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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유학생의 영국 일기 - 마지막회

영국 TV는 영어 선생님!

드라마 왕국에서 사랑을 외쳤다, 헉! 그런데…

  • 전원경│작가,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박사과정 winniejeon@hotmail.com│

영국 TV는 영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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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시는 상대적으로 낙후한 이스트엔드 지역을 새로운 문화특구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고층 빌딩이 즐비한 런던의 국제적 금융가 ‘카나리 워프’는 런던 시가 이스트엔드 지역에 의도적으로 조성한 신시가지다. 2012년 런던올림픽 메인 스타디움도 이스트엔드에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웨스트엔드=중산층 동네, 이스트엔드=빈민가’라는 의식은 런던 시민의 의식 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이 같은 의식이 자리하는 데 ‘이스트엔더스’가 한몫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스트엔더스’는 이스트엔드에 대한 런던 사람들의 의식을 드라마로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스트엔더스’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가게 점원, 노점상, 식당 종업원 등 전형적인 노동계층 직업을 갖고 있다.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들은 수다스럽지만 생활력 강한 아줌마들이고, 남자들은 무능력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마초 스타일이다. 그러나 한동네에 사는 수많은 등장인물의 삶을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끝없이 엮어간다는 기본적인 구도에서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와 ‘이스트엔더스’는 큰 차이가 없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를 보려다 실패하고 ‘이스트엔더스’로 채널을 돌려본 나는 이 드라마 역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와 스토리라인을 가졌다는 사실에 낙담하고 말았다. 대사를 알아들을 수 있는지의 문제를 떠나서 어떤 등장인물들이 있는지, 이 남자와 저 여자는 어떤 관계로 연결돼 있는지, 이 가족과 저 가족의 연관성은 무엇인지 등등을 이해할 수가 없으니 드라마를 보려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TV 시청 비용 연 40만원!



영국 TV는 영어 선생님!

1960년 시작해 50년째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영국의 ‘장수 드라마 시리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ITV에서 방송되는 ‘에머데일’은 장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는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와 흡사한데, 드라마의 포맷이나 설정은 조금 다르다. 1972년 ‘에머데일 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라이벌 드라마 격인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나 ‘이스트엔더스’가 대도시(맨체스터와 런던) 시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데 비해 웨스트 요크셔에 있는 가상의 농장 에머데일을 무대로 삼는다.

1972년 시작했을 당시에는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대부분의 드라마와는 달리, 실제 농장을 배경으로 야외 촬영을 고수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72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에머데일 농장을 물려받은 잭과 조, 페기 세 남매가 장례식에 참석하는 장면으로 드라마가 시작됐으며, 현재도 에머데일 농장 일가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된 줄거리라고 한다. 이쯤 되면 영국은 가히 ‘장수 드라마 왕국’이라고 할 만하다.

그나마 ‘에머데일’은 앞의 두 드라마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에머데일’은 영국인들이 ‘재난 드라마’라고 말할 정도로 격렬하고 극단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드라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38년 동안 거의 매년 산불, 비행기 불시착, 살인, 납치, 홍수 등 사건·사고들이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했다.

이처럼 극단적인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구조와 빠른 극 전개(그래 봤자 다이내믹한 한국 드라마들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이 느리지만)가 ‘에머데일’의 장점으로 꼽힌다. 나 역시 ‘에머데일’은 그나마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 옆에서 TV를 보던 희찬이 역시(세 드라마는 모두 평일 저녁 7시대에 방송된다) “그래도 이 드라마는 좀 재미있어 보이네”라고 한마디 했다. 앞으로 ‘에머데일’을 봐야 하려나?

내가 굳이 드라마를 하나 정해놓고 보려고 하는 건 ‘본전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TV를 보는 데 들이는 돈은 한 해에 무려 40만원쯤 된다. 영화도 아니고 TV를 보는 데 이렇게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BBC의 엄청난 시청료 때문이다. 공영방송인 BBC는 프로그램 전후는 물론이고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에도 전혀 광고를 하지 않는다. 광고 수익이 없으니 거대 방송사 BBC를 운영하는 예산은 전부 시청료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시청료가 1년에 145파운드, 우리 돈 26만원이 넘는 거액이다. 이것도 매달 내는 게 아니라 한 해에 한 번씩 목돈으로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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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작가,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박사과정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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