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CHAPTER _ 4 도시구조 혁신과 새로운 스카이라인의 창조

  • 이인성 | 서울시립대 건축도시조경학부 교수 leeis@uos.ac.kr

    입력2009-02-10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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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조망권이라는 말이 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의 가격이 다른 곳보다 월등히 비싸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지금의 한강이 강변에 위치한 아파트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뜻도 된다. 반 발짝만 떨어져도 강이 거기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 짧은 점심시간에도, 길을 걷는 동안에도,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모든 시민이 한강을 누리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강변 메운 아파트 장벽에 바람길과 회랑을 열어라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한강은 푸른 강변공원, 도로, 줄지어 들어선 고층아파트 등 보기에는 그럴듯한 도시하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생태적 측면, 도시 활동의 수용, 도시경관의 측면에서는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외국 도시에서는 물과 만나는 도시공간을 보통 ‘워터프런트(waterfront)’라고 한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물 앞’이다. 비슷한 우리말인 ‘수변’‘강가’‘강변’‘해변’등에는 변두리 혹은 경계의 느낌이 배어 있는 데 비해, ‘워터프런트’에는 전면(前面), 입구, 관문의 뜻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강에는 진정한 ‘워터프런트’가 없다. 그동안 한강은 도시공간의 경계, 홍수를 막기 위한 방어선 또는 도로나 상하수관망 등 기반시설을 처리하는 변두리로 인식되고 그렇게 관리돼왔다.

    강변도로에는 수많은 차량이 다니지만 강의 전경을 느낄 겨를이 없이 고속으로 통과할 뿐이고 강변의 건물로 직접 출입할 수 없다. 강변에 늘어선 아파트들은 강을 바라보고는 있으나 강으로 향하는 통로는 막혀 있다. 강변의 공원은 보기에는 좋지만 정작 가려고 할 때는 입구를 찾기 어렵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는 더더욱 어렵다.

    한강이 이렇게 경계로 인식되고 관리됨으로써 서울의 강북과 강남은 서로 연계되지 않고 격리되며, 때로는 대립과 질시의 관계를 형성한다. 흔히 서울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강남북의 격차와 불균형발전 문제에는 ‘경계로 취급되는 한강’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강은 서울의 진정한 ‘워터프런트’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한강이 도시 활동의 집약점이자 표출점이고, 서울의 주요 관문이자 얼굴이며, 서울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강이 서울의 진정한 워터프런트가 되기 위해서는 한강에 대한 공공의 인식과 관리방식이 바뀌어야 할 뿐 아니라 강변의 개발 양상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1968~70년에 진행된 제1차 한강종합개발사업 개요.

    조선시대 한강은 서울의 남쪽 방어선이자 수운을 담당하는 강이었다. 1960년대 이후 고속성장의 시기에 서울의 도시지역은 급속도로 팽창해 한강이 서울의 가운데에 놓이게 되었고, 한강의 주기적 범람 피해를 막기 위해 체계적인 관리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60년대 후반 서울시는 본격적으로 한강개발사업에 착수했다. 한강의 홍수를 통제하기 위해 제방도로를 건설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강변의 토지를 주거단지로 개발한 것이 이 시기 한강사업의 초점이었다.

    개발이 남긴 영광과 상처

    동부이촌동, 반포, 압구정동 등 강변의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처음 들어선 것이 이 무렵의 일이다. 건설회사가 한강의 제방도로를 축조하고 강변에 생겨나는 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함으로써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재정이 빈약하던 당시에 한강의 홍수 문제를 해결하고 급격히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개발방식이 남북으로 자동차 전용도로가 달리며 강변에 아파트촌이 줄지어 들어선 현재의 한강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한강변 주거지역의 많은 곳이 재건축, 재개발 시기에 도달했거나 뉴타운 등 대단위 개발 예정구역에 포함돼 있다.

    1986년에 시작된 한강종합개발계획으로 이러한 개발 양상은 더욱 고착된다. 그때까지는 자연형 하천에 가까웠던 한강은 준설되고 직선화되어 흐름이 인위적으로 조정됐고, 수중보가 설치되어 갈수기에도 일정 수위를 유지하게 됐다. 한강 양안의 도로는 본격적인 고속화도로로 바뀌었으며 강변의 둔치에는 시민공원이 조성되어 ‘근대적’ 도시하천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의 한강 개발은 단기간에 최소의 비용으로 홍수 문제를 해결하고 강변의 외관을 정비하는 효과를 거뒀지만, 한강의 잠재력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낳았다. 한강변을 자동차교통이 차지하고 그 내부에 다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섬으로써 한강은 서울시민이 공유하는 공간의 성격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한강 르네상스는 이러한 한강의 문제를 해결하고 본연의 잠재력을 살려서 한강을 서울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폭제로 삼고자 하는 계획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한강변의 개발상황이다. 1960년대 한강 개발로 시작된 문제는 그 후 여러차례의 개발사업에 의해 해결하기 어려운 고질적 문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해결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1980년대 이전에 건설된 한강의 아파트 지구들은 이제 재건축의 시기에 도달했고, 기타 강변의 주거지역들도 재개발이 필요한 시점에 다다랐다. 한강변의 많은 곳이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거나 뉴타운 등 대단위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강의 개발과 관리가 현재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과거와 같은 개발방식이 되풀이된다면 한강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재개발 후에는 밀도가 현저히 높아져 지금과 같은 방식의 재개발을 다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시점은 적절한 유도와 관리로 한강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한강변 개발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방식의 정립이 현시점에서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한강을 막고 있는 고층아파트군. 흡사 병풍을 연상케 하는 획일적인 스카이라인이다.

