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호

구타, 성폭행, 명예살인…어린 신부 잔혹사

네 살짜리가 70대 노인에게 팔려간다

  • 김영미 │프리랜서 PD

    입력2013-11-21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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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 소녀 누주드 알리는 이슬람 국가 예멘의 유명 인사다. 5년 전인 10세 때 이혼녀가 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예멘은 전통적으로 조혼(早婚)을 장려한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이혼도 불가능하다. 남편을 거부하는 아내는 ‘명예살인’이란 이름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주드는 겁내지 않았다.

    2008년 4월, 열 살짜리 누주드는 20세 연상의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누주드는 1년 전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낯선 남자와 결혼했다. 남편은 누주드가 사춘기를 지날 때까지는 잠자리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혼 후 두 달 동안 누주드는 줄곧 성폭행과 구타를 당했다.

    엄마가 된 아이들

    남편이 결혼 후 처음으로 친정에 보내줬을 때 누주드는 버스를 타고 친정이 아닌 법원으로 향했다. 무작정 법원으로 들어가 울면서 이혼하고 싶다고 소리쳤다. 그곳에서 인권 변호사 샤다 나세르를 만났다. “밤이 싫어요”라는 누주드의 한 마디에 나세르는 무료 변론을 해주기로 했다. 목숨을 건 이혼소송으로 누주드는 10세에 이혼녀가 될 수 있었다. 누주드의 소송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조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누주드는 그해 미국 여성 주간지 ‘글래머’가 주관하는 올해의 여성으로 뽑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등과 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지난 9월, 예멘 북서지역에 살던 8세 소녀 라완은 40대 남성과 강제 결혼했다. 소녀는 첫날밤을 치른 뒤 심한 장기 손상으로 인한 내출혈로 사망했다. 2010년 9월에도 예멘에서 결혼한 12세 소녀 파디야 압둘라 유세프가 출산 도중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파디야는 사흘 동안이나 출산의 고통을 겪다가 아기와 함께 숨을 거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파디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1세 어린 나이에 사우디아라비아의 24세 농민과 결혼했다가 이런 변을 당했다.



    라완과 파디야의 부모는 돈을 받고 어린 딸을 강제로 결혼시켰다. 예멘의 산부인과 전문의 사르와 엘라비 박사는 “소녀들은 다 자라기 전에 아이를 갖도록 강요당한다. 많은 소녀가 유산을 경험하며, 강요된 성관계로 인한 트라우마로 합병증을 앓게 된다”고 전했다. 유엔 인구기금(UNFPA)이 올해 낸 보고서 ‘엄마가 된 아이들’에 따르면 하루 2만 명, 매년 730만 명 이상의 10대 소녀가 아이를 낳는다. 그 가운데 하루 192명, 매년 7만 명이 임신·출산의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예멘 법엔 ‘딸의 결혼 시기는 부모가 결정한다’고 돼 있다. 나이와 상관 없이 딸을 강제 결혼시킬 수 있다. 특히 빈민가나 부족사회에선 조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가난한 예멘에선 아이 양육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혹은 신랑 측으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어린 딸을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2010년 예멘 보건사회부 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전에 결혼한 여성이 전체 여성의 25%를 넘었다. 2006년 예멘 사나대학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시 외곽지역의 경우 52%의 여성이 7~10세에 결혼한다.

    조혼이 보편화한 것은 어린 소녀일수록 순종적이고 아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다고 믿는 문화 탓이다. 예멘 수도 사나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모하메드(27)는 “내 아버지는 67세, 어머니는 39세이다. 어머니는 7세 때 35세인 아버지와 결혼했다. 나는 10세 아내와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결혼할 때 미화 1000달러 정도의 지참금을 신부집에 ‘신부값’으로 줬다고 한다. “아내가 너무 어린데 결혼생활이 가능하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는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 더 순결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가 8세일 때 결혼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예멘에선 어린 아내일수록 순결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적으면 4세에서 많으면 12세 정도의 소녀들이 강제로 결혼하고 있다. 부모들은 “딸이 나이가 들수록 세상 물정을 알아가면서 ‘나쁜 물’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멘에도 휴대전화와 위성방송 등이 보급되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세태에 물이 들면 아이가 타락한다는 것이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치안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저개발국가에서는 최근 강간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부모들은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딸들을 일찍 시집보내려 한다. 예멘 농부 하산 씨는 “열 살 된 딸이 예쁘다고 소문이 나서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빨리 결혼시켰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지면 집안의 수치가 될 것이고 딸을 내 손으로 죽여야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소녀들은 결혼을 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부모 손에 이끌려 낯선 집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나의 빈민가에 살던 나디아(9)도 2년 전 7세 때 40세나 많은 남편과 그렇게 결혼했다. 나디아는 “아버지가 친척집에 간다며 예쁜 옷과 사탕을 사주셨다. 그래서 따라간 집엔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은 아버지가 사라진 뒤 나를 방에 가뒀다. 무서워 울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와 ‘지금부터 내가 네 남편이다’라며 강제로 옷을 벗겼다”고 첫날밤의 일을 설명했다. 남편과 실제로 성관계를 했느냐고 묻자 나디아는 “그렇다”고 짧게 말하곤 입을 다물었다. 이 어린 신부에게 첫날밤은 말조차 꺼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디아의 부모는 결혼 대가로 신랑 집에서 1500달러를 받았다.

