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호

‘가족오락관’ 26년 MC ‘대한민국 오락부장’ 허참

“26년간 외쳐온‘몇 대 몇’은 여기까지입니다”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입력2009-06-05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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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참씨가 진행해온 ‘가족오락관’이 26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간 함께 진행한 여자 MC가 21명, PD가 31명, 주부방청객이 11만명에 달한 대장정이었다. ‘대한민국 오락부장’인 그를 만났다.
    ‘가족오락관’ 26년 MC ‘대한민국 오락부장’ 허참
    26년간 외쳐온 ‘몇 대 몇’은 여기까지입니다.”2009년 4월18일 종영된 KBS 1TV의 ‘가족오락관’에서 진행자인 허참(61)씨가 방송을 끝낼 때 한 말이다. 26년 동안 매주 안방을 찾아간 대기록을 세운 이 프로그램이 첫 전파를 탄 것은 1984년 4월30일. 마지막 방송은 1237회였다. 마지막 방송 장면에서 다른 출연진은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허씨는 이날 카메라 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왜 울지 않았을까. 한국 방송사에서 드문 26년 방송이라는 ‘장수상품’을 탄생시킨 비결은 뭘까.

    5월12일 그를 만났다. 약속시각에 맞춰 선글라스를 낀 그가 나타났다. 겉모습이 너무 ‘젊은 오빠’여서 기자는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결국 휴대전화를 통해 ‘접선’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마지막 방송에서 왜 울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사실 마지막 녹화 때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우니깐 나도 울고 싶었어. 그러나 참아야 했어. 그것 하나 가지고 울고 하는 차원을 떠나 내가 다른 방송을 하고 있거든. 케이블 TV인 엠넷도 하고, SBS 라디오도 하는데 참을 것은 참아야지. 내가 뭐 방송인으로 은퇴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녹화를 마치고 나서 방청객 아줌마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이분들이 내가 SBS나 엠넷에서 하는 줄을 몰라. 시골에서 왔거든. ‘언제 보지요, 아저씨! 오빠!’라고 하는 거야. 그때 눈물이 ‘벅’ 나는 거야. 그래서 대기실에 가서 눈물을 닦았지.”

    기자는 인터뷰를 앞두고 ‘가족오락관’ 마지막 회를 인터넷에서 다시 봤다. 특집방송에서 그는 ‘가족오락관은 ○○?’을 묻는 질문에 대해 ‘아내’라고 대답했다.

    “아내라는 것은 결국은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존재야. ‘가족오락관’과는 26년 동안 연을 맺은 부부처럼 살아왔어. 좋을 때는 같이 좋고, 시청률이 떨어질 때에는 짜증도 내고 화도 내고. 1984년 벚꽃이 활짝 피던 시절에 시작했어. 한 주가 한 해가 되고, 1년이 5년, 10년, 15년, 20년, 25년이 되고 30년이 되려고 하는데 26년이 돼서 끝났어. 마지막 녹화를 하던 날도 벚꽃이 활짝 피었어. 이제 장정의 길을 멈췄지. 26년 동안 ‘몇 대 몇’을 외쳐왔어. 최종 점수를 이야기하는 거였는데 이제 되새겨보니깐, 심오한 뜻이 있어.”



    ▼ 어떤 뜻이 있나요.

    “‘가족오락관’으로 좁혀서 보면 시청자에게 삶의 활력소를 얼마나 만들어줬느냐를 매년 평가할 수도 있고, 이제 종영했으니깐 ‘가족오락관의 26년’을 평가할 수도 있겠지. 적어도 중장년층에겐 10점 만점에 최소 8점은 차지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봐. 인생 살면서도 나는 어떻게 비쳤는지,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선 몇 대 몇이었는지, 직장에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해보려고 해. 지금은 아니고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내 인생 점수를 내봐야지.”

    ▼ 가족오락관이 폐지된다고 했을 때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가족들에겐 어떻게 알렸나요.

