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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뼛속 스며드는 맑은 기운 혼을 깨우는 대쪽 선비 정신

경북 봉화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뼛속 스며드는 맑은 기운 혼을 깨우는 대쪽 선비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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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 스며드는 맑은 기운 혼을 깨우는 대쪽 선비 정신

봉화 닭실마을 앞을 흐르는 내성천.

수년 전, 나는 퇴계보다 수백 년 늦게 태어난 이로움 하나로 중국 푸젠(福建)성에 있는 무이산을 여행할 기회를 가졌는데, 그 눈부신 경치를 보는 가운데도 자주 퇴계와 청량산을 떠올렸던 게 사실이다. 마지막 여정으로 들른 주자의 서당, 그리고 뜻밖에도 서당 한쪽 벽면에 걸린 퇴계의 초상을 봤을 때의 놀라움과 반가움이란! 아, 마침내 선생께서도 예까지 오셨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가졌다. 극진한 데 이른 이들은 마침내 시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악수하고 함께 소요한다는 사실 말이다.

金鷄抱卵의 길지

뼛속 스며드는 맑은 기운 혼을 깨우는 대쪽 선비 정신

봉화 청암정.

영남 유림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안동, 영주 지방엔 향교, 서원과 함께 정자가 많기로 소문이 나 있지만, 이 두 지역을 남서쪽으로 접하는 봉화는 특히 정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현재 남아 있는 옛 정자만도 103개에 달한다고 하니, 이는 그만큼 이 땅의 산수가 빼어나고 옛 선비들의 걸음이 잦았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봉화의 정자 중에서도 형식구조상 가장 빼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청암정은 봉화읍 ‘닭실마을’에 있다.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마을 뒤편을 두르고 있으며 앞으로는 개천이 휘감아 돌면서 너른 들판을 펼쳐놓고 있는 마을이다. 들판 쪽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의 형국이라고 해서 일찍이 ‘닭실’이란 이름을 얻었는데 현지인들은 ‘달실’이라 더 많이 부른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곳을 안동의 내앞마을(천전리), 풍산의 하회, 경주의 양동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로 꼽았다. 이런 선입관 탓인가. 마을을 보며 마을로 들어가는 걸음걸이가 절로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푸근해지는 느낌이다. 규모와 함께 모양새까지 제대로 갖춘 기와집들이 각기 제 앉을 곳에 앉아 있고, 턱없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흙돌담들이 마치 그렇게 있어야 한다는 듯이 바깥 길, 안길을 나누고 있는 풍경 또한 친근하고 어여쁘다. 잘 익은 벼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들판과 쏟아지는 가을 햇살만으로도 모든 것이 넉넉해 보이는 마을이기에 무슨 무슨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였다며 큼지막하게 서 있는 입간판쯤은 되레 흉물스러워 보인다.



청암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 권벌의 종택과 함께 마을 한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담장과 안쪽의 무성한 나무들로 인해 바깥에서는 정자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작은 쪽문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서면 어느 늪지대에 온 양 오래된 물 냄새가 먼저 후각을 자극한다.

옛 선비가 글을 읽던 독서당을 지나 몇 발자국을 옮기면 청암정 정자다. 사방 날개를 쳐든 형세의 팔작지붕 정자가 큼직한 바위 하나를 올라타고 있다. 바위는 물길로 둘러싸여 있다. 오랜 풍상을 담은 고목들이 연못에 허리를 걸치기도 하고 뿌리를 내밀고 있기도 하다. 사람이 정자로 오르는 길은 오직 하나, 물길에 걸쳐놓은 좁은 돌다리뿐이다. 서너 걸음이면 금방 건널 수 있는 물길. 그러나 막상 정자가 있는 바위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면 마치 피안의 세계에라도 온 듯 아연 저편 세상이 막막하고 아득하기만 하다.

기록에 따르면, 권벌은 1526년 거북 모양의 이 너럭바위에 정자를 세웠다. 둘레에 연못을 파는 바람에 바위는 물에 떠 있는 거북 형상이 됐다. 전하는 얘기가 재미있다. 청암정을 처음 지었을 때만 해도 둘레엔 연못도 없었고 정자의 마루방도 온돌 구조였다고 한다. 그런데 방에 불을 넣을라치면 바위가 울음소리를 내곤 했다나. 때마침 지나가던 승려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 바위는 거북 형상인지라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이 등에다 불을 놓는 것과 같으니라. 그래서 아궁이를 막고 바위 주변을 파서 물길을 돌렸다.

돌다리를 건너 정자로 올라가는 형식 또한 이상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옛사람들의 소박하면서도 천진한 세계 인식을 보여주는 일화일 수도 있지만 우리 현대인이 잃어버린 꿈의 원형이 이런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권벌은 중종 2년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선 뒤 이조정랑, 직제학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지만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당했다. 고향에 돌아와 살던 그는 15년이 지나 다시 조정에 나가 형조참판, 병조판서를 지냈다. 1545년 소윤 윤원형의 세력이 대윤 윤임의 세력을 축출하는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다시 탄핵을 받아 파면됐다. 몇 해 뒤, 함경도 삭주로 귀양 갔으며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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