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세계 최초 탈모 치료 화학물질 개발한 최명준

“덤으로 생긴 인생, 연구개발 통해 복을 나누다”

  • 이남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입력2011-05-23 15: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목사를 꿈꾸던 한 청년이 널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바이오벤처의 CEO가 됐다. 수년간의 도전과 실패 끝에 탈모 치료와 상처 치유에 효능이 있는 화학물질을 개발한 최명준 (주)피토스 대표. 그는 이제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첫발을 내디뎠다.
    세계 최초 탈모 치료 화학물질 개발한 최명준
    16세기 유럽을 공포로 뒤흔든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 부인은 ‘피의 여왕’으로 불린다.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으로 612명의 처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후 그 피로 목욕했기 때문이다. 그 잔인한 욕망을 부추겼던 ‘피’는 실제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효능이 있다. 혈소판에서 분비되는 ‘스핑고신-1-포스페이트(S-1-P)’라는 물질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피에서 극미량이 나오는 이 물질은 1g 가격이 무려 1억5000만원에 달해 ‘그림의 떡’과 다름없었다.

    반가운 소식은 S-1-P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화학물질 ‘피토스핑고신-1-포스페이트(PhS-1-P)’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물질을 개발하고 상업화한 주인공은 바이오벤처 ㈜피토스 최명준(48) 대표다.

    5월4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대 창업보육센터 사무실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KAIST 생명과학 박사인 그는 녹십자 목암연구소 책임연구원, ㈜참존화장품 소재연구소장, 한국임상시험센터장을 거치며 제약과 신소재를 연구해온 석학이다. 지난해 5월 ㈜피토스를 창업한 그는 “PhS-1-P의 상용화 길을 연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체내 물질인 스핑고신과 피토스핑고신의 기능이 같다는 데 착안해, S-1-P와 유사한 PhS-1-P를 만드는 실험을 하게 됐어요.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는 피토스핑고신은 미생물을 발효해서 쉽게 얻을 수 있거든요. PhS-1-P를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하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카이스트 화학과 박사 출신 박영준 박사의 도움을 받아 제가 어렵게 합성에 성공했죠. PhS-1-P의 가격은 1g에 3만원 정도로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됐어요.”

    그는 지난해 12월 PhS-1-P로 ‘탈모의 예방 및 치료 또는 육모형 조성물’에 관한 특허를 세계 최초로 받았다. 이 물질이 탈모 예방에 효능이 있는지 증명하는 데 6년이 걸렸다. 피토페시아 헤어토닉은 그가 PhS-1-P를 주성분으로 개발한 두피모발 개선제. 전남대 피부과 전문의 김성진 교수팀이 임상시험으로 그 효능을 인정했다. 그가 PhS-1-P의 다양한 효능 중 탈모 예방에 주목한 건 자신의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저는 20대 초반부터 탈모가 진행됐습니다. 카이스트 박사를 할 때 특히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서 샤워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어요. PhS-1-P의 효능을 증명하기 위해 제가 먼저 발랐는데,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는 거예요. 미국의 유명 탈모치료제를 발랐을 땐 두피가 가렵고 효과도 없었거든요. 저 같은 유전적 탈모 환자는 시간이 걸리지만, 스트레스성 탈모나 원형 탈모 증상을 겪는 분들에게는 효과가 더 빠르게 나타납니다.”

    인터뷰 도중 신성화 이사가 “내 아내도 피토페시아로 원형 탈모를 극복했다”고 이야기를 거들었다. 제품의 효과를 확인한 신 이사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피토스의 주주이자 직원으로 합류했다.

    “아내가 원형 탈모 증상으로 1년 넘게 개인병원과 종합병원을 전전했지만, 효과가 없어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겪었어요. 하지만 피토페시아를 사용하면서 10주 후 완전히 회복된 거죠. 그때부터 제가 아예 피토페시아의 홍보대사로 나섰어요.”

    화장품으로 등록된 피토페시아 헤어토닉과 샴푸는 현재 홈페이지(www. phytos.co.kr)에서 판매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피부과에는 병원용 제품을 공급하는 중이다. 주문량이 점차 늘어나면서 판매와 마케팅은 별도 법인이 담당한다. 2013년이면 의약품치료제도 선보일 예정이다.

    노숙자 사역에 모두 쓴 자문료

    그의 행보가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나눔을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부산대 약학과를 졸업한 그는 원래 신학대 진학을 꿈꿨다.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에서였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이 모두 그를 말렸다. 그 다음으로 새롭게 찾은 목표가 바로 약을 만드는 일이었다.

