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불황의 시대, 교도소 가는 사람들

“여기에 한 달만 있어도 벌금 150만원이 공제되잖아요…”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9-05-07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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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없이 지내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어깨가 축 처지는지…. 불황 중 성황인 이곳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교도관 감시 아래, 두 줄로 걸으며 전자탐지기를 통과하는 이들에게 활기는 없다. ‘1초만 참자’ ‘용서함을 아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교화 문구를 보며 멍하니 걷는 이들에게 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불황의 시대, ‘5.17평’ 방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만나봤다.
    불황의 시대, 교도소 가는 사람들
    20년 지기 친구가 자신은 신용불량자라 통장을 만들 수 없다면서 대신 좀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현찰을 빌려주마 했더니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대포통장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대가로 뭘 받은 것도 아니고 친구지간이니까 만들어준 건데, 그것 때문에 제가 벌금 300만원을 내야 할 줄은 몰랐죠. 여기에서 나가면 그 친구를 찾아내 아주 의 낼 겁니다.”

    2008년 초 A씨는 경찰에 불려가 몇 달 전 친구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A씨가 전과기록은 물론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별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말만 믿고 그 일에 대해선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러다 4월 2일 의정부역 앞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중 경찰의 무단횡단 집중단속에 걸려 의정부교도소로 오게 됐다. 벌금 300만원을 미납했다는 이유에서다.

    “주소지가 평택으로 되어 있는데 제가 외지 생활을 해서 그런지 벌금 나왔다는 통지서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미납 벌금만 내면 됐지만 낼 돈이 없었습니다. 단돈 300만원이 없는데, 어쩔 도리가 없더라고요.”

    의정부시에서 건설업체로 등록해 조그만 아파트 공사를 해왔다는 그가 벌금 300만원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갔다는 게 이상했다.

    “건설 쪽은 ‘최저낙찰제’예요. 싸게 부르는 쪽이 낙찰되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까 공사를 해도 이윤이 거의 안 남습니다. 1억원 들여 하는 공사를 9000만원에 계약하는 꼴입니다. 이렇게라도 해서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 이후 계약을 못 따니 어쩔 수 없어요. 그래서 남은 것은 빚 3억원뿐입니다.”



    1997년 IMF외환위기 때에는 건설업계에서 돈 번 사람이 꽤 있었다. 건설의 경우 시공하는 전년에 공사 계약을 마치는 게 대부분인데, 계약할 당시보다 시공할 때 인건비가 훨씬 싸졌기 때문이다. 일거리가 없으니 사람들이 너나없이 일하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당시에는 돈 번 건축업자가 많았다. 지금은 돈이 없어 교도소행을 택한 A씨도 당시에는 한몫 챙겼다고 했다.

    “전세계적으로 다 어려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은 도리어 공사를 안 해야 돈 벌 수 있는 구조입니다. 건설업 하면서 빚 안 진 사람이 없어요. 최소 몇억씩은 빚을 졌을 겁니다. 1년 순수익이라고 해봐야 가족 먹고살고 제 용돈 쓰는 정도죠, 뭐.”

    일시불로 낸다는 게…

    경제위기라는 요즘, A씨와 같은 노역수용자가 증가한 게 사실이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노역수용자 1일 평균 수용인원’이 2007년 1797명이었다가 2008년 들어 2036명으로 늘었다. 기자가 방문한 의정부교도소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보통 노역수용자가 70, 80명 정도 됐는데,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늘었습니다. 오늘 (4월8일) 기준으로 총 148명이 있으니 2배로 는 셈입니다. 아무래도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벌금 대신 노역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우리 관할 노역수용자의 직업을 살펴보면 무직이 30%, 단순노동이 20% 정도 되는데, 이처럼 직업이 불안한 사람들에게는 벌금 내는 게 녹록지 않겠지요.”(배명수 의정부교도소장)

    노역장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벌금 미납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되거나 거리를 지나다 불심검문에 걸려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개중에는 ‘벌금을 내는 대신 노역을 살겠다’고 자발적으로 오는 이도 있다. 의정부검찰청에서는 그런 사람이 1년에 3,4명 된다고 한다.

    경기가 좋지 않아 벌금 대신 노역 사는 걸 택한 사람이 증가했을 것이란 추정은 가능하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이들의 증가 추이를 알기 어렵다. ‘적발돼서 오게 된 사람’과 ‘자발적으로 교도소에 온 사람’을 구분해놓지 않기 때문이다.

    한눈에 봐도 단단해 뵈는 50대 B씨도 자발적으로 노역장에 왔다. 고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구리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던 중 음주운전으로 벌금 400만원을 구형받았다.

