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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⑨

제2의 이소룡을 꿈꿨던 사나이 왕호

영화 무림을 평정한 전설의 태권 스타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제2의 이소룡을 꿈꿨던 사나이 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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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나는 스무 살 성인이 됐다. 그리고 또다시 왕호를 보러 극장을 찾았다. 영화의 제목은 ‘생사결’. 홍콩 영화였다. 극장 간판에는 또 왕호 주연작이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흥, 하고 비웃었다. 이제는 성인이 됐으니 더 이상 속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시작됐다. 혹시 왕호가 이제는 홍콩 영화계에서 성공해 주연으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하더니, 나는 또다시 왕호의 첫 홍콩 진출작 ‘사대문파’를 보던 초등학생이 돼 이제나 저제나 왕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왕호는 중간쯤 잠깐 출연해 멋진, 그러나 이제는 좀 지쳐 보이는 발차기를 선보이고는 죽어버렸다. 내가 분통이 터지는데 왕호 본인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사라진 전설

태국에서 만든 무에타이 영화 ‘옹박’이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주인공이 두 다리에 불을 붙이고 3~4m를 날아올라 상대방을 날려버리는 멋진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하하. 그까짓 것. 이미 30여 년 전 왕호는 두 다리에 불을 붙이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식탁 서너 개를 뛰어넘어 상대방의 몸통을 날려버리는 명연기를 선보였었다. 홍콩으로 건너간 왕호는 정말 열심히 영화 일을 했다. 온몸을 불사르고 영화 출연자 중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멋진 액션 연기를 한 전설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홍콩에서 돌아온 왕호는 야심만만하게 자신이 주연을 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 첫 번째가 1977년의 ‘사대철인’이다. 무술이 월등하게 뛰어난 적을 물리치기 위해 주인공 왕호는 일부러 적의 창이 자신의 배를 관통하게 해 적의 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고는 적과 포옹해 자기 배에 꽂힌 적의 창으로 자신과 적이 함께 죽는 장렬한 라스트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몇 해 전 상영돼 관객을 감동시켰던 ‘소림사 18동인’과 ‘소림사 십대제자’의 라스트에서 다 보았던, 주인공이 희생해 적과 함께 자폭하는 장렬한 라스트였다. 뭐 거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한국의 관객 수준을 너무 생각했는지, 주인공 왕호는 적의 창을 배에 꽂고는 껄껄 웃으며 “크하하하. 넌 속은 거야. 넌 이제 무기가 없어. 내 뱃속에 들어와 있잖아. 넌 이제 너의 창에 찔려 죽을 거야”라고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준다. 형편없는 시나리오와 연출. 그가 잠깐 틈을 내 한국에서 만든 영화는 모두 급조된 형편없는 것들이다. 게다가 그의 멋진 발차기를 멋있게 찍어내는 연출조차 한국에는 없었다.

1970년대 후반. 왕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 자신이 직접 감독을 하고 주연을 하며 영화를 찍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홍콩에서 배울 만큼 배웠다. 게다가 돈도 모았다. 이제 내가 멋진 영화를 찍겠다.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홍콩에서 마왕으로 대우를 받았던 황정리가 생각난다. 1980년대 초.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한국 액션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수없이 시행착오를 한 왕호가 영화를 위해 자신을 낮추는 방법을 알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엿보이는 영화다. ‘흑표비객’(1981). 물론 말도 안 되는 장면이 많고, 당시 극장가를 휩쓴 홍콩의 코미디 쿵푸 영화를 닮으려는 기색이 뻔뻔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왕호는 자신만 돋보여서는 영화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무술 액션배우가 아닌, 영화배우가 돼간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제2의 이소룡을 꿈꿨던 사나이 왕호
오승욱

1963년 서울생

서울대 조소학 학사

영화 ‘킬리만자로’ 각본 및 연출

1999년 제36회 대종상 영화제 각본상 수상


1970년대. 나의 아버지와 삼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뜨거운 사막의 땅, 사우디로 갔었다. 청소년 시절 왕호의 꿈은 미국에 가서 태권도 사범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 사내들은 몸뚱이 하나를 밑천으로 멀리 타국으로 날아가 성공하고 싶어했다. 왕호의 인터뷰를 보면 홍콩 액션 배우들이 못하는 것을 자신은 해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생각하며 몸에 무리가 오더라도 참아내며 일을 했다고 한다. 피와 땀을 흘리며 성실하게 육체노동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그를 한국 영화계는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저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서로의 재능과 열정을 탕진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제2의 이소룡이 될 수도 있었던 재능 있는 사나이는 스크린에서 사라져버린다.

신동아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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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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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소룡을 꿈꿨던 사나이 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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