    “1년 전부터 움직임은 있었어. 우리는 방송을 하다보면 딱 알지. 그런데 2개월 전 PD를 바꾸고, 프로그램 포맷을 전면수정하자고 하길래 ‘다시 살아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개편안 확정을 10일 앞두고 갑자기 종영이 결정된 거야. 그래서 마누라에게 준비하라고 이야기했지. 그런데 처음엔 못 알아듣는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가족오락관 수입으로 살아왔는데 준비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지. 그랬더니 ‘수고했다. 당신 그 정도면 많이 했다’고 했어. 결혼한 딸 둘도 전화해서 ‘아빠, 어떻게 하지요’라고 걱정하는 거야. 내가 마음이 안 좋을 줄 알고. 그래서 내가 ‘수고했다고 해줘’라고 했더니, 이놈들이 ‘수고했어요. 아빠’라고 했어. 군대에서 곧 제대하는 아들이랑 사위랑 모두 집에 불러서 밥을 먹었어. 다른 때 같으면 외식하는데, 옆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밥 먹을 것도 아니고. 그래서 집에서 밥 먹고 헤어졌지. 그걸로 끝이야.”

    ▼ 지금까지 언론에 부인을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다면서요.

    “고 이주일씨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차사고로 죽었잖아. 연예인 자녀들은 학교에서 왕따당해. 나는 애들 학교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어. 마누라도 얼굴 공개해봐야 시장에서 물건 가격도 못 깎고, 목욕탕도 마음대로 못 가잖아. 아마 임성훈 마누라도 못 봤을 걸. 임성훈이 나 따라 한 것 같아.”

    ‘가족오락관’ 26년 MC ‘대한민국 오락부장’ 허참

    마지막 방송을 진행하는 허참씨.

    11만명의 주부 방청객과 31명의 PD가 거쳐간 프로

    ▼ 어머님께 ‘가족오락관’ 종영 소식을 알리기가 가장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어머님이야 당신 자식이니깐, 매주 봤지. 채널을 아예 9번에 고정했어. 팔순이 넘어서 할 일이 있나. 언젠가는 방송시간대를 오후 6시10분에서 오후 5시10분으로 옮기니깐 ‘왜 안 나오느냐’고 해서, 시간대를 옮겼다고 했더니 ‘누가 보냐, 벌건 대낮에’라고 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이 종영되고 방송에 안 나오니깐 ‘왜 안 나오느냐’고 또 연락이 왔어. 그래서 내가 ‘가서 말씀드리겠다’고 했어. 후배랑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후배가 ‘참이 형 가족오락관이 없어졌어요’라고 먼저 말했어. 어머님은 ‘니 것하고 송해씨 것(전국노래자랑) 두 개 봤는데 그럼 나는 뭘 보냐’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내가 라디오에서 매일 방송한다고 하면서, SBS 라디오에 다이얼을 고정시킨 라디오를 갖다드렸어.”

    기자는 사실 ‘가족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의 경쟁력에 관심이 많다. 가족오락관은 상품으로는 ‘장수상품’이며, 기업으로 따지자면 ‘장수기업’이다. 경쟁이 치열한 방송가에서 가족오락관은 도대체 어떤 힘이 있어 26년을 지속해왔을까.

