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호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한 김규헌 검사의 작심토로

“정·관계 실세들과 연예인 성추문 내사 중 인사조치됐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9-05-09 11:5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전투 중 장수 바꾸는 법 없다’ 해놓고 갑작스레 경질
    • 장자연 매니저 김모씨, 당시에도 수사대상
    • 마담뚜 의심되는 강남 음식점 여주인들 내사
    • 방송사 PD와 여대생의 강제 성관계 확인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한 김규헌 검사의 작심토로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경찰 수사로 연예계의 성(性) 비리가 새삼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성접대 혹은 성상납으로 불리는 이 비리는 오랜 세월 연예계 안팎에서 거론되던 것이라 사실 특별할 것은 없다. 하지만 풍문으로 떠돌 뿐 수사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과거 연예계 비리를 몇 차례 수사했던 검찰도 이 부분에 대해서만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서울고등검찰청 김규헌(55) 검사는 장자연씨 사건에 대해 남다른 소회를 갖고 있다. 2002년 서울지검 강력부장이던 김 검사는 연예계 비리를 수사하다 지방지청장으로 전보돼 외압시비를 낳았다. 그의 인사문제는 국정감사장에서 지적될 정도로 검찰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검찰 수사팀이 정·관계 실세들과 여성 연예인들의 성관계를 수사하려 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정치권에서 그의 인사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나 그는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다. 그런 그가 장자연씨 사건을 맞아 7년 만에 입을 열었다.

    김 검사가 소속된 서울고검 송무부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과 행정소송을 수행하고 지휘 감독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각 부처 장관의 권한을 위임받아 소송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소가(訴價)가 1년에 2조~2조5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와이셔츠에 니트를 걸친 김 검사의 첫 인상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묘한 것이었다. 근엄한 표정으로는 서당 훈장이고, 창백한 낯빛으로는 사색형의 지식인이고, 날카로운 눈매로는 사무라이였다.

    그는 어학에 조예가 깊다. 영어를 비롯해 5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그의 책상 위에는 케이트 윈슬렛에게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의 원작 소설이 놓여 있었다. 그는 대검찰청 재직 시절 독일어판 법률용어집을 한글과 일본어로 옮긴 번역서를 내놓았다. 몇 해 전 소설 ‘다빈치 코드’가 국내에 처음 수입될 무렵엔 한 출판사로부터 번역을 요청받았는데 업무에 바빠 거절했다고 한다. 김 검사는 “그때 번역을 맡았더라면 떼돈 벌었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연예계 물을 흐린 장자연 매니저

    “장자연씨 사건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떤가”라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7년 전의 내 인사문제와도 관련된 사건이라 착잡합니다. 당시 국정감사장에서 내 인사문제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던 홍준표 의원이 최근 다시 끄집어내는 바람에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저는 그간 인사 때 몇 차례 불이익을 당했지만 한 번도 불만을 표시하거나 토를 단 적이 없습니다. 2002년 7월10일 메이저 기획사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수사를 시작했는데, 그해 8월24일 지방청으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불과 한 달 만에 수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속 수사팀은 사건을 마무리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때 제기된 의혹들을 적극적으로 수사했다면 이런 사태(장자연 사건)를 막기까지는 못하더라도 경고는 할 수 있었지 않나 해서 유감스럽고 아쉽습니다.”

    ▼ 장자연씨에게 부적절한 접대를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연예기획사 대표 김모씨가 당시에도 수사망에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수사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대형 기획사 임원들을 입건하는 과정에 그 사람의 이름이 많이 거론됐어요. 어느 세계나 튀는 사람은 눈에 띄게 마련이잖아요. 베팅을 저돌적으로 한다든지, 향응을 세게 베푼다든지….”

    ▼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가 있었습니까?

    “확인된 건 아니었지만, 제보나 첩보에 따르면 소속 연예인들을 부적절한 향응 자리에 내몰거나 금품제공 액수가 유난히 컸어요. 다른 매니저들이 주식제공 같은 간접 로비를 하는 데 비해 그 친구는 고급 골프채를 몇 개씩 선물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수사선상에 올린 거죠. 그때도 그 친구는 수사하는 동안 해외에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애’였어요. 지금도 거물은 아니지만. 연예계에서 기존 질서를 깨면서 물을 흐리는 매니저가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그 친구였어요.”

