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가장 큰 적은 외로움, 맘만 있으면 불가능은 없다”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 도전, 대학생 윤승철

  • 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

    입력2012-04-19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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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집트의 사하라 사막과 칠레 아타카마 사막 250㎞를 달린 대학생이 있다.
    • 동국대 문예창작과 학생인 윤승철 씨다. 그의 마라톤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올해 6월에는 중국 고비 사막에, 11월에는 남극에 다녀올 예정이다. 이른바 사막 마라톤 그랜드 슬램의 완성이다.
    • 스물넷의 젊은이가 끝도 없는 사막에서 고독한 레이스를 펼치는 이유가 궁금했다.
    “가장 큰 적은 외로움, 맘만 있으면 불가능은 없다”
    사막 마라톤 참가자들은 6박7일 동안 250㎞의 사막을 종주한다. 여기에는 밤을 꼬박 새워 80㎞ 이상을 달리는 논스톱(Non-stop) 코스와 평지 마라톤처럼 42.195㎞를 완주하는 코스가 반드시 포함된다. 바싹 마른 코스에 제공되는 물은 하루 10L. 여섯 개 구간을 달리는 사막 마라톤에는 참가자가 평균 200여 명에 달한다. 고비나 사하라 같은 사막뿐 아니라 아마존이나 남극에서 벌어지기도 해서 오지 마라톤이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2011년 10월 처음으로 사하라 레이스를 완주한 대학생 윤승철(22) 씨는 두 번째 마라톤으로 올해 3월 아타카마 레이스를 마쳤다. 6월 열리는 고비 레이스를 준비 중인 윤 씨를 4 월 5일 그가 재학 중인 동국대학교에서 만났다.

    “사막에서 6박7일 동안 묵묵히 걸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다리를 번갈아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내가 이 마라톤을 왜 한다고 했을까, 회의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완주를 하고나면 내가 무언가를 해냈구나 하는 구체적인 실감이 만져져요. 11월 남극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면서 남에게 제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리 부상과 해병대 지원

    2008년 문예창작이라는 전공을 택해 대학에 들어온 윤 씨는 대학 1학년 시절을 즐겁게 보냈다고 한다. 장학금, 동아리 활동, 아르바이트 등등 대학생으로서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두루 섭렵했고 돌아오는 해에는 군 입대를 하겠다고 결심한 어느 날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앉아 있는 대학생들이 모두 토익이나 토플 책, 각종 자격증 수험서를 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예창작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후배, 동기들 중에는 휴학까지 하고 신춘문예 등단을 위해 매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윤 씨의 고민이 시작됐다. 이제까지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든 것.



    “처음에는 철인 3종 경기를 해볼까 했어요. 그러다가 사막 마라톤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몸을 단련하고 정신력을 시험해볼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많은 방법 중에 왜 하필 몸을 극한으로 밀어넣는 일을 시도하고 싶었을까? 윤 씨는 평발로 태어난 데다 중학교 시절 다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다. 깨진 유리를 밟고 넘어지며 발목이 돌아가고 정강이뼈가 두 동강 나서 3개월 동안 입원해야만 했다. 워낙 특이한 사례라 담당 의사가 논문 자료로 쓰고 싶다고 나설 정도였다고 한다. 장난꾸러기 중학생이었던 그는 병상에서 처음으로 책다운 책을 접하게 됐다.

    “휴대전화로 오락도 하고, 만화책도 읽었는데 3개월 동안 계속 그러기에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보니까 직접 써보고 싶다는 의지도 생겼습니다.”

    그 후 대학교에 들어오기까지 유약한 문학청년이라는 보통의 고정관념대로 몸을 움직이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윤 씨 개인에게 가장 큰 ‘도전’은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었다. 때마침 병원에서도 체계적인 연습을 통해 몸을 단련시키면 별 무리 없이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자신의 몸이 사막 마라톤을 버틸 수 있게끔 하기 위해 그는 해병대에 자원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해병대 공수부대 병장으로 당당히 만기 전역을 했다.

    “해병대 복무를 정신 무장하는 기회로 삼아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초기에는 후회도 했죠. 사막 마라톤 대비 훈련이라는 마음으로 입대했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힘들었어요. 전역한 지금은 잘했다고 느끼지만요. 해병대에 자원한 친구들은 체력도 정신력도 남달라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요. 앞으로 글을 쓸 때도 보탬이 될 수 있는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부딪치면 열릴 것이다

    군 전역 이틀 뒤, 윤 씨는 중남미행 비행기에 올랐다. 막연히 중남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표를 예매해놓은 것이었다. 비행기 삯은 공수부대에서 낙하를 할 때마다 받았던 생명수당을 모아 충당했다. 쿠바에서 멕시코, 페루 등을 거쳐 칠레까지 40일의 여행은 추억이 됐고, 훗날 그가 칠레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에 참여할 때에도 동력이 돼줬다. 중남미에서 해가 바뀌고 2011년 참가하게 된 사하라 레이스, 그의 첫 사막 마라톤 6박7일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력과 체력은 준비되었는데, 참가비와 준비물이 문제였다. 그는 후원을 받으러 기업체를 돌아다녔다.

    “일단은 장비를 협찬해줄 아웃도어 업체를 찾아다녔고요. 사막의 모래에도 견딜 수 있는 특수 사진기가 필요해서 사진기 회사마다 돌아다니며 후원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담당자에게 전화도 하고, e메일도 보내고, 등기우편도 부치고요. 당연히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잘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붙었어요. 기업들은 도전적인 인재상을 구한다고 하잖아요. 제가 그 기업들이 표방하는 상에 맞는 인재가 되어보자는 마음이었죠.”

