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삼성전자·LG전자 3D TV 같은 제품인데도 미국에서 200만 원 싸다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2-04-20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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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LG전자 3D TV 같은 제품인데도 미국에서 200만 원 싸다

    올 1월 열린 ‘2012 CES’에서 한 외국인이 LG전자의 3DTV를 체험 중이다(왼쪽).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를 가득 메운 삼성 광고.

    3월 19일 미국 상무부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시장에서 냉동실이 하단에 있는 프렌치도어 냉장고를 덤핑 가격으로 팔아왔다며 ‘반(反)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례적으로 4월 17일 ITC는 ”미국 관련 산업이 이로 인해 구체적으로 피해를 입었거나 위협을 받지 않았다”고 판단해 덤핑수출 혐의에 대해 기각 판정을 내렸지만 미국 전자업체 월풀은 한국 전자업체의 세탁기 판매에 대해서도 반덤핑 제소를 걸어놓은 상태여서 관련 논란은 끊이지 않을 예정이다.

    삼성·LG 미 3대 백색가전 과반 점유

    삼성전자, LG전자를 필두로 한국 전자업체들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티븐슨 컴퍼니에 따르면 2011년 미국 프렌치도어 냉장고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25.6%, LG전자는 20.4%를 점유했다. 캔모어(14.8%), GE(9.3%), 메이택(8.8%) 등 미국 업체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드럼세탁기의 경우 LG전자(21.1%)와 삼성전자(20.0%)가 선두에 있고, 월풀(16.0%), 캔모어(16.0%), 메이택(10.1%)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3D TV 역시 삼성전자(46%), LG전자(27%) 등 한국 업체가 선두다. 미국 시장에서 냉장고, 세탁기, TV 등 주요 백색가전 시장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절반 이상 점유하고 있는 것.

    한국 업체가 다른 글로벌 가전업체를 제치고 미국 가전 시장을 장악한 비결은 무엇일까? ‘신동아’는 최근 판매 경쟁이 치열한 3D TV를 중심으로 냉장고, 세탁기, 태블릿PC, 홈시어터 등 삼성전자와 LG전자 가전제품의 미국과 한국 판매가를 분석했다. 공정한 가격 비교를 위해 미국 최대 인터넷 가격비교사이트 ‘프라이스 그라버(Price Grabber)’와 한국 네이버 지식쇼핑 가격비교사이트 자료를 이용했다. 같은 제품 모델이나 유사한 사양의 제품에 대해 사이트별 최저가격과 최고가격을 선정한 뒤 그 둘의 평균을 구해 각국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평균 판매가격을 정했다.



    이를 통해 3D TV, 홈시어터 등의 항목에서 같은 제품이라도 한국에서 더욱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미국에서 판매 상위 순위를 기록한 삼성 TV 5종의 한국과 미국 평균 판매가격을 비교하자 최소 45만 원에서 최고 230만 원까지 차이가 났다. 현재 삼성 TV 중 미국 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모델은 UN55D7000이다. 55인치 LED 풀-HD 화질의 TV인 이 모델은 미국에서 최저 180만 원, 최고 249만 원에 판매되고 있지만 한국 네이버에서는 445만 원 내외에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같은 제품이라도 미국에서 살 때와 한국에서 살 때 최고 2배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나는 것. 같은 크기의 최신 제품인 UN55D8000 모델 역시 미국에서는 평균 250만 원대에 판매됐지만 한국에서는 440만 원대에 판매돼 평균 가격차이가 190만 원에 달했다.

    LG전자 TV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미국 판매 순위 상위 5개 TV 제품을 비교한 결과 많은 경우 평균 판매가격이 258만 원까지 차이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스마트 TV인 65LW6500의 경우 미국에서는 평균 455만 원대에 판매됐지만, 한국에서는 714만 원대에 판매됐다. 특히 미국 최저가(265만 원)는 한국 최고가(921만 원)의 4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가격 차이가 컸다.

