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神의 나라는 콘크리트 장벽과 폭탄테러 너머에

이스라엘-이슬람 갈등과 종교

  • 이스라엘 예루살렘∙팔레스타인 라말라=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13-06-20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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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종 간 갈등은 있지만 백인과 흑인이 짝을 맺기도 한다. 민족 간 감정의 골이 있어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혼인하기도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이웃해 살면서도 결혼하지 않는다. 적대감, 멸시, 복수심, 분노가 극에 달하면 남녀 간의 감정도 얼어붙게 하는 걸까.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분쟁지역,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취재하면서 다시 종교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神의 나라는 콘크리트 장벽과 폭탄테러 너머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도시를 외부와 차단한 분리 장벽.

    5월 18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곽 안에 있는 ‘통곡의 벽’을 찾았다. 이곳은 유대인들의 성지(聖地)다. 광장에 영어로 된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유대의 전통은 이곳이 천지창조의 중심이라고 가르친다. 언덕의 중심엔 세계를 떠받드는 주춧돌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만든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나왔다. 이곳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신을 섬겼다.’

    여러 나라 유적지와 관광지를 둘러봤지만 이런 식의 안내문은 보지 못했다.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다. 안내문은 세계와 역사와 인간 그 자체의 발원지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창세기 이야기가 ‘자뻑’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구약성서로 이어져 지금도 21억 기독교인을 동화시키고 있다.

    서기 70년 로마 제국에 의해 멸망된 뒤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1948년 이들은 옛 땅에 다시 돌아와 이스라엘을 세웠다.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는 2만766㎢로 그리 넓지 않은 데다 70% 이상은 사막화가 진행돼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 스스로는 이 땅을 ‘거룩한 땅(holly land)’이라고 부른다. 이들에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복지’이자 ‘소돔과 고모라의 땅’이며 ‘모세가 영도하고 다윗과 솔로몬이 번영을 구가한 시오니즘의 본산’인 것이다.

    만약 장엄하면서도 디테일한 유대교의 서사가 없었다면 유대인들은 그 오랜 기간 민족의 혈통을 유지하지도, 국가를 세우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그 고난과 굴곡의 역사를 떠올리면 유대인들이 자신의 종교에 특별한 애착과 자긍심을 갖는 것이 그럴만해 보이기도 한다.



    神의 나라는 콘크리트 장벽과 폭탄테러 너머에

    하늘에서 본 분리장벽. 오른편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포위하고 있다.

    유대인의 두 얼굴

    예루살렘 성곽을 나와 신시가지로 갔다. 2005년 포스트모던 스타일로 단장한 기념비적인 건물이 보였다. ‘야드 바홀로코스트 박물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600만에 이르는 유대인이 독일 나치에게 어떻게 학살됐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박물관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면 ‘야누스 코르자크와 아이들’이라는 군상(群像)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야누스 코르자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어느 마을의 교사였다. 독일 군이 어린 유대인 학생 200여 명을 잡아갈 때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두려워하는 아이들과 함께 트럭에 올랐다고 한다. 코르자크는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와 아이들은 트레블렌카 수용소로 옮겨져 1942년 8월 독가스실에 들어가게 됐다. 군상은 코르자크가 공포에 질린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죽음을 맞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코르자크는 민족과 종교를 초월한 사랑을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이 코르자크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로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은 공감할 만하다.

    이렇듯 유대인들은 세계사에 영향을 준 유구한 종교적 전통을 가졌고, 박애와 희생 같은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공유하는 것으로 비친다. 예루살렘 시내의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에서 잠시 인터뷰한 모 장관의 여성 보좌관은, 상당수 유대인이 그렇듯이, 매력적인 외모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神의 나라는 콘크리트 장벽과 폭탄테러 너머에

    예루살렘 성곽.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다.



    神의 나라는 콘크리트 장벽과 폭탄테러 너머에

    5월 17일 예루살렘에서 열린 ‘예루살렘 선언 10주년 기념’ 중동평화회의.

    그러나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유대인들은 유독 가장 가까운 이웃인 팔레스타인 민족을 대할 땐 전혀 다른 사람으로 표변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박해해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코르자크의 교훈과 정반대로 이민족을 대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유대 민족에겐 축복이었겠지만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관점에선 끔직한 재앙이 됐다.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했다. 승전국인 영국은 1917년 국제연맹으로부터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에 해당하는 지역의 통치를 위임받았다. 이 땅엔 2000년 전부터 팔레스타인 민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은 유대인 국가의 건설을 지원했다. 1948년 5월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면서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이후 팔레스타인 민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핍박, 이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테러가 이어졌다. 오랜 갈등 끝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1993년 출범했다. 자치정부의 영역은 6017㎢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다. 가자지구는 무장조직인 하마스가 통치하고 있다. 자치정부 출범 후 이스라엘의 ‘민족 청소’는 더 극심해졌다고 팔레스타인 측은 주장한다.