    ▼ 김씨에 대해 어느 정도 수사가 이뤄졌나요?

    “방송사 간부들과 대형 연예기획사가 주된 수사대상이었어요. 수백 개의 기획사를 다 수사할 수는 없어 주요 기획사 위주로 수사했지요. 잠적한 주요 기획사 대표들의 신병 확보가 급선무였습니다. 우리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조폭자금 유입입니다. 자금추적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어요.”

    ▼ 결과가 신통치 않았지요?

    “뒷 수사팀이 제대로 진행하지 않은 탓입니다. 두 번째가 주식 제공 등 기획사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영화제와 가요제 수상자 선정 비리였습니다. ”

    청담동과 논현동의 고급음식점

    성 비리는 당시 수사팀의 마지막 수사목표였다. 방송사의 유명 PD들에 대한 성상납과 정·관·재계 인사들이 뚜쟁이를 통해 여성 탤런트·배우들과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성 문제는 개인의 내밀한 문제이고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성 스캔들에 따른 사법처리는 당사자들에게 사회적 매장을 뜻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쪽의 협조를 얻는 게 어렵죠.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당시 성상납 의혹은 연예계 비리 수사의 가지였을 뿐이지 본질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거죠. 언론이 과민하게 반응한 탓도 있어요. 일부 기획사의 금품로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여성 연예인 몇 명을 불러 조사했습니다. 그중엔 미스코리아 출신도 있었어요. 모 스포츠신문이 이에 대해 ‘성 관련 의혹으로 검찰에서 조사받았다’고 보도했다가 나중에 당사자한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도 했습니다. 취재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추측성 보도가 난무했어요.”

    김 검사는 사실과 소문을 구분해 설명했다.

    “일부 중견 여성탤런트들이 성매매의 매개 역을 했다는 소문은 낭설이었어요. 확인된 게 없습니다. 다만 청담동과 논현동 등지에 중년 여성들이 운영하는 고급음식점에서 많은 여성 탤런트가 모인다는 사실은 확인됐습니다. A급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연예인들이 드나든다는 제보였는데, 신빙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바로 성매매를 위한 접선장소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수사가 중단됐죠.”

    ▼ 수사가 본격 궤도에 올랐을 때 경질된 거란 말씀이죠?

    “나는 정말 경질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내가 인사대상이라고는. 상부에서 ‘국민적 관심사이고 한창 수사 중이니 인사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거든요. 전투 중에 장수를 바꾸는 법은 없다면서. 이 한마디로 유임이 기정사실이 됐고 나는 중장기 수사계획을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인사가 난 거예요.”

    “출국사실을 조사하지는 않았다”

    ▼ 정기인사이긴 했지요?

    “조금 늦춰지긴 했지만 정기인사는 맞아요. 공무원으로서 사령장을 받으면 승복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아무 소리 않고 내려갔습니다만 속에선 찬바람이 일었죠.”

    당시 검찰총장은 ‘고독한 수도승’으로 통하던 이명재씨, 법무부 장관은 전남 신안 출신의 김정길씨였다.

    ▼ 인사배경이 뭐죠?

    “홍준표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제기한 의혹대로라면 방송사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도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정권실세들의 성 추문을 강골인 김규헌이 파고들어가니 부장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 나름대로 짚이는 바가 있었을 텐데요

    “추측되는 건 있죠. 어떤 세력이 좌우했는지.”

    ▼ 검찰 내부에서도 얘기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말이 많았죠. 내가 민감한 부분까지 들어간 탓에 인사조치됐다는 소문이 파다해 후임 수사팀은 수사를 포기하고 주저앉았죠. 게다가 그 팀이 사고를 쳤잖아요. 고문치사사건. 우리가 쌓아올린 탑이 허물어지고 연예계 비리 수사도 미봉에 그쳤죠.”

    고문치사사건이란 2002년 10월 서울지검 강력부 수사팀이 조폭 피의자를 밤새 고문하고 패면서 조사하다 죽게 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주임검사는 구속됐고 지휘선상에 있던 검찰 고위간부들은 좌천되거나 옷을 벗었다. 이명재 검찰총장도 사표를 냈다. 김 검사는 “고문치사와 관련된 검사들은 내 밑에 있던 검사들이 아니었다. 수사관 일부가 겹쳤을 뿐”이라고 그 사건과 선을 그으려 했다.