    세계 최초 탈모 치료 화학물질 개발한 최명준

    PhS-1-P 물질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는 최명준 대표.

    “고 3때 병원 시체실에 가봤어요.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약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약대에 가겠다고 하니까 담임선생님이 ‘네 적성에 딱 맞는다’고 환영하셨어요. 꼭 목사가 되지 않아도 얼마든지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약대 공부가 제게 잘 맞았어요.”

    카이스트 석·박사를 마친 그는 녹십자 목암연구소에서 백신을 개발했다. 일 중독자였던 그는 일주일 7일 근무가 일상이었다. 늘 피곤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소변에서 피가 나왔다. 진단 결과 신장암이었다. 다행스러운 건 암이 다른 신체기관에 전이되지 않았다는 사실. 그는 신장 하나를 떼어냈고, 그 후 덤의 인생을 살았다.

    “당시 제가 참존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자문료를 받았는데, 그 전액을 노숙자 사역에 후원했어요. 녹십자에서 받은 월급은 집에 가져갔고요. 저는 성도가 50명인 조그만 교회에 다녔는데, 어느 날부터 노숙자 몇 명에게 밥을 사주고 돈을 봉투에 얼마씩 넣어 드렸죠. 그러자 교회를 찾는 노숙자 수가 200명까지 늘어났어요. 재정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되자, 참존에 가서 ‘노숙자들을 돕고 있는데 재정이 부족하니 자문료를 두 배 올려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흔쾌히 두 배로 올려주셨어요.”

    그가 미국 유학을 준비할 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미국으로 떠난다는 인사를 하러 김광석 참존 회장을 찾아간 날, 김 회장이 “미국에서의 모든 체류 비용과 연구에 필요한 재정을 후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회장님께서 제가 자문료 전부를 노숙자 사역에 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후진양성 차원에서 저를 지원해주시기로 했어요. 그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대(UCSF) 피부과에서 2002년부터 3년간 연구원으로 일했죠. 제가 1999년 피토스핑고신을 화학적으로 변형시켜 암전이 억제물질을 만들었는데, 보답하는 마음으로 그 특허를 참존에 양도했어요. 이 물질을 미국 회사와 함께 연구하려고 했는데, 미국 특허가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 대신 미국에서 화장품 효과를 결정하는 피부 투과 기술을 배우고 왔어요. 미백 화장품이 그 효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건 성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좋은 성분이 피부 깊숙이 들어가지 못해서거든요.”

    피폭에 대한 보호 약물 가능성

    한국에 돌아온 그는 참존에서 아토피, 건선용 화장품을 개발했다. 녹십자에서 익힌 면역 지식과 미국에서 배운 피부 관련 기술을 동시에 적용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07년 참존과 작별했다. 이후 한국임상시험센터장으로 근무하며 PhS-1-P 합성과 탈모 효능 증명 실험을 병행했다. 그는 이 물질을 상품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뒤 박영준 박사와 함께 ㈜피토스를 창업했다. 지금까지 여정은 모두 그가 사업을 펼치는 밑거름이 됐다.

    “PhS-1-P는 탈모 예방뿐 아니라 주름을 개선하고 피부탄력을 유지하는 데도 효과가 있어요. 피토스는 PhS-1-P를 포함한 모든 기능성 물질을 피부에 투과하는 기술에 대해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앞으로 아토피, 미백, 주름개선용 화장품을 출시할 예정이에요. 최근 피부과에서 자신의 피를 뽑아서 다시 주입하는 PRP 주사가 많이 쓰이는 데요. PhS-1-P를 바르면 비슷한 효능을 볼 수 있습니다.”

    최 대표가 PhS-1-P에 기대하는 또 다른 효능은 ‘방사능 피폭에 대한 보호 약물’로서의 가능성이다. 그는 “2002년 9월 의학잡지 ‘네이처 메디슨’지에 ‘S-1-P 화합물이 방사능에 노출된 암컷 쥐의 난소에서 난자의 미성숙 세포 혹은 난모 세포의 파괴를 막아줄 수 있다’는 사실이 실렸다”며 “S-1-P와 유사한 PhS-1-P도 방사능 보호 약물로 사용할 수 있는지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원에서 벤처 사업가로 변신한 최 대표는 피토스를 사회적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그는 “해외 시장에 진출해 더 큰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