    범죄 예방 위해 早婚?

    조혼 문화의 핵심은 바로 이 신부값이다. 가난한 부모가 거액의 신부값을 받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부의 나이가 어릴수록, 신랑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날수록 신부값은 올라간다. 3년 전 사나에서 4세 소녀가 70대 노인과 결혼할 때 신부의 아버지는 낙타 400마리와 땅을 신부값으로 받았다. 이러니 가난할수록 조혼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90세 노인이 15세 소녀를 신부로 사들인 경우도 있었다. 75세 연하의 신부를 얻기 위해 노인이 지불한 돈은 1만7500달러(약 1800만 원)로, 가난한 신부집엔 거액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신부가 첫날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다가 친정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 화가 난 노인은 신부 부모에게 신부값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아동 인신매매, 성매매와 다를 바 없다”는 전 세계적인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도 결혼 최저 연령이 없는 나라다. 단지 이슬람 율법에 따라 성관계 가능 연령만 정해져 있다. 그래서 성관계만 보류한다는 형식적인 선서만 하면 한 살짜리 어린아이와도 결혼할 수 있다.

    조혼을 이슬람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어린 신부를 양산하는 요인이다. 북예멘과 남예멘으로 분단됐던 예멘이 1990년 통일될 때까지만 해도 법은 ‘결혼이 가능한 최저 연령은 17세’로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일 당시 혼란한 틈을 타 최저 연령이 15세로 낮아졌다가 1999년에는 민법 개정을 통해 결혼 최저 연령 조항이 아예 없어졌다. 최저 연령을 정하는 투표를 실시하려 했으나 예멘 이슬람법령위원회가 이를 거절했다. 최저 연령 제정에 반대한 종교 지도자 모아메드 알 하즈미는 이런 논리를 내세웠다.

    “서양에선 18세부터 어른으로 보는 것과 달리 우리는 사춘기가 되면 어른으로 간주한다. 위성방송 등으로 인해 젊은이들은 성적으로 흥분해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섹스를 하는 것은 간통이고 이는 이슬람에서는 금지돼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결혼을 일찍 할 수 있게 허락하는 것이다.”

    일부 성직자는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9세 신부를 맞았던 점을 들어 조혼 풍습을 정당화한다. 조혼이 이슬람법에 의해 정당화하는 경향은 예멘뿐만 아니라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수의 이슬람 국가에서 나타난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는 잠파라 주 지사를 지낸 아메드 사니 예리마(49) 의원이 이집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소녀를 신부로 맞아들이기 위해 소녀의 부모에게 신부값 명목으로 10만 달러(약 1억1000만 원)를 줬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자 그는 “나는 나이지리아 헌법을 위반하지 않았다. 이슬람의 전통을 따랐을 뿐”이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법 비웃는 악습

    조혼이 성행하는 나라는 이슬람 국가만이 아니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도 조혼이 많이 이뤄지는 나라다. 어린이 인권보호단체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는 5700만 명이 넘는 어린 신부가 있으며, 그중 인도 소녀가 46%를 차지한다. 인도에선 조혼이 불법이지만, 가난한 농촌이나 도시 지역에선 조혼이 성행한다.

    인도에선 여성이 혼인하려면 남자 집에 지참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가난한 집 여성들은 그럴 수가 없다. 그러나 어릴 때 결혼을 하거나 나이 많은 남자에게 어린 신부를 시집보내면 지참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40% 이상의 여성이 18세 이전에 결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국민의 90% 이상이 믿는 힌두교 마누 법전에는 ‘여성의 역할은 남성에게 순종하는 것’이라는 남존여비 사상이 담겨 있다.