    “MBC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몇 년 동안 몸부림쳤는데 안 됐어. 경쟁력이라? 우선 주부 방청객이야. 이 분들은 수고료 받고 출연한 방청객이 아니야. 자발적으로 와서 응원하고 즐기는 분들이야. 지금까지 11만명이 출연했어. 지금도 신청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어. 어떻게 해. 프로그램을 부활할 수도 없고. 이들이 ‘가족오락관’과 세월을 함께했어. 유사 프로그램은 아줌마도 아니고, 수고료 받는 젊은애들을 방청객으로 갖다놓았어. 방송의 활력소가 방청객이야. 이게 첫 번째 경쟁력이야. 두 번째는 출연진의 경쟁력이야. A급이 나왔어. 세월이 가면서 순발력과 재치가 있는 사람 위주로 출연했는데, 그 사람만으로도 진행이 됐거든. 세 번째는 뭐니뭐니 해도 계속 변화를 주는 시스템이야.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를 넣었어. 우리가 가끔 헛다리를 짚는 경우도 있었어. 너무 앞서가는 것도 안 돼. 기가 막혀. 반 보만 앞서야 돼. 확 앞서가면 안 먹혀. 당시 너무 앞서가서 우리가 사장시킨 코너가 다른 프로그램에서 지금 뜨는 게 있어. 31명의 PD가 거쳐갔는데 대부분 ‘가족오락관’을 통해 ‘입봉’(처음 연출을 맡는) 했어. 이 사람들은 ‘가족오락관’이 처음 맡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열정이 있어.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만들다보면 프로그램이 좋아져.”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설명하는 경영학 강의를 듣는 느낌이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 ‘소비를 리드하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은 피할 것’ ‘새로운 실험’….

    ▼ ‘가족오락관’은 실험적인 시도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노래방 프로그램의 원조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가족오락관’에서 탄생한 코너가 450개가 넘어요. 그런데 보통 3~6주 하면 뜨는 프로그램을 알 수 있어. 호응도가 높은 코너는 6개월은 가지. 실험적 요소를 넣은 코너를 넣었다가 호응이 없으면 내리고 호응도가 높은 코너가 가는 거야. 그래서 프로그램이 오래 살아남았지. ‘고요속의 외침’처럼 반응이 좋은 코너는 아주 장수 코너였지.”

    ▼ 경영인들이 프로그램의 성공요인을 배워야 하겠네요.

    “참 고민 많이 했어. 낱말 맞추기 코너인 ‘스피드게임’도 러닝머신(트레드밀) 탄 채 하거나, 팔굽혀 펴기를 하고 한다거나, 탁구공을 집어가면서 한다던가. 참 희한한 것 많이 했어. 스피드 게임을 자꾸 변형했어.”

    ‘왁·자·지·껄’이 ‘왕·X·X·털’로

    ▼ 혹시 ‘가족오락관’을 진행해오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1980년대 출연진이 헤드폰을 끼고 앞사람과 뒷사람에게 4글자의 단어를 설명하는 ‘이구동성’ 코너가 있었어. 그때 원래 정답은 ‘왁·자·지·껄’이었는데, 가운데 두 글자인 ‘자·지’는 문제가 없었어. 그런데 네 번째 사람이 ‘껄’을 ‘털’로 잘못 들었는데, 첫 번째 사람은 ‘왁’을 ‘왕’으로 잘못 들었어. 결국 ‘왕·X·X·털’이라는 민망한 말이 나온 거야. 녹화장이 뒤집혔지. 고의로 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일단 심의실에 올려 방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지. 결국 방송이 나갔고, 재방송까지 여과 없이 나갔어.”

    ▼ 방송 뒤에 문제는 안 됐나요.

    “고의가 아니었는데 뭘. 나중에 담당 PD가 약간의 문책성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만 있었고. 큰 문제가 없었어.”

    ▼ 개인적으로 ‘이구동성’이라는 코너는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말이지만 사람에 따라 이해하는 내용이 다를 때가 많거든요.

    “바로 그런 거지. 코너에서 보면 똑같은 과제물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표현해. 한 사물을 보고 저렇게 생각이 다를 수가 있다는 점을 절감하지. ‘가족오락관’ 게임들이 유치원에서 과제물로도 많이 쓰였어. 어떤 대학교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교재로도 사용했고.”

    ▼ ‘가족오락관’ 진행하면서 딱 한 번 빼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은 해서 안 되지만, 그 시절에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가 가로수를 받은 적이 있었어. 그 때문에 당시 함께 진행하던 정소녀씨가 단독진행을 했지. 사고로 코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하려고 했는데 정소녀씨 혼자 진행하기가 힘들다며 병원에서 나오라는 거야. 그래서 수술을 못 했어. 그래서 지금도 한쪽 콧구멍이 막혔어. 평생 숨을 한쪽 콧구멍으로만 쉬어. 담배연기를 품으면 한쪽으로는 ‘퐁’ 나오고, 막힌 쪽은 ‘솔솔’ 천천히 나와.”

