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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쟁영웅 16인에 뽑힌 유일한 아시아계 고(故) 김영옥 대령

“망국의 한, 인종차별 딛고 전사(戰史)에 이름 남긴 인도주의자”

  • 한우성│재미언론인,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저자 wshan@stanford.edu

미국 전쟁영웅 16인에 뽑힌 유일한 아시아계 고(故) 김영옥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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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가 세운 전훈은 눈부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이 이탈리아 로마를 놓고 공방전을 벌일 때 김영옥 대령은 야음(夜陰)을 이용해 부하 1명만 데리고 독일군 진영에 침투했다. 다음날 날이 샌 뒤 적이 방심하는 틈을 타 포로 2명을 생포해 귀환한 그가 영웅이 된 건 당연한 일이다. 연합군은 이 포로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활용해 총공세에 돌입, 1944년 6월 로마 해방을 이끌어냈다. 3개월 후 벌어진 이탈리아 피사 해방전에서는 제갈공명을 무색게 하는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그가 이끄는 부대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아르노 강을 건너 피사에 무혈입성하도록 했다. 그해 9월 김영옥 대령의 부대에 의해 인류 문명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는 피사의 사탑이 전화(戰禍)에서 구제됐고, 피사는 해방됐다.

의지와 능력

프랑스에서 그는 연합군이 독일에 진입할 때 마지막 장애물이었던 보주산맥 전투에서 브뤼에르, 비퐁텐 지역을 해방시킨 주역이었다. 같은 해 10월 브뤼에르 전투에서 김영옥 대령은 적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독일군의 항복을 이끌며 승리를 얻기도 했다.

종전 후인 1946년 예편해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으로 변신한 김영옥 대령이 다시 전선으로 향하게 된 건 6·25전쟁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자 재입대를 자원, 유엔군 3차 반격의 견인차가 돼 1951년 5~6월 전선 60㎞ 북상의 주역이 됐다. 중부전선에서는 이때의 전선이 오늘날 휴전선의 원형이 됐다.

김영옥 대령은 이 전쟁에서 통상적인 미군 전선 복무기간의 2배인 18개월 동안, 중상을 입은 탓에 야전병원으로 후송된 기간을 제외하면 단 하루의 휴가도 없이 최전선을 지켰다. 그리고 1951년 10월 미군 역사상 전장에서 대대를 지휘한 최초의 유색인 대대장이 됐다. 그가 이끌던 미 육군 31연대 1대대는 최전선에서 싸우면서도 서울 삼각지 일원에 있던 고아원 ‘경천애인사’를 지원, 전쟁고아들을 돌봤다. 경천애인사는 고아를 최고 500여 명까지 수용했는데 이들 중 다수는 이후 화가·음악가·목사·교수·과학자·사업가 등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랐다.



6·25전쟁이 지지부진한 휴전회담과 함께 인명 피해만 양산하는 목적 없는 전쟁으로 변해가자 한국을 떠난 김영옥 대령은 1963년 군사고문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찾았다. 이때 한국에서 다시 전쟁이 터질 경우에 대비해 한국군 최초의 미사일 부대를 창설하는 등 한국 방어계획을 현대화해 이후 한국이 경제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군사적 방패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6·25전쟁에서 입은 중상의 후유증으로 큰 수술만 약 40차례 받으면서 1972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전역 후에도 미국 정계나 재계의 유혹을 뿌리치고 인종을 초월해 입양아·장애인·노인·청소년·빈민·가정폭력피해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는 데 33년을 바치다 2005년 눈을 감았다. 지금 그는 호놀룰루에 있는 미국 국립묘지에 영면해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조국 없는 이민자의 자식이라는 설움 △아버지의 독립운동에 따른 가난 △법적으로도 인정되던 인종차별 △전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한 신체장애라는 여러 걸림돌을 자신의 의지와 능력만으로 넘어서 세계를 무대로 기상을 떨쳤던, 그러면서도 항상 약자의 편에 섰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번 발표에 앞서서도 김영옥 대령의 희생과 헌신과 봉사를 인정하고 치하하는 조치를 계속해왔다. △각종 훈장 및 표창장 수여 △김영옥중학교 설립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설립 등이다. 우선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당시의 무훈에 입각해 특별무공훈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 1개(1944년), 은성무공훈장 2개, 공로무공훈장 2개, 동성무공훈장 2개, 전상훈장 3개 등 최소 10개의 주요 훈장을 그에게 수여했다. 특별무공훈장은 미국 최고무공훈장인 명예무공훈장(Medal of Honor)에 이어 훈격 2위인 훈장이다. 김영옥 대령은 이외에도 한국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2006년)과 국민훈장 모란장, 프랑스에서는 최고무공훈장인 레지옹도뇌르 훈장(2005년)과 십자무공훈장, 이탈리아의 최고무공훈장인 십자무공훈장(1946년)과 동성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미국 정부기관, 연방의원들, 캘리포니아주 의회 및 주의원들, 로스앤젤레스 시의회 및 시의원들, 민간기관 등이 그에게 수여한 표창장도 250개가 넘는다. 에드워드 로이스 미국 연방하원의원은 수년 전 김영옥 대령의 업적을 찬양하며 연방의회 속기록에 이를 공식적으로 남기기도 했다.

미국 전쟁영웅 16인에 뽑힌 유일한 아시아계 고(故) 김영옥 대령

(왼쪽) 2009년 9월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 개교한 김영옥 중학교.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한국인의 이름을 딴 중학교다. (오른쪽) 2010년 9월 열린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 개소식. 왼쪽 두 번째부터 1948년·1952년 올림픽 다이빙 종목 금메달을 획득한 한민족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선수 새미 리, 티모시 화이트 UCR 총장, 홍명기 후원이사장, 한 명 건너 연구소장 장태한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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