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계몽주의자의 사랑은 심심하고 고상한 맛?

춘원 이광수

  • 소래섭│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입력2013-11-20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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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과의 사랑을 음식 맛에 비유하는 것은 동서고금 관계없이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지만,어쩐지 저속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 그런데 이성과 합리성을 신봉한 계몽주의자 춘원 이광수 역시 사랑을 맛에 비유한 적이 있다. 그가 표현한 사랑은 어떤 맛일까.
    계몽주의자의 사랑은 심심하고 고상한 맛?
    “어젯밤 그녀를 먹었다”라거나 “그는 참으로 먹음직스러운 남자다”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공적인 자리라면 말할 것도 없고 사적인 모임에서 들었다 해도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자신의 청력이나 상대방의 구강 구조를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무릇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런 말들을 입에 담지 않는다. 인간은 먹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그러므로 저 말들에서 ‘먹다’라는 것은 성행위를 뜻하는 저속한 표현이며, 성행위와 같은 은밀한 영역에 대해서는 되도록 입을 다물거나 에둘러 말하는 것이 교양인의 상식이다. 그래서 성행위를 ‘먹다’와 같은 말로 표현하는 것은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천박함을 드러내는 증거나 한국식 조폭 영화에 등장하는 상투적 표현쯤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토마토, 꿀단지, 꼬막…

    그런데 의외로 성행위를 ‘먹다’라는 식사 행위로 표현하는 것은 세계 여러 문화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유럽의 남성들은 예부터 여성을 ‘뜨거운 토마토’ ‘양고기 조각’ ‘꿀단지’ 등으로 불렀다. 당연히 그와 같은 표현은 문학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 작가 안톤 프란체스코 도니의 단편 ‘귀부인의 소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불과 몇 달 전에 결혼식을 올린 순진하고 자그마한 여자, 아직 어린애 같은 여자 하나가 마음에…왔다네. 장담하건대 그 여자는 자네 입 속에서 살살 녹을 거야. ‘질긴 고기는 남자를 정력적으로 만든다’라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 그런데 이 여자한테는 들어맞지 않는 속담이라니까. 딱 알맞게 익힌 살이라 배가 터지도록 먹고 싶은 그런 여자야. 그러니 군침이 돌 수밖에. 그런 여자라면 양념이나 생베르나르 소스를 전혀 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배불리 먹어주겠네.”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여자를 유혹하는 남자의 마음을 레스토랑의 메뉴판에 비유하기도 했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은 사람이라면 염상구가 외서댁을 겁탈하고 내뱉는 말을 쉽게 잊지 못한다.

    “외서댁을 딱 보자말자 가심이 찌르르 하드란 말이여. 고 생각이 영축 들어맞아 뿌럿는디, 쫄깃쫄깃한 것이 꼭 겨울꼬막 맛이시….”

    이렇듯 여러 문화에서 성행위가 음식을 먹는 행위에 곧잘 비유되는 것은 두 행위 사이에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모두 신체의 경계를 통과하고 서로 별개인 것들을 섞는 행위이며 생명과 성장에 기여한다. 그래서 음식 선물은 성행위 제공을 나타내고, 성행위는 음식 이미지를 통해 묘사될 수 있다.

    계몽주의자의 사랑은 심심하고 고상한 맛?

    1920년 상해에 머물던 이광수가 허영숙에게 보낸 편지. 허영숙에 따르면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춘원에게서 1000여 장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성행위와 식사의 유사성은 식탁과 침대의 은유로도 확장된다. 부부는 침대뿐만 아니라 식탁도 함께 쓰는 관계다. 남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혼외 관계를 끝내라고 요구하거나 남편 곁을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으면 음식 만드는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또 남편은 아내가 해주는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즉 ‘식탁과 침대의 분리’를 통해서 이혼 의사를 표명할 수 있었다. 클라우스 E 뮐러의 책 ‘넥타르와 암브로시아’에 따르면 심지어 탄자니아의 카구루족의 경우에는 남편이 아내가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녀의 눈앞에서 냄비를 박살내는 것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처럼 음식을 먹는 것과 성행위를 연관시키는 것이 보편적이다보니 사랑이 맛과 연결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음식을 먹을 때에는 미각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이 동원된다. 식감, 냄새, 온도, 색깔, 자극성 등을 씹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다. 그 모두는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라 음식에 대한 경험을 하나의 감각만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맛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야만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반역하는 ‘돈키호테’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음식을 먹을 때 오감이 총동원되는 것처럼 사랑할 때도 온몸의 감각들이 상대를 탐지하는 데 집중된다. 그제야 비로소 상대의 맛, 사랑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우리 근대문학에서도 음식의 맛을 사랑의 맛으로 변모시킨 작품이 있다. 춘원 이광수의 단편 ‘어린 벗에게’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17년 잡지 ‘청춘’에 연재됐다. 이 작품에 몇 달 앞서 발표된 것이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로 인정받고 있는 ‘무정’이다. ‘무정’을 쓰기 이전에도 이미 춘원은 육당 최남선과 더불어 계몽주의자로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1910년대 초부터 계몽주의적 논설과 단편을 발표함으로써 당대 청년들의 우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그의 논설은 기존 제도와 관습에 대한 비판, 특히 혼인제도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그는 부모의 뜻에 따라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결혼은 천리를 거스르는 것이며, 정신과 신체가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조혼(早婚)은 야만의 극치라고 날을 세웠다. 날카롭고 명쾌한 그의 논리는 봉건적 관습에 억눌려 있던 청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김동인은 1988년 발간한 ‘김동인 전집’을 통해 당시 춘원의 영향력을 이렇게 회고했다.

