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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끝난 마지막, 어젯밤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파티가 끝난 마지막, 어젯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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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의미, 삶의 의미

우선 짧고 간결한 문체적인 특징에서 같은 혈통임을 확인할 수 있고,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뉴욕을 무대로 살아가는 중산층 부부의 성적 욕망과 균열-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헤밍웨이의 하드 보일드한 문체와 레이먼드 카버의 주제가 제임스 설터의 단편 미학을 형성하고 있고, 이런 연유로 헤밍웨이와 레이먼드 카버를 읽은 독자는 제임스 설터가 던지는 배신의 의미, 곧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이번에 출간된 ‘어젯밤’에는 열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수전 손탁이 극찬한 대로, 한 편 한 편 절제된 내용과 스타일로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른 새벽, 햇빛은 투명하고 눈부셨다. 동향의 그 집은 더 하얗게 빛났다. 동네의 어느 집보다 깨끗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집 옆 커다란 느릅나무는 연필로 그린 듯 정교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엷은 색 커튼은 정지한 듯 움직임이 없었다. 집 안의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집 뒤엔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정원을 보러 오던 날, 키가 크고 날씬한 수잔나가 그 정원 위를 가로질러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녀를 처음 본 날이었다. 그날의 모습을 지울 수 없었지만 관계가 시작된 건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마리트와 정원을 다시 꾸미려고 그녀가 집에 왔을 때.

-제임스 설터, ‘어젯밤’



동네의 어느 집보다 깨끗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집에는 지금 세 사람이 있다. 화자인 남편과 어젯밤 안락사를 했어야 할 아내 마리트, 그리고 아내와 남편의 친구인 수잔나. 어젯밤 계획에 따르면, 병든 아내 마리트의 뜻에 따라 남편 월터는 그들의 젊은 친구인 수잔나에게 부탁해 셋이 함께 외출해 레스토랑에서 고가의 포도주를 곁들인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고,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기로 한 것이다. 와인에 기분 좋게 취한 셋은 집으로 돌아와 서로를 바라보며 적절한 시기를 기다린다. ‘그 일’(마리트의 안락사)에 모두 동의한 상태. 그러니까 소설이 가리키는 ‘어젯밤’은 안락사를 선택한 아내의 마지막 밤이자, 아내가 몰랐던 진실이 밝혀지는 최초의 밤이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내는 어젯밤, 그러니까 죽음으로 떠나는 마지막 밤을 보내지 못하고 살아나 아침을 맞는다. 그녀가 뜻대로 죽지 않고 되살아난 최초의 아침에 만나는 두 얼굴은 어젯밤 그녀가 함께한 사람들이 더 이상 아니다. 2층에서는 아내가 죽어가고, 1층에서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정사를 벌이는 집. 이것이 작가가 제시하는 ‘동네의 어느 집보다 깨끗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집의 진실이다.

아침에 만나는 두 얼굴

월터와 수잔나는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공범인 그들은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아직 제대로 눈을 맞추기 전이었다. 하지만 월터는 황홀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화장기 없는 그녀는 더 예뻤다. (중략) 몇 군데 전화를 해야 했지만 그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직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 대신 오늘 이후의 일들을 생각했다. 앞으로 맞이할 아침들. 처음엔 뒤에서 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발소리가 났고 이어서 천천히 또 한 번 발소리가 들렸다. 수잔나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마리트가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얼굴에 한 화장이 굳었고, 짙은 립스틱엔 균열이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뭔가 잘못됐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임스 설터, ‘어젯밤’

어쩌면, 소설이니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살을 맞대고 살던 아내가 죽어가는 동안 남편은 아래층에서 다른 여자와 정사를 벌이는 것이. 또 아내가 위층에 죽어 차갑게 굳어 있는데, 남편은 아래층에서 황홀한 눈으로 다른 여자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마치,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여자와 정사를 벌인 행위가 크게 문제를 일으켰던 20세기 초 뮈르소라는 청년을 카뮈는 ‘이방인’으로 불렀듯이, 제임스 설터는 ‘뭔가 잘못된’ 어젯밤이라는 시간을 현실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는 ‘낯선 순간’으로 명명하고 있는 것일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마리트가 흐느꼈다.

-미안해. 그가 말했다. 정말 미안해.

그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수잔나는 방으로 가서 옷을 챙긴 후 현관으로 나갔다. 그게 수잔나와 월터의 마지막이었다. 그의 아내에게 들킨 그 순간으로. 그가 우겨서 그 후에도 두세 번 만나긴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게 무엇이었든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건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냥 그게 전부였다.

-제임스 설터, ‘어젯밤’

파티는 끝났다. 오늘이 지나가면 어제가 된다. 그러나 어젯밤만은 지나가지 않고 언제나 그대로다.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 소설만이 통과할 수 있는.

신동아 201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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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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