    동유럽 루마니아의 집시들에게도 조혼이 고유한 문화로 전승되고 있다. 결혼이 가능한 나이는 16세이지만 집시들 사이에서는 강제 조혼이 이뤄진다. 2년 전 12세 소녀가 친부모에 의해 집시 가정에 팔려간 일이 있었다. 소녀를 사들인 부모는 자신들의 10세 아들과 이 소녀를 쇠사슬로 묶은 뒤 결혼식을 치렀다. 공포에 질린 소녀가 울음을 멈추지 않자 폭력을 휘둘렀고, 집을 비울 때도 쇠사슬을 풀어주지 않은 채 소년과 한방에 넣었다. 소녀가 결혼 5일 만에 경찰에 구조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이처럼 조혼은 종교와 대륙을 가리지 않고 고유 문화로 치부되며 소녀들의 인권을 짓밟는다. 방글라데시는 15세를 결혼 최저연령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18세 이하 조혼율이 66%에 달한다. 방글라데시의 메헤르푸르 인근 지역에서 얼마 전 12세 소녀와 14세 소년의 결혼식이 열렸다. 현지 언론인 투힌 아란요는 지역 공무원에게 즉시 연락해 결혼식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관들은 손을 쓰지 못했다. 결혼식에 참여한 지방의원이 조혼이 마을의 전통이며 집안일이라면서 경찰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경찰은 결혼식 음식만 먹고 사라졌다.

    이런 나라들의 경우 출생신고를 제대로 안 하는 것도 문제다. 문맹자가 많고 유아사망률이 높은 나라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도 출생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언제 태어났는지를 모르니 법으로 정해진 결혼 최저연령을 지켰는지 여부도 알기 어렵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파키스탄 소녀 아이샤(14)는 어느 날 경찰의 방문을 받았다. 결혼 최저 연령이 15세인 파키스탄에서 14세 아이샤가 결혼한 것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아이샤의 시아버지는 아이샤에게 “경찰이 오면 하이힐을 신고 16세라고 하라”고 엄포를 놨다. 출생신고가 안 돼 있어 경찰은 아이샤의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었다.

    터키도 부모가 17세 미만의 자녀를 결혼시키면 형사처분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터키의 전체 결혼 건수 중 25%가 17세 이하의 조혼이며 터키 동부의 한 지역은 조혼율이 50%에 달한다. 국제 구호단체 월드비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18세 이전에 강제 조혼을 당하는 여성은 하루 3만9000여 명에 달한다. 2010년 현재 158개국이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최저연령을 만 18세로 정하고 있지만, 46개국은 18세 미만이라도 부모 동의하에 결혼이 가능하며, 52개국은 만 15세 미만도 결혼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기회 박탈, 빈곤 악순환

    조혼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아프리카의 니제르다. 아동 후원단체 플랜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이 나라 소녀들의 75%가 18세 이전에 결혼한다. 36%는 15세 이전에 결혼하며, 10~12세의 어린 소녀 상당수도 조혼을 한다. 니제르는 법적으로 결혼 최저연령이 남자 18세, 여자 15세이지만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인 니제르에선 있으나마나 한 법이다.

    니제르 수도 니아메 외곽에 사는 하에마(8)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에 낯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마을의 결혼 중매업자라는 것을 알고 하에마는 슬픔에 잠겼다. 아버지가 시장에서 채소를 팔아 근근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집에서 자신을 시집보내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결혼은 학교를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에마는 공책과 연필을 동생들에게 나눠주며 “내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거야”라고 했다. 결혼식은 이틀 후였다. 결혼하기 전 딱 하루만 더 학교에 가고 싶다는 하에마의 호소도 묵살됐다. 초등학교 1학년 하에마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도 못하고, 아직 글자도 다 못 배운 게 슬프다”고 했다. 하에마가 시집가는 대가로 아버지가 받은 돈은 겨우 250달러. 아버지는 그 돈으로 염소 한 마리를 사고 나머지로는 빚을 갚을 예정이다. 이틀 후 엄마가 시장에서 사온 하얀 중국산 원피스를 갈아입고 하에마는 눈물을 흘리며 시댁으로 떠났다.

    바바툰드 오소티메힌 유엔 인구기금 사무총장은 “조혼이 풍속인 국가에서 가족은 딸 교육에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여길 수 있다”며 “18세 이상 기혼 소녀 중에 중등교육을 받지 못한 소녀가 교육을 받은 소녀보다 3배 이상 많다”고 밝혔다.