    “축구를 같이하는 친구들과 술을 자주 마시는 편입니다. 술은 제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안 마시려야 안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벌금이 400만원 나왔는데, 돈 낼 형편이 안 됐지요. 잘나가던 족발집이 지난해부터는 손님이 없어 집세도 인건비도 밀린 상황이거든요. 대학생 자녀가 둘이나 되다 보니 1기분에 1000만원씩 내야 하는데…. 학비는 근근이 모아둔 돈으로 충당했지만, 도저히 그 돈에는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불황의 시대, 교도소 가는 사람들

    노역수용자들은 하나같이 “벌금이 분할 납부만 되었다면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벌금을 일시불로 낼 수 없었던 그는 스스로 경찰서를 찾아갔다. 노역장에서 하루를 지내면 5만원씩 공제된다고 하니 80일만 들어갔다 나오면 되겠다 싶었다. 기간이 짧아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제가 그동안 음주운전으로 적발돼서 나라에 낸 돈이 3000만원은 넘을 거예요.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장사가 잘돼 연체 한 번 없이 제꺽제꺽 냈어요. 벌금 못 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늘 여윳돈이 있었는데…. 여기 오면서 집사람이랑 다투지는 않았어요. 목돈을 마련할 마땅한 방도가 없었고, 일시불로 큰돈을 내는 것도 부담스러웠어요. 벌금이 분할(입금)만 되었더라도 숨통이 트였을 텐데 어쩌겠어요, 내가 벌여놓은 일은 내가 책임져야죠.”

    10여 명의 사람과 5.17평짜리 방 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돼지처럼 느껴져 입소 한 달 뒤부터 일반 재소자들과 함께 수첩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자녀를 휴학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나 때문에 아이들을 곤란하게 만들 순 없다”고 했다.

    결혼축하주 마셨을 뿐인데

    서른여섯의 C씨도 제 발로 법무부에 갔다. 베트남인 부인과 갓 태어난 아이가 “베트남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다음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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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도소 측에선 일거리도 없고 노역수 관리도 어려워 노역수를 종일 방 안에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2007년 5월 베트남에 가서 결혼을 하고 온 뒤에 일이 꼬이기 시작했어요. 서른네 살까지는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서른다섯 되니까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잖아요. 남고, 부대, 통신 직장, 이런 데만 있다 보니 여자친구가 없었어요. 뒤늦게 얻은 하청직이지만 일자리도 탄탄하고 월 220만원 정도는 버니까, 사랑하는 데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결혼했죠. 그러곤 아내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전세를 얻었습니다. 교외 쪽이었는데, 2700만원짜리 전세였습니다. 그런데 집을 먼 곳에 얻은 게 화근이었어요.”

    친구들과 결혼 축하주를 마신 그는 음주운전사고를 냈다. 게다가 뺑소니였다. 만취상태였던 그는 사고지점에서 1km를 더 가서야 본인의 차바퀴가 빠져버린 걸 감지했다. 당시 상대 차 운전자는 경찰에 신고한 상태였고, 멀뚱거리던 그는 그 자리에서 뺑소니와 음주운전 혐의로 붙잡혔다. 합의금 1000만원을 주거나 감옥에 가야 했는데, 7월에 입국하는 아내를 두고 감옥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렵게 전세금을 빼서 합의했다.

    이 사고로 자동차, 오토바이 운전면허가 취소되는 바람에 무면허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9년 동안 KT 하도급업체에 있으면서 유선전화, 광케이블, 인터넷 개통 일을 해오던 그에게 오토바이는 없어선 안 될 존재였다. 그렇다고 면허를 따기 위해 5년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불황의 시대, 교도소 가는 사람들

    교도소 내부에는 교화 문구가 50m 간격으로 걸려 있다.

    “집사람은 한국에 왔지, 뱃속에 아기는 있지, 배운 게 이거니 이 일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말도 모르는 아내에게 일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렇게 3개월 정도 일하다 다시 접촉사고가 나 쇄골 뼈가 부러졌고, 그 사고로 벌금 700만원을 내게 됐습니다. 제 오토바이가 차 앞에서 차선변경을 했다는 이유로 다 뒤집어쓴 거죠. 그래선지 오히려 상대방 차 운전자가 위로금조로 200만원을 줬습니다. 그래도 내야 할 벌금은 500만원이나 되더라고요.”

    마침 아기가 1월에 태어났고,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전세금으로 벌금을 낼 수도 있었지만 그마저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었다. 그래서 어렵게 결심했다.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는 잠시 처가에 맡겨두고, 그 사이 벌금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한 달만 있어도 150만원이 공제되는데, 제가 밖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갚을 수 있는 돈이 아니죠. 몸이 아파서 하던 일을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부탁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족이라고는 식당 일 나가는 어머니만 계시거든요. 동생은 빚만 남기고 도망가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황이고요…. 인터넷 뒤져보니까 돈 못 내서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렇게 겁나지는 않았습니다. 나처럼 돈 없는 사람들 오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도리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생각하시는 그대롭니다. 교정시설이다 보니 행동 반경이 좁고, 제약당하다 보니 아무래도 어려운 면이 있지요. 좁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화장실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 그 좁은 방 안에서 볼일도 공개적으로 봐야 하고…. 하루 30분이라는 운동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방 안에 있어야 하니까 답답하죠.”

    그는 이런 고통보다 “심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는 게 가장 큰 고통”이라고 했다.

