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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감잎처럼 은행잎처럼 느리게 떠나고 싶더라

경북 청도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감잎처럼 은행잎처럼 느리게 떠나고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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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유호 연지에서도 연꽃 향기뿐만 아니라 옛 선비의 묵향(墨香)을 맡을 수 있다. 대구 수성구 쪽에서 팔조령 터널을 통과한다면 채 1시간도 걸리지 않는 곳이다. 들판 가운데 조성된 인공 연못인데 수면 가득히 연잎이 덮여 있어서 꽃피는 계절이면 장관을 이룬다.

청도 땅에 고성 이씨의 기반을 세운 모헌공 이육 선생이 전부터 있던 못을 더 깊고 더 넓게 만들어서 연못으로 꾸몄다고 전한다. 이육 선생은 연산군 시대에 무오, 갑자사화를 겪으면서 부친이 부관참시되는 등 가문이 수난을 당하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 유곡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살펴보면, 그전부터 이 마을에 살았던 이들은 흥해 최씨들이며 최초의 연못도 이들 최씨 가문에서 조성한 것이었다. 이육 선생이 최 씨의 무남독녀와 혼인해 처가 쪽에 정착함으로써 뒷날 연못의 주인도 고성 이씨로 바뀌었다. 이육의 아들은 앞서 선암서원에서 소개한 박하담의 딸과 혼인했다.

이렇듯 청도 땅의 몇몇 문화유산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조선 중기 이곳 사회를 지배했던 네 성바지 사족(士族), 즉 김해 김 씨(김일손), 밀양 박씨(박하담), 고성 이씨(이육), 흥해 최씨들이 엮어가는 연비관계들을 짐작할 수 있어서 재미있다.

연못 가운데 단을 쌓고 기품 있는 집 한 채를 올렸는데 현판에 적힌 이름이 ‘모헌정사’요, 사람들이 쉽게 부르길 ‘군자정’이다. 송나라 때 주돈이가 ‘애련설(愛蓮說)’을 지어 연꽃을 군자로 비유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근래에도 유림들이 정기적으로 이곳에 모여 글을 읽고 시를 짓는다고 하니 온고지신의 한 아름다운 그림처럼 여겨진다.

명산이 품은 名刹



큰 산들이 수면에 엎어져 있는 운문호를 지나 마침내 운문사에 이르렀다. 드넓은 자리에 질서정연하게 앉은 절집들이 주는 정갈한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호위하듯 절집을 둘러싼 산들이 빚어내는 호쾌하고 위엄 있는 품새도 예사롭지 않다. “명산이 명찰(名刹)을 품는다”는 말을 새삼 되새길 만하다.

창건 당시부터 운문사는 화랑들의 심신 수련장이 된 곳으로 유명한데 고려 때는 일연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운문사는 석남사, 동학사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비구니 전문 수련 도량이다. 현재도 300명에 가까운 비구니 스님이 이곳 승가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핏 해가 기울고 있었지만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를 구경하고 만세루 마루에서 땀을 식히던 나는 뒤늦게 무슨 깨달음이라도 가진 양 이웃 사람에게 은행나무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무심코 불이문(不二門) 쪽을 가리키던 상대가 갑자기 쿡쿡 웃음을 놓았다. 스님들의 수행 공간에 있는 그 나무는 가을 단풍철에 딱 하루만 일반에게 공개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랬구나! 나도 무심히 탄식을 놓았지만 한 편의 시를 통해 알게 된 나무를 내 눈으로 보지 못한다 해서 섭섭한 마음은 없었다.

비구니 스님들 사는 청도 운문사 뒤뜰 천 년을 살았을 법한 은행나무 있더라

그늘이 내려앉을 그늘자리에 노란 은행잎들이 쌓이고 있더라

은행잎들이 지극히 느리게 느리게 내려 제 몸 그늘에 쌓이고 있더라

오직 한 움직임

나무는 잎들을 내려놓고 있더라

(…)

이 세상 떠날 때 저렇게 숨결이 빠져나갔으면 싶더라

바람 타지 않고 죽어도 뒤가 순결하게 제 몸 안에다 부려놓고 가고 싶더라

내 죽을 때 눈 먼저 감고 몸이 무너지는 소릴 다 듣다 가고 싶더라

-문태준 시 ‘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중에서

최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식구들의 세월’ 등

장편소설 ‘서북풍’ ‘안개울음’ ‘미륵을 기다리며’ ‘화담명월’ 등


어쩌면 차라리 그 나무를 보지 않음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절간을 돌아 나오는 길에 가졌다. 느리게 나뭇잎을 내려놓는 나무를 보며 갖는 궁극적인 바람 하나. 이승을 하직하는 때 내 마지막 숨결도 저렇게 빠져나갈 수 있었으면. 눈 먼저 감고 몸 무너지는 소릴 들을 수 있으면. 감잎 하나, 은행잎 하나에서 갖는 막막함과 벅참. 이것이 곧 시의 절창으로 옮겨진다.

신동아 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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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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