    인도 구지라트 주에 사는 히란(12)은 벌써 일주일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단짝친구 미나를 기다린다. 수학을 특별하게 잘해서 ‘천재 소리를 듣던 미나는 히란에게 아무 말도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미나의 소식을 묻자 “아마 결혼했나봐”라고 혼잣말을 했다. 여학생 학급인 히란의 반은 5학년이 되자 급우들이 크게 줄었다. 다들 결혼해서 이웃 마을이나 다른 지방으로 갔다는 소식만 들었다.

    아버지가 말단 공무원인 히란의 집안은 끼니를 걱정할 만큼은 아니지만 언젠가 히란도 결혼을 해야 할지 모른다. 지참금을 줄이기 위해선 가능하면 어릴 때 결혼시켜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엿들은 적이 있다. 히란의 장래 희망은 우주비행사. 히란은 “내 꿈이 우주비행사라고 말해도 어른들은 그저 웃기만 한다. 아마 나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미나처럼 결혼해서 남편을 위해 물이나 길으러 다녀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일단 결혼해서 시댁으로 들어가면 소녀들은 집 밖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고 집안일을 도맡아야 하며 임신과 출산에 직면한다. 학교도 갈 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조혼 소녀가 문맹으로 전락한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계기가 영원히 봉쇄되고 빈곤의 악순환에 빠진다. 조혼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명예살인의 공포

    조혼은 가정폭력과 성적 학대를 불러온다. 남편과 나이차가 많아 가정 내 의사결정에서도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물리적으로 약자에 머물게 된다. 대부분의 조혼 소녀들은 시댁과 남편의 폭력 앞에 방치돼 있다. 어리고 못 배운 소녀들은 폭력을 고발할 방법도 모르거니와,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종속돼 있어 당하기만 하고 산다.

    2008년 3월 파키스탄 남부에 사는 이브라힘 살랑기(28)는 사촌이자 아내인 타슬림 솔랑기(17)를 살해했다. 이브라힘은 경찰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통했다고 의심해 총을 쏴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부족회의가 타슬림을 간통녀로 선언했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우며 자신은 ‘살인’이 아니라 ‘명예살인’을 한 것이라고 결백을 주장했다. 명예살인은 비교적 관대한 처벌을 받으며 불구속 입건이나 집행유예로 끝나기 일쑤다. 현지 언론은 이브라힘이 아내를 수시로 폭행했으며, 그녀를 땅에 묻거나 굶주린 개에게 물어뜯기게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조혼의 병폐이자 명백한 폭력이고 타슬림은 간통의 누명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브라힘은 끝내 처벌되지 않았다.

    예멘의 아동인권운동가 아흐메드 알 쿠레시는 “대부분의 명예살인은 국가의 법이 미치지 않고 부족 법이 적용되는 시골 지역에서 벌어지며 제대로 신고조차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지난해 유엔은 10월 11일을 ‘세계 여자아이의 날(International Day of the Girl Child)’로 정했다. 어린 소녀들을 강제 결혼의 공포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으로부터 보호하고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래를 개척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가게 하자는 취지다. 전 세계적으로 조혼의 피해가 심각해 가장 약자인 어린 소녀들이 최대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세계 경기침체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계층이 여자아이들이다. 경제성장률(GDP)이 1%p 떨어질 때마다 1세 미만 여아 1000명당 7.4명이 더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 남아(1000명당 1.5명 사망)보다 5배나 높았다.

    여성 기아(飢餓)도 남성의 경우보다 훨씬 심각하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는 최근 극심한 기근으로 가족 구성원 중 가장 약자인 여자아이를 먼저 ‘처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가뭄 신부’로 일컬어지는 이 현상은 입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4~12세 소녀를 결혼시키는 것이다. 어린 신부들은 결혼 후 출산을 한 뒤에도 자신이 먹을 것을 아이들에게 먹이다보니 더 굶주리게 된다.

    지난 7월 한 예멘 소녀의 외침이 담긴 2분 30초짜리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돼 화제가 됐다. 나다 알 아달이라는 11세 소녀는 부모가 사우디아라비아 남성으로부터 돈을 받고 자신과 결혼시키려 한다고 고발한다. “강제로 결혼시킨다면 죽어버릴 거예요”라는 나다의 눈빛에는 절망과 고통이 가득하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죽음을 각오하고 이런 영상을 만들었을까. 나다는 “지금도 (조혼을 피해) 많은 아이가 바다에 몸을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나다의 눈빛과 호소가 세상을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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