    바람길과 시각회랑, 녹지축의 힘

    현재 한강의 경관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강의 경관이 막혀 있다는 것이다. 단조로운 고층아파트들이 한강변에 바싹 붙어서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이로 인해 강변의 아파트 주민들은 한강의 높은 조망가치를 누릴 수 있지만, 강변공원이나 강변도로를 이용하는 시민의 시야는 고층아파트의 숲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이 아파트들은 외부에서 강으로 향하는 조망도 차단하고 있어서 강을 건너는 다리나 강변도로로 나가야만 한강을 볼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강의 조망은 일반시민이 공유하는 사회 전체의 자산이 되지 못하고 강변의 아파트 주민 등 일부에 의해 독점적으로 사유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강으로 나가려면, 특히 보행이나 대중교통으로 한강에 가기 위해서는 숨어 있는 지하통로를 어렵게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한다. 한강의 공원은 일상적으로 활용되는 도시 오픈스페이스가 아니라 일부러 시간을 내 마음먹고 찾아가야 하는 공간이다.

    얼마 전 복원된 청계천이 큰 호응을 받은 것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점심 후 짧은 시간에도 손쉽게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가까이에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공간은 청계천에 비해 훨씬 넓고 크지만 우리는 한강을 쉽게 이용하지 못한다. 만약 드넓은 한강을 청계천처럼 시시때때로 찾아가고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의 질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보라.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한강을 통한 서울의 생태축 연결 개념도.

    강과 도시의 단절로 인해 한강이라는 중요한 생태적 축은 서울 전체의 생태계를 잇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한강은 서울을 둘러싼 환상녹지축과 서울 중앙의 녹지축을 연결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현재 한강과 이들 생태축의 연결은 매우 불량한 상태다. 용산의 미군기지 이전과 공원화에 대비해 한강의 생태기능을 복원해 서울의 생태축을 연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이유다.

    한강으로 향하는 바람길도 개방해야 한다. 도시가 급속히 성장하고 녹지가 적어지면 각종 인공열과 대기오염으로 인해 도시의 기온이 주변보다 높아지는 열섬현상이 생기는데, 한강의 바람길은 이 열섬현상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강은 그 자체가 커다란 바람길이지만 강변의 아파트로 인해 강으로 통하는 바람길이 막혀 도시 내의 공기 흐름이 한강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근래 청계고가도로가 철거되고 물길이 열리면서 인근 도심의 여름 기온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보고도 있었다. 한강으로 통한 바람길이 열린다면 서울의 전체지역에 이와 비교할 수 없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한강은 서울을 대표하는 중요한 경관자원이므로 한강변 건축경관의 관리는 그동안 중요한 과제로 지적돼왔다. 한강 연변의 조화롭지 못한 건축경관은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초래된 결과지만, 무엇보다도 그동안 체계적인 관리 방안이 없었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한강변뿐 아니라 아파트단지의 시각적 차단은 오랫동안 문제시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도가 있었다. 고층아파트의 시각적 폐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판상형(일자형) 아파트보다 건물의 전면 길이가 짧은 타워형 아파트를 짓고 단지 전체를 관통하는 시각회랑(통경축)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타워형 아파트도 여러 동이 들어설 경우 앞의 공간이 뒷 건물에 의해 차단된다. 통경축은 한 방향에서 보면 효과가 있지만 시점을 조금만 이동하면 건물이 겹쳐 보이고, 그 뒤쪽에 다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다시 조망이 차단되는 한계가 있다.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밤이면 아름다운 조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싱가포르의 수변공간. 오른편 강둑을 줄지어 불밝힌 곳은 낡은 창고건물을 수리해 조성한 수변 식당가 보트 키다.