    “온갖 도덕, 온갖 제도, 온갖 법칙, 온갖 예의-이 용감한 돈키호테는 재래의 ‘옳다’고 생각한 온갖 것에게 반역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반역적 사조는 당시 전 조선 청년의 일치되는 감정으로서, 다만 중인(衆人)은 차마 이를 발설치를 못하여 침묵을 지키던 것이었다. 중인 청년계급은 아직껏 남아 있는 도덕성의 뿌리 때문에, 혹은 예의 때문에 이를 발설치 못하고 있을 때에 춘원의 반역적 기치는 높이 들렸다. 청년들은 모두 그 기치 아래 모여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일도 가능하다, 이런 반역적 행사도 가능하다고 깨달을 때에, 조선의 온 청년은 장위(將位)를 다투려는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춘원의 막하에 모여들었다. 아아! 우리는 그때 얼마나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를 보았는가!”

    사랑을 맛보다

    춘원이 논설을 통해 주장하던 바를 소설 속에 녹여낸 ‘무정’은 그에게 논설가로서의 명망에 더불어 작가로서의 명성까지 안겨줬다. 다시 김동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후 춘원의 소설은 청년들 사이에 ‘읽어야만 될 것’으로 각인됐다. ‘어린 벗에게’ 역시 당시 춘원의 주장과 논리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네 통의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편지는 주인공 임보형이 상해(上海)에서 혼자 병을 앓다가 이웃을 자처하는 젊은 여자의 정성스러운 간호를 받고 회복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병에서 회복한 뒤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임보형은 자신을 간호해준 여자에게 뜨거운 사랑을 품게 됐음을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인 참된 사랑임을 역설하며 감정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제도를 격렬하게 비판한다.

    나는 조선인이로소이다. 사랑이란 말은 듣고, 맛은 못 본 조선인이로소이다. 조선에 어찌 남녀가 없사오리까마는 조선 남녀는 아직 사랑으로 만나본 일이 없나이다. 조선인의 흉중(胸中)에 어찌 애정이 없사오리까마는 조선인의 애정은 두 잎도 피기 전에 사회의 관습과 도덕이라는 바위에 눌리어 그만 말라죽고 말았나이다. 조선인은 과연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로소이다. (…) 이에 우리 조선 남녀는 그 부모의 완구(玩具)와 생식(生殖)하는 기계가 되고 마는 것이로소이다.

    계몽주의자의 사랑은 심심하고 고상한 맛?

    1928년 무렵의 이광수와 부인 허영숙, 아들 봉근.



    임보형이 재래의 관습과 도덕을 과격한 언사로 비난하는 것은 그가 부모가 맺어준 짝과 조혼한 기혼자였기 때문이다. 임보형은 병에서 회복하자마자 다시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고, 억누를 길 없는 사랑의 감정과 자신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 구제도에 대한 반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그는 서랍에서 젊은 여자가 남긴 편지 한 통을 발견하고, 그 여자가 김일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상해에 오기 6년 전, 와세다대 정치학과에 재학 중이던 임보형은 친구의 누이 김일련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연서를 통해 고백한다. 6년 전에도 기혼자였던 임보형은 자신의 처지로 인해 순수한 정신적 사랑만을 요구하지만 그마저 거절당하자 오랫동안 좌절과 절망의 나날을 보낸다.