    ▼ 당시 홍준표 의원은 여당 의원 세 명의 이름 첫 글자를 언급했습니다. 이들의 혐의가 검찰 수사기록에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실제로 수사된 게 있습니까?

    “국회의원들과 준재벌이 여성 연예인들과 외국에 나갔다는 얘긴데… 그런 제보가 들어왔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출국 사실을 확인하지는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정식 수사대상은 아니었습니다.”

    ▼ 홍 의원 말로는 수사대상인 연예기획사들이 국회 상임위에 로비했다는데요. 국회 측에서 어떤 얘기가 있었나요?

    “우리로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 홍 의원에 따르면 의원들의 수사 중단 압력도 있었다고요?

    “수사하다 보면 유무형의 로비나 압력이 있게 마련입니다. 변호인을 (담당 부장검사의) 검찰 선배로 선임하는 것도 그런 거죠.”

    정치권 핵심실세와 여성 연예인

    ▼ 홍 의원은 “A의원의 주선으로 B의원과 C의원이 제주도 모 호텔에서 탤런트 L양과 K양으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 ‘성상납 진술 확보’도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다만 수사목록에 들어 있긴 했습니다.”

    ▼ 홍준표 의원과 친합니까?

    “그다지 친하지는 않습니다. 한번은 내가 ‘그만 좀 하라’고 말했어요. 왜 자꾸 거론해 곤란하게 하냐고. 그랬더니 ‘내가 김 부장을 사랑하니까’ 하더라고요. 홍 의원도 강력부 검사 출신이라는 데에 자부심이 있어요. 홍 의원은 서울지검 강력부장이 지방지청장으로 간 걸 좌천으로 해석한 겁니다.”

    ▼ 2002년 수사팀이 연예인 성매매 의혹에 대해 전혀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하시겠네요?

    “그렇죠. 부당합니다. 의지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기회가 무산된 거죠.”

    ▼ 거론된 정치권 인사가 세 명이었습니까?

    “그보다 많았어요. 전·현직 의원들과 관계의 유력인사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거론된 건 사실입니다.”

    ▼ 여러 사람이라면 10명 이상을 말합니까?

    “대여섯 명.”

    ▼ 제보 내용이 얼마나 구체적이었나요?

    “반(半)구체적이었습니다.”

    ▼ 일시, 장소가 나왔나요?

    “어느경에 어디로 갔다고…. 주로 해외와 제주도였습니다.”

    ▼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거론된 정치인들은 대체로 권력실세였습니다. 막강한 사람들이었죠. 그때까지 수사대상은 아니었지만, 사회분위기를 감안하면 수사대상에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죠.”

    기자가 김대중 정부의 핵심실세 두 사람의 이름을 대자 김 검사는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해체된 모 재벌기업 사장의 이름도 언급했다. 이들과 관계를 맺었다는 여성 탤런트들에 대해서는 “톱클래스는 아니고 당시 좀 뜨거나 이름이 꽤 알려진 사람들이었다”며 “그중엔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여배우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 당시 여성 탤런트나 배우는 몇 명이나 조사했습니까?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조사했습니다. 금품로비, 향응과 관련해. 상당수를 조사했어요.”

    ▼ 상당수라면 10명이 넘습니까?

    “다들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명예와 프라이버시를 감안해 조사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2차’는 확인되지 않아”

    ▼ 성상납 의혹을 조사하지 않았습니까?

    “향응에는 모든 게 포함됩니다. 캐시(현금)도 있고 골프채도 있고 루이14세 같은 고급양주도 있습니다. 방송사 간부들과 여성 탤런트들의 술자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죠.”

    ▼ 장자연씨 사건을 보면, 기획사 대표가 술자리로 불러내 접대를 강요했다는 것 아닙니까? 당시에도 그런 문제를 조사했나요?

    “누가 그런 자리에 있었는지는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2차’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끝난 다음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성행위 자유결정권의 문제니까요. 그 부분 수사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어요.”

    ▼ 당시 ‘검찰이 여성 탤런트 4~5명의 성상납 의혹을 조사했으나 사실확인을 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있었죠?

    “(기획사 대표가 방송사 간부에게) 돈을 주는 자리에 함께 있었는지를 물어본 겁니다. 성상납 같은 혐의는 확실한 정황증거 없이는 물어보기 힘들죠.”

