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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마지막회>

머나먼 방랑 끝에 돌아온 빛과 냄새의 항구

강원 주문진

  • 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머나먼 방랑 끝에 돌아온 빛과 냄새의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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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돌바위공원

머나먼 방랑 끝에 돌아온 빛과 냄새의 항구

주문진 소돌바위공원 기암괴석.

시에서처럼, 나도 좌판 소주를 마셨는데 안주는 사발낙지가 아닌 광어와 오징어 회였다. 눈발 날리는 날, 어시장 좌판에서 이쑤시개 같은 것으로 안주 도막을 집어 먹으며 술 한잔 마시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시의 첫 연 중에서도 졸아드는 낙지 국물 위로 첫사랑 여자의 눈동자가 떠오른다는 구절이 수상쩍다. 둘째 연에서는 마지막 안주까지 다 먹고 나와서 선창가를 걷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도중에 문득 바다를 떠돌던 귀향자들은 바다에 대한 작별을 하라는 명령조의 말들이 끼어든다. 마지막 연은 중의적이다. 참았던 눈물 터뜨리는 당사자는 진눈깨비인 동시에 시적 화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재미는 없지만, 이제 산문적 해석이 가능하다. ‘나’는 아직도 떠나간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하여 먼바다 같은 길을 방랑했다. 그러나 이제 그 아픔과 방황과도 작별을 해야 한다. 나를 다그친다. 결의를 다진 뒤에도 그리움은 남고 마침내 눈물이 터진다…. 이런 각색(?)이 가능하다고 해도 시가 단순히 실연자의 고통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읽기에 따라서는 고기잡이 어부들의 이야기, 더 나아가 바다, 배, 물고기의 얘기로도 얼마든지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 한 편이 주는 감흥은 사실 몇 줄의 산문적 해석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튿날은 해변의 소돌바위공원을 찾았다. 여전히 날은 맑고 밝았다. 안내 글에 따르면 소돌바위는 원래 바닷 속에 있었는데 1억5000만 년 전 주라기 시대에 지각변동으로 지상에 솟은 것이라고 한다. 바위의 형상이 소가 누워 있는 것 같아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도 한다.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진 것 같은 기괴한 형상의 큰 바위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바위들이 바닷가를 장식하고 있는데, 물기를 머금고 또 그렇지 않음에 따라 색깔뿐만 아니라 모양까지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이들 가운데는 사람들의 소원, 특히 아들 낳기를 원하면 그 바람을 들어준다는 ‘소원바위’ ‘아들바위’도 있다. 그 주변에는 근래에 조성한 듯한 기도자상, 아기 형상의 조형물들도 있다. 또 1960년대 가요계를 풍미하다가 요절한 가수 배호가 노래한 ‘파도’의 가사를 새겨 넣은 노래비도 서 있다. 어떤 이들은 이들 조형물이 좋은 볼거리가 된다고도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 자연에 사람의 것이 얹히고 덮이면 더 이상 온전한 자연이 되지 못하며, 어떤 공교로움이 더하더라도 그것은 본래 자연이 가졌던 격을 훼손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매향(埋香)의 전설

근처에 볼만한 호수 하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실한 불심(佛心)을 잘 나타내는 풍습으로 침향(沈香) 또는 매향(埋香)의 풍습이 있다. 주로 바닷가 마을에서 이뤄지는데, 온 주민이 합심해서 향나무 도막들을 바닷가에 옮겨와서 썰물 밀물이 교차하는 갯벌 깊이 묻는 것이다. 민물이 바닷물과 섞이는 곳이라면 더욱 좋다.

이렇게 향을 묻어놓고 기다리길 최소 300년이며 길게는 500년, 1000년도 간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이 향을 꺼내 부처님 전에 피우면 모든 소원이 이뤄진다고 그들은 믿었다. 이때 꺼낸 향은 금강석보다 더 단단하고 거기서 피어나는 향내는 천 리 밖까지 퍼진다는 말도 있다. 이곳 주문진에도 매향의 전설을 가진 호수가 있으니 그것이 곧 향호리에 있는 향호(香湖)다. 그 옛날에 1000년 묵은 향나무를 묻었는데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호수 바닥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는 말도 있다.

호수 위쪽에는 예전 봉수대가 있던 바리봉이 우뚝 서 있으며 산기슭에는 성터도 있다. 조선 선조 때는 율곡 이이, 우계 성혼 등과도 친분이 있었던 이곳 선비 최운우가 향호정이란 정자를 짓고 한가로움을 즐겼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머나먼 방랑 끝에 돌아온 빛과 냄새의 항구
최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대학원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창작집 ‘잠시 머무는 땅’ ‘식구들의 세월’ 등

장편소설 ‘서북풍’ ‘안개울음’ ‘미륵을 기다리며’ ‘화담명월’ 등


아직도 사람의 손때를 많이 타지 않은 듯 호수물은 맑고 주위 풍경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근래 조성했다는 산책로도 크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찾아오는 이에게 최소한의 편의만 준다는 뜻은 분명히 담고 있다.

천천히, 호수를 돌아 맞은편 나무다리를 지나니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난다. 탁월한 경관과 함께 깊고 그윽한 옛사람의 신심과 풍류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데가 향호인 듯싶다.

신동아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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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 │우송대 한국어학과 교수 hakbong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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