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호

한국 공군 최초의 장교 故 박희성 선생 유해 봉환 주역 한우성 기자

  • 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2010-12-06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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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공군 최초의 장교 故 박희성 선생 유해 봉환 주역 한우성 기자
    “때로는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습니까.”

    한우성(54) 기자는 노트북을 켜 보였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 군용 모자를 눌러쓴 한 청년의 모습이 시선을 붙든다. 11월15일 국립묘지에 안장된 우리나라 최초의 공군 장교 고(故) 박희성 선생이다. 박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폭격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종사 자격증을 딴 인물. 임시정부 첫 비행장교로 임명됐으나, 뜻을 채 펼치기도 전인 1937년 비행기 추락사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한 기자는 미국 LA 한 공동묘지에 방치돼 있던 박 선생의 묘를 찾아내고 독립운동 공적을 발굴해 수십 년간 역사에 묻혀 있던 그를 재조명한 재미언론인이다. 이런 노력 덕에 박 선생은 지난 8월15일 뒤늦게 건국포장을 받았고, 유골로나마 고국 땅에 돌아오게 됐다.

    “1987년 미국으로 이민 간 뒤 쭉 기자로 일해왔어요. 미국에서 한국어로 기사를 쓰다보니 자연스레 국제 관계가 맞물리는 사안에 관심을 갖게 됐죠. 6·25전쟁이나 조선인 이민사,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꾸준히 취재했습니다.”

    6·25전쟁 당시 한국 군경의 양민학살을 다룬 30여 회의 시리즈 기사는 그의 대표작. 2000년 미주한국일보에 게재한 이 기사로 그는 한국기자상 특별상, AP통신기자상, 미국을 새롭게 하는 소수계 언론인상 등을 받았다.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 후보에도 올랐다.



    2005년에는 재미교포로 미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고 김영옥 대령을 500여 회에 걸쳐 인터뷰한 뒤 평전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을 쓰기도 했다. 김영옥은 한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각각 최고무공훈장을 받고 미국에서 은성무공훈장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전쟁 영웅.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조명되지 않았으나 평전 발간 이후 우리나라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렸고, 미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영옥 재미동포 연구소’가 세워졌다.

    “김영옥 대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박희성 선생에 대해 알게 됐어요. 1920년 무렵 미국에 일본 공습을 준비하는 독립군 비행학교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죠. 미국에서 쌀농사를 지어 부를 일군 재미동포들이 상해 임시정부와 손잡고 캘리포니아 북부 윌로스에 비행학교를 세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들의 꿈은 공군력을 길러 일본과 전쟁을 벌이는 거였죠. 박 선생은 이 염원을 이루기 위해 연희전문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열혈 청년이었어요.”

    영원히 기억해야 할 역사

    지금은 모두 잊고 만, 하지만 여전히 미국 곳곳에 생생히 살아 있는 조상들의 꿈과 열정을 발견한 한 기자는 2008년부터 본격 취재를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1920년 3월 한 미국 언론에는 윌로스 비행학교 교장이던 임시정부 초대 군무총장(현 국방장관) 노백린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 비행학교는 3·1운동의 연장선에 있으며 (이곳에서) 조종사를 양성해 대일(對日)전쟁에 동원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재미교포 김종림은 1년에 5만달러를 냅니다. 현재의 가치로 계산하면 900만달러가 넘는 거액이지요. 낯선 이국땅에서 고된 노동으로 벌어들인 재산을 독립운동에 기꺼이 바친 겁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 기자의 노트북 화면 위에는 태극무늬가 선명하게 그려진 비행기 앞에 선 비행학교 훈련생의 모습과 양복을 차려입은 청년 김종림의 모습 등이 계속 흘러갔다. 그들의 눈에는 희망이 가득해 보였다. 그러나 이 비행학교는 1920년 여름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태풍으로 조선인들의 농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자금 부족으로 휘청대다 오래지 않아 문을 닫고 만다. 훈련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는 중국 공군에 입대해 꿈을 이어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박 선생처럼 사망하거나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렸다.

    한 기자는 “그래도 이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지언정, 우리 조상들이 뜻을 모아 비행학교를 만들고, 젊은이들을 훈련시키며 독립의 꿈을 키웠던 사실만큼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취재한 내용과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미국 하늘 위에 펼쳐졌던 조선인들의 꿈과 열망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어요. 내년쯤이면 작업이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박 선생의 유해 봉환을 계기로 당시 비행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잊힌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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