    ▼ 모 방송사 PD가 연예인 지망생과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는 혐의는 사실로 확인됐나요?

    “PD 건은 사실입니다. 후속 수사팀이 구속했죠. 그런데 기소내용에 강제 성관계가 빠져 있더군요. 우리 팀에서 피해자를 조사해 그런 진술을 받아놓았는데….”

    ▼ 강제 성관계라면 강간입니까?

    “그렇다고 봐야죠.”

    ▼ 연예인 지망생이라면 여대생을 말합니까?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나이는 스물 한두 살.”

    ▼ 연예계 성비리에 대한 수사를 계속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가시적 성과를 떠나 연예계와 정치권이 상당히 위축됐을 겁니다. 마담뚜로 의심되는 강남 음식점 여주인들의 인적사항을 다 확보한 상태였으니까요. 그걸 확인하는 과정에 인사 조치를 당했어요. 방송사들의 항의도 거셌죠. 주요 프로그램 제작이 거의 마비된 상태였거든요. 유명 PD들이 휴가니 병가니 해서 잠적해버렸으니….”

    ▼ 권력실세들의 연예인 관련 비리를 수사할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 고정된 건 하나도 없어요. 수사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것입니다. 수사주체의 의지가 중요하죠. 한계를 말하기 전에 최소한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노력했을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검사의 명예를 걸고.”

    ▼ 지휘부가 유임을 보장했는데 인사가 났다는 게 이상하군요.

    “홍 의원 주장에 일리가 있어요. 타이밍이 그랬지요. 정치권 실세에 대해 내사 중이라는 얘기가 나올 무렵 인사가 났거든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인사조치했다는 얘기도 나중에 들었지만. 어쨌든 한 달 반만 수사했다는 게 너무 아쉬워요. 일반 단타(短打) 사건도 한 달은 수사하는데. 이 사건은 관련자만 수십 명이었거든요.”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한 김규헌 검사의 작심토로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과정에서 불거진 정치권 실세들과 여성 연예인의 성 추문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연 김규헌 검사.

    사실상 중단된 후속수사

    그는 “검찰 선배한테 인사 발령 소식을 듣고는 ‘무슨 소리냐. 검찰국장이 유임이라고 했는데, 가긴 어디로 간다는 거냐’라고 따졌다”고 털어놓았다. 놀라긴 놀랐던 모양이다.

    ▼ 중대한 수사를 하고 있으면 유임되나요?

    “유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충주지청장 전보가 좌천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죠, 차장검사급 대우였으니. 인사 자체에 대해선 언급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수사가 중단됐다는 겁니다. 좌천을 시키더라도 수사는 계속 진행되도록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죠. 내가 세게 하다 인사조치됐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후속팀은 사실상 수사를 중단했어요. 도망갔던 사람들도 자수해오고.”

    2002년의 연예계 비리수사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한 쪽은 물론 연예계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뒷날 한목소리로 강력부의 ‘무리한 수사’를 성토했다.

    ▼ 지휘부에서 강력부가 무리하게 수사한다고 판단한 건 아닐까요?

    “무리할 게 없었어요. 깡패들 수사한 것도 아니고.”

    ▼ 수사팀이 확실하지 않은 혐의를 언론에 흘렸다는 비난이 있었지요. 조폭자금 유입이라든지 성상납이라든지.

    “그거는 그쪽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에요.”

    ▼ 입증되지 않았잖아요?

    “기획사 임직원들이 어디 출신인지를 파악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내가 떠난 후 수사가 아예 안 됐어요.”

    ▼ 자금이 유입된 정황이 포착됐나요?

    “자금까지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걔들이 들어와 있으니. 사람 가는 데 돈이 따라가니까.”

    ▼ 기획사에 폭력조직 애들이 들어가 있었다는 거죠?

    “그렇죠.”

    2005년 7월, 서세원씨가 운영하던 기획사 직원이던 하모씨는 2002년 8월초 연예계 비리와 관련해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조사받는 과정에 고문과 구타로 허위자백을 했다며 검찰 수사관들을 고소했다. 하씨가 고소한 검찰 수사관들은 2002년 10월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의 주범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검사는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친구(하모씨)는 당시 수사에 협조했던 사람입니다. 피의자도 아닌데 그렇게 무리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당시 담당검사한테 들은 얘기가 없습니까?

