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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알리의 전쟁 ⑥

가난한 사람들 돕기 위해 이념의 틀을 넘어서다

  • 안병찬│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ann-bc@daum.net

가난한 사람들 돕기 위해 이념의 틀을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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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스포츠맨’ 칭호 /

상기한 3대 스포츠상이 같은 사람을 ‘세기의 스포츠맨’으로 선정한 것은 알리를 포함해서 3명뿐이다. 첫 번째 스포츠 대상 3관왕은 골프의 전설인 잭 니클라우스다. 그는 1986년에 46세의 나이로 마스터즈 대회에서 여섯 번째 우승컵을 안은 후 3관왕이 됐다. 두 번째는 1958년 월드컵 때 17세의 나이로 브라질팀 우승의 주역을 맡은 펠레다. 그는 월드컵의 우승컵을 세 번 안았고 개인 득점은 통산 1000골을 넘기고 3관왕이 되었다. 니클라우스와 펠레에 이어 알리도 굶주리는 어린이와 가난한 주민을 위해 자선하고 헌신하고 있다.

그는 권투선수 초기에 일찌감치 ‘이슬람 국민’ 조직과 긴밀한 유대를 맺는다. 그는 노예의 이름인 캐시어스 클레이를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슬람의 이름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개명이 아니었다. 그는 역사적으로 차별받아온 흑인에게 자존을 되찾아주는 선구자로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 미국 백인정권의 탄압을 받은 그는 미군에 입대하기를 거부하는 투쟁을 통해 1960년대 베트남 참전반대의 물결을 선도했다.

알리는 킨샤사, 마닐라, 콸라룸푸르같이 멀리 떨어진 나라의 수도에서 기꺼이 챔피언전을 벌였다. 그는 권투 챔피언전을 초강대국 위주로 벌인다는 통념을 깨고 개발도상국가로 지평을 넓힌 챔피언이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정치적인 이념의 틀을 용감하게 넘어섰다. 친선사절로 아프가니스탄과 북한을 찾아가고, 미국이 봉쇄한 쿠바에 긴급하게 필요한 의약품을 공급했다. 또 걸프전 때는 이라크를 여행하면서 15명의 미국인 인질이 석방되는 데 촉매 구실을 했고, 남아프리카로 달려가서 석방되는 넬슨 만델라를 맞았다.



/ 박애주의자 /

근간에 무하마드 알리는 발전도상국이 봉착한 열악한 삶의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는 기아에 봉착한 세계 각지에 도합 2억3200만명분의 식사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코트디부아르, 인도네시아, 멕시코, 모로코와 다른 여러 빈곤국을 여행하면서 그곳 어린이에게 식량과 의료품을 공급해왔다.

이런 국제적인 노력과 병행해 미국 내에서도 쉴 사이 없이 병원과 급식소와 자선단체를 방문해 돕고 있다. 그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 시에 있는 ‘무하마드 알리 파킨슨 리서치센터’의 운영자금을 모금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그는 이른바 ‘무하마드 알리 복싱개혁안’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이 연방법안은 부도덕한 권투흥행사 때문에 권투선수가 건강을 망치지 않도록 지키고 보호해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알리는 미국 상원에 여러 번 증인으로 출석해 ‘무하마드 알리 복싱개혁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찍이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무하마드 알리의 폭넓은 활동을 가리켜 ‘국제친선 인(미스터 인터내셔널 프렌드십)’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인도적인 노력을 기울인 공으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중요한 상은 다음과 같다.

1998~2008년 : 유엔 평화의 메신저상

2005년 : 미국 최고 인권상 대통령 자유메달, 국제앰네스티 평생 성취상

2005년 : 독일평화메달 주빌리2000 국제대사상, 세기의 켄터키인상, 세기의 루이빌시민상

/ 예능인 /

무하마드 알리는 뛰어난 예능인의 소양을 타고났다. 그는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첫 작품은 자전적인 영화 ‘위대한 자(더 그레이테스트)’인데 여기서 그는 직접 자기 역할을 연기했다.

그를 다룬 영화 중 대표적인 작품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우리가 왕이었을 때(When We Were Kings)’이다. 또 윌 스미스가 주연한 전기 영화 ‘알리’도 유명하다.

알리는 텔레비전 영화 ‘자유의 길’에도 직접 출연했다. 그밖에 많은 텔레비전 영화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브로드웨이에 나가 뮤지컬 ‘백인에 항거한 위대한 시절(Big Time Buck White)’에 출연하는가 하면 ‘나는 가장 위대한 자’라는 제목의 앨범을 취입했다. 그는 ‘나비의 정신: 인생여행의 회상’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냈다. 종교와 용서의 의미를 논하고 자기 인생사의 전환점이 된 순간을 짚어보는 내용이다. 또 ‘위대한 자의 관용과 이해의 일지: 나 자신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공저를 냈다.

안병찬

가난한 사람들 돕기 위해 이념의 틀을 넘어서다
경찰에 앞서 살인사건 2건을 해결해 이름을 날린 사건기자 출신. 한국일보 베트남 특파원 시절이던 1975년 남부 베트남 패망(베트남 통일)의 마지막 현장을 취재하고 탈출한 후 르포르타주 ‘사이공 최후의 새벽’을 발간해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한국일보 주불특파원·논설위원을 거쳤고 시사저널 편집·발행인을 역임한 후 경원대 언론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민영통신 뉴시스의 고정칼럼 ‘기자 49년차―안병찬의 영상르포르타주’(http://www.newsis.com)를 집필하고 소셜뉴스 위키트리의 개인 데스크 ‘안병찬 기자 49년차’(http://www.wikitree.co.kr)를 운영하며 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을 맡고 있다. ‘신문 발행인의 권력과 리더십’ 등 저서 16권이 있다.


신동아 201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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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ann-b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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