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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심리학

‘안 하면 죽는다’는 불안 사회를 ‘잘하면 더 받는다’는 보상 사회로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안 하면 죽는다’는 불안 사회를 ‘잘하면 더 받는다’는 보상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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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학부 수업에서는 보통 팀 과제가 필수인데, 팀으로서 한 학기 동안 특정과제를 수행하고 학기 말에 발표회를 한 결과를 리포트로 제출하는 형태다. 학생들 스스로 7~8명의 팀을 구성하도록 하는데, 자신과 친한 친구끼리 같은 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기말에 학생들은 자신의 팀원들을 평가할 기회를 가진다. 누가 팀 과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와 팀원으로서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를 평가하도록 요구받는다.

필자는 같은 팀의 팀원들은 기본적으로 과제 결과에 따라 같은 점수를 받은 후 팀원 평가에 따라 일부 점수가 가감된다고 공지한다. 이 순간 일부 학생들은 매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괴로워한다. 팀원평가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진짜로 진실 된 평가를 해보려는 학생들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모든 팀원이 똑같이 기여했고 똑같이 만족스럽다고 써버린다. 우리는 원래 누군가에게 더 주거나 누군가에게 덜 주는 것에, 아예 평가 자체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보상보다 처벌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평가는 더 받을 기회보다는 뭔가를 잃을 기회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심리학 연구에서는 예방적 동기에 비해 향상적 동기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며 건설적이라고 간주한다. 또한 더 높은 정신건강과 행복과 관련돼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향상적인 서구 사회적 관점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들이다. 평가를 싫어하고, 더 받는 것도 덜 받는 것도 싫은 예방적 동기로 가득 찬 한국 사회가 굳이 문제가 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서양은 평균보다 앞서는 소수를 찬양하지만, 우리는 평균보다 뒤처지는 인간을 돌아보는 인간적인 면을 갖고 있다.

외국 영화는 슈퍼맨이나 람보가 적을 싹쓸이하는 영웅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우리 영화는 뒤처지는 낙오자를 돕고 이끌어서 모두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얘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사회적 평등을 좋아하고, 교육 평준화를 추구하고, 모두를 위한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고, 약간은 사회주의적 성향을 띠는 모양이다.



이러한 것들이 정치적 옳고 그름을 떠나 한국인의 예방적 심리 성향과 잘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예방적 동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향상적 동기를 가진 사람은 원하는 보상을 얻었을 때는 기쁨을 느끼고, 얻지 못했을 때는 실망감을 느낀다. 그 과정에는 기대감이 주를 이룬다. 반면 예방적 동기를 가진 사람은 원하는 결과, 즉 나쁜 일을 성공적으로 막았을 때는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불안감을 주로 느낀다. 예컨대 식스팩을 만들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은 머릿속에 자신의 미래의 멋진 몸을 그리며 기대감에 운동하지만, 암에 걸릴까봐 운동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면서도 계속 불안하다.

최근 고려대학교 대자보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릴레이 현상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불안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철도노조 파업이라는 이슈로 촉발되기는 했지만, 이 릴레이 현상의 본질에는 한국인이 공감하는 불안이 있다. 초중고등학생들은 대학입시에 대한 불안, 청년은 취업과 진로에 대한 불안, 중년은 자녀와 실업에 대한 불안, 노년은 노후와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우리 사회는 불행해지고 있다. 전 세계 같은 연령대의 거의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진 고민인데도 유달리 현재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로 한국인이 인생의 도전과 과제를 예방적 동기에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예방적 동기에서는 그런 과제들은 단지 달성하면 좋은 보상이 아닌, 반드시 달성해야만 하는 어떤 것과도 같이 인식된다. 그래서 달성 못하면 저 아래 절벽으로 떨어지는 처벌이 기다린다는 불안의 원인이 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대학에 가면…’이라는 말보다 ‘대학에 못 가면 끝이야’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뭐가 끝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부모는 없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간다. 고등교육인 대학진학은 보상이 아니라, 안 가면 처벌받는 필수가 돼버렸다. 취업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줄지 아닐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냥 취업해야 한다. 명품은 극소수 부자를 위한 보상이 아닌, 중산층까지 하나씩은 가져야 하는 없으면 안 되는 필수품이 되었다.

부모는 자녀가 사랑스러워서 더 따뜻하게 지내라고 유명 브랜드의 점퍼를 사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또래 집단에서 기죽지 말라고 무시당할까봐 사준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사회에서는 해서 얻는 것은 없는데, 안 하면 손해 보는 것으로 가득하다. 왜? 모두 다 하니까.

20세기 후반 한국은 눈부신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루어왔다. 6·25전쟁 직후의 한국은 몇몇의 천재나 소수에 의해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국민이 똘똘 뭉쳐서 죽을힘을 다해도 될까 말까 한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한국인의 예방적 성향은 배우고 익히고 일하는 그 모든 것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으로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처벌을 이용하는 사회적 제도는 처벌에 민감한 다수를 움직이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죽을지도, 망할지도, 진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한동안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벌점보다 상점을

‘안 하면 죽는다’는 불안 사회를 ‘잘하면 더 받는다’는 보상 사회로
허태균

1968년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문학석사(일반심리학)·노스웨스턴대 철학박사(사회심리학)

저서 : ‘가끔은 제정신’


우리에게 지금 던져진 질문은 간단하다. 21세기에도 예방적 동기로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을까. 세계 1등 상품만 살아남고, 천재 1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리고, 생산이 아닌 창조가 필요한 시대에 과연 어떤 인재가 필요할까. 수많은 벌점 제도하에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을 읽고, 시험에 나오는 다 같은 공부를 하고, 등골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이 휘게 만들 정도로 비싼 유명 브랜드 의류)를 다 같이 입고, 그러면서도 불안해하면서 성장하는 우리 청소년들이 과연 이 시대가 원하는 인재가 될까.

이제 한번 바꿔보자. 학교와 회사에서 벌점리스트보다 더 길고 다양한 상점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생각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신동아 2014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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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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