    삼성전자·LG전자 3D TV 같은 제품인데도 미국에서 200만 원 싸다
    “한국서 안 파는 제품 가격 임의 설정”

    홈시어터, MP3 플레이어 등에서도 이 같은 가격차이가 났다. 삼성이 야심 차게 출시한 신개념 MP3 플레이어 ‘갤럭시 플레이어’의 경우 같은 용량(8기가)에 같은 모델인데도 평균 가격차가 8만3000원가량 발생했다. 삼성 홈시어터 역시 같은 제품(HT-D5550)의 평균 가격차가 50만 원에 달했다.

    냉장고, 세탁기와 관련해서는 한국에서 주로 판매되는 모델과 미국에서 주로 판매되는 모델이 달라 객관적인 비교가 어려웠다. 냉장고의 경우 한국에서는 왼쪽엔 냉동실, 오른쪽엔 냉장실이 분리된 양문형이 인기지만 미국에서는 사용 빈도가 높은 냉장실이 위로 가고 냉동실이 아래에 달린 프렌치도어형이 인기다. 세탁기도 한국에서는 세탁기 상단에 입구가 있는 일명 ‘통돌이 세탁기’가 드럼세탁기와 6대4 비율로 판매되지만, 미국에서는 주로 드럼세탁기가 판매된다. 미국 상무부는 삼성전자, LG전자에 대해 반덤핑 판정을 하면서 “한국에서 판매되지 않는 제품의 가격을 임의로 설정하는 방법을 썼다”고 지적했다.

    TV 등 가전제품에서 왜 이 같은 가격차가 나는 걸까? 삼성전자 측은 “미국은 가격과 별도로 VAT(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 또한 미국 판매 제품에 대해서는 무상수리 보장이 되지 않았고 무료 배송도 아니다”라며 “이런 사항까지 고려하면 미국과 한국 판매가격은 크게 차이가 없다. 또한 별도의 할인행사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고지된 가격으로만 단순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최대 200만 원까지 차이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내수보다 해외 수출을 중시하는 기업 풍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 기업은 이미 한국에서 ‘대체재 없는 1, 2등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회사 성장을 위해서는 내수보다 해외 공략이 필수적이다”며 “백색가전은 마진율이 10% 이내인데다 미국 소비자는 실용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가격 인하보다 더 나은 마케팅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가 내수시장을 무시하고 수출품에만 혜택을 준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8월 미국 최대 전자제품 판매 사이트 베스트바이에서 삼성 3D TV 구매자에게 미국에서 출시된 지 두 달 된 갤럭시탭 10.1을 무료로 증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국내에 출시된 지 한 달밖에 안 된 태블릿 PC를 미국 소비자에게 공짜 사은품으로 증정한 것.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갤럭시탭 10.1 출시만 기다렸다 구매한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뻥튀기 가격이 형성되는 것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 때문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사용한 마케팅 비용은 9조4095억 원. 하루에 258억 원이 마케팅 비용으로 지출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피겨선수 김연아, 수영선수 박태환, 탤런트 한가인, 이승기 등 매 시즌 가장 잘나가는 모델을 통해 이미지 광고를 했다. 탤런트 이나영, 이민정 등을 광고 모델로 섭외한 LG전자 역시 마찬가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국내 소비자에게 부담이 된다.

    한편 해외에서 제품을 저렴하게 판다는 비판을 가장 많이 받아온 것은 현대자동차다. 그간 쏘나타, 제네시스 등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한국 시장보다 많게는 1500달러 저렴하게 팔려 비판을 받았다. 이에 2011년 11월 현대차는 신형 그랜저(현지명 아제라)의 미국 출시를 앞두고 “차값을 3만 달러 이상으로 정해 제값받기를 실천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키움증권 측은 “제값받기 정책 통한 고급화 전략이 성공을 거둘 것이며 현대차의 해외 이익안정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IT전문가 박중현 씨는 “미국 컨슈머 리포트에서 삼성전자 3D TV는 최하위 점수를 받는 등 품질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가격경쟁력으로만 공략해서는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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