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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2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좌표 140319

  • 이호철

좌표 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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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스파이크

이튿날 박격포탄이 날아 떨어졌을 의심지역에 수색을 나갔다. 산간으로 이어지는 마을이었다. 논에서 일하던 머리에 낡은 누를 쓴 여자들이 눈치를 보다가 뒷걸음질로 도망을 쳤다. 소대가 마을로 들어서자 카오를 씹던 아낙들은 팜나무 잎으로 만든 들창문을 닫느라 정신이 없었다. 깡마른 촌장은 두 손을 합장하고 우리를 맞았다.

“따이한 남바완, 남바완.”

마을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소대장조 이상무!”



“선임하사조 이상무!”

마을 뒷산을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소대는 다시 두 개조로 갈라졌다. 우리는 선뜻 내키질 않았지만 도랑을 건너 산으로 들어섰다. 먼저 새들이 날아올랐다. 놀란 원숭이들이 이 나무 저 나무로 곡예를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런 중에 유령 같은 물체를 발견했다. 검은 복장의 적이었다. 바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수색 끝에 은신처를 찾아냈다. 땅굴이었다. 입구에 마른 나뭇가지를 미처 치우지 못한 것이 아군에게는 행운이었다. 소대장은 땅굴 안으로 들어갈 지원병을 물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서 병장이 나섰다. 철모를 벗고 머릿수건을 동여맸다. 자신의 화기를 내게 맡겼다. 소대장으로부터 권총을 넘겨받았다. 좁은 굴 속에서는 철모도 소총도 장애물이었다. 소대원들을 한번 돌아본 서 병장은 손전등을 켜고 엎드려 굴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정글화 바닥이 사라진다 싶더니 다시 보였다. 백지장 같은 그의 얼굴이 돌아섰다. 입구에 있던 내 옆에 나뒹굴었다. 그 순간이었다.

“꽈앙!”

폭발음이 들렸다. 왼쪽다리 정강이에 쥐가 나는 느낌이 왔다. 피를 보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 보니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야전병원이었다. 옆 침대에는 서 병장이 웃고 있었다.

“아니, 내 다리가?”

붕대가 친친 감긴 왼쪽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서 병장은 한동안 웃기만 했다. 권총을 겨누고 굴 안으로 들어섰는데 엎드린 적이 방망이 수류탄을 들고 있더란 것이었다. 총을 쏘았다간 같이 죽을 것 같아 망설였다. 그러자 적은 수류탄을 던졌다. 본능적으로 서 병장이 손으로 쳐서 막아냈다는 것이었다.

수류탄은 굴 안 초입에서 터졌다. 둘은 날아든 파편에 심하지 않은 부상을 당한 것이다. 서 병장은 오른쪽 팔뚝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다리를 다친 나를 헬기장까지 업고 뛰었다고 했다. 그렇게 냉철한 구석이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야, 서 병장. 너 배구 선수였냐? 강스파이크를 맨손으로 막게.”

키다리 서 병장의 별명이 강스파이크가 되었다. 나는 안경이 못쓰게 되어 다시 만들었다. 다리 부상보다 더 오래 걸렸다. 우리 둘은 열흘 정도 병원 신세를 지고 원대복귀했다. 우리는 진정한 전우가 되었다. 하늘에서 스콜이 시원스레 쏟아져 내렸다. 갑자기 샤워를 하고 싶어졌다.

국수사건

적군이 흔히 써먹는 박격포 공격은 간헐적이었다. 그들은 게릴라전의 명수였다. 한 달이면 한두 차례 기지 안으로 쏘아대곤 했다. 적의 포신은 아군 것에 비해 1mm가 컸다. 예를 들어 61mm, 82mm로 우리 포탄도 사용할 수 있었다. 적들은 포판이 무거워 아예 들고 다니지 않았다. 철모나 돌멩이 위에 포신을 올려 잡고 포탄을 집어넣어 날렸다.

본부와 떨어져 있는 독립 중대에서는 대부분 강물을 정수해서 식수로 사용했다. 적군이 소련제 독약을 풀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적군 출몰지역에는 연합군이 강물에다 독극물을 탄다고도 했다. 고엽제를 뿌리는 미군기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물이 없으면 절박해지기 때문이었다.

작전지역 대부분에 뿌려졌던 고엽제. 시야를 가린 정글은 연합군으로서는 눈엣가시였다. 정글만 사라지게 한다면 바로 전쟁을 끝장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에서 미국의 드넓은 농장에 비행기로 약제를 뿌리듯 그렇게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독성 강한 고엽제를 뿌렸다. 어떤 전우는 모기를 쫓는다며 맨몸으로 나가 고엽제를 비처럼 맞기도 했다. 나뭇잎만 고사하였겠는가. 다이옥신이 녹아든 빗물은 강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강물을 퍼다 마시고 샤워도 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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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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