    ‘가족오락관’ 26년 MC ‘대한민국 오락부장’ 허참
    ▼ 어떻게 26년 동안 ‘개근’할 수 있었나요.

    “신통한 거야.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매주 방송하다보면 뒤돌아볼 시간이 없어. 내가 26년 했고, 송해 선생이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61세에 시작해 23년 동안 했어. 송 선생이 건강한 비결이 그거야. 매주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일하다보니 나이와 세월을 모르는 거야. 나도 (가족오락관을) 30대 중반에 시작해서 61세에 끝냈어. 돌아보니깐 정말로 징하게 했네. 자기 최면에 빠졌던 것 같아. 그래서 어떤 때에는 소름이 끼치는 거있지. 내가 송 선생님 나이까지 하려면 23년을 더해야 하고, 송 선생이 내 기록을 깨려면 88세까지 해야 해.”

    ▼ 그동안 ‘가족오락관’을 거쳐간 여성 MC가 오유경, 정소녀, 장서희, 오영실씨 등 모두 21명입니다. 기억나는 분이 있나요.

    “기억나는 사람이기보다는 정소녀씨가 흑인 아이를 낳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으로 잘렸어. 가나인지 가봉인지 무슨 대통령과 어쩌고 있잖아. 사실 확인도 안됐지만 ‘카더라’는 소문 때문에 방송국이 부담을 느꼈어. 너무 억울하게 잘렸지. 정소녀씨는 ‘가족오락관’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 엄청 피해를 봤지.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었으면 더 난리를 쳤을 거야. 그 뒤 어려운 길을 걸었지. 요즘 정소녀씨는 마음을 가다듬고, 특집 때에도 나왔고 노래도 한다고 하더구만.”

    ▼ 혹시 여자 MC를 교체하거나 결정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나는 누구하고 붙여줘도 상관없어. 지방에 가서 지방 아나운서나 혹은 신인과 진행할 때도 있어. 끝나면 내게 ‘많이 배웠습니다’고 해. 서울도 마찬가지야. 다들 결혼하거나 혹은 다른 일이 잘돼 더 바빠져서 그만뒀어. 억지로 그만두지 않았어. 그런데 일부에선 만날 내가 여자 MC를 바꾼다고 해. 그거는 월권이야.”

    ▼ ‘가족오락관’ 전성시대에는 내로라하는 연예인들이 가장 출연하기를 원했던 프로그램이었다면서요.

    “게스트로 처음에는 사회저명 인사만 나왔다가 성악, 연극, 문화예술 인사를 넣는 식으로 변화를 줬어. 이것도 한계가 오잖아. 그래서 연예인을 넣기 시작했지. 그 때 매니저들이 담당 연예인을 출연시키기 위해 난리가 났어. 그때 나온 연예인들 중에는 조용필 같은 스타급도 많았어 당시 김혜수도 나왔고. A급 탤런트와 영화배우들이 나오기 때문에 평범한 연예인들은 나오기가 쉽지 않았지. 그런데 이것도 한계가 오면서 출연진을 모두 연예인으로 바꿨어. 그리고 남녀경쟁을 시켰지. 그러자 프로그램이 불같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그런데 스타 중에는 재치가 없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래서 나중에는김형곤, 최양락, 이봉원 같은 입담 좋은 개그맨들이 많이 나왔지.”

    ▼ 진화하는 가족오락관이네요.

    “거기에서 입담 있는 애들은 살아남고, 입담이 없는 애들은 도태돼. 신인들은 보통 맨 마지막에 막내자격으로 채워. ‘비’ 같은 애가 막내로 나왔지. 거기에서도 기가 막힌 막내들이 있어. 그런데 그런 얘들은 꼭 뜨더라고.”