    神의 나라는 콘크리트 장벽과 폭탄테러 너머에

    중동평화회의 참가자들이 예루살렘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기이한 토목사업들

    야드 바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나와 사막을 한동안 달린 끝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영역인 서안지구 내 라말라에 도착했다. 이곳의 ‘베스트 이스턴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예루살렘에서 묵은 ‘단 예루살렘 호텔’은 특급호텔이지만 음식이 영 입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이 허름한 호텔의 음식은 한국인의 미각에 딱 맞는 것 같았다.

    이 호텔에서 팔레스타인의 무스타파 알바구티 국회의원을 만났다. 그는 의사 출신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차기 대통령감으로 거론된다. 그는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영토가 이스라엘 건국 당시에 비해 32%로 줄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해외 거주 유대인의 본국 귀환을 장려했다고 한다. 이어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원래 팔레스타인 땅이던 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지어 귀환한 유대인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영토를 잠식해들어갔다는 이야기다.

    이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분리 장벽을 쌓고 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마을들과 도시들을 7~9m 높이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일일이 둘러싸고 있다는 것.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역을 하나의 통합된 지역이 아니라 마치 바다 위의 섬들과 같이 고립된 소규모 지역들로 쪼개놓고 있다는 이야기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이 장벽의 총 연장은 850km에 달한다. 이스라엘은 입·출구마다 600여 개의 초소를 지었다.

    라말라의 언덕에서 ‘현대판 만리장성’과 같은 이 장벽들이 팔레스타인 도시와 마을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곳에 살면 그 자체로 자유를 속박당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이스라엘은 또 다른 기이한 토목사업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유대인 거주 도시들은 직선거리의 도로들로 바로 연결시키는 반면 팔레스타인 도시들은 일부 도로를 가로막게 장벽들을 배치해 10분 거리를 한 시간 정도 둘러가게 한다는 것이다. 무스타파 알바구티 의원이 지도를 펴놓고 설명한 내용을 보면 거의 틀림없는 사실 같았다.

    일제강점기 연상케

    팔레스타인 도시의 출구 초소에서 이스라엘군이 벌이는 차량 검문도 ‘세월아 네월아’였다. 딱히 수색도 하지 않으면서 극심한 정체 상태가 되도록 내버려두는 것 같았다. 한 팔레스타인 시민은 “장벽 밖 직장으로 출근하려면 새벽 2시에 일어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자말 주메아 장벽반대운동 의장의 설명에 따르면 장벽들이 둘러쳐진 이후 팔레스타인 도시들은 교통이 불편해져 경쟁력이 떨어졌고 일자리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무스타파 알바구티 의원은 이스라엘이 만들었다는 ‘2020년 이스라엘 마스터플랜’을 보여줬다. 이 플랜은 현재 다수의 팔레스타인인이 거주하는 갈릴리 지역과 네게브 지역을 개발해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현장에서 보니, ‘팔레스타인인들을 최대한 살기 불편하게 만들어 다른 나라로 떠나게 하는 게 정책의 실제 목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에서 자행한 민족말살정책이 연상됐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무스타파 알바구티 의원은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별력이 다른 민족보다 뛰어나진 않지만 비슷하기는 하다. 이스라엘의 의도를 잘 안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비폭력을 표방한다. 신념이라기보다는 상황논리에 의해 그런 것처럼 비친다. 군사력으로 이스라엘과 상대가 안 된다.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헬리콥터도 없다. 한 대를 갖고 있었지만 이스라엘군이 파괴했다.

    때때로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시위를 한다. 무력충돌로 비화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진압작전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말발굽으로 짓밟고 맹견을 풀어 물게 한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월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수감자의 면회를 허용하고 인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종합해보면 이스라엘에선 오직 약한 민족에 대한 강한 민족의 억압에 의해 국가체제가 유지되는 것 같다.

    반면 이스라엘 측은 “분리 장벽이 아니라 보안 장벽이며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측의 잦은 폭탄테러로 이스라엘의 여러 도시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으므로 장벽을 쳐서라도 사람과 물자의 출입을 엄격히 관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검은 9월단’은 선수촌에 침입해 이스라엘 선수 2명을 죽이고 9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이어진 총격전에서 인질 9명도 죽었다. ‘팔레스타인=테러’ 이미지가 세계에 각인된 순간이었다. 이런 이미지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와 헤즈볼라에 의해 강화됐다.

