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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⑩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1970년대 패기 넘치는 영웅 신화의 주인공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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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액션 히어로  이대근

2010 대종상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은 이대근이 시상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두한은 시리즈를 거듭해 만들어진다. 1975년 김두한 시리즈의 세 번째 속편 ‘속 김두한 3부’가 만들어지고 같은 해 4부가 나온다. 그 다음해 ‘김두한 서대문 일번지’가 만들어지면서 김두한 시리즈는 총 5부작이 된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대근은 ‘거지왕 김춘삼’에 출연, 한국 현대사에 등장하는 거물급 주먹을 두 명이나 연기하게 된다. 몇 년 후 ‘시라소니’에서 주연을 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신화적인 깡패 세 명을 모두 연기해낸다.

이대근은 1960년대의 액션 스타 장동휘, 박노식과는 다른 유형의 액션 스타다. 1960년대의 액션 스타들이 거의 모두 자신이 깡패로 살아온 과거를 뉘우치고 새 삶을 살려 했던 것에 비해 그는 실존 인물을 기반으로 한 영웅담의 주인공이었다. 1960년대 액션 영화 주인공들이 전후 비참하고 가난한 조국을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 태어나야 할 죄의식을 가진 인물이었다면 이대근에게는 죄의식이 없다. 그에게는 고귀한 혈통이 있고, 그것을 자부심으로 삼아 영웅으로 등극한다. 석유산업과 철강, 자동차산업을 기반으로 선진화를 향한 꿈에 부풀어 있었던 1970년대에 가장 어울리는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1960년대만 해도 과거는 제거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이제는 신화화된 과거가 오늘의 자신에게 광휘를 입혀주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이대근은 영웅담의 주인공에서 벗어나 순수한 사나이의 활극인 ‘제삼부두 고슴도치’ ‘오륙도 이무기’ ‘동백꽃 신사’에 출연한다. 이 영화들 역시 대단히 재미있었다. 그는 쾌활한 주인공이었다. 개과천선해야 할 깡패가 아니다. 신분을 속이고 깡패 소굴에 잠입해 좌충우돌하는 형사다. 언뜻 그가 존경했던 액션 황제 박노식의 용팔이와 비슷하지만, 이대근은 박노식보다 더 가볍고 경쾌하다. 이대근이 출연하는 액션 영화에서 과거 죄의식의 그림자가 있는 배역은 없었다.

깡패를 넘어

1970년대 말 이대근은 액션 영화를 넘어서 그의 연기 지평을 확장한다. 첫 번째 성공작이 유현목 감독의 ‘장마’다. 구렁이가 돼 해마다 제삿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삼촌. 그는 누구인가? 그 어떤 원혼이 있어 귀신도 못되고 흉물인 구렁이의 몸을 빌려 나타나는가?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마을에서 그동안 힘쓰는 일밖에는 모르고 업신여김을 당하며 죽어라 일만 하던 이대근은 완장을 찬다. 그동안의 업신여김은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 보니 자신은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이 영화에서 이대근은 용암처럼 분출하는 거칠고 격한 감정을 토해낸다. 그 감정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영화를 보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한다. 이대근이 그 배역의 감정에 어느 정도까지 빠졌는가 하면, 제삿밥을 먹으러 마당을 기어오는 구렁이까지 자신이 연기하고 싶었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대근을 격한 감정만을 토해내는, 그런 다혈질의 배우로만 기억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듬해 출연한 ‘최후의 증인’에서의 이대근은 또 다르다. 음흉하고 더러운 생각만으로 똘똘 뭉친 반공 청년단 단장 역을 맡은 이대근은 깊은 밤, 소리 없이 마을 유지의 사랑방 앞에 선다. 오늘 밤, 전멸 위기에 처한 빨치산 대장의 투항 조건을 이야기하는 비밀 회동을 하기 위해 마을 유지의 주선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다. 마을 유지가 방으로 들어오라 하자, 이대근은 시꺼먼 군화를 벗으려다 만일을 위해라며 군화를 신은 채로 방 안으로 들어간다. 콩기름을 먹인 노란 장판 위를 군홧발로 걸어가 앉는 이대근. 빨치산 대장이 나타나자 신중하면서도 머릿속의 더러운 생각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아! 저 사람이 언제 영웅 김두한을 연기한 배우였던가 싶을 정도로 뻔뻔하고 야비한 연기를 능청스럽게 한다. 이 영화에서 이대근이 보여준 연기의 압권은 야비한 술수로 정윤희를 아내 삼고 그녀의 재산을 모두 가로채 가족을 이룬 노년의 모습이다. 이제는 마을의 최고 부자로 군림하고 정윤희와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장성해 최고로 행복해야 할 그다. 그러나 정윤희의 마음만은 갖지 못했다. 아니 절대로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안다. 고등학생이 되어 도시로 유학을 떠났던 자식들이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반갑게 맞이하는 이대근. 자식들도 오랜만의 만남이니 화기애애하다. 정윤희는 아이들의 얼굴만 보고 소리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이대근은 머쓱해진 얼굴로 “저 사람 또 저런다. 쌀쌀맞기는…” 한다. 자신의 허세뿐인 권위와 거짓 평화를 들키지 않으려 허튼소리로 무마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하자마자 거짓 권위와 평화는 깨지고 아이들은 모두 정윤희에게로 가고 이대근 혼자 넓은 마당에 남는다. 이 영화에서 이대근은 악당 남자 최고의 연기를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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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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