    ▼ ‘가족오락관’ 최다 출연자는 서수남씨이지요.

    “마지막 회에도 나왔지. 수남이 형이 마지막 회 출연하고 난 뒤 네이버 블로그에 그 내용을 올렸는데 하루 조회 수가 18만건이었대. 댓글이 590개가 올라왔는데 악플이 하나도 없어. 내가 너무 감사할 정도야. 보이지 않는 중장년층들의 아쉬움이 그런 쪽으로 갔어. 누구는 ‘허참 아저씨, 뭐 먹고 살지’라는 글도 올렸어.”

    ▼ ‘가족오락관’ 폐지 이유로 같은 시간대 프로그램에 비해 시청률이 낮다는 점이 꼽히던데요. 기존 포맷으로는 변하는 시청자의 입맛에 대응하기가 어려웠나요.

    “이거는 ‘전국노래자랑’처럼 붙박이장이야. 붙박이장으로 밀고가야 하는데 왜 시간대를 옮겼는지. 시간대를 몰라 찾아다니다 보면 시청자가 짜증을 내. 재미난 것은 행락철에는 시청률이 안 좋아. 젊은층이 부모들을 데리고 나가면 시청률이 떨어져. 그런데 겨울이 되면 다시 올라가. 3~4%까지 시청률에 차이가 생겨. 나는 다 알지. 새로운 PD가 오면 동요하지 말라고 말하지. 재수 나쁜 PD는 봄에 오고, 재수가 좋은 PD는 가을에 와. 초겨울부터 시청률이 올라가서 한겨울까지는 여유가 있지. 그런데 이번에 새 PD가 왔는데, 시간대를 오후 5시10분으로 했어. 진도에서 올라온 주부 방청객들이 ‘우리 일하는 시간인데 언제 봐요’라고 묻더라고. 저녁시간에 봐야 할 것 아니야. 일하는 시간에 호미자루 놓고 보라고 해놓고 시청률 운운하면 좀 그렇잖아.”

    ▼ 선생님 본명은 이상룡인데요. 어떻게 해서 ‘허참’이라는 예명을 얻게 됐나요.

    “1970년대에 이종환씨가 운영하던 ‘쉘부르’라는 음악실이 있었어. 제대하고 서울에 취직하러 갔는데 DJ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들어갔지. 탁구공 번호 적힌 숫자가 당첨돼 무대로 나가 웃겼지. 이름을 묻길래 일부러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더니, 진행자가 ‘허, 참’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 기억났다, 내 이름은 허참’이라고 말했어. 그 길로 취직이 됐고 내 이름은 허참이 됐지.”

    ▼ 케이블TV 엠넷에서 진행하는 ‘골든힛트쏭’ 일부를 유튜브를 통해 봤습니다. 주시청자가 젊은층인데, 힘들지 않나요.

    “엉뚱하지. 처음에는 18세의 나이 어린 가수 ‘주’하고 나이 60이 넘은 나하고 사회를 보았어. 아이돌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모든 게 생소하지. 멘트부터가 달라. 나 같은 전문방송인은 쓰지 않는 속어도 쓰고. 전문방송인은 ‘중삐리’ ‘고삐리’ 이런 말 쓰지 않아. 처음에는 어색했어. ‘H.O.T.’를 ‘핫(hot)’이라고 말하고, ‘SS501’(더블S501로 읽어야 한다)을 ‘에스에스 501’로 읽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읽으면, 애들은 재미있다고 낄낄대면서 웃어. 그러면서 재미가 있다고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 내가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뭘. 그런데 차차 이해하게 됐어. 옛날에는 듣지도 않던 CD를 차에 두고 들어. H.O.T., 이효리, 전진 가사가 장난이 아니야. 그래서 애들이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이해가 되더라고. 방송한 지 40년이 됐지만 이런 아이돌 프로그램은 처음이야.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어. 전에는 ‘주’하고 진행하다가, 요즘에는 이현지하고 하고 있어. 둘 다 ‘참오빠’라고 불러. 할아버지 안 하는 게 다행이지. 내가 하는 게 귀엽다고 해줘.”