    세 번째 편지에서 임보형과 김일련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 위에서 다시 만난다. 임보형이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가기 위해 탄 배가 침몰하게 되고, 그 혼란의 와중에서 우연히 김일련과 재회한다. 영화 ‘타이타닉’의 남자주인공과는 달리 침몰하는 배에서 연인을 구해내고 자신도 살아난 임보형은, 김일련과 함께 유럽으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기차에서 보낸 마지막 편지는 제도적으로는 용납되지 못한 사랑의 미래를 운명에 맡기겠다는 결심으로 마무리된다.

    위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이 작품에서 춘원은 사랑을 맛에 비유한다. 사랑을 맛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가 생각하는 사랑이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과 감각은 종종 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치닫기 쉽다. 김일련과 짧은 시간 만났음에도 임보형이 두 번씩이나 격렬한 사랑의 불꽃에 휩싸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임보형의 이성은 기혼자라는 현실적 상황을 끊임없이 환기시키지만, 김일련을 향한 감각과 감정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오히려 임보형은 자연스러운 감각과 감정의 분출을 억압하는 이성에 대한 반발을 구제도에 대한 격렬한 증오로 드러낸다.

    치유의 음식, 사랑의 음식

    이 작품에서 춘원이 사랑을 맛에 비유하는 또 다른 이유는 김일련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임보형의 사랑이 음식을 통해 촉발되기 때문이다. 김일련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임보형을 헌신적으로 간호한다. 고열과 갈증에 시달리는 그를 위해 김일련은 약을 달이고 죽을 쑤고 신선한 과일을 건넨다. 김일련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는 임보형은 그녀가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아닐까 상상한다.

    누구나 객지에서 홀로 앓을 때 돌봐주는 사람에게는 감격하기 마련이다. 그이가 이성이라면 부지불식간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음식에 관한 많은 글을 집필했던 마크 쿨란스키는 동서고금의 음식 에세이를 엮은 ‘음식사변’의 서문에서 “맛있는 음식은 섹스보다 유혹적이다”라고 단언한다. 어떤 음식은 사랑을 촉발시키고, 그때 사랑은 맛있어지며, 맛있는 사랑은 중독성 있는 음식처럼 끊기 어렵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춘원에게 사랑의 맛을 촉발시킨 음식이 실제로는 아리따운 여성이 만들어준 죽이나 과일이 아니라 사내가 만든 ‘붕어곰’이라는 사실이다. ‘어린 벗에게’가 발표되고 10여 년이 지난 후, 춘원은 ‘인생의 향기’라는 수필에서 ‘어린 벗에게’의 창작 내력을 밝힌다.

    이야기는 19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아의 몸으로 일진회 유학생에 선발되어 일본 유학을 마친 춘원은 1910년부터 오산학교 교원으로 재직한다. 1913년, 춘원은 오산학교를 사직하고 세계 일주 무전여행에 나선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셋, ‘인생의 향기’에서는 갑작스러운 여행의 이유를 ‘공상적 방랑성’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당시 춘원이 깊이 빠져 있던 톨스토이와 생물진화론 강의가 신앙심을 타락시킨다고 주장한 외국인 목사와 대립하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첫 기착지 중국 안동현에서 위당 정인보를 만난 춘원은 위당의 충고를 따라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 모여 있던 상해로 향한다. 상해에서 춘원은 홍명희, 문일평, 조용은 등이 살던 집에 잠시 머무른다. 그는 홍명희와 침대를 같이 썼는데, 둘은 엉덩이를 맞대고 얼굴을 반대 방향으로 한 채 잠들어야 할 만큼 누추하게 지냈다. 한겨울인 데다 먹을 것도 변변찮은 생활이 이어지다보니 춘원은 심한 독감에 걸리고 만다.

    고열에 고통스러워하던 춘원을 구해준 것은 신철(申澈)이라는 인물이었다. 신철은 의학 지식이 있어 춘원을 돌봐줬고, 붕어를 구해다 손수 고아주기를 며칠이나 계속할 정도로 간호에 정성을 쏟았다. ‘인생의 향기’에서 춘원은 신철에 대한 고마움이 뼈에 사무칠 지경이며, 그 일이 모티프가 되어 ‘어린 벗에게’를 썼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후 춘원은 ‘어린 벗에게’의 임보형처럼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하는 ‘신한민보’의 주필을 부탁받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미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러시아 치타에서 길이 막히는 바람에 이듬해 8월 귀국한다.