    노역장에 있는 사람은 벌금이 소액인 경우가 많다. 의정부교도소의 경우 노역기간 1개월 미만이 19.5%, 2개월 이상 3개월 미만이 35.1%, 3개월 이상 4개월 미만이 20.2%, 4개월 이상 5개월 미만이 12.1%로 절대 다수가 5개월 미만이다. 벌금액도 대부분 600만원 이하다.

    의정부교도소 관계자는 “노역장에 하루 있으면 보통 5만원씩 공제해주기 때문에 대다수가 5개월도 채 되지 않아 출소한다”고 말했다. 하루를 5만원이라고 계산하면 한 달이면 150만원, 넉 달이면 600만원의 벌금을 공제받는 셈이다.

    불황이면 범죄가 는다?

    5개월 구형을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서민형 범죄자다. “대부분의 범죄자는 벌금 500만원 이하를 선고받습니다. 절도, 사기, 상해, 음주운전 같은 서민형 범죄가 여기에 해당되겠죠. 대규모의 영업범죄나 조세범, 관세범, 영업범에 대해서는 500만원 이상이 선고됩니다.” (서울남부지법 A판사)

    의정부교도소 노역수용자의 죄명별 인원분포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도로교통법 위반 37.8%, 상해 11.5%, 사기 7.4%, 교통사고처리특례 5.4% 순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범죄연구센터 황지태 전문연구원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벌금 낼 여력이 없어 노역수가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불황이라고 해서 범죄가 증가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불황이 장기화할 경우 범죄가 늘어날 수 있지만, 불황이라고 해서 반드시 범죄가 느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황 연구원은 “범죄 발생 총수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 다만 적발건수와 신고건수, 언론보도가 늘어 불황 때 범죄가 많아 보이는 것뿐”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동부지법원 권혁중 판사도 같은 생각이다. “불황이 되면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민사사건은 확실히 증가하지만 형사사건이 많아지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불황 때문에 재판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소액재판 수가 늘 뿐이라고 했다. 소액재판을 담당해온 김춘호 판사는 “불황이 되면 법원에서는 2000만원 미만의 소액재판이 많아진다”고 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서다. 지난해부터 소액재판이 늘어 서울동부지법, 서울남부지법, 서울북부지법은 소액재판부를 확대한 상태다.

    “2007년에는 한 소액재판부에 한 달 평균 700건 접수되던 것이, 2008년에는 1100건 접수됐습니다. 경제가 활성화하면 사람들이 진취적이 돼서 소송으로 끌기보다는 타협해서 일찍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그런지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김춘호 판사)

    일각에서는 ‘경기가 어려워지면 범죄가 늘어난다’는 시각도 있다. 송파경찰서 황호천 형사는 “대부분의 범죄는 생계형 범죄”라면서 “밥벌이가 어려워지면 범죄가 느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신의기 범죄연구센터장도 “IMF외환위기 당시 절도와 같은 생계형 범죄는 물론 다른 범죄도 급격히 증가했다”며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폭력성을 드러내기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 밥이 낫다”

    기이한 것은 교도소에 자발적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재판하던 중, 교도소에 살게 해달라는 청년의 말을 듣고 D판사는 곤혹스러웠다.

    “서른세 살 된 청년이 회사 법인카드를 훔쳐서 그걸로 200만원어치 음식을 먹다 잡혔습니다. 야간주거침입, 절도와 사기 여신 죄에 해당돼 통상 구속될 수 있는 사안인데, 구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왔습니다. 그런데 재판 중에 피의자가 주소지를 말하지 않아 주소를 대지 않으면 영장을 발부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도리어 ‘교도소로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내가 ‘교도소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모양새가 이상하게 됐지요. 그러다 최후진술을 하라고 했더니 ‘교도소로 들어가죠’라고 하기에, 선고기일을 2주 뒤에 잡는다고 하니 ‘그럼 가방 싸오면 보내줍니까’라고 묻는데…. 참….”

    조사기록에 따르면 그 청년은 기술 관련 전문대를 나온 뒤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두 달간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밀린 고시원비와 생필품 값을 내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이 없었다. 청년이 일하던 회사에서는 “착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했다. 판사는 이 청년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고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했다. 본인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가치관을 재정립시키기 위해서다.

    D판사는 “경기가 어려워 교도소에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늘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직접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라면서 “사회봉사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집행유예가 취소돼 형을 살 수도 있는데, 어떻게 잘 해결했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생활하기에 교도소가 더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7년 동안 무직 상태로 무허가 집에서 지체장애2급 아들과 함께 살아왔다는 E씨. 그는 “규율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게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집에 있을 때보다 찬이 더 많이 나온다”면서 “평소 아들과는 나라 미(米) 2만700원짜리와 불우이웃돕기 단체에서 주는 음식 먹으면서 살았는데, 여기는 밥도 많이 먹고 맛있고 해서 생활이 아주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점심으로 밥, 김치, 국, 쌈, 달걀을 먹었다며 배시시 웃었다.

    교도소 출입구를 나서는데 큰 글씨로 씌어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새출발하는 당신, 우린 당신을 믿습니다.’ 불황의 시대, 교도소 가는 사람들에게 이 문구는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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