    “누가 다쳤다든지 하는 보고는 들은 바 없습니다. 그 친구가 한참 도망 다니다 잡혔어요. 끌려오는 도중에 수사관들한테 좀 혼났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검찰 쪽 증인인데 윽박지를 필요가 있겠어요?”

    ▼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씀인가요? 하씨에 대한 가혹행위는 경찰과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관련자들이 기소도 됐고.

    “나중에 그 수사관들이 홍모 검사 밑으로 배속됐다가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으로 구속됐지요. 몇 년 후 서세원씨가 그걸 이용해 물고 늘어진 겁니다.”

    ▼ 당시 부장검사로서 하씨 사건에 책임을 느끼지 않습니까?

    “사실이라면 책임을 느끼겠습니다만, 믿기 어렵습니다. 내가 있을 때 그런 일이 보고됐다면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겁니다. 당사자를 만나 사죄하거나 그 수사관들에게 사건을 맡기지 않았을 겁니다. 무리하게 수사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 그간 검사생활하면서 인권침해를 한 적은 없습니까?

    “누구를 팬 적은 없어요.(웃음)”

    ▼ 검사들이 의욕을 앞세우다 종종 물의를 빚곤 하지요.

    “의욕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의욕 자체를 문제 삼는 건 부당해요. 방법론을 문제 삼는 건 몰라도.”

    김 검사는 “아직도 나는 젊고 수사를 더 하고 싶다”고 의욕을 드러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때가 있는 법. 그의 의욕은 높이 살 만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젊은 날의 ‘영광의 상처’에 대한 애착과 회한의 잔영이 어른거렸다.

    2002년 검찰의 연예계 비리수사 전말

    2002년 서울지검 강력부의 연예계 비리수사 계기는 방송보도였다. 2001년 7월 MBC ‘시사매거진 2580’은 가요순위 프로그램과 관련해 방송사와 연예인의 ‘노예계약’ 관행을 폭로했다. 이 프로그램은 2002년 1월엔 연예계 비리 후속편으로 연예기획사들이 방송사와 스포츠신문 간부들에게 거액의 홍보비를 건넨다는 의혹을 제기해 파문을 일으켰다. 시민단체인 문화개혁시민연대도 성명을 발표하면서 거들었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MBC 보도 직후 본격적으로 연예계 비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먼저 과거 연예계 관련 수사기록을 검토했다. 대부분 1회성 대가관계에 따른 범죄였다. 검찰은 국내 가요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코스닥에 상장하는 대형 기획사가 생겨나고 연예인 지망생이 크게 늘면서 부패구조가 심화됐다고 판단했다. 개별적인 비리에서 구조적인 비리로 바뀐 것이다.

    2002년 1~3월 검찰은 영화 수입업자들과 영화 담당 기자들을 기소했다. 돈을 받고 홍보기사를 써준 혐의였다. 이어 대형 기획사에 대한 내사에 들어갔다. 진정서와 탄원서 등 제보가 쏟아졌다.

    내사에 착수한 지 6개월. 7월10일 검찰은 대형 연예기획사 4군데를 압수수색했다. 이른바 빅4로 불리던 GM기획, 도레미미디어, SM엔터테인먼트, 싸이더스였다. 수사팀은 기획사들의 매출 규모와 유무상 증자과정, 세무신고액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강력부 소속 검사와 직원 중 조직폭력 전담수사팀을 제외한 전원이 매달렸다. 특수부와 공안부, 형사부 소속 검사가 차출돼 투입될 정도로 대형수사였다.

    수사 성과도 좋았다. 한 달 만에 방송사 PD, 스포츠신문 간부, 연예기획사 임직원 등 16명을 금품수수, 향응, 공금횡령, 주금(株金)가장납입, 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아울러 12명을 비슷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도주한 기획사 대표와 방송사 PD, 스포츠지 기자 등 20여 명에 대해선 수배 조치했다.

    이어 조폭자금의 연예계 유입, 연예기획사의 정관계 로비 의혹, 성상납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검찰 정기인사가 단행됐고, 수사를 주도하던 김규헌 강력부장은 충주지청장으로 전보됐다. 이후 연예계 수사는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