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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⑧

잡동사니 수집가 현태준

“남들이 뭐라든 내 맘대로 산다, 뽈랄라~”

  • 송화선│동아일보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잡동사니 수집가 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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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정말 지구를 지킬 수 있겠니…?”

문득 할아버지의 문방구 생각이 났다. 귀국 뒤 호기심에 다른 문방구에 들렀는데, 그곳에도 의외로 옛날 장난감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먼지 뽀얗게 덮인 상자 속에서 절판된 지 오래인 옛날 옛적 조립식 장난감을 발견하면 탄성이 나왔다. 얄팍한 플라스틱, 울긋불긋 촌스러운 색깔, 어느새 어색해진 구식 맞춤법의 설명서 속에서 옛 추억이 ‘쓰윽’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1970~80년대식 B급 장난감과의 만남이었다.

▼ B급 장난감이라는 게 뭘까요?

“우스꽝스러운 장난감이죠. 옛날에는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캐릭터가 다 일본 만화영화 주인공이었어요. 그런데 오리지널 라이선스 제품이 수입되지 않으니까 장난감 제조업자들이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베껴서 내놓은 겁니다. 그중에 만들다 만 것 같은 것이 꽤 되거든요.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만들어 팔 수 있나 싶게 어설픈데, 잘 보면 그 안에 묘하게 우리식 정서가 살아 있어요.”

그에 따르면 같은 마징가라도 일제는 언제든 악당을 물리칠 것 같은 폼 나는 모양새인 반면, 우리나라 공장에서 뚝딱뚝딱 만든 마징가는 ‘얘가 과연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만큼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마구 베끼다보니까 양심에 찔렸든지 아니면 돈이 모자랐겠죠.(웃음) 그 시대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포장 그림과 내용물이 너무 달라 상심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상자에는 분명 ‘슈퍼맨’이라고 쓰여 있는데 열어보면 슈퍼맨 팬티를 입은 경상도 아저씨 인형이 들어있는 식이죠.”

‘뽈랄라수집관’의 ‘아니 자네는…! 어디선가 본 듯한?’이라는 코너는 이렇게 ‘다른 나라 캐릭터 인형을 살짝 혹은 몰래 베낀 국산 짝퉁인형들’만 모아놓은 장소다. 그가 ‘경상도 슈퍼맨’이라고 이름 붙인 슈퍼맨 인형의 얼굴은 정말 이웃 동네 아저씨같이 생겼다. 하나로 몰린 눈, 큰 코, 넉넉한 하관. 나란히 전시돼 있는 독수리 5형제 얼굴에서는 두메산골 촌 총각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어딘가 순하고 여려 보이는 이 ‘독수리’들은 ‘지구는 내가 지킨다!’라고 힘차게 외치는 대신 ‘지가 지구를 지키고야 말거구먼유’ 하며 수줍게 고개를 숙일 것 같다.

▼ 여기 근육질 몸매의 아톰 인형도 특이한데요.

“그것도 아마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장난감일 겁니다. 제가 이거저거 장난감을 모으면서 알게 된 건데, 장난감 제조업자들이 제작비 아끼려고 몸체 틀을 하나만 만든 거 같아요. 그러고는 캐릭터별로 머리를 갈아 끼운 거죠. 똑같은 몸뚱이 쫙 놓고 어떤 거엔 슈퍼맨, 어떤 거엔 독수리 5형제, 어떤 거엔 심지어 아톰을 붙인 거예요. 슈퍼맨 몸매에 아톰 얼굴이라니,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웃음)”

한국인의 얼굴을 한 일본 캐릭터. 오직 우리나라 어린이들만 갖고 놀았을 이 촌스러운 장난감들을 모으면서 그는 수집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서울시내 초등학교 앞 문방구들을 섭렵했다. 현씨에 따르면 대한민국 토종 문방구 주인들의 디스플레이 스타일은 재고를 뒤로 밀고 앞쪽에 계속 새로운 상자를 쌓는 것이다. 옛 물건을 찾으려면 아저씨와 친분을 쌓은 뒤 과감하게 뒤로 뒤로 헤집어나가면 된다.

서울에 안 가본 문방구가 없게 된 뒤부터는 전국 순례에 나섰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어느 도시를 가든 문방구를 찾으러 초등학교 근처를 기웃거렸다. 플라스틱 모델 전문점, 시장 모퉁이의 완구점 등도 공략 대상이었다. 당시 그는 IMF외환위기로 타격을 입은 이후 본격적인 작업-만화를 그린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린다거나-을 준비하기 위해 궁리하던, 달리 말하면 특별히 하는 일이 없던 상태였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한번 지방 도시에 갈 때마다 양손 가득 장난감을 들고 왔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몰래몰래 작업실에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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