    다양한 활동이 다양한 공간을 만든다

    한강변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관리 방안이 마련되지 못한 채 일부 재건축 사업이 시행되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 예로 최근에 완공된 잠실지구는 5층의 아파트가 30층 이상으로 재건축되었는데, 시각적 위화감을 해소하기 위해 타워형 아파트를 많이 짓고 통경축을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5층의 벽이 30층 이상의 벽으로 대체되어 한강의 시각차단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러므로 단지 차원에서 한강의 경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문제는 보다 큰 지구 또는 도시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이미 연속적인 공간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는 간선가로를 중심으로 시각회랑을 만드는 것이다. 일단 한강변의 개발단위를 대규모화하고, 주요 통경축 역할을 하는 간선가로 주변에 공원 등 오픈스페이스와 학교 등 저층 공공시설을 집중 배치하며, 그 주변의 건축물 높이를 제한함으로써 시각통로를 확보하는 방법이 실효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통경축은 그 위치와 폭에 따라 한강의 막힌 경관을 여는 통경축이 되기도 하고, 도시공간과 한강을 연결하는 주요 보행통로의 역할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서울의 광역 녹지축을 잇는 동시에 한강의 바람길을 연결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간선가로를 중심으로 한 한강변 시각회랑의 확보 개념도.

    한강 경관의 또 다른 문제는 단조롭고 획일적이라는 것이다. 단조로운 경관은 비단 건물 외관의 문제만이 아니다. 다채로운 경관은 문화, 상업, 업무 등 다양한 도시 활동이 그 장소에서 일어나야 만들어질 수 있다.

    현재 한강 연접지역은 대부분이 사유지다. 한강변의 사유지는 배후 도시지역이 한강과 연결되는 것을 공간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것은 한강변 사유지의 대부분이 주거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 주거지역의 대부분을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토지이용이 주거지역 위주로 이뤄진다고 해서 반드시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주거 단일 용도의 토지 이용으로 인해 다른 도시 활동과 기능이 한강변으로 들어오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 큰 문제다.

    이러한 문제점은 아파트단지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단독주택 지역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상가가 들어서고 가로를 따라 다양한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아파트단지에는 단지내 상가 이외의 다른 기능은 원천적으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일단 단일 용도의 주거기능이 형성되면 용도의 변화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물의 외관을 아무리 다양하게 설계하더라도 경관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드니 달링하버, 도쿄의 오다이바 등 외국 워터프런트의 다채로운 경관은 수변에 일어나는 활기찬 도시 활동이 드러난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토지 이용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한강을 서울의 진정한 워터프런트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강변에 늘어선 고층아파트들은 한강으로 향하는 바람길을 막아서 열섬현상을 심화시킨다.

    한강의 경관을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주거 용도 일색인 한강변의 토지 이용을 다양화해야 한다. 상업기능이나 업무기능 같은 중심기능을 한강변으로 유치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문화와 공공기능을 한강변에 집중적으로 배치해 한강을 문화와 생활의 중심축으로 만드는 일이 시작돼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부지는 강변의 대규모 재개발 및 재건축사업에서 기부채납을 통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강변 개발의 용도를 복합화하는 일도 병행되어야 한다. 아파트단지로 강변을 막아버리는 개발은 이제 지양해야 하며, 주거지 개발에도 일반시민을 위한 문화기능과 편익기능을 반드시 포함해 복합용도로 개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한강변에 문화 및 공공기능, 가능하다면 부분적으로 상업업무의 기능을 도입할 수 있다면 한강에서의 시민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시민들이 한강을 좀 더 가까이 느끼고 손쉽게 찾는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 것이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한강을 진정한 도시 활동의 중심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한강과 도시공간을 연결하는 시각회랑, 보행통로, 녹지축 및 바람길의 조성.

