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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29

美 첫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정치는 엄마 역할의 확장”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美 첫 여성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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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이 강한 미국 만든다”

펠로시의 아버지는 볼티모어 시장을 12년 동안 역임한 토머스 달레산드로 2세로 메릴랜드 주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한 뉴딜(New Deal)주의자이자 민주당원이었다. 펠로시의 친·외조부모는 모두 이탈리아 베니스와 제노아, 시칠리아에서 이민을 왔다. 그의 부모는 볼티모어의 ‘작은 이탈리아’라고 불리는 마을에서 자랐다. 우리로 치면 미국의 ‘한인 타운’에서 나고 자란 것이다.

펠로시 가족은 모두 독실한 천주교인으로 애국심이 강하고,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는 혈통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확고한 민주당 지지자들이었다. 그는 “‘작은 이탈리아’에서 자라는 동안 이민자들이 미국에 가져다주는 활력에 감명 받았다. 그들은 용기와 낙천성, 가족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했다. 이민자들이 미국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것은 미국 역사를 통해서도 확인됐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실”이라고 회상했다.

펠로시는 위로 오빠만 여섯이다. 부모가 내리 아들만 낳은 뒤 막내이자 외동딸로 펠로시를 낳은 것이다. 남자들 틈에서 귀여움도 많이 받았겠지만 막내인데다 여자가 하나뿐이다보니 무시당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펠로시는 자기주장이 강해 여간해선 오빠들한테 지지 않았다고 한다. 연설에도 능하고 핸섬한 용모를 지닌 아버지는 정치에서 여성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높게 평가한 진보적인 사고의 소유자였지만, 가족에 대해서만은 보수적이어서 펠로시가 10대 시절 긴 머리를 자르는 것마저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펠로시의 어머니는 결혼 후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로스쿨을 다닐 정도로 ‘깨인 여성’이었으나, 세 자녀가 동시에 백일해에 걸리자 공부를 중단했다. 집안 살림을 하면서도 ‘벨 벡스(Velvex)’라는, 얼굴에 수증기를 쐬게 해 모공을 넓힌 뒤 화장품 흡수가 잘되게 하는 미용기구를 개발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결혼생활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지만 일을 통한 자아실현에 대해 늘 아쉬움을 품었던 어머니는 어린 딸 펠로시에게 “재능과 능력을 갖춘 여자들은 일찍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자주 말했다고 한다. 이는 훗날 펠로시가 여성과 일에 대해 일찌감치 자각하게 해준 동력이 됐을 것이다.



어머니는 한때 펠로시가 수녀가 되기를 바랐다. 똑똑한 딸이 세상에서 받을 마음의 상처와 실망으로부터 지켜주고 싶은 모정의 발로였으리라고 펠로시는 회고한다. 펠로시는 어머니가 ‘수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제 인생은 저의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때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자식으로서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막상 자신이 엄마가 돼 “일이 바빠 너희들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게 돼 미안하다”고 했을 때 아이들로부터 “엄마, 우리는 친구들과 지내는 게 좋아요. 우리는 대학에 다니고, 엄마는 의회에 다니세요”라는 말을 들었다며 서운해했다.

정치 가문에서 연민을 배우다

어릴 적 그가 정치를 통해 배운 것은 ‘연민’이었다고 한다. 펠로시의 집은 늘 ‘울타리가 없는 집, 언제나 열려 있는 집’이었다. 아버지가 시장이 된 후 어떤 이들은 일자리를 원했고, 또 어떤 이들은 시립병원에 입원하기를 원했으며, 주택을 바라는 이들도 있었다. 단지 먹을 것을 달라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을 대하는 어머니 역시 공직자나 다름없었다. 보수를 받거나 선거에서 뽑혀 일정한 직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남편과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헌신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청탁 거리를 갖고 방문하면 어머니는 그것을 노란 종이에 써서 서류철에 넣어두고, 훗날 그 사람이 잘되면 누군가 비슷한 요청을 하는 사람이 왔을 때 그 종이를 꺼내 잘된 사람에게 연락, 새로운 사람을 돕게 했다고 한다.

펠로시는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의 어머니가 남은 음식을 다시 그릇에 모으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식탁에서 이런 광경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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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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