    ▼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젊으신데요.

    “나는 요즘에는 동기모임에 안 나가. 나가면 영감탱이처럼 만날 하는 이야기가 너는 이빨 몇 개 남았냐 이런 이야기야. 그리고 손자 이야기하거나. 거기 갔다 오면 내가 함께 푹 늙어. 걸음걸이도 이상해지고, 대화가 안 되는 거야. 나야 여기에선 만날 꽃구름 속에서 지내잖아.”

    ▼ 방송에서 갈수록 중장년층들이 볼 만한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황금시간대에는 모두 10대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야. 중장년층은 뭘 봐. 일요일에 ‘전국노래자랑’ 보고, 정 안되면 젊은이들에게 동화돼서 함께 보라는 거지. 이제‘가족오락관’ 시간대에는 ‘동물의 왕국’이 들어가 있더구만. 그걸 봐야지. 다른 프로그램으로 대치할 능력도 없으면서, ‘가족오락관’이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무슨 큰돈이 들어간다고. 차라리 ‘가족오락관’을 2TV로 보내 광고를 붙여 피 터지게 싸운 뒤 밟혀 깨졌으면 말을 못하겠지만.”

    송해 선생에게 100만원어치 술 얻어 마신 사연

    ▼ 허 선생을 만나러 간다니깐 후배가 꼭 물어보라는 질문입니다. ‘전국노래자랑’ 차기 MC로 유력하다는 말이 있던데요.

    “그 이야기 어디에서 잘못하면 송해 선생에게 몰매 맞아. 송 선생님이 PD하고 자주 싸워. 그런데 PD가 성질나면 나에게 전화해. 다음주에 준비하라고. 그럼 내가 묻지. 송 선생이 정말로 안 하겠다는 거냐고. 그러면 그건 아니라는 대답이 나와. 비슷한 전화가 또 온 적이 있었어. 그런데 이게 송 선생 귀에 들어간 거야. 뒤에 허참이 있다는 게. 그래서 송 선생이 오해했어. 그래서 내가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에게 연락해서 ‘나는 중간에 할 사람이 절대 아니다’면서 오해를 풀었지. 그 뒤 송 선생님 만나서 100만원어치 술을 얻어먹었어. 아마 송 선생님에게 술 얻어 마신 건 나 하나뿐일 걸.”

    ▼ 그래도 송해 선생이 언젠가 연세 때문에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그만두시게 되면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닌가요.

    “하는 것도 그렇고, 그만두는 것도 그렇고 모두 내 의지가 아니니깐.”

    그는 이사 가면서 방송국에서 받은 많은 상패는 없어졌지만 그동안 ‘가족오락관’에서 받은 감사패는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또 방송 녹화테이프도 1회에서부터 마지막 회인 1237회까지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방송사가 특집프로그램을 제작할 때에는 그에게서 테이프를 빌려야 할 정도다.

    그는 KBS로부터 감사패를 받으러오라는 연락을 받고도 아직까지 가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섭섭함’이 많은 듯했다.

    “만약 ‘가족오락관’이 없어진다는 사실을 미리 정식으로 통보받았다면 ‘폐지’보다는 ‘종영’으로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텐데. 폐지, 폐간, 폐사 모두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잖아. 26년간 살아남은 프로그램을 아름답게 ‘종영’이라고 해주면 문제가 있나요.”

    ▼ 미국을 보면 TV 장수프로그램이 끝나면 멋지게 포장을 해줍니다. 프로그램 진행자를 ‘영웅’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아쉬운 점이 바로 그거야. 사회자에게 감사의 마음도 표현해주고. KBS도 60년 역사에서 26년 계속된 프로그램이 있다면 시청자에게 자랑할 만한 내용이 아닌가. 그런 프로그램을 무 자르듯이 없애고. 나는 지금도 이해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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