    한강의 경관을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강변 건축물의 배치와 외관도 체계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최근 서울시의 디자인 심의 강화로 건물의 외관 디자인은 많이 향상됐지만, 건물배치의 문제는 개선되고 있지 않다. 한강변의 건물배치와 관련된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강변에 바싹 붙어서 고층건물의 벽이 형성되는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중·고층을 적절히 혼합하고 조화시킨 배치를 적용하고 특히 한강변에 배치되는 건물의 높이를 비교적 낮게 유지하면 해결될 수 있다. 이와 함께 건물을 강변으로부터 뒤로 빼 배치해서 강변에 공공공간을 확보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개별 단지개발에 건물의 높이제한을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한강변에는 거대한 아파트의 벽이 쳐질 수밖에 없다. 높이가 제한되면 도시계획에서 허용된 용적률을 찾기 위해 거의 모든 아파트 동을 최고 허용 높이까지 높여야 하고, 이로 인해 강변에 거의 같은 높이의 고층아파트가 획일적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강의 배후 조망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연변지역에 대해서는 높이제한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강으로의 보행 접근성 향상에도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지금까지 계속 이루어져왔지만, 주로 강변도로 하부에 지하 보행통로를 만드는 소극적 방식이 사용됐다. 이제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경우 강변도로를 지하화하는 좀 더 적극적인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강변도로의 지하화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되지만, 강변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민간개발에 그 비용의 일부를 부담케 하고 이에 맞는 용적률과 높이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한다면 공공재정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이를 실현할 수 있다. 강변도로의 지하화는 강변의 민간개발에도 큰 혜택이 되므로 민간에서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더라도 손해가 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 한강변을 지나는 대중교통수단의 개설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모노레일, 전차(트램) 등 환경에 미치는 피해가 적으면서도 관광과 일상생활에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한강 가까이에 제공된다면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한결 손쉽게 한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치들이 종합적으로 시행되면 한강은 고속화도로와 아파트단지의 켜로 막혀 있던 모습에서 벗어나, 지하화된 강변도로 상부에 조성된 녹지를 통해 강과 도시공간이 긴밀하게 연계되고 시민들이 강변의 문화시설과 공공시설을 활발히 이용하는 장소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강변 개발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발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한강변 개발의 큰 목표는 개발의 공공성 확보와 활동의 다양성 및 접근성 확보 두 가지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소규모 단지별 개발방식에서 탈피해 적정단위의 통합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와 같이 소규모 단지별로 재건축 및 재개발사업이 진행된다면 시각회랑 및 공공시설 부지확보, 한강변으로부터 이격된 건물배치, 중고층이 적절히 조화된 단지배치, 강변도로의 지하화 등 지금까지 이야기한 모든 구상이 실현 불가능하다.

    한강의 경관을 모든 시민에게

    한강변의 현재 개발 상황, 단지별로 재개발·재건축이 진행될 경우 예상되는 경관, 통합개발을 유도할 경우 예상되는 경관(위부터).

    규제완화와 인센티브의 조화

    지금까지의 개발사업은 민간이 주체가 되어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공공(서울시)은 이를 검토해 승인하는 과정으로 이뤄졌다. 민간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서 상호 협의와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우므로 이러한 방식으로는 대단위 통합개발을 기대할 수 없다. 한강변의 민간개발 방식이 이러한 단지별 개발방식에서 지구 차원의 개발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서울시가 주체가 되어 시각회랑, 공공부지 확보, 적정 개발밀도 및 건물배치, 강변도로의 지하화 등 기반시설계획이 망라된 권역차원의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민간의 개발주체와 협의해 실현시키는 방식이 도입되어야 한다.

    한강 르네상스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많다. 일례로 강변의 민간부지에 상업, 업무 등 중심기능을 도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주거지역을 상업지역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적정 공공기여 없이 이를 허용하면 특혜 시비가 일 소지가 크고, 공공기여를 위해 많은 토지를 기반시설로 기부채납 받으면 중심기능으로 개발할 수 있는 부지가 매우 줄어들어 의미가 없어진다.

    현행법상 기부채납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의 종류가 도로, 공원 등으로 매우 제한되어 있는 것도 공공성 높은 시설을 한강변에 유치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건물의 배치를 다양화하고 시각회랑과 공공부지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건물의 높이제한을 완화해야 하는데, 건물 높이의 완화는 배후조망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그 기준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어서 형평성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 모든 논의의 중심에는 개발의 공공성과 사업성 확보의 문제가 관련돼 있다. 결국 한강변 개발에서 지금까지 이야기된 여러 가지 구상을 실현하면서 어떻게 적정한 공공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강변의 필요한 구역에 대해서 공공이 선도적인 종합계획을 수립해 기반시설 기부채납 등 적정 공공기여 방안을 민간에 제시하고, 그 대신 사업에 관련된 각종 규제를 완화해 민간사업의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또한 민간은 규제완화로 확장된 계획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사업성을 확보하고, 요구된 공공기여를 충실히 이행해 공공의 환경개선에 기여하면서도 민간사업의 수익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창의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한강 경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공과 민간의 협력과 적절한 역할분담 및 공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강 르네상스의 화룡정점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한강과 같은 큰 강과 북한산과 같은 명산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예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강과 산은 서울이 가진 큰 자산이며 세계도시와 경쟁하는 데 굳건한 바탕이 될 수 있다. 한강은 서울을 가로지르는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서울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쾌적성(amenity)의 주된 요소로서, 도시활동을 통합하는 공공공간으로서, 도시의 상징과 브랜드로서 재인식되어야 한다. 이 귀중한 자산의 잠재력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인지에 서울의 장래가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여러 차례 한강개발사업이 시행되었고 이로 인해 파생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지금까지의 계획들에서는 공공부문에 초점이 맞추어져 한강 변 개발 관리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지 못했다.

    한강 르네상스 계획에서 강변의 개발 관리 부분은 이제 기본계획이 끝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이번 한강 르네상스 계획은 강변 개발 관리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하는 첫 번째 계획이 될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한강의 경관 문제는 영원히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강 르네상스는 한강 연변의 개발 및 관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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