    “가장 큰 적은 외로움, 맘만 있으면 불가능은 없다”
    다행히 교수가 한 출판사를 연계해주어 비용을 협찬받기로 했다. 더불어 사막 마라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면 여행기를 출판할 수도 있게 됐다. 착용할 신발, 모자 같은 용품들을 제공하겠다는 아웃도어 업체도 나타났다. 한 달 반 동안 홀로, 맨몸으로 부딪친 결과였다.

    2011년 10월 사하라 사막에서 인간 윤승철의 진정한 도전이 드디어 시작됐다. 그곳은 상상만 했던 사막과 다른 장소였다. 알고 있던 것들도 더욱 절박하게 다가왔다. 세계 각지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200여 명이 참가했다. 각자 낮에는 뛰거나 걷고 밤에는 열 명 단위로 천막에 모여 잤다. 남은 모르는,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인지라 언어가 달라도 마음이 통했다.

    사막에서 만난 지독한 외로움

    “태양이 뜨겁고 다리가 아픈 것은 기본이에요.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이었습니다. 기량은 200명이 천차만별이고요. 서로 동행하며 걷고 뛸 수가 없습니다. 체력이 비슷한 사람끼리도 매일의 컨디션이 다르고요.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잠시 발을 멈추면, 방금 전 지나쳤던 사람이 저 멀리 까만 점으로 보여요.”

    아침 7시에 출발해서 해가 중천에 뜨기 전 바짝 뛰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한참을 걷다가, 다시 기온이 조금 떨어진다 싶으면 뛰어가며 페이스를 조절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뛰고 걸어 캠프에 들어서면 거기 사람이 존재하고 있고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사방이 모래인 사막에서는 원근감이 없어요. 멀리 점으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도 걷고 있으니까 30분을 걸어가도 같은 풍경이지요.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그때마다 앞사람이 남긴 발자국이 너무 소중했어요. 레이스 중간 중간에는 기록을 점검하고 물을 보충하는 ‘체크포인트’마다 검은 천막이 서 있습니다. 한번은 천막이 보여서 기쁜 마음에 남은 물을 싹 마시고 달려갔는데, 달려도 달려도 가까워지지를 않아서 결국 1시간 40분을 달려야 했어요.”

    주최 측이 응급 장비를 제공하고, 지원 요원들도 있지만 ‘사막’이라는 환경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다. 특히 윤 씨 같은 초보 참가자에게는 사막 마라톤이 환경과의 싸움인 동시에 자신과의 싸움으로 다가온다.

    “빨리 도착해야겠다는 생각에 걷기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멀리서 누가 손을 흔들기에 인사를 하나보다 싶어서 저도 손을 흔들었어요. 인사하고 다시 걸어가려니까 상대가 계속 소리를 지르고 팔로 X자 모양을 만들고 해서 정신을 차렸죠. 제가 깃발이 꽂혀 있는 공식 코스를 벗어나 있었습니다.”

    사막에는 사진에서만 보던 바싹 마른 나뭇가지와 동물의 뼈가 진짜로 널려 있었다. 윤 씨는 한번 길이 어긋나면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생한 절박함에 압도됐다. 일교차도 엄청났다. 낮에 뜨겁게 달구어진 사막이 얼마나 추워지랴 싶었지만, 사막의 밤은 예상을 뛰어넘어 시리게 다가왔다. 방한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던 초보 마라토너는 밤마다 떨었다.

    두 번째 아타카마 레이스는 올해 3월 열렸다. 첫 번째보다 단단히 준비했지만 열기와 피로는 여전했다. 자연이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를 내리기라도 한 듯 2000만 년 동안 연간 강수량이 몇 밀리미터가 되지 않았던 아타카마 사막에 비가 내렸다.

    “사막에서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요. 비가 와서 배낭이 축축 처지고, 신발에 물이 차서 발에는 물집이 잡혔어요. 내가 사막에 왜 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지요.”

    윤씨는 레이스에 참가할 때마다 점점 또렷해지는 감각이 있지만 고비 사막과 남극까지 다녀와야 자신이 사막에 왜 다녀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섣부르지만 자신 있게 추천하는 한 가지는 사막의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다.

    한번은 벗어나서 도전해보기

    “뭔가 특별한 목표를 달성하려고 사막에 간 건 아니에요. 평발로 태어나, 다리를 다친 적이 있고, 책만 읽고 글만 쓰던 학생도 마음을 먹으면 사막 마라톤을 뛸 수 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무어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어요.”

    그의 노력이 가상했던 터라 두 번째 아타카마 레이스는 동국대학교에서 후원을 해줬다. 요새 그는 고비 사막과 남극 레이스의 후원자를 구하기 위해 열심이다.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붙어서 이번에도 잘 풀리리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20대의 윤 씨가 지금 단계에서 원하는 것은 좀 더 많은 경험이다. 현재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는 ‘나야, 사막이야?’라는 농담으로 그의 도전정신을 살짝 나무라는 모양이다. 그가 남극 마라톤을 떠나면 자신도 혼자 여행을 가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알콩달콩 연애도 하고, 평생 추억할 마라톤을 떠나고, 그렇게 세상과 부딪쳐보는 것을 청춘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는 남극 마라톤을 끝내면 아프리카로 교환학생을 떠날 계획도 세워뒀다. 미지의 대륙, 그만큼 오해도 많았던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깨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다. 그는 졸업 후 더 먼 미래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목표가 있으면 몸이 절로 움직이더라는 말로 장래희망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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