재가 절실한 시기임이 분명하다.

    더 나이가 들어 몸이 불편해질 때 돌봐줄 배우자가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다. 배우자가 있다면 더 건강하며 사회활동도 활발하게 할 수 있다. 노후생활에 배우자는 가장 가까운 말벗이며, 필요할 때는 가장 부담 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수발자이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에서는 노혼(老婚)이 노인복지 영역의 하나로 권장되기도 한다. 오래전부터 연금제도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서 노인들이 재혼할 경우 부부의 연금을 합치면 경제적인 면에서 더욱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이 크다. 국제적으로 노혼율을 비교해보면(2005년) 남성의 재혼을 기준을 영국은 한국의 4.3배, 스웨덴은 3.9배, 캐나다는 3.7배이고, 여성을 기준으로 보면 영국이 4.9배, 러시아 4.5배에 달한다.

    우리 주위에 외롭게 살아가는 노부모, 특히 홀로 노후생활을 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자. 그들의 진실한 소망은 무엇인지, 이성을 원하고 있으면서도 자식들에게 부끄러워서, 아니면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서 묵묵히 마음을 삭이며 외롭게 살아가고 계시지는 않는지 말이다.

    노인복지 차원의 ‘노인의 성’

    “내가 당신의 나이였을 때는 60세면 정말 늙은 줄 알았다. 하지만 60세가 그렇게 늙은 나이가 아니다.”

    2006년 환갑을 맞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젊은이들에게 한 말이다. 부시 대통령마저 자신이 나이 들기 전까지는 나이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가져왔는지 보여준다.

    노인에 대한 갖가지 사회적 편견은 자칫 노인의 정서를 무시하는 말로, 노인을 비하하는 언어적 학대 같은 인권침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 노인의 인권 문제 중에서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무관심과 무지 속에 깊이 파묻혀 있는 것이 바로 노인의 ‘성 권리’다. 노인을 탈(脫)성적 존재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고정관념 속의 편견은 노인 스스로 자신의 성 욕구를 제한하게 만드는 일종의 ‘성적 학대’다.

    앞으로 ‘노인의 성’은 노인복지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노혼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노혼을 상담하고 알선하는 전문기관이 지역사회 내에 많아져야 한다. 특히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시·군·구의 기초지방자치단체는 노인의 성적 권리를 적극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노인도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재혼이나 이성교제를 통해 노인들이 좀 더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개인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노인복지 측면에서 지역사회와 복지기관의 조심스러우면서 전문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불로장생(不老長生)영약? 이불 속에 있습니다
    林春植

    1949년 전남 무안 출생

    경희대 국문학과, 대만 중국문화대 대학원 졸업(사회학 박사)

    대만 중국문화대 노동사회학과 부교수 겸 국립중앙연구원 연구원

    한국노인복지학회 회장 역임

    現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바른사회 밝은정치시민연합 공동대표, 민주화운동 동지 모임인 ‘(사)71동지회’ 회장, (사)대전 ‘노인의전화’ 대표이사, 서울 ‘평화의집’ 원장


    끝으로 이와 같은 노인복지에 대한 투자는 곧 미래에 대한 투자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는 이미 2000년에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2018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14.3%로 ‘고령사회’에 들어선다. 2026년에는 20.8%로 높아져 ‘초고령 사회’에 이르게 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데 소요된 기간이 프랑스 115년, 스웨덴 85년, 미국 75년, 영국과 독일이 45년, 일본 25년였던 것에 비해 한국은 22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늙는 나라인 것이다.

    * 이 원고는 임춘식 교수의 저서 ‘성은 늙지 않는다’(동아일보사, 2008)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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