    춘원의 회고를 참조하자면 ‘어린 벗에게’는 치유의 음식을 사랑의 음식으로 변모시킨 춘원의 상상력이 빚은 결과물이다. 생사를 넘나들던 경험은 춘원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을 만큼 강렬했고, 춘원은 그 기억을 자신이 평소 주장하던 자유연애를 설파하는 소설로 탈바꿈시켰다. 붕어곰의 텁텁한 맛이 신선한 과일의 향기로 바뀌면서 죽음의 문턱을 넘던 경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적 사랑 이야기로 다시 씌었다.

    춘원이 사랑한 여인

    계몽주의자의 사랑은 심심하고 고상한 맛?

    미발표된 ‘토향’ 육필원고(왼쪽)와 1918년 ‘무정’초판본.



    그러나 춘원의 문학적 천재성을 인정하더라도 ‘어린 벗에게’가 상해에서의 경험만으로 창작됐다는 춘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춘원이 하필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상해에서의 경험을 떠올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린 벗에게’를 발표한 1917년, 그는 소설 속 임보형처럼 운명의 여인을 일본에서 만나게 된다. 와세다대에 유학하면서 ‘무정’을 집필하느라 과로한 춘원은 폐병을 심하게 앓는다. 이때 소설 속 김일련처럼 춘원을 보살펴주는 여인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허영숙이다.

    허영숙은 동경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신여성으로 당시 조선인 유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유학생 모임에서 우연히 춘원을 알게 된 허영숙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춘원의 건강을 챙겨준다. 병간호를 계기로 춘원은 허영숙에게 빠져들었고 지속적으로 열렬한 구애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유학생 사회에서 많은 논란을 빚었고, 허영숙의 어머니 또한 둘의 교제를 반대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소설 속 임보형처럼 춘원은 이미 혼인한 몸이었다. 1910년, 열아홉 살의 나이에 백혜순과 결혼한 춘원이 자신보다 일곱 살이나 어리고 미혼인 허영숙과 사랑에 빠졌으니 누가 봐도 부적절한 만남이었다.

    결국 춘원은 1918년 9월 백혜순과의 이혼에 합의하고, 우여곡절을 거쳐 1921년 5월 허영숙과 정식으로 결혼한다. 나중에 허영숙이 회고한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이 결혼하기까지 춘원이 허영숙에게 보낸 편지가 1000여 장이나 됐다고 한다. 그러니 춘원의 문학적 상상력이 붕어곰에서 사랑의 맛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춘원이 느낀 사랑의 맛이 붕어곰에 문학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어린 벗에게’에 나오는 사랑의 맛이 텁텁한 붕어곰에서 비롯된 탓인지 이 작품에서 춘원이 이야기하는 사랑의 맛은 심심하기 그지없다. 보편적으로 성행위를 식사 행위로 표현할 때 사랑의 맛에 강렬한 에로티시즘이 동반되는데, 춘원이 이야기하는 사랑의 맛에는 육체적 속성이 제거되어 있다.

    심심하고 또 심심한…

    그는 육체적 사랑을 ‘육욕(肉慾)’이라는 말을 써서 정신적 사랑과 구분하며, 정신적 사랑만을 옹호하고 사회질서를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육체적 사랑은 배격한다. 춘원은 ‘어린 벗에게’에서 사랑의 실제적 이익을 맛으로 표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 가지 미질(美質)을 배움이니, 첫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 맛을 배우고,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헌신 맛을 배우고, 역지사지란 동정(同情) 맛을 배우고, 정신적 요구를 위하여 생명과 명예와 재산까지라도 희생하는 희생 맛을 배우고, 정신적 쾌락이라는 고상한 쾌락 맛을 배우고…….

    계몽주의자의 사랑은 심심하고 고상한 맛?
    소래섭

    1973년 전북 익산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및 박사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저서 : ‘백석의 맛’,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시는 노래처럼’ 등


    이성과 합리성을 신봉하는 계몽주의자였던 춘원에게 육체적 사랑의 맛은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한 존재였다. 감각과 감정을 통해 촉발된다는 점에서 사랑은 맛이지만, 그 맛은 이성과 합리성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정신 안에만 머물러야 했다. 그래야만 아내 이외의 여성을 향한 유부남의 사랑도 설 자리를 찾을 수 있고, 비합리적인 구제도에 대한 공격도 정당화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하더라도, 심심한 것은 심심한 것이다. 마크 쿨란스키, ‘음식사변’에는 1세기의 인물인 마르티알리스가 남긴 단시(短詩)가 실려 있다.

    “식탁은 최고급 요리로 풍성하지만 즐거움이 없다. 그것은 당신이 시를 낭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섯, 넙치, 많은 가자미 요리들도 맛이 뚝 떨어졌다. 글은 필요 없다. 글을 모르는 주인을 불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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