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상곤 박사의 ‘왕의 한의학’

‘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광기의 남자 연산군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2/5
천리(天理)보다 인욕(人慾)

본격적인 폭정의 계기가 된 것은 연산군 10년에 일어난 갑자사화다. 그 중심엔 어머니 폐비 윤 씨 문제가 있다. 사실 실록의 관점은 사관의 관점이고, 사관의 관점은 성리학이란 틀 속에서 유학적 성군을 기준으로 정립된 것이다. 조선의 왕도는 근본적으로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추구했다. 내부적으론 성인의 마음가짐을 배워야 하고 밖으론 왕 노릇을 하라는 뜻이다.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의 저서 ‘태극도설(太極圖說)’은 성인(聖人)의 기준을 이렇게 규정한다. “성인은 중정(中正)과 인의(仁義)를 본성으로 삼고 마음이 고요하면서 욕심이 없게 함으로써 사람이 걸어가야 할 도리를 세우는 것이다.”

중국 원나라 주진형이 편찬한 의서 ‘격치여론(格致餘論)’에선 욕심을 음식남녀(飮食男女)라고 말한다. “남녀의 욕정은 인간에게 관계된 바가 크고 음식에 대한 욕심은 몸에 있어 더욱 절실하다. 세상에는 이 둘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다.”

일부 사가(史家)들은 연산군의 잘못에 대해 패자의 기록으로 진실을 은폐한다고 하지만 조선 왕이라는 통념적 기준에서 본다면 연산군은 확실히 패륜적인 왕이다. 주자(朱子)의 어록을 집대성한 책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 음식에 대한 기준은 엄격하다. 주자는 제자들이 “음식에서 무엇이 천리(天理)이고 무엇이 인욕(人慾)이냐”고 묻자 “음식은 천리이지만 좋은 맛을 찾는 것은 인욕”이라고 대답했다.

실록 2년 2월 19일 연산군은 “사당(沙糖), 채단(綵緞), 술독을 푸는 빈랑(檳?)·괘향(掛香)·각양의 감리(甘梨), 용안(龍顔) 등속의 물건을 성절사(聖節使)의 내왕편에 사가지고 오게 하라”고 명한다. 실록 8년 12월 4일엔 중국에 가는 사신을 보고 수박을 구해오라고 시킨다. 이에 장령(掌令·사헌부에 속한 정사품 벼슬) 김천령이 아뢴다. “지금 듣건대, 북경에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수박을 구해오도록 했다고 하는데, 그 종자를 얻으려고 한 것이겠으나, 대체로 먼 곳의 기이한 음식물도 억지로 가져오는 것이 불가하온데, 하물며 중국에서 구하는 일이겠습니까? 신이 일찍이 북경에 갔을 적에 들으니, 중국의 수박이 우리나라 것과 그다지 다른 점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 수개월이 걸리는 여정에 반드시 상하게 될 것이니, 우리나라에는 이익이 없고 저쪽 나라에서 비방만 받을 것입니다.”



이후 김천령은 능지처참을 당한다. 연산군은 가감 없이 수박에 대한 보복임을 명시한다. “이는 오로지 곧 천령의 짓인데, 전일에 재주를 믿고 마음을 오만하게 한 자다. 내가 일찍이 중국의 수박을 보고 싶어 하였거늘, 그때 천령이 크게 주장하여 막았다. 과연 임금이 다른 나라의 진기한 물건을 구하면 말하여 막아야 하는가? 이것이 어찌하여 그르다고 감히 말하는가? 아뢴 대로 능지·적몰(籍沒·중죄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족까지 처벌하던 일)하고, 그 자식은 종을 만들고, 그 나머지 민휘 등은 처음부터 사수(死囚)로 가두라. 또 천령·덕숭은 효수하여 전시(展屍)하고, 권헌 등의 소는 삭제하여 버리라.”

실록 11년 4월엔 “이번 성절사 가는 길에 용안(龍眼)·여지(枝)를 많이 사오고, 수박, 참외 및 각종 과일을 많이 구해오라”고 명한다. 여지는 양귀비가 좋아한 과일로 당나라 현종이 남방에서 생산되던 것을 장안성까지 실어오느라 백성들의 원망을 들었던 대표적 과일이다. 연산군은 거리낌 없이 여지를 구해올 것을 주문한다.

기생 뽑아 흥청망청

‘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연산군은 탈놀이인 처용무를 좋아했다.

연산군이 특히 좋아했던 음식은 소의 태(胎)다. 농업국가인 조선에선 소를 식용으로 도축하는 걸 엄격히 규제했다. 태조 이성계가 재위 7년 9월의 교지에서 ‘소와 말의 사사로운 도살을 엄금한다’고 한 것을 비롯해 곳곳에서 우유의 음용마저 제한했다. 더욱이 소 전염병으로 농우(農牛)가 줄면서 경작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왕들마저 반찬으로 쇠고기를 먹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연산군은 완전히 역주행한다. 실록 11년 4월 20일 잔치마다 쇠고기를 쓸 것을 전교한다. 실록의 기록이다. “이로부터 여느 때의 흥청을 공궤(供饋·음식을 줌)하는 데에도 다 쇠고기를 쓰니, 날마다 10여 마리를 잡아 수레로 실어 들였다. 노상에서 수레를 끌거나 물건을 실은 소까지도 다 빼앗아 잡으니, 백성이 다 부르짖어 곡하였고, 또 군현으로 하여금 계속하여 바치되, 가까운 도에서는 날고기로, 먼 도에서는 포를 만들게 하였다. 또 왕이 소의 태를 즐겨 먹으므로 새끼를 낳은 배부른 소는 태가 없을지라도 잡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연산군은 여색에 관한 한 색골로 악명 높다. 실록 9년 6월 13일 기록을 보자. “이에 앞서 왕이 미행하여 환자(宦者) 5, 6인에게 몽둥이를 들려 정업원으로 달려 들어가 늙고 추한 여중을 내쫓고, 나이 젊은 아름다운 자 7, 8인만 남기어 음행하니, 이것이 왕이 색욕을 마음대로 한 시초이다.”

2/5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목록 닫기

‘정기(精氣)누설’ 일삼은 시대의 색골

댓글 창 닫기

2020/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