    이스라엘은 천신만고 끝에 찾은 나라를 다시 잃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팔레스타인 강경파는 “무차별 테러는 약자의 유일한 대항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절박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결국 ‘거룩한 땅’으로 불리는 곳에서 실제로 통용되는 것은 ‘약육강식의 정글 법칙’뿐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예루살렘 선언

    그동안 한국인들은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리적으로 멀기도 하거니와 유대교와 이슬람교 모두 이질적인 종교인 데다 무엇보다 스스로도 ‘북핵’이라는 화약고를 이고 살아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神의 나라는 콘크리트 장벽과 폭탄테러 너머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神의 나라는 콘크리트 장벽과 폭탄테러 너머에

    2003년 6월 11일 예루살렘 중심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

    그런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한국의 부부 종교인은 10년 전 다른 생각을 가졌다. 문선명(2012년 별세) 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와 한학자 현 총재는 예루살렘 문제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숙제라고 봤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확장된 형태는 미국과 이슬람 세계의 대립인데, 9·11테러,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은 한국의 정치, 경제, 군사 환경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는 게 사실이다.

    두 사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미국-이슬람 대립을 ‘(영토 등) 세속적 분쟁’ 측면과 ‘종교적 분쟁’ 측면이 결합된 구조로 파악했다. 두 측면 중 어느 한 측면이라도 약화시키면 갈등의 총량을 줄일 수 있으며, 종교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후자인 종교적 분쟁 측면을 약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충돌하는 세 종교의 공통 발원지로서 예루살렘에 주목했다. ‘예루살렘에서 세 종교가 모두 지향하는 근원적 이상으로 다시 돌아가보자’면서 ‘(이웃에 대한) 사랑과 화해, 평화’를 제안하기로 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2003년 5월 예루살렘에서 열린 ‘중동평화회의(MEPI)’로 구체화했다. 이 자리에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지도자들은 사랑, 화해,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예루살렘 선언’에 서명했다.

    당시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의 여러 언론은 이 행사의 의미를 크게 보도했다. 팔레스타인에도 알려져 이후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측과 여러 차례 친밀한 교분을 나눴다고 한다. 한학자 총재는 “종교의 벽, 국경의 벽, 민족의 벽을 허물고자 했다”고 말했다.

    5월 17~18일 예루살렘에선 30개국에서 온 종교지도자와 학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예루살렘 선언 10주년’을 기념하는 중동평화회의가 열렸다. 양창식 의장은 “우리는 미국 행정부의 지도자들을 만나 미국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곳의 갈등 문제에 관여해주기를 촉망해왔다”고 말했다. 양 의장은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이슬람이 넘보지 못할 정도의) 충분한 정치·경제·군사력을 이미 갖췄다. 분리 장벽과 관련해 이제 관용을 베푸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이번 중동평화회의를 주최한 천주평화연합(UPF)은 유엔이 인정한 비영리 조직의 한 단체다. UPF의 토머스 월시 회장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계속 대화하고 노력하다보면 테러를 그치고 장벽을 부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중동평화회의 참석자들은 5월 18일 각 언어로 ‘평화’를 의미하는 ‘피스, 샬롬, 앗살라이알라이쿰’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예루살렘 성곽 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구역을 행진했다.

    랜 코헨 전 이스라엘 산업무역장관은 “중동평화회의가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 정부의 정책을 극적으로 변화시키진 않았다. 정치인들은 그런 데서 잘 영향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 회의의 메시지는 개인에서 개인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적어도 이스라엘의 수만 명이 동의했다”고 했다.

    神은 말씀 속에 계신다

    김민하 평화대사협의회 의장에 따르면 종교의 이상은 ‘정의롭고 자유로운 평화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동에서 종교는 오히려 불의와 억압, 분쟁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종교적 이상으로의 복귀가 강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종교적 세계관으로 보면 신은 ‘말씀’ 속에 계신다. 진실한 명령,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야말로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물증이자 계시인지 모른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경전은 공통적으로 ‘인간이 신의 명을 따를 때 신의 나라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신은 지금의 중동을 보며 어떤 명을 내릴까. 하마스 창설자인 야신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평화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 그래왔던 것처럼…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 모두가 어울려 살라는 것입니다.” (저서 ‘아! 팔레스타인’ 2권 58쪽 부분 인용)

    신의 나라는 콘크리트 장벽과 폭탄테러의 너머에, 이런 현실을 초월해